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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스코, 오얀타이탐보, 아구아스 칼리엔테스
[연재] 임영태의 남미 여행기 (3)
임영태 / 출판기획자 겸 역사교양서 저술가
리마에서 쿠스코로 가는 길
12월 29일 새벽 5시 좀 넘어 잠이 깼다. 현재 시간 기온은 22도지만 약간 무덥다는 느낌이 든다. 한국의 본격적인 여름 날씨와 비교하면 낮은 기온이지만 무더운 느낌이다. 창문을 통해 바깥을 내다보니 아직 거리가 한산하다.
쿠스코로 떠날 준비를 위해 짐을 챙긴다. 캐리어는 여기 두고 백팩 하나만 메고 가기로 했다. 셀폰, 충전기, 보조배터리, 여권, 지갑, 칫솔, 치약, 세면도구, 선글라스, 안경과 돋보기, 필요한 옷가지 들, 그리고 또.... 이것저것 챙긴다.
그 사이 한국에 있는 아내와 딸이 보낸 카톡 문자가 와 있다. 한국 정치 상황과 관련한 물음이다. 간단한 답장을 하고 나니 화가 치민다. 한국 상황에 대해서는 일단은 접어두고 여행이나 하자. 그래도 뉴스를 안 볼 수는 없다. 소식을 대충 확인한다. 쿠스코와 마추픽추 관련 정보도 찾아본다.
아침 숙소를 나서 오전에 리마 시내를 돌아보고 오후에 쿠스코로 떠난다는 게 우리의 애초 생각이었다. 그래서 오후 2시 30분 비행기를 예약해 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차질이 생겼다. 전날 저녁 쿠스코에서의 일정을 둘러싸고 이야기를 나누다 늦게야 잠들었고 박 선생 부인이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고 해서 아침 일찍 떠날 수가 없었다. 수면이야 여행객이 상황에 맞게 조절하면 되지만 식사시간은 우리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9시 40분쯤에야 아침식사를 시작하게 되면서 오전 시간을 활용하기 어렵게 되었다. 박 선생 부인이 차린 아침식단은 미역국, 시금치 무침, 숙주나물, 계란말이 등 전형적인 한국의 가정백반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아침식사를 끝내고 페루식 커피를 마시면서 박 선생의 노래공연까지 덤으로 감상하는 호사를 누렸다. 기타, 하모니까 연주와 함께 엘콘도르파사, 창작곡 <박우물>을 들려준다. 박 선생은 가수이며 여행가, 작가로도 활동하는 등 다방면에서 예술적 재능이 뛰어나다. 우리는 잠시 쉬다가 12시 좀 넘어서 공항으로 출발했다.
박 선생 부인이 차려준 한식 아침 식사. [사진-임영태]
시간에 여유가 있었지만 바로 탑승 수속을 밟았다. 국내선인데다가 관광객이 대부분이어서 그런지 짐검사는 까다롭지 않았다. 들어가면서 보니 모니터에 9번 게이트로 떴다. 그런데 9번 게이트 앞에서 한참을 앉아 있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그래서 모니터를 다시 확인했더니 B4로 바뀌어 있었다. 안내 방송이 있었나? 스페인어뿐만 아니라 영어로도 했을 텐데 우리가 못 알아 들은 건가? 아무튼 부랴부랴 B4로 이동했다. 그냥 앉아 있기만 해서는 낭패를 볼 수 있다. 끊임없이 주위를 살피고 긴장하고 또 긴장해야 한다.
JetSMART 항공의 JA7037기는 호르헤 차베스 공항(국내선)을 오후 2시 40분경에 이륙해 오후 3시 50분경 도착했다. 남미지역의 대표적인 저가항공사인 제트스마트(JetSMART)는 항공전문 사모펀드인 인디고 파트너스(Indigo Partners)가 2017년 설립한 항공사로 본사는 산티아고에 있다고 한다. 인디고 파트너스는 미국의 스피리트 항공, 프론티어 항공, 헝가리의 이주에어, 멕시코의 볼라리스, 아이슬란드 와우항공 등 세계 곳곳의 저가항공을 확보하고 있다. 제트스마트 외에도 남미지역에는 저가항공이 여럿 있다, 특징적인 것은 이들 저가항공에서 일정 무게(대부분 8-10kg) 이상의 수하물 비용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짐을 가급적 간략히 하고 부치지 말고 기내로 들고 타는 것이 여러 면에서 좋다.
