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는 사람 누가복음 5장 1~11절
김광일 목사(벧엘교회) + 강성열 교수(호남신대 구약학)
답답한 인생을 끝내는 비결이 있다.
세계에서 뛰어난 심리훈련사로서 명성 얻은 대만의 멍화린교수가 저술한‘10일 안에 변신하기’에 사하라 사막 서쪽에 사하라의 중심 한 작은 마을. 매년 적지 않은 여행자들이 이곳을 방문 위해 마을을 찾지만 레빈이 그 곳을 발견하기 전까지 마을은 전혀 개방되지 않은 낙후된 곳. 이곳 사람들은 한 번도 사막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떠나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다. 많은 이들이 척박한 곳을 떠나고 싶어 탈출을 시도했지만 단 한 명도 성공한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어디로 가든지 결국 출발한 곳으로 돌아오고 말았다는 것. 레빈은 답답해서 마을 사람 중 청년 한 명을 데리고 함께 나가기로 했다. 낮에는 충분히 휴식 체력을 아꼈다가 밤에 북극성을 따라 걷다 보면 사막을 벗어날 것이라고 일러 주었었다. 청년 레빈의 말대로 사흘 만에 사막 경계지역에 그 청년은 훗날 사막의 개척자, 개척지 중심에 동상이 세워졌는데, 동상 아래에 이런 글귀가 새겨졌다. ‘새로운 인생은 방향을 찾음으로써 시작된다!’ 자신이 갇힌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방향 설정하고 나아가라. 가만히 숨만 쉬는 이유는 목표가 상실되었거나 일상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죄의 굴레 벗어 새 삶의 비결 북극성 바라봐야 사막 벗어나듯, G 말씀으로 살 때 가능.
교인들 스타일을 재미있게 분류. 교인 중 달구지 같은 사람이 있다. 누군가가 끌어주지 않으면 꼼짝않는 사람. 하늘 나는 연 같은 교인. 항상 높이 올라 가려는 잘 난 척하는 사람. 그러나 실상 실에 매여 더 높이 오르지도 못하고 줄이 끊어 질까봐 위태로운 신앙생활. 고양이 교인. 고양이 늘 머리를 쓰다듬어 줘야 좋아한다. 칭찬받기만 좋아하고 누가 건드리면 금방 할퀼려고 덤벼든다. 럭비공 같은 교인. 종잡을 수가 없다.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른다. 도무지 믿을 수 없다. 어떤 사람은 X마스 트리 같다. 불이 들어왔다 꺼졌다 들쑥날쑥. 믿음이 있다 없다, 기도하다 말다, 교회 나오다 말다, 봉사하다 말다, 껌벅껌벅한다. 반석 같은 성도가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 없D이 주님의 부르심에 '예'하고 바른 응답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충성된 X인입니다.
순종 = 잘 듣고 행동하는 것
히 ‘순종’을 ‘샤마’동사다. ‘순종’의 다른 낱말이 과연 있던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동사는 거의 독점적으로 ‘순종’과 관련된 낱말로 인식돼 있으나 이 동사가 본래부터 ‘순종’을 가리키는 낱말로 정해진 것은 아니다. 사전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이 동사의 뿌리는 ‘듣다(hear)’를 뜻한다. 귀 기울여 듣는 행동을 ‘샤마’라고 한다.
‘샤마’ 동사의 이런 사전적, 문자적 의미가 가장 잘 드러나는 본문은 열왕기상 3:9 본문에, 솔은 기브온에서 일천 번제 드린 후 꿈속에서 G께 간구한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렙 쇼메아)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9). ‘듣는다(샤마)’는 단순히 귀 기울여 듣는 청각 행동만이 아니다. 그것은 귀로 들은 내용을 잘 분별해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포함한다. 백성이 말하는 온갖 상황을 잘 듣고 문제 해결 위해 몸으로 움직이는 행동 다 묶어서 ‘샤마’ 히 지각 동사 신체 감각 행동을 넘어 행동하는 실천적 차원까지도 포함한다.
