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WIElTGa_wyI?si=FJahObXNGHMdBG_i
Dvořák: Rusalka (Petr Weigl film, 1977)
오페라 (Opera)
오페라 어원
오페라(가극 ;歌劇)는 음악과 미술, 연극, 무용, 문학 등을 총 망라하여 완성되는 종합예술로, 그 어원은 라틴어의<opus(작품)>의 복수형에서 따온 것이며, 초창기에는 음악에 의한 극(dramma in musica) 또는 음악을 위한 극(dramma per musica)이라고 했으나 뒤에 음악에 의한 오페라(opera in musica)라고 사용하다가 축약하여 오페라(Opera)라고 명명하게 되었다.
오페라의 형식
오페라의 음악은 독창, 중창, 합창, 관현악(서곡, 간주곡)등으로 구성되며, 등장인물의 대사가 노래 또는 레시타티보(서창)로 되어 극이 전개되어 나간다. 따라서 오페라의 상연은 연주를 포함하는 음악적 요소(노래,반주,관현악 연주)외에 문학적 요소(대본, 가사 등), 미술적 요소(무대 장치, 의상, 소품, 조명 등), 무용적 요소, 연극적 요소(연출·연기 등) 등을 포함하여 종합예술적인 성격을 지닌다.
음악 표현의 중심을 이루는 가창은 각 성역(聲域)의 독창자에 의한 독창과 중창, 그리고 군중의 역을 맡는 합창이 더해져 진행된다. 나폴리파(派) 오페라 이후 근대에 이르는 주류의 오페라에서 독창자의 노래는 선율의 아름다움을 주로 한 각종 아리아(영창)와 말하듯이 노래하는 레시타티보(서창)로 나뉘는데, 아리아는 하나하나 완결된 독창곡의 형식을 취한다.
즉 오페라란 여러가지 독립된 형식의 악곡을 하나의 극으로 줄거리 있는 것으로 동일시켜 그것을 서곡, 행진곡, 독창, 중창, 합창, 연기, 무용 등으로 집대성, 배열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 할 것은 음악에 연극이 결부되어 있기는 하지만 비제의 <아를르의 여인>이나 베토벤의 <에그몬트>는 오페라가 아니라 이것은 극음악으로 즉, 극에 음악을 붙인 것이다.
오페라의 분류
오페라의 경향을 대충 분류하면 이탈리아 오페라와 독일 오페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튜우톤 민족과 라틴 민족과의 민족성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있겠으나, 근원적으로 따져보면 남유럽에서 일어난 연극에 대해 흡족해 하지 않은 튜우톤 민족이 민족적 자각을 가극상에 반영시킨 것이라 볼 수가 있고, 그러한 분류차원에서 본다면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영국의 오페라는 제각기 나음대로 그 전통을 갖고 있는 것이 된다. 그러나 또 이것을 오페라 자체의 네용면에서 보면, 바그너풍의 음악적 효과와 내용을 목적으로 한 것과 로시니, 베르디 풍의 성악적 기교를 효과의 본위로 한 것의 두가지로 대별 할 수가 있겠다.
오페라의 기원
원래 오페라의 기원은 1594년에 피렌체에 모여서 그리이스극을 연구하던 호사가들의 집단이 가면극을 개최하려고 한데서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1637년에는 베네치아에 가극장이 생긴것을 시작으로, 오페라의 유행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각처에 오페라 하우스를 세우게 한 이래, 왕후나 귀족사회가 종교 음악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페라는 유럽의 시민 생활과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로 발전해 나갔던 것이다.
여기서 오페라를 극적 성격에 의해서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고전적 -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글룩), 피델리오(베토벤)
낭만적 - 마탄의 사수(베버)
희가극 - 피가로의 결혼(모차르트), 세빌리아의 이발사(로시니)
비극적 -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도니제티), 아이다(베르디), 탄호이저(바그너)
서정적 - 파우스트(구노), 라보엠(푸치니), 카르멘(비제)
한편,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나 <아이다>같이 큰 장치를 가지는 것을 대가극(Grand Opera)이라 불리우고, 오페라 코믹은 흔히 희가극으로 잘 못 알기 쉬운데, 이것은 결코 희가극이 아니고 오희려 희비쌍곡의 연극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단, 영어로 말하는 코믹 오페라는 분명히 희가극과 같은 경가극으로서 오페라 부파(Opera Buffa, 이탈리아 희가극)라 불린다.
