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백석문학상에 전동균 시집 『우리처럼 낯선』
2014년 제16회 백석문학상 수상작이 지난 10월 24일 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전동균 시인의 시집 『우리처럼 낯선』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심사위원은 본심에 이상국 시인, 이장욱 시인, 최원식 문학평론가가 맡았으며 김성규 시인과 진은영 시인이 예심을 맡았습니다. 백석문학상은 백석(白石) 선생의 뛰어난 시적 업적을 기리고 그 순정한 문학정신을 오늘에 이어받기 위해 故 자야(子夜, 본명 김영한) 여사가 출연한 기금으로 1997년 10월에 제정되었으며 최근 2년 내에 출간된 뛰어난 시집에 주어집니다. 상금은 1천만 원, 시상식은 11월 19일(수) 오후 6시 30분에 열립니다.
*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아홉 권의 시집 중 전동균, 이문재, 신동호, 황학주 시인의 시집들에 대한 '본심 심사위원의 심사평'만 아래에서 해당 시집 별로 살펴보기로 합니다. _ 옮긴 이
우리처럼 낯선 (외 2편)
전동균
물고기는 왜 눈썹이 없죠?
돌들은 왜 지느러미가 없고
새들이 사라지는 하늘은 금세 어두워지는 거죠?
저토록 빠른 치타는 왜
제 몸의 얼룩무늬를 벗어나지 못하나요?
맘모스라 불리던 왕들은
맨 처음 씨앗을 뿌리던 손은 어디로 갔나요?
꼭 지켜야 할 약속이, 무슨
좋은 일이 있어 온 건 아니에요
우연히, 누가 부르는 듯해 찾아왔을 뿐이죠
누군지 모르지만, 그래서
잠들 때마다 거미줄이 얼굴을 뒤덮고
아침의 머리카락엔 불들이 흘러내리는 걸까요?
한 처음, 아무 것도 없었던 것처럼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던 것처럼
그냥 웃게 해주세요
지금 구르고 있는 공은 계속 굴러가게 하고
지금 먹고 있는 라면을 맛있게 먹게 해주세요
꽃밭의 꽃들 앞에 앉아있게 해주세요
우리처럼 낯선
꽃들이 피어있는 동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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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균의 시집 『우리처럼 낯선』은 드물게도 종교적이다. 세상의 부패와 타락을 속절없이 허락한 그 신에게 오히려 참회를 요구하는 반종교성을 통해 구원에 대한 갈구와 구원 없는 현대의 묵시록이 극적으로 전경화하는데, 그렇다고 꼭 비장 또는 감상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해학이 따듯하다. 세상의 끝에 마련된 고독한 기도의 공간에서 걸어나와 새삼 연옥을 발견한 듯도 싶다. 모쪼록 새로이 출현한 연옥을 가볍게 때로는 가볍지 않게 산보하며 희망을 무서워하는 시적 분노가 고도로 단련되기를! _ 최원식(문학평론가)
뒤
꽃이 오고 있다
한 꽃송이에 꽃잎은 여섯
그중 둘은
벼락에서 왔다
사락 사라락
사락 사라락
그릇 속의 쌀알들이 젖고 있다
밤과 해일과
절벽 같은 마음을 품고
깊어지면서 순해지는
눈동자들의 빛
죽음에서 삶으로 흘러오는
삶에서 죽음으로 스며가는
모든 소리는 아프다
모든 소리는 숨소리여서
─멀리 오느라 애썼다,
거친 발바닥 씻어주는 손들이어서
아프고 낮고
캄캄하고 환하다
사락 사라락
사락 사그락
제 발자국을 지우며 걸어오는 것들
아무 데도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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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나는 그의 시가 조금은 전형적인 관조의 미학에 기울어 있다고 생각했으나, 그런 불성실한 선입견 탓에 내가 놓친 것이 있었을 것이다. 시의 수준이 고르고 편차가 적다는 장점 때문에 그의 수상에 동의한 것은 아니다. 나는 오히려 “꽃이 오고 있다// 한 꽃송이에 꽃잎은 여섯/ 그중 둘은/ 벼락에서 왔다”(「뒤」)고 쓸 때의 그 ‘벼락’에 이끌렸다. 그의 ‘벼락’은 언제나 고요하고 쓸쓸한 하늘에서, 고요하고 쓸쓸한 방식으로 온다. 그 하늘이 구름과 무지개의 저편, 더 멀고 깊고 캄캄한 정신적 우주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의 시에 비가 내리고 꽃이 필 때, 그 비와 꽃은 저 안 보이는 우주에서 내리고 저 무한한 우주에서 피어나는 것이겠다. 전동균의 ‘고요한 벼락’은 그곳 어디에선가 안간힘을 다해 태어난다. _ 이장욱(시인)
햇반에 고추장 비벼 먹는
화성에 갈까봐
화성에, 화성에 가서 토끼를 키울까봐
마태수난곡을 들으면
햇반에 고추장 비벼 먹는 저녁이면
아무도 기억할 수 없는 기억 저 편에서 기차는 달려오네
검은 옷 입은 사람들 가득 찬
그러나 텅 빈 기차는
역도 없는 바닷가 모래밭에 나를 남겨두고
블랙홀 같은 파도터널로 사라지고
화성에, 화성에 갈까봐
화성에 가서 눈이 붉은 토끼들과 탁구를 칠까봐
귀를 쫑긋대며 블루스를 출까봐
닫힌 문을 보면, 별 일 없니?
