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8월 8일 금요일, 비, 흐림.
몽골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난로에 장작불 때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 할머니가 장작불을 때고 있다. 바닥에 누워 잤지만, 새벽에 잠이 들었지만 그래도 자고 일어나니 좋다. 밖으로 나오니 날씨가 잔뜩 흐리고 찬바람이 분다. 안개가 낮게 깔려 그 넓던 초원이 모두 보이지 않을 정도다. 바람이 불고 추우니 양과 염소들이 고개를 서로에게 쳐 박고 움직이지도 않다가, 날이 새니 하나 둘 일어나 바람을 피해서 하나 둘 차 옆으로 모여든다. 염소들도 습기 찬 바람은 싫은 것 같다. 밤새 달려 온 차를 보니 진흙이 튀겨 엉망이다. 추워서 밖에 오래 서 있기도 힘들다. 겔 안으로 들어가 난로 옆에 앉아서 할머니의 요리를 쳐다본다.
큰 솥에 뼈를 삶고 있다. 삶고 있는 동안 할머니는 의자에 앉아 손녀의 머리를 빗어서 묶어주고 있다. 삶아지고 있는 곰국에 뚜껑을 열더니 기름덩어리를 넣는다. 잠시 후에 삶아지고 있는 뼈들을 큰 대접에 꺼내 주신다. 칼도 함께 주신다. 뼈에 붙어있는 고기를 먹어보란다. 칼로 도려내서 먹으니 맛있다. 이럴 때 칼의 사용은 남자들이 한단다. 여자들은 요리할 때 외에는 칼을 들지 않는 것이 관습이란다. 대부분 고기를 잡거나, 고기를 베는 일, 일을 할 때의 칼은 남자들의 몫이란다. 끓고 있는 탕에 양파를 썰어 넣고 이내 포장된 우동을 잘게 끊어 집어넣고 국자로 젓는다. 맛있는 칼국수가 된 것이다.
추운 날 아침에 먹는 국물 있는 양 칼국수는 먹을 만 했다. 갈 때도 식사를 대접해 주시고, 또 재워 주시고, 식사와 맛있는 수태차로 환영해 주시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 선교사님이 미리 준비한 빵과 소시지를 선물로 드린다. 하루 종일 달려야 겨우 들어간다고 아하는 서둔다. 오늘 들어가야지 내일 예배를 드릴 수 있다. 모두 짐을 정리하고 바람이 불지만 겔 앞에서 이별 사진을 찍었다. 손녀딸이 입고 있는 붉은 치마의 끈에는 청정원이라는 한글이 선명하게 보인다. 너무 감사한 대접을 받고 떠나는 것이 아쉽다. 몇 번이고 고개 숙여 감사드리고 돌아선다. 꼬마들 네 명과 아하 동생 부부, 부모님 모두 나와 손을 흔든다.
낡은 화장실이 눈에 띄는 벌판으로 가서 차를 탔다. 여기서 울란바토르까지는 약 500km가 넘는단다. 차는 진흙길을 비틀거리며 간다. 비가 내린다. 초원의 빗방울에 차분하다. 우리가 왔던 불강 방향은 언덕을 올라가야하기에 남쪽으로 돌아가야 한단다. 비가 오다 그치고 또 내린다. 태양은 도무지 볼 수 없을 것 같은 흐린 날이다. 차에서는 시리얼을 꺼내 먹으며 즐거워한다. 차가 달리는 동안 눈을 뜨고 있으면 입도 열려있어 웃고 시끄럽게 얘기하며 분위기가 밝다. 한참을 가다 조용해서 보면, 눈이 감겨있고 몸을 기대어 조용히 차와 함께 흔들리고 입도 다물어져 있어 분위기가 조용하다. 앞에 냇가가 나타나 차가 멈췄다.
