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6개국 여행후기 (4)
- 로마 / 피렌체 / 밀라노 -
여행 6일차 일정은 로마 바티칸 시국으로 이동하여 입국을 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현장에 가 보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대기하던 줄이 좁혀져
입구까지 도달하였는데 우리 보다 비싼 돈을 주고 예약한 사람들이 우선이라며 먼저 입
장 시켰다. 그 사람들에 밀려 한참을 대기하다 입장 할 수 있었는데 공항의 검색대를 통
과하는 것과 같이 소지품과 윗옷을 벗어 검색대에 넣고 통과 하였다.
등에 메는 배낭은 아예 가지고 들어 갈 수 없었다. 수신기를 받아 설명을 들으며
바티칸박물관을 관람하였다.
이 박물관은 역대 로마 교황의 거주지였던 바티칸 궁전을 박물관으로 개조했다고 한다
. 16세기 초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이곳을 세계 권위의 중심으로 만들기 위해 유명 예술가
들을 초대해 건축과 장식을 맡겼다고 하였다. 바티칸 박물관은 파리 루브르 박물관, 런던
대영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곳이다. 바티칸 박물관에는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르네상스 최고 작가들의 작품이 가득하다고 했다.
바티칸시국으로 입국하기 위한 행열
박물관 나선형 계단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종교화와 미술품으로 가득한 바티칸 박물관은 단순히 유물이나 예술
품을 모아 놓은 공간이 아니라 13세기부터 18세기까지는 서양 미술을 이끌어 나갔던 주체라고
한다. 바티칸 박물관이 루브르와 대영박물관과 다른 점이 있다면 두 박물관이 유물과 예술품을
전시하는 곳인데 비해 바티칸 박물관은 그 자체가 거대한 예술품이라는 사실이다.
잠시 둘러보고 야외 잔디광장으로 나가 게시판의 그림을 보면서 천지창조 등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이곳에서 가장 대표적인 곳 시스티나 예배당으로 가기위해 박물관으로 들어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이동하니 넘쳐나는 사람들로 움직일 틈이 없을 정도였다. 사람들의 틈을 헤집고
좌우와 천정에 그려진 그림들을 보면서 일행들과 떨어질까 신경을 써가며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수많은 그림이 있었는데 의미도 모른 채 대충 사진으로 촬영하였다. 어느 지점에 이르니
큰 돔이 나왔는데 조형미가 예사롭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박물관 앞 에서 성 베드로 성당 돔을 배경으로
계속해서 연결된 방의 그림들을 보면서 시스티나 예배당에 도착하니 천정과 벽에 그려진 대작의
그림들이 입을 딱 벌어지게 하였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지창조 천장화는 33개 부분으로 이루어
진 대작으로 1508년 작업을 시작하여 4년이 지난 1512년에 완성되었다고 하였다. 구약과 신약 성
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세상이 창조되는 순간부터 인간이 타락하는 과정을 담은 것으로, 시스티나
예배당을 빛나게 만드는 걸작 중의 걸작이라고 하였다.
또 시스티나 예배당 중앙 벽에 있는 작품은 미켈란젤로와 보티첼리를 비롯한 6명의 화가 작품이
라고 하였다. 요단강 가에서 세례 받는 예수부터 모세의 최후까지를 그린 작품들이라고 하였는데
하나같이 뛰어난 예술성을 보여 주고 있었다.
가장 유명한 그림은 ‘최후의 심판’이라는 프레스코화라고 하였다. 미켈란젤로 혼자서 7년이란
오랜 세월에 걸쳐 1541년 가을에 완성된 작품으로 죽은 영혼들이 하느님 앞에서 심판을 받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역동성과 감성적인 면이 두드러진 작품인 것 같았다.
집결장소인 이곳에서 인원 점검을 하고 가장 성스러운 장소라는 성 베드로 성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성 베드로의 무덤 위에 324년 처음 건물이 들어선 이후 약 1,200여년
이 지나는 동안 성당은 매우 낡은 모습을 하고 있어서 교황 율리우스 2세는 건축가 도나토 브라만
테에게 성 베드로 대성당을 새롭게 짓도록 하였다고 한다.