걱정스레 안부를 묻는 마음들
시장 좌판에 쪼그려 앉아 마늘을 까는 손들
밥 먹는다는 일의 누추와 장엄
꿈 따윈 가지지 마, 그럴수록 고통스러우니
사슬에 묶인 채 악기를 켜듯
잎 푸른 나무들 어둡게 불타오를 때
나는 내 뒷모습을 만나고 싶어
수컷이 새끼를 낳는다는 해마들의 얼음바다,
그 처음이며 끝인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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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균의 시에는 도처에 세상을 건너가는 고투가 보인다. 그것들은 정제된 언어와 겸허의 자세로 불편한 곳에서 견뎌내는 생에 대한 성찰과 집중의 힘을 보여준다. 한편 대상과의 조우나 그 전개에 있어서는 짐짓 달관에 가까운 시적 득의를 엿볼 수도 있는데, 그것들이 시인의 연배에 비해 다소 이르게 찾아온 것이 아니라면 이는 그의 공부의 깊이 덕일 것이다. 더러는 허무나 해학으로 생을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도록 장치를 마련하면서도 대부분의 작품이 일정한 격조를 유지하고 있어 책장을 넘기는 기대와 재미 또한 만만치 않았다. 일언이폐지하여 “밥 먹는다는 일의 누추와 장엄”(「햇반에 고추장 비벼 먹는」)을 통하여 삶의 비루를 즐기거나 위무하려는 그의 시편들은 저녁같이 깊기도 하고 연필심을 다듬는 손끝처럼 섬세하기도 했다. _ 이상국(시인)
지금 여기가 맨 앞
이문재
나무는 끝이 시작이다.
언제나 끝에서 시작한다.
실뿌리에서 잔가지 우듬지
새순에서 꽃 열매에 이르기까지
나무는 전부 끝이 시작이다.
지금 여기가 맨 끝이다.
나무 땅 물 바람 햇빛도
저마다 모두 맨 끝이어서 맨 앞이다.
기억 그리움 고독 절망 눈물 분노도
꿈 희망 공감 연민 연대도 사랑도
역사 시대 문명 진화 지구 우주도
지금 여기가 맨 앞이다.
지금 여기 내가 정면이다.
우리는 섬나라 사람
—이상엽 사진전 '이상한 숲'에 부쳐
여기는 섬나라다.
반도가 아니다. 삼면이, 삼면만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 이 형용모순이 우리의 지독한 현실이다.
여기 섬의 북쪽을 보라.
반도의 남쪽을 섬으로 만든 북해는 바닷물이 없는 이상한 바다, 민간인이 접근할 수 없는 죽은 바다다. 저 바다는 해안선이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철책으로 둘러쳐졌다. 인간이 조성한 가장 삼엄한 해안이다. 그리하여 여기 남한의 북해는 인간이 살 수 없는 극지다. 세계의 끝이다.
이곳은 섬나라다.
국제열차가 통과하지 않아서 섬나라다. 아시아하이웨이가 연결되지 않아서 섬나라다. 해외라는 단어가 전혀 낯설지 않은 것도 이곳이 섬나라이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을 외국여행이라고 고쳐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거의 없는 것도 우리나라가 섬나라이기 때문이다.
섬의 북쪽은 양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다.
