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늦은, 그리고 너무나 긴 수업 후기입니다...(....) 혼동을 피하기 위해 텍스트에서 인용하는 문장은 기본적으로 보라색으로 썼고, 빨간색은 설명 덧붙힘, 파란색은 선생님이 표시하신 좋은 표현들. 가끔 색깔을 바꿔 쓸 때가 있었는데 그때는 미리 명시했으니 읽기 무리 없을 것 같다고 제맘대로 생각해봅니다 ㅎㅎㅎ 자, 그럼 시작-
* 텍스트에 들어가기 전에-
1. <새들은 죽어서 페루에 가다> 과제 문제 중에 ‘47세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는 것이 있고, 텍스트 안에서 주인공이 47세에 대해 서술한 부분도 있는데, 그래서 이 텍스트에 들어가기 전에 ‘시간성’, ‘나이’라는 것의 개념에 대해 미리 이야기해보자.
2. 사람들이 20세에 대해서 A, 30세에 대해서 B, 40세에 대해서 C라고 정의내릴 때, 사실 이 A,B,C 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거기에서 ‘나이’라는 것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A를 20세가 아닌, 30세나 40세에 갖다 붙여도, B를 30세가 아닌, 20세, 40세에 갖다 붙여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예를 들면 누군가 20세는 “많은 것들을 시작할 수 있는 나이”라고 정의했다고 하자. “많은 것들을 시작할 수 있는 나이”는, 30세, 40세, 50세, 60세, 모든 나이에 다 유효할 수 있는 정의다. 누군가 40세는 “어느 정도 자리 잡아야 하는 나이”라고 했다고 하자. 누군가에게 이것은 20세에 대한 정의가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이것은 50세가 될 수도 있다. “A라는 나이는, B이다“라고, 모두에게 통용되는 fact를 만들어내는 정의는 없다. 즉, 바로 이 ‘나이’라는 것은 실질적으로 존재한다기보다 인간의 관념이 만들어낸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3. 당신이 지금 명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명상을 하고 있으면 생각이나 마음속으로는 시간이 못 들어온다. 예를 들면 “배고프다”라는 생각. 여기 어디에 ‘시간성’이 있는가? “새가 울고 있나보다” 여기에도 시간성은 들어가 있지 않다. “지금 주변이 어둑어둑한 것이 저녁이 되었네”, 여기에는 얼핏 시간성이 들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시간에 대해서 생각하는 하나의 관념’일 뿐, 이 안에도 시간성이 들어있지 않다. 대신에 시간은 팔/다리로 간다. 명상을 하는 시간이 오래될수록, 팔 다리가 뻐근해져간다든지, 명상이 3년이라면 그 사이 팔/다리는 늙어간다든지. 이렇게 ‘시간성’이 끼어든다. 즉, ‘시간’이라는 것은 머릿속에서 자기가 자기 나름의 사유와 관념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리는 계속 시간에 우리 자신을 귀속시키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4. 다시 위 2,3번을 요약해보자. 2번에서 ‘나이에 대한 어떤 (관념과 사유에서 나온) 정의’- 자신이 자의적으로 만들어낸 정의-가 모든 나이를 초월한다는 것을 말했고, 3번에서 시간이 인간의 육체에 시간성을 더할 수는 있지만 ‘관념과 사유’에는 시간성을 더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했는데. 그러므로 ‘관념과 사유’는 모든 세대를 초월한다.
- 그러므로 100년전에도, 1000년전에도, 지금에도, 인간의 ‘관념과 사유에서 만들어진 고민들’에는 굉장히 비슷한 구석들이 많다. 예를 들면 모성애라든가, 질투의 감정이라든가, 사랑에 대한 고민 등등. 시대나 장소에 따라 그 디테일이 되는 배경이 달라질수는 있어도, 그 뼈대를 이루는 고민들은 결국 비슷하다. 오이티푸스 콤플렉스 같은, 고전부터 내려오는 테마가 여전히 현대물에도 버젓이 등장하는 것을 보라. 이렇게 ‘‘관념과 사유에서 만들어진 여러 가지 고민들’은 세대를 초월한다. 인간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부분들은 100년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비슷한 것이다.
- 이렇게 시간성이 없는, 시간성을 초월한, 인간의 자의식 같은 부분을 건져내고 딱 잡아주는 것이 문학이 하는 큰 역할 중 하나다. 시간성을 초월해서 인간에게 근본적인 질문과 고민을 던져주는 것.
로맹가리-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 다 읽고 나면 한 120매정도 분량의 소설을 읽은 것 같은 느낌인데 실제로 보면 78매에 다 이야기했다. 굉장히 압축적으로 잘 쓰인 소설
- 47살의 남자의 사랑 이야기다. 마치 사랑이 식어버린 여자를 마지막으로 만나는 날의 기분 같이 인생의 마지막 (아홉 번째)의 비루한 사랑이야기다. 그다지 새롭지 않은, 아니, 굉장히 통속적인 이야기다. 통속적인 이유: 아홉 번째라는 숫자를 사랑이나 연애 경험, 여자를 세는 데에 붙이는 것 자체가 사실 굉장히 촌스럽고 통속적이다. 그리고 가만히 읽어보면 이 여자가 단지 예뻐서 반했을 뿐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홉 번째’라는 것이 촌스럽게 느껴지지 않고 애잔하게 느껴지며, 소설이 결코 범상치 않다. 통속적인 이야기인데도, 그 통속성을 넘어서게 하는 힘이 있다. 일단 배경. <장마>나 <달에 울다>에서 보았듯이 배경에서 자연과의 교감은 매우 중요하다. 이 소설에서는 <장마>의 장마나 <달에 울다>의 사과나무 대신, 구아노석 섬에서 북쪽 십 키로 떨어진 3킬로 해변으로 와서 죽는 새들이 그 배경 역할을 한다. 그 배경 설정 자체가 이미 매력적이지만, 화자는 만나게 되는 여자와 이 새들을 교묘하게 병치시킨다. (빨간 부분. 파란 부분은 인상적인 표현들)
이를테면 첫 만남에서-
“그는 층계를 내려서서 여자를 향하여 달렸다. 때때로 발밑에 새가 밟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은 이미 죽어 있었다. 새들은 항상 밤에 죽어갔다. 그는 자기가 도착했을 때는 너무 늦은 것이리라고 생각했다. 조금 더 큰 파도가 한번 덮쳐오고 나면 경찰에 전화를 걸고 질문에 대답하는 등 귀찮은 일들이 시작될 것이었다. 그는 마침내 여자 곁에 이르러서 그의 팔을 잡았다.”
“그는 이 여자가 여기서 무엇을 하는 중이었을까, 어디서 오는 길일까 하고 마음속으로 묻고 있었다. 외딴 바닷가 모래밭 위 죽은 새들 가운데 아침 여섯시에 금과 다이아몬드와 에메랄드를 달고 서서 무엇을 하는 것인가.
“그러나 여자는 얼마나 젊고 얼마나 속수무책인 모습이었는지, 그 여자가 얼마나 믿음에 가득 찬 눈길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는 얼마나 많은 새들이 이 모래언덕 위로 숨을 거두려고 찾아오는 것을 보았는지, 그중 한 마리를, 그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 마리를 구하고 그를 보호하고 여기 세상의 끝에서 자기 혼자서 가진다는 생각, 뜀박질의 그 마지막에 와서 이렇게 하여 인생을 성공시킨다는 생각은 아이러닉한 그의 웃음과 환멸에 찬 그의 표정이 아직도 감추려고 애를 쓰는 그 모든 순진함을 단숨에 되돌려주는 것이었다. 그토록 별것 아닌 작은 일로써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그 여자는 아마도 무엇 때문에 그 자신이 모래언덕 위에 흘러와 낙착되었는지를 말해줄 수 있는 유일한 새일 것이다.”
- 이 여자에 대한 생생한 묘사들은 이렇다:
“그 여자는 어깨를 으쓱했다. 두 눈이 온통 자리를 다 차지하는 어린애 얼굴이었다. ”
“여자에게서는 어찌나 상처받기 쉬운 모습이 엿보였는지 맑은 두 눈, 약간 커지고 요동하지 않는 두 눈 속에는 두 어깨가 부드럽게 흔들리는 모습 속에는 어찌나 강한 순진함이 담겨 있었는지 주위의 세계가 문득 훨씬 가볍고 떠받들기 쉽게 보였고,”
여자는 뭔가 시련을 겪고 있는 듯 보인다. 거기에 대한 여자의 설명을 이렇다.
“길에 서서 카니발 군중들 속에 싸여 있는 중인데 그들이 나를 강제로 차에 떠밀어 싣고는 여기까지 끌고 왔어요. 그리고 나서.....그리고 나서....」”
“「끝장을 내고 싶었어요. 끝장을 내야 해요. 나는 더 이상 살수가 없어요. 살고 싶지도 않아요. 내 몸이 구역질나요.」”
“여자는 여전히 두 눈을 감고 있었다. 그의 입술이 약간 떨렸다. 그는 이토록 맑은 얼굴을 한번도 본 일이 없었다. 그리고 나서 여자는 눈을 뜨고 바라보았다. 마치 구걸하는 듯한 눈길로. / 「내가 역겹지 않으세요?」/그는 몸을 숙여서 입술에 키스를 했다.”
