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학세계] 201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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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서점망 편집실에서
[2011.11.20 발행. 275페이지. 정가 13,000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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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인의 고백
윤 옥 석
아침나절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오래전 직장에서 같이 근무했던 H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뜻밖에도 그녀는 호수공원에서 나를 만났으면 했다. 무슨 일일까? 궁금했다. 그동안 어찌 지냈는지
소식을 듣고 싶어 약속 장소로 서둘러 나갔다.
H는 직장에서 일할 때, 남녀 모두로부터 인기가 있었던 여직원이었다. 성격은 물론 미모가 출중하여
특히 남직원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호숫가에 도착하니, 정갈한 차림의 그녀가 화사하게 웃으며 나를 맞이했다. 잔디밭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간의 안부를 물었다. 그러자 "선생님, 저는...... 저는 ....." 울먹이면서 말을 잇지 못하는 게 아닌가.
일순간 침묵이 흘렀다.
나는 뒷말을 재촉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하늘에 떠다니는 새털구름을 바라보았다. 구름은 어디론가
날아갈 듯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들곤 했다.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몇 해 전에 그녀를 만났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그녀는 고해성사만큼이나 어려운 말을 내게 털어놓았었다. 젊은 나이에 아들과 단둘이 어렵게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의지하는 아들마저 군에 입대하여 살기가 더욱 팍팍하고 쓸쓸하다고 했다.
지금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로 지낸다며 허허로운 표정을 지었었다.
남에게 함부로 쉽게 얘기할 수 없는 개인사를 들으며 나는 별의별 생각을 다했었다. 신랑하고는 어떻게
헤어졌는지? 혹시 장기간 해외 출장을 간 것일까? 아니면 사별? 그것도 아니면 이혼? 나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생각을 굴렸지만 해답이 나올 리 없었다. 나이보다 훨씬 어려보이는 그녀에게 닥친 불행을
내 입으로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녀의 어려운 사정을 진즉부터 알고 있던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 그리고는 행여 무리한 부탁이나 하지
않을까 , 하는 조바심이 일었다. 내 걱정 , 그녀 걱정을 하며 고뇌에 찬 표정으로 머리를 쓸어올렸다.
한참동안 울먹이던 그녀가 빨개진 얼굴로 말했다.
"실은 부탁이 있어 만나자고 했어요."
그럼 그렇지, 겁이 덜컥 났다. 그런데 뒷말이 나를 더욱 놀라게 했다.
"저 , 예식장에 가고 싶어요."
"예식장? 왜?"
누가 들으면 뜬금없는 소리였다.
"왜, 그리 놀라세요? 난 단지 예식장 들러리를 하고 싶은 거예요. 들러리가 안되면 들러리 보조라도
괜찮아요. 그걸 도우미라고 하던가....."
나는 잠시 허황된 생각에서 평정심을 되찾았다. 안도감과 함께 몹시 부끄러운 마음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평소 친하게 알고 지내던 예식장 사장을 떠올렸다. 그는 항해사로 선박의 위치를 측정하고
하역을 감독하는 일을 하다가 지금은 예식장을 경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식 혼인식에서는 신랑과 신부를 식장으로 인도하여 곁에 서는 사람을 들러리라고 한다.
그녀는 예식장에서 들러리나 도우미 일을 하기를 원했다. 이런 일은 젊은 사람들의 업무일텐데 과연 할
수 있을까, 나는 은근히 걱정되었다. 매무시와 미모, 인품은 적격이었으나 연령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사정이 딱한지라 함께 가서 부탁해 보자고 선뜩 승낙을 했다.
잔잔한 호수 속에는 금붕어들이 반짝이며 헤엄을 쳤다. 호숫가 잔디밭의 풍경과 여운을 뒤로 하고 우리는
예식장으로 향했다.
그녀는 내 팔을 끼고 미소를 지으며 마치 연인처럼 사뿐사뿐 걸었다. 나를 바라보며 방긋방긋 웃었다.
내가 선뜻 부탁을 들어주니까 마음이 안정되고 신이 난 모양이었다.
먼 곳을 가장 빠르고 쉽게 가는 방법은 자동차,기차,비행기보다 친구나 연인과 함께 가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미모의 여인과 이야기하며 걸으니 빠르고 쉽게 예식장까지 오게 되었다.
그녀는 예식장의 들러리들이 분주하게 준비하는 과정을 눈여겨 바라보았다. 호기심에 찬 눈빛은 그들의 행동에
열중하며 반짝거렸다.
그런 모습을 보며 엉뚱한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H가 면사포를 쓰고 우아한 몸짓으로 내 팔을 끼고 주례
앞으로 행진하는 상상이었다. 혼례식장 앞에서 현실의 벽을 지나 상상의 공간으로 줄달음친 것이다.
사람들이라는 것이 그 본질은 허망한 꿈을 꾸며 몽롱한 세계에서 주인공이 되나 보다.
하긴 꿈길에서나 생시에도 주인공 옆에는 항상 들러리가 있기 마련이다.
현실의 세계에서 이런 역할이 아마 미지의 그곳에서도 계속되는 것인지 내 나름대로 생각해 본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삶의 여정...... 나는 황금보다 더 귀중한 지금이란 현재를 음미해 본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지금'이 아니던가.
사장실에 들어가 친구를 만났다. 그녀를 본 친구가 "참 미인 중 미인" 이라고 인사치레를 한다.
표정을 보니, 그녀가 마음에 들고 흡족한 모양이다. 그리고는 "현재는 자리가 없으니 결원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 달라." 고 한다.
나는 친구의 말이 진심일까, 의심이 갔다. 과한 칭찬이 마음에 걸렸다. 그녀 역시 나이가 많아서 그럴까,
아니면 언제 결원이 생길까 , 고뇌하는 표정이 얼굴에 스쳤다.
'들러리' 라는 일자리 구하기도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친구에게 다시 한 번 부탁을 했다. 가만 생각해보
니 나 역시 그녀의 구직을 위한 들러리에 불과하다고 느껴졌다.
그러나 그곳을 나와 거리에 서 있으려니, 나도 그녀도 어엿한 주인공이다. 인생의 무대에서 누구나 주인공
역할을 할 수 있고, 그 옆에는 항상 조연이 있기 마련이다. 둘 사이에 조화가 잘 이루어질 때 명품 인생이 되고
영화에서는 명화가 된다.
다만 지금 즉 현재의 귀중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성실한 노력이 필요하다. 부단히 정성을 다하면 형상이
보이고 , 움직이고 변화해 결실이 있을 것이리라. '소학' 의 성실에 대한 뜻이 새삼스럽게 내 곁으로 다가온다.
주인공이나 들러리 모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 순간을 위하여, 다시 한 번 삶의 뒤안길을 되돌아봐야겠다.
가까운 날에 기쁜 소식이 들려오기를 기다린다. 그녀의 역할이 삶의 무대에서 당당하게 하나의 주인공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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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단합니다.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훌륭한 작품입니다,.
전에 말씀 드린 것처럼 짧은 글에서 스릴이 느껴집니다. 축하축하드립니다. 또 좋은 작품을 기대하겠습니다.
귀목 유성호 작가님, 안혜 이선희 작가님 축하하여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함께 좋은 작품을 향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