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문화관 벽면에 걸린 박경리작가의 저작들이 이미지로 형상화 되어 있다)
한국문단의 거장 박경리는 경남 통영사람입니다.
산수좋고 인물많은 고장에서 자란 박경리가 원주로 온 것은 그의 굴곡된 삶이 간단치 않았가 때문입니다. 아마도 진주여고 다닐 때 까지의 그의 삶이 가장 평온한 삶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봅니다.
사연많았던 박경리가 원주에 닻을 내린 곳은 지금의 박경리문학공원이 있는 바로 그 자리랍니다.
(박경리선생이 원주에 내려와 터전을 잡았던 단구동 옛집)
박경리선생은 외동딸(김영주 토지문화관장) 하나만을 두었습니다. 진주여고 졸업 후 주변의 뜻에 따라 일찍 결혼하여 자녀를 두었으나 6.25 동란으로 인한 남편의 죽음에 이은 아들의 죽음, 부모의 이혼 등으로 가슴은 찢어질대로 찢어졌고 하나 남은 혈육인 외동딸은 4공화국 반체제지식인 김지하의 부인이었습니다. 김지하의 고향인 원주에 작가 박경리가 내려 온 이유입니다. 옥중의 남편을 뒷바라지 하는 딸과 손주를 곁에서 살피기 위해 찾은 곳이 원주인데 이 집터를 추천해 준 인사가 또한 당시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원주교구장 지학순주교였다고 합니다. 원주의 정신과 상당히 선이 맞닿아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1980년에 원주 단구동에 정착한 박경리선생은 토지 3부를 출간한 후 4부 집필을 시작하면서 가장 미안해 하던 농민들에게 조금이라도 죄를 씻는 심정으로 마당한켠에서 농사를 손수 지었습니다. 마당 한복판에 박경리선생의 동상이 있고 그 뒷편으로는 농사를 짓던 자그마한 밭뙤기가 있었는데요. 그 밭을 재현하여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박경리 선생동상앞에서 기념촬영...뒤에 밭이 보인다)
이곳에서 대하드라마 토지4~5부가 집필되었는데, 1994년 8월 15일(광복절)에 25년간의 대서사시가 탈고되었습니다. 집필기간이 25년간인데 원주에서의 작품(토지) 집필기간이 약 15년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날을 기념하여 원주에서는 광복절만 되면 각종 토지관련 문화행사를 거행하여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토지의 탄생을 축하하는데 그것은 원주가 의병 및 농업과 관련이 많은 도시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집에서 토지를 집필하시던 방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좌측 창문은 치악산, 우측 창문은 백운산을 바라보고 있다고 합니다. 모두 치악준령의 1000미터가 넘은 높은 산인데 그 높은 산에서 얻은 영감이 토지의 명성을 드높였는가 봅니다. 집필하시던 방은 소박하고 정갈한 작가의 삶 만큼이나 깔끔하게 정돈되어 방문객들을 맞아 주고 있습니다.
(토지의 집필실....좌측엔 치악산, 우측엔 백운산이 멀리 보인다)
원주에 단관택지가 조성되면서 선생의 거처도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회촌마을로 옮기게 되는데 이때 조성된 것이 지금의 박경리문학공원입니다. 택지조성사업자인 한국토지공사가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하여 선생의 기념사업을 제안하였는 바 선생께서는 그런 것은 필요없고, 후배작가들에게 조용히 생각하면서 집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달라고 하여 지금의 토지문화관이 설립되고 살던 옛집은 기념공원으로 꾸미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처음엔 원형의 박경리문학공원 건물을 지어 서적 및 각종 자료를 전시하고 관리사무소 직원들의 근무장소로 활용하였으나 전시공간의 협소 등 확장 필요성이 있어 옆의 건물을 매입하여 5층 전시관을 개장하게 되었습니다.
