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금이다. 금쪽같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려면 철저한 시간 개념과 감각도 중요하지만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 역시 매우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세상에는 시간을 알려주는 많은 것들이 있다. 그리고 물론 세상에는 다양한 시계들이 존재한다. 소위 명품으로 일컬어지는 시계들과, 다양한 캐릭터를 살려 젊은이들을 타겟으로한 시계, 그리고 스포츠용이라든지 어떠한 특정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시계 등. 하지만 그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는 최고의 시계가 세상에 존재하니 그는 바로 롤렉스 ROLEX.
'기술로만 승부하고, 타협하지 않는다'는 경영철학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롤렉스는 지난 60~70년대 쿼츠 기술을 이용, 값싸고 정확한 일본제(制) 전자시계가 시장을 휩쓸면서 스위스 시계업체들이 최대 고비를 맞아 많은 스위스 업체들이 전자시계로 전향하거나 도산했을 당시에도 기계시계 제작을 고집했고, 위기를 넘겼다. 그리고 그 어떤 시계회사들도 따라오지 못할 입지를 선점하고 있는 기세등등한 명품 시계 브랜드가 된 지금. ROLEX라는 그 이름처럼 영구히, 정말 영원히 회전하는 시계처럼, 다음 세대에도 또 그 다음의 미래에도 여전히 회전하고 있을 롤렉스를 닮아보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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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렉스의 탄생 비화(?) |
롤렉스란 시계가 만들어 지게 된 배경에는 1899년부터 1902년에 걸쳐 일어난 보불전쟁이 막대한 공헌을 했다고 보인다. 그 당시에는 회중시계가 주종을 이루었으며, 충격이나 방수기능이 전혀 없어 거친 전쟁터에서 사용하는데 실용성이나 정확도에서 충분히 무리가 따랐다. 이에 물이나 충격에 강한 시계가 시대의 필요성에 의하여 요구되었고, 이는 롤렉스의 탄생을 앞당긴 것.
롤렉스는 1908년에 브랜드명이 정해졌고, 그 2년 후 스위스 비엔나 시계검사소에서 1등급(A)으로 통과하면서 공식적인 정밀도를 인정받았다. 이후 1914년 독일의 큐우테딘톤 천문대 계측용 시계로 설치되면서 그 정확성은 더욱 인정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1926년 로렉스사는 완전방수기계 오이스터 특허를 스위스에서 획득, 그 우수한 방수기능은 세계적인 빅 뉴스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사실, 20세기 초반만 해도 손목시계라는 것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시계였다. 회중시계가 대부분이었고, 보불전쟁(1899-1902)을 통해 손목시계가 야전에 사용되기 전까지는 시계하면 당연히 회중시계를 떠올리던 시기였던 것이다. 이런 시대적 트렌드를 재빨리 읽어내지 못했다면, 어쩌면 롤렉스는 여전히 탄생하지 못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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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렉스를 움직인 사람 |
설립자 H. Wilsdorf
지난 2001년, 탄생 120주년을 맞은, 로렉스의 신화를 창조하고 각종 기록을 갱신한 로렉스의 전설적인 인물 한스. 윌돌프. ROLEX의 설립자인 한스. 윌돌프는 '윌돌프&데이비스'사 설립시, 24살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경영자로서의 수완을 지니고 있었다. 12살에 고아가 된 이후, 이미 12년이나 일을 하고 있어 경험이 많은 것이 주된 이유였다. 뿐만 아니라 회사를 일으키기 이전에 근무하던 라 쇼드퐁의 무역회사에서는, 그 자신만의 센스도 전해져 우수 사원으로서의 실적을 거듭, 책임있는 위치에 올랐던 전적도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필연이었는지 그 무역회사가 취급하고 있던 주요상품이 바로 '시계'였던 것.
이를 계기로 시계업계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시계를 직접 만들게 되고 동시에, 유통이 훌륭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체득. 또 영업이라는 일을 통해서, 케이스나 무브멘트 등의 분야에서 고품질의 기술을 가진 회사를 분별하는 안목을 키울 수 있었다. 아마도 이러한 것들이 그가 회사를 부흥시킬 수 있는 커다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한스.윌돌프는 1881년 독일의 바이에른 주 쿠룸바하에서 3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일찍 부모를 여윈 윌돌프의 형제들은 외숙부를 후견인으로, 할아버지가 열고 있었던 쿠룸바하 광장의 꽃집을 경영하게 되었다. 후에 윌돌프는 이 경험이 기업경영의 성공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회상하고 있다.
