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좌에 올라 주장자를 세 번 치고 이르시기를
솔밭 그 사이엔 시냇물 구름은 흐르는데
맑은 바람이 달빛에 젖네
一松一竹溪水雲
唯有淸風伴月輪
예전에 조선 말의 대신인 김성근金聲根대감이 늘 글씨가 씌어진 종이로 변소의 휴지로 사용하다가 석자우惜字友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은 글자를 아끼는 그런 내용으로서 휴지에는 성인의 이름도 있고 자기의 조부모 이름도 있는 데 석자우 책을 보고는 김성근 대감이 자기가 휴지로 닦는 그것을 뉘우치고 비록 대신의 지위에 있었지마는 변소의 휴지를 모두 건져내 가지고 씻어 말려서 불에 사르었다.
그리고 중국의 청량국사淸凉國師는 전생에 무식했는데 글을 잘 해보려고 먹 묻은 종이나 글씨를 쓴 종이가 어디에 흩어져 있으면 그것을 깨끗한 데 가서 살라주곤 하며 문장이 되려는 원력을 세워 육국문장六國文章이 되었다. 그 후에 청량국사는 입산하여 화엄경소華嚴經疎를 지었다.
밤에 자동차가 다리 위를 휙 지나가는 데 급히 달리다가 그만 사람을 치어서 그 사람이 죽었는데 다리 위가 캄캄해서 아무도 못 본줄 알고 운전수와 조수가 그 사람을 물에 집어넣고는 그만 달아났다. 이때 웬 총각이 뒤에서 보니까 자동차가 사람을 치고는 그대로 물에 집어넣고 도망을 치니까 그 자동차 번호를 적었다. 그 이튿날 순경이 와서 어떤 놈이 이렇게 사람을 죽였느냐 하고 죽인 사람을 찾아다닐 때, 이 총각이 차량번호를 알려주고 이 차가 사람을 치었으니 잡으라고 일러 주었다.
도망친 이들은 사람 없는 것만 알았지 뒤에서 번호를 적은 것은 몰랐던 것이다.
《화엄경소초華嚴經疎抄》에 보면 하늘에 이십팔수二十八宿가 있는데 인간의 선악을 모두 날마다 일기를 해 가지고 죄를 줄 이는 죄를 주고 복을 줄 이는 복을 준다고 하였다.
설악산에서 어떤 놈이 사람을 다섯이나 죽이고 밤에 달아나면서 집에 불까지 질러 버렸으니 죽은 송장까지 집과 함께 불타버려서 알 사람이 없었는데 날마다 눈만 뜨면 죽은 사람이 나타나서 도저히 살 수 없어서 내가 사람을 죽였다하고 자수를 했다.
죄를 지으면 자기가 받지 다른 사람이 받는 것이 아니다.
육조六祖스님이 참으로 성인인데 전생에 돈 열 냥을 쓰고 그것을 갚지 못하였다. 선정禪定중에 관觀하여 보니 전생에 돈 열 냥 갚지 못한 그것으로서 육조스님을 죽이려고 행창行昌이라는 사람이 자객으로 팔려 올 것을 예지豫知하였다. 그래서 육조 스님은 항상 돈 열 냥을 좌복 밑에 두어두고 있는데 행창이 밤에 칼을 품고 왔다. 그때 육조스님이 말했다.
"내가 전생에 너한테 돈 열 냥을 빌려 쓰고 못 갚은 것뿐이지 목숨을 뺏은 것은 아니다. 그러니 이 돈 열 냥 가지고 가거라. 이 돈은 전생에 내가 갚지 못한 돈이다."
그러고 돈을 주었다. 그러니 자기는 육조스님을 해치러 왔는데 그것을 벌써 알고 돈 열 냥을 내놓으니 자기가 가지고 갈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원컨대 제자가 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네가 나를 해치러 왔는데 내가 제자로 만들어 놓으면 이것을 다른 제자가 알게 되면 너는 죽어 나가게 될 것이니 그러지 말고 이 돈 열 냥 가지고 가서 훗날 다시 나를 찾아오너라."
그래서 나중에 행창이가 육조스님의 제자가 되어 공부를 잘한 일이 있다. 인因을 지으면 반드시 과果가 있으니 어떻게든 나쁜 인因을 안 짓도록 해야 된다. 불제자는 도에 들어오는 첫 문에서 인과因果를 믿어야 되고 인을 지으면 과를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죄악을 안 짓고 선행을 하게 된다.
고통 없이 임종臨終을 맞이하자면 수행을 쌓고 선행을 많이 해야 되는데 수행을 하자면 죽기 살기로 생명을 걸고 해야지 그저 나무칼로 목 베듯이 어영부영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고 공연히 수행하노라는 상만 내는 것이다. 불교佛敎를 믿거든 철저하게 믿어야 된다.
