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무술과 전통무술
몇 년 전 검도 계에서 인지도가 있는 협회장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지역적으로 시간적으로 애로사항이 있어 자주 만날 수가 없지만 그래도 예전에는 자주 만나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한번은 호프집에서 둘이 맥주를 마시다가 검도협회 회장님께서 말을 꺼냈습니다.
“요새 브라질유술, 극진가라데, 크라브마가와 같은 실전성을 표방하는 무술들이 인터넷에 소개되고 있는데 사실 실전성하면 검도보다 더한 무술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말에 의아한 생각이 들어 물었습니다.
“검도가 어째서 실전무술이란 말씀입니까?”
“어째서라뇨? 발차기고 그래플링이고 복싱이고 간에 칼 한 자루면 다 죽는 건데 그럼 어디 상대가 되겠습니까?”
내가 한참을 소리 내어 웃자 그분이 왜 웃냐고 반문합니다.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시비가 붙거나 신체에 위험이 닥치면 진검으로 상대의 목을 친다는 말씀이세요? 칼이라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무기이기 때문에 오히려 실전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상대가 자신에게 신체적 위협을 가한다고 해도 일단 검을 휘두르면 그냥 두 토막 나는 것 인데 그건 실전이 아니라 살인 아닙니까?”
그분은 살며시 미소를 짓고는 맥주 한 컵을 천천히 마신 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아직 강회장이 나의 실력을 잘 몰라서 그러시는가 본데 이름 꽤나 있고 아무리 오래 검도를 수련했다는 사람도 나와 대련을 해서 상대가 이겨본 적이 없어요.”
그의 말에 나는 회장님의 검도실력이야 충분히 알고 있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을 해주었습니다. 그분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습니다.
“내가 작대기나 몽둥이를 든 상태에서 누구든 길거리에서 시비가 붙어 나를 향해 공격한다면 한 놈이 아니라 열 놈도 다 죽는 겁니다.”
이야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고 그분은 다시 검도의 실전성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회장님은 만약을 위하여 작대기나 몽둥이를 협회에 출근할 때나, 가족과 함께 공원으로 놀러갈 때나 영화를 보러갈 때 언제든지 허리에 차고 다니시나요? 지금도 맥주 집에 올 때 작대기 안가지고 오셨는데 어떡하나요? 위험이란 항상 불시에 일어나는 것이지 회장님이 집에 가서 몽둥이 가져올 때 까지 시간적 여유를 두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요..”
혹시 내가 너무 따지는 놈이 되는 것 같아 조심스럽게 그분의 눈치를 살펴야 했습니다. 그러고는 하던 말을 계속했습니다.
“꼭 실전성만을 말하자면 그다지 검도의 고수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굳이 검도를 수십 년 동안 안한 일반사람이라도 야구망망이와 같은 몽둥이를 들면 누구든 대여섯명은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내가 중얼거리듯 읊조린 말에 우리는 서로 얼굴을 보며 눈만 껌뻑이다가 박장대소를 하고 웃었습니다.
술자리에서 웃자고 한 농담의 말들이이지만 어째든 우리가 낸 결론은 우스꽝스럽게도“그렇다면 소지하기 간편한 삼단봉을 지참하면 되지 뭐...”였습니다.
요사이 외국에서 유입되는 무술은 대부분 실전성이라는 슬로건 내세우며 홍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국의 전통무술들도 실전적인 면을 강조하게 되었는데 심지어는 택견이나 태극권도 실전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외국의 비디오에서는 실전 아이키도라는 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여 발차기와 그래플링을 하는 격투아이키도를 하기도 합니다. 이제는 실전이라는 말이 하나의 유행처럼 되어버렸고 실전성이 결여된 무술은 무술도 아니라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잘못하다가는 국궁과 같은 활쏘기나 사격과 같은 것들도 실전무술이라는 말이 나올까 겁이 납니다. 실전이라는 말을 강조하는 것은 이 무술이 현대의 무술이라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어떠한 무술이 탄생되기까지는 시대적,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인 문화가 충분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50년 전의 대가족시대에서 햇가족 시대로 넘어오면서 사회는 물질만능주위로 바뀌게 됩니다.