1506년에 시작된 공사는 100년이 넘도록 지속되었고, 이후 여러 사람들이 성당 건축에 참여했는
데 상갈로, 지오콘다,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모두 당대 최고의 건축가와 예술가, 장인들이었었
다. 그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미켈란젤로로 지금의 대성당은 대부분 미켈란젤로의
설계안을 바탕으로 완성된 것이라고 하였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천장화
미켈란젤로가 7년만에 완성한 프레스코화 최후의 심판
안쪽으로 들어가니 이 성당을 상징하는 돔이 있었는데 높이 132.5m에 지름이 42m라고
하였다. 미켈란젤로가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매우 역동적이고 화려하였다. 돔의 중앙 천
장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장식이 연출하는 환상적인 분위기는 마치 천국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만들 정도였다.
성당에서 나오니 전면의 넓은 산 피에트로 광장에 비가 내리어 많은 사람들이 우산을 쓰
고 거닐고 있었다. 베드로 성당 좌우로 타원형의 회랑이 광장을 감싸고 있었는데, 이 회
랑은 도리아식 기둥 288개와 벽기둥 88개로 이루어졌다고 하였으며, 회랑 위에는 140여
명의 성인 대리석상이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광장 가운데에는 오벨리스크가 우뚝 서 있었는데 이것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가장
숭배했던 태양신 라(Ra)를 상징하는 기념물이라 하였다. 이 오벨리스크는 고대 로마의
칼리굴라 황제가 이집트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오벨리스크 양쪽으로는 마데
르나와 폰타나가 만들었다는 2개의 아름다운 분수가 설치되어 있었다.
성 베드로 광장은 바닥 넓이가 1만 5000㎡에 달하며 6만 명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큰 광장이라고 한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
베드로 성당 내부
산 피에트로 광장에서
회랑 끝 지점에서 모여 비를 맞으며 대기 중이던 버스로 이동하였다. 한인식당에서 돼지 주물럭으
로 오찬을 하였는데, 가이드가 큰 오랜지를 하나씩 주어 후식으로 맛있게 먹었다. 식당에서 나와
60유로에 벤츠투어 옵션으로 벤츠차에 탑승하여 뜨레비 분수를 찾아가니 비가 오는데도 사람들
로 넘쳐나고 있었다.
바로크 양식의 걸작, 뜨레비 분수는 G.L.베르니니의 원안에 따랐다고 하는 N.살비 설계의 대표작
으로, 1732년 착수하여 살비 사후인 1762년에 완성되었다고 하였다.
흰 대리석 작품으로 개선문을 본뜬 벽화를 배경으로 거대한 한 쌍의 반인반수의 해신(海神) 트리
톤이 이끄는 전차 위에 해신 넵투누스상(像)이 매우 큰 조개를 밟고 서 있었으며, 주위의 거암거석
사이에서 끊임없이 물이 흘러나와 연못을 이루고 있었다.
이 연못을 등지고 서서 동전을 던져 넣으면 다시 로마를 방문할 수 있다고 하는 속신(俗信)이
있다고 하였으며, 건물 상단 부분에 있는 네 명의 여인들은 4계절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이 분수에 있는 물은 처녀의 샘에서 유래한다고 하였는데, 로마의 한 처녀가 전쟁터에서 귀환한
목마른 병사들에게 이 처녀의 샘을 가리키고 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이 건물의 부조에
새겨져 있다고 했다.
바로크 양식의 걸작 트레비 분수
비가 내리는 가운데 인증 샷
비가 계속 내리는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서로 기념촬영을 하느라 분주하였는데
나도 간신히 몇 장을 찍었다. 황급히 일행들을 따라 이동하니 스페인 광장이라고 하였는데 17세기
에 교황청 스페인 대사가 이곳에 본부를 두면서 스페인 광장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하였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 등장하여 유명해졌다고 했는데 137개로 이뤄진 광장 계단에는 많은 관광객들
로 붐비고 있었다. 계단 위에는 두 개의 종탑이 있는 건물이 있었는데 트리니타 데이 몬티 교회
(Chiesa della Trinita dei Monti)라고 하였다. 스페인 계단은 17세기에 트리니타 데이 몬티의 프랑스인
주민들이 교회와 스페인 광장을 계단으로 연결시키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계단 아래에는 ‘난파선의 분수’라는 뜻의 ‘바르카치아 분수’가 있었는데, 이는 이탈리아 대표 조각
가이자 건축가인 베르니니의 아버지 피에트로 베르니니가 홍수 때 스페인 광장까지 떠내려 온 배
를 보고 착안해 만든 것이라고 하였다. 바르카치아 분수의 물은 깨끗해서 식수로 써도 아무 이상
없어 로마에서 가장 맛있는 물로 유명하다고 하였다.