- 그리고 나중에 다시 세 명의 인물이 나온다. 남편, 하인, 운전수. 영국인인 남편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프랑스에서 이 년이나 살았는데 아무런 효과가 없었거든요. 저자들 역시 별 효과가 없었다는 것이 확실하지요」하고 영국인은 모래언덕 쪽으로 지팡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지옥과 저주라구. 이 친구야, 지옥과 저주, 이게 바로 적합한 말이지.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졌어. 이게 내가 그 여자와 마지막 하는 세계일주야.”
....등등, 나온 정보들로 보아 영국인과 여자는 엄청난 부자인데 무언가 불화를 일으키고 있고 여행 중이며, 여자는 뭔가에 환멸을 느끼고 있고, 남자는 뭔가를 강요하고 있다. 그런데 저게 도대체 뭔지 잘 모른다. 불감증 이야기일 수도 있고 임신 이야기일 수도 있고... 그 실체가 뭔지 애매하게 설명되어 있다. 예를들어, 다음과 같은 부분들은 아무리 다시 읽어도 애매 모호하다.
「나도 걱정이 되기 시작했으니까. 여보, 어떻게 좋게 끝나겠지 하고 자동차 안에서 꾹 참고 기다린 지 네 시간이나 되었소./ 「여보, 이건 순전히 절망감 때문이오. 네 시간 동안이나 차안에서 기다리다 보면 별 생각이 다 나니까....내가 이 세상에서 최고로 행복한 남자는 못 된다는 것을 당신도 인정할 테지.」
네 시간이나 자동차에서 기다린 것이 무슨 의미인지, 저 자동차 이야기가 도대체 뭔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그게 이 소설에서 별로 중요하지도 않아보인다.
- 그러나 이 소설에서 가장 탁월한 인물은 아마도 주인공일 것이다. 우선 그의 화려한 이력이 독자들을 압도한다.
“약간은 시인이 되고 약간은 꿈에 젖고....그리하여 스페인에서 투쟁하고 프랑스에서 항독 지하운동에 참가하고 쿠바에서 싸우고 난 뒤에 이렇게 페루의 안데스 산맥 밑, 모든 것이 끝나는 바닷가에 와서 숨어 살게 된다. 왜냐하면 나이가 마흔일곱쯤 되고 보면 그래도 배울 만한 자신의 교훈은 체득한 셈이고 위대한 목적에도 아름다운 여자에도 이제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니까. 다만 아름다운 풍경으로 마음의 위안을 찾게 된다. 풍경이란 거의 배반하는 법이 없다.”
시인, 스페인 투쟁, 프랑스 지하운동, 쿠바 전투... 놀라운 경력이다. 하지만 저런 것은 주인공에 대한 외적 요약이라서 독자의 시선을 순간적으로 혹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독자가 큰 감흥을 느끼게 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 주인공이 갖고 있는 섬세한 내적 감수성이 독자를 움직이다. 이러한 화려한 이력 뒤에 숨어사는 자 특유의, 세상을 허무하게 관조하는 시선이 우리를 압도한다.
“그는 죽어버리고 싶은 강한 욕구를 느끼면서 조롱하듯이 생각했다. 외로움이 때때로 아침이면 그를 이같이 엄습하곤 했다. 우리의 숨을 돌리게 해주기는커녕 아주 짓눌러버리는 것 같은 좋지 못한 외로움 말이다. 그는 도르래 쪽으로 몸을 숙이고 밧줄을 잡아서 가교를 내려놓고 안으로 들어가 면도를 하면서 여느 아침이나 마찬가지로 깜작 놀라면서 거울 속에 비친 자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가 바랐던 것은 이게 아닌데!」하고 우스꽝스러운 목소리로 혼자말을 했다. 이 모든 흰머리며 주름살을 보면 일이 년 후쯤 어떤 꼴이 될지는 뻔한 노릇이었다. 이쯤 되고 보면 이제 남은 길이라고는 점잖은 스타일 쪽으로 몸을 숨기는 것뿐이다. 얼굴은 길고 여위었으며 피곤한 두 눈, 그래 봐야 별수 없는 아이러닉한 웃음. 그는 이제 아무에게도 편지를 쓰지 않았고 편지를 받는 일도 없었고 아는 사람도 하나 없었다. 자기자신과 헛되이 절교하려는 사람이 다 그러하듯 그는 다른 사람들과 인연을 끊어버렸다. -> 이런 것이 바로 놀라운 표현. 그냥 ‘다른 사람과 연락을 안했다”라고 표현하면, 재미없었을텐데, 이렇게 표현해준다. “사람들에게 연락안하는 것이 그들이 싫어서가 아니라 과거, 과거의 나 자신과 헤어지고 싶어서 그렇다”는 것을, 이렇게 압축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문장 하나로 표현해주는 것이다. 이런 감수성. 이것은 정말 찾아내기 힘든 표현이다. 우리가 흔히들 느끼는 감수성인데, 그래서 읽으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감수성인데, 이걸 어떻게 이렇게 표현했을까.!!!
사실 이 남자 정도의 화려한 경험을 했으면, 세상에 대해 다 아는 것 같이 굉장히 젠체하고 그랬을 것 같은데 이 남자는 결코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냉소나 체념에 빠지지도 않았다. 이 남자는 다 체념하고 바닷가에 있지만 냉소나 체념에 젖어있는 것이 아니라, 섬세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굉장한 문장들로 표현해내고 있다. 그는 권총을 준비하려고 하다가도 이런 생각을 하는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유리문을 통하여 모래언덕 밑에 있는 세 사람의 남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잠자리 머리맡 탁자 서랍 속에 권총을 한 자루 넣어두고 있었다. 그러나 곧 그 생각을 포기했다. 저 사람들은 결국 저 혼자서들 죽고 말 것이다. 잘만 하면 그쪽이 훨씬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 이 사람의 매력을 확 보여주는 장면. 다른 사람들이었으면 이런 때에 자기 방어를 하기 위해서라도 총을 준비할텐데 전쟁터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이 사람은 1) 이 정도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2) 심지어 그걸 나중에 유머로 넘긴다. (그래, 그렇게 살아라, 그런 형벌을 너에게 주마)
위 인용들 중 크게 키운 네 문장 ( 1) 우리의 숨을 돌리게 해주기는커녕 아주 짓눌러버리는 것 같은 좋지 못한 외로움 말이다. 2) 이쯤 되고 보면 이제 남은 길이라고는 점잖은 스타일 쪽으로 몸을 숨기는 것뿐이다. 3) 자기자신과 헛되이 절교하려는 사람이 다 그러하듯 그는 다른 사람들과 인연을 끊어버렸다. 4) 저 사람들은 결국 저 혼자서들 죽고 말 것이다. 잘만 하면 그쪽이 훨씬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을 보자. 어려운 문장도 아니다. 하지만 저 문장 속에 인간에 대한 통찰, 생생한 내적 감수성, 인물에 대한 매력, 공감 등등 많은 것들이 들어있다. 저런 문장은 간단해보이지만 결코 쓰기 쉬운 문장들이 아니다!!
- 그리고 이런 남자지만 이런 성정들이 마음 속에 들어있다. (밑줄 친 문장들)
그의 속에는 그 무엇인가 포기하기를 거부하는 것이, 희망이라는 모든 낚시밥을 끊임없이 무는 것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삶의 심연 속에 숨어 있다가 황혼의 시간에조차도 문득 찾아와서 모든 것에 빛을 던져줄 수 있는 행복의 가능성을 그는 남몰래 믿고 있었던 것이다. 일종의 손댈 길 없는 바보스러움이 그의 내부에 잠겨 있었다. 어떤 패배도 어떤 쓰디쓴 맛도 결코 말살시키지 못한 순진성이, 그를 스페인의 전장에서 베르코르 지하운동 조직으로, 쿠바의 시에라 마드레로, 그리고 모든 것이 마침내 다 실패로 돌아간 것같이 보이는 순간 엄청난 포기의 시간에 문득 나타나서 다시금 발동을 걸어놓는 두세 명의 여자들에게로 그를 떠밀고 갔던 어떤 힘이 그의 속에 잠재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트라피스트 수도원으로 들어가거나 혹은 히말라야 동굴 속으로 찾아 들어가 그들의 남은 삶을 끝내듯이 그는 그러나 이 페루의 해안까지 도망쳐 오지 않았던가? 다른 사람들이 하늘 끝에 가서 살 듯이 그는 대양의 끝에서 살고 있었다. 대양은 소용돌이에 차 있으면서 동시에 정일한 형이상학이었디. 그가 바다를 바라볼 때마다 매번 그 자신을 잊게 해주는 엄청난 진정제였다. 상처를 쓰다듬어주고 모든 것을 포기하도록 도와주는 몸 곁의 영원. 그러나 여자는 얼마나 젊고 얼마나 속수무책인 모습이었는지, 그 여자가 얼마나 믿음에 가득 찬 눈길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는 얼마나 많은 새들이 이 모래언덕 위로 숨을 거두려고 찾아오는 것을 보았는지, 그중 한 마리를, 그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 마리를 구하고 그를 보호하고 여기 세상의 끝에서 자기 혼자서 가진다는 생각, 뜀박질의 그 마지막에 와서 이렇게 하여 인생을 성공시킨다는 생각은 아이러닉한 그의 웃음과 환멸에 찬 그의 표정이 아직도 감추려고 애를 쓰는 그 모든 순진함을 단숨에 되돌려주는 것이었다.
