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반 후 뜰에 나가 화단의 꽃을 만지고 있는데 산울타리 바같쪽 길에서 상냥한 음성이 들려온다. " 어머, 마사오 씨." 그 순간 익은 음성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이 누군지 짐작이 안가는 채 그쪽을 보았다. 간사이 아끼꼬가 순백의 원피스를 입은 모습으로 웃고 있었다. " 여." 무엇보다도 그리움을 느낀다. 도쿄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는 사람은 겨울이나 여름방학이 되면 고향으로 온다. 귀성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만나는 사람도 있고, 생각이 나면 만나는 사람도 있다. 또, 우연이 아니면 만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 2년만인가?' 아끼꼬의 경우는 물론 '만나고 싶다.'고는 생각하면서도 ' 만나지 않는편이 좋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끼꼬도 어쩐 일인지 찾아오지 않았다. " 여, 오랜간만이야." 마사오가 산울타리로 다가간다. " 더욱 예뻐졌는데. 눈부실 정도야." 그것은 빈말이 아니었다. 그렇게 느꼈던 것이다. 동시에 사타구니 사이에 늘어져 있던 물건에 조금 전류가 흐르고, 찌릿한 감각이 생긴다. 아끼꼬의 육체의 맛을 그것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아끼꼬도 다가왔다. " 고마워, 말도 늘었구나. 여전한데. 아직도 소년같아. 언제 돌아왔지?" " 어젯밤에." " 빨리왔구나." " 돈이 떨어져서 곧바로 돌아왔어." " 거짓말 마. 다에꼬를 만나고 싶어서겠지?" " 그것도 있고 ....... 자, 들어와." " 괜찮아?" " 괜찮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아끼꼬가 문으로 해서 들어왔다. 남쪽마루지만 아직 아침 햇살이 비치지 않는다. 그 마루에 나란히 앉았다. " 이렇게 일찍 어디 가지?" " 너에게." 아끼꼬는 그의 무릎에 손을 올려 놓고 쓰다듬는다. " 거짓말이 아냐. 널 만나러 왔어." " 허." " 새벽에 꿈을 꾸었어." " 어떤 꿈을?" " 너하고 호수에서 보트를 타고 있는 꿈을 .... 후흐흐, 처음에는 로맨틱한 꿈이었는데 도중에 괴롭고 에로틱 해졌어. 하지만 눈을 뜨고 '마사오가 돌아왔구나.'하고 생각했어. 그래서 이렇게 확인하러 온 거야." 그러면서 아끼꼬가 갑자기 손을 잡아 당긴다. " 어머, 어서 와." 모친이 나와서 말을 걸고 아끼꼬는 일어서서 공손히 인사한다. " 안녕하세요." 그 동작이나 음성이 돌변해서 완전한 어른 티를 낸다. 마사오를 대하고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르다. " 친정에 온 거야?" 모친의 그 말에 마사오는 놀란다. ' 이 여자가 결혼했나? 그렇다면 상대는 그 카고시마의 남자였나?' 모친의 말에 아끼꼬는 웃으며 말한다. " 아뇨. 그 결혼은 없던 일로 했어요." " 어머, 왜?" " 여러 가지 맞지 않는 데가 있어서요. 그래서 한 달도 안돼서 돌아왔어요." 마사오는 듣고만 있다. " 저런, 그랬었구만." " 네. 아직 호적을 옮기지 않아서 결혼식은 그냥 행사로 치기로....... 세상에서는 통하지 않겠지만, 제 마음으로는 그렇게 정리하고 있어요." " 그래. 그게 좋지.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니까." 모친이 사라진 후 마사오는 아끼꼬를 바라본다. " 놀랬는데." 아끼꼬가 웃는다. " 결혼은 금년 봄에 했었어." " 음." " 상대는 너에게 말하던 사람이 아니고 지난 가을에 선을 본 사람이었어." " 허." " 이런 얘기 재미없지?" " 아니, 자세히 듣고 싶어. 내 방으로 가." " 그 보다 10시 지나서 우리집에 와주지 않겠어? 나 혼자 있어." " 어머니는?" " 일이 있어서 나가셨어." 