스페인 광장의 바르카치아 분수
스페인 광장에서
다시 벤츠투어 차에 올라 전면에 원형기둥이 웅장한 판테온 신전을 찾아갔다. 판테온은 그리스어
로 『모든 신의 신전』을 뜻한다고 하였다. 기원전 25년, 아그리파가 올림푸스 신들에게 제사를 지
내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80년경 로마에서 일어난 대화재 때 파괴되었지만 2세기경 하드리아누
스 황제가 재건하였다고 하며, 609년 이후 교회로 사용되고 있다.
2세기에 건축된 원형이 지금까지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독특한 점은 지름 43.3m의 건물 안에
기둥이 없다는 사실이다. 건물은 돔 형식의 지붕과 벽으로만 이뤄져 있었다. 지붕에는 지름 7.5m
의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어 채광창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로마 건축의 정수를 보이는 걸작으로
보였다.
사람들로 가득한 신전 앞 광장에는 관광객을 태우는 마차도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고대 이집트
왕조 때 태양신앙의 상징으로 세워진 오벨리스크가 분수대 위에 있었다.
모든 신의 신전 판테온 신전
신전 내부 모습
신전의 원형 돔
이곳을 뒤로하고 영화 벤허의 대전차 경주 장면을 촬영했다는 전차 경기장을 찾았는데
도로변에서 관망만 하였다. 이 경기장은 기원전 600년경에 건설되어 천년이 넘도록
이어지다 549년경에 마지막 경기가 치러지고 문을 닫았다고 하였다.
다음으로 들른 곳은 캄피톨리오 언덕이었는데 시내를 조망할 수 있었다. 아래에 있는
캄피톨리오 광장으로 내려가니 바닥엔 꽃이 핀 듯 아름다운 문양이 있었고, 그 문양의
중심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청동기마상이
있었다. 현재 광장에 있는 동상은 모조품이고, 진품은 캄피톨리오 박물관 내부에 있다고 하였다.
이 광장으로 오르는 길은 경사가 완만한 넓은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말을 타고 오르기
편하게 미켈란젤로가 디자인 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입구 양편에 말고삐를 잡고 있는 카르토르와 폴록스 형제의 동상이 있었는데,
유피테르신의 쌍둥이 아들로 고대 로마의 전투에서 이들 형제가 백마를 타고 승전을
이끌었다고 하였다. 전면에 로마시청(세나토리오 궁)과 양편으로 박물관과 콘세르바토리
궁전이 자리하고 있었다.
대전차 경기장
캄피톨리오 광장 입구의 카르토르와 폴록스 형제 동상
이곳에서 시청사 옆의 골목길을 따라 내려가니 고대 로마의 정치⋅상업⋅종교 활동의
중심지였던 포로 로마노가 한 눈에 들어왔다.
포로 로마노 가운데는 성스러운 길(Via Sacra)이 놓여 있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돌아온
장군들이 개선 행진을 하던 거리라고 하였으며, 이 길 양쪽으로 유적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포로 로마노는 고대 로마인들이 시민생활의 중심지로 생각하던 신전과 공회당 등 공공기구와
함께 일상에 필요한 시설이 있는 곳이다. 팔라티노 언덕 주변에는 한때 원주민들이 수장 묘지로
사용하던 늪이 있었다고 한다.
기원전 6세기에 에트루리아의 왕 타르퀴노 프리스코가 하수처리장을 시설하고 이 늪을
메워버리자 공회장터 역시 매몰되었는데,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발굴되기 시작되었다고 한다.
발굴 작업이 괄목할 정도로 진행된 다음 이 공회장은 엄청난 신전과 공공건물, 그리고 아치형
건물과 상점이 나란히 이어진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고 했다.
