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의 사자성어(52)>
결초보은(結草報恩)
맺을 결(結), 풀 초(草), 결초라 함은 ‘풀을 묶는다’라는 뜻이고, 갚을 보(報),은혜 은(恩) 보은이라 함은 ‘은혜를 갚는다’라는 의미이다 .
따라서 ‘결초보은’ 이라 함은 “풀을 묶어서 은혜를 갚는다“라는 말이다. 은혜를 입은 사람이 ”결초보은 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을 의미한다.
결초보은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오는 말이다.
2,500여년전 중국 춘추시대 진(晉)나라 위무자(魏武子)와 그의 아들 위과(魏顆), 그리고 위과의 서모(庶母)에 관련된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위무자에게는 사랑하는 첩이 있었는데, 그녀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어느 날 위무자가 병에 걸려 신음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본처의 아들인 과(顆)를 불러서 이렇게 말했다.
“나의 사랑하는 첩을 반드시 개가(改嫁)하게 하도록 하여라”
병이 좀 더 악화되어 위독한 지경에 이르자,
위무자는 아들인 과에게 다시 이렇게 당부했다.
“나의 사랑하는 첩을 반드시 순사(殉死)하게 하라. 나의 뒤를 따라 죽게 하라.”
위무자가 죽자, 아들인 과는 서모를 개가(改嫁) 시켜야할 지 또는 순사(殉死)시켜야 할 지, 망설였다. 그러다가 서모를 개가시키로 결정한 후,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병환이 위독해지면, 마음이 혼란해지기 마련이니, 아버지가 비교적 맑은 정신으로 하신 첫번째 말씀을 따라야한다.” 고 말하면서 서모를 개가하게 했다.
그 후, 진(秦)나라의 환공(桓公)이 진(晉)을 공격하여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에 출전한 위과는 진(秦)나라의 이름난 맹장 두회라는 장수와 결전을 벌이던 중 위태롭게 되었다. 이때 한 노인이 나타나 풀을 엮어 적장 두회가 그 엮은 풀에 넘어지는 바람에 위과가 적장을 사로잡게 되었다
그날 밤 위과는 그 노인을 꿈에서 보았다.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 나는 서모의 애비되는 사람이오. 그대의 아버지의 유언이 두가지 였는데, 그대가 올바른 유언에 따라 내 딸의 목숨을 구해 개가하게 해 주었소. 그리하여 나는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풀을 엮어 적장을 사로잡게 도와 주었던 것이오.” 여기서 결초보은은 “죽어 혼령이 되어도 은혜를 잊지 않고 갚는다”는 뜻으로 쓰여지게 된 것이다.
사람은 한 세상 살아가면서 은혜를 베풀기도 하고, 또 은혜를 입으면서 살아가게 마련이다.
채근담에 이러한 말이 있다.
“내가 남에게 베푼 것은 마음에 새겨 두지 말고, 남이 나에게 베푼 은혜는 잊지 말아야 한다.”
(我有功於人不可念,人有恩於我不可忘:아유공어인불가념,인유은어아불가 망.)
명심보감에도 비슷한 구절이 나온다.
“은혜를 베풀거든 갚음을 구하지 말고, 남에게 주었거든 후회를 말아야한다.” (施恩勿求報 與人勿追悔: 시은물구보 여인물추회)
불가에서는 베푼 것 자체를 잊어버리는 것을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라고 한다. 무주상보시는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생각함이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푸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일단 큰 마음 먹고 남에게 재물을 주었으면 나중에 이를 후회하거나 애달프게 생각하지 말아야한다. 재물이 인연따라 옮긴 것으로 생각하면 족할 것이다.
사람이 받는 은혜 중 가장 큰 은혜는 부모의 은혜일 것이다. 부모의 은혜는 순수하면서도 감동적이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 3위·4위전의 경기가 끝난 후, 3위를 한 크로아티아의 시상식장에 아빠를 찾아 달려오는 앙증스러운 여자 어린이가 있었다. 크로아티아의 주장 선수인 ‘모드리치’가 여자 어린이의 아빠였다. ‘모드리치’가 달려가 어린딸을 번쩍 들어올려 가슴에 안은 채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고 아름다웠다. 자랑스러운 아빠의 품에 안긴 여자어린이는 평생을 두고 이 장면을 잊지 못할 것이다. 눈보라치는 들판에서 얼어 죽을 상황에 처하자, 엄마가 품에 안은 아기에게 자기가 입었던 옷을 벗어 감싸주고 자기는 동사(凍死)하는 모성애는 지고지순(至高至純)한 것이다. 부모가 자식에 대한 사랑은 이처럼 순수하고도 감동적인 것이다.