(박경리공원 관리사무소....2층은 작가의 기념전시장)
5층 전시관에는 작가의 저서인 토지에서부터 각종 소설, 시, 집필기구, 농사용 도구, 작가가 입던 옷 등을 망라하여 많은 자료를 전시하고 있어 가족들이 한번씩 찾아가볼만한 곳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특히 이곳에서 작가가 손수 지어 입은 옷, 호미, 안경, 손때 묻은 각종 물건들을 보면 작가의 생애가 이해가 되면서 가슴속이 찌릿해 지는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선생께서 농사 지을 때 사용했었던 도구들)
선생께서는 글솜씨 만큼이나 손재주가 뛰어나셨다는데 옷을 손수 만들어 입으셨다고 합니다. 그 수제옷이 20벌이 있는데 탄생지인 통영에 기념으로 한벌을 보내고 원주에 19벌이 있다고 합니다. 옷을 한번 구경해 보세요....상당히 세련되고 편리하게 재단되었죠?
(선생이 직접 만든 수제 옷)
전시관이 커서 이루 다 설명드리기는 어렵고 토지의 책갈피 하나만 더 소개하고 매지리 토지문화관으로 가 보겠습니다. 토지의 대표적 연인관계인 ,용과 월선,의 대사가 옷고름과 함께 전시되고 있습니다. 서로 한많은 사연을 간직한 두 연인사이의 감정을 옷고름을 보면서 음미해 보시면 두사람의 연정이 머릿속에 맴돌면서 새로운 감흥이 떠 오르지 않나요?
(용과 월선의 역설적 대화내용)
박경리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아야 하기에 우리는 흥업면 매지리로 향했습니다.
부근에 있는 토지옹심이에서 감자옹심이 한그릇을 뚝딱 해 치우고 매지리로 출발합니다.
(원주시가 확장한 5층 전시공간)
단구동에서 매지리로 가는 길은 예전보다 훨씬 편리해 졌습니다.
관설동 KT강원본부 조금 지나서 외곽도로로 들어서면 교통체증없이 바로 흥업면으로 빠질 수 있어 편리합니다. 도시기반이 착착 정비되어가는 원주의 모습이 느껴집니다. 토지문화관은 연세대 지나서 양안치재 경사로가 시작되려는 곳에서 우측으로 빠져 다시 4차선도로 밑으로들어가야 합니다.
이곳은 매지농악전수관과 서로 마주보고 있는 원주의 문화적 감성키워드 역할을 하는 동네입니다.
백운산 자락밑에 자리한 햇볕 따스한 산기슭에 자리잡은 토지문화관에서는 오늘도 많은 작가들이 작품활동에 몰두하고 있다고 합니다.
(백운산 자락아래 토지문화관)
전면에 보이는 토지문화관의 1층에 방문객들을 위한 전시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단지 문학인들의 창작공간으로만 사용하기 위해 설립한 공간이었는데 방문객이 왔다가 헛탕을 치는 일이 많아서 1층을 전시장으로 공개하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역시 박경리선생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데요. 우선 1층 정문입구에 있는 전시장부터 보기로 합니다.
(1층 입구의 전시장....커텐앞의 안경 쓴분이 해설사)
이곳에서도 작가의 저서, 집필기구, 농기구, 신변잡기, 수제품 등을 볼 수 있는데요. 그중에서 눈길을 끈 것이 선생의 그림이 새겨진 목각화였습니다. 작가의 특징이 잘 아로새겨진 그림인데요. 나뭇가지위의 새한마리와 대화를 주고 받는 듯한 모습에서 작가의 생명사상을 느껴봅니다. 박경리, 장일순, 김지하, 지학순 등의 지고지순한 생명사상이 깃들어 있어 원주가 생명사상의 발상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경리와 새의 대화가 담긴 목각화)
이곳에서 보게 된 사진속에서 박경리의 소녀시절의 꿈의 세계는 어땠을지를 음미해 봅니다. 어머니와 함께 찍었던 사진속의 소녀가 나중에 가슴앓이를 하면서 딸과 손주의 뒷바라지에 냉가슴 앓던 박경리작가가 될줄이야 누가 알았으리요.....
