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몽상가인가 / 신형호
아침 햇살이 건강하다. 창을 뚫고 들어온 빛의 결이 전날과는 비교할 수가 없이 곱다. 어제는 볕이 났다가 개기를 늦게까지 오락가락했다. 투명한 밝음이 실내에 가득 차니 마음도 환하다.
하루가 시작되면 습관적으로 출근한 지가 삼십 년이 넘는다. 평범한 직장인의 일상과 별 다름이 없다. 알람 소리에 맞춰 일어나면 선식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8시 전후에 직장에 도착한다. 커피 한 잔을 책상 위에 놓고 컴퓨터 부팅으로 하루를 연다. 교실에 들어가 아이들과 아침청소를 하다 보면 금세 시간이 흐른다. 독서시간이지만 모두가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는다. 교무실에 들어와 오늘 수업할 진도도 점검하고 동영상과 파워포인트도 챙긴다. 독서와 도서관에 관련된 보고공문이 없는가도 살펴본다. 동료와의 대화는 별로 없고 눈인사만 살짝 한다. 정보사회에 들어온 후의 직장 분위기이다. 구수한 사람 냄새가 사라졌다고 할까. 전날의 재미있었던 사건도 얘기하고 밝게 웃으며 시작하던 예전과는 너무 달라졌다. 이따금 아득한 무인도에 혼자 있는 생각도 들었다. 씁쓸한 마음에 창밖의 묵은 히말라야시다만 쳐다보았다.
북향으로 지은 교무실은 답답하다.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2층 건물로 대구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곳이다. 문화재에서 근무한다는 자부심도 있지만, 남쪽엔 4층 건물이 우뚝 서 있어 여름엔 덥고 겨울에는 늘 춥다. 봄날의 일기 예보에 맞춰 옷을 입고 출근을 하지만 종일 몸 상태가 좋지 않다. 난방기를 켜서 조절할 수도 있지만, 물자절약을 강조하는 관리자는 늘 18도를 유지하라고 볼 때마다 난방기를 끄고 나간다. 차라리 교실 안이 아이들 체온으로 더 따뜻하다. 왜 사람마다 체질이 다름을 인정하지 못할까? 다혈질에 강건한 관리자 본인 위주로 판단해 버리니... 직원들의 쓴소리가 툭툭 튀지만 다른 방법이 없으니 어쩌랴!
봄이 머리를 쑥 내미는가 싶더니 어느새 마지막 꼬리만 살랑거리고 있다. 도심 속의 산소탱크인 학교 정원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소이다. 다른 곳에선 좀처럼 찾을 수 없는 매력을 지녔다. 철 맞추어 꽃 피고 지는 것으로 세월의 흐름과 그리움의 빛깔도 챙겨 준다. 올봄에도 산수유와 매화가 일등으로 꽃망울을 맺었다. 누가 먼저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경쟁하듯 꽃을 피운다. 여덟 그루에서 핀 은은한 매화와 산수유 여섯 그루의 노란 꽃들이 팝콘 터뜨리듯 펑펑 터졌다. 이전에는 수줍게 고개 숙인 할미꽃도 있었으나 올해는 많이 보이지 않는다. 줄지어 양지의 진달래가 수줍은 듯 눈 붉히고, 50년 넘은 목련 한그루가 희디흰 꽃망울을 활짝 펼치며 봄을 노래한다. 참, 언제 눈을 떴는지 노란 개나리들도 담장 아래 길게 늘어서서 손을 흔들고 있었지. 정원은 온통 꽃 잔치로 분주하다. 수업이 비는 시간이면 혼자 정원에서 어슬렁거리는 것이 망중한의 즐거움이다.
이 정원에서 작년 봄에 작은 일이 있었다. 행정실의 K 직원이 구부리고 앉아 무엇인가를 열심히 심고 있었다. "뭘 하느냐?"고 물었다. "여기 할미꽃을 새로 심고 있어요." "아니, 그곳은 원래 할미꽃이 십여 그루 있던 곳 아니냐?"라고 물으니, "지난가을 정원 잡초를 뽑은 일이 있었지요. 그때 담당 직원이 그곳에는 할미꽃이 있었다는 것을 깜박 잊고 일하는 아주머니들에게 잡풀을 모두 뽑으라고 지시를 해서 다 없어졌어요."라고 한다. 할미꽃은 봄에 잠깐 피고 나면 일 년 내내 큰 흔적이 없다. 가을에는 여느 잡초와 크게 구별되지가 않는다. 그래서 다른 풀들과 함께 뽑혀 나간 모양이다. 해마다 봄에 할미꽃이 소복이 핀 것을 예쁘게 봐 왔었는데, 그런 일이 있었구나 생각하니 한편으론 헛웃음이 나오고 안타까움도 들었다. 무심코 한 일이라지만 전해주는 울림은 만만치가 않았다. 내게도 이런 일이 없지 않았을까. 내 일처럼 자신을 돌아보게 한 사건이었다. 이번에는 모종을 심은 주변에 노란 노끈 두 겹으로 울타리를 쳐 놓고 '할미꽃 단지'라는 팻말을 만들어 표를 해 놓았다.
정원은 온통 연둣빛 천국이다. 팔각정 아래 벤치에 앉아 봄에 잠긴다. 초록의 매력은 말로 표현하기조차 두렵다. 눈이 맑아지고 기분도 무지개처럼 핀다. 며칠 전 꽃 진자리마다 새잎이 파릇파릇하다. 어린아이의 마음이 이런 색일까. 정원 벤치에 앉아 새잎을 바라보면 온몸이 파랗게 물들어 간다. 길 잃은 봄이 햇빛에 취해 휘청거릴 때 여름은 재빨리 틈새로 들이닥칠 기세이다. 연둣빛으로 물을 머금은 잎들은 신입생들처럼 보드랍고 깨끗하다. 바라볼수록 눈이 시원해지고 마음은 차분해진다. 나무마다 콸콸 물 길어 올리는 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새봄, 새잎, 새마음, 신입생…. 새로운 것들은 다 저렇게 아름답고 탱글탱글하다. 문득, 내 삶의 가지에 달린 잎을 돌아본다. 오래되어 칙칙하고 진한 녹색이다. 그들이 부럽고 아쉽다. 새로 꽃피고 자라고 잎 지는 일이 당연한 자연현상이지만 돌아보니 내 삶이 안타깝기만 하다.
정원 옆 미술실에서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온다. 재잘대며 웃음 띤 얼굴이 꽃보다 아름답다. “안녕하세요.” 미소 지으며 지나가는 그들에게서 밝은 미래가 보인다. 길게 누운 계단에 아치를 이룬 느티나무 어린 새잎들이 바람에 일렁인다. 초록 나라의 아침은 하늘도 사람도 파란 물감을 덮고 있다. 맑은 사유가 투명한 숲에 걸려있다. 내게 주어진 남은 삶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오늘만 같으면 하는 바람은 큰 욕심일까.
연두 잎과 새 생명의 색깔에 취해 잠시 눈을 감았다. ‘찌익 찌익 찌-이-익’ 직박구리들의 노래가 영혼을 맑게 흔든다. 모든 것이 꿈결처럼 아늑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은 편안해지고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순간 '딩- 동- 뎅' 수업 시작 벨 소리에 화들짝 놀란 의식이 먼저 교실로 달려간다. (2014.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