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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9일 오늘의 역사
2022년 에쓰오일 울산공장에서 폭발 화재사고 발생
오후 8시 51분께 폭발과 함께 화재가 시작됐으며 불을 끄는 작업은 날을 넘긴 20일 오전 5시 30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화재로 협력업체 직원 1명이 숨졌고, 원·하청 근로자 9명이 다쳤다. 소방당국은 부상자 9명 중 4명을 중상, 5명을 경상으로 분류했다. 이들은 대부분 화상 환자로 확인됐다. 이처럼 진화가 어려운 것은 인화성이 강한 부탄 때문이다. 이번 사고는 부탄을 이용해 휘발유 옥탄값을 높이는 첨가제인 '알킬레이트' 제조 공정에서 발생했다. 최초 폭발은 부탄 압축 밸브 오작동을 긴급 보수한 후 시운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공정이 고압·고온 작업이라서 폭발 충격이 상당히 컸던 것으로 알려였다. 인근 건물 창문이 흔들렸고 10㎞ 이상 떨어진 중구와 북구에서도 지진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2022년 북한 김정일 체제에서 군부 핵심 인물이었던 현철해 원수 사망
2020년 미국 홍수로 미시간주 이든빌 댐과 샌포드 댐 붕괴
2019년 미국 사업가 로버트 F. 스미스 미국 조지아주 모어하우스 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졸업생들의 학자금융자액 4,000만$(약 480억원) 대신 갚아주겠다고 약속
2015년 ‘위민 크로스 DMZ’(15개 나라 여성 평화운동가 30명 참여) 국제평화여성걷기 시작, 5.24까지 평양-개성-판문점-비무장지대-임진각 누리공원-서울시
2014년 박근혜 대통령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 공식 사과, 후속대책 발표, 해경 해체 선언
2014년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CU) 발표한 세계노동자권리지수보고서에서 한국의 노동자 권리 5등급(세계최악)
2012년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8억원 수수) 혐의 구속기소
2012년 에베레스트에서는 한국 산악인 송원빈씨 등 7명 사망하는 참사 발생.
한국 산악인이 네팔 에베레스트 등정을 마치고 하산하다 현지시간으로 19일 밤과 20일 새벽 사이에 실종됐다.
네팔 주재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박계훈 대장을 비롯해 충남고를 졸업한 산악인들로 구성된 원정대의 송원빈씨(24)가 에베레스트를 등정하고 하산하는 도중 실종됐다고 20일 밝혔다. 대사관 관계자는 "송씨가 다른 대원 한 명과 함께 하산하다가 지난 19일 밤과 20일 새벽 사이 고소증세로 갑자기 쓰러져 낭떠러지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자세한 사고 경위는 다른 대원이 내일 오후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면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실종된 송원빈씨와 산악인들은 모교 개교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에베레스트 등정 원정대를 구성했고 지난 3월 하순 네팔에 도착했다. 이들은 이달 말 귀국 예정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2011년 주한미군 ‘고엽제 매립’ 논란
고엽제 매몰 의혹이 제기된 경북 칠곡군 왜관읍의 미군기지 ‘캠프 캐럴’ 내 지하수에서 발암물질인 테트라클로로에틸렌(PCE·사염화에틸렌)이 수질 기준을 약 49배 초과해서 검출됐다. 특히 이 지하수가 흘러가는 방향으로 수백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기지 바깥의 지하수 관정에서도 PCE가 검출돼 주민들이 그동안 오염된 지하수를 마셨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고엽제에 포함된 다이옥신 성분은 지하수와 토양·하천퇴적토 등 모두에서 검출되지 않았다.
캠프 캐럴 기지 환경오염 여부를 조사해온 한·미 공동 조사단은 5일 “기지 내부의 지하수 관정 22개소와 기지 바깥의 토양(22개 지점)과 하천퇴적토(5개 지점)의 오염도를 조사한 결과 고엽제에 불순물로 포함돼 있는 다이옥신은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사 대상 지하수 관정 22곳 가운데 14곳(64%)에서 발암 및 신경·생식계 독성 등을 일으키는 PCE가 기준치의 최고 49.7배 검출됐고, PCE와 비슷한 작용을 하는 트리클로로에틸렌(TCE)도 22곳 중 12곳(55%)에서 수질 기준의 최고 24.8배 농도로 검출됐다.