또 대가극(Grand Opera)에서는 보통의 대화를 사용하지 않고 반드시 음악적인 두가지 형식-서정적 또는 선율적인 표현에다 음악상의 갖가지 기교를 부려서 장식한 아리아(Aria), 그리고 또 한가지는 단순한 대화 대신에 사용되는 것으로서 장식적이 아니고 억양이나 리듬도 별로 없으며, 대사에 따라서 자유로이 낭송되는 레시타티보(Recitativo)라는 형식을 사용한다.
이에 반해서 오페라 코믹에서는 보통의 대화가 그대로 사용된다. 따라서 베르디의 <춘희>등은 당연히 오페라 코믹이라 할 수 있고, 비제의 <카르멘>등도 원래는 오페라 코믹으로 씌어진 것을, 비제 사후에 대가극적으로 여러가지 장식을 곁들여서 오늘날 것처럼 만든 것이다. 그러나 원래의 고전적인 이탈리아 오페라에는 매우 관습적이고 번거로운 규칙이 있어서, 오히려 오페라를 부패시키는 결과가 되었고, 오페라를 쇠퇴케 하는 원인이 되었다.
오페라의 개혁
그래서 1767년에 글룩(Gluck, Christoph Willibald von, 1714~1787)이 개혁을 시도하여 번잡한 모든 규칙을 폐지함으로써, 오페라에 청신한 기분을 불어 넣게 되었다. 글룩은 오페라 기구뿐만 아니라 오페라에서의 관현악을 끌여들인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는 개혁전에 이미 30편 이상의 오페라를 썼다고 하는데, 지금도 다소 수정을 가해서 상영되고 있는 오페라로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가 있다.
글룩의 오페라를 전수 받은 사람은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 ~1791)이다. 그는 이론적으로는 반드시 새롭다고 할만한 것을 발표하지 않았으나 기악곡은 빼고라도 성숙기에만 8곡의 오페라를 작곡했는데, 그 가운데에는 그의 3대 걸작으로 지금도 자주 상연되고 있는 <피가로의 결혼> <돈 죠반니> <마술피리>의 세편의 오페라가 있다.
오페라 작곡가들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 ~ 1827년)도 독일계의 오페라를 위해서 그의 유일한 오페라인 <피델리오>를 썼다. 그러나 그의 본령은 역시 기악에 있다고 하겠다.
베토벤를 바로 이어서 나온 베버(Wilhelm Eduard Weber, 1804 ~1891)는 <마탄의 사수>를 통해 독일의 낭만적 오페라를 위해서 크게 기염을 토한 사람이었다. <마탄의 사수>야 말로 명실공히 독일 국민 오페라로서 처음으로 인정받은 작품이다. 베버는 그 이외도 <오베론>도 작곡하였다. 그러나 베버의 개혁은 독일 가극계에서는 개혁이었지만, 당시 가극계 전반에는 별로 변화를 미치지 못하였다. 주류는 여전히 로시니 적인 이탈리아 오페라에 있었다.
로시니(Gioacchino Antonio Rossini, 1792 ~1868)도 많은 오페라를 작곡했는데, 그의 걸작이라면 역시 <세빌리아의 이발사>로서 이것은 마치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전편과도 같은 형식이다. 또 그가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의 수법에 자극받아 썼다고 하는 <윌리엄 텔>도 걸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후 오페라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얼마간의 종교 음악만을 남겼을 뿐이다.