(어린 소녀시절에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어머니와 판박이)
박경리선생은 이곳에 살면서 자신의 작품활동보다는 후배들의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었고, 그것에서 위안과 행복을 느꼈던 모양입니다. 거처하던 한옥의 앞에 정돈된 장 항아리들이 생전의 작가선생님의 서포터즈 역할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선생이 거처하던 공간 앞의 장독대)
단구동 집을 떠나 새 보금자리로 이사온 이후 살았던 선생의 거처인데 공개를 하지 않아서 볼 수가 없었습니다. 가을에는 볼 수 있다는데 가보질 못해 아쉽습니다. 숲속에 둘러싸인 삶의 공간이 늘 푸른 생명을 잉태하고 있다가 싱그러운 생명사상을 현세에 출산해 놓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푸른 숲속에 둘러 쌓인 선생의 생전의 거처)
선생의 마지막 거처였던 토지문화관을 뒤로 하고 우리는 다시 선생의 얼이 새겨 진 곳을 찾아서 길을 떠났습니다. 토지문화관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이곳에 박경리선생의 얼이 남아 있을까?
그랬습니다. 이곳에 선생의 문학비가 있을줄이야......
선생의 문학비는 놀랍게도 경관수려한 연세대 원주캠퍼스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연세대학교 청송관 바로 옆인데요...이곳을 그렇게 자주 들락거려도 보질 못했으니....눈뜬 장님이었습니다.
(청송관옆 박경리 문학비 표지석)
그런데 아뿔싸!......
또 한번 소스라치게 놀라서 자빠질 뻔 하였으니......
아무리 보아도 비석이 없는데.......
역시 눈은 크게 떠야 하고, 세상은 한없이 넓었습니다.
이런 비석을 보셨나요?
연세대 문화예술대 청송관옆 느티나무 한그루 아래 잔디밭에 이리저리 자연스럽게 흩으러져 있는 평판석이 바로 기념비랍니다.
놀랍지 않나요?
생명사상을 부르짖어 풀한포기, 벌레 한마리에도 생의 의미를 부여하던 작가의 숭고한 생명사상을 받들어 연세대학교 교수님들께서 한푼두푼 기금을 모아모아 기념비를 만들었다는데요. 비석을 만들기 위해 돌한개의 생명도 아까워 할 작가님의 정신을 높이 기리는 뜻에서 화강석을 깨지 못하고 흙을 구워서 선생의 뜻을 승화시키자는 의미로 홍익대 안상수교수외 2명에게 의뢰를 하여 만들었다고 합니다. 정말 박경리 기념비 답지 않나요?
(연세대 청송관옆 느티나무아래 박경리기념비)
이제 박경리선생의 기념비 17개의 평판석 중 몇개만 보겠습니다.
평판 하나하나마다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요....
읽으면 문장이 됩니다.
한번 따라 읽어 볼까요?
생명은 공평하고...그 자체가 진실입니다.
초등학생 글자 가르치듯이 몇자씩 끊어서 새겨넣었습니다.
박경리선생이 이렇게 생명사상에 매달리게 된 것은 그의 인생역정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결혼 후 얼마되지 않아서 한국전쟁 때 남편이 부역자로 처벌될 뻔한 위기에 몰렸던 적이 있었고....
이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과 사별한 후 혼자서 가계를 꾸려야 했다고 합니다.
이어서 아들을 잃는 슬픔을 맛보아야 하였던 여인......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난 후 생명에 대한 애착을 느꼈음이련가....
그리고 풀 한포기
꽃 한송이일지라도.....
생명에는....
다 존재가치가 .....
있는 것입니다.
풀 한포기 꽃 한송이에게도 모두 생명을 부여하려는 고집스러움은 이렇게 자신의 신체와도 같았던 남편과 아들을 저세상으로
보낸 슬픈사연이 변화하여서 그렇게 된 것일까요?
하지만 슬픔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 남았던 외동딸 영주가 맞게 된 사위(김지하 시인)가 서슬퍼렇던 독재정권하에서 긴급조치 위반자로 몰려서 생명의 사선을
넘나드는 고통을 또 맛 보아야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고통스러움이 지독하게시리 손자에 대한 집착으로 변하고, 또한 밤낮으로 보게 되는 마당의 꽃 한송이, 풀 한포기에도 정성을 다하게 되고, 거위나 들고양이들에게까지 보시를 하는 생명사상으로 발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명사상이 문학비의 평판에 새긴 글자에 오롯이 남아서 후세에게 메시지를 전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녀의 사상이 바로 문학작품으로 승화되어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저의 짧은 소견입니다.