작은 냇가였는데 비 때문에 넓은 냇가가 되었단다. 건너갈 곳을 조심스럽게 살핀 후 시동이 걸린다. 모두 긴장, 눈을 크게 뜨고 무사히 건너가길 기도한다. 차는 시동이 꺼지지 않고 무사히 물속을 달려 건너간다.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친다. 건너와 잠시 또 쉰다. 건너 와 냇가를 보니 겁난다. 모두 화장실을 찾아 벌판으로 흩어졌다. 남자는 가까이, 여자는 우산을 들고 좀 더 멀리 가서 해결한다. 또 비가 내린다. 차는 초원을 달린다. 푸른 풀밭의 몽골이 내 마음에 진하게 자리매김했다. 자연 그대로의 빗물이 튀기며 건너는 맛, 수천리길 어여쁜 초원을 달리는 것은 정말이지 옛날 같고 정이 간다. 수목이 없는 중앙아시아 일대의 스텝이라는 초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어쩌면 나무도 없이 이 넓은 초원이 가능하단 말인가. 남쪽의 건조한 스텝도, 북쪽의 더 푸른 스텝도 모두 좋다. 약간의 목재업이 있을 정도로 삼림이 북쪽에 조금 있다. 야생화 곱게 핀 풀밭은 어디가나 멈추어서면 볼 수 있다. 개울에 나무로 만든 작은 다리는 아예 무너졌다. 흩어진 나무를 주워 다시 맞추어놓고 건넌다. 몽골은 한마디로 만리장성이 아니라 만리 초원이다. 사막지대, 산야 모두 초원이다. 남쪽의 고비사막이 전국의 삼분지 일이라고 하지만 일반적인 개념으로 그저 모래만 있는 곳은 아니다. 모래 언덕은 고비 사막 중 3% 뿐이다. 단지 황야일 뿐 그래도 동물이 사는 곳이다. 몽골 땅의 20%를 차지하는 건지성 초원은 강우량이 적기 때문이다. 시베리아 남쪽에 이어진 침엽수림인 타이가를 포함하여 산도 숲이 섞여 있는 초원이고, 나무가 아주 없는 뭉긋한 초원도 많다. 산이라면 수목으로 인식된 우리의 고정 관념 때문에 나무 없이 넓게 펼쳐진 풀밭이 특이하게 보인다. 메마른 초원, 푸른 초원, 산야 초원이라지만 내 눈에는 모두 초원, 초원이다. 소 한 마리씩 끌고 풀 먹이러 다니던 우리의 어린 시절을 보면, 이 만리 초원의 소들은 엄청 행복한 것 같다. 몽골여행에서 부러운 것은 넓은 땅과 일망무제의 목야지다. 삼림이 섞인 산지의 초원은 전구토의 25%를 차지하는데 이것이 바로 헝가리에서 만주까지 이어지는 대초원의 한 부분이다. 아마도 징기스칸이 헝가리까지 정복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초원덕인 것 같다. 말을 타고 달려가다가 말이 쉬고 먹을 것이 충분했으니 징기스칸을 영웅으로 만드는 여건이 초원인 것 같다. 살찐 꼴의 그런 초원에서 낮에는 타고, 싣고 달리고, 밤이면 그 푸른 초원에 풀어 놓으면 되었다. 밤새 말들은 꼴로 배를 채우고 다음날 초원을 달릴 준비를 할 수 있다. 문명화되면서 사라져 가는 초원이 이곳 몽골에서는 아직도 천년의 처녀 초원으로 고스란히 보존되었으니 좋다. 맘껏 야망을 펼쳤던 징기스칸이 청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기록해 본다. 1. 집안이 나쁘다고 탓 하지마라. 2. 가난하다고 말 하지마라. 3.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4. 배운 게 없다고 힘이 약하다고 탓하지 말라. 5.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정인숙 기자가 쓴 글) 하이르흠(Hyrhan)이라는 마을을 지나간다. 검은색 차량이 한 대 지나간다. 차를 보니 반갑다. 또 깨면 시끄럽고, 웃고 자면 모두 조용하다. 초원에는 비가 넓게도 내린다. 울지트(Olziyt)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식당이 하나 있는데 이곳이 마을의 중심지 비슷한가보다. 식당 앞에는 앞서 가던 검은색 차량과 트럭이 주차해 있다. 빨간색 벽돌집이다. 식당에 들어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고기를 먹어야 식사를 한 것 같다는 아하는 양고기와 밥을 시켜주고 우리는 뜨거운 물을 얻어 사발면을 먹기로 했다. 사각으로 된 사발면(도시락)에 뜨거운 물을 붓고 3일된 밥을 넣으니 먹을 만 했다. 거기에 김치가 있으니 얼마니 감사한지, 맛있게 먹었다. 이스라엘 젊은 커플이 와서 차를 태워 달란다. 사유를 들어보니, 푸르공을 개인적으로 계약해서 몽골 사람 한 사람과 기사 그리고 자기들 4명이 홉스굴에 다녀오는 중에 길이 험해졌다고 돈을 더 내야한다고 해서, 계약 위반이라고 하자, 여기에 내려놓고 갔다는 것이다. 짐이 4개나 되고 두 명이라 태울 공간이 없었다. 요금을 먼저 지불했으니 어찌하랴. Pay after!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계약할 때는 항상 요금을 후에 주어야한다. 옛날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에서 겪었던 일이 있다. 요르단에서도.... 우리 차도 인원초과에 짐도 가득하여 도움을 주지 못해 안타깝다. 기다리면 또 차가 온단다. 할 수 없이 그냥 출발했다. 식당 바로 앞에 있는 다리를 건너는데 통행료가 500T이다. 어떤 아주머니가 와서 바를 열어준다. 새로 다리를 만들어 놓고 돈을 번다. 황량한 벌판이다. 초록이, 가을이 오는지 약간 누런 벌판이다. 캄캄해지며 먹구름이 밀려온다. 멀리는 비가 오는 것 같다. 바람이 분다. 끝없이 달려간다. 