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S자 녹지축을 따라 계양산부터 천마산, 원적산, 함봉산, 만월산, 거마산, 소래산, 상아산, 관모산, 장수천, 오봉산, 승기천, 문학산, 청량산, 봉재산을 거쳐 송도국제도시 솔찬공원까지 15개 산과, 2개 하천, 8개 공원 총 60㎞ 10개 노선을 종주하는 길이다.
남동구 간석3동 중심지에 솟아있는 높이 187.1m의 만월산(滿月山)은 원래 이름이 주안산(朱雁山)이다. 인천의 대표적 땅이름 가운데 하나인 주안(朱安)이 바로 이 산 이름에서 나온 것으로, 그 원래 위치도 지금의 주안이 아닌 이곳 간석동 일대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조선 성종 때 발간된 『동국여지승람』에 보면 “인천도호부 북쪽 11리 되는 곳에 주안산(朱雁山)이 있다”고 돼 있는데 이 주안산이 바로 지금의 만월산인 것이다. 주안산은 그 뒤 주안산(朱岸山)으로 쓰이기도 해 1861년에 제작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주안산(朱岸山)으로 나타나 있으며, 이밖에도 근세에 들어서는 원통산(圓通山) 또는 선유산(仙遊山)이라 불리기도 했다.
"작은 고추가 더 맵다' 예부터 몸집이 작은 사람이 큰 사람보다 행동이 빠르고 야무지다고 하여 이런 속담까지 생겨났다고한다. 우리의 산줄기 백두대간과 9정맥을 걸으며 1915m의 지리산 천왕봉 그리고 1708m의 설악산 대청봉만 힘든 것이 아니었다. 187m 만월산부터 201m의 만수산(철마산)까지 다리의 힘은 빠지고 첫 번째 더위에 참패당하며 보세이고개로 내려섰다.
작은 고추가 매운 4코스 만월산ㆍ만수산 구간의 시작점은 백운역이다. 경인 철도 백운역에서 서쪽 동암역 사이의 고개를 열우물 고개라고 했다. 이 고개 너머 산 중턱에 벽촌이란 마을이 있었는데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혼자서 며칠간이면 우물을 팔 수 있어 몇 집 안 되는 마을 사람들이 너도나도 모두 우물을 파서 한 마을에 우물이 열 개도 넘어 열우물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대동 우물이 있어 물량이 많고 아무리 추워도 물이 따뜻하여 열이 나는 우물이라 해서 열우물이라 했다고도 한다.
인천 종주길 4코스는 데크계단길을 오르면서 시작된다.
송전탑이 서 있는 키작은 소나무가 늘어서 있는 종주길은 널다란 평지를 만나면서 올라야할 만월산과 철마산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한동안 넓은 임도를 따라 걷는다. 동암산 입구를 지나고 이어 내려선 곳이 경인로인 46번 국도에 내려선다.
46번 국도 경인로다 원통이 고개라고 부르는 이 길은 고속도로가 뚫리기 전 인천과 서울을 오가는 주 교통로였다. 이 고개의 본래 이름은 원통현으로 두 가지 유래가 전해지고 있다.
하나는 조선 건국당시 부평평야를 새 도읍지로 선정하려고 골짜기를 세어보니 당시의 풍수설에 의하면 나라의 도읍지가 되려면 적어도 산골짜기가 100개가 되어야 하는데 99골짜기뿐이라서 도읍지가 되지 못하여 원통하게 되었다 하여 원통이고개라 하였고, 다른 하나는 조선 중기에 김안노가 경인운하 공사를 할 때, 당시의 토목기술로는 이 원통의 고개의 암벽을 파내지 못해 공사를 중지했기 때문에 원통하다 하여 원통현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인천 종주길은 도로를 가로지른다.
만월산으로 오르는 길은 시작부터 만만치가 않다.
한남정맥안내도가 반갑다. 젊었을때 추억거리를 참 많이 남긴 우리의 산줄기다.
쉼터의 그늘집이 있는 봉에 오르면서 뒤돌아보는 인천 종주길 능선, 이어 아기자기한 돌길을 따라 올라선 곳이 삼각점이 있는 만월산(△187m) 정상이다. 조금 내려선 곳엔 만월정이란 팔각정이 있다.
만월산은 토질이 붉고 산의 형상이 기러기가 나는 형상이라 하여 주안산 이라고도 불렸다고 하며 동쪽에서 만월을 바라 본다 라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 만월산이다. 이 산에 전해오는 전설로는 주안산 중턱에 주안사지가 있는데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주안사 재주안산이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몇 년을 둘레길을 걷다 아기자기한 바윗길을 걷는 재미가 괜찮다.
다음 번에 걸을 문학산 줄기가 반갑다.
한차례 송전탑이 서있는 봉우리에 오른고 종주길은 예전과 같이 왼쪽으로 나있다.
