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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클레식 음악감상 4268 - 9009 원문보기 글쓴이: 익명회원 입니다
오북춤 ♣ 밀양백중 (密陽百中)놀이 中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 46분 부터 오북춤 http://blog.daum.net/dhrdl6343/908?srchid=BR1http://blog.daum.net/dhrdl6343/908 신명으로 80년 살아 온 영원한 걸립패 밀양백중놀이 하보경
재인-전통예맥을 이어가는 사람들, 세계일보 이규원 기자1991.12.7
밀양백중놀이의 짜임새는 농신제, 작두말타기, 춤판 뒷풀이로 되어 있다. 농신제는 먼저 나팔을 길게 서 너 번 불면 놀이꾼들이 풍물을 치며 놀이판으로 모여들어 놀이판 가운데에 있는 농신대를 중심으로 서 너 차례 돌다가 고축터를 깨끗이 하는 뜻으로 오방신장을 불러 일으켜 잡귀 막이 굿을 하고 덧배기춤으로 한바탕 놀다가 農神에 대한 고축풀이를 한다. 겨릅대 360개를 묶어 만든 農祥대를 중심으로 원형으로 서서 북을 궁궁 세 번 울리면 봉신했다며 삼배하고 엎드려 누군가 축문을 읽는다.
“하늘 위 상제님, 천상천하 용왕님,
고축을 마치고 술과 안주를 먹고는 흥에 겨워 어사영·모심기노래·논매기노래·타작노래·쾌지나칭칭을 부르고 작두말 타기를 한다. 작두말 타기는 머슴들 중에서 뽑은 농사장원을 작두말(작두마, 지게 목발로 만든 말)에 데친 풍물을 울리며 놀이판을 돌면서 시위하는 놀이이다. 작두말놀이를 하면서 떠들썩하게 놀다가 춤판으로 이어진다. 춤판은 양반춤과 병신춤·범부춤·오북춤·뒷풀이 순으로 이어지는데 밀양백중놀이는 바로 이 춤판이다.
밀양백중놀이를 전승하고 춤들을 복원 정립한 사람이 바로 하보경옹이다. 옹을 만나기 위해 밀양시 내일동의 언덕배기에 있는 밀양민속예술전수회관으로 찾아갔다. 하얀 머리, 흰 눈썹, 흰 수염. 흰 옷차림이 첫눈에 흡사 신선같기도 하고, 마치 춤을 통해 신의 경지에 이른 도인의 모습과도 같아 보였다.
전국대회 출전을 계기로 그 동안 병신춤·북춤, 농신제 등 일부만이 이어져왔던 것을 하옹이 중심이 되어 양반춤, 북춤, 오북춤 등을 추가로 복원하여 집대성했다. 이 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은 것이 밀양백중놀이가 중요무형문화재로 공인받게 된 계기가 되었으며, 하옹의 춤사위와 노고가 인정되어 그해 11월에 인간문화재가 되었다.
자료제공 월간 문화재 (1990년 11월 북춤 민속무용 제1집/명무전 공연 실황 일시: 1979.12.08 장소: 서울예고 강당 출연: 하보경
*내용
농악에서의 북춤은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발달하였는데, 경상도형의 북춤은 철저하게 원박에 맞춘 집단무용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전라도형은 북치는 가락이 섬세하고 다양하며 맺고 얼렸다 푸는 묘사가 뚜렷이 나타난 개인 무용적인 성격을 가진다. 북춤의 기본 가락을 연주하는 것과 가락 사이에 춤을 추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유형은 외북채로 치면서 추는 춤과 쌍북채로 치는 춤이 있다. 북춤으로 유명한 곳은 밀양지방의 외북채와 진도북춤의 쌍북채를 꼽는다. 밀양백중놀이 오북춤 - 판편기, 농신제, 작두말타기, 춤판, 범부춤, 오북춤, 뒷놀이로 구성된 밀양백중놀이중 마지막부분 오북춤입니다. 한민동 오북춤 공연실황