2009년 영국 하원의장 마이클 마틴 중도사퇴 성명서 발표
'국회의원 공금 유용 스캔들'의 여파로 영국 하원의장이 영국 의정 사상 300여년 만에 처음으로 중도 사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종신직인 영국 하원의장은 314년 전인 1695년 이후 중도 사퇴한 사례가 한번도 없었다.
공금 유용 스캔들은 영국 국회의원들이 국회의사당이 있는 런던에 집(숙소)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의회가 '주택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악용, 개인적 용도의 비용지출까지 과다 청구해 국민 세금을 유용한 사건.
보수당 등 야당 의원들은 그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을 내고 연대서명을 받았고, 여당인 노동당 일부 의원들도 야당의 사퇴 요구에 동조했다.
영국 하원의장은 의원들의 투표로 선출되는데, 한번 선출되면 본인이 정계에서 은퇴하거나 죽기 전까지는 자리가 유지되는 사실상 종신직이다.
하원의장의 중도 사퇴는 1695년 존 트레버(Trevor) 경(卿)이 1000파운드의 뇌물을 받은 사건으로 쫓겨난 이후 한번도 없었다.
2007년 연기자 겸 가수 하리수 결혼
트랜스 젠더(성 전환) 연예인 하리수(32)가 2007년 5월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센트럴시티 밀레니엄홀에서 래퍼 미키 정(본명 정영진.27)과 결혼식을 올렸다.
이날 결혼식은 KBS 신영일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주례는 1995년 하리수의 성전환 수술을 집도한 동아대 의대 김석권 교수가 맡았다.
신혼여행은 20일 태국으로 떠났으며 하리수의 제안에 따라 양가 부모가 동행했다. 신접 살림은 하리수가 현재 살고 있는 서울 논현동 집에 차려진다
2007년 자이툰부대 장교 1명 총기 사망
이라크 아르빌에 주둔 중인 한국군 자이툰 부대의 한 장교가 부대 안에서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 2004년 9월 자이툰 부대가 이라크에 파병된 이후 부대원이 숨지기는 처음이다.
토요일인 2007년 5월 19일 오후 6시45분쯤(현지시각 오후 1시45분쯤) 자이툰 부대 소속 오모(27) 중위가 부대 내 의무대 이발소에서 턱 아래 부위에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오 중위는 의무대 행정병이 발견했을 당시 이발소 바닥에 숨진 채 엎드려 있었고, 주위에서 오 중위의 K-2 소총 1정과 탄피 1발이 발견됐다.
오 중위는 3사 출신으로 4월 26일 자이툰부대 6진 2차 교대 병력으로 파병돼 의무행정 장교로 근무해왔다. 이 사건은 자살로 결론났다.
2004년 중국 상하이 중의약대에 `허준 동상` 건립
<동의보감(東醫寶鑑)>의 저자 허준(許浚) 선생을 기리는 동상이 중국 땅에 세워졌다.
세계 최대의 한의학 대학인 상하이 중의약대학은 최근 푸둥 캠퍼스 한복판에 200여평 규모의 유리 건물을 짓고 그 안에 허준 선생의 동상을 세웠다.
중국에 개인 동상과 기념관이 세워지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허준 기념관’은 대학 운동장 한쪽에 자리 잡고 있어 오가는 학생들이 쉽게 볼 수 있다.
중국 학생들은 허준 선생과 <동의보감>의 존재를 통해 한국 전통 한의학의 수준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동상과 유리건물의 건설비용은 허준 선생을 ‘스승’으로 존경하는 한국인 침구연구가 이병국씨가 부담했으며 이씨와 중의약대학 옌스위 총장과의 인연이 동상 건립의 중요 계기가 됐다.
1992년에 상하이 중의약대를 처음 찾아 옌 총장과 인연을 맺은 이씨가 이 대학에서 객원교수로 강의를 하는 도중 허준 선생의 동의보감을 교수진에게 선물하는 등 장시간에 걸쳐 학교측을 설득한 결과라는 것이다.