리마는 태평양 바닷가에 위치한 저지대 도시이고 쿠스코는 안데스 산맥에 위치한 고산도시로 환경이 완전히 다르다. 쿠스코로 가기 위해서는 안데스 산맥의 일부를 넘어야 한다. 리마에서 남동쪽으로 비행시간 1시간 10분 위치에 있는 쿠스코는 금방이다. 하지만 버스로는 무려 21시간이나 걸린다고 한다. 험준한 안데스 산맥을 타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제트항공은 물 한잔 안 주지만 그건 별로 문제가 안 된다. 비행기 이륙 후 산간을 지나더니 산을 하나 넘으니 쿠스코가 나타났다.
제트스마트 항공. [사진-임영태]
쿠스코 가는 길에 본 안데스. [사진-임영태]
페루 리마와 쿠스코(구글지도) [사진-임영태]
쿠스코에서 만난 황홀한 야경
쿠스코 공항에 도착하니 역시 들은 대로 숱한 호객꾼들이 ‘탁시’를 외치며 비행 승객들을 맞이한다. 택시 기사와 흥정을 했더니 역시 들은 바대로 배가 넘은 50솔을 요구한다. ‘노’ 하니 40솔, 30솔로 내려간다. 그래도 ‘노’ 했고 결국 20솔로 낙착을 보았다. 그런데 우리 숙소가 광장 근처가 아니라 산꼭대기 부근에 있어서 광장에서도 상당히 올라가야 했다. 도착한 뒤 택시비로 25솔을 주었더니 기사가 너무 좋아한다. 호텔이 높은 곳에 위치해서 전망이 좋다. 호텔 체크인 후에 걸어서 광장 근처로 내려갔다.
내일 마추픽추 기행을 위해 박 선생이 추천해준 여행사 ‘파비앙’을 찾았다. 파비앙은 광장 근처에 있었는데 입구에 한국인 전문 여행사‘라고 씌어 있었다. 한국인이거나 한국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거나 한국어를 잘 하는가 했더니 아무 연관이 없었다. 이곳을 찾은 한국인 여행객들의 입소문을 따라서 한국인들이 다수 찾아오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고 한다.
여행사에서 내일 마추픽추 관람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내일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마추픽추 입장티켓은 인터넷으로 사야 하는데 이미 마감이 끝났다는 것이다. 그럼 마추픽추로 가는 교통편은 어떻게 되느냐고 물으니 열차, 버스, 걸어서 가는 트레킹 등의 방법이 있다고 설명한다. 리마의 박 선생은 마추픽추 입장표는 인터넷으로 예매하지만 여행사는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걱정할 것 없다고 해서 우리는 그 말만 믿고 그냥 왔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여행사 대표가 말한다. 파비앙에서 마추픽추 여행을 예약할 수 있다. 내일 바로는 안 되지만 1박2일 코스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왕복 버스비, 왕복 기차비(잉카트레일), 마추픽추 아래 아구스칼리엔테에 1박 하는 숙박비(아침 제공), 가이드(마추픽추 관람 때 영어 가이드) 비용 등을 합쳐 1인당 220달러(한화로 약 30만원)라고 한다. 다만 입장권은 인터넷으로 예약이 끝난 상태여서 현지에 가서 우리가 직접 줄을 서서 요금(여행사에서 페루 화폐로 환전해서 준비)을 지불하고 사야 한다고 했다.
