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카미노15- 나는야 붉은 반점 대마왕

[까치대장]

8월 4일 산토도밍고 - 벨로라도 (22Km)

 
어제 저녁부터 가렵던 부위가 점점 늘어나더니

얼굴빼고 온몸에 붉은 반점이 생겼다.

찝찝하고 불길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깜깜한 새벽이라 그라뇬까지 가는 중간에 길을 잃어 한시간쯤 돌아가게 되었다.

우리처럼 길을 잃고 불안해 하는 스페인 친구 루이스(변호사)를 만났는데

이런 저런 얘기 나누며 드넓은 해바라기 밭을 가로질러 열심히 길을 찾는

재미도 그런대로 괜찮은것 같다.

첫번째 마을인 그라뇬에서 에스테르와 조셉을 만났다.

에스테르가 우리 피부 상태를 보더니 아무래도 병원에 가봐야 하겠다고

하면서 자기들은 벨로라도까지 차로 이동할 거라면서

먼저 가서 기다릴테니 전화하라고 한다.

병원에 같이 가도록.

12시쯤 알베르게에 체크인하고 에스테르에게 전화했더니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고 한다.

영어 전혀 못하는 당직의사에게 에스테르가 상황을 설명해주자

아마 벼룩같은 벌레한테 물린것 같다고 하면서

처방전을 적어준다.

'뭣이라!! 벼룩이라고?' 그이야기 들으니 더 가렵고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 하다.

그저 알레르기일거라고 생각했는데

내몸 구석구석을 벌레란 놈이 물고 다녔다고 생각하니 !!!

약국에서 약과 가려움을 덜어주는 로션을 사서

에스테르와 작별인사로 아쉬움을 달래며 왔다.

알베르게에 오자마자 배낭을 뒤집어 모든 소지품을 꺼내서 세탁할 건

세탁하고 아닌건 죄다 햇볕에 널어 바짝 말리고 우리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박박 문질러 가며 샤워하고 나니 벌써 3시가 넘어 허기가 극에 달했다.

오늘 묵게되는 알베르게는  호스피탈로 아저씨가 부르고스에서 주말마다 와서

11년에 걸쳐 직접지은 수영장이 딸린 예쁜 알베르게다.

그 정성이 놀랍다. 허기를 달래려고 레스토랑을 찾아 갔더니 마침 노천 까페에

에스테르, 조셉, 루이스가 담소를 나누며 식사하고 있었다.

반갑게 갔더니 안그래도 우리 이야기 하고 있었다고 한다.

서로 새로사귄 꼬레아노 친구가 있다고 자랑하다 보니 서로 일치하는 사람인걸

알고는 무척 반가워하며 이야기 하고 있었다고 한다.

배가 고파 주문한 음식을 허겁지겁 먹고 있는데,

우리는 모르지만 에스테르가 안면이 있는 독일인 부부 피터와 우테도 합석하게 되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하다가 우테가 자기집에 꽤 큰 정원이 있는데,

오래 떠나있으려니 걱정이 되어 마음이 편치 않아 한 이틀 더 걷다가

집으로 돌아가야 겠다고 이야기 하길래 나는 아주아주 작은 정원을 가지고 있음에도

너무 마음이 쓰여서  네마음 충분히 이해가 된다고 이야기하니

루이스도 덩달아 자기는 화분하나 없지만

그래도 집이 너무 걱정된다고 농담해 다같이 박장대소했다.

신랑이 루이스에게 이참에 마음에 드는 아가씨 만나면 커플 시도해보는게

어떻겠냐고 했더니 루이스가 가장 바라는 바라고 맞장구친다.

한참을 떠들고 놀다가 정말로 서로를 아쉬워하며 에스테르 조셉과 작별했다.

알베르게에서 만들어주는 근사한 닭요리로 저녁먹고 나서 산책하러

나갔다가 축제가 열리는 광장에서 플라맹고 댄스와 애절한 스페인 노래를 듣고

있자니 내가 전생에 집시였나? 마음한켠이 아리는 듯 하다.  

8월 5일 벨로라도 - 아제스 (27.7Km)

알베르게에서 제공하는 아침먹고 5시쯤 루이스랑

다른 스페인 부부 한쌍이랑 같이 출발했다.

해가 뜰려면 아직 멀어 후레쉬 들고 열심히 길을 찾으며 걸었는데

유난히 키가 크고 보폭이 넓은 루이스를 따라 가기가 힘들어

첫번째 마을에서 먼저 보내고 우리 속도로 천천히 걸었다.

오늘은 산을 하나 넘었는데 마치 우리나라의 산처럼 소나무가 우거진 아름다운 길이었다.

 

오르테가를 지나 아제스에 도착하니 작고 깨끗한 사설 알베르게가 있다.

(걷다가 달콤한 휴식에 빠져든 피터와 우테)

 알베르게 2개를 제외하면 약 10여채의 집이 있는 작고 조용한 마을이다.

옆방에 묵는 스페인 아저씨가 근처에 있는 유명한 동굴

(알타미라 동굴보다 이전의 것으로 인류의 진화사를 새롭게 증명하는 아타뿌에르카동굴)에

갈건데 같이 가자며 꼭 가봐야 하는 곳이라며 강조한다.

같이 가고 싶지만 버스예약이 안되어 있어 아쉽게도 못갔다.

근데 벨로라도에서 만났던 스페인군인아저씨가 자기가 갔다왔는데

볼게 거의 없다고 하면서 안가길 잘했다고 해서 그래도 마음이 놓였다.

이멜다와 이알베르게에 같이 묵게 되어 서로 너무 좋아했다.

손전등에 넣을 건전지를 마을가게에서 사왔는데 8개에 12유로나 한다.

아무래도 그전에 샀던거에 비해 너무 비쌌지만 점원 아가씨가 영어를 전혀

못해 어쩔 수 없이 사왔더니 이걸 본 이멜다가 마구 흥분하더니

우리보고 바가지 썼다고 자기가 환불받아 오겠다고 갔다.

근데 포장된게 한쪽에 살짝 뜯겼다고 반은 환불이 안된다며 반만 환불받아왔다.

아! 고마워 이멜다.!!

해거름할때 바에 나가서 커피 한잔하고 있는데 프랑스 아줌마 콜린이랑

마누엘라 알렝아저씨를 다시 만났다.

알렝아저씨는 유난히 큰 배낭을 짊어지고 언제나 곧 쓰러질 듯 힘겹게 길을 걷는

영어 전혀 못하는 프랑스 남이다.

근데 몇번 만나서 그런지 이젠 곧잘 내게 '미세스 리, 미세스 리'하면 반갑에 인사한다.

모두들 우리 피부보고 난리가 나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설명하느라고 진땀을 뺐다.

매일매일 목적지에 도착하면 단 한걸음도 더 못걸을 것 만큼 지치고 힘든데

아침이면 어김없이 일어나서 또 다시 걷게 되는 이 힘은 도대체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