19세에 학교를 졸업한 그는, 스위스의 쥬라 지방에서 영업사원으로 취직. 그가 취직한 '클리오 콘텐사'가 있는 쥬라는 스위스 시계산업의 중심지인 '라쇼드퐁'이 있는 지역으로, '클리오 콘텐사'도 시계제조와 수출을 경영하고 있는 회사였다. 그의 운명이 시계와 연이 맺어졌는지, 그는 이곳에서 시계산업과 사업을 배운 후1903년에 영국으로 건너가 당시, 시계산업의 중심지였던 런던의 하튼가든 83번지에서 스스로 자신의 '윌돌프&데이비스'사 라는 시계판매회사를 설립. 그 때 그의 회사에서 팔던 주력상품은 "포토폴리오"라 불리는 비싼 가죽시계였다. 그러나 회중시계가 주류였던 당시까지만 해도 손목시계에 대한 신뢰감은 얻지 못한 상태였다. 회중시계처럼 주머니에서 보호되지 못하는 손목시계는 물과 먼지가 내부에 들어가기 쉬웠고, 강한 진동이나 충격에 대한 내구성도 충분하다고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윌돌프는 손목시계의 장래성에 확신을 품고 있었다. 새로운 회사의 세일즈 포인트로서 손목시계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그래서 발족과 동시에, 1902년 장사와 친밀한 관계를 쌓고있던 비엔나의 '장.에그라사'에 자본금의 5배에 상당하는 금액으로 무브멘트를 발주. 무모하달 수 있는 출발이었지만, 다행히도 별 무리없이 손목시계는 팔렸다.
윌돌프는 시계를 시장에 내놓는 것 뿐만 아니라, 에그라사에 대해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개선점을 지적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동사는 시계업계 속에서도 선진적인 무브멘트를 생산, 문제점을 개선하는 능력도 충분했기 때문. 이러한 관계가 효과를 본 것인지, 1910년 비엔나의 검정소에 있어「크라스1」을 취득, 연이어 1914년에는 큐-천문대에서「A」를 손목시계에서는 최초로 취득하였다. '리스트·크로노메타'를 탄생시키기에 이른 것이다. 다음에 윌돌프가 고뇌하였던 것은 케이스. 이정도 상급의 무브멘트를 조잡한 케이스에 넣는다는 것은 상급의 질을 떨어지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먼지나 수분을 단절하는 최고의 케이스로 선택되었던 것이 오이스타 워치 컴퍼니.
시계 메이커로서 뒤늦었음에도 불구, 로렉스가 비약적인 성장을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윌돌프의 합리적인 사고와 우수한 경영능력이 있었기 때문. 자신이 추구하는 시계를 만드는데 자사에 모든 것을 행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을 할 수 있는 회사를 원했던 것이다.
이후의 롤렉스 운영자
前 사장 아도라-하이네커 윌돌프에게 후계자가 없어 그가(윌돌프) 퇴역 후, 재단을 설립하였을 당시 최초의 사장을 역임한 전문 경영인
현(現)사장 패트릭.하이네커 비밀주의를 과감하게 개혁, 롤렉스를 투명하게 운영하여 오늘날 세계 속의 롤렉스를 만든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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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시계 |
롤렉스 오이스터 퍼펫츄얼
롤렉스 오이스터 퍼펫츄얼은 현재 세계에서 생산되고 있는 시계 중 가장 우수한 시계라고 단정할 수 있다. 모든 자동 태엽·방수시계의 품질 기준은 롤렉스 오이스터 퍼펙츄얼을 기준으로 제작되고 있을 정도니. 오이스터는 기술의 진보면에서 뿐만 아니라, 완고하고 성실한 장인 기질면에서도 항상 앞서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듯. 이를 증명하듯, 현재 롤렉스 오이스터는 고객들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선호하는 시계로 꼽히고 있다. 우수한 물건을 식별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사람들은 대량생산 시대에도 롤렉스 시계의 품질과 개성을 존중하여 온 것.
롤렉스의 전통은 "완벽함"의 추구에 있으며 이는 이미 약 90년 전에 시작됐다. 한스. 윌스도프는 고정밀도와 아름답고 내구성 있는 참된 고급시계의 필요성을 일찍부터 인식, 그 자신과 후계자들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이 목표를 향해 정진하고 있는 것이다. 롤렉스 오이스터가 긴 세월 동안 고객들로부터 제품의 우수한 품질을 인정받는 것은 당연지사.
