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어미의 날개
안드레아 제니
"안녕하세요, 어무니 ! 오늘 기분은 어떠세요?”
“응 ~ 그저 그렇지 뭐." 방문 때마다 어르신께 문안 인사를 드리며 집안에 들어선다. 어둡던 어머니의 얼굴이 어린아이처럼 해맑아진다.
아침에 눈을 뜨면 죽어서 다른 세상에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하루에도 여러 번 편하게 죽는 꿈을 상상한단다.
집이 길 안으로 깊이 들어 앉아 있어서 지나가는 사람도 차도 구경 할수 없다.
누군가가 오지 않으면 집안에서 홀로 온종일 티브이와 지내는 창살 없는 감옥 생활이다. 다람쥐 채 바퀴 돌 듯, 불편한 다리로 워커 의자에 의지하여 방과 거실을 오가며 걷는 연습을 한다.
다리와 허리가 불편해 워커 의자 없이는 걸을 수가 없다.
지난날 당신이 날개를 단 듯 날아 다녔던 때를 생각하며 앞으로 또 그런 날이 찾아올까 기대한다.
홈 케어링 켐시에서 Director로 노인들을 돌보고, 상담 해주는 일을 하고있는 나는, 집에 들어서자 마자 흐트러져 있는 많은 옷가지부터 정리를 한다. 화려한 롱 치마, 원피스, 스카프 등 예쁜 것이 많다. “
“어무니, 이거 다 언제 입으시려고 이렇게 쌓아두세요? 물으니
언제고 다리만 나으면 다시 춤추러 다니려고 그냥 두었다고 한다. 마음은 아직도 그 옛날 이팔청춘이시다.,지난 사진을 보면 건강하고 화려했다. 노는 것을 좋아해 춤 추고, 노래 부르고, 고스톱도 치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며 재미있게 놀았던 날을 회상할 때는 행복해 한다.
그녀는 이민 와서, 갖은 고생을 다하며 홀로 머슴아이 넷을 키웠다.
자녀 중에는 어려서부터 속 썩이는 자식. 성실하고 자기 앞가림만 잘하는 자식, 엄마만 바라보는 자식, 둥글둥글 착실한 자식이 있었다.
성장한 아들들은 독립하여 모두 둥지를 떠났지만, 어머니를 보고 싶을 때면 그녀가 좋아하는 것을 사들고 가끔씩 방문을 한다. 특히 착실한 막내 아들은 딸 같은 아들이었고 어머니를 잘 챙겼다는데....
육십이 넘어서도 속을 썩인다는 큰 아들은 모든 재산을 노름에 날려, 홀로 그녀의 주변을 맴돌고 있단다. 그런 못난 아들을 볼 적 마다 그녀의 억장은 무너져 내린다. 자기 앞가림을 잘 한다는 자식은 장가를 가더니 자기 처 자식 밖에 모른다. 엄마 만 바라보는 자식은 그의 어머니가 어떻게 될까 봐 벌벌 호들갑을 떨지만, 그녀에게 되로 주는 척하면서 말로 가져간다. 둥글둥글 착실했던 자식은 병이 들어 어머니 모르게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 녀의 충격은 너무 컸다. 어떻게 슬픔과 아픔을 감당할 수 있으리.
그 충격 후 머리에 이상이 온 것일까?
가끔씩 혼자말로 "왜 안 오는지 몰라. 바쁜가?” 세상을 떠난 아들이 보고 싶다는 표정 속에 복받쳐 오르는 슬픔으로 눈가에 방울방울 구슬이 흐른다.
그 아들에 대한 자랑은 끝을 모른다.그녀에게는 그 아들이 제일 잘난 작품이었을 것이다.
남편은 한량이었다. 그녀는 호된 시집 살이 속에 희망 없는 삶을 뒤로하고 아는 분을 따라 호주까지 도망쳐왔다. 영어도 안되는 이곳에서 닥치는 대로 청소, 식당일, 세탁일 등. 돈이 되는 일이라면 악착같이 덤벼 들어 어렵게 집을 장만하고 나니 그녀의 몸은 형편없이 망가져 버렸다.
호기심에 친구 따라 모임에 가보았다. 그곳에서 춤을 배우고, 노래도 부르면, 어깨를 누르던 삶의 무게가 덜어지고 심신이 가벼워졌다. 춤에 자신감이 생기면서 틈틈이 화려한 옷을 한 벌 한 벌 장만했다. 그녀의 끼와 열정과 한과 행복이 물든 화려한 옷을 거실 한쪽 구석에 쌍아 놓고 한 가닥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자식을 위해 젊은 날 육신을 아낌없이 바쳐왔다. 이제 좀 쉬려니 몸은 여기저기 아프고 반갑지 않는 치매라는 친구가 서서히 깊이 파고 들어오고 있다. 받아 들이고 싶지 않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치매는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그녀 자신과의 몸부림이었다.
그녀는 오늘도 빈 둥지 안에 홀로 있다. 망가진 날개를 펄덕 걸일 때마다 또 하나의 날개 깃이 힘 없이 뽑혀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