잠시 서면 모두 내려 운동을 하고 볼일을 본다. 또 차는 달려간다. 지쳤는지 떠드는 사람도 없고, 졸리지도 않은지 창문만 쳐다보며 정신없이 먼 초원만 응시한다. 양떼들이 오랜만에 보인다. 돌밭 초원이다. 갑자기 앞에 강물이 나타난다. 차가 멈추자 모두 내려 강물을 바라본다. 작은 냇가였는데 물이 불어 넓어졌단다. 이걸 어떻게 건너나, 다른 길이 없단다. 트럭이 한 대 오더니, 옆에 서고 뚱뚱한 청년기사가 내린다. 스타렉스도 도착하여 선다. 일본 SUV차량이 먼저 물속을 향해 건너간다. 바퀴가 모두 잠기고 부드럽게 조심스럽게 건너간다. 뒤에 달려 온 25인승 현대버스(신형)가 한국 젊은이들을 태우고 와서는 멈추는 것 같더니, 그대로 물속으로 속도를 내고 들어간다. 앞에서 밀려든 수압에 차는 시동이 꺼지고 뒤로 밀려 물속에 서고 말았다. 수심은 약 50cm 정도 되는 것 같다. 기사가 재빨리 내려 떠내려가는 앞 시그널을 건져낸다. 꼼짝없이 물속에 잠겼다. 다행히도 물살이 약해서 위험은 없어 보인다. 우리 기사도 맘을 결정했는지 타란다. 시동을 걸고 약간 아래쪽으로 들어간다. 긴장, 시동은 꺼지지 않고 바퀴는 굴러간다. 와!, 와! 모두 박수를 쳤다. 건너와서 모두 다음 차들을 응원한다. 스타렉스, 푸르공, 승용차도, 미쓰비씨 지프도 순서대로 천천히 건너온다. 덩치 큰 버스만 무식한 기사의 자만심, 돌발적인 행동으로 실패했다. 날이 저물어가는 데 걱정이다. 물속에 빠진 버스를 줄로 묶어 견인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또 출발했다. 한참을 달려 다신칠링(Dashinchilen)이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포장도로다. 마을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작은 슈퍼 옆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과 같이 아하는 고기에 밥을 시켜주고 우리는 사발면(도시락)에 물을 부어 먹었다. 저녁 7시 30분이다. 동네에는 술 취한 젊은이들이 많다. 두 명이 식당에 와서 자꾸만 말을 건다. 술 취한 사람은 피하는 게 최고다. 식당을 나서서 마을을 좀 걸어보니 월드 비젼 뉴질랜드라는 낡은 간판이 보인다. 바람이 불고 춥다. 다시 차는 달린다. 시원하게 뚫린 도로다. 미국의 모뉴먼트 벨리의 직선도로가 생각난다. 색깔이 좀 우중충하다. 신나게 달린다. 달리는 차가 거의 없다. 비싼 돈 들여 도로를 닦아놔도 달릴 차가 없구나. 몽골의 현실을 본다. 포장은 됐다고 하지만 중간 중간 패여서 조심해야한다. 그래도 초원길 보다 편하다. 날이 어두워졌다. 도로에 가로등이 없어 라이트 불빛만 빛난다. 비가 내린다. 갑자기 포장길이 끊어졌다. 공사 중이란다. 약 30km를 초원길을 달려가야 포장길이 이어진단다. 드디어 악몽 같은 일이 벌어졌다. 차들도 서너 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려가는데 모두 술 취한 차 같다. 길이 진흙 구덩이다. 차에서 내리면 발목이 잠길 정도로 흙탕물이다. 차바퀴가 헛 돌고 옆으로 미끄러진다. 칠흑 같은 밤이다. 대형 트럭은 쳐 박혀서 움직이질 못해 포기했다. 소를 몇 마리 싣고 가던 트럭도 언덕에 비스듬히 누워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묶인 소들만 울어댄다. 기사는 어디 갔을까? 주변의 작은 차들도 힘겹게 헤쳐 간다. 아하 기사의 노련함이 대단하다. 거의 2시간을 진흙 속에서 지그재그로,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하며 사투를 벌였다. 모두 긴장되고 무서워 가슴 졸이며 기도한다. 대부분의 차들이 멈추고 말았는데 우리 차는 줄기차게 헤쳐 나간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다. 포장도로에 겨우 다시 차를 올리고 감사를 드린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모두 잠이 들었다. 교회(종모드)에 도착하니 밤 12시 15분이다. 간단히 기도 모임을 갖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정말 훌륭한 기사를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기적 같은, 기적을 체험한 밤이다. 명군 집에서 자기로 했다. 아하가 사진을 메모리에 저장해 가고 싶다고 해서, 청년들 집을 돌며 하나씩 내려주었다. 치미게 집은 멀었다. 은로체책도 내려주고, 어윤토야와 함께 명군 집으로 갔다. 추운 설날 명절에는 걸어서 교인들 집을 방문한단다. 그러면 음식을 주는데 꼭 먹어야한단다. 명군으로부터 당시의 얘기를 들으며 컴퓨터로 사진을 옮겨 아하의 메모리에 넣어 주었다. 어윤토야는 동영상을 보고 싶다고 해서 잠깐 보여주니 좋단다. 모두 돌아가고 대충 씻은 후 거실에서 침낭을 펴고 잠을 청했다. 새벽 2시가 넘었다. 정말 오늘은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오르뜨르 가 헤 주일 벌씀베나. 오던 길에 차가 멈췄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이곳에 누울 수 있도록 들어서 옮기신 하나님의 손길을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