포로 로마노
다음으로 찾은 곳은 하얀 웨딩 케익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는 전쟁기념관(엠마뉴엘 2세
기념관)이었다. 이 기념관은 로마 시내에서 가장 교통이 복잡한 베네치아 광장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탈리아의 통일을 이룩한 초대 국왕 비토리오 엠마뉴엘 2세를 기념하기 위해서
이탈리아 통일 선포 50주년을 맞이하여 건축가 쥬셔페 샤꼬니에 의하여 1911년 완성되었다고
하였다.
네오 클래식 양식의 16개 원주가 호를 그리는 코로나데가 인상적이었다. 계단 밑의 양쪽에
설치된 분수는 오른쪽이 티레니아해, 왼쪽이 아드리아해를 나타내며 중앙에 엠마뉴엘 2세
기마상이 있었다. 이 기마상 아래에는 세계 1차 대전 당시 신화한 무명용사의 묘가 있다고 하며,
묘 앞에는 횃불이 항시 타오르고, 두 명의 용사가 묘를 지킨다고 하였다. 기념관에 가보지
못하고 길 건너편에서 조망만 하고, 어느 성당으로 이동하여 내부를 관람하였는데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모하였다.
전쟁기념관
성당을 뒤로하고 인근에 있는 원형경기장 콜로세움을 찾아 갔다. 입구에서 가이드로부터
유적지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정식 명칭은 '플라비우스 원형경기장(Amphitheatrum
Flavium)'이라고 하였다. 플라비우스 왕조 때 세워진 것으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착공하여
80년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 때에 완성하였다고 했다.
글라디아토르(劍鬪士)의 시합과 맹수연기 등이 시행되었으며, 그리스도교 박해 시대에는
신도들을 학살하는 장소로도 이용되었다고 했다. 피지배계층의 관점이나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는 다소 잔인한 측면이 있으나 고대 로마 시민들에게 원형 경기장은 경기를 보며
일체감을 느끼고 그 내용을 즐기는 하나의 공공 오락시설이었다고 한다.
한편, 로마 정치가들에게 원형경기장은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굳히고 화합을 도모하며 때로는 로마나 귀족의 권위에 불복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보복을 암시하는 공간이었다. 직경의 긴 쪽은 188m, 짧은 쪽은 156m, 둘레는 527m의
타원형이고, 외벽은 높이 48m로 4층이며, 하단으로부터 도리스식(式)⋅이오니아식⋅
코린트식의 원주가 아치를 끼고 늘어서 있다. 내부는 약 5만 명을 수용하는 계단식
관람석이 방사상(放射狀)으로 설치되어 있다고 하였다.
설명을 듣고 광장으로 들어서니 315년 막센티우스를 물리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승리를
기념하는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 뒤로 영화나 매스컴을 통해서 보아온
3층의 원형 경기장이 아름답고, 웅장한 모습으로 반겨 주었다. 광장 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인증 샷을 하느라 분주하고, 방송국에서 나와 촬영을 하려는지 조명시설을 설치하고 있었다.
콜로세움 원형경기장
안에는 출입을 시키지 않고 있어 들어가지 못했는데, 내부를 보지 못하고 가게 되니 아쉬움이
많았다. 관람을 끝내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버스가 오지 않아 기사와 연락이 안 된다며 지체될
것 같으니 인근에 있는 카페에 가서 차를 마시며 대기하자고 하였다. 그래서 콜로세움 맞은편
언덕에 있는 가게로 들어가 차를 마셨는데 찻값 360유로를 가이드가 부담하였다.
버스가 왔다하여 밖으로 나오니 콜로세움에 조명이 아름다웠는데 일찍 나와서 촬영을 하지
못해 아쉬웠다. 대기 시간이 너무 길어 불만을 표출 했는데 통신상 문제로 전화 연결이 제대로
되지 않아 늦었다며 가이드가 죄송하다는 말을 하여 모두 이해하는 것으로 하였다. 중간에
중국인이 운영하는 신홍콩주루에서 백반으로 석식을 하고, 호텔로 귀환하여 하루 일정을
마감하였다.