다시 그녀는 그의 무릎에 손을 올려 놓고 꼭 잡는다. " 걱정할 것 없어." 낮은 소리로 말한다. " 안아달라고 말하지 않을게." 그녀의 눈이 요염하게 웃고 있다. 마사오가 요구하면 거절하지는 않겠다는 눈이다. " 네 엄마도 오랫동안 못 만났어." " 만나봤자 별거야? 응, 안 오겠어?" " 가지. 하지만 오래 있을 수는 없어." " 좋아." 아끼꼬가 일어섰을 때 모친이 차를 들고 왔다. 아끼꼬는 다시 앉고 곧바로 모친은 나갔다. 진지한 말투로 마사오가 말한다. " 내게 말했던 사람은?" " 벌써 헤어졌어. 그후로는 외톨이야. 너에게도 퇴짜 맞고." " 퇴짜놓지 않았어." " 완전히 남자없이 살고 있었어. 그리고 맞선을 보고 거의 교제다운 교제도 없이 결혼했던 거야." " 너답지 않았어." " 그래. 아마 사타구니에 막대기만 달고 있으면 어떤 남자라도 좋았나 봐. 수녀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야." 목소리를 낮추고 있기는 하지만, 그녀는 대담한 표현을 하고 있었다. 마사오는 모친이 들을까봐 불안했다. " 그 얘기는 너의 집에 가서 해." " 알았어. 너 말이야." 아끼꼬가 새삼스럽게 말한다. " 응?" " 스에노 아줌마, 기억하지?" " 음." 마사오는 끄덕인다. 아끼꼬와 사귈 때 방을 빌리고 있던 집주인이다. 아끼꼬와 함께 세 사람이 논 일이 있고, 여자 냄새를 짙게 발산하고 있는 중년 부인이다. 진학 후에는 만나지 않았었다. " 너, 도쿄에서 그런 아줌마에게 귀염을 받는 일이 있지?"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는 여관 아줌마 기꾸 생각이 났다. " 두 사람 정도 있었어." " 그렇겠지. 넌 그런 얼굴을 가지고 있어. 징그러워. 중년 여자의 노리개감이 되다니 마음에 빈틈이 있어서 그래 여자에게 얕보이니까 그래." " 후회하고 있어. 하지만 난 아직 아무것도 아냐. 그런데 그 스에노 아줌마는 어떻게 하고 있어?" " 금년 봄에 내가 결혼하기 좀전에 숲속 길에서 만났었어." " 음." " 그때 길에 서서 얘기하다가 네 얘기가 나왔는데 이상할 정도로 그리워했어. 그후 행방을 감추었어." " 그 집은?" " 아무도 모르게 팔아버린 것 같아. 지금은 그 집이 헐리고 새 집이 서서 보통 살림집이 됐어." " 어디로 갔을까?" " 아무도 모르는 모양이야. 나를 만났을 때는 이미 집을 팔고 이 동네를 떠나기로 결심한 모양인데 아무 말도 없었어." " 그럼, 행복을 찾은 모양이군." " 그런데 이상한 말을 했어.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 뭐라고 말했어?" " 이 나이가 되면 상대의 간병이나 하고 돈을 받기 위해서 남자와 붙는 일이 있어. 인생은 젊어서 한 때야 하고 숙연하게 말했어." 아끼꼬가 가자, 곧 에또의 목소리가 현관에서 들렸다. " 마사오 돌아왔니?" 마사오는 자기 방에 막 들어온 참이었으나, 큰소리로 대답했다. " 오, 있어. 뜰을 돌아서 이쪽으로 와." 창으로 얼굴을 들이민 에또는 아직 술에 취해 있는지 말이 어눌하다. " 아니, 아직 취해 있어?" " 3시까지 마시고 6시에 일어나 다시 마시기 시작했어." " 더 마시겠어?" " 아니, 됐어." " 모친은 어떻게?" " 지난 연말에 돌아가셨어. 나에게 감사하며 돌아가셨어. 이봐, 난 효자야." 그 자리에서 신을 벗은 에또는 창을 넘어 방바닥에 떨어져 구른다. " 엄마의 임종을 지켜본 것은 5형제중 나 뿐이었어. 다른 4형제는 냉랭하더군. 2월인가 3월에 한번 얼굴을 내밀었을 뿐, 그 뒤는 나에게 맡겨버렸어." " 각자가 생활에 쫓기다 보니 그렇겠지." " 그렇겠지. 하지만 나로서는 불만스러웠어. 진짜 아무에 게도 알리지 않고 이웃 사람들의 도움만으로 장례를 치를까 하는 생각도 했어." " 그런 짓을 하면 못써." " 흥." 마사오를 힐끗 보고, 그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든다. " 너도 상식적인 인간이 됐구나." " 별 수 없지. 