마추픽추 외에도 신성한 계곡, 오얀타이탐보 등 주변 유적지, 관광지와 마추픽추를 함께 돌아보는 1박2일 코스 상품이 있지만 지금은 모두 끝난 상태라고 한다. 이 또한 오기 전에 미리 예약을 해야 하고 지금은 연말 연초 연휴가 끼어 있어서 어렵다고 설명한다. 정확한 정보를 알지 못해 사전 예약을 하지 않는 바람에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빠듯하게 잡은 여행 일정에서 하루를 날려버리게 된 거나 마찬가지가 상황이 됐다. 우리는 오얀타이탐보와 신성한 계곡 등 근교 투어는 포기하고 1박 2일 코스로 마추픽추만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낮에 본 쿠스코 아르마스 광장. [사진-임영태]
숙소에서 낮에 본 쿠스코 시내 모습. [사진-임영태]
아르마스 광장 야경. [사진-임영태]
아르마스 광장의 식당가. [사진-임영태]
여행사에서 마추픽추 투어 예약을 끝내고 광장으로 나와 구경하며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쿠스코 아르마스 광장의 야경이 환상적이었다. 아마도 낮에 보면 이처럼 아름다운 느낌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관광객들의 움직임과 조명 불빛이 너무나 잘 어울렸다. 광장을 거닐다가 칵테일 한잔씩을 공짜로 준다는 데 낚여서 한 식당에 들어가 저녁을 먹었다. 수프, 피자, 세비체 하나씩을 시켰다. 합쳐서 110솔이다. 4만원이 채 안 되는 가격이다. 어제 리마 해변에서 먹은 음식 값과 비교하면 너무 착한 가격이라고 해야 할 수 있다. 맛은 약간 떨어지지만 그래도 먹을 만은 했다.
그런데 식사가 다 끝나도 공짜로 주기로 한 칵테일을 안 준다. 우리는 세 번씩이나 독촉을 한 끝에 기어코 공짜 칵테일을 한잔씩 얻어 마셨다. 이게 웬일인가. 칵테일 맛이 일품이다. 칵테일이 메인인 듯했다. 몸 상태가 좋으면 술을 한잔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일 새벽 4시에 기상해서 출발해야 한다. 더욱이 이 대표가 고산병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이곳은 3400-3500미터의 고지대다. 자제하기로 했다.
그러나 자제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숙소로 올라가는 길이 힘들다. 이 대표가 고산병 증세로 10미터를 가지 못하고 앉아서 쉰다. 쉬었다 가다를 반복한다. 이 대표는 쿠스코에 도착한 뒤부터 약간씩 컨디션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처음 통풍 증세가 머리를 디밀더니 고산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행사에서 우리가 내일 일정을 놓고 가이드의 설명 열심히 듣고 있는 동안에 이미 이 대표는 힘들어서 소파에 기대어 앉아만 있었다. 계약을 끝내고 광장으로 나와서 사진 찍고 식사하는 동안에도 조금씩 징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막상 언덕을 오르기 시작하자 본격적으로 문제가 된 것.
평소 운동도 열심히 하고 산에도 꾸준히 다녔고 백두대간 종주까지 무사히 끝냈을 정도로 걷는 것이라면 자신 있어 하던 그였지만 막상 고산증세 앞에서는 무기력하기만 했다. 인간도 육체의 지배를 받는 동물에 불과하다. 다른 동물과 달리 의식이 육체를 지배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의식과 정신력이 중요하다고 해도 육체가 말을 듣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겸손을 배워야 한다. 실제로 경험을 통해 배우기도 한다.
그런 중에도 앞장 선 내가 길을 잘못 들어서 다른 쪽으로 한참을 올라가다가 다시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는 실수를 범했다. 건강한 상태에서 걸어가면 10분이면 갈 수 있는 길을 얼마가 걸렸는지 모르겠다. 인적도 없는 컴컴한 골목길을 힘들게 걷다가 쉬다가 하면서 가까스로 호텔에 도착했다. 숙소에서 쉬고 있는 동안 나는 혼자서 낮에 아이들이 공을 차며 놀던 공터로 올라가 밤 야경을 구경했다. 저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산동네의 불빛이다. 관광객에게 아름다운 야경을 선사하고 있는 저곳에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숨결이 살아 숨쉬고 있다.
쿠스코 밤길과 야경. [사진-임영태]
쿠스코 시내 야경. [사진-임영태]
새벽 밤길을 달려 성스로운 계곡을 지나 오얀타이탐보로
12월 30일 새벽 3시에 일어났다. 간단히 씻고, 차 한 잔 마시고 짐을 챙겨 출정 준비를 마쳤다. 숙소를 전망 좋은 이곳에서 아래 광장 근처로 옮기기로 했다. 오르내리기도 힘들고 광장에서 벌어질 신년맞이 행사도 구경할겸 해서다. 어제 저녁 고생한 이 대표도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표정도 밝아졌다. 자신감, 허풍 섞인 농담도 한다. 뛰어난 주치의의 적절한 고강도 처방 덕분이다. 약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 쉰 때문인지 상태가 좋다. 약간의 과장된 자신감을 피력하는 걸 보니 문제가 없을 것 같다. 호텔에서 체크아웃하면서 부탁한 샌드위치 등 간식을 챙겼다.