7일째 일정으로 05시에 기상하여 햇반과 라면으로 아침을 때우고 3일을 묵은 호텔을 출발하여
피사로 향하였다. 6시간 정도를 가야하기 때문에 DVD로 영화를 보면서 올라갔다.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광에 시선을 집중하며, 산야에 펼쳐져 있는 촌락과 초록색으로 채색된 드넓은 초원을
관망하였다.
노랗게 물든 유채 밭과 개울가에 연두 빛으로 피어나는 나뭇잎, 그리고 골안개, 산
중턱 사면까지 분포된 올리브 나무와 농가 등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영화가 끝나니
오솔레미오와 얌모 얌모 등의 이태리 컨츠리 송이 흘러 나왔다. 자기 나라 송을 들으니 신이
나는지 버스 기사가 따라 부르기도 하였다.
오랜 시간을 달린 버스가 피사사탑유원지 주차장에 도착하니 이곳도 많은 관광객으로 분비고
있었다. 셔틀버스를 타고 현장에 당도하니 입구가 사람들로 막혀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기적의
광장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는 두오모 광장에 들어서서 TV나 책에서만 보던 기울어진 피사의
사탑을 직접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푸른 잔디밭 끝자락에 아름다운 걸 작품, 피사의 사탑이
애교스럽게 기운 자태로 반겨 주고 있는 듯하였다. 기울어진 탑을 양손으로 떠 바치는 모습을
하면서 사진을 촬영하는 젊은이 들이 많았다.
피사 두오모 성당⋅세레당⋅사탑
기우는 사탑을 떠 받치며 폼으로 ---
이 사탑은 피사 대성당 동쪽에 있는데, 원래 대성당의 종을 달기 위하여 만들어진 부속
건물이었다고 한다. 흰 대리석으로 된 둥근 원통형 8층탑으로 최대 높이는 58.36m이며 무게는
1만 4,453t으로 추정된다고 하였다. 2008년 현재 기울기의 각도는 중심축으로부터 약 5.5˚이며,
294개의 나선형 계단으로 꼭대기까지 연결되어 있는데 한 사람만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좁게
만들어져 있다고 했다.
1173년 착공되어 1372년까지 3차례에 걸쳐 약 200년 동안 공사가 진행되었는데, 1173년에서
1178년 사이에 진행된 1차 공사 이후 지반 토질의 불균형으로 인한 기울어짐이 발견되었다.
그 뒤 2차 공사에서 이를 수정하여 다시 건설하였으나 기우는 현상은 계속되었다. 1990년 이탈리
아 정부는 경사각을 수정하기 위한 보수공사를 착수하여 10년에 걸쳐 보수작업을 진행한 결과로
기울어짐 현상은 5.5˚에서 멈춘 상태이다. 2001년 6월 일반에 다시 공개하였으나 보존을 위하여
하루 30명으로 입장을 제한하고 있다 하였다.
갈릴레이가 이곳에서 무게가 다른 두개의 공(1파운드, 10파운드)을 떨어뜨려 낙하실험을 한 후
‘지표면 위의 같은 높이에서 자유낙하 하는 모든 물체는 질량에 무관하게 동시에 떨어진다’는 내
용의 낙체법칙을 발견했다는 일화(逸話)가 전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이 실험은 1586년 네덜란드
의 수학자·물리학자인 시몬 스테빈(Simon Stevin)이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두오모 성당과 세례당도 사탑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이탈리아 어로 두오모는 대성당을 의미한다고 한다. 피사 두오모는 중세를 대표하는 건축가 중의
한 명인 부스케토의 지휘 아래 1118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중세의 대표적인 건축 양식인 로마
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두오모는 바닥은 십자가 모양이며, 십자가가 만나는 교차점에는 커다란
둥근 돔이 설치되어 있었다. 정면의 모습이 무엇보다 아름다운데 모자이크 작품과 우아한 조각이
장식된 아치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 정면의 모습은 훗날 르네상스가 시작된 피렌체 두오모의 모델
이 되었다고 한다.