2001년 종묘제례, 제례악 유네스코 유산 선정
중요무형문화재 제56호와 제1호인 종묘제례와 제례악이 2001년 5월 19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UNESCO)회의에서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선정됐다.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 선언’이란 유네스코가 소멸 위기에 있는 인류의 무형문화유산을 걸작으로 지정해 각국의 문화적 다양성과 전통성을 보존하기 위한 제도로, 지난 1997년 11월 제29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설립 결의안이 채택된 바 있다.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에 대해 유네스코는 일정액의 재정지원과 홍보 활동을 하게 되며, 2년마다 6∼10건 정도가 걸작으로 선정되고, 회원국은 매회 1건의 후보를 신청할 수 있다. 이날 회의서는 종묘제례 및 제례악을 비롯해 중국, 일본, 인도 등 19개국 19종목을 선정했다.
2000년 박경완, 한국프로야구사상 첫 4연타석 홈런
프로야구 현대의 포수 박경완이 사상 첫 4연타석 홈런의 대기록을 세웠다. 박경완은 2000년 5월 19일 대전에서 벌어진 한화와의 프로야구 경기서 첫 타석부터 내리 4타석 홈런을 기록했다. 박경완은 경기가 끝난 뒤 "4번째 타석에서 홈런을 치고 홈을 밟고서야 대기록을 세웠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그리고는 온몸에 긴장이 풀려 다리의 힘이 쭉 빠졌다"고 말했다.
1991년 계약금도 없이 쌍방울에 입단, 2군을 맴돌던 박경완은 1994년부터 주전으로 안방을 지키기 시작했다. 1996년 골든 글로브 수상으로 최고 포수 자리에 올랐고 1998년 현대로 이적, 그 해 팀 우승의 주역이 됐다. 4연타석 홈런은 미 프로야구에서 전설적 강타자 루 게릭이 1932년에 기록하는 등 총 네차례 있었고, 일본 프로야구에선 왕정치가 1964년 한 차례 기록한 일이 있다. 5연타석 홈런은 세계적으로 아직 기록된 적이 없다
1999년 한국축구 100년사를 모은 `축구박물관` 개관
서울 신문로 대한축구협회 회관 1층에 한국축구 100년사를 한곳에 모은 축구박물관이 개관됐다.
1999년 5월19일 개관식을 가진 축구박물관 200여평에는 역대 국가대표의 유니폼, 공, 축구화, 국제대회 트로피, 국내 프로축구의 역사와 각 팀별 유니폼, 팬북, 팬던트, 홍보용품 등과 사진으로 보는 한국축구 100년사가 일목요연하게 전시됐다.
이와함께 `역대대통령의 축구사랑` 코너도 마련, 1968년 서울 아시아청소년축구대회 직후 육영수 여사가 `잘 싸웠습니다`라고 쓴 방명록등을 비치했다. 이날 오전에 열린 개관식에는 신낙균 문화부장관, 박세직 월드컵축구위원장,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 오쿠라 준지 일본축구협회 부회장과 원로 축구인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1998년 이탈리아 국립현대미술관 고흐-세잔 그림 3점 도난
1997년 국민회의, 김대중총재를 대통령후보로 선출
1997년 제1회 LG배 세계기왕전 - 이창호구단 우승
초대 바둑황제의 영광은 이창호 구단에게 돌아갔다. 이 구단은 1997년 5월 19일 소공동 롯데호텔 아테네가든 특별대국실서 벌어진 제1회 LG배 세계기왕전(조선일보사 주최-LG그룹 협찬) 결승5번기 3국서 유창혁 구단에 1백93수 만에 흑으로 불계승 토털 3대0으로 완승했다. 이로써 이 구단은 세계최대규모의 LG배 원년 우승컵과 상금 2억원의 주인이 되며 세계정상을 확인했다.