그의 이런 성정들이, 그가 겪어온 삶들 현재 처한 상황같은 걸 고려해보면 이제 사랑 같은 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는, 그 여자를 만났을 때 일단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마음가는대로 일단 확 가버린다. 이 소설이 통속성을 넘어서는 것은 주인공의 이러한 매력들이다.
그리고 이 소설이 통속성을 넘어서게 만드는, 그 밖의 훌륭한 묘사들:
먼 바다에 떠 있는 섬들은 구아노 석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것은 매우 수지 맞는 산업으로 한 마리의 가마우지새가 살아 있는 동안 생산하는 구아노 석은 같은 기간 동안 한 가족 전체를 먹여 살릴 수 있다. 이와 같이 땅 위에 태어나서 자기의 사명을 다한 뒤에 새들은 이곳에 와서 죽는 것이었다.
한 훌륭한 인간이 산출하는 이상주의는 같은 기간 동안 어떤 경찰체제의 권력을 먹여 살릴 수 있다. 약간 시인이 되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 그런 그 앞에 돈 많고 자신만만한 한 영국인이 나타난다. 그 영국인은, 삶에는 어떤 ‘정상’(이상하지 않은 상태)가 있고 그 ‘정상’을 귀즈만 교수가 되찾아 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 영국인이 마구 열거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나열한 모든 증상들은, 인류의 병적 징후 혹은 인간 심리의 본질적 안개를 드러내는, 인정하기에 가혹하지만 실재하는 것들이다. 문제는, 결코 신뢰가 가지 않는 (이 소설에서 아마도 제일 신뢰가 안가는), 그 자신이야말로 제 정신이 아닌듯한 그 영국인의 입으로 이 말들이 지껄여진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이런 대사, “인간의 영혼이란 헤아릴 길이 없는 것이지.” 사실 저 말 자체는 맞는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소설 전체에서 제일 신뢰할 수 없고 제일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놈이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이다. 굉장히 재미있으면서도 아이러니한 부분. 왜냐하면 진짜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사물을 어떻게든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하지, 타자에게 “넌 제 정신이 아니다”라고 단정적으로 함부로 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제 정신이 박혀있는 사람이라면 타인을 이해하지 못할 수는 있겠지만, ‘제 정신이 아니다’ 라고 낙인은 찍지 않는다. 그리고 저런 대사를, 이 소설 전체를 통틀어 제일 제 정신 아닌 놈이 말하게 함으로써, “우리 모두는 제 정신이 아니다”라는 이 명제를, 설정 자체가 ‘참’으로 만드는, 그런 아이러니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만약 이 명제를 영국인이 아니라, 이 소설의 주인공 남자, 신뢰가 가는 남자가 언급했다고 해보자. 윗글은 그저 건전하고 따분하기만한, ‘바른 남자’가 나와서 ‘입바른 소리만 하는’ 그저그런 심리서적 같은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즉, 핵심은 가장 제정신이 아닌 영국인으로 하여금, 저 대사들을 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 그리하여... 인간의 영혼은 헤아릴 것도 없고, 새들이 왜 리마 해변으로 오는지 우리는 설명할 수 있지만, 사실은 설명할 수 없다는 역설. 우리는 오직 시적으로, 예술적으로 살아가 볼 수 있을 뿐이다. 아홉 번, 열 번, 열한 번... 거듭 아프더라도 우리는 탐미할 수밖에 없다. 아무튼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 사랑을 무척이나 잔인하게, 그래서 아름답게 그려 보인 작품이다.
요약:
1) 이 사람은 알제리 전투도 했고 이 전투도 했고 저 전투도 했고 세상만사 다 겪었지만, 인간사가 내가 생각했던 합리적인 형태로 흘러가지 않는구나....를 깨달았다. 그래서 바다로 왔다. 자기 인생 전체를 봐도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 되고, 페루에 새들이 왜 오는지도 과학적 설명이 안 되고,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여자가 다가왔을 때 확 사랑을 느끼는 것도 과학적 설명이 안 된다. 그리고 결국 제정신 아닌 사람의 입을 빌려서 “이 세계는 심연이다”라고 말하고, 잔인하게 여기에서 이야기는 끝난다.
2) 이처럼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다>는, 인생의 쓴맛 단맛 다 겪은 중년 남자의 감수성을, 굉장히 통속적인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파란색으로 표시한 훌륭한 문장들을 통해서 읽는 사람들에게 다 공감이 가게 다가가는 것이다. 주인공의 그 섬세한 감수성. 주인공의 그 아름다움. 주인공이 아름다우려면 어떤 도덕적 강직함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순과 어쩔 수 없는 불합리를 솔직하고 섬세하게 고백하는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다. 이것이 바로 문학과 문학 아닌 것의 차이점이다. 문학에서는 주인공이 굉장히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그 건전한 생각을 혼자서 훌륭히 개척해 나가봐야 결국 계몽소설밖에 안 된다. 주인공의 자기모멸, 그 자기 모멸을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 자기 인고. 이런 것들이 잘 뒤엉켜 있는 작품이 훌륭한 작품. 이 소설의 주인공이 멋있으면서 너무 매력적이고, 이 소설이 매력적이고 훌륭한 것이 바로 그 때문이다.
로버트 올렌버틀러 <귀환>
- 로맹가리와 비교해보면 질적 차이가 한 단계 아래로 느껴지는, 굉장히 조작적인 작품. 뒤에 반전을 준비하고, 사이사이 복선을 흘리고, 앞과 뒤가 딱 맞물리게 잘 조작해낸 작품. 로맹가리와 이 소설이 비슷한 분량인데도 밀도로 비교해보자면 로맹가리의 <새들은 페루에...>가 월등하다.
-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소설. 늙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인식이란 무엇일까/ 자아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긴 여운으로 남는 작품이다. 망각, 늙음, 기억, 상실, 정체성, 산다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사실 모든 소설은 “질문하는 소설‘이다.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 계몽 소설이 아닐 바에는, 소설은 결코 어설프게 결론을 내려서는 안된다. ’이거다‘ 라고 단정짓는 것이 아니라 ’이게 아닌가?‘라고 어필해야 하는.
- 인상적인 부분들:
어쩌면 시인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하늘을 나는 새나 연못에서 뛰노는 개구리들 정도인지 모른다.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 가운데 승강용 통로문이 열렸다 닫혔다 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장만한 음식들이 모두 상하겠구나 하는 생각만 했지 친할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하는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다. -> 전형적인 미국식 현실주의 자본주의식 사고방식 VS 베트남식 사고방식-> 들어서 반갑지 않은 얘기는 삼가는 것이 베트남 관습, 특히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케케묵은 관습이다. 좋지도 않은 소식을 미리 말해 좀 더 일찍 세상을 우울하게 바라보게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베트남인들은 좋은 소식만 전하려고 하며, 진짜 상황이야 어떻든 모든 것을 다 좋게만 말한다. 나는 후옹도 지금 베트남의 관습에 따라 내게 뭔가 반갑지 않은 소식을 숨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는 내게 두 가지 질문을 했다. 하나는 짐들을 모두 어디로 가져갔느냐는 것이었는데,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가 짐을 찾으러 회전식 콘베이어 앞에 도착하는 것으로 해결되었다. 종이 울리면 은색 금속 트랙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그는 큰소리로 웃었다. 그리고 콘베이어에서 나오는 가방 하나하나를 세관 사람들보다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았다. 또 하나의 질문은 내게 차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가지고 있다고 하자 그는 몹시 반갑다는 듯이 지팡이를 들어올리더니 바닥을 세게 내리쳤다. /좋았어. 무슨 차를 가졌는지 말하지 마. 내가 알아맞혀 볼 테니까. /그러나 주차장으로 나오자 할아버지는 당황한 듯했다. 그는 자동차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지팡이 끝에 달린 고무로 미등과 타이어의 힐캡 그리고 앞 범퍼와 번호판 등 몇 군데를 조심스럽게 건드려 보았다./ 이 차는 뭔지 모르겠는데, 도무지 뭔지 알 수가 없어. / 이건 아쿠라예요./ 그는 머리 위에서 모기가 윙윙 날아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고개를 흔들었다.
다른 차들 만큼 훌륭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훌륭해. / 롤즈로이스를 제외하고 아쿠라보다 실내장식이 더 잘돼 있는 차는 없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는 그와 싸울 필요도, 그렇다고 그의 비위를 맞출 필요도 없으며 그저 정중하기만 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그때 내가 어떤 말을 해야 했을까? 우선 나는 그에게 당장 말을 걸었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가끔 아내인 마이가 잠에서 깨어나 자기가 어디 있는지 몰라 잠시 어리둥절 하는 경우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 말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제 우리 집안의 최연장자가 될 할아버지로서 좀 무심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대답 대신 다시 창 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차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호치키스야.