옛날 중국中國에는 불교, 도교道敎, 유교儒敎 등 각 종교가 있어서 내 종교를 믿어라 하고 서로 승강이를 하고 경쟁을 할 때 중국의 천자가
"너희들은 그렇게 승강이를 하지 말고 모두 너희들의 경전經典을 가지고 와서 궁전 마당에 갖다 놓고 불을 질러서 타지 않는 경전이 있거든 그 교를 믿으리라"
라고 명령했다. 그래서 각 종교의 경전을 다 갖다 놓고 불을 지르니 다른 것은 다 타고 불교경전을 책 겉만 약간 누렇게 눗기만 하고 타지 않았다. 그래서 천자가
"다른 경전은 다 탔으니까 지금부터는 불교를 믿어라" 라고 말했다 한다.
그때 불에 태워도 안타고 책 꺼풀만 조금 누렇게 탔다고 해서 불교 경전의 책 꺼풀을 누렇게 하는데, 이것을 황권적축黃券積軸이라고 한다.
그러니 여러분도 어쩌든지 불교를 철두철미하게 믿으면 전지전능全知全能이니 안될 것이 없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모든 경전을 불태워가며 임금과 신하가 국민에게 복이 되는가를 시험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때에 이차돈異次敦이 불교를 위해서 순교殉敎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불교가 이렇게 내려온 것이다. 사람이 다 살기를 좋아하지 죽기를 싫어하는데 자기의 목숨을 불교를 위해 바쳤기 때문에 불교가 오늘날 까지 내려온 것이니 이차돈의 힘이 큰 것이다.
수도하는 사람의 마음 쓰는 것과 행行을 닦으려면 먼저 마음을 비울 줄 알고 크게 발심發心하여야 하는데 크게 발심하는 것은 마치 집을 짓는데 주춧돌을 놓는 것과 같다. 아무리 그 집이 웅장하더라도 밑에 깔린 주춧돌이 약하면 마침내 그 집은 전복되고 만다.
이와 같이 생사를 해탈解脫하고 인천人天의 안목眼目이 되고 우주宇宙의 빛이 되려면 큰 원력願力과 대신심大信心이 첫째인 것이다. 천하에 지극히 큰 것은 도道며, 지극히 공적公的인 것이 진리眞理다. 도와 진리는 다른 것이 아니다.
마음·법法· 불성佛性 이 세 가지가 모두 한 이치인데 이 도리를 깨치려면 여러 가지 난관이 있으니 이것을 돌파하자면 대용맹심大勇猛心이 있어야 한다.
예전 성현聖賢들도 대장부요 나도 대장부인데 나는 과거 몇 만겁 동안 내 마음을 깨치지 못하고 생사에 윤회하여 온갖 고통을 받아 왔구나 하고 대분심大憤心을 내어야 한다.
공부하는 데 있어 상승上乘과 대상승大上乘은 절차에 구애받지 않으나 중근기中根機와 하근기下根機의 사람들은 화두話頭를 가져 공부를 지어야 한다.
화두에는 의정疑情이 고귀한 것이니 예서 도인道人들도 대의정을 일으키라고 하였다. 대신심大信心, 대분심大憤心, 대의정大疑情은 솥의 세발과 같아서 참선參禪에는 하나만 없어도 안 된다.
출가한 사람은 출가학을 배워야 하고 세간 사람은 각기 직무를 이행하여 실업失業이 되지 않아야 한다. 일상생활에도 도道가 있고 물건을 사고파는 데도 도가 있다. 우리가 인생의 참된 마음을 쉬고 비워야 한다. 도를 배우려는 사람의 마음의 망상妄想이 꽉 차 있으면 도를 알기가 어렵다.
또 수도하는 사람의 마음은 자기의 눈 속과 같이 맑아야 한다. 밥을 조금이라도 눈에 넣거나 금·은·유리 등 칠보七寶라도 그 가루를 조금 눈에 넣으면 눈병이 생기는 것과 같이 세상에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눈 안에 들어가서는 용납할 수가 없다. 이렇게 깨끗한 마음으로 수도에 힘써야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옛 사람이 말씀하시기를 “불 속에서 뛰쳐나오는 것 같이 하고, 천 길 우물 속에 떨어진 사람의 마음과 같이 하고, 머리에 불붙은 것을 끄는 것과 같이 하고, 알을 품은 닭과 같이 하라”고 하였으니 이 말씀이 지극하고 참으로 간절한 말씀이다. 불 속에서 뛰쳐나오는 사람과 머리에 불을 끄는 사람은 무슨 딴 생각을 할 겨를도 없고 옆을 돌아볼 여가도 없다. 천길 우물 속에 떨어진 사람은 오욕락五欲樂도 부모형제도 생각할 겨를이 없고 단지 우물 밖으로 나가겠다는 한 생각뿐인 것이다.