4시 15분경 우리를 태우고 떠날 미니버스가 호텔 앞에 도착했다. 이미 사람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어서 나는 앞 운전석에 앉았다. 우리가 탑승하자 버스는 산꼭대기를 향해 골목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은 서울에서는 거의 사라진, 부산 같은 곳에만 남아 있는 도시 산동네를 한 10분쯤 오르니 왕복 4차선의 넓은 도로가 나온다. 쿠스코는 안데스 산맥 3400-3700미터에 위치한 분지형 고산도시로 42만 명 정도의 인구가 살고 있다. 아르마스 광장을 중심으로 한 구 시가지와 쇼핑몰 등이 있는 시내 번화가, 공항 주변 등을 중심으로 시내가 형성되고 그 주변 산동네 고지대까지 집들이 들어서 있다. 그 고지대 끝 정상 부분에 다른 지역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나 있었던 것이다.
우리를 태운 미니버스는 이 도로를 따라 한참을 갔다. 도로를 따라 상가나 주택가들이 나오다가 산과 농지가 나오다가 마을이 나오다가 한다. 오른편으로 멀리에 산들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그 아래 저지대에 경작지가 조성돼 있다. 도로는 산등성이를 지나 조금씩 아래로 내려가며 낮아지더니 시냇물이 흐르는 평지를 따라 간다. 포장된 넓은 도로를 한참 달리던 버스는 샛길로 빠져 비포장 도로를 조금 가더니 한 지점에서 젊은 여성 한명을 태웠다. 운전석 앞 좌석 창가의 나와 기사 사이에 여성이 앉았다.
기사와 여성은 쉼 없이 대화를 주고받는다. 라틴 사람들 특유의 활달한 대화와는 다소 분위기가 다르다. 두 사람은 차분하게 그리고 조곤조곤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40분쯤 달리다가 그 여성이 내렸다. 얼마간 더 달리니 거대한 협곡 사이에 길이 나타나고 풍광도 달라졌다. 강물이 흐르는 협곡 사이의 좁은 길을 한동안 달리다 다리를 건너고 좌회전을 하니 파차르(Pachar) 마을이 나타났다. 강을 따라 가는 도로 오른편 절벽 위에 스카이 로지 호텔(절벽에 매달린 곳에서 잠을 자며 스릴을 느끼게 만든 호텔)이 보인다. 그러고 조금 더 가니 오얀타이탐보(Ollantaytambo)가 나타났다.
오얀타이탐보 가는 길. [사진-임영태]
오얀타이탐보 가는 길. [사진-임영태]
오얀타이탐보는 성스러운 계속의 중심에 위치한 잉카 제국의 요새였던 곳이다. 성스러운 계곡은 성스러운 강, 우루밤바 강(Rio Urubamba)을 따라 피삭에서 오얀타이탐보까지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골짜기로 역대 잉카 황제들이 영지로 삼았던 곳이다. 15세기 중반 오얀타이탐보 일대를 점령한 잉카의 정복군주 파차쿠티(Pachacuti, 재위 1438-1471)는 성스러운 계곡과 오얀타이탐보를 개인 영지로 삼고 거대한 계단식 경작지와 왕족이나 고위인사를 위한 체류 시설 즉, 역참(탐보: tambo)를 만들었고 이후 황제들의 영지로 이어졌다.
오얀타이탐보는 스페인 정복자에 대항해 황제가 된 망코 잉카(Manco Inca, 1516-1544)가 오얀타이탐보를 근거지로 저항하며 수도 쿠스코를 노렸다. 그러자 쿠스코를 수비하던 스페인군 100명과 스페인에 협력하던 잉카 동맹군 수백명이 오얀타이탐보를 공격했다. 망코 잉카의 저항군은 오얀타이탐보의 견고한 요새에서 스페인군의 공격을 막아냈고, 우루밤바 강의 지류를 막았다가 터뜨리는 공격으로 스페인군의 움직임을 마비시켰다. 1537년 1월 오얀타이탐보에서 잉카군이 승리를 거둔 것이다. 하지만 스페인군의 계속되는 공격과 압력에 밀린 망코 잉카는 저지대 밀림 속으로 퇴각해 빌카밤바(Vilcabamba)에 마지막 근거지를 만들어 저항했으나 결국 스페인군에 살해당했다.