그런데 지금은 뭘 하고 있지?" " 매일 밤 마시는 거지." " 일은?" " 이제와서 취직이 될게 뭐야." " 이제 나에게는 패기도 없어. 도쿄에 가서 일하며 고생 하기는 싫어." " 가쓰라끼 마꼬또는 어떻게 하고 있지?" " 아주 품행이 방정하고 우수한 직장 여성이야. 난 만나는 것도 사양하고 있어. 나같은 사람 만나면 그녀에게 상처를 주는 거야." " 너, 그렇게 평판이 나빠?" " 그건 그래. 주정뱅이 실업자니까" " 가쓰라끼 마꼬또와 좋게 지내고 싶진 않아?" " 아니, 난 나 지신을 알아. 엄마 탓이 아냐. 난 본래 이런 놈이야." " 술 마실 돈은 어디서 나니?" " 엄마가 저축해 둔 돈이지. 하지만 남은 것도 별로없어. 쓰기만 하고 있으니 별 수 없지." " 늦기 전에 취직해." " 아냐. 형들에게서 우려내야지. 난 일 안해. 부모에게 얹혀사는 넌 날 비난할 자격없어." 마사오는 입을 다물었다. 에또도 말을 멈추었다. 언뜻 보니 에또는 그새 졸고 있었다. 지그시 감고 있는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방을 나온 마사오는 빨래를 하고 있는 모친 옆으로 갔다. " 아침부터 술이라니....." 뒤돌아 본 모친이 나무라듯이 말하자 마사오도 끄덕이며 말한다. " 잠이 들었어요." " 어젯밤에도 취해 있던데, 계속 마시고 있었단 말아냐." " 그런가봐요. 저 녀석, 고교시절엔 착실히 공부하는 축이었어요. 졸업 전에 모친이 뇌출혈로 쓰러져서 대학에 응시도 하지 못했어요. 모친의 간병을 하는것은 저녀석 뿐이었으니까요. 그 모친이 작년 연말에 돌아가셨대요. 이제 와서 진학도 취직도 할 수 없나봐요. 그 울화를 술로 달래고 있나봐요." " 술로 달래도 별 수 없는데 말이다." " 형들이 나빠요. 자기들의 생활 때문에 저 녁석을 돌아 보지 않나봐요." " 눈을 뜨면 또 마시겠지?" " 안 마실 거예요. 눈을 뜨면 국수나 먹여주세요. 전 좀 나가야 돼요." " 저대로 두고 나가는 거야?" " 네, 저 꼴로는 낮까지 잘 거예요. 그리고 난 없는것이 좋아요. 내가 있으면 또 술을 마시고 싶어할 거예요." 마사오가 생각한 대로 에또는 10시가 지나서도 눈을 뜨지 않았다. 그래서 마사오는 자전거를 타고 아끼꼬의 집으로 갔다. 오랜간만에 보는 아끼꼬의 집 담장 기와가 많이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문은 새로 달은 것 같았다. 아끼꼬는 웃으며 그를 맞았다. " 우리 집에 오는 거 2년만이지?" " 음." " 자, 올라와." 안내된 곳은 아끼꼬의 공부방이었다. 선풍기가 돌고 있어 그 바람에 잡지책장이 날리고 있었다. 아끼꼬는 사이다를 들고 들어와 책상 위에 놓고 그의 곁으로 와서 붙어 앉는다. 그리고 두 팔을 그의 어깨에 올려놓는다. 그의 눈을 들여다 보고 얼굴을 댄다. 마사오는 얼굴을 돌리고 거품이 일고 있는 사이다 컵을 들었다. " 지금 에또가 우리 집에서 자고 있어." " 그 사람과 계속 사귀고 있었어?" " 아니, 그 녀석도 2년 만이야. 그날 밤 이후 말이야. 갑자기 찾아왔는데 취해 있더군." " 그 사람 알코올 중독이야. 그런 자와 사귀면 안돼." " 아냐. 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 그녀석을 도쿄로 데리고 가면 어떨까? 도쿄에 가면 일을 해야 자고 먹을 수 있어. 집이 있는 곳이니까 저 모양이야." " 조심해. 넌 남의 뒷바라지나 하는 타입이 아냐. 그보다 키스 안해줘?" 다시 얼굴이 다가온다. 눈이 빛나고 있다. 대뜸 덤벼들지 않고 마사오의 눈치를 살피듯 조금씩 다가온다. 과거의 아끼꼬에게는 없던 조심성이 엿보인다. ' 아, 이 여자는 이혼한 몸이라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키스를 거부하기가 가혹했다. " 좋아, 하지." 그렇게 말하고 그는 팔로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는다. 자연스럽게 입술과 입술이 마주쳤지만, 그녀는 눈을 감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