경상남도 밀양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백중놀이. 두레농사가 파한 후 음력 7월 15일경에 행하던 호미씻이놀이를 말한다. 이 놀이는 농촌에서 힘겨운 세벌 논매기를 끝내고 나서 백중을 전후한 용날[辰日]을 택해 머슴들이 풍년을 비는 뜻으로 농신(農神)에 대한 고사를 지낸 다음 '꼼배기참놀이'를 할 때 여흥으로 여러 가지 놀이판을 벌여온 데서 비롯되었다. 놀이의 줄거리는 세도가 당당한 양반들에게 시달림을 받아오던 서민들이 서로의 애환을 달래는 풍자놀이로 엮어진다. 첫째 마당인 앞놀이는 저릅대[麻芋]로 만든 농신대를 세우고 고사를 드리는 농신제마당, 둘째 마당은 농사 장원이 된 머슴을 작두말에 태우고 돌아다니며 병신들이 몰려나와 병신춤을 추는 놀이마당, 셋째 마당은 북잡이들이 오북춤을 추면서 오곡이 번성하길 기원하는 신풀이마당이다. 쇠가락은 농악가락으로 이끌고 나가며, 장단은 덧배기·중모리·중중모리·단모리·휘모리 등이 각 마당에 따라 적절히 구사된다. 출연자로는 지주와 상쇠·영각·부쇠·수징·부징·수북·중북·종북·끝북·수징고·부징고·기잽이·일꾼·모심기앞소리꾼·논매기앞소리꾼·사장고·물장고·좌상·무상·숫총각·우상·벙어리양반·중풍쟁이·뜰것이·휘둘리기·난쟁이·문둥이·꼽추·배불래기·봉사·꼬부랑할미 등이 등장한다.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오북춤과 병신춤, 범부춤과 민요 〈어사용〉이 유명하다. |
1992년 국악당소극장에서 열린 '김은희 발표회' 공연 중 밀양백중놀이 하보경, 김은희, 하용부 외 밀양백중놀이보존회 회원 출연 머슴들이 양반을 쫓아 내다, 밀양백중놀이 病身舞 Byung shin chum 병신춤 병신춤으로 양반을 놀리는 권경도 할머니
이 사진은 병석에 누워계실때 촬영한 사진입니다.(1997년) ![]() ![]() 보유자하보경의북춤 하용부씨는 "한국인 특유의 심성과 몸짓을 외국인들은 내게서 발견한 듯 하다"며 해외의 뜨거운 반응을 해석한다. 딸 윤희씨는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아버지의 솜씨야말로 나의 영원한 숙제"라고 말했다. 조영호 기자 youcho@hk.co.kr [장병욱의 쪽빛보다 푸르게] <4> 밀양백중놀이의 하용부 부녀 "조부 놀이판 따라다니며 어깨 너머로 배워 딸까지 5대 춤꾼… 피는 못 속이나 봐요"
![]() 범부춤 출처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01_02_04
하늘 위에 상제님 천하 용왕님
바람기 순조롭고 벌구잡충 없이 하며 금년 농사 잘도 해서 총각 신세 면케 하고 앞논에 용신님 뒷논에 용신님 들쥐도 막아 주고 나는 새도 막아 주고 회기종도 막아 주고 흰무리도 막아 주소
농신제 축문을 읽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백중놀이는 힘겨운 세벌 논매기를 끝낸 백중날, 곧 9월 보름을 전후한 용날에 동네 머슴들이 모여서 벌이는 놀이였습니다. 마당 한가운데에 저릅대로 만든 '농신대'를 세우고 동네 사람들이 쌀이나, 콩, 돈, 축원문을 넣은 주머니를 주렁주렁 매달고 둥그렇게 둘러서서 세 번 절하며 그 해의 풍년과 복을 빈 다음, 그 해에 농사를 제일 잘한 장원을 지게 목발로 만든 ‘작두말’에 태우고 머슴들끼리 놀이판을 벌입니다. 그 판에 양반이 끼어들어 거드름을 부리며 '양반춤'을 추면 머슴들과 부엌 일하는 여인들인 '정지꾼'들이 여기 저기서 나타나 병신춤으로 양반을 놀리고, 쫓겨난 양반은 범부 차림으로 다시 나타나 서민들과 어울려 '범부춤'을 흥겹게 춥니다. 그런 다음 북잽이들이 큰 북을 메고 나와 밀양 백중놀이에만 유일하게 전해오는 '오북춤'을 춥니다. 이 오북춤은 '오행'과 '오기'가 순조롭기를 빌며 '오체'가 성하고 '오곡'이 잘되고 '오복'을 누릴 수 있기를 비는 뜻이 담겨 있는데, 이 오북춤이 끝나면 모든 놀이꾼과 구경꾼이 한데 어우러져서 마지막 뒤풀이를 합니다. 하보경 명인은 밀양 읍내에서 이 놀이를 제일 오랫동안 놀아온 춤꾼입니다.