예술은....
생명에 접근하려는.....
행위입니다......
함축적 의미를 주는 말들이 이 문학비속에 녹아 있다고 느낍니다....
작가가 자신의 창작행위를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문학비는 박경리 선생이 연세대에 잠시 국문학 출강을 한 적이 있었던 적이 있나 봅니다.
그의 사후 교수들이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서 비석을 세우자는 의견이 집약되었고, 이를 홍익대학교 안상수외 2명의 교수가 디자인을 하여서 이렇게 깜찍한 창작물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합니다.
돌 한개라도 아까워 했을 것 같았던 박경리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화강석을 깨뜨리지 못하고, 흙을 구워서 새로운 창조물로 승화시킨 정신이 바로 박경리 선생의 생명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고 짐작을 하면서 주위를 한번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가서 문학비만 보고 오시면 후회합니다.
이글을 읽으시고 연세대를 방문하시는 분들께서는 박경리 문학비를 둘러 보시고, 이어서 청송관 안으로 들어가서 연세대 박물관도 한번 관람하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교정 앞으로 나가서 매지호수변 숲길을 한번 거닐어 보면서 매지호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광을 느껴 보시면 힐링이 충만되는 행복감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도로 건너 아래로 내려가면 아름다운 연세대학교 매지호가 방문객들을 환영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캠퍼스로 소문 난 연세대의 진면목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매지호에서 바라보는 연세대의 빨간벽돌 캠퍼스건물을 바라보면서 봄철의 벚꽃길, 또는 가을날의 은행나무 가로수길을 걷노라면 젊은 날의 연애의 추억도 새록새록 떠올라 잠시나마 즐거운 청춘시절의 애상에 잠기게 된답니다.
호수속에 있는 무인도에서 노래하는 철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돌아가는 뚜벅이의 가슴속에는 어느새 생명사상이 움터서 세상을 향하여 용트림하면서 비상을 준비하고 있을 것입니다.
원주에서 박경리의 흔적을 보면서 토지에 길을 물어 보십시오....그 곳에 길이 있습니다.
여행팁
1. 단구동 박경리문학공원
- 대중교통 : 원주지역 어디서나 관설동방면 시내버스 타고서 박경리공원 앞에서 하차
(직접가는 버스 없으면 환승 1회 - 환승시간 1시간 이내 추가요금 없음)
- 관람료 : 없음
- 맛집 : 공원 주위에 광범위하게 저렴하고 맛있는 맛집 분포함
(자주 가는 집 - 한우전문점 토우, 옹심이 전문점 토지옹심이, 해물찜 영심이해물찜 등)
2. 매지리 토지문화관
- 대중교통 : 31번 시내버스(장양리-원주역-남부시장-강릉원주대-연세대-매지리 하차) 40분 간격
34번 시내버스(매지리 종점을 타야 함) 34번 전체는 13분 간격임(매지리는 보다 적음)
-관람료 : 없음(정숙을 요함....작품활동에 방해가 되지 않아야 함)
-맛 집 : 토요(토지문화관 맞은편에 있는 대형식당...매지농악전수관 앞에 있음. 뷔페식 8천원,
불고기정식 17000원, 보쌈정식 12000원)
3. 연세대 박경리기념비
- 대중교통 : 30번(24분 간격) 31번(13분 간격), 34번 등.....위 1, 2호 참고
- 관람료 : 없음
- 맛 집 : 연세대 구내식당, 연세대 앞 또는 주변 먹거리(막국수, 오리구이집 많음)
4. 연세대 풍경화
(매지호수변 산책로 탐방)
(연세대 앞 매지호와 무인도의 모습)
(비상을 준비하는 듯 - 연세대앞 잔디밭 조형물)
(연세대 운동장 주변의 가을풍광)
(연세대 은행나무 숲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