바람 속에 얼굴을 내민다 해도 나는 친 할아버지가 헤드라이트에 비치는 토끼의 눈을 똑똑히 본 것처럼 그녀 눈을 똑똑히 볼 수가 없다. / 아내의 눈은 물론이고 내 조국도 볼 수 없다. 나는 조국을 완전히 망각했고 그 동안 한 번도 신경조차 쓰지 않고 살았다.
어쩌면 나도 친 할아버지처럼 나이가 들면 기억이 날지 모르겠다. 어쩌면 할아버지도 나처럼 망각하고 살았었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자기 손녀를 망각하고 나서야 비로소 예전에 타던 호치키스를 기억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럴 필요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하나의 사실을 기억해 내기 위해 다른 하나를 망각해야 하는지 모른다. 물론 그가 의식적으로 그런 선택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생을 마감하려는 시점에서 그의 잠재의식 깊은 곳에 있던 그 무엇인가가 그의 인생을 분류했을 것이다.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바로 그 점이었다. 나의 잠재의식의 심층에는 표면의식이 원하는 것보다 훨씬 사소한 일들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분을 손님방으로 모셨어요. 여관 주인에게 인사하듯이 내게 고맙다고 인사하더군요.
갑자기 나는 내 자신에게 놀랐다. 놀라기는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아내 앞으로 걸어가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았으며, 우리 두 사람 다 바보 같은 짓이라고 느끼기도 전에 나는 마이를 등에 업고 뜰을 걸어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오크나무 밑가지를 따라 걷다가 그 다음에는 보도 위를, 그리고 나중에는 뒤뜰로 갔다. 마이를 업은 나의 걸음은 점점 더 빨라졌으며 그녀는 잠시 저항하다가 곧 웃음을 터뜨렸으면서 두 다리를 내 허리에 감고 두 팔로 내 목을 잡으며 꼭 매달렸다.
요약:
의뭉스럽고 장치가 잘 되어있는, 잘 만든 소설. 작위적이라고 했지만 이 정도의 매무새는 자연스럽다. 잘 “만든” 소설. 그러나 다음에 소개할 <파리>를 따라오지 못한다.
캐서린 맨스필드 <파리>
- 첫 오프닝 부분은 정말 완벽한 단락 만들기이다. <가든파티>에서도 그랬지만 맨스필드는 이렇게 앞부분에서 한 캐릭터에 대해 생생하게, 하지만 굉장히 군더더기 없이 잘 보여준다. 우드필드에 대한 완벽한 묘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 자네 방 참 아늑하군」
노년에 접어든 우디필드는 새된 목소리로 말하며 친구인 사장의 책상 곁에 놓인 큼지막한 녹색 가죽 안락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마치 갓난아이가 유모차에서 몸을 일으키는 모습과 같았다. 그리고 그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그러나 우디필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가 은퇴한 뒤로, 그러니까 뇌일혈로 쓰러진 이후 아내와 딸들은 화요일만 빼놓고 일주일 내내 그를 집안에 붙들어 놓고 있었다. 그러나 화요일이면 외출복을 입혀주고 머리손질도 가족들이 해주어 하룻동안의 시내 외출이 허용되었다. 그가 시내에 나와 무슨 일을 하는지 아내와 딸들은 알 길이 없었다. 그들은 그가 고작 친구들에게 귀찮은 손님노릇이나 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 나무가 마지막 잎새에 집착하듯 우리 사람들도 마지막 인생의 낙에 집착하는 법이 아닌가. 그래서 우디필드 노인은 시가를 피우며 안락의자에 몸을 묻고 탐욕스러운 눈으로 사장을 응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자기 의자에 몸을 파묻고 있는 사장은 그보다 다섯 살이나 연상이었지만 아직도 건장하고 좋은 혈색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도 쇠약해지지 않은 힘으로 일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누구라도 그를 보면 힘이 날 법했다.
탐나고 부럽다는 듯이 우디필드의 늙은 음성이 다시 울렸다.
「이곳은 아늑해. 정말이야」
게다가 ‘그것’에 대해 그냥 딱 이야기했으면 재미없을텐데 뭐였지...하고 뜸들이면서 위스키를 마시고 한 템포 늦게 이야기하는 것도 재미있다.
「자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있는데…」
우디필드 노인이 말했다. 그의 눈은 기억을 더듬느라고 초점을 잃고 있었다.
「그게 뭐였더라? 아침에 집을 나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수염 바로 위에는 붉은 반점이 나타났다.
저 불쌍한 친구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구나 하고 사장은 생각했다. 측은한 생각이 든 사장은 노인에게 윙크를 해주며 농담어린 말을 건넸다.
「내가 얘기해주지. 여기 뭘 좀 가진 게 있네. 추운 바깥 날씨를 쐬기 전에 마셔두면 좋을 물건이지. 귀한 물건이야. 어린 아이들이 마셔도 괜찮은 거지」
(중략)
「그거 위스키 아닌가?」우디필드는 힘없는 목소리로 떨리듯 말했다.
사장은 병을 돌려 귀한 물건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상표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바로 위스키였다.
우디필드는 놀라운 표정으로 사장을 올려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집 식구들은 그런 것은 입에도 못 대게 하는데」
그는 막 울음을 터뜨리기라도 할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허, 바로 그런 점에서 여자들은 우리만큼 알지 못하는 거야」
- 시작에서 우드필드가 주인공인 것처럼 등장하지만 결국 느닷없이 까닭도 모르고 죽어가는 파리와 아들에 대한 30분의 애도조차 미처 채우지 못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로 끝난다. 섬세하면서도, 굉장히 간결하다 (그냥 “파리를 가지고 장난치는 이야기”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매우 복합적인 결말을 가지고 있다.
- 파리를 죽이는 그의 행위는, 사실 자기 아들이 당했던 것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 혹은 아들이 겪은 비극에 대한 연극적 재현이자 제의. 혹은 ‘너도 죽어봐라’하는, 아들 죽음에 대한 도착적 보상심리이자/ 어떡하든 살아났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안타까운 투사이자 소원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이 모든 것을 망각한다.
- 망각하고도 태평하게 살아가는 삶이란. 자신이 왜 이 행동을 하는지도 모른 채 주인공은 그 행동을 한다. 혹은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 행동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 하나의 자기 사이코 드라마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주인공이 언젠가 하게 될 법한, 가장 필연적인 행동이지만, 그 행위 자체의 의미는 미처 주인공 자신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삶이란 게 바로 이런 것 같다. 삶이란 것 자체가 투사이자 본질적 재현이자 연극이다. 미처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인간들은 끊임없이 이렇게 살아간다.
요약:
- 모더니즘 소설. (전통 소설은 이렇게 간결하게 확 치고 들어가지 않는다) 여기서 파리를 죽이는 행위는, 추억이자 망각이자 제의이자 연극이자, 이 모든 것이 들어가 있는 어떤 행동. 우리는 사실 인생을 이렇게 살아간다. 그래서 읽다보면 섬뜩하다. 사실은 그래서 이 소설이 비정하다. 인간이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 얼마나 비정한가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인간이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하는지. 어떻게 자기 삶을 투사하고 재현하고 연극화하고 제의로 만들어내는지 같은, 인간의 기본 문제들을 아주 심도있게, 그러나 아주 심플하게, 원고지 40매 분량에 군더더기 없이 써낸 훌륭한 작품이다.
오정희 <동경>
- 110매/ 6-8 시퀀스
- 단편의 정석같은 작품이다. 계집아이, 전도사, 검침원 등과 대비되는 노인의 외로운 심리 묘사가 탁월하다. 담담하고 차분한 묘사, 적절한 모티프와 대사 등이 좋다. 그러나 후반부에 가서 직접적으로 기억과 주제를 노출하고야 마는 아쉬움이 있다.
- #1에서부터 생동감 넘치는 아이와, 쇠약하고 죽음을 향해 가는 그가 대비되어 그려진다. 소녀는 자전거를 타고, 만화경이라는, 화려한 물건을 찾으러 돌아다닌다. 반면에 느리게 산책하는 ‘나’ 이런 대비가 소설 마지막까지 계속 이어진다.
- 이 소설이 뛰어난 부분은 화자가, 관찰하는 대상과 역지사지를 기가 막히게 이루어내고 있는 부분들이다. 상대에 대한 관찰과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한 번 더 관찰 하는, 이 두 가지 면이 완벽하게 착 들어붙는데 대표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면 국수 먹는 장면이다.
“국수는 색깔 맞춘 고명으로 잔뜩 치장을 했지만 아주 싱거웠다. 그는 전혀 간이 들지 않은 것을 모르는 듯 고개를 숙이고 훌훌 국수 올을 말아 올리는 아내를 말없이 건너다보았다.