이날 이 구단은 우상귀 화점에 이어 세번째 수로 빈귀를 차지하지 않고 좌하귀 백의 화점에 걸치는 의욕적 포석으로 출발했으며 유 구단은 두귀를 선점하는 발빠른 포진으로 대응했다. 이후 유 구단은 좌변을 버리고 우중앙에 대세력권을 형성했으나 이 구단이 중앙 백의 약점을 위협하며 우변을 초토화 일찌감치 승세를 확립했다. 지난 1996년 6월 개막됐던 제1회 LG배 세계기왕전이 11개월 만에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1995년 신행주대교 재개통
1994년 아프리카 말라위, 카무주 반다 대통령의 30년 독재 마감
1993년 한국-마다르스카르 국교 수립
1992년 김영삼 민자당 대표최고위원, 14대 대통령후보로 선출
1992년 민속의학자 김일훈씨 별세
1988년 월스트리트 저널지, 노드롭 스캔들 폭로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이 한국판 록히드사건으로 불리우는 노드롭 로비사건을 1988년 5월 19일 폭로했다. 노드롭 사건은 미국의 노드롭 항공사가 최신예 전투기 F20을 한국에 팔기 위해 1984년에 박종규 전청와대 경호실장과 이민하씨에게 775만달러의 로비자금을 전달한 사실이 밝혀졌고 그 상당부분을 전두환 대통령이 받았다는 의혹이 일어 정치적 문제가 된 사건이다.
그후 5공비리 특별수사본부는 이 사건을 수사해 이민하씨가 노드롭사로부터 350만달러를 받아 유용한 사실을 확인하고 그를 구속했다. 그러나 F20의 시험비행 추락사고로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박씨가 1985년 12월 사망함으로써 나머지 돈의 행방과 사건의 진상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1978년 북한무장선박 격침
1978년 5월 19일 오전 11시 34분, 220전탐기지가 130° 28마일 해상에서 020° 8노트로 북상하는 의아선박을 접촉하였다.
이와 같은 점이 보고되자, 율포함(PCE-58)과 제비 61, 62호정(101고속정 편대), 제비 60, 77호정(102고속정 편대)이 현장으로 출동하여 정선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북한 무장선박이 불응하면서 사격을 가하며 도주하는 상황이 발생하였고, 이에 따라 격파사격을 가하여 오후 2시 55분에 동방 19마일 해상에서 북한 선박을 격침시켰다. 해당 선박에 타고 있던 선원 8명을 생포하였다
1976년 한국-파푸아뉴기니 국교 수립
1974년 지스카르 데스탱 20대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
퐁피두 프랑스 대통령의 사망으로 치러진 1974년 5월 19일의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점진적 개혁`을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출마한 48세의 지스카르 데스텡이 좌익연합의 미테랑을 물리치고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프랑스 우파의 거두로서 1956년 31세때 하원 의원에 처음 당선됐고, 1962년 36세의 젊은 나이로 드골 대통령에 의해 재무장관으로 발탁되어 활동했으나 1966년 드골파와 결별하며 사임했다. 1969년 퐁피두 대통령에 의해 다시 재무장관에 기용되어 프랑크화의 평가절하를 단행했다. 지스카르데스탱은 1978년 재선되었으나, 1981년 미테랑에게 패배했다. 그 해 대통령을 역임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클레르몽 페랑 시장선거에 나섰다가 참패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1984년 고향에서 하원에 재당선돼 정치에 당당히 복귀함으로써 대통령을 역임하고 하원의원에 당선되는 두번째 정치인이 됐다. 그는 1992년 마스스트리히트조약 통과를 위한 국민투표를 승리로 이끌어 냈다.
1973년 서독-소련 3개(경제, 문화, 항공)협정 체결
1970년 국제노동기구(ILO)가 빈곤백서를 발표, 세계인구의 15퍼센트가 영양실조로 고통
1967년 소련 대기권 핵무기 금지조약 비준
1967년 유엔(UN) 특별위 나미비아(서아프리카)의 신탁통치 결의
1966년 박맹호, 민음사 설립
2003년 국내 78개 출판사 편집장들이 ‘국내에서 가장 우수한 출판사’를 선정했을 때, 1위의 영광은 민음사에 돌아갔다. 민음사 대표 박맹호(1934~)는 ‘광복 후 국내 출판 문화에 가장 공적이 큰 출판인’ 조사에서도 1위로 선정되어 겹경사를 누렸다. 박맹호는 한국의 출판사(史)에 굵직한 발자국을 남기며 단행본 출판의 외길을 걸어간 출판인이다. 문학은 물론 철학과 사상 분야의 각종 이론들을 국내에 소개함으로써 한국의 지식사회도 이끌었다.