세례당은 유럽에 세워진 종교 건축물 가운데 음향 효과가 가장 뛰어난 곳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세례당의 기본 골격에 해당하는 웅장한 원형은 전형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이고, 그 위에
건설한 둥근 돔과 벽을 장식한 조각은 고딕 양식으로 두 양식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건축물이라고 한다. 또한 피사에서 가까운 엘바와 사르디니아 섬에서 가져온 대리석으로 장식된
세례당 내부는 4개의 사각 기둥과 8개의 원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그리고 세례당에는 세례 때 사용되었던 세례단과 대리석으로 만들어 놓은 설교단이 있는데
이 설교단에 조각된 『수태고지, 예수 탄생 및 목동들』이란 작품은 훗날 피렌체에서 시작된
르네상스 조각의 선구적인 작품으로 평가될 정도로 뛰어난 작품이라고 한다.
더 오래 머무르지 못함을 아쉽게 생각하며 인근의 동방주루 식당으로 이동하여 오찬을 하고,
비가 내리는 가운데 주차장까지 도보로 내려와 밀라노로 출발하였다.
중도에 휴게소에서 멈추었던 차는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지방의 중심도시이며, 패션의 도시
인 밀라노의 번화가에 멈추어 섰다. 건물사이의 상가 지역을 지나니 전면에 여러 개의 첨탑이
솟아 있는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웅대한 고딕양식의 두오모 성당이었다. 성당 앞의 드넓은
광장에는 세계의 관광객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이 두오모 성당은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성당이며 이탈리아 고딕 건축의 정수라고 하였다.
두오모 대성당은 2,245개의 거대한 조각 군으로 장식되어 있고, 135개의 첨탑이 하늘로 치솟아
있다고 하였다. 길이 157m, 높이 108.5m로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 런던의 세인트 폴,
독일의 쾰른 대성당에 이어 4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가장 높은 첨탑에는 도시를 수호하는
황금의 마리아 상이 세워져 있었다.
1386년 밀라노 공 잔 갈레아치오 비스콘티 공작의 명으로 착공되었으며, 450년에 걸쳐 공사가
진행되어 19C 초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건축물 하나하나에 장인의 손놀림이 느껴지면서 진짜
예술의 나라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광장에는 이탈리아를 통일한 엠마뉴엘레 2세의 기념
동상이 서 있었다.
두오모 성당
두오모 성당의 아름다운 조각품
성당을 배경으로 기념 샷
내부를 관람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아 들어가지 못하고, 이 성당과 라스칼라 좌를 잇는
거대한 아케이드 빅토리오 엠마뉴엘레 2세 갤러리아를 관람하였다. 이곳에는 유명 브랜드
상점들이 입점해 있었다.
건축가 주세페 멩고니(Guiseppe Mengoni)의 설계로 1865~1877년에 걸쳐서 완성되었으나
안타깝게도 주세페 멩고니는 이탈리아를 새롭게 통일한 비토리오 엠마뉴엘레 2세
(Vittorio Emanuele II)가 공식적으로 갤러리의 완공을 선포하기 며칠 전 건축장의 발판에서 떨어
져 사망했다고 하였다. 아케이드의 바닥은 12궁도를 표현한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이루어져 있으
며 십자가 모양으로 생긴 아케이드 중앙의 둥근 천장에는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아메리카 4대륙
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프레스코화가 있어 건축물 자체가 마치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느껴졌다.
엠마뉴엘레 2세 갤러리
갤러리에서 나가니 광장 가운데 레오나르도 다빈치 동상이 있었고, 맞은편에 세계적인
오페라의 메카인 스카라 극장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관망만 하였다. 베르디와 푸치니가
오페라를 초연했던 곳으로 비스콘티가의 비 스칼라의 이름을 따서 만든 오페라 극장이다.
2차 세계 대전 중에 폐허가 되었지만 곧 다시 복원되었다고 한다. 내부에는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좌석이 있으며, 붉은 카펫과 샹들리에가 화려함을 더해준다고 했다. 그리고 건물 내 박물관
에는 베르디, 도니체티, 푸치니의 유품과 악보, 오페라 의상이 전시되어 있다고 하였다.
이곳을 뒤로하고 나오다 Pizzeria Ristorante 식당에서 피자와 돈가스로 저녁을 하고
NOVARA EXPO 호텔에 투숙, 하루를 마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