틀니 탓인가. 그러나 틀니를 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틀니를 한 뒤 단단한 음식을 씹는 데 부담을 느끼게 되면서부터 점심에는 으례 칼국수를 먹었다. 아내의 칼국수 끓이는 솜씨는 나무랄 데 없었다. 그런데 늘상 해 오던 일이면서도 간장 넣는 것을 잊다니. 그리고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은 낯으로 먹는 아내에 대해 그는 자신의 역할에 게을러진 그의 몸 각 기관들에 대한 것과 비슷한 분노와 미움을 동시에 느꼈다. <- 생생한 묘사. 그것과 똑같은 강도로 느꼈다고 하니까 주인공의 마음에 이해가 잘 간다.
"간장 좀 가져와"
그는 노여움을 누르고 말했다. 아내가 굼뜨게 일어나 간장 종지를 가져왔다. 이를 뽑고 틀니를 하고부터, 그리하여 음식을 씹고 맛보는 즐거움을 태반 잃게 되면서부터 자신이 음식 맛에 대해 까다로워졌다는 사실을 그는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점심식사에 간장을 빼먹고도 모르는 아내 + 음식 맛에 까다로워진 사실을 인정하려 않는 자신. 처음에는 국수맛이 안나게 만들어온 아내에게 딱 시선을 주고, 그리고 나서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돌아본다. 이렇게 자신의 문제까지 포착해내는 부분들이 이 작품을 빛내준다.
이런 시선이 좀 더 중층적으로 겹쳐서 훌륭하게 상황을 그려내는 장면은 바로 검침원 장면이다. 여기에는 여러개의 시선이 존재한다. 1) 할머니가 검침원을 바라보는 시선 2) 검침원이, 할머니가 검침원을 바라보는 것에 동의하지 않고 다르게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그래서 1)과 2)는 살짝 충돌함) 3) 이 모든 1)2)의 상황을 ‘나’인, 할아버지가 바라보는 시선. ‘나’는 할머니의 1)의 시선을 계속 부정하며 슬쩍슬쩍 어깃장을 놓는다. 4) 3)에서 자신이 하는 행동을 우스꽝스럽게 바라보는 할아버지(‘나’)의 시선.
즉, 정리하면 1) 할머니-> 검침원: 젊은에 대한 찬미 2) 검침원 -> 검친원: 할머니가 자신에 대해 너무 좋게 바라보고 내는 의견들에 수긍하지 않음 3) 할아버지 -> 할머니+검침원: 할머니가 검침원에게서 조차도 젊음을 느끼고 쩔쩔매는 모습이 싫어서 슬쩍슬쩍 그거 아니라고 어깃장 (ex: 그러지 마라. 단지 수도 검침을 하러 다니는,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젊은이일 뿐이야.) 4) 할아버지 -> 할아버지: 스스로의 행동을 바라보는, 자신의 문제까지 포착하는 시선.
이 모든 네 개의 시점이 한 화면에 존재하면서 긴장과 깊이를 더해준다. 그리고 각각의 시점들이 부딪치고 부정당하고 객관적으로 지켜보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면서 변한다. 아이러니한 화면 구성들. 이런 시퀀스가 정말 좋은 시퀀스이다. 예를 들면 오엔 겐자부로의 <기묘한 일거리>에서 백정, 사대생, 여대생, ‘나’ 사이같은, 기막히게 잘 들어맞는 중측적 관계들. 좋은 작품들은 한 시퀀스를 잡아도 이런 시점, 이런 화면 구성으로 훌륭하게 만들어낸다.
- 현재 시간의 일상성 + 역사적 아픔:
이 소설의 가장 빼어난 점은 역사적 아픔을 일상적 감정과 심리 속에서 포착한 부분들이 아닐까. 419라는 역사적 사건에 자식을 잃은 커다란 비극이 있음에도, 이 정치사를 괄호쳐놓고 (지나가듯 단 한 줄로 잠깐 언급하는 것이 전부다) 철저히 개인사만 따라간다. 죽어가는 두 노인/ 419로 자식을 잃고 늙어가는 두 노인/ 살아가는 생기에 목말라서, 심지어 검침원에게마저 쩔쩔매는 할머니와, 이웃집 꼬마에게까지도 도착을 하게 되는 할아버지/ 이런 것들까지 세밀하게 그리는 소설이며, 저런 심리들이 세밀하게 그려지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정치가 개별 인간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정치가 개인사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정치 때문에 개별 자아 하나하나가 어떤 고통을 받는지, 역사적 사건에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평생에 걸쳐 어떤 상처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더욱 가슴 아프게 보여준다. 결코 4.19에 대해 강하게 어필하지 않았다. 만약 그랬으면 419 관련한 무수한 많은 담론, 작품 중 하나에 그쳤을 것이다. 1) 그 부분을 적절하게 괄호친 점 2) 노년 부부의 개인사를 철저하고 날카롭게, 남다른 개별 자아 특유의 구체적인 느낌과 시선을 살려내며 생생하게 그려냈고, 이것이 이 작품이 돋보이는 점이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
-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힘이 대단히 견고함/ 대사가 빛난다
- 분량: 290매/ 20시퀀스 (18~20 시퀀스) 한 시퀀스당 15장
- 작가들의 중단편을 보면 그들의 장편의 태동 흔적이 엿보일 때가 있는데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에도 <백 년 동안의 고독> 이 숨어있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나 마콘도는 <백 년 동안의 고독>에 그대로 나오는 것들이고 사바의 아내가 꾸는 꿈 같은 것 (「난 밤마다 무서운 꿈을 꿔요.」 하고 여인은 말하였다. 「이제 꿈속에서 만나는 낯모르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하는 것을 겨우 알게 되었어요.」 그녀는 선풍기의 플러그를 꽂았다. 「지난 주일에 한 여자가 내 침대머리에 나타났어요.」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나는 누구냐고 그녀에게 가까스로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그 여자는 난 열두해 전에 이 방에서 죽은 사람이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어요.」 「그러나 이 집은 지은 지가 이년도 채 안되는데요.」 하고 대령이 말하였다.「그건 그래요.」 하고 여인은 말하였다. 「그러니까 죽은 이들도 잘못을 저지르는 거죠.」) 도 이어지는 부분.
- 중심 갈등축
1) 비참한 역사적 현실: 자연사가 희귀한, 계엄령 하의, 언론은 유럽 이야기만 하기 때문에 비밀편지를 돌려보는
2) 노부부의 가난한 현실: 75세의 주인공, 40년을 기다린, 15년을 기다린, 50센트만 남은, 시계를 팔려고 하지만 팔지 못하는, 수탉의 사료 옥수수로 죽을 끓여 먹는, 구두 때문에 조롱당하는
3) 아픈 노부부의 현실: 요통을 앓고 있는 대령과 천식을 앓는 아내
-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부부의 대화는 언제나 혹은 여간해서는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는다. 세상의 불합리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모두 껴안고 있으면서도 구체적인 행동에 있어서는 자기 자존감과 유마와 위트를 잃지 않는 인고주의, 견인주의적 자세가 놀랍다 (마르케스의 작품 전반에서 보여지는, 마르케스의 기본 자세)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일상 언어로 대사를 그냥 막 치는 법이 없다. 유머와 위트가 섞인 대사를 계속 던진다. 아주 도저한 허무 고통 슬픔을 이야기하는데 그것을 다 참아내면서 유머와 위트를 툭툭 던지고 굉장히 재치있는 말을 던지면서 참아낸다. 정말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이루어지는 유머러스하고 완곡어법의 대화가 주는 임팩트.
- 기본적으로 대사는 완곡어법으로 칠수록 좋다. 제일 대표적이었던 것이 두 번째 학기 <만남과 사랑>에서 읽었던 <여름 옷을 입은 여자>의 다음 대목같은 것:
「조심해요」8번가를 건너며 프란시스가 말했다.「당신 목이 부러지겠어요」마이클이 웃었다. 프란시스도 따라 웃었다.
「그 여자 별로 예쁘지도 않군요」라고 프란시스가 말했다.「아무튼 당신 목이 꺾어질 정도로 예쁘진 않은데요」
마이클이 다시 웃었다.「당신, 어떻게 내가 그 여자를 바라보고 있는 줄 알았지?」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대사들은 다 너무 즉물적이고 유치하고 그렇다. 그래서 이런 대사들은 다 쳐내야 한다. 이런 완곡어법의 매력은, 저런 즉물적이고 유치한 일상의 언어들을 한 번 유머러스하게 삭혀서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말하는 사람의 인품과 재치를 같이 보여준다. 감정 그대로가 나오는 거친 직설화법 말고, 완곡어법에 유머를 섞어서 툭 던지는 그런 화법. 소설에 대사를 쓸 때는 이런 완곡한 대사들‘만’ 써야 한다. 잘 쓰인 이런 대사들이 캐릭터도 더욱 빛내준다.
- 수탉이라는 표면 문제만 드러나고 나머지 문제들을 배후로 슬쩍 놓았다. 가볍고 하찮은 일상적 갈등 뒤의, 실존적인/ 역사적인/ 본질적인 갈등을 숨겨놓은 솜씨가 놀랍다. 이런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보통의 소설들은 하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가난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되면 가난, 정치면 정치, 건강에 대한 거면 건강. 이렇게 담론이 각각 분열되어 나온다. 하지만 마르케스의 소설은 이 모든 것들이 다 함께 나온다. 한 텍스트 안에 이 모든 총체적인 것들은 그대로 담아낸다. 우리가 일상에서 대화할 때만도 그렇다. 우리가 무언가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보통 한 담론에만 딱 묶여버리고 그것만 이야기하게 된다. 연애 이야기할 때는 연애 이야기하고 정치 이야기할 때는, 연애를 포함한 그 모든 개인의 이야기들이 사라지고 또 정치 이야기만 한다.