학창시절 그의 꿈은 소설가였다. 그러나 중앙일간지 신춘문예에 최종심사까지 올라갔다가 낙선하자 문학적 자질이 부족함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이 좋은 책을 내도록 뒷받침하는 것을 천직으로 받아들였다. 그 결과물이 1966년 5월 19일 서울 청진동 옥탑방에서 문을 연 ‘민음사’다.
민음사의 첫 작품은 시인 신동문이 번역한 ‘요가’였다. 우리나라에 요가를 처음 소개한 이 책은 2만 부가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민음사는 1976년 계간 ‘세계의 문학’을 창간해 외국문학의 흐름과 움직임을 국내에 소개하는 한편 우리 문학의 세계화에도 기여했다. ‘세계의 문학’은 1977년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작가 발굴제도인 ‘오늘의 작가상’을 제정했다. 제1회 수상작품인 한수산의 ‘부초’를 비롯해 2회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 3회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등 수상작들은 잇따라 수십만 부에서 100만 부가 팔리는 슈퍼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민음사의 최대 히트작은 1988년 출판한 이문열의 ‘삼국지’로, 민음사에 큰 돈을 안겨주었다.
이후 민음사는 어린이책을 전문으로 하는 ‘비룡소’(1994), 대중문화 전문출판사 ‘황금가지’(1996), 과학전문 출판사 ‘사이언스북스’(1997), 논픽션 분야에 특화된 ‘민음인’(2005), 다양한 시각문화를 소개하는 ‘세미콜론’(2005) 등 자매 출판사로 분화되었고 출판사마다 성공을 거둬 명실상부한 한국 최고의 출판그룹으로 성장했다.
1962년 독일 화가 뮌터 사망
1961년 남북협상 주장한 혁신계 ‘민족일보’ 폐간
4·19 후 혁신세력의 급속한 성장에 맞춰 평화통일론과 남북협상론을 기치로 내걸었던 혁신계 신문 민족일보가 1961년 5월 19일, 지령 92호를 끝으로 폐간됐다. 발행인 조용수는 6·25 때 일본으로 건너갔다 4·19가 일어나던 그 해 6월에 귀국한 재일 거류민단의 간부 출신. 진보적인 논지 탓인지 국회에서도 조총련계 자금 유입설을 둘러싸고 설전이 벌어졌다.
이때 발생한 5·16은 조용수에게는 치명적이었다. 신문 폐간에 이어 관련자 13명이 구속된 것이다. 국민을 선동해 북한을 고무동조하고 조총련계 간첩 이영근으로부터 공작금을 받아 민족일보를 창간했다는 것이 혐의 내용이었다.
국제언론인협회(IPI)와 국제펜클럽, 국내외 문인·언론인 100여명까지 나서 구명운동을 벌였지만 혁명재판부는 조용수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최고회의는 이를 추인했다. 12월 21일, 조용수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러나 이영근이 민단계였고 1990년에는 국민훈장까지 추서됐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져 그의 죽음을 둘러싼 논란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1961년 혁명위를 국가재건최고회의로 개칭
1961년 윤보선 대통령 하야 성명 발표, 다음날 번복
1960년 미국-일본 신안보조약 신행정협정 중의원서 자민당 단독승인
1958년 미국-캐나다 북미방공사령부(NORAD) 설치
1957년 발명의 날 제정
1957년 제1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한국 최고의 미인을 뽑는 제1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1957년 5월 19일 개최됐다. 대회 주최사인 한국일보는 4월 6일 1면에 미스코리아대회 개최 사고(社告)를 냈다. 응모 자격은 만 18세이상 28세까지의 한국 여성으로서 지·덕·체의 모든 면에 진선미를 겸비한 사람, 직업의 유무는 불문하나 흥행단체 또는 접객업소에 종사한 일이 없는 미혼여성으로 했다.
신청 마감은 4월 30일이었으나 마감이 다가와도 신청이 들어오지 않았다. 행사 준비 기간이 짧은 탓도 있었겠지만 당시만 해도 미스코리아 선발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좋지 않았다.