현대사회는 갈수록 엽기적인 행태의 범죄와 잔인한 폭력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만약 50년전에 만들어진 무술과 1년 전에 만들어진 무술의 프로그램을 비교한다면 49년의 시대적 차이의 인식으로 인하여 많은 차이점을 나타낼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1,500년 전 그러니까 서기 527년에 탄생된 중국의 소림무술을 여러분들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보리달마의 시조로 시작된 산중무술인 소림권법은 깊은 산속에서 종족을 보존하고 삶을 영위해나가는 곰, 호랑이, 뱀, 독수리, 원숭이등 야생동물들의 몸동작의 원리를 바탕으로 탄생되었습니다.
소림사의 스님들은 면벽 좌선행을 많이 했는데 이러다보니 심신이 허약해지고 참선하는데 어려움이 있어 몸을 단련하는 역근행(易筋行)을 수련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소림무술은 스님의 수행의 필요성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곤 이것이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소림무술을 21세기에 와서 실전무술이라고 강조한다면 이치적으로 원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세계적으로 완전한 웃음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세계인들이 소림무술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실전무술이라서가 아닐 것입니다. 역사와 전통을 잘 지키며 보존해나가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수십 년 또는 수백 년을 내려오며 대대로 이어져 오는 무술은 한국의 문화를 만들어 가는 전통무예입니다.
이것은 당연히 원형을 잘 보전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줄 한국의 유산인 것입니다. 이것에 실전무술이라는 이름을 붙여 택견이나 씨름같은 전통놀이나 무예에 사용한다면 한국무술자체를 스스로 폄하시키는 결과가 됩니다.
전통무술은 전통무술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는 것이고 현대무술은 현대무술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설사, 검도가 실전무술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한국의 검도를 수련하며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첫댓글 강준협회장님의 이야기처럼 자신의 무도에 대한 철학과 초심이 없다면 무도에서 무용으로 변질된 확률이 높아지는게 아닐까란 걱정이 듭니다. 땀흘려서 수련을 하면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부족한 점을 채워나가는 과정 속에서 자신감과 자부심 그리고 성취감을 느끼기에 다른 이들보다 한층 더 성숙해지고 겸손함을 배우게 되기에 무도가 더 멋져 보이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한 우물만을 파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여기저기에 다른 우물을 파고자 뛰어다니는 사람보다는 자신의 우물에 자부심을 가지고 그 우물 맛을 당당하게 다른 이들에게 맛보여줄 수 있는 그런 무도인이 되고자 합니다.좋은글 잘읽었습니다. 호신!!
택견 관장으로서 원형을 보존해야 할 중요무형문화재로서의 택견을 전수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함께 무술로서 택견을 많이 생각합니다. 그래서 택견의 부족한 부분(주먹에 의한 타격기+와술)을 타무술에서 보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솔직히 우려가 되는 것은 자칫 택견의 본질을 흐리는 것은 아닌지...그리고 건전한 비판은 두렵지 않으나 "너 그게 택견이야?"라며 이른바 사이비로 오해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통이라 하는 것은 본래의 것을 지키고 그 시대에 흐름에 따라 좋은 것은 취하고 부족한 것은 보완해 나가며 발전해 나가는 것이라 생각되기에 계속 노력해 볼까 합니다...
김수부 관장님의 말씀 너무나도 가슴에 와 닿는 이야기입니다. 사이비로 보는 사람은 아마도 자신의 무도 철학에서 벗어났거나 관장님의 택견에 대한 사랑을 따라가지 못해서 오해를 하시는게 아닐까란 생각이 듭니다. 저 역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서 수련 프로그램에 보조수련으로써 낙법, 관절기, 무기술을 접목시켜서 지도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부족한 것을 채우고자 노력하지 않는 것이 잘못이 아닐까란 생각이 듭니다. 뿌리가 흔들리는 나무는 오래 생명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관장님의 택견 사랑으로 모든 이들의 부러움을 받는 택견으로 거듭나시길 마음으로 전합니다.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