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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 맞이한 성탄 마태복음 1장 18~25절 주일설교
성탄 시즌이다.
요셉은 예수님의 육신의 부친이다. 성경에서 크게 부각되는 인물은 아니다. 오늘은 요셉에 대해 묵상해보길 원한다.
평범한 사람, 요셉
요셉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는 제사장도 아니었고,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도 아니었으며, 헤롯당원이나 열심당원도 아니고, 사해지역에서 금욕생활을 하며 메시아를 기다렸던 에센파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갈릴리 나사렛 작은 동네의 평범한 남자로서 목수 일을 착실히 한 사람이었다. 역사에 기록할 만한 이야기 거리라고는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평범한 사람을 쓰신다.
마태복음의 특징 – 구약의 성취
대부분의 학자들은 마태복음이 유대인들을 위한 책이라고 추정한다. 왜냐하면 다른 세 복음서들에 비해 구약성경에 대한 인용구와 언급들이 두드러지게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마태복음에서 구약을 사용할 때 두드러지는 특징이 있는데, ‘성취 형식 인용구’ 형태가 주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선지자... 로 하신 말씀을 성취하려 하심이라’라는 도입구로 시작되는 구절이 무려 10회에 걸쳐 나타난다.(1:22~23; 2:15; 2:17~18; 2:23; 4:14-16; 8:17; 12:17-21; 13:35; 21:4-5; 27:9-10; 참조 2:5-6). 이를 통해 마태는 예수의 탄생과 생애가 구약 예언의 성취라는 사실을 드러내고자는 목적으로 마태복음을 기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이러한 성취 인용구들을 보면, 성취 인용구가 없어도 흐름이 자연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성취 인용구가 삽입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1:18~2:23), 어떤 경우는 성취 인용구를 부각시키려는 목적으로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다(4:13~16; 8:16~17; 12:15~21; 13:34~35). 이러한 점을 보면, 마태는 독자들로 하여금 예수의 생애가 구약의 성취라는 신학적 관점을 명확히 주지할 수 있도록 했음을 알 수 있다.
스탠달(K. Stendahl)은 마태복음 1~2장에 관한 그의 고전적인 논문(‘Quis et Unde? An Analysis of Matthew1-2’)에서 1장은 ‘예수는 누구신가’(quis)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그리고 2장은 ‘예수께서 어디로부터 오셨는가’(unde)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제공해 준다고 제안하였다. 마태복음 1~2장을 어느 정도 깊이 있게 살펴본 독자라면 그의 이러한 제안에 쉽게 공감할 것이다.
마태는 이러한 대답을 철저히 성취의 관점에서 제시해 나간다. 마태복음의 전체적인 관심사가 성취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특히 1-2장에서 마태의 이러한 관심은 두드러진다. 마태복음 전체를 통해 10회에 걸쳐 ‘성취 형식 인용구’가 사용되는데,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네 개가 1~2장에서 발견된다.
1장을 보라. 마태는 예수님이 구약의 약속의 성취로 오신 분이라는 사실을 드러내 보이고자 노력한다. 1-17절까지 그는 예수의 계보를 언급한다. 마태는 이 계보를 이스라엘 전체 역사와 아주 긴밀하게 연관시키고 있고, 다윗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마태는 예수의 기원을 소개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흥미로운 특징들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마태는 예수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를 철저히 요셉의 입장에서 전개한다. 이러한 마태의 전개 방식은 누가가 예수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를 철저히 마리아의 입장에서 전개해 나가고 있다는 점(눅 1:26-56)과 비교해 볼 때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는 요셉이 예수의 기원과 결코 무관한 자가 아님을 보여주고자 한 마태의 관심을 드러내 보여준다. 실 제로 요셉은 예수의 기원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요셉은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 예수님의 탄생이라는 놀라운 일을 이루셨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을 쓰신다.
기드온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300명의 용사와 함께 메뚜기 떼와 같이 많았던 미디안 연합군을 물리친 용사였지만, 처음부터 용사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겁쟁이였고, 소심한 사람이었습니다. 용기가 부족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삿6:11절,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 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을 사사로 부르실 때,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이 두려워서 밀을 포도주 틀에서 숨어서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기드온에게 대장부 다운 모습은 없었습니다. 겁도 많고 소심했던 사람이 틀림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큰 용사여,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했을 때도, 믿음의 장부다운 모습을 보이기 보다는, 확신이 없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은연 중 하나님께 불만을 얘기하고 하나님 탓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지금 이스라엘의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출애굽 당시의 이적들은 다 어디 있느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그 일을 하면 되지 않겠느냐? 그래서 내가 너를 부르러 오지 않았느냐’고 말씀하시자, 기드온은 ‘자기는 작은 자라고 하면서 할 수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삿6:15 “그러나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
하나님은 세상에서 힘있고, 능력 있는 자, 강한 자, 큰 자를 불러 쓰시기 보다는 작은 자, 약한 자, 천한 자들을 불러서 귀하게 쓰신다.
기드온만이 아닙니다.