성스러운 계곡과 오얀타이탐보에는 잉카제국 시대의 수로와 석벽, 계단식 밭과 원형 모양의 경작지 모라이, 계단식 염전 살리네라스 등 많은 유적들이 있어서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성스러운 계곡과 오얀타이탐보 유적을 구경하려면 미리 예약했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해서 우리는 그냥 지나쳐 갈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많다면 오얀타이탐보에 숙소를 정하고 천천히 볼 수도 있었겠지만 여정이 빡빡해 포기해야 했다.
오얀타이탐보 마을 길. [사진-임영태]
오얀타이탐보에 도착. [사진-임영태]
잉카레일 철도를 타고 우르밤바 강을 따라
우리가 오얀타이탐보에 도착한 것은 아침 5시 50분경이다. 그런데 버스에서 내린 승객들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없어졌다. 버스기사도 어디로 갔는지 안 보인다. 우리에게 다음은 어떻게 하라는 설명도 하지 않고 사라진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여행사에서 설명 들은 대로 이곳에서 잉카레일 열차를 타면 된다. 역에는 페루레일 열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가 승무원에게 열차표를 보여주니 다음 열차라며 기다리란다. 우리 열차표는 6시 40분 행이다. 아직 6시10분 밖에 안 돼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역에서 왔다갔다하며 사진도 찍고 사람들도 구경한다. 공기는 너무나 상쾌하지만 열차가 내뿜는 매연으로 약간 매케한 냄새가 났다.
페루레일 열차가 떠나고 잉카레일 열차가 들어왔다. 승무원에게 티켓을 확인시켜 주고 열차에 올라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좌석에 앉자마자 보온병 물로 둥굴레 차를 타서 마시고 가져간 샌드위치, 사과 등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6시40분 열차가 출발했다. 잉카협곡을 따라 가는 협궤열차 잉카레일이 뿌웅~ 소리를 내며 달리기 시작한다.
오른편은 깎아지른 절벽이다. 산봉우리가 치솟아 있고 간간이 좁은 경작지를 낀 마을들이 자리하고 있다. 창밖 저 멀리로 흰 눈을 머리에 인 설산 봉우리가 보인다. 흰 눈이 덮인 베로니카(Nevado Veronica) 산이라고 한다. 와카이우일케(Huacayhuilque, 케추아어로 Waqaywillki)로도 불린다. 페루 남동부 쿠스코 주에 위치한 해발 5,682m로 안데스 전체 산맥의 동부 일부인 우루밤바 산맥의 주요 산 중 하나다. 잉카레일 열차는 안데스 산맥 계곡 속을 우루밤바 강을 따라 달리고 있는 것이다.
우루밤바 강을 따라 잉카계곡을 달릴 잉카레일. [사진-임영태]
열차 밖 풍경. [사진-임영태]
열차 안 원주민의 공연. [사진-임영태]
열차가 달리는 철길 왼편으로는 우루밤바 강이 흐른다. 협곡 사이를 흐르는 강을 따라 철길이 꾸불꾸불 놓여 있다. 열차는 느리게 달린다. 아마도 시속 30km 아래일 것 같다. 철길 공사가 험난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중간에 터널도 나왔다. 왼편 강 건너 지형은 철길 오른편보다는 덜 가파르지만 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사람 사는 마을과 경작지가 간간이 보인다. 잉카 유적지를 발굴해 복원한 곳도 보였다. 잉카제국 시절 이 험준한 협곡 사이에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계단식 경작지를 만들어 살았다는 이야기다. 강물은 비가 와서 불어나 황토색을 띤 채 힘차게 흘러내린다.
열차 안에선 페루 원주민 복장을 한 두 명의 배우가 (말을 못 알아들으니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짐작건대)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공연하고 있다. 내게는 알지 못할 그 이야기보다 그들의 현실이 훨씬 더 안쓰럽게 느껴진다. 열차 안에 이동 매점도 등장했다. 우리에게는 사라진 추억으로만 남아 있는 열차 내 이동 매점이 향수를 자극한다. 작은 맥주를 한 병에 20솔(한화 7,200원 가량)을 주고 사서 마셨다. 그렇게 열차가 달려 1시간 좀 넘게 달려 마추픽추의 관문 마을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에 도착한 것은 아침 8시경이다.