이날 결선대회에 오른 7명의 후보가운데 23세의 박현옥양이 미스코리아로 당선됐고 홍인방양과 김정옥양이 준 미스코리아로 당선됐다. 미스코리아에 당선된 박양은 7월 1일 롱비취시에서 열린 세계미인제전에 한국여성의 대표로 참가해 우리나라 여성들이 지닌 진선미를 자랑했다
1955년 국회 태창산업 특별융자조사위원회 보고
1954년 미국-파키스탄 상호방위원조협정 조인
1952년 원내 자유당, 개헌문제로 합동파, 잔류파로 분열
1950년 제2회 총선에 의한 국회 개원, 의장에 신익희 부의장에 장택상, 조봉암
1941년 베트민(베트남 독립동맹) 결성
1935년 아랍 독립운동 도운 영국 탐험가 토머스 로렌스 사망
영국은 오스만 지배하에 있던 아라비아의 하심가(家)와 협정을 맺어 아랍인이 독립운동에 나서면 지원하기로 약속한다.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도 영국군 장교로 파견된다.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로렌스는 고고학자로 이미 3년반 동안 중동지역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로렌스가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것은 1917년 7월 홍해의 요충지 아카바를 점령하면서였다. 로렌스는 오스만군이 전혀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기습작전을 감행한다. 50여명의 아랍군을 이끌고 6주 만에 1000km나 되는 사막을 가로질러 아카바의 배후를 친 것이다. 오스만의 사상자와 포로가 1200명에 달했지만 아랍군의 희생자는 2명, 일방적인 승리였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세계에 이름을 떨치는 순간이었다.
로렌스는 특히 게릴라전에 능해 1년 반 동안 79차례나 철도를 폭파하는 탁월한 전과를 거뒀다. 그러나 고독한 싸움이었다. 영국이 프랑스와 중동지역을 분할통치하기로 비밀협정을 체결하고 또 유태인이 팔레스타인에 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길을 터주었기 때문이다.
로렌스가 아라비아를 떠날 때 그의 몸에는 9군데의 총상, 33번의 골절상, 7차례의 비행기 사고 등으로 상처투성이였지만 정작 그를 괴롭힌 것은 강대국의 탐욕이었다. 그는 서서히 자기 분열증세에 빠져들었다. 귀국 후 모든 정치적인 보상을 뒤로하고 사병으로 입대했지만 매스컴이 그를 놓아주질 않자 은둔한다. 1935년 5월 19일, 오토바이 사고로 영광과 비극의 인생도 마침표를 찍었다.
1930년 남아연방서 백인여성에 참정권
1925년 이탈리아 프리메이슨등 비밀결사 금지
1925년 제네바서 제7회 국제노동회의 개막
1925년 말콤 X 출생 - 1960년대초 흑인의 자부심과 블랙내셔널리즘을 주장한 흑인 민권운동지도자
1924년 참의부 의용군 압록강 연안의 국경을 순시중인 총독 제등실의 배 습격
1922년 손병희 선생 사망
1921년 미국 이민제한법 제정
1919년 북경대학생연합회 맹분선언, 일화배척운동 전개
1910년 핼리혜성 75년 만에 지구에 접근
핼리혜성이 1835년이후 75년 만인 1910년 5월 19일 지구 2300만Km까지 접근해 꼬리의 길이가 천구의 중간인 120도까지 이르자 전 세계가 혼란에 휩싸였다.
영국의 천문학자 E.핼리는 1705년에 당시 뉴턴이 발표한 만유인력의 이론에 따라서 기록에 있는 24개의 혜성의 궤도를 계산해서 1531년, 1607년, 1682년에 출현한 바 있는 세 개의 혜성이 같은 궤도를 돌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거의 같은 간격으로 나타나는 점에서, 이들 동일한 혜성이 태양의 주위를 76년의 주기로 돌고 있다고 결론짓고, 이 혜성은 1758년에 또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E.핼리의 사망후 1758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날 밤에 실제로 혜성이 출현하자 이후 핼리혜성이라고 불려졌다.