모세 – 젊었을 때 한 성질했습니다. 욱하는 성질 때문에 살인사건에 휘말렸습니. 그리고 광야로 도망쳐서 살았습니다. 40년간 사막에서 목자로 살았던 사람, 말도 잘 하지 못했던 사람을 하나님은 불러서 쓰십니다. 나이 80이 되었을 때, 다시 불러서 중책을 맡기십니다. 그 때 모세는 어떻게 반응했나요? “나는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합니다. 보낼만한 자를 보내세요”라고 했습니다. 자심감이 결여된 사람이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어떤 반응을 했나요?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선지자로 부름을 받을 때, 아직 부족하고, 말도 잘 할 줄 모른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어떤 사람이었나요?바울은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기 보다, 자기가 얼마나 작은 자인지를 고백했습니다. 고전15: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롬 11:29). 나의 평범을 비범으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붙들고 부르심에 순종하라.
유머. 뛰는 놈과 나는 놈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라는 말이 있다. 이 이야기가 여러 가지로 표현된다.
낙관주의자 : 뛰는 놈도 언젠가는 날 수 있는 때가 온다.
비관주의자 : 뛰는 놈이 떨어지면 넘어지지만, 나는 놈이 떨어지면 죽는다.
생물학자 : 뛰는 놈은 다리가 있고 나는 놈은 날개가 있다.
진화론자 : 뛰는 놈이 진화하면 나는 놈이 된다.
소크라테스 : 뛰는 놈 나는 놈이여, 너 자신을 알라.
성철 : 뛰는 놈은 뛰는 놈이요, 나는 놈은 나는 놈이라.
김 영 삼 : 아침마다 뛰었는데 권력이 다 날아갔다.
김 종 필 : 뛰는 놈 나는 놈 다 죽어도 나는 살아남았다.
약 장 사 : 이 약 한 번 먹어 봐 뛰는 놈이 날 수 있어.
라이트형제 : 나는 놈은 우리가 처음이다.
누구나 뛰는 사람보다는 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누구나 평범한 인생보다는 비범한 인생을 꿈꾸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쓰임받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치즈왕 그래프드
미국의 치즈왕 그래프드를 아십니까? 그는 마차에 치즈를 싣고 다니며 팔던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마차로 장사를 하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비범한 꿈을 꾸었습니다. 미국에서 치즈를 최고 많이 파는 치즈왕이 될 것이라고 비범한 꿈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치즈를 팔러 나가기 전 하나님께 꼭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때마다 판매 전략에 대한 지혜가 떠올랐습니다. 그 전략대로 판매하자 사업이 번창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수많은 트럭으로 치즈를 공급하는 치즈왕, 사장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성공 비결을 묻는 질문에 치즈왕 그래프드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리면 지혜가 생겼고 그것을 실천했을 뿐입니다".
평범함의 능력
요즘 TV 뉴스를 보면 화가 나거나 허탈한 마음이 들어 아예 꺼 둔다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헛헛한 마음은 어제오늘 일만은 아니다. 그런 마음을 파고들어 몇 해 전부터 아이가 아닌 어른들을 위한 컬러북이 인기를 끌고 있다. 색연필로 알록달록 색깔을 채워 나가는 이 컬러북의 인기는 확산 일로다. 미국에서도 2014년에 100만 권 정도 판매되던 이 책이 지난해 1200만 권 팔렸다. 그 종류도 2000종이 넘었다. 어린 시절 놀이하듯 색깔을 칠하는 이 컬러북이 이제는 십자수로 양초, 비누 공예로 확장 중이다. 인터넷 쇼핑몰 옥션에 따르면 양초, 비누공예 상품 판매는 같은 기간 39배 이상 급증했다. 구슬을 꿰어 만든 목걸이 팔찌 등의 판매도 크게 늘었다.
앱스토어에서 포켓몬과 함께 입소문을 탄 모바일 게임은 그냥 손가락을 가져다 대기만 하면 끝이다. 현란한 기술도 필요 없다. 화면을 두드리기만 하면 예쁜 바닷속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시장에 내놓은 지 10일 만에 내려받기가 50만 회를 돌파다.
요즘 인터넷에서 뜨거운 관심을 끌고 있는 영상은 ASMR(자율 감각 쾌락 반응)라는 이름이 붙은 영상이다. 그중에서도 인기 영상은 먹는 소리다. 아이스크림 먹는 소리, 탄산음료 따르는 소리. 이런 소리를 들으면 편안함이 떠올라 잠이 잘 온다는 입소문을 타고 유튜브에만 벌써 570만 개나 되는 영상이 올라와 있다.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불면증 환자는 2010년 29만 명에서 2015년 45만 명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현대인들이 하루에 접하는 정보량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살던 사람이 평생 접한 정보량과 맞먹는다. 뇌에 과부하가 걸리는 건 당연하다. 휴식이 필요하다. 사람들도 쉬고 싶다는 이야기를 입버릇처럼 한다. 그런데도 색칠을 하고, 게임을 하고, 자수를 놓고, 영상을 보고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한다. 멈추는 것을 불안하게 여기는 현대인들은 ‘휴식’을 취할 때조차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스스로 생각을 멈출 수 없는 이들의 선택은 ‘몰입’이다. 부지런히 손과 발을 움직이더라도 머리는 비울 수 있기에.
