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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댁(문양공)역사 해산공파 (수은공파 포함) 및 창곡공파 (호암공파/단봉공파 포함) 의 할아버지되는 연안부사 휘 희백 선조님을 장인 어른되는 야천 박소 선생과 함께 생각하다.
이주원 (周遠) 추천 0 조회 154 19.11.11 21:48 댓글 22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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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9.11.11 22:05

    첫댓글 다음 사이트에서 <장달수의 한국학 카페>를 운영하시는 인동인 장달수 선생님께 감사의 말을 또 남기니, 장 선생님이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암튼 우리 선조님들에 대한 기록들을 본인 카페에 많이 올리셔서, 보학/역사/인물 공부하는데에 큰 도움이 된다. 참고로, 장달수 선생님 선조님들과 소호문중과는 선대에 혼맥/학맥으로 얽혀있는 가까운 사이임.

  • 19.11.12 11:27

    역사나 보학을 공부하신분들은 정말 대단 하세요^^
    주원일가도 포함이요^^ㅎㅎㅎ

  • 작성자 19.11.12 12:21

    @유정(구) 저는 뭐 솔직히 그저 그런것 같아요. 언제부턴가는 보학공부에 큰 진전도 없고, 사실 옛날에 좀 익혀서 알던 얄팍한 지식을 재탕-삼탕하는 식이랄까요.

  • 작성자 19.11.12 02:26

    우리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보통 남자들 4촌형제를 카페의 회원들께 간단히 소개하자면, 치원 형님은 현 워싱톤 디시 지역 메릴랜드 주 사랑의 침례교회 담목으로, 메릴랜드 지역 쉐마교육원 학장직을 역임하고 있고, 워싱톤 지역 신대원에 강사로 자주 나가신다. 승원 형님은 서울지역의 중요 중견기업에서 오랜 세월 엔지니어로 성실하게 재직하고 있고, 필자는 프렌차이즈 사업을 거쳐서 미국소재 법인회사의 구매부서 바이어/나중 부장직 승격 및 패밀리 비즈니스 VP (부사장) 경력 등을 지나 현재 신대원에 만학도로 재학중이며, 막내 석원 아우님은 한국의 굴지 모 대기업에서 오랜 세월 몸 담으며 모범사원으로 여태 열심히 살고 있다.

  • 작성자 19.11.12 06:19

    명종실록을 보면 휘 희백 할아버지에 관한 짧막한 언급이 하나 있는데, 그리 긍정적으로만은 보여지진 않는 대목이다. (어느 정도) 사실성도 있을 수 있으나, 한 편으론 당시의 정치상황을 잘 고려해서 읽어야 할 것이니, 16세기 중엽에도 당색에 찌든 조정내에서 반대파 인사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깎아내림이 벌어 지고 있던 터였다: http://sillok.history.go.kr/id/kma_10702014_002

  • 작성자 19.11.15 21:28

    1552년 희백 할아버지가 40세때, 문과급제후 벼슬살이 5년차에 접어들던 해에 5품 벼슬인 정언에 임명된 일을 기록한 실록의 대목: http://db.itkc.or.kr/inLink?DCI=ITKC_JT_M0_A07_02A_12A_00040_2005_007_XML

  • 작성자 19.11.15 22:22

    인물검색으로 찾아보는 이희백 할배: http://thesaurus.itkc.or.kr/search/view?dataId=2195

  • 작성자 19.11.12 06:41

    (글을 포스팅하고 테라스에 나가서 이리저리에 떨어져 뒹구는 낙엽들을 블로워로 불어서 말끔히 "뒷뜰" 정리를 했다 싶었는데...

    우리 집 테라스 뒤를 끼고 올라와 있는 두 그루 큰 나무들에 열린 빨간 먹음직한 과일을 노리는 청설모 1:)

  • 작성자 19.11.12 06:48

    (큰 덩치의 도둑넘(?) 청설모 녀석(?) 2:)

  • 19.11.12 11:25

    청솔모가 정말 크네요^^

  • 작성자 19.11.15 22:33

    @유정(구) 청설모도 문제지만 토실토실 살찐 새떼들이 부대를 이뤄서 습격해 오지요.