롤렉스 오이스터의 실험 마케팅
런던의 젊은 속기사가 롤렉스 오이스터를 팔에 차고 영불해협을 수영으로 건넜을 때, 롤렉스 오이스터는 완벽한 방수상태를 보여줌으로써 완벽한 시계임을 극적으로 증명하였다. 또한, 죤 한트경이 인솔하는 등반대가 세계의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정복했을 때 롤렉스 오이스터는 등반대와 함께 있었고, 심한 충격이나 온도의 변화에도 불구, 등반대원의 팔목에 감긴 롤렉스 오이스터는 계속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또한 1960년 특수 제작된 롤렉스 오이스터가 쟉파칼 교수의 밧지스카-프 "토리에스터"의 외부에 부착, 수심 10,908 m의 바다 속에 가라앉았다. 1㎠당 1ton의 강력한 수압을 견디는 이 실험 중 롤렉스 오이스터는 계속 정확한 시간을 유지, 최고의 시계임을 입증한 것이다.
그후, 롤렉스 오이스터는 히말라야, 북극, 남극 그리고 사하라 사막 등 여러 종류의 탐험대에 휴대되었다. 톰 세파-드가 사하라 사막의 횡량한 모-리타니아 지구를 횡단했을 때, 토-르 헤이메달이 "라-2세호"로 대서양을 황단하였을 때, 하론 다지-뜨가 활화산의 화구에 들어갔을 때, 그리고 렛드 아데아가 사하라 사막의 '악마의 시가렛트 라이터'라 불리우던 유전화재나 북해유전의 "부라보-리그"의 폭발을 진압했을 때.... 롤렉스 오이스터는 항상 그들과 행동을 같이 했고, 험한 시련을 견디어 왔다. 그 결과, 탐험대처럼 점점 세상에서 유명해지고 그 견고함을 여실히 드러낼 수 있었다. 롤렉스의 실험 마케팅은 가장 확실한 성공의 보증수표였던 것.
사회적인 지위 및 직업의 특수성에서 최고의 실뢰성과 내구성, 그리고 독창성을 구비한 시계를 필요로 하는 고객들이 선택한 시계, 롤렉스 오이스터. 오이스터 케이스 발명 50주년을 기념하고자 롤렉스는 미래에 유용될 기획에 대한 "롤렉스 상"을 제정하기도 했다. 이는 지금까지 롤렉스가 추구하는 진취의 기품이 가득한 기획안에 대하여 5개의 상을 주고자 하는 것. 이들의 기획은 탐험과 발견, 응용과학 발명 및 환경분야에 관련된 것으로 각각의 영역에서 새로운 기반을 구축하는 획기적인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이 상에 대해 세계각국에서 놀랄만큼 많은 응모가 있어 진취의 기품은 여전히 살아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는데, 이 "진취적 기품"만이 과거에서 현재까지계승된, 그리고 미래를 이어갈 롤렉스 제품의 근본적인 정신인 것이다.
롤렉스의 마술같은 기술
롤렉스의 역사는 20세기 시계 제조기술에 대한 진보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근대시계의 가장 중요한 진보부문 즉, 크로노메터(정밀) 손목시계, 방수시계, 로터 자동태엽, 카렌더 등은 롤렉스에 의하여 발명된 것이다.
1910년 3월 22일, 그 시대의 놀라운 위업이었던 최초의 크로노메터 손목시계가 롤렉스에서 발표되었다. 박물관 전시용이 아닌 일반인들의 실용에 제공될 크로노메터 손목시계의 탄생이었던 것. 그리고 1926년, 최초로 정확한 방수시계를 발매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오이스터 Oyster. 오이스터는 두가지의 혁명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는데, 대단히 견고한 케이스와 물을 완전히 차단하는 크라운과 유리로 제작되었다는 점이다. 금, 플래티넘 스테인레스 스틸의 덩어리로부터 발췌, 이음매가 없는 케이스는 어떤 물질로도 침식할 수 없도록 견고하며 통상 시계의 약점으로 인식되어진 크라운(용두)역시, 견고하며 특수 디자인 되어 있어 어떠한 악조건에서도 습기를 완전히 차단, 실로 놀라운 기술이 아닐 수 없었다.