이렇게 공부하여 3일 내지 7일에 이르러도 깨치지 못하면 내가 발설지옥拔舌地獄에 떨어지겠다고 옛 조사님들은 맹세하였다. 혹은 간절한 마음으로 출입을 끊고 3년만 공부를 잘하면 도를 통한다 하였다.
이와 같이 수도하는 사람도 염념상속念念相續으로 공부를 지어갈 뿐이지 속히 하여야 되겠다든지 이것이 안 된다고 걱정한다든지 하는 것은 모두가 망상일 뿐이다.
만약 급한 생각을 일으키면 육단심肉團心이 동하여 심장, 간장, 신장에 화기가 일어나서 열기가 머리에 오르면 그만 가슴이 답답하고 두통이 나서 공부를 못하게 된다. 수도인은 미리 이러한 병을 알고서 느리지도 않고 속하지도 않게 정진하며 자나 깨나 성성惺惺함이 앞에 나타나면 자연 극히 고요해지고 고요하면 맑아지고, 맑아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통하는 법이다.
비유하자면 만경창파에 빈 배를 타고 태연히 앉은 것과 같이 배가 풍파를 따라 올라가면 올라가고, 내려가면 내려가되 빈 배이기 때문에 엎어질 염려도 없고 배에 앉은 사람도 마음을 비워 물은 물로 보지 않고 육지와 같이 태연히 앉은 사람 같아야 한다. 밖으로 경계에 동함이 없고 안으로 마음에 동하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선정禪定이며 이렇게 정진하면 결단코 시절인연이 돌아온다.
8월 중추가 되면 밤송이가 벌어져 아이가 흔들어도 밤이 떨어지고 바람이 불어도 떨어진다. 밤이 익듯이 공부가 순숙하여지면 결정코 시기가 돌아와 어떤 경계에 부딪혀서 홀연히 본성을 깨닫게 된다. 사업을 하든지 국가의 중책을 가졌든지 가정에 매였든지 모두 도로써 정신 수양을 하여야 한다.
마음이 안정이 되어 물질적 고통이나 정신적 자극을 받지 않으면 마음이 안온하게 된다.
설사 도를 못 깨쳐도 그 정신이 두세 시간만 통일 되면 인내력과 용기가 생기고 관찰력과 판단력이 빨라서 모든 일을 민활하고 정의감으로 처리하게 된다. 사람들을 사랑하고 상벌이 분명하고 항상 낙관적이고 지공무사하여 필경 밝은 사회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정법正法을 일상생활에 화和하여 쓰면 참된 문화민족이 될 것이며 문명국가가 되고 복국안민福國安民이 될 것이다.
하늘의 햇빛은 불기운이지만 그대로 놔두면 불이 붙지 않는다. 돋보기안경으로 종이나 부드러운 쑥 위에 초점을 맞추면 불이 붙듯이 사람의 지혜智慧가 한량없이 많지마는 그 정신을 집중하여야 지혜의 불이 나오는 것이다.
동양삼국東洋三國이 불교가 흥하였을 때 문화가 발달하였다. 문화와 문명은 마음과 정신에서 이루어지는 까닭이다.
비유하자면 농사짓는데 논에 모를 심어 놓으면 벼 눈이 터 움이 나와서 한 이삭에 벼알이 약 이백오십 개 이상이나 붙는다. 모판에 볍씨 서 말을 부어서 모를 심으면 가을에는 마흔 가마에서 예순 가마의 곡식을 거두게 된다. 이렇듯이 한 사람의 희생적으로 생명을 걸고 정진하여 한번 죽는 때를 당해서 다시 살아나는 경우를 겪은 후에 도과道果를 얻으면 국토의 모든 사람과 우주 중생이 그 덕화를 입게 된다. 이러한 결심과 인내심이 없으면 도는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천신만고千辛萬苦를 불구하고 생생한 활기로 정진하여야 한다.
사람이 겁을 내는 것은 목숨을 아껴서 그렇지 목숨을 돌보지 않는다면 어떤 어려움도 이기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도를 닦는 사람은 몸과 마음을 백 천 번 단련하여 이 점을 살펴야 한다.
風吹碧落浮雲盡
月上靑山玉一團
바람이 허공에 불어오니 뜬 구름 흩어지고
청산에 솟은 달은 백옥 같아라
할 한 번하고 법좌에서 내려오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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