‘샤마’동사를 ‘순종’ 번역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 그것은 단순히 귀로 듣는 행동만이 아니라, 귀로 들은 내용을 실행하는 차원을 포함하기 때문. 누군가의 말과 명령에 행동하는 것을 ‘샤마’이기에, ‘샤마’는 ‘순종’으로 번역될 수도 있다. 실제 개역개정판은 ‘샤마’를 상당 부분 ‘순종’으로 번역. 그 반대는 더욱 그렇다. ‘순종’ 낱말은 거의 ‘샤마’다.
익숙함을 벗어날 것을 요청하시는 J
예수께서 갈릴리 해변에서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부친과 함께 그물을 깁고 있던 야고보와 요한을 제자로 부르시는 장면. 특히 고기 잡지 못한 베드로에게 어부의 상식과 경험을 벗어나는 명령 하셨다.
4절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갈릴리 어부들은그물을 던졌다. 그곳에 익숙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 여기 ‘깊은 데로’ 원어 ‘바도스’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심연’이란 뜻. ‘깊은 데로 가라’는 명령은 해변으로부터 멀리 가 던지라 즉 먼 곳으로 나아가라. 경험, 지식, 관습을 깨라는 것이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변화하라는 것이다.
“깊은데”는 단순히 익숙함을 버리는 정도가 아니다. 인생의 주인이신 G의 말씀을 근거로 행동하라. 즉, 순종의 문제 “주인이 누구인가?” 믿음 없는 사람들의 주인 ‘두려움’과 ‘욕심’ 우리의 결정의 근거, 행동의 근거는? 돈? 자녀교육? 편안한 삶? 사람들의 의견?
예수께서 ‘깊은 데로 가라’고 ‘깊은 데로 가라’는 명령은 무슨 의미일까?
베드로는 순종. 5절.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말씀에 의지하여’ ‘말씀에 순종하다’ 의미다. 베드로는 예수의 말씀에 권세가 있음을 깨닫고 순종하겠다고 결심. ‘선생님’ 호칭. 즉각적으로 능동적으로 행동한다. 베드로는 자신의 경험을 의지하는 삶에서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
그 결과?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은 물고기를 잡았다. 복 받으려면 실천해야 한다.
‘한 파파이야기’의 저자 폴린 해밀턴은 젊은 시절 매우 반항적, 흡연과 음주 마약에 중독된 삶을 살았다. 거친 인생 살던 중, 오른쪽 폐에서 결핵이 발견 그녀는 극심한 절망으로 자살을 결심 절벽에서 뛰어내리려 했고, 추락 순간 G께서 그녀를 만나주셨다. 이후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극적으로 막아주신 G의 사랑을 알고, G께 모든 것을 내어 드리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뼈에서 칼슘이 빠져나와 조직 속에 고이는 희귀병에서 고침받은 후, 어렵게 이룬 대학교수 안정된 삶도 포기 중국 선교사로 헌신. 그녀는 자신의 생을 마감하기 전 이런 고백을 했다. “희망도 없이 파선된 한 생명을 붙드셔서 G은 저의 인생을 새롭게 빚어가기 시작하셨다. G께서 죽음의 문턱에 있는 저를 건지시고 함께 동행하시며 사용하셨다. 질병의 고통과 선교사역의 어려움 가운데서도 G께서 모든 필요를 채우셨다. 믿음으로 사는 삶이란 모든 일이 잘 되지 않을 때조차 먼저 G을 신뢰함이다. 주님을 따르려면 모든 것 포기 G제일주의 신앙일 때 G께서 제게100배로 돌려주셨다. ”
말씀을 실행자만이 예비하신 복을 받는다. X인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말씀을 실천이다. 수 1장 8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김정주의 저서 ‘안녕, 기독교’ “말씀은 임재를 보장-에덴동산에서 타락한 아담과 하와 클라스”라는 부분에 나오는 내용. 말씀 앞에, 일상적인 삶이 특별해지고, 유혹 앞에서 G과 동행하는 유익을 누린다. 하지만 G의 임재를 벗어난 일상은 우리를 한없는 타락으로 내몰린다. 분명한 것은 G앞에 서서 말씀을 깊이 대하는 삶에 유익이 있다. 매일 말씀을 묵상하는 성도에게 “묵상의 유익은 뭔가요?” 그는 ‘매일 묵상하면 G을 자주 볼 수 있다. ’이 대답의 의미는 뭔가? 묵상하면 G을 자주 만날 수 있나? 묵상과 관계없이 아담과 하와는 모든 것이 갖추어진 에덴 동산에서 타락했으나 예수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결핍된 광야에서 승리. 환경이 에덴같아도 중심에 말씀 없으면 유혹에 굴복 하지만 환경이 광야와 같이 결핍되어어도 중심에 말씀이 있다면 유혹에 굴복 않는다. 환경과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G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것 아니다. 말씀 묵상할 때 G은 우리 안에 임재로 나타나신다. 말씀 깊이 묵상할 때 G의 임재는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든다. 나의 하루가 바뀌어서가 아니라 G이 함께하시기에 하루가 특별하다. 매일 말씀을 깊이 묵상할 때 G과 동행하는 삶이 가능하며 놀라운 기적이 나타난다.