의로운 사람, 요셉
그러나 요셉은 단순히 평범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었다. 마태는 그를 ‘의로운 사람’이라고 기록한다(19절). ‘의로운 사람’으로 번역된 ‘디카이오스’는 ‘의로운’, ‘정직한’, ‘법률을 준수하는’ 등의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다. 요셉이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며 경건하게 살아가는 사람이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의로운 사람이었던 요셉에게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은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마태는 예수의 동정녀 잉태와 출생을 입증히는 근거를 다른 데서 구하지 않고 구약으로부터 구한다(1:22~23). 그는 성취 도입 형식구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러 하심이니 이르시되”(22절)와 함께 이사야 7:14절 말씀을 인용한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23절)
이러한 구약의 약속이 성취되기 위해 요셉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마태는 16절에서 이렇게 기술한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요셉은 마리아의 남편이었는데 정작 예수는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기술되지 않고 단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고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이러한 질문에 대해 1:18~25은 분명한 대답을 해준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 요셉과는 육체적으로 아무런 상관도 없는 동정녀 잉태와 출생을 하셨다는 것이다. 구약에 예언된 대로 말이다.
당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는 것은 용납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먼저 1:18에서 마리아와 요셉이 맺고 있던 관계인 ‘정혼’은 유대인 사회에서 결혼에 앞서 1년 정도 유지되던 관계이다. 그런데 이 정혼은 오늘날 약혼보다 훨씬 더 강한 법적 구속력을 갖고 있었다. 일단 남녀가 정혼하게 되면 그 둘은 법적으로 부부가 된다. 남자와 여자는 각각 서로에게 남편과 아내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결혼 때까지 함께 살지 않았으며, 따라서 육체적 관계도 금지되어 있었다. 이 정혼 관계는 오로지 이혼이나 죽음에 의해서만 종결될 수 있었다. 그런데 만일 정혼 기간 중에 여자가 부정한 것으로 드러나게 되면, 구약 시대에는 돌로 쳐죽이도록 되어 있었지만(참조. 신 22:20~21) 신약 시대에는 이혼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러한 규범들은 마리아가 처하게 된 상황과 요셉이 직면하게 된 문제를 적절히 설명해 준다. 먼저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만 하였을 뿐 아직 육체적 관계를 갖기 이전에 예수를 잉태하게 되었다(1:18). 그런데 요셉은 ‘율법 앞에 바로 선’(의로운) 사람으로서 이 상황에서 자신의 의사외는 상관없이 마리아와 이혼해야만 하는 법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마리아의 수치가 만인에게 알려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으며, 그래서 그는 두 증인 앞에서 가만히 이혼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처녀가 잉태하여 이혼을 하게 되었다면, 그녀의 부정을 공개적으로 폭로하여 모욕을 주고 돌에 맞아 죽게 하는 것이 관례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에게도 알리지 않고 ‘비밀히’ 그녀와의 관계를 정리하면서, 마리아에게 어떤 피해와 상처도 주지 않으려는 모습을 통해 독자는 요셉의 의로운 면모를 볼 수 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나타나 먼저 사건의 실제 상황을 설명한다. 마리아는 부정한 관계를 통해서 아이를 잉태한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하였으며, 그녀가 잉태한 아이는 다름 아닌 구원자 ‘예수’라는 것이다. 그리고 주의 사자는 요셉에게 마리아를 데려올 것을(즉, 그녀와 결혼할 것을) 명령한다(1:20~21). 주의 사자의 이러한 설명과 명령에 요셉은 적극적으로 반응하여 마리아와 결혼하여 자기 집에 데려와 살게 된다(1:24). 그 결과 예수는 사회적으로 철저히 요셉의 아들로 인식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요셉은 예수님의 출생에 아주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먼저 요셉은 예수께서 다윗의 자손이라 불릴 수 있는 신학적 기반을 제공해 주었다. 특히 앞서 제시된 예수의 계보가 마리아의 조상이 아니라 요셉의 조상을 쫓아가고 있다는 점은 이러한 사실을 확증해 준다(1:16). 또한 요셉은 예수께서 사회적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법적 울타리를 제공한다.
마태는 여기서 예수의 출생과 관련하여 요셉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1:25에서 요셉은, 적어도 본문에 나타난 바에 의하면, 주의 사자가 명령한 것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즉, 요셉은 마리아를 자기 집으로 데려왔지만 그녀가 예수를 낳을 때까지는 그녀와 육체적 관계를 갖지 않았던 것이다.
이타적 유전자 : 이기심의 신화를 깨자(요카이 벤슬러)
편집자주 이 글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2011년 7-8월 호에 실린 요카이 벤클러의 글 'The Unselfish Gene'를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1976년, 진화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저서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에서 "모든 인간이 기꺼이 협동하며 이기심을 버리고 공동의 선을 향해 나아가는 사회는 나를 비롯한 모두가 원하는 이상향이지만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에만 기댄다면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꿈이기도 하다. 관용과 이타심은 가르쳐야 습득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이기적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2006년부터 분위기는 반전되기 시작했다. 하버드대 수학 생물학자 마틴 노왁(Martin Nowak)은 과학잡지 <사이언스(Science)>에 기고한 '협력의 진화론'에서 "진화의 가장 놀라운 면모는 경쟁이 치열한 세상에서 협동하도록 만드는 능력에 있다. 따라서 돌연변이와 자연선택 외에 '자연 협동(natural cooperation)'을 제3의 진화 원칙으로 추가해야 한다"고 적었다.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뿌리 깊은 믿음이 바뀌기 시작한 까닭은 무엇일까? 진화생물학 이론이 발전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라는 관념에 도전하는 흐름은 심리학이나 사회학, 정치학, 실험 경제학 등의 다른 학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다양한 학문에서의 생각이 하나로 모여 인간 행동 및 동기 부여와 관련된 새로운 원리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까지 인간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이기적 이성(self-interested rationality)이라는 믿음이 팽배했다. 정교하게 구축된 합리적 행위자 이론(the rational actor theory)이 인간 행동과 제도, 조직 이론의 근간을 차지했다. 합리적 존재인 인간이 자신의 물질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노력한다는 이론은 인간 행동을 예측하는 훌륭한 도구이기 때문에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상정하고 사회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또한 협력하지 않으려는 이들은 결국 모두에게 해를 가져오기 때문에 최악의 모습을 상정해서 사회 구조를 구축해야 다른 사람의 이타심을 악용하려는 이들로부터 사회를 지킬 수 있다는 믿음도 있었다.
