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집 제3권 / 지(識)
퇴계(退溪)의 글씨를 모아 만든 작은 병풍에 쓰다. - 최립(崔岦)
이것은 퇴계 선생이 직접 쓰신 당절(唐絶 근체시 절구(絶句) 네 수(首)를 병풍으로 만든 것이다.
범지능(范至能)이 온공『溫公: 송(宋)나라 사마광(司馬光)』의 서첩(書帖)에 제(題)한 것을 보면,
“서첩을 펴들자마자 엄숙한 분위기가 감돌아 사람으로 하여금 외경심을 느끼게 하면서 삿되고 편벽된 마음을 한순간에 모두 없어지게 한다.
그러니 더더구나 선생에게서 직접 훈도(薰陶)를 받은 사람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라는 내용이 나온다. 대개 글씨는 마음의 그림이라고 일컬어진다. 따라서 마음이 그림으로 형상화된 글씨만 접하더라도, 그 사람의 됨됨이를 충분히 상상해 알 수 있다고 하겠다.
퇴계 선생의 글씨를 보면, 단정하고 장중하면서도 힘이 뻗쳐 나와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데, 간혹 초서(草書)로 쓴 경우에도, 바른 법도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선생이 평생 동안 마음을 놓치지 않고 계속 쌓아 왔던 그 공부가 어쩌면 이 글씨 속에서 하나의 자취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여겨지기까지 한다. 그러니 사람이 그 글씨를 눈으로 직접 접하게 될 때, 어찌 삿되고 편벽된 마음만 없어질 뿐이겠는가.
선생이 뒤늦게 이 편방(偏邦)에 나와 절세(絶世)의 학문을 홀로 밝히시자, 여기에 뜻을 지닌 한 시대의 인사들이 마치 봉황(鳳凰)과 경성(景星 상서로운 덕성(德星))이 이 세상에 나온 것처럼 여기면서 다투어 달려가 선생을 뵙곤 하였는데, 나만은 유독 불행하게도 이런 행운을 얻지 못하고 말았다.
선생이 조정 밖에 거하고 계실 때에는, 내가 박봉(薄俸)에 얽매여 있다 보니 제대로 찾아가 뵐 수가 없었고, 선생이 조정에 오셨을 때에는 마침 내가 어버이의 상중(喪中)에 있는 몸이었다. 그러다가 내가 다시 서쪽 바닷가에서 벼슬살이를 하고 있던 중에, 태산(太山)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으니, 이제 다시는 직접 훈도를 받을 기회가 영영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러고 보면 이런 상황에서 선생이 쓰신 글씨를 얻어, 마치 선생의 마음을 그림으로 그려 놓은 것처럼 여기면서 뵐 수가 있게 되었으니, 이 어찌 불행한 가운데에서도 하나의 행운을 얻은 것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의 친구인 전극례(田克禮)가 모두 여덟 장으로 되어 있는 선생의 이 서예 작품을 손에 쥐고서 내가 맡아 다스리고 있는 고을로 찾아와서는 장인(匠人)을 시켜 작은 병풍으로 만들어 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하였다. 이에 내가 위에서 말했던 심정을 그에게 이야기하였더니, 전생이 말하기를, “선생의 글씨를 얻으면 됐지 양이 많거나 적은 것은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러니 이것을 둘이서 똑같이 나눠 가지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그래서 내가 너무나 기쁜 나머지 그가 말한 대로 따른 것이었다.
-이때 나는 옹진(甕津)의 수령으로 있었다.
[註解]
[주01] 퇴계(退溪) : 이황(李滉)의 호이다.
[주02] 글씨는 …… 일컬어진다 : 한(漢)나라 양웅(揚雄)의 《법언(法言)》 문신(問神)에 “말은 마음의 소리요, 글씨는 마음의 그림이다. 따라
서 소리와 그림으로 나타난 것만 보아도, 그 사람이 군자인지 소인인지를 알 수가 있다.[言心聲也 書心畫也 聲畫形 君子小人矣]”는
말이 나온다.
[주03] 마음을 …… 공부 : 《맹자(孟子)》 고자 상(告子上)에 “학문의 길은 다른 것이 없다. 놓쳐 버린 그 마음을 다시 찾아오는 것일 뿐이다.
[學文之道 無他 求其放心而已矣]”라는 말이 나온다.
[주04] 태산(太山)이 …… 되었으니 : 부음(訃音)을 듣게 되었다는 말이다. 공자(孔子)가 “태산이 무너지는구나. 대들보가 쓰러지는구나. 철
인이 시드는구나.[太山其頹乎 梁木其壞乎 哲人其萎乎]”라고 노래를 부른 뒤 일 주일 만에 죽었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禮記 檀弓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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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文]
退溪書小屛識 - 최립(崔岦)
右退溪先生書唐絶四首。范至能題溫公帖曰。開卷儼然。使人加敬。邪僻之心都盡。而況於親炙之者乎。蓋書。心畫也。心畫所形。誠足想見其人。況先生書。端重遒緊。雖或作草而不離正。平生心不放工夫。未必不蹟於斯焉。人之接目。何啻邪僻之去也。先生晩出偏方。獨明絶學。一時有志之士。如鳳凰景星以爭覩之。而岦獨不幸焉。先生居外。則縛寸廩不能就。先生來朝。則在草土中矣。旣又吏于西海。而太山云頹。已焉無復親炙之望。則其得先生之書而彷彿乎心畫。豈非不幸中之一幸也歟。友生田生克禮過敝邑。手持是紙凡八。囑余付工爲小屛。余以向之意告之。田生曰。得先生書不在多少。分而兩有之可矣。余喜甚如其言。時令甕津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