(로시니는 이미 오페라 부파의 전통적인 형식을 깼다. 선율을 장식하거나 [로시니는 이탈리아의 현란한 가창 양식인 벨칸토 창법을 새롭게 재창조했음], 앙상블과 앙상블 피날레[앙상블에 의해 모든 등장인물이 무대에 나와 노래부르는 음악]에 이례적인 리듬을 사용함으로써 생기를 불어넣었다.)
또한 관현악이 원래 맡던 역할을 회복시켜서 음악이 가수를 돕는 것이 아니라 가수가 음악을 돕도록 만들었다.
로시니의 뒤를 이은 사람이 글룩의 감화를 받은 케르비니(Maria Luigi Carlo Zeno-bia Salvatore Cherubini,1760~1842) 이다. 그는 하이든이나 베토벤까지도 감동시킬 만한 오페라를 썼는데 후에 파리 음악원 창설자로서, 프랑스 음악에 색채의 선명함이나 화성 및 전조를 풍부히 하여 무게를 중시 할 것을 가르쳤으나 나폴레옹의 미움을 사서 교회음악으로 전환, 루이 18세의 총애를 받고 이 방면에서 활약하였다.
이렇게 해서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은 마이어베어(Meyerbeer, Giacomo, 1791~1864, 그는 독일인이었으나 이탈리아 오페라에 능통하였으며, 후에 프랑스 오페라 분야에도 공헌하였다)에게 전해지고, 이윽고 <노르마>, <청교도>, <노르마> <몽유병에 걸린 여자>의 작곡자 벨리니(Bellini, Vincenzo, 1801 ~1835) , <루치아>, <사랑의 묘약> 등의 도니제티(Gaetano Donizetti, 1797 ~ 1848) 같은 이탈리아 오페라의 대작곡가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벨리니는 풍부한 감상을 띤 선율이 쇼팽에게 큰 영향을 준것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경로를 거쳐서 베르디에 이르러서는, 말초적인 기교에만 치달아서 타락에 빠졌던 이탈리아 오페라에 참신한 기운이 불어 넣어져서, 오페라를 바그너에게 대항 할 수 있을 만한 국민적 예술로까지 부흥시겼던 것이다.
바그너의 음악극의 등장
베버의 독일 오페라가 점차 침체되고 벨리니, 도니제티의 이탈리아 오페라에도 흡족해 하지 않던 오페라계에 새로이 등장한 것이 바로 독일의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 1813 ~1883)이다. 그는 초기에는 기교적으로나 내용적으로도 이탈리아적인 오페라를 모방했으나 <로엔그린>에 착수하게 되자, 그때까지 오페라의 상투적인 수단으로 되어왔던 형식적인 서곡을 폐지하고, 내용적으로도 극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 전주곡을 두어, 오페라 <드리스탄과 이졸데>를 통해서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오페라의 특색인 그때까지의 아리아나 레시타티보를 집어치우고, 그 당시 반주에 지나지 않았던 관현악을 노래와 같은 지위로 끌어올려서, 그가 말하는 무종선율에 의해서 아리아나 그밖의 것과의 관계를 단절하지 않은채 극의 변화에 따라서 계속 진행해 가는 음악을 고안하고, 또 라이트 모티프를 창시하여, 인물이나 성격, 또는 장면을 암시하고, 나아가서는 대본도 작곡가 자신의 손으로 써서 그야말로 종합 예술로서의 성과를 거두려 하였다.
그러나 바그너의 혁신이 획기적이었던 것은 부인 할 수 없지만 그것이 예술적으로 성공하였는가는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의 개혁이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들에게는 많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것만은 사실이다.
이것은 마치 루터나 칼빈의 종교개혁이 신교를 수립하였을 뿐만 아니라, 카톨릭측에도 커다란 개혁을 가져와서, 로욜라나 그밖의 구교가 쇄신이 된 일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그너, 베르디에 의한 이탈리아 오페라의 신기운은 나아가서 드뷔시 등의 음악과 극과의 결합에 더욱 많은 진전을 보여주게 되었던 것이다.