하지만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나 <백 년 동안의 고독>을 보면, 하나의 텍스트에 모든 담론들이 다 들어가 있다. <백 년 동안의 고독>의 장점은, 신화 전설, 사회적 담론, 유머, 환타지, 귀신 이야기까지 다 들어가 있다. 소설 언어의 총화. 마르케스의 소설은 이 모든 언어들을 다 끌어안고 있다. 예컨대 신경숙의 소설이 환타지의 영역을 끌어안을 수 있을까. 이렇듯 모든 뛰어난 작가들도 담론 하나에 묶이면, 딱 그 이야기만 남게 되고 나머지는 다 싹 배제된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도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계층의 주택 도시 문제라는, 이 담론 하나만 딱 잡혀있고 나머지 부분들은 배제되어 있다.
하지만 마르케스의 작품들은 담론 하나만 딱 잡지 않는다. 그 안에 모든 층위가 다 들어가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균형이 담대하게 딱 잡혀있는 것이다.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도 그렇다. 아들이 죽은 현실, 계엄령, 비참한 역사적 현실, 가난하고 병이 들어가는 두 노인의 현실, 그 와중에도 사바의 아내가 하는 이상한 말들, 유머.... 이 모든 것이 드러내놓고 집약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작품 전반에 걸쳐 탁탁탁탁 한두 줄씩 간단하게 들어가 있으면서 산만하지 않고 놀라울 정도로 균형 잡혀 있다. 대단한 균형 감각이다. 그리고 절대 독자를 계몽하려 들지도 않는다.
보르헤스, 밀란 쿤데라, 마르케스, 이런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등장하는 화자의 정신연령들이 보통 50대에서 6,70대에 가 있다. 우리나라 소설을 보면 주인공의 정신연령은 20대에 멈춰있다. 화자가 사유하는 방식이나 말투, 문체가 그렇다. 마르케스같은 이런 경지에 오르려면 1) 몸 속 깊이 체득하는 힘과 2) 이야기하는 솜씨, 이 두 가지가 잘 갖춰져야 한다. 마르케스처럼만 나이가 든다면 참 좋겠다. 하는 말마다 설교조고, 경험론을 내세우는 편협한 여느 노인들과 여실히 다르다. 인생의 쓴 맛, 허무한 맛을 다 보면서 그 안에서도 유머감각을 잃지 않는, 이런 노인네가 되면 참 좋을 것 같다 :)
텍스트 안으로-
마지막 내란(內亂)이 끝난 후 줄곧, 그러니까 거의 60년 동안이나 대령은 그저 기다리기만 하였다. 10월은 이 기다림 속에 와 준 얼마 안 되는 것 중의 하나였다. <- 이런 표현!!
「뼛속까지 축축한걸.」 하고 그는 말하였다./ 「겨울인걸요.」 하고 부인은 말하였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양말을 신고 자라고 줄곧 말했잖아요.」/「벌써 일주일째 양말을 신고 자고 있소.」
「그는 벌써 아구스틴을 만나 봤을 거예요.」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아마 그 아이가 죽은 후 우리가 놓여있는 처지를 그에게 얘기하지는 않을 거예요.」「지금쯤 그들은 아마도 수탉 얘기를 하고 있을 거요.」
이제 아구스틴은 죽었고 화려한 빛깔의 새틴천 우산엔 좀이 슬고 있었다. 「우리의 곡마단 광대 우산이 어떻게 됐나 보오.」 하고 대령은 늘 쓰던 옛 말투로 말하였다. 그의 머리 위로 조그만 쇠살대로 엮어진 신비로운 조직이 펼쳐졌다. 「이젠 그저 별을 헤어 보는 데나 쓸모가 있겠구려.」 -> 이런 낭만적인 유머
「특별한 행사를 위해 정장을 한 것처럼 보이는구려.」 하고 그녀가 말하였다. 「이 장례는 특별한 행사지.」 하고 대령이 말했다. 「우리가 여러 해 만에 처음으로 갖게 된 자연사(自然死)란 말이오.」 -> 자연사하기 전에 죽임을 당하는 일이 많은 비참하고 무서운 현실을, 이렇게 인고와 유머로 풀어낸다.
이렇게 #1에서는 늙은 주인공+ 가난한(가족적) 현실+ 참혹한 (역사적) 현실을 살짝살짝 보여주고 있다. 절대 화자가 전면에 나타나서 이런 것이 문제고 어쩌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굉장히 쓰잘데 없이 마누라와 툭툭 대화를 나눌 뿐인데 모든 힌트와 정보들이 그 안에 다 들어있다. 보여주기 기법의 정석. 예를들면 이런 것이다. 일주일 째 신고 있는 양말, 단단한 뼈대의 바짝 마른 주인공의 외양 묘사, 아내의 천식, 녹이 섞인 커피, 다 좀이 슬어버린 우산, 아들 아우구스트 이야기....이런 것들이 늙은 주인공+ 가난한(가족적) 현실+ 참혹한 (역사적) 현실을 툭툭 보여준다. #1까지에서는 아직 확실히 드러나지는 않음
종려 잎새로 짠 부채로 관(棺)에서 파리를 쫓으며 거기 죽은 이의 모친이 있었다. 검정 옷을 입은 일단의 여인들이 강의 흐름을 지켜보는 것과 똑같은 표정으로 시체를 골똘히 바라보았다. <- 이런 표현!!! 한 장면 안에서 이렇게 깜짝 놀랄만한 표현들이 꼭 하나씩 나온다.
악대가 장송곡을 연주하였다. 대령은 트럼펫이 빠져 있음을 알고 처음으로 죽은 이가 죽었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 “악대 중 악사가 죽었다”라고 재미없게 표현하지 않는다. 이렇게 돌려쳐서 말하니 얼마나 크게 와닿는다.
「잊고 있었군.」 하고 사바가 소리쳤다. 「우리가 게엄령 하에 있다는 것을 나는 언제나 잊어버린단 말이야.」
「이 지역에선 제일가는 놈이라는 걸.」 하고 대령은 대답하였다. 「50페소는 실히 나가요. 비밀문서를 배포한다고 해서 닭싸움터에서 9개월전에 사살(射殺)당한 아들의 유산인 수탉이었다. (<- 계엄군에게 사살당한 아들에 대한 정보를 이때 툭, 한 문장으로 슬쩍 집어넣는다) 「값비싼 환상이에요.」 하고 여인은 말하였다. 「옥수수가 없어지면 우리는 우리의 간을 떼어 멕여야 할 거요.」 : 쓸쓸한 장면이다. 대령에게는 이 수탉이 이 지역에서 제일 가는 놈이고, 아들이 남긴 수탉이라 의미 있지만, 그런 대령에게 아내는 ‘현실’을 말한다
「에나멜 구두를 신도록 해요.」 대령은 서글퍼졌다. 「그건 고아 구두 같아 보여.」 하고 그는 항변하였다. 「그 구두를 신을 때마다 고아원을 뛰쳐나온 도망꾼 같은 느낌이오.」「우리는 우리 아들의 고아란 말이에요.」
대령은 늘 그렇듯이 잃어버린 동전을 찾으려고 되돌아가는 사람의 걸음걸이였다. -> 많은 사람들이 오독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 소설에서 대령이 편지에 집착하고 간절히 기다려서 매일 가서 기다리는 것이 결코 아니다. 몇 년간 그렇게 오지 않은 것에 매달리고 기다려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아무 할 일이 없는 70세 된 할아버지가 그냥 심심하니까(?) 매주 가면서 루틴처럼 되어버린 일이다. ‘잃어버린 동전을 찾으려고 되돌아가는 사람의’ 비유적으로 넣은 표현이지만 대령의 가난한 상황과 맞물려 가난한 느낌을 더해주는, 효율적인 비유
「아구스틴의 죽음이 일년을 넘겼다면 노래라도 시작할텐데.」 열대(熱帶) 지방이 생산할 수 있는 온갖 먹을 것이 토막으로 잘린 채 끓고 있는 냄비를 휘저으며 그녀는 말하였다. <- 이런 부분들에서 마르케스의 매직 리얼리즘 느낌이 조금씩 난다
「이 환자는 나보다도 더 멀쩡한 걸요.」 하고 의사는 말하였다. 「그 정도의 천식이라면 난 백 살까지는 살 수 있을 겁니다.」 「기다리세요, 커피를 데울 테니까.」 「그만두세요.」 하고 의사가 말하였다. 그는 처방전에 적절한 투약량을 적었다. 「나를 독살할 기회는 절대 안 드립니다.」 <- 의사는 이 부부에게 진료비도 받지 않는 사람이다. 그만큼 이 부부가 가난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이 집에 커피가 귀하다는 것을 안다.(이미 #1에서 녹슨 커피까지 싹싹 긁어 타는 모습이 나왔지만) 그래서 거절하는 것이다. 배려에서 나오는 위트있는 농담) 그녀는 주방에서 웃었다. 쓰기를 마치자 의사는 큰소리로 처방을 읽었다. 자기 글씨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건 고열이 아니었소.」 하고 대령은 평정을 되찾으며 우겼다. 「그리고 난 병이 나면 당장 그날로 쓰레기통 속으로 투신자살 할 거요.」 그는 신문을 찾으러 침실로 들어갔다. 「말씀 고맙습니다.」(<- 왜냐면 노인이 투신자살해 버리면 진료하러 의사가 일부러 집까지 왔다갔다 할 필요가 없어질테니 고맙다고 하는 것이다. 은근한 완곡화법! 유머!!)
