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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별이 머물다 간 자리
影園 김인희
선홍빛 장미가 목마름에 전율하는 모습을 보고 비가 내리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토해내면서 비를 내려달라고 애원했다. 내 간절함이 닿았을까. 간밤에 몰래 밤비가 다녀갔다. 깊은 잠 속에서 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소리 없이 탄성을 질렀다.
아침 출근길에 대지에 촉촉한 모자이크를 보고 기분이 좋아서 헤실헤실 웃었다. 목마른 대지에 조금이나마 단물을 내려준 하늘에 감사를 드리고 이내 더 많은 비를 내려달라고 투정을 부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낯모르는 이를 만났더라면 홀로 웃는 나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상상만 해도 웃음을 멈출 수 없다.
간밤에 잠시 내린 비처럼 내 사랑이 머물다 갔다. 지난 금요일 퇴근길이었다. 늘 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자신을 향하여 도돌이표를 연주하는 악사라고 여겼다. 태양은 마지막 몸부림으로 서쪽 하늘에 붉은 물감을 풀어 물들이고 있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여전히 만나는 풍경이건만 유난히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순간이었다.
골목길 걷다가 모퉁이를 돌아설 찰나에 ‘어머니~~!!’하고 부르는 굵직한 목소리를 들었다. 가끔 秀珍이가 공부하다가 분위기 전환할 겸 마중을 나오곤 했다. 또랑또랑한 秀珍이의 목소리가 아니었기에 무심히 외면하려고 했다. 성큼성큼 내 앞으로 다가온 이는 애타게 그리워하던 雨澤이었다. 순간 믿을 수 없어서 굳어진 채로 서 있었다.
어느새 뒤따라 온 秀珍이는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하게 동영상을 촬영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동생의 방문에 뛸 듯이 기뻐하는 부모를 바라보는 秀珍이의 얼굴은 해바라기처럼 웃음이 만개했다. 길 위에서 환호성을 지르면서 안부를 묻는 엄마의 어깨를 어루만지면서 雨澤이는 자신이 깜짝 선물이라고 너스레다.
저녁 식탁은 온 가족이 둘러앉았다. 오랜만에 네 잎 클로버의 모든 잎이 합체되는 순간이었다. 雨澤이가 귀가한 기념으로 삼겹살을 굽는 푸짐한 상차림이었다. 불판에서 지글지글 소리를 내면서 맛있게 익은 삼겹살을 상추에 싸서 입에 넣으니 가족들의 볼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雨澤이가 강원도에서 지낸 에피소드를 쏟아낼 때 하하 호호 낄낄 하면서 맞장구를 치고 추임새를 넣으면서 아빠와 秀珍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대화는 무르익어 남매의 어린 시절 추억까지 소환되었다. 딱! 거기서 멈추었어야 했다. 남매가 추억을 속속들이 헤집어 들추어내다가 급기야 엄마의 실체를 밝혀냈다.
“아빠, 엄마가 얼마나 엄격하게 우리를 