이 비논리 또한 우리의 불편한 진실이다. 남한의 북해가 북한의 남해다. 남한을 섬나라로, 북한을 반도로 만든 이상한 바다, 북해이면서 남해인 저 바다를 우리는 비무장지대(DMZ)라고 부른다. 비무장지대는 그러나 비무장지대가 아니다. 남과 북의 가장 강력한 군사력이 결집, 대치하고 있는 과잉무장지대, 무장증강지대다. 비무장지대는 완충지대가 아니라 전면적 충돌 가능성이 상존하는 긴장지대다.
지독한 역설은 또 있다.
대한민국 현법은, 우리의 영토가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라고 못박고 있지만, 우리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한 발자국도 들여놓을 수 없다. 남쪽에서도 북쪽을 반기지 않는다. 헌법과 현실의 불일치가 우리의 집단 무의식을 불구화하는 근원 가운데 하나다. 우리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대륙과 연결된 반도에 사는 섬나라 사람이다. 양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북쪽도 마찬가지다.
—이문재 시집 『지금 여기가 맨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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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재의 『지금 여기가 맨 앞』은 우리에게 이미 낯설지 않은 그의 아포리즘적 내성(내성(內省)과 관조의 거울을 통하여 다양한 세계를 드러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러나 일견 개개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층위에 상당한 기복이 있어 보이기도 했는데, 그것은 그가 처처의 세계와 관계하고자 하는 사유와 열정을 지난 십 년의 간극을 메워 시집 한 권에 모두 담아내기에는 무리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대체적으로 그의 시는 사변적이고 정적이다. 시적 감수성과 상상력이 그렇다. 그렇다고 그가 아득한 곳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머물고자 하는 곳은 그곳이 어디든 내가 내 존재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든지 혹은 지금 여기가 맨 뒤라고 여기는 사람들 사이, 그곳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을 수처작주(隨處作主)의 세계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_ 이상국(시인)
문청시절 어느 날, 나는 이문재를 미행한 적이 있다. 인사동을 나와 하염없이 걷는 그를 몰래, 두근두근, 뒤따라갔다.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의 시인이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나는 그의 깊고 우울한 독자였다. 첫 시집 이후 이문재는 먼 길을 걸어갔다. 나로서는 더 이상 미행할 수 없는 곳까지 그는 갔다. 그곳은 『지금 여기가 맨 앞』이라고 할 만한 곳인데, 거기서 그는 오래 길을 걸어온 자 특유의 그윽하고 품격 있는 사유를 보여주었다. 나는 인사동에서 우연히 그를 만나면 다시 미행을 시작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_ 이장욱(시인)
이문재의 시집 『지금 여기가 맨 앞』은 괄목상대다. 4부 뒤에 집중적으로 배치된 한반도의 분단 현실을 깊이 사유한 시들은 이 과작의 시인을 명예롭게 한다. 특히 「우리는 섬나라 사람」은 날카롭다. 분단이 남한은 섬으로 만들고 북한은 남해가 없는 이상한 반도로 왜곡하는 지리상 발견을 통해 분단의 정치학을 번쩍 드러낸 그 눈매가 서늘하다. 그러나 사유와 감성의 분리가 전반적이다. 이 과도기가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_ 최원식(문학평론가)
略歷
신동호
1975년 열한 살 봄, 수두를 앓다.
1979년 중2 가을, 국가(國家)를 생각해보다.
1980년 중3 봄, 폭도들의 광주를 걱정하다.
1981년 고1 봄, 사춘기 탓이었겠지만
목련이 진 뒤뜰에서 멍하니 있기도 하다.
여름, 탈춤을 배우다.
1982년 봄, 탈춤을 가르쳐주던 형들이
성조기를 불태우다. 탈춤반 없어지다.
1985년 봄 국가(國家)를 의심하다.
광주 시민들을 살해한 정부를 알게 되다.
진달래 붉은 꽃잎만 보고도 울게 되다.
1987년 봄과 여름 사이, 거리에서 깨닫다.
애국(愛國)의 방법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2000년 여름, 너그러워지다.
2013년 다시 봄, 몸살을 앓다.
등이 간지럽고 가슴에는 통증이 오다.
애국(愛國)의 방법이 다를 수 없음을 수긍하다.
정부는 광주를 배반했지만 광주는 스스로
국가에 대한 사랑을 키워왔을 뿐.
광주를 벗어난 모든 것이 매국(賣國)이었음을,
쓰다. 스무 살 적 절망을 다시 쓰다.