프랑스의 오페라
원래 프랑스에는 륄리(Jean-Baptiste Lully,1632 ~1687)의 계통을 이은 신화적 발레의 기초위에 건설된 오페라가 있었으며, 영국에도 헨델이 지배하고 있던 이탈이라 오페라에 대해서 계통을 이어서 가면극에서 발생한 발라드 오페라가 있었다.
그리고 프랑스의 경우는 그것이 마이어베어(마이어베어에 와서 오페라는 이전보다 훨씬 웅장해졌다)와 같은 호화찬란한 무대가 다투어 발전하여 비제(Georges Bizet, 1838 ~ 1875)의 <카르멘>, 생상(Camille Saint-Sans, 1835 ~1921)의 <삼손과 데릴라>를 탄생시켰으며, 드뷔시(Claude Debussy, 1862 ~1918)에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는 서정극 <펠리아스와 멜리장드>를 탄생시켰던 것이다. 또 영국에서는 <발라드 가극>의 전통이 살리반의 희가극에 전해지고, 금세기에 들어와서는 브리튼(Edward Benjamin Britten, 1913 ~1976)의 <피터 그라임스>나 <루크레치아의 능욕>을 내어서 호평을 거두기까지 얼마동안은 침체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재부흥
이에 비하면 바그너의 개혁에 자극을 받은 이탈리아 오페라는 바그너와 같은 해에 태어난 베르디(Giuseppe Verdi, 1813 ~1901)의 <리골레토> <일 토레바토레> <라 트라비아타> 등에서 다시금 옛날의 영예를 회복하였는데 <아이다>에 이르러서는 바그너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나고, <오텔로> <팔스타프> 등에 의해서 아주 완벽하고 고상한 이탈리아 오페라를 완성하여 전국민의 작곡가로 추앙받으며 위대한 이탈리아 오페라 건설에 위대한 장족을 남겼으며, <카발레이라 루스티카나>의 마스카니(Pietro Mascagni,1863~1945), <팔리아치>의 레온카발로(Ruggero Leoncavallo, 1858 ~1919), <나비부인> <라 보엠> <토스카> <투란도트> <서부의 아가씨>의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 ~1924)에게 그 바톤을 넘겨주었다.
20세기 오페라 작곡가들
러시아 오페라는 보르딘(Borodin, Aleksandr Porfir'evich, 1833 ~1887)의 <이고르 공>, 무소르크스키(Modest Petrovich Mussorgsky, 1839 ~1881)의 <보리스 고두노프>, 차이코프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1840 ~1893) <에프게니 오네긴> 등이 민족적 소재와 청신한 선율과 리듬, 그리고 대담한 화성으로 알려져 있다.
금세기 들어와서는 독일의 경우 바그너의 수법을 연장한 R. 시트라우스, 재즈적 수법을 채용한 크셰넥이나 바일, 그리고 무조적인 힌데미트, 프랑스의 경우는 드뷔시에 이어서 후에 라벨이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으며, 이탈리아에서는 다라피콜라, 또 영국에서는 브리튼, 미국에서는 거쉬인(Gershwin, George, 1898~1937) <포기와 베스>, 메노티(Gian Carlo Menotti, 1911~ ?) <노처녀와 도둑> <시집가는 날>등, 러시아에서는 프로코피에프(Prokofiev, Sergei Sergeevich, 1891~1953) <3개의 오렌지에의 사랑> <전쟁과 평화> 등 8편 등이 주목을 받았으며, 현재도 공연장에서 심심찮게 올려지고 있다.
이상으로 매우 간략하게 오페라 역사나 유형을 훓어 보았는데, 오페라만 하더라도 책 몇권을 능가 할 만한 분량이 필요하지만 역사나 오페라의 큰 줄기는 대략적으로 다 언급했다고 생각된다. 추후 부가적으로 오페라의 대 작곡가 베르디나 푸치니, 바그너 등을 따로 다루도록 하겠다.
글쓴이 : 베토벨라
https://youtu.be/u_VkfIthWHo?si=TOTHs9AmrrucCrzR
Orquesta Reino de Aragón
Coro Amici Musicae
Conductor: Ricardo Cas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