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도의 시대 -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
고린도후서 11장 1-6, 13-15절
" 원컨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컨대 나를 용납하라.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내가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 생각하노라. 내가 비록 말에는 졸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드르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바울의 서신들을 비롯한 초대교회의 모든 서신들을 살펴보면, 이단에 대한 경계의 말씀이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이 땅에 교회가 처음 세워진 때로부터 사단은 하나님의 진리인 복음의 말씀을 왜곡시켜 우리가 진리의 말씀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고 애써 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믿는 믿음의 기초입니다. 말씀이란 반석 위에 믿음을 세우고 교회를 세워야 마지막 심판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마 7:24-27). 사단은 바로 이 복음의 말씀을 왜곡시킴으로 우리의 믿음과 교회의 기초를 무너뜨리려고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이단적 가르침으로 고린도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거짓 선생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저들은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고 교회에 들어왔지만, 실상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3). 이들과의 영적 싸움에서 이기지 않으면 교회를 지키고 믿음을 지켜낼 수 없다는 겁니다.
우리의 몸에 병균, 심지어 암과 같은 치명적인 병균이 들어와도 건강한 사람은 이것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면역력이 떨어지면 감기 같은 하찮은 병도 이기지 못해 결국 숨을 거두는 것입니다. 병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몸이 살 수 있는 겁니다. 우리의 영혼도 이단적 가르침으로 믿음의 기초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사단 마귀와의 영적 싸움에서 이겨야 살 수 있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단적 가르침으로 교회와 성도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거짓 선생들에 대한 바울의 교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저들은 가장하는 자들입니다(13-15).
‘가장하다’는 단어는 ‘메라스케마티조’, 영어로는 ‘masquerade’라고 되어 있습니다. ‘가면을 쓴다’는 뜻입니다. 사도라는 가면을 쓰고 있지만, 실상은 거짓 사도요,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지만은 실상은 사단의 일꾼이요, 양의 탈을 쓴 늑대라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들의 미혹에 넘어가는 것은 저들이 선생이라는 이름, 목사라는 이름, 신학자란 이름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교회 역사 속에서 모든 이단은 목사나 신학자들로 인해 생겨났습니다. 한국 교회의 짧은 역사 속에서도 여러 이단들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박태선이 만든 천부교와 이장림이 만든 다미선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박태선은 교회의 장로였고 유명한 부흥강사였습니다. 부흥강사로 시작했다가 이단의 괴수가 된 것입니다. 이장림은 신학교의 교수요, 목사였습니다. 그가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할 때 많은 사람이 넘어간 것도 바로 이런 이력 때문이었습니다. 통일교의 교주인 문선명도 외국의 나가면 자기를 ‘목사’로 소개합니다.
그러기에 거짓 선생에 속지 않으려면 이름과 겉모습이 아니라 그 내면을 볼 수 있는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다른 예수와 다른 영과 다른 복음을 전한다 했습니다(4).
거짓 선생들이 부처나, 공자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쉽게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들도 참된 사도와 같이 예수와 성령과 복음을 전합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성경과는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겁니다. 똑같이 예수라는 용어, 성령이라는 용어, 복음이라는 용어를 쓰지만 그 내용이 다르다는 겁니다.
복음은 십자가의 도입니다(고전1장). 예수님이 내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의 고난을 겪으셨다. 이 구속의 은혜를 믿을 때 우리가 구원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더 나아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이제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처럼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한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런데 십자가가 아니라 세상적이고 물질적인 ‘축복’이 복음의 핵심인 것처럼 전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만사형통하고, 삼박자 축복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저들의 메시지 가운데 어디서도 ‘십자가의 도’를 듣기 힘듭니다. 저들의 메시지가 아무리 듣기 좋아도 이것은 분명히 다른 복음입니다.
또 동양의 신비사상에 영향을 받은 뉴에이지 영성을 전하면서 이것을 ‘성령의 역사’라고 속이는 자들이 있습니다. 요즘 교회 안에서 유행하고 있는 알파코스, 관상기도는 뉴에이지의 영성을 전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를 하면 여러 가지 영적인 체험을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가운데 역사하는 영을 성령이라고 보기 힘듭니다. 다른 영이요, 미혹의 영이 역사하는 겁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하면서, 부처나 마호메트도 그리스도이고, 우리도 수련을 쌓으면 그리스도(神人)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치는 뉴에이지 기독교가 있습니다. 이들도 예수를 전한다고 하지만, 성경과는 다른 예수를 전하는 자들입니다. 뉴에이지의 기독교입니다.
뉴에이지는 본래가 범신론에 바탕을 둔 힌두교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신’으로 여깁니다. 나무도, 돌도, 소나 돼지도 신입니다. 모든 사람 안에도 이 ‘신적 존재’가 있는데, 내 안에 있는 신을 발견하고 깨우면 사람도 신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예수나 부처나 모하메트 같은 이들이 바로 그들 안에 있는 신적 존재를 일깨어 스스로 신(그리스도)가 된 사람들이라고 주장합니다.
지난 번 일박이일이라는 오락 프로그램에서 힌두교 신자가 인사할 때, ‘나마스테’하는 것을 보신 분들이 있을 겁니다. ‘나마스테’는 ‘내 안에 있는 신이 당신 안에 있는 신께 경배(인사)합니다’라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을 신으로 보는 힌두교의 사상을 잘 표현한 인사법인 것입니다. 이 힌두교 사상이 동양으로 건너가 불교가 된 것이고, 서양으로 건너가 뉴에이지가 된 것입니다.
‘네가 신이 될 수 있다’는 힌두교의 가르침은 뱀이 하와를 미혹하면서 했던 말(창 3:5)과 정확이 일치합니다. 이 사상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마귀로부터 온 것임을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이 뉴에이지 사상에 물든 기독교가 ‘다른 예수’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를 분별하고 물리치는 영적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거짓 선생들이 퍼뜨린 다른 복음과 다른 영과 다른 예수를 쫓고 있다는 겁니다.
세 번째, 거짓 교훈에 빠지는 것은 ‘영적 간음’입니다(2).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부부간에 생길 수 있는 죄들 중에 가장 큰 죄가 바로 ‘간음죄’입니다. ‘간음’은 결혼의 관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거짓 교훈에 빠져, 다른 복음, 다른 영, 다른 예수를 쫓는 것이 바로 ‘영적간음’입니다. 이 죄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장차 오실 주님, 신랑 되신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영적 유혹을 물리치고 신앙의 정절을 지켜야 합니다. 거짓 선생들이 전하는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을 분별하고, 말씀 안에 바로 선 흠 없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방월석 목사
첫댓글 선생이라는 이름, 목사라는 이름, 신학자들이라는 거짓된 다른복음으로 다가오지만
체험을 통해 미혹 당한 영이라 그들도 자기들이 진짜라고 주장 합니다,
우리는 각자가 깨어서 분별할 수 있어야 하고 분별의 능력을 늘 구하는 믿음으로 바로서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럴려면 반석위에 믿음을 세우고 교회를 세워 성령안에서 마지막까지 그리스도의 신부로써 흠 없이 믿음을
지키는 것을 가장 우선 순위에 두고 갑니다, 성령님 도우소서,아멘~
아멘~
아다디오님을 사랑합니다~^^
지방교회에서는 '신화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신이 된다는 것이지요.
이것으로 인해 많은 비난을 받고 있지요.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신'은 존재론적인 의미에서의 신이 아니라, 성품적인 의미에서의 '신' 즉, '신성'을 의미하는 것이라봅니다만...
자칫 충돌이 될 수도 있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