고대의 기록을 알아보면, 지금까지 29회의 출현기록이 남아 있는데, 가장 오래된 기록은 BC 467년 중국 주대(周代)의 문서에 기록되어 있다. 76년 만인 1986년 이 혜성이 다시 태양에 접근하자 많은 국가들이 탐사기를 쏘아 올려 혜성의 조성, 태양풍과의 상호작용 등을 관측함으로써 신비에 쌓였던 베일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혜성의 본체는 지름이 불과 6Km정도이고 코마(핵 주위의 대기)의 반지름은 약 1천만Km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1909년 디아길레프가 이끄는 러시아발레단이 프랑스 파리 샤트레극장에서 공연
1906년 민종직의 홍주의병 홍주성점령
1903년 스웨덴의 시인 스노일스퀴 사망
1902년 정약용의 목민심서, 광문사(廣文社)에서 신식활자로 간행
1898년 영국의 정치가 윌리엄 글래드스턴 사망
1897년 국어학자 정인승 출생
한글학회의 ‘큰사전’을 완성하는 등 한글발전에 크게 기여한 국어학자 건재 정인승 선생은 29세 때인 1925년 연희전문학교를 마치고 전북 고창고보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는 일제당국의 감시와 방해로 한글교육을 못하게 되자 1935년 사직했다.
1936년부터 조선어학회(한글학회의 전신)에서 ‘큰사전’ 편집주간을 맡았던 그는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함흥형무소에 수감돼 옥고를 치렀다. 1945년 광복과 함께 풀려난 건재는 ‘큰사전’ 편찬에 혼신의 힘을 쏟아 1957년 한글날에 완성시킴으로써 우리말 발전에 큰 족적을 남겼다.
전북대 총장과 학술원회원, 한글학회 고문 등을 역임했고, 건국공로훈장 국민훈장모란장을 받았다. 저서는 ‘한글독본’ ‘한글문답’ ‘표준중등말본’ ‘표준고등말본’ 등이 있다. 1996년 10월 ‘이달의 독립운동가’이자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됐다.
1891년 시베리아 횡단 철도 착공
낭만과 꿈, 회한과 유형의 역사로 점철된 시베리아 횡단 철도 공사가 1891년 5월 19일 시작됐다. 공사는 서쪽의 모스크바, 동쪽의 블라디보스톡, 중부 시베리아 철도, 트랜스∼바이칼 철도, 기타 철도 등을 건설하여 서로 연결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됐지만 공사비 부족과 냉혹한 겨울추위 등으로 여러차례 계획을 변경해야 했다. 게다가 죄수들을 포함한 건설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 반발, 폭동을 일으켜 공사 진척을 방해했다.
하지만 최대 난관은 노선의 한 가운데를 가로막고 있는 바이칼 호수였다. 바이칼 호수 공사 중 러ㆍ일전쟁이 발발하자, 바이칼을 우회하는 노선이 시급했던 러시아 정부는 청국 정부의 승인을 얻어 만주를 지나는 동청철도와 연결한 전장 8314km의 시베리아 철도를 완성했다. 전쟁 후 러시아는 일본의 만주 할양을 우려해 대체 루트로 아무르강 철도를 건설, 이를 경유하여 블라디보스톡에 이르게 했다. 이 노선은 1916년에 완공됐다. 그래서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2개 노선에 대한 완공일을 갖고 있다. 1904년은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토크를 연결하고 만주통과노선을 완공시킨 해이고, 1916년은 전적으로 러시아 영토 안에서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완성시킨 해이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모스크바에서 시작해 시베리아 대지를 가로질러 극동의 블라디보스톡까지 총길이 9천2백88km에 달하는 세계최장의 철로이다. 지구 둘레의 3분의 1에 가까운 거리며 경부선에 비해 20배가 넘는 거리다. 근대 러시아 역사상 가장 큰 국가사업의 하나로 꼽히는 시베리아 횡단철도 건설은 항공수단이 발달하기 전까지 러시아의 동과 서를 하나로 묶는 유일한 대중 교통수단이자 핵심 물류수단이었다. 이 철도는 또한 일제 압정에 시달려 연해주 등지에 이민갔던 수많은 우리 동포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킨 그야말로 `눈물의 철도`이기도 했다.
1890년 호지명 초대 베트남 대통령 출생
1881년 최초의 신식군대 별기군 창설
1879년 원산 개항을 허가
1864년 `주홍글씨`로 유명한 미국의 소설가 호손 사망
1845년 영국 항해가 탐험가 존 프랭클린 북극 북서항로 출발
1798년 나폴레옹, 이집트 원정
1762년 독일 철학자 피리테 출생
1442년 세종대왕 측우기 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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