쿠스코-오얀타이탐보-아구아스 칼리엔테스. [사진-임영태]
열차에서 내려 역 밖으로 나오니 어제 여행사에서 들은 대로 태극기를 든 젊은여성이 우리 여권복사 사진을 보여주며 맞느냐고 확인한다. 우리를 안내해줄 것이라 기대하며 반가이 인사를 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우리가 묵을 숙소 종업원이었다. 우리는 스페인어를 못하고 그녀는 영어를 못하고 눈짓과 손짓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우리는 곡절 끝에 마추픽추 유적관리사무소에서 한참 동안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티켓 구입을 위한 대기표를 확보했다. 500명을 한정인원으로 정하고 있다고 하는데 123번이니 여유가 있는 셈이다. 왕복 버스티켓(1인당 24달러)도 구매했다. 걸어서 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경우는 버스티켓은 필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도 그렇고 무리를 해서 걸을 이유가 없었다.
표를 구하기 위해 줄을 서는 동안 딸 아이를 데리고 남미 여행을 3개월째 여행 중이라는 젊은(40대) 한국인 부부를 만났다. 두 사람은 남미에서도 가장 고지대가 많다는 볼리비아 여행 때 고산병으로 1주일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누워 지내야 했다고 말한다. 하루 정도 고생한 이 대표는 거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셈이다.
아구아스 칼리엔테스 모습. [사진-임영태]
아구아스 칼리엔테스 모습. [사진-임영태]
우리는 숙소인 알라멘다(Alamenda) 여관(premier Inn)에 짐을 맡겨놓고 아구아스 칼리엔테스 관람에 나섰다. 이곳을 풍광을 보는 순간 울릉도가 언뜻 생각났다. 규모는 울릉도보다 훨씬 커서 비교가 안 되지만 직각으로 하늘을 항해 치솟은 산봉이 거의 유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1만년 전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화산섬 울릉도와 대륙판들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수천만 년에 걸쳐 융기한 안데스 산맥의 일부인 이곳은 형성 과정이 다르지만 처음 본 모양이 닮아 있었다.
우리는 기념품 상점, 시장, 역, 광장 등 자그마한 마을 전체를 대략 돌아보고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11시 20분에 숙소로 가서 체크인을 했다. 방에서 잠시 쉬다가 오후 3시 마추픽추관리사무소에서 긴 대기줄 끝에 입장 티켓을 구입했다. 1인당 152솔(한화 48,600원 가량)이다. 여행사에서 환전해준 페루 화폐로 지불했다. 아침 8시 입장으로 내일 아침 6시 40분 광장에서 버스를 타고 올라가면 된다.
우리는 여유 있게 아구아스칼리엔테스를 돌아본다. 기념품점에 들러 모자도 하나 사고 기념품도 구입했다. 천천히 주변 풍광도 구경하고 사진도 찍으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저녁까지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여행에서 먹는 문제는 중요한 일이다. 잘 먹어야 여행도 잘할 수 있지만, 타국 음식이 잘 안 맞을 수 있다. 이 대표는 평소 거의 먹지 않던 콜라를 이번 여행에서 단골로 마셨다. 콜라가 세계를 주름잡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오늘 하루 새벽 3시부터 정신없이 움직였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구아스 칼리엔테스 풍광. [사진-임영태]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의 기념품 상점. [사진-임영태]
임영태 필자 약력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의 기념품 상점. [사진-임영태]
출판기획자, 저술가. 청년시절 민주화․사회운동에 관계했으며, 한국 근현대사와 세계사, 인문․사회 관련 대중서의 기획․집필에 힘쓰고 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 공식 보고서 발간을 총괄했으며, 지금은 평화박물관의 ‘반헌법행위자 열전편찬위원회’ 조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한국에서의 학살-한국현대사, 기억과의 투쟁』, 『새로 쓴 한국현대사-해방부터 촛불항쟁까지 35장면』(공저), 『솔직하고 발칙한 한국 현대사』(공저), 『스토리 세계사 1~10』, 『두 개의 한국 현대사』, 『산골대통령, 한국을 지배하다』, 『국민을 위한 권력은 없다』, 『대한민국사 1945~2008』, 『대한민국50년사』, 『북한50년사』, 『거꾸로 읽는 한국사』(공저), 『거꾸로 읽는 통일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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