말씀에 순종하여 기적을 경험한 베드로의 반응이 뭔가?
8절.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베드로의 2가지 고백. 첫째, 예수를 ‘선생’에서 ‘주’라 고백하고 자신이 죄인이라 고백한다. 신적 권위 예수의 존재를 고백. 동시에 자신은 초라한 죄인임을 깨닫게 되었다.
베드로는 죄인임을 고백하며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렸다. 무릎 아래 엎드림은 자존심을 포기한다는 뜻, 상대방을 공경한다는 의미다. 동시에 유대인들이 G께 기도하는 자세이다. 베드로는 자신은 거룩하신 G의 권위를 감당하지 못할 죄인이라고 고백하였다. 깊은 물 속의 고기를 보시는 분이 자기 깊은 마음의 죄를 모르실 리가 없다고 여겼다.
고백 이후? 11절.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 ‘따르니라’ 원어로 ‘에콜루데산’ ‘적극적으로 따라가다’는 의미. 예수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고 자신을 발견한 어부들은 예수의 뒤를 적극적으로 따르는 삶. 배와 그물을 버렸다는 것은 삶의 수단을 포기하였다는 의미이다. 인생의 대전환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배와 그물 버리고 주를 따르는 일이 쉬운 일인가? 그들의 결단이 얼마나 위대한가? 소중한 것들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나섰던 어부들처럼 주를 따라가는 결단해야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X를 삶의 분깃으로 선택하여야 한다. 주와 함께 일하는 동역자가 되어야 한다. 깊이 있는 결단을 내리고 예수를 따라가시기 바란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청년시절, 대학 도서관에서 서적들을 살피다가 라틴어성경을 발견하였다. 예배 시간에 읽어주는 복음서와 서신의 일부를 들었지만 성경 전권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 놀라움과 감탄으로 성경 넘기기 시작. 성경 읽으며 고동치는 가슴과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그 중 G께 부르짖었다. “오 G이 성경을 내게 주옵소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경 읽으며 G의 말씀을 들었다. 그 후 그는 성경을 더 깊이 연구하려고 수도원으로 들어가 일과 시간에 시간을 내어 성경을 연구하였고 말씀의 사람이 되어갔다. 그러다가 종교개혁 위기를 맞았다. 1521년 보름스 국회에 소환. 국왕 찰스 5세가 루터에게 최후통첩에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이냐? 한 마디만 하면 살려주겠다. ”이 때 루터가 답한다. “내 잘못이 성경에서 증명되지 않는 한 내 주장을 절대로 바꿀 수 없다. 내 양심은 성경에 붙잡혔다. 닌,M. 양심을 배반할 수 없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주여 나를 도와주소서! ”루터가 종교개혁 성공 까닭은 지속적 성경말씀을 따르는 삶을 살았으며 루터의 양심이 성경에 붙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순종과 관련된 구절들, ‘할라크’ 동사와 ‘아사’ 동사도 ‘샤마’와 나란히 쓰인다. ‘할라크’는 일반적 ‘가다, 오다, 걷다(go, come, walk)’ 뜻의 낱말이며, ‘아사’는 ‘행하다, 만들다(do, make)’는 뜻의 낱말. 