2008년 미국의 금융 및 신용 시스템이 붕괴된 후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전 의장은 미 상원에서 인간의 이기심이 효과적으로 활용됐을 때 얼마나 끔찍한 결과가 발생하는지를 생생하게 표현했다. 그는 "금융기관이 자기 이익을 추구하면서 주주의 자산 가치를 보호할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은, 특히 나는, 충격적인 불신에 빠졌다. 이기적 이성은 지난 40여 년간 비정상적으로 잘 돌아가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인간이 이기적인 동물이라는 폭넓은 확신은 협력에 대한 모순되고 잘못된 가정 때문에 생겼다. 이 중 하나는 철학자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의 1651년 저서 <리바이어던(Leviathan)> 때문이다. 이 책에서 홉스는 모든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이기 때문에 정부 통제가 없으면 근시안적인 이기심으로 서로를 파멸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하나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가 대안적 해결책으로 제시한 '보이지 않는 손(the invisible hand)'이다. 그는 1776년 저서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에서 인간은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고 비용과 편익을 합리적으로 비교해 의사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자유시장에서 이들의 행동은 결국 공공의 이익을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홉스와 스미스의 처방전은 매우 다르지만 '리바이어던'이나 '보이지 않는 손'은 모두 동일한 가정을 하고 있다. 인간의 이기성에 대한 믿음이다.
'이기적 이성' 모델은 보다 많은 학문에 적용할 수 있는 보편 타당한 원칙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이를 가장 먼저 표현한 학문이 경제학이다. 1968년 노벨상 수상자 게리 베커(Gary Becker)는 범죄의 이점과 처벌의 대가를 이성적으로 저울질해서 발각될 가능성을 고려해 실행에 옮기는 범죄자의 계산이야말로 가장 좋은 예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처벌을 더 가혹하게 하고 경찰 단속을 강화해야 범죄를 확실히 단속할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같은 해 가렛 하딘(Garrett Hardin)은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을 제시했다. 이는 누구든 그 숫자에 제한 없이 소를 방목할 수 있는 공유지를 둔 농부들의 이야기다. 놓아기를 수 있는 소 숫자에 제한이 없으면 농부들은 계속해서 가축 수를 늘려간다. 그러다 보면 공유지에 풀이 한 포기도 남지 않게 된다. 하딘은 다른 농부들에게 자리를 빼앗길 것을 염려한 농부들이 멈추지 않고 계속 소 숫자를 늘리면서 공유지를 남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기적 주체인 인간이 공동의 자원을 낭비하지 않도록 규제나 재산권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 하딘의 결론이다.
그러나 생물학과 마찬가지로 경제학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엘리노어 오스트롬(Elinor Ostrom)은 2009년 공유물이 어떻게 수백 년 동안 지속될 수 있는지를 입증해서 노벨상을 받았다. 가장 놀라운 사례는 스페인이다. 이곳에서 수천 명의 농부들은 자율적인 관개를 통해 500년 이상 수자원을 관리해왔다. 또 다른 예로 인구가 5만 명 이상인 미국 도시의 75%는 가혹한 처벌이 아니라 경찰과 지역 주민 간 관계를 인간적으로 관리해 범죄를 줄이는 자율 방범 제도를 성공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새로운 경쟁업체가 등장하면서 발생하는 위기를 제대로 진단하기 위해서는 이기심에 대한 고정관념을 넘어서야 한다. 1999년 마이크로소프트(MS)가 선보인 백과사전 엔카르타(Encarta)는 네트워크화된 정보 경제학이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시장 선도업체 MS는 선점 우위와 네트워크 효과를 활용해 강한 입지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결합상품을 만들어 낮은 비용에 유통했다. 수천 달러에 달하는 육중한 브리태니카(Britannica) 백과사전 32권 세트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 10년 뒤 브리태니카는 결국 다른 모델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브리태니카를 압박한 결정적 제품은 엔카르타가 아니었다. MS는 2009년 엔카르타 판매를 중단했다. 이기적인 이성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업 모델로부터 강한 도전을 받았기 때문이다. 바로 위키피디아(Wikipedia)다.
매달 3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방문하며 전 세계에서 7∼8번째로 방문자 수가 많은 웹 사이트 위키피디아가 독특하다고 생각한다면 사용자 협력 기반의 옐프(Yelp)가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자갓(Zagat)에 물어보거나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포도르(Fodor)에 물어보라. 개방형 소프트웨어의 부상은 그와 유사한 역동성을 불러일으켰다. 15여 년 동안 전 세계 기업들은 웹 어플리케이션에 아파치(Apache)라는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왔고 MS의 서버 소프트웨어가 상당한 격차로 그 뒤를 따르고 있다. 구글(Google)이나 페이스북(Facebook), 크레이그스리스트(Craigslist) 등은 인터넷 사용자의 참여를 이끌어내며 수익을 내는 사업 방식을 찾아냈다. 인간의 이기심을 강조하는 과거 모델로는 예측하거나 실행할 수 없었던 일이다.