부평삼거리와 구월동을 잇는 도로인 구산로에 만월산과 만수산을 잇는 연결다리다.
만월산 만수산 연결다리에서 데크계단으로 내려서면 만수산터널을 통과하는 호구포로 지하차도을 건너게 된다. 한남정맥길은 연결다리에서 왼쪽으로 능선길로 이어진다.
도롱룡마을의 환영을 받으며 들어서면서 도롱뇽 산란지를 만나게 된다.
불로약수터 쉼터다. 물은 얻을 수 없지만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성지문화사에서 발행한 1:30,000 도로지도에 광학산(201m)으로 되어 있는 세 번째 철마산을 다녀올 수 있는 능선분기점이다. 광학산, 이산을 이곳 사람들은 만수산이라고도 한다. 동쪽이 옛날 비루왕국의 비루가 넘었다는 비루고개, 서쪽은 만수동, 남쪽은 장수동, 북쪽은 일신동으로 만수산 아래 마을이 장수촌이며, 수명이 만수 한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 같다.
옛날부터 인천은 장수하는 곳이라 이름이 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헌종 원년에 인천에 100세 노인이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의 평균 연령이 40여세 였으니 보통사람의 두 배 이상을 산 것이다. 이것으로 보아 인천에는 장수하는 노인이 많은데, 특히 만수동 지역이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동명에 오래 삶을 나타내는 숫자가 들어 있다.
군부터 철조망 그리고 훈련장이 있는 능선길은 곧이어 가파른 오르막길로 예전에 깃대가 있는 봉으로 올라다가 내려서는 길이 깨어진 자갈이 불편한 종주길을 피하기 위해 우회길로 이어간다.
그리고 만나는 군부대로 오르는 예전에 비포장길이 었는데 추억거리가 있는 만남이 잠시지만 옛날을 생각하게 한다. 직진하면 부대철조망이 가로막는다. 정맥 종주시 왼쪽으로 철조망을 따라 이어갔다. 부대 안에서 젊은 장교가 출입금지구역이며 위험하니 뒤돌아가라고 종용하지만 눈 딱 감고 통과했던 기억이 있다. 예전에는 이 봉우리를 170m의 용봉산이라 했는데? 그리고 그 죄로 바쁜시간에 알바를 했었다.
4코스의 종점인 수현로의 보세이고개에 내려선다. 또 하나의 추억거리를 남긴 하루였다.
첫댓글 감사!
경인고속도로는 서울에서 직진으로 달리다가 좌로 꺽이진다. 그 좌로 꺽어지는 지점에서 출발을 했다. 종점을 내려서고 보니 만수동 고개였다. 고개를 넘어 좌측에 주공 아파트가 있었고 그곳에 처제네가 꽤 오래 살았고 그 고개길은 익숙한 곳이었다. 감사!
그렇군요. 어제 더운 가운데에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모두가 고생했지요. 그래도 길동무와 함께 걸으면 행복하답니다. 감사합니다^^*
더운날씨에 리딩하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어제 고생했지요. 가끔은 그런 날이 있답니다. 다음 길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감사합니다^^*
인근에살면서도 지명이나 유래는 무심히 지나갓는데 이렇거 알게됩니다.
늘 좋은글과 사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전에 정맥을 걸으면서 글솜씨가 없어서 조금이나마 재밋게 쓰려고 자료를 찾아 정리하다 보니 요긴하게 이번에도 이용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더운 날씨였는데.... 힘든 산행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리딩하시며 더위에 수고 하셨습니다.
이번주에 가실 문학산 청량산 봉재산은 제겐 친숙한 산이지요.
자주 오르던 동네 뒷산이였지요.
동춘동에서 청량산으로 올라 문학산 타고 문학역으로 하산하는 좋은 코스지요.
이번주도 즐겁고 멋진산행 이어가시기 바랍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한동안 둘레길만 다니다가 첫 더위에 나지막 하지만 산행을 하니 모두가 힘들게 보낸 하루였습니다.
문학산 청량산은 조금은 나아지겠지요. 감사합니다 ^^*
역시 이름 값은 하는 곳이지요. 한남정맥. 인천 종주길에선 한남정맥의 흔적을 찾는 것이 가장 커다란 즐거움이었던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광청종주에서 백운산에서 정말 커다란 지도를 보았을 때의 경이로움이란..
수고하셨습니다.... 노적봉... 그곳에 가시나요?...^^
정맥의 나지막한 산들 200m 채 않되는 산부터 300m의 산들이 정말 작은 고추처럼 맵답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겠지만 예전에 수풀이 우거져 낮은 포복을 하며 정갱이가 성할날이 없었습니다. 오죽해야 방학이란 명목으로 여름철에는 중단하곤 했지요. 문학산 구간에서 노적봉은 꼭 올라봐야 하겠지요. 오전이니까 힘있을 때 잠시 오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