출처 : http://www.gallerywa.co.kr/column1.asp%...dx%3D864
부친은 놀이를 좋아해서 읍내에서 놀이가 벌어질 때는 앞장을 서서 놀았고, 어느 때는 풍물패를 조직해서 이 동네 저 동네 떠돌아 다니며 서너 달씩 집을 비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단체가 해산되면 집에다 악기를 풀어놓고 흩어지는데, 돈을 못 벌었거나 갈 곳이 없는 사람은 열흘이나 보름씩 그의 집에서 쉬어 가기도 했습니다. 하보경 소년은 어려서부터 늘상 그 어른들이 치는 풍물소리를 듣고 그 어른들이 추는 춤을 보며 자랐고, 틈만 나면 그들에게서 춤과 악기를 배우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밀양보통학교를 다닐 무렵에는 이미 웬만한 장단이나 춤은 따라할 수 있는 실력이 되었지만 아버지의 눈이 무서워 드러내 놓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은 놀이를 좋아할 망정 아들만은 공부를 착실히 해서 면서기 같은 훌륭한 인물이 되어주기를 바랐던 아버지는 아들이 남 앞에서 북치고 노는 것을 엄하게 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명절마다 벌어지는 푸짐한 마을 놀이 때면 그는 엉덩이가 들썩거려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밀양은 산이 좋고 들이 넓고 물이 좋고 하니께네, 보리도 잘되고 나락도 잘돼, 소 없는 집이 없고, 머슴없는 집이 없는 기라. 백중날 날받이 옷도 해주고 음식도 해주고 푸짐하게 노는데, 우째 신이 나는지 하루 종일 따라 다녀도 재미가 있는 기라.” 천성이 춤과 놀이에 무한히 끌려 들어가도록 되어 있는 데다가,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친구들의 영향으로 악기와 춤의 기초를 다진 그가 얌전하게 학교 공부나 하길 바란다는 것은 고양이 앞에 생선을 놓고 먹지 말라는 것과 같은 요구였습니다. 결국 그는 열여섯 살 무렵에 아버지 몰래 놀이판에서 북을 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춤 잘 추고 놀기 좋아하는 밀양 멋쟁이로 이름이 드높아져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다니는 재미에 맛을 붙일 무렵, 아버지가 병에 걸려 쓰러지게 되었습니다. 그가 스물네 살쯤 되었을 때에 부친이 세상을 뜨자,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보본계’ 계원이 되었습니다. 보본계는 백년이 넘게 내려오는 밀양 읍내의 놀이계로, 마흔 명쯤 되는 계원들이 정초에 읍내를 돌아다니며 지신밟기를 해주고, 봄에 한차례 모여서 걸판지게 노는 단체였습니다. 이 계원들은 저마다 악기나 노래나 춤에 재주가 있어 인기가 높았기 때문에 읍내 한량들이 서로 다투어 계원이 되고 싶어했지만, 웬만큼 솜씨가 없으면 계원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계에 젊은 계원이 되었으니 한량인 그로서는 대단히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나쁜 짓’은 시작되었습니다. 어디에 놀이판이 벌어졌다 하면 불원천리하고 달려가고, 씨름판이 벌어졌다 하면 다시 바람같이 달려가서 심판을 보며 신나게 놀고, 어디에 예쁜 기생이 있다 하면 부리나케 옷 빼입고 놀러가는 통에 그 많던 재산이 조금씩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윷놀이에 미치지만 않았어도 부친의 재산을 다 날려버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밀양의 하보경, 삼칸집 너머로 던져도 모가 난다.”는 말이 나올 만큼 이름난 내기 윷꾼이던 그는 결국 재산을 다 날린 다음 손을 톡톡 털었습니다. 일본 식민지 말기의 전쟁 바람은 밀양에도 불어 닥쳐 놀이판은 금지당하고, 술 마시고 놀음을 하면 잡혀가고, 쇠로 된 악기는 모두 전쟁물자로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고생스럽고 재미없는 시절을 간신히 넘긴 그는 해방이 되자마자 친구들과 ‘5.3 친목계’를 조직하여 마음껏 놀기로 작정했습니다. 그 단체가 점점 발전하여 1960년에 한국사단법인 밀양국악협회가 탄생되었고, 1980년에는 민속예술보존협회가 생겨났습니다. 