이들 조직이 일하는 방식은 인간이 이기적 존재라는 가정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수십 년 동안 경제학자와 정치가, 입법가, 경영진, 엔지니어들은 사람들이 공공ᄋ기업ᄋ지역 사회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하기 위해 인센티브와 보상, 처벌을 활용하는 시스템과 조직을 구축해 왔다. 직원이 더 열심히 일하도록 하려면 성과급제를 도입하고 업무 성과를 꼼꼼히 관찰한다. 경영진이 주주를 위해 일하게 하려면 스톡옵션을 지급한다. 의사가 환자를 더 잘 치료하도록 하려면 의료 과실 소송으로 위협한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서로 힘을 합하고 협력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옳은 일을 하고 공정하게 행동하며 다른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고 자신이 속한 그룹이나 팀을 보살피며 친절에 친절로 보답하는, 예의바른 사람으로 살기 위해 애쓴다. 사회 및 행동 과학 부문의 연구자들이 협력 메커니즘에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되면서 사회의 많은 부문에서 협력 시스템이 도입되고 있다. 인간이 정말로 협력적이며 이타적(혹은 훨씬 덜 이기적)이라는 증거가 여러 학문 분야에서 발견되고 있다. 아마도 인류는 원래 그리 이기적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십수 개의 연구들은 인센티브에 기반한 시스템보다 협력적 시스템이 더 안정적이고 효과적이라는 점을 입증한다. 진화 생물학자나 심리학자들은 협력하는 인간 성향을 뒷받침하는 신경학적 또는 유전적 증거를 찾아내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설명하겠다. 과거 주장과는 완전히 다른, 협력적 개인들과 이들로 구성된 사회가 진화에 훨씬 유리하다는 증거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패턴이 발견된다. 인간의 협동적 행동을 실험한 결과, 약 30%에 달하는 다소 많은 소수의 사람들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이기적으로 행동했다. 그러나 50%는 조직적으로 또한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협력을 택했다. 이들 중에는 조건적으로 협력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친절에는 친절로, 악행에는 악행으로 대응했다.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자신에게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협력을 택했다. (나머지 20%는 예측이 불가능했다. 이들은 협력할 때도 있고 거부할 때도 있었다.)통제된 환경 속에서 관찰한 집단 중 어느 곳에서도 사람들은 일관적으로 이기적이지 않았다.
이는 아마도 당근과 채찍을 사용해 동기를 부여하는 방법이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그보다는 참여와 의사소통, 목적의식과 정체성에 의존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대부분 조직은 인간을 단순히 이기적 존재로만 파악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협력하고 관용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인간의 이기심에 기반해 보상과 처벌을 앞세우는 시스템은 사회적 동기를 지향하는 방식보다 생산성이 낮은 경우가 많다.
이제 우리는 인간 행동에 대한 새로운 가정을 토대로 더 나은 사회 구조를 만들어내야 한다. 인간성에 대해 달라진 믿음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좀 더 관용적인 모델을 갖도록 허락한다. 물론 우리가 모두 테레사 수녀는 아니다. 그랬다면 테레사 수녀가 유명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보다는 인간의 과반수가 기존 이론과 달리 다른 사람과 협력하고 신뢰받을 만하며 자비심을 가진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고 봐야 한다. 이를 인정한다면 악한 모습을 극대화하지 않고도 보다 나은 자신의 모습을 믿으면서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우리는 더 잘할 수 있다.(후략)
이타적인 사람들이 가지는 특징(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타심이란, 보상받으려는 기대 없이 ‘남에게 이익이 되는 마음’을 자발적으로 갖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많은 연구에서 이타적인 사람일수록 더 행복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재미있는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사람들에게 128달러를 주고 아동의 권리 보호, 전쟁 반대 단체 등에 기부 여부와 지지 여부를 결정하게 하면서 fMRI를 촬영하여 뇌의 활성화 영역을 관찰한 것이죠. 기부에 대한 결정은 익명으로 처리되었고, 기부에 사용되지 않고 남은 돈은 참가자가 가질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선택 할 수 있는 옵션은, ① 기부 X, 지지 X ② 기부 X, 지지 O ③ 기부 X, 지지 X ④ 기부 O, 지지 O ⑤ 기부 O, 지지 X 등과 같았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④ 기부 O, 지지 O 하는 행위가 이루어질 때, 가장 고차원의 기능을 수행하는 전전두엽이 활성화되고, 보상중추가 자극되어 좋은 기분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애비게일 마쉬(Abigail March)는 극도로 이타적인 사람들의 특징을 연구하는 심리학자이자 신경과학자입니다. 10대 청소년이던 시절 큰 교통사고를 당해 어쩔 줄을 모르고 차 안에 있던 애비게일. 그는 도로를 지나가던 한 선량한 사람에 의해서 구조되었습니다. 본인의 안전은 상관하지 않고 사고가 나자마자 달려와 주었던 그 사람의 지극한 이타심에 감동받은ᅠ그는 심리학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매우 이타적인 사람들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극히 이타적인 사람들의 뇌 자체가 보통 사람들하고 다르지 않을까 하는 가설을 세우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먼저 극히 이타적인 사람들과 비교 대조하기 위해 지극히 이기적인 사람, 즉 사이코패스의 뇌를 연구하였습니다. 연구 결과는 매우 흥미로웠는데요, 그들은 공포에 질린 표정을 인식하는 편도체가 평균보다 10~20% 작았습니다. 즉,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인식하는 능력 자체가 떨어지는 이들이 사이코패스라는 것이었죠.