순종 뜻하는 ‘샤마’ 동사와 나란히 나오는 ‘할라크’ 경우, 대부분 영어 성경 “walk”로 번역, 의미는 ‘실천하는’ 삶을 가리킨다. 그 까닭에 개역개정판은 ‘순종’과 나오는 ‘할라크’를 ‘행하다’로 번역한다. ‘샤마’ 동사와 나란히 나오는 ‘아사’ 동사도 ‘행하는’ 삶을 가리킨다는 점에서는 그 의미가 거의 같다. 그래서인지 개역개정판은 ‘샤마’ 동사의 문맥에 나오는 ‘아사’를 거의 ‘행하다’로 번역한다.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James Hudson Taylor)에게 중국인이 찾아와서 물었다. “기독교인이 되기로 하였는데 기독교인 되려면 성경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합니까? 교회는 몇 년이나 다녀야 구원받습니까?” 허드슨 선교사는 한 영혼이 회심한 것에 기뻤지만 오해를 풀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구원을 이해할 수 있는 예를 들어주었다. “먼저 저의 질문에 답을 해주셔야 합니다. 초에 불을 붙이면 얼마나 기다려야 빛이 납니까?”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초에 불을 붙이면 바로 빛이 나오지 않습니까?” 당황한 중국인을 쳐다보며 허드슨 선교사는 “네, 잘 알고 계시는군요. 구원도 이와 같다. 성경을 아는 것도 중요하고, 교회 생활을 오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꼭 필요하지 않다. G 받아들이는 순간 구원. 초에 불붙이고 기다릴 필요 없듯 구원 또한 예수를 믿기만 하면 받는다. ”
선교사의 설명에 중국인 기쁨이 충만 그 길로 마을로 돌아가 복음 전하기 시작했다. 믿기로 뜻을 정한 후 바로 X인의 삶을 실천에 옮기는 결단을 한 것. 결단이 없으면 꿈은 이루어지지 않다. 결단 않으면 목표를 이룰 수 없다. 믿음은 중간 지대가 아닌 둘 중 하나를 결단이다. 믿음의 결단은 삶의 경계에서 G을 선택하는 자리에 서는 일이다.
결론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는 주인공 어부 산티아고가 청새치를 잡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내용. 산티아고는 가난하고 늙었지만 쿠바의 유능한 어부인데 그가 죽기 전 꼭 하고 싶은 일. 어부들 사이에 전설 청새치 잡는 것. 산티아고 84일 동안 한 마리도 잡지 못하자 동료 어부들이 산티아고 비웃었으나 산티아고 굴하지 않고 누구도 가보지 않은 망망대해 끝에 배 몰고 가 마침내 청새치를 잡는다. 소설을 통하여 몸도 늙고, 한동안 고기 잡지 못해도 망망대해 깊은 곳까지 가 청새치를 잡는 꿈을 이루는 메시지다.
자기 경험과 지식 의지 얕은 바다다. 얕은 곳에 기적 없다. 기적은 전적으로 주님 의지하는 깊은 곳에서 일어난다. 신앙이 깊어져야 한다. 깊은 데로 나아가라. 무슨 일 하든 주를 전적으로 의지, 힘들고 피곤 지치는 얕은 곳. 주를 전적 의지하는 곳이 기적의 곳.
예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 ’우리의 모습은? 자기 경험과 방법 의지 않습니까? 얕은 데 신앙 안 된다. 얕은 곳 기적이 없다. 깊은 데로 가라. 신앙이 더욱 깊어져야 한다. 부디 말씀 묵상 깊은 데로 나아가라. 죄를 발견 회개하는 깊은 데로 나아가고 결단하며 사명의 깊은 데로 나아가 기적을 체험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첫댓글 전혀 예측불허 같은 귀한말씀 평범한. 관점을 뛰어넘어 큰바다로. 인도해주셔서 뻥. 뚜러주시니. 감사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