이후 1931년, 롤렉스는 최초의 로터 자동태엽, '퍼팩츄어'를 발명하였다. 이 원리는 오늘날 대부분의 고급 자동시계에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시대를 충분히 앞선 것이었다. 정밀한 밸런스로 형성된 로터가 손목의 미세한 움직임까지도 감지, 태엽의 장력을 일정하게 유지하여 안정된 힘의 흐름으로 보다 뛰어난 정밀도를 갖게 한 기술이다. 또한 1945년, 문자판에 날짜가 나오는 시계 '데이트 저스트'를 세계 최초로 발표. 이 새로운 고안에 이어 1956년에는 날짜와 요일이 나오는 최초의 시계 '데이-데이트'까지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카렌더 1945년 세계 최초로 문자판에 날짜가 나오는 시계가 탄생. 이것이 롤렉스 오이스터 퍼펙츄얼 데이트 저스트다. 공인 크로노메터 자동태엽, 무브먼트, 방수(수심50m)와 쥬빌리 시계줄이 부착되어 있다.
The Twinlock 용두 트윈록 용두는 오이스터용으로 특별 제작된 것. 잠수함의 뚜껑과 같이 완전히 물을 차단한다. 용두는 케이스에 나사로 끼워져 습기, 모래, 먼지 등 이물질을 차단하여 케이스의 밀봉을 완전하게 한 것. 이 장치는 32단계의 정밀 공정에 의하여 만들어지며 대부분 수작업에 의하여 진행된다. 통상 용두는 시계의 취약부분으로 취급되고 있지만 롤렉스의 트윈록 용두는 감히 완벽하다고 할 수 있다.
The Rotor 회전자 롤렉스 오이스터 퍼페츄얼은 특별한 회전자 장치에 의하여 사람손목의 미세한 움직임까지도 감지, 동력축적으로 자동 변환시켜 준다. 실용적이고 편리한 이 발명장치는 시계 태엽이 항상 적정 수준으로 감기어져 있도록 하여 정확도와 신뢰도를 보증. 이 회전장치는 롤렉스에 의하여 1931년 특허되었으며 오늘날 시계산업에 널리 그 원칙이 응용되고 있다. 이 회전장치는 철저한 테스트 과정을 거침에 따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틀림없이 작동하고 있음을 롤렉스는 증명하고 있다.
The Gold 금 롤 렉스는 시계생산량에 제한을 두고 있으나, 스위스 내에서 금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회사 중 하나이다. 이는 각각의 금으로 된 오이스터 케이스가 금을 충분히 사용하여 만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 롤렉스가 고가인 금을 사치스러울 정도로 사용하여 케이스를 제작하는 이유는, 오이스터 케이스가 일단은 아름다워야 하며, 케이스 속에 기계를 완벽하게 보호해야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롤렉스 오이스터 케이스는 레이져 광선 이외의 어떠한 물질도 통과시키지 않는다고 한다. 한편, 오이스터용 시계줄은 시계와 같은 재질로 제작되며 대부분의 작업이 수작업으로 행해지고 있다.
The Rolex Red Seal 스위스 공인계측협회에서 부여하는 가장 명예로운 칭호가 바로 '스위스 크로노메터'다. 이 타이틀을 획득하는 데는 15일간의 혹독한 시험에 견디어야 하는데, 이 시험은 5개의 다른 위치와 3가지 다른 온도에서 실행된다. 더불어 '롤렉스 레드 씰'은 그 시계가 롤렉스사의 연구소에서 다시 시행한 엄격한 시험에 합격한 것을 증명하는 것. 세계에서 생산되고 있는 고급 기계식 시계 중 이러한 수준에 도달한 것은 극히 소량이다. 매년 스위스에서 생산되는 시계의 전 생산량 중 롤렉스는 극히 적은 물량에 해당되지만, 스위스 전체에서 지금까지 부여된 크로노메터 타이틀의 약 반정도를 롤렉스에서 획득하고 있으니 누가 감히 롤렉스의 명예에 도전장을 내밀리요.
The Rolex Bracelet 롤렉스는 무브먼트(톱니바뀌 등으로 구성된 시계의 엔진이자 심장부), 케이스, 용두, 유리 등 모두를 세심한 주위를 기울여 제작하고 있다. 또한 롤렉스의 독특한 시계줄을 제작할 때에도 마찬가지. 롤렉스 시계줄에는 크게 3가지 종류가 있는데 The President, The Jubilee, The Oyster가 그것. 이들은 모두 멋있고, 실용적으로 디자인 되어있어그 자체에서 품위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모든 롤렉스의 시계줄에는 길이를 조정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부착되어 있다. President 모델의 표면에는 우아한 왕관 마크가 보이고, 연결고리 부분이 보이지 않도록 부착된 것도 있다고. 롤렉스 오이스터 쿼츠의 시계줄도 오이스터 케이스와 시계줄이 하나로 보이는 기능적인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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