그러면 극도로 이타적인 사람의 뇌의 편도체는 사이코패스의 편도체와 많이 달랐을까요? 답은 '그렇다'였습니다. 매우 이타적인 사람의 뇌의 편도체는 평균보다 8% 크다는 것이 밝혀졌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선천적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평생 이타적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걸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이타심은 연습과 훈련을 통해 발전시킬 수 있는 심리적 특질입니다. 그럼ᅠ이타심이 많은 사람의 특징을 살펴볼까요.
첫째, 그들은 동정심의 범위가 넓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제일 가까운 관계라고 여겨지는 가족, 친한 친구에게만 관심을 두는 데 반해서, 이타적인 그들은 관심의 범위가 지인 혹은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확장됩니다.
둘째, 극도로 이타적인 사람은 '탈자기성'을 가집니다. 이타적인 사람은 전체 속에서의 '나'로서ᅠ살아갑니다. 보통 사람들이 '나'에게 그 일이 이익인가?를 먼저 생각하지만, '나를 포함한 우리'에게 그 일이 이익인가?를 묻는 것이ᅠ이타적인 사람들의 기본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개념이 가족 > 친구 > 지역사회 혹은 인간 > 동물 > 생명체처럼 범위가 넓어질수록 더 이타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플라스틱이나 비닐 같은 재활용이 어려운 물건을 사용할 때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그것이 나에게 무슨 소용인가?' 혹은 '플라스틱이나 비닐을 사용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나는 번거로워서 그냥 쓰련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타적인 이들은 '나'라는 한 사람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오염되고 있는 우리나라, 혹은 지구, 우주 등 넓은 '전체'에서의 부분으로서'나'를 인식합니다.
이렇듯 이타주의는 내가 손해 보더라도 타인을 위한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결국 전체 속에서 나를 바라보는 관점은 뇌의 보상체계를 활성화해 행복감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탄은 온세상을 복되게 하는 기쁜 소식이다. 세상은 평범하지만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을 통해 복을 받는다.
성공의 열쇠, '이타적 행동'(김영기 조직리더십코칭원 대표)
출처 : 월간 인재경영(http://www.abouthr.co.kr)
스트레스 연구의 선구자 한스 셀레(Hans Selye) 박사는 “남을 돕는 이타주의는 가장 이기적인 사람이 하는 행동이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였다. 언뜻 보기에 틀린 말 같지만 틀린 말이 아니다. 실제로 남을 배려하고 봉사하는 등의 이타적 행동을 하는 직장인은 조직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다.
학자들은 직장인들이 주어진 역할만 수행하는 차원을 넘어서 동료나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이타적 행동을 하는 것을 두고 “조직시민행동(Organizational Citizen Behavior, OCB)”이라고 부른다. 모범 시민이 사회 공동체를 위해서 선량한 행동을 하는 것에 비유해서 생겨난 용어이다. 오간(Organ) 교수는 조직시민행동을 “마땅히 해야 할 의무는 아니지만, 또 공식적인 보상이 따르지는 않지만 자발적으로 규정 이상의 일을 수행함으로써 조직에 도움을 주는 행동”이라고 정의하였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행동을 ‘직장인의 이타적 행동’으로 명명하겠다.
언뜻 생각하기에 경쟁적 관계에 있는 직장 생활에서 남에게 베푸는 이타적 행동을 하는 것은 손해 보는 일이 될 것 같다. 이에 대하여 와튼 스쿨의 그랜트 교수가 실증적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그는 자신의 책 『Give and Take』에서 “베푸는 사람이 성공한다.”고 주장하며, 그 이유를 사례를 통하여 제시하고 있다. 그랜트 교수는 인간 관계에서 사람들은 다음의 세 가지 유형 중 하나에 속한다고 했다.
(1) 주기를 좋아하는 기버(Giver)
(2) 준 것보다 더 많이 받기를 바라는 테이커(Taker)
(3) 받은 만큼 되돌려주는 매처 (Matcher)
세 가지 유형 중 누가 가장 성공할 확률이 높을까? 놀랍게도 연구결과는 기버가 성공할 확률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영업 사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최고 영업 사원은 기버로, 테이커와 매처보다 50% 높은 실적을 올렸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이타적 행동을 하는 직장인의 성공 확률이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통신과 교통의 발달로 세상 사람들이 더욱더 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독립적으로 일했지만, 요즘은 많은 조직이 협업을 하고 팀으로 일한다. 여기에 소셜 미디어가 힘을 더한다. 실제로 페이스북 프로필만으로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낼 수 있는 게 요즘 세상이다. 나쁜 사람은 금방 들통 나게 돼 있다.
직장에서 이타적 행동으로 얻게 되는 열매
“이타적 행동은 결국 스스로를 이롭게하는 것이다”라고 말할 때, 여전히 “과연 그럴까?”라고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타적 행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혜택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자. 관련 전문가들은 이타적 행동으로 얻을 수 있는 혜택을 크게 다음의 4가지 정도로 요약하고 있다.