이젠 이십센트짜리 두 개와 십센트짜리 하나가 남아 있을 뿐이다. 「옥수수 1파운드를 사요.」 하고 부인은 말하였다. 「거스름돈으로 내일 먹을 커피와 치이즈 4온스를 사고요.」 「그리고 출입구에 매달아 놓은 금박코끼리도.」 하고 대령이 이었다. 「옥수수만 가지고도 42센트요.」 -> 이런 상황이다. 누가 1000원짜리 주면서 “쌀도 한가마니 사오고, 고기 한 근 사오고...”하는 그런 상황. 유머. 두 사람은 잠시 생각하였다. 「수탉은 동물이니 기다려도 될 거에요.」 하고 부인이 먼저 입을 떼었다. 그러나 남편의 표정이 그녀로 하여금 다시 생각을 하게 하였다. 대령은 팔꿈치를 무릎께 대고 손아귀에 든 동전을 짤그랑거리며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나 때문에가 아니오.」 하고 잠시 후에 남편이 말하였다. 「그저 내게만 달려 있는 것이라면 당장 오늘밤에라도 수탉찜을 해먹겠소. 오십페소 짜리를 먹어치우면 소화가 안된들 어떻겠소.」그는 목에 앉은 모기를 잡기 위해 멈췄다. 이어 그의 눈은 부인을 따라 실내를 돌았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저 불쌍한 아이들이 돈을 모으기 때문이오.」
두 손으로 머리를 매만지며 대령은 말하였다. 「내게서 이십년은 떼어 냈구려.」 그의 말이 옳다고 그의 아내는 생각하였다. 「몸이 성할 때면 사자(死者)도 되살릴 수 있어요.」
「걱정 말아요.」 하고 대령은 그녀를 위로하였다. 「내일은 우편이 오는 날이오. <-조크, 자기풍자. 내일 진짜 올 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곳에 매일 가는 자신과, 그리고 헛걸음할 게 분명한데도 매일 가는 자신에 대해 풍자하는 조크를 던진 것이다.
「검열 실시 이후로 신문들은 그저 유럽 얘기뿐이란 말이야.」 하고 그는 말하였다. 「최선책은 유럽 사람들이 이쪽으로 오고 우리가 유럽으로 가는 것이야. 그래야 자기 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알게 되지.」 <- 이런 상황에 대해 막 분개하는 것이 아니라 여유있게 조롱하고 넘어감
빈손으로 그날 밤 아내를 대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그는 할 수만 있다면 다음 금요일까지 그곳에 머무르고 싶었다. (중략) 「우린 우리 순서를 기다려야 하오.」 하고 그는 말하였다. 「우리 번호는 1823번이오.」 「우리가 기다리기 시작한 이후에 그 숫자는 두 번이나 복권에 당첨됐어요.」 -> 역사적 현실, 가난한 현실, 자식을 잃은 현실.... 이러한 현실에서도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의 대화가 계속 이렇게 조크로 빛난다. 이것은 텍스트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부탁하러 다니는 일에 이제 질렸소.」
「돈 이자를 절약하기 위해서 1월 이전에 우리 건을 해결해 줄지도 모르오.」 하고 그는 말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확신하였다. 「그때쯤이면 아구스틴의 일년상도 끝나고 영화구경을 갈 수도 있을 거요.」그녀는 숨을 죽이고 웃었다. 「난 이제 만화영화를 전혀 기억하지 못해요.」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대령은 모기장 너머로 그녀를 바라보려 하였다. 「마지막으로 영화 구경 간 것이 언제였소?」 「1931년이었어요.」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그때 <사자(死者)의 유언>을 돌렸어요.」「싸움장면이 있었던가?」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는 모르고 말았어요. 유령이 소녀의 목걸이를 빼앗으려고 할 때 갑자기 폭풍이 일었으니까요./ 빗소리가 그들을 잠들게 하였다. 대령은 창자가 약간 메스꺼웠다. 그러나 그는 두렵지 않았다. 그는 또 10월을 이겨낼 참이었다. 그는 양모 담요에 몸을 쌌다. 그리고 잠시동안 아내가 -멀리서- 꿈나라를 떠돌며 자갈처럼 숨 쉬는 소리를 들었다. <- 이런 표현 멋지다. 이어 그는 아주 제 정신인 채로 얘기를 하였다. 부인이 잠에서 깨었다. 「누구에게 얘기하는 거예요?」 「얘긴 무슨 얘기.」 하고 대령은 말하였다. 「마콘도 회의 때 우리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에게 항복하지 말라고 것이 옳았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오. 그때부터 모든 것이 망조가 들었거든.」(<- <백 년 동안의 고독>하고 연결되는 부분)
「아구스틴 때문이요.」 하고 대령은 준비해둔 이론을 내세웠다. 「수탉이 싸움에 이겼다고 우리에게 알리러 왔을 때의 그 녀석 얼굴을 생각해 보오.」 사실 부인은 아들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빌어먹을 수탉 때문에 망한 거라구요.」 하고 부인은 소리쳤다. 「1월 3일에 그 애가 집에 붙어 있었으면 그런 재앙을 당하지 않았다구요.」 그녀는 앙상한 집게손가락으로 도어께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 애가 겨드랑이에 수탉을 끼고 떠났을 때의 모습이 눈에 선해요. 사고를 찾아 닭싸움에 나가는 것을 고만 두라고 난 말했어요. 그는 빙그레 웃으며, 그런 말 마세요. 오늘 오후엔 우리가 돈더미 속에 뒹굴테니까요.」하고 말했어요. <- 이것이 부인이 본 아들의 마지막 모습 그녀는 기진해서 다시 누웠다. 대령은 그녀를 베개 쪽으로 살짝 밀었다. 그의 두 눈이 자기 것과 똑같은 다른 두 눈과 마주쳤다. 「움직이지 않도록 해요.」 하고 그녀의 가빠하는 숨소리를 자기 허파 속에서 느끼며 그가 말하였다. 부인은 잠시 동안 마비상태에 빠졌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의 숨소리는 한결 고르게 되었다. 「우리 처지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수탉에게 주기 위해 우리 입에서 음식을 덜어가는 것은 죄예요.」 <- 완곡어법 대령은 소매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아무도 석달 안에 죽지 않소.」<- 완곡어법 「그동안 우리가 무얼 먹는단 말이우?」 하고 부인이 물었다. <- 완곡어법 「모르겠소.」 하고 대령은 말하였다. 「하지만 우리가 굶어 죽을 몸이었다면 벌써 죽었을 거요.」 <- 완곡어법
「제기랄 것, 대령님.」 대령은 깜짝 놀랐다. 「상소리를 할 게 뭐람.」 하고 대령은 말했다. 앨퐁소는 대령의 구두를 살펴보기 위해서 콧등 위의 안경을 조절하였다. 「대령님의 구두 때문입니다.」 하고 그는 말하였다. 「되게 새구두를 신으셨군요.」 <- 구두가 낡았다고 직접 말하지 않고 완곡어법으로 이렇게 말한다. 「상소리를 안 섞곤 말을 못하나?」 하고 대령은 말했다. 그리고 자기 에나멜 구두의 바닥을 보여주었다. 「이건 40년이나 묵은 거야. 그리고 누가 상소리 하는 것을 듣기도 이번이 처음이지.」 -> 거기에 대응하는 대령의 위트있는, 완곡한 대화법
「중요한 것은 대령님이 아구스틴의 수탉을 손수 링 안으로 풀어 놓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 창문에서 보니 비가 달라 보이는걸.」 하고 대령은 말하였다. 「마치 딴 고을에 비가 오는 것 같구려.」
대령은 책상 가까이로 갔다. 그는 사바가 맛을 보라고 할 때까지 그의 손바닥 안에 있는 정제를 살펴보았다. 「커피에 넣는 거지요.」 하고 그는 설명하였다. 「설탕이 안 든 설탕이죠.」「물론.」 하고 대령은 말하였다. 침에 슬픈 단맛이 스며들었다. 「그건 마치 종없이 나는 종소리 같은 거구려.」