그래서 소학에 “부모님의 은혜는 높기는 하늘과 같고, 은덕이 두텁기는 땅처럼 두텁다 (恩高如天 德厚似地: 은고여천 덕후사지)“고 했다.
바닷물이 마르고 강물이 흐름을 멈추어도,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님의 마음은 절대로 변하거나 줄지는 않는다.
이를 조선시대 송강 정철 선생은 다음과 같이 시조로 읊었다.
아버님 나를 낳으시고, 어머님이 나를 기르시니,
두 분이 아니었으면 이 몸이 살 수 있었을까?
하늘같은 은혜를 어디에다 갚을가?
효도는 부모님 살아계실 때 하라는 송강 정철 선생의 시조도 유명하다.
어버이 살아계실 때 섬김을 다 하여라
돌아가신 뒤에는 애닯다 어찌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 뿐인가 하노라.
춘추시대의 노래자(老萊子) 라는 사람은 나이가 일흔 살이 돠어도, 부모앞에 색동옷을 입고 재롱을 피워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었다고 한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방법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그 시절처럼 천진난만(天眞爛漫)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부모 앞에서는 순수하고 꾸밈이 없어야 부모 마음이 편안한 법이다. 외국 물 먹었다고 젊은 부부가 노인 있는 데에서 저희들끼리 ‘허니(honey), 달링(darling)’하면서 혀꼬부라진 소리를 남발하는 것도 도리가 아닐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시골에 사는 아버지가 아들이 노후를 편안히 모시겠다고 성화여서 아들이 시키는 대로 서울에 올라와 아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 처음 한 두번은 아버지 방을 찾아보던 아들과 며느리가 자기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한 주에 한 두번 정도밖에 얼굴을 대할 기회가 없게 되었다. 무슨 일이 그렇게도 바쁜지 출근할 때마다 허둥대고, 돌아와서는 피곤하다는 핑계로 자기들 방에 틀어박혀 얼굴 한번 내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아들이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와 보니, 늙은 아버지가 개 목거리를 하고 있었다. 아들이 깜짝 놀라 “아버지, 이게 무슨 짓입니까?”하고 물으니, 아버지가 대답하기를 “개는 하루에 두 번씩이라도 너희들 얼굴을 보는데, 나는 너희들 얼굴보기가 여간 힘드니, 오늘부터 내 신세와 개 신세를 바꾸기로 했다.” 출퇴근 할 때 개는 꼭 머리를 쓰다듬고 가면서도, 아버지는 거들떠 보지도 얺는 아들을 원망한 아버지의 마음을 풍자(諷刺)한 이야기이다.
노인에게는 김치와 된장이 그렇게 맛있는데도, 빵에 버터나 발라먹는 것도 식성에 맞질 않았다. 결국 몇달 못가서 다시 시골집에 내려오고 말았다. 막혔던 숨통이 터지는 기분이라는 것이다. 원래 송충이는 솔잎 먹고 사는데. 갈잎 먹으라면 고통스러운 법이다
옛날 대가족 시대에는 “저녁에는 반드시 부모의 자리를 살펴드렸다. 이를 혼필정욕 (昏必定褥)이라고 한다. 그리고 새벽에는 반드시 밤 사이의 안부를 여쭈어보았다. 이를 신필성후(晨必省候)라고 한다.
오늘날 처럼 복잡하고 바쁜 세상에서는 이러한 말이 통용되기는 어렵다. 더욱이 핵가족시대에 이 말이 지켜지기는 힘들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부모의 은공이 태산 같음은 동서고금(東西古今)에 변함이 없다, 자식으로서는 모름지기 결초보은하여야 할 것이다.(2022.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