(1) 조직 내 우군의 확보
(2) 타인과의 우호적 관계
(3) 회사 발전에 기여
(4) 심리적 충족감
첫째, 조직 내 우군의 확보
사회학자 로버트 도이치기 개발한 ‘도이치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인간관계에서 “우리가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할수록 우리 주변의 사람들도 비슷한 방법으로 행동하게 된다.”라는 것으로, ‘호혜성의 법칙’이라고도 한다. 한 사람이 협조적으로행동하면 상대방도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게 되는 인간관계의 특성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몇 년에서 몇 십 년을 직장에서 근무하게 된다. 즉, 직장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은 일회성 만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되는 장기간의 관계이다. 따라서 고질적으로 이기적 행동을 테이커(Taker)가 아니라면 내가 이타적 행동을 하면 상대방도 나를 도와주는 우군이 된다. 당장에는 보상이 없는 경우라도 장기적으로는 나의 이타적 행동이 상대에게 씨앗을 뿌리고, 그 씨앗은 직·간접적으로 열매가 되어 돌아오게 되어 있다.
‘기업의 별’이라 불리는 임원이 되는 데에는 두 가지 요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한가지가 업무 능력이라면 다른 한 가지는 평판 또는 우호적 관계 역량이다. 조직에서 좋은 평판을 축적하는 데 이타적 행동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둘째, 타인과의 우호적 관계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관계이다”라는 말이 있다. 직장 생활에서도 구성원들과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행복한 직장 생활에 관건이 된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MBA 과정에서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당신이 지금까지의 성공을 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요인은 무엇인가?”라는 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이 질문에 놀랍게도 93%가 능력, 기회 등이 아니라 ‘매너’와 ‘우호적 인간관계’를 꼽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좋은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하여 경조사를 찾아다니는 것에서부터 SNS를 통하여 생일을 축하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노력을 경주한다. 이러한 다양한 행동 중에서도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평소 직장 생활을 하는 가운데 이타적 행동을 지속하는 것이다.
셋째, 공동체(회사, 국가) 발전에 기여
성공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현자는 “자신이 태어났을 때보다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긍정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사람은 자신이 아닌 타인이나 공동체를 위해 헌신할 때 기쁨과 긍정의 에너지를 느낀다고 한다.
직장인도 자신의 행동이 회사의 발전과 나아가 국가의 발전에 기여한다고 느낄 때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게 돼 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으로 유명한 스티븐 코비는 말한다. “세상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이기적인 인간은 진정한 기쁨을 얻을 수 없다. 사람은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고 느낄 때 기쁨이 샘솟는다.”
넷째, 심리적 충만감
긍정심리학자 셀리그먼 박사는 ‘재미와 이타주의’라는 연구에서 학생들에게 이기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활동과 이타주의를 실천하는 활동을 각각 한 가지씩 하게 하였다. 그리고 두 가지 활동에서 느낀 소감을 물었다.
그 결과, 영화를 보거나 아이스크림을 먹는 등의 재미있는 활동에서 느끼는 감흥은 그 순간의 즐거움에 그쳤지만 자원봉사 등 남을 돕는 이타적 행동을 했을 때의 기쁨은 오래 지속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또한 재미를 추구하는 활동은 단순한 즐거움을 주었지만 봉사는 마음속 깊은 곳에 울림을 주는 한 차원 높은 기쁨을 주었다. 그 이유에 대하여 셀리그먼은 이타적 행동을 하면 심리적 충만감이 따라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세상에 즐거운 일은 없다. 현재 하는 일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요 몇 년 사이 불경기가 지속되면서 많은 직장인들이 성과달성에 대한 부담으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직장 생활이 한다고 토로한다. 지금과 같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얼마든지 보람 있고 즐거운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 이타적 행동에 그 답이 있다.
에리히 프롬은『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상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오해가 있다. 그것은 ‘준다는 것은 무엇인가 빼앗기는 것, 희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는 것은 자신의 잠재적 능력을 발현시킬 수 있는 최고의 표현이다. 준다고 하는 행위 자체에서 나의 힘, 나의 능력을 경험하고 그 과정에 내면의 기쁨을 느끼게 된다.”
이상으로 이타적 행동으로 얻게 되는 보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정리하면, △ 조직 내 우군이 늘어나며 △ 타인과의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여 스트레스가 적고 △ 회사 발전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을 느끼며 △ 심리적 충족감으로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요컨대 이타적 행동은 ‘행복한 성공’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는 촉매제인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성공은 했지만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에는 실패한 사람이 있다. 즉, 누구나 부러워하는 높은 자리에 오르거나 많은 연봉을 받지만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경우다. 이에 대해 알버트 슈바이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공이 행복의 열쇠가 아니라 행복이 성공의 열쇠다. 행복한 사람으로 찬양 받을 만한 사람은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준 사람이다.”