  • 19.11.12 11:28

    언제 한국에 한번 오시려나^^서울화수회 송년회나 총회때 시간 맞춰 한번 온가족 모임 해 보셔요.^^

  • 작성자 19.11.12 12:21

    저희 아버님 살아 생전에 서울서 사실땐 숙부님과 같이 화수회 모임등에 참석하신 걸로 아는데, 핵가족인 저희 세대는 쉽지 않군요.

  • 작성자 19.11.12 17:31

    ***알림: 옥에 티?, 위의 희백 할아버지 상세가계도에서 평도공 박은을 목은 할아버지의 "외조카"라고 하였으나, "생질"이 맞는 표현입니다. 곧 정정하도록 하지요. 양해를 구합니다.***

  • 작성자 19.11.12 22:43

    (어젯밤에 하얀 첫 눈이 살포시 내렸는데, 엄청 우량한 몸집의 새떼들이 우리 집 테라스에 습격해 나무과일 서리 테러를 저지르고 있네요 1:)

  • 작성자 19.11.12 22:43

    (나무과일 서리 테러 2:)

  • 작성자 19.11.12 22:43

    (나무과일 서리 테러 3:)

  • 작성자 20.10.03 04:02

    위에 언급된 명종실록의 기록보다 2년앞선 1550년의 또 다른 기록을 보면, 휘 희백 할아버지에 관한 기록이 한 건 더 보이는데, 이 또한 좋은 내용이 아니다; 당시 휘 희백 할배는 38세, 문과에 36세때에 급제하여 조정에서 벼슬살이한지 3년차 되던 해였다. 벼슬은 예문관 검열로, 비록 9품의 말직이긴 하였으나, 검열되기가 쉽지 않았고, 임금님을 가까이에서 항시 뵙는다는 차원에서 임금님의 비서(실장)격인 승지들과 함께 중요한 직책이였는데, 무능력하다고 탄원이 들어간 것임...

  • 작성자 20.10.03 04:02

    암튼, 이 문제의 탄핵과 체직이 있은 후 휘 희백 할아버지는 2년후에 5품 벼슬인 정언직에 올라 있었던 것임: http://db.itkc.or.kr/m/dir/view?gubun=book&itemId=JT&dataId=ITKC_JT_M0_A05_12A_22A_00010&solrQ=query%E2%80%A0%EC%9D%B4%ED%9D%AC%EB%B0%B1$solr_sortField%E2%80%A0%EA%B7%B8%EB%A3%B9%EC%A0%95%EB%A0%AC_s

  • 작성자 20.10.03 04:04

    한 가지 지적하고 넘어갈 사실은 여기서 휘 희백 할아버지와 같이 탄핵을 받은 남궁희는 휘 희백 할아버지의 4남되는 찰방공 휘 대형, 즉 필자의 14대조의 처갓댁 어른으로, 휘 대형 찰방공 할아버지의 장인되는 남궁혜의 당숙되는 분이셨다. 즉, 부사공의 바깥사돈의 당숙. 휘 대형 할배가 전북 익산 지역 토성인 함열남궁씨 집안에 장가든 것은 이 탄핵이 있은지 10여년후에 이뤄졌었을 것으로 유추됨. 당시 휘 대형 할배 집안이나 함열남궁씨나 한양에서 벼슬살이하며 살고 있던 터였다.

  • 작성자 19.11.25 20:01

    휘 희백 부사공의 여러 뛰어난 증손자들 중에서도 아마 세상에 그 이름이 제일 많이 알려졌던, 2대 명재상 호암공파 파조 충간공 휘 기조 선조님을 기린 만사 하나: http://db.itkc.or.kr/inLink?DCI=ITKC_BT_0337A_0270_010_0260_2017_005_XML

  • 작성자 19.11.20 11:43

    반남박씨 족보(대종회) 사이트에 의하면, "반남박씨 문강공 야천 박소 가문은 문과급제자 197건명을 비롯하여  당상관 35명, 종2품 35명, 정2품 18명, 대제학 2명, 상신 6명 등을 배출 하였습니다.  이것은 1위인 안동김씨 약136명에 이어 2위의 기록이며, 3위인 달성서씨 약105명 보다 많은 숫자입니다. 이정도 되니 안동김씨 김생해 가문과 함께 반남박씨 좌의정 박세채의 高祖 문강공 야천 박소 가문은 조선조 후기 최대 벼슬 곳간이라 불릴만 합니다," 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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