—신동호 시집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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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호의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는 요지부동의 분단 현실에 대하여 너나없이 무기력한 우리 시단의 괄목할 만한 성과다. 그것은 그의 말대로 십 수 년 동안 평양과 개성, 금강산과 중국을 다닌 후 비로소 그에게 귀환한 것이기도 하거니와 남북한 사회의 경께를 떠도는 자로서의 분발과 작심이 또 그러하다. 그러나 그러한 전위적 치열성과 성취가 과연 백석의 이름으로 수용될 수 있을는지 여부가 고민스러웠고, 전반적으로 시인의 목소리가 감춰진 게 너무 적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렇지만 ‘장촌냉면집 아저씨’의 행방에 대한 의문은 그가 작금의 분단문학에 던지는 일종의 ‘부재신고’일 수도 있는 것이다. _ 이상국(시인)
신동호는 발견되지 않은 시인이다. 이번 시집에서 그는 예의 그 고유하고 순정한 서정성뿐만 아니라, 우회니 비유니 하는 것을 모르는 직정(直情)으로 가득한 문장들을 보여주었다. 대개 직정은 시를 망친다. 소수의 직정만이 ‘시’에 도달하는데, 그것은 직정이 깊고 깊어서, 시인의 생각이나 주장이나 감정이 아니라 시인의 ‘직진하는 몸’을 오롯이 보여줄 때이다. 그는 다만 살아내려고 하며, 돌파하려고 한다. 나는 그가 시 속에서 견지하는 특정한 정치적 신념에 동의하지 않지만, 어떤 종류의 뜨거운 회한과 신실함이 ‘시’가 되는 장면들에 대해서는 깊이 동의한다. - 이장욱(시인)
신동호의 시집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는 일종의 자전시집이다. 박정희 시대에 태어나 유사 박정희 시대를 살아가는 한 운동권 시인의 평균적 초상을 정직하게 보여준 이 시집은 종이에 물 스미듯 감염한다. 그럼에도 자기연민에 더러더러 지는 머리에 끝내 후일담 시집을 면치 못한 게 안타깝다. _ 최원식(문학평론가)
사랑할 때와 죽을 때
황학주
나는 겨울을 춥게 배우지 못하고
겨울이 모일 때까지 기다리지도 못했지만
누가 있다 방금 자리를 뜨자마자
누가 있다 깍지 속에서 풀려나와 눈보라 들판 속으로 들어가는
사랑이란
매번 고드름이 달리려는 순간이나 녹으려는 순간을 훔치던 마음이었다
또한 당신의 눈부처와 마주 보고 달려 있었다
이제 들음들음 나도 갈 테고
언젠가 빈집에선
일생 녹은 자국이 남긴 빛들만
열리고 닫힐 것이다
그때에도 겨울은 더 있어서
누가 또 팽팽하게 매달려 올 것이다
자유를 춥게 배우며
그 몸 얼음 난간이 되어
—황학주 시집 『사랑할 때와 죽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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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주의 『사랑할 때와 죽을 때』는 다음 행을 예측하기 어렵다. 그는 주어에서 술어로 건너가는 길에 본능적으로 아득한 그림자들을 배치한다. 읽는 나는 발이 빠지고 마음이 빠진다. 구절들은 끊임없이 어긋나면서도 하나의 핵심으로 모인다. “나는 겨울을 춥게 배우지 못하고/ 겨울이 모일 때까지 기다리지도 못했지만”(「사랑할 때와 죽을 때」) 같은 구절을 읽고 있으면, 시란 무엇인가 같은 질문은 아무래도 잊게 된다. 단지 ‘사랑할 때’와 ‘죽을 때’의 사이에 그의 시가 있다는 것을 납득하는 것인데, 시집을 덮고 나면, 사랑하는 일과 죽는 일과 살아가는 일이 끝내 하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_ 이장욱(시인)
황학주의 시집 『사랑할 때와 죽을 때』는 제목이 암시적이다. 삶의 가장 결정적인 시간들조차 통속적으로 소비되는 시대에 시인은 그 시간들을 탈환한다. 단도직입적으로 그 본질로 짓쳐들어가 그 절대적인 시간으로부터 발신되는 암호들을 수신하는 것인데, 시인은 문득 모국어 속의 외국인이다. 그러나 그 암호들이 아직은 지상의 언어로 번역되지 않은 듯 소통 장애 상태인 것도 사실이다. 시적 암호의 핵심으로 되는 고도의 정치조차 육체화되는 경지로 진화하기를 기원한다. _ 최원식(문학평론가)
* 이 심사평들은 2014/11/10 창비문학블로그 〈창문〉에서 발췌하여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