HR담당자들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서번트 리더십’이라는 용어가 있다. 그린리프(R. Greenleaf)라는 학자가 개발한 리더십으로, 그린리프는 헤르만 헤세의『동방순례』에 나오는 레오의 이야기를 통해 서번트 리더십의 개념을 설명한다. 순례자들과 동행하는 레오는 순례자들의 식사를 준비하거나 순례자들의 피로를 풀어주기 위해 음악을 연주하는 등의 소위 허드렛일을 하는 아랫사람이었다. 레오는 즐거운 마음으로 순례자들을 보살피고 배려했다. 그러던 어느 날 레오가 갑자기 사라졌다. 그러자 순례자들은 당황해하며 심지어는 서로 싸우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때에 사람들은 깨닫게 되었다. 레오가 비록 낮은 위치에 있었지만 순례자들의 진정한 리더였다는 것을.
“작은 일을 하는 것을 보고 큰일을 맡긴다.” 또는 “일을 하는 태도가 그 사람이 누구인가를 말해 준다”라는 말이 있다. 성공하고 싶다면 다른 사람을 위해 기꺼이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레오의 이타적 행동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결론
올해도 차가운 날씨와 더불어 찾아오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으며, 우리는 화평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기보다는 ‘선물’을 떠올린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드린 예물은 참으로 소중하고 가장 아름다운 예물이었다. 크리스마스 때 선물을 주고받는 풍습도 이 동박박사들의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동방박사들의 예물 못지 않은 아름다운 선물을 주고받은 것이 <크리스마스 선물>에 나오는 짐과 델라다. 이 작품은 오 헨리(O Henry, 1862∼1910)가 쓴 단편소설이다. 그의 본명은 윌리엄 시드니 포터(William Sydeny Porter)이다. 그는 어렸을 때 모친을 잃었을 뿐 아니라 가난했기 때문에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한때 어느 은행에 근무한 일이 있었는데, 거기서 1,000달러를 횡령했다는 혐의를 받고 고소당하여 5년의 실형을 받았다. 그는 교도소 생활을 하는 가운데 개심하게 되고 외동딸을 위한 생계 수단의 일환으로 단편 몇 편을 써서 신문 잡지에 투고하였다. 이 때부터 사용한 필명이 오 헨리다. 이 작품들이 뜻밖에 큰 인기를 얻어서, 그가 출옥했을 때는 미국의 유명한 단편 작가가 되어 있었다. 1910년 6월 5일, 47세로 일생을 마칠 때까지 8년 간 그는 거의 600여 편에 달하는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커튼을 걷어 주게, 뉴욕을 볼 수 있게, 어둠 속에서 가고 싶지는 않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가 남긴 많은 작품 중에서 이 때쯤 되면 생각나는 작품이 일명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작품이다. 미국의 어느 한 도시에 짐과 델라라는 가난한 젊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도시 중심가에 찬란한 조명등과 장식들이 등장하고 쇼 윈도에는 화려하게 꾸며놓은 크리스마스 트리가 오고 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가슴 설레게 하는 풍경 탓이었는지, 젊은 부부 짐과 델라는 각기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선물을 해 주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델라가 가지고 있는 돈이라고는 1달러 87센트뿐이었다. 그녀는 시계줄이 없는 회중시계를 항상 지니고 다니는 남편에게 시계줄을 사주는 것이 가장 귀한 선물이 되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시계줄도 괜찮다 싶은 것은 20달러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델라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도저히 그것을 살 수가 없었다. 궁리 끝에 그녀는 그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팔기로 작정하였다. 긴 머리카락을 팔아 준비한 돈을 가지고 그녀는 시계줄을 샀다. 마침내 성탄의 밤이 되었다. 이 가난한 젊은 부부는 한 자리에 마주 앉아 가슴 설레며 선물을 풀었다. 스카프로 머리를 두른 델라가 먼저 시계줄을 짐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 순간 짐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왜냐하면 델라에게 줄 선물로 머리 빗을 사기 위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소중하게 여기던 회중시계를 팔았기 때문이었다. 델라가 스카프를 벗는 순간 짐은 또 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델라의 긴 머리카락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에 그들은 가슴으로 뜨겁게 서로 포옹하였다. 각자 준비한 선물은 쓸모 없게 되었지만 그들의 선물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한 선물이었다. 그것은 그들의 맑고 깨끗한 마음과 순결한 사랑의 선물로서 실로 가장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짐과 델라의 선물이 아무리 귀하고 아름답다고 하나, 저 하늘을 버리고 이 세상 낮은 곳까지 찾아오셔서 우리 같은 미천한 죄인들을 위하여 목숨까지 버리신 주님의 그 사랑(선물) 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주님은 가장 존귀하고 최선의 선물을 우리들에게 주셨다. 구원이라는 최고의 선물을 가지고 이 세상에 찾아오신 주님께 우리는 무슨 선물을 드리면 좋을까?
미국의 한 현대 작가는 오늘의 크리스마스를 이런 이야기로 풍자하였다. 이글(Eagle)이란 화려한 백화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값비싼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느라고 혈안이 되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그 군중이 사라진 다음 카운터 앞에는 한 30대 청년이 사람들의 발에 밟혀 죽어 있었다. 옷은 남루하고 영양실조에 걸렸으며 신분증도 없었다. 그런데 그 손에는 못자국이 있었다고 한다.
어느새 세상적 소비주의에 물들어 이기적인 크리스마스를 보내지 않기를 소망한다. 바라기는 요셉을 묵상하며, 온세상을 복되게 하는 성탄의 계절을 보내는 성도들이 되시길 축복한다.
(민찬기목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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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장문에 내용 읽는데 점점 빠져들게 하시오니 깊은감사요
늦게본것이 죄송스럽고 아쉽습니다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