그해 10월에 제주시에서 벌어진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은 뒤 중요 무형 문화재 68호로 지정받고 하보경 명인이 <양반춤>과 <범부춤>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받게 되자, '밀양백중놀이'는 갑자기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여기 저기 초청공연을 갖게 되고, 1981년 8월에는 미국의 국제 무용단 초청으로 하보경 명인이 대표로 미국에도 갔다오고, 1982년에는 김타업 명인이 상쇠 예능보유자로 지정 받게 되고, 거의 해마다 두세 번은 민속제나 예술제에서 가장 인기있는 종목으로 사람들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백중놀이의 참가자들은 모두 저마다 재주가 뛰어나고 신명이 넘쳐 흘러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흥겨움에 겨워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게 만듭니다. 백발이 성성한 머리에 하얀 띠를 맵시있게 두른 그가 십 년이 넘게 기른 하얀 수염을 바람에 휘날리며 하얀 도포를 입고 검은 관을 쓰고 미투리 신고 하얀 부채를 손에 들고 '양반춤'을 추거나, 하얀 중의적삼에 상투를 꼽고 웃댕기를 매고 미투리 신고서 '범무춤'을 추거나, 흰 중의적삼에 상투 꽂고 짚신 신고 큰북을 메고 북채를 손에 들고 딱딱딱 하면서 '북춤'을 출 때면 그의 말대로 “미국 처녀도 반해서 볼따구에 뽀뽀를 할” 지경이었습니다.
출처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01_02_04
“내 춤은 춤도 아닌 기라. 서울서 춤추는 사람들 얼매나 잘 추나? 그런 사람들한테 비하모 내는 춤춘다꼬 말도 몬하지.” “우리 춤은 예전부터 내려오는 것을 그대로 추는 춤이라. 사람들이 그걸 알아주고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건데 우리 춤이 엉터리라 카모, 우리 조상님들이 추던 춤들이 전부 엉터리란 말이가?” 본디 삶과 일 속에서 나왔으면서도 예술은 지금 그것들과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젊어서부터 가정을 돌보지 않고 멋과 흥에 취해 살아 온 그이지만 그래도 아들 둘과 딸 셋을 모두 번듯하게 키워 놓았고, 큰 아들이 낳은 손자 용부는 할아버지의 피를 이어 받아 그의 북춤 전수자가 되었습니다.
미국 처녀도 반해서 뽀뽀한 춤, 하보경 명인 날좀 보소 날좀 보소 날조곰 보소
동지섣달 꽃본 듯이 날좀 보소 아리랑 닥궁 스리랑 닥궁 아리리가 났네 아리랑 어절시구 잘 넘어간다 담 넘어 갈 때는 큰 맘을 먹고 문고리 잡고서 발발 떤다 아리랑 닥궁 스리랑 닥궁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어절시구 잘 넘어간다
이 <밀양 아리랑>은 전라도 지방에 전해 오는 <진도 아리랑>과 강원도 지방에 전해 오는 <강원도 아리랑>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아리랑으로 꼽힙니다. <동국여지승람>의 <밀양도호부>편에 보면 밀양이 “긴 내를 굽어 당기고 넓은 들을 팽팽히 얼싸안고 있어,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것을 숭상하게 되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실제로 밀양군은 오늘날에도 경상남도 안에서 가장 농업이 성한 곳으로 꼽힐 뿐만 아니라, 갖가지 민속놀이가 다양하게 전해 내려오는 곳이기도 합니다. <밀양 백중놀이>나 <밀양 새터 가을굿>이나 <감내의 줄당기기>나 <용호놀이> 같은 놀이들이 새롭게 발굴되어 소개되었고, 그 중에서도 <백중놀이>는 밀양의 이름을 나라 안에 널리 떨치게 만들어서 밀양하면 백중놀이를 연상할 만큼 유명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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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클레식 음악감상 4268 - 9009 원문보기 글쓴이: 익명회원 입니다
첫댓글 역시 멋진 우리의 문화입니다.
밀양 백중놀이 ~ 직접 본적은 없지만 아주 좋을듯 합니다.
ㅋ ~~~
부끄럽지만 저도 범부춤을 추면서 출연한게 있으니 찾아 보셔요...^^*
회장님
소개 고맙습니다.^^
네 ~~
만강님 !!
항상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 합니다...^^*
신나는 북장단에 어깨 절로 얼쑤~~~고맙습니다 귀한 자료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