「옥수수죽이나 잡수시우.」「아주 맛있구려.」 하고 대령이 말하였다. 「어디서 났오? 「수탉한테서요.」 하고 부인은 대답하였다. 「젊은이들이 옥수수를 굉장히 많이 가지고 왔기 때문에 수탉이 우리와 나누어 먹기로 한 거라우. 삶이란 그런 거지요.」「맞는 소리요.」 대령은 한숨을 쉬었다. 「삶은 지금껏 발명된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거요.」그는 난로 다리에 매여있는 수탉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딴 짐승처럼 보였다. 부인도 수탉을 바라보았다. 「오늘 오후에 막대로 아이들을 몰아내야 했다우.」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녀석들이 수탉에게 붙이려고 암탉 한 마리를 가져 왔어요.」「처음 있는 일은 아니오.」 하고 대령이 말하였다. 「여러 곳에서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에게 비슷한 것을 했었오. 자식을 보라고 그에게 어린 색시들을 데려다 주었으니까.」
그녀는 그 농담을 재미있어 하였다. 수탉이 목구멍 소리를 내었다. 그것은 마침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처럼 실내에 울렸다. 「때로 난 저 짐승이 얘기를 하려는 게라는 생각이 나요.」 하고 부인이 말하였다. 대령이 다시 수탉을 쳐다보았다. 「저 수탉은 제 몸무게 나가는 금값과 맞먹어요.」 하고 그는 말하였다. 그는 옥수수죽 한 숟가락을 먹으며 계산을 하였다. 「저 녀석이 우릴 삼년은 먹여 줄거요.」 「희망을 먹고 살 수는 없어요.」 부인이 말하였다. 「희망을 먹을 수는 없으나 그것이 사람을 지탱시켜 줄 수는 있소.」 하고 대령은 대답하였다. 「그건 내 친구 사바의 신통한 경제같은 거요.」
「난 지쳤어요.」 하고 부인이 말하였다. 「남자들은 집안 살림을 알지 못해요. 며칠씩 냄비를 끓이지 못하고 지낸다는 것을 이웃들이 알까봐 나는 몇 번이나 돌덩이를 끓이기도 했다우.」대령은 모욕감을 느꼈다. 「그것이야말로 창피한 일이오.」 하고 그는 말하였다. 부인은 모기장 밖으로 나와 그물침대께로 갔다. 「나도 이 집 구석에서 허세와 겉치레를 팽개치려우.」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노여움으로 험해지기 시작했다. 「나도 체면 치fp와 체념에 질렸단 말이우.」 대령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선거가 끝날 때마다 당신에게 약속하였던 알록달록한 새들을 이십년간이나 기다렸어요. 그러나 우리가 얻어낸 것은 아들의 죽음뿐이었어요.」
「스프를 네 번이나 데웠는데요.」 하고 여인이 말하였다. 「열 번이라도 데우구려.」 하고 사바가 말하였다. 「그러나 바가지만 긁지 마오.」
수탉을 거래하는 장면 묘사는 그 전 장면 그 자체로 기가 막히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인 표현들-
- 「당신은 장삿속이 전혀 없어요.」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물건을 팔 때도 살 때와 똑같은 얼굴을 해야 돼요.」 대령은 그녀의 몰골에서 무엇인가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가만히 그대로 있어 보오.」 하고 미소를 지으며 그는 아내를 가로막았다. 「당신은 퀘이커․오우트 광고에 나오는 사람과 똑같구려.」 그녀는 머리에서 헝겊조각을 벗었다. 「나는 농담하고 있는 게 아니예요. 나는 당장 수탉을 우리 친구에게 가지고 가서 반시간 내에 900페소를 가지고 돌아오겠어요. 무슨 내기라도 걸겠어요.」 「당신은 머리가 어떻게 되었소.」 하고 대령이 말하였다. 「당신은 벌써 수탉에서 생긴 돈을 걸고 있는 거요.」
- 「수탉 임자라는 것을 잊지 말아요.」 하고 그녀가 다그쳤다. 「당신이 그에게 선심을 쓰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해요.」
- 「우리는 저 이를 쏘아 죽여야 해요.」 하고 대령을 향해 의사는 말하였다. 「당뇨병은 부자들을 처치하기에는 너무 더디거든요.」/ 「당뇨병에는 가난이 제일 좋은 요법입니다.」
바로 그때 그는 생전 처음으로 자기 아들을 쏘아죽인 사내를 아주 가까이에서 보았다.
「창밖이나 내다보고 수탉은 잊어버려요.」 하고 어린이들이 떠나자 대령이 말하였다. 「오늘 같은 아침엔 사진이라도 찍고 싶은 기분이구려.」 그녀는 창밖을 내다보았으나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나는 장미꽃이나 심고 싶어요.」 하고 스토브로 돌아가며 그녀는 말하였다. 대령은 면도를 하기 위해 걸쇠에 거울을 걸었다. 「장미를 심고 싶으면 심도록 하구려.」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그는 자기의 동작을 거울 속의 동작에 맞추려고 하였다. 「돼지가 다 먹어치워요.」 그녀의 말이었다. 「그렇다면 더욱 좋소.」 하고 대령은 말하였다. 「장미를 먹고 살찐 돼지는 맛이 그만일 거요.」 그는 거울 속에서 아내를 찾았다. 그리고 아내의 표정이 여전함을 눈치챘다. 불빛을 받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스토브와 같은 재료로 형성된 것 같이 보였다. 두눈을 아내에게 고정시킨 채 쳐다보지도 않고 대령은 여러해동안 그랬듯이 그저 만져가며 면도를 계속하였다. 오랜 침묵 속에서 부인은 생각하였다. 「그러나 난 심고 싶지 않아요.」 하고 그녀가 말하였다. 「좋아요.」 하고 대령이 받았다. 「그렇다면 심지 말구려.」
「오래지 않아 연금이 나올 것이오.」 하고 대령은 말하였다. 「당신은 똑같은 얘기를 십오년째 계속하고 있어요.」 「그러기 때문에 이젠 정말 곧 나오게 될 거요.」 하고 대령이 받았다.
「한평생 쓰레기만 먹었는데 지금와선 수탉만한 대접도 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어요.」 「그건 달라.」 하고 대령이 말했다. 「마찬가지예요.」 하고 아내가 대답하였다.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지금 내가 걸려있는 것은 병이 아니라 느릿느릿한 죽음이란 말이예요.」
부인은 울화통이 터졌다. 「그러면 그 동안엔 무얼 먹는단 말이지요?」 하고 그녀는 물었다. 그리고 대령의 플란넬 파자마의 멱살을 잡았다. 그녀는 그를 세게 흔들었다. 이 순간에 당도하기까지 대령에게는 75년간 -순간순간 따져서 대령의 75년의 생애-의 세월이 걸렸다. 그가 대답을 하는 순간 그는 순수하고 분명하고 또 무적임을 느꼈다. 「제기랄 것!」<- 앞부분에서 대령이 구두가 낡았다고 해서 들었던 상소리가 엔딩에 이렇게 나온다 :)
첫댓글 난 시연이 후기 볼 때마다 시연이가 혹시 기계장치거나 뭔가 트릭이 있을거라 생각했었어.
그래서 지난 시간에는 어떤 트릭을 쓰는지 봐야겠다..마음을 먹었지.
그리고 지난 시간에 몰래 훔쳐 보려다가 눈이 딱 마주쳤고.. ㅎㅎ
내가 알아낸 건 시연이가 기계장치가 아니라는 거였어.
그동안의 후기가 엄청난 노가다의 결과물이라는 걸 알게 됐지.
그 동안의 모든 후기들이 그런 과정을 통해 탄생된 거였다니...
새삼 존경의 마음까지 들었어. 고마워 항상.^^
언니, 시연이 기계장치라는 말에 마구 동감이 가는데요..ㅋㅋ
기계장치=집중력+기억력+이해력+구성력+타자력+미모력+..=예술가
시연, 소중한 자료 늘 너무 고맙삼~*^^*
아... 언니들 덧글 좀 감동이다.... ㅠㅠㅠㅠ 수업 시간에 미친듯이 타이핑하다가 명옥언니랑 눈 마주쳐서 같이 씩 웃었던 거 기억나요 ㅎㅎ
사실 필기 하는 거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후기를 써야한다는 생각을 하고 듣는 수업에서는 필요 이상으로 곤두세우고 있게 돼서
수업 끝나고 나면 평소보다 많이 지치는 게 있는데, 노력 들어가는거 알아주시고 '소중한 자료'로 생각해주셔서 되게 고맙고 뿌듯해요.. 고마워요! :D
내 이럴줄 알았지.........다음 학기 후기는 어쩌지???? 큰일이다 >.<
한편으로는 시연언니의 후기덕분에 무의식적으로 전 필기를 열심히 안한거같아요~^^;;
언니의 노력과 수고에 정말 감사해요
전지금학교에서 몇과목은 언니처럼 정리하고있는데
수업끝나면 언니생각을해요 ㅎㅎㅎ
난아직 시연언니처럼하려면 멀었군...하는 자기반성과 함께 ㅎㅎ
언니 정말 좀 짱인거 같아요 ㅎㅎ
언니들 후기 보면.. 난 수업시간에 뭐했나 싶어요 항상... ㅜㅜ
수업 못들은 나로서는 두배로 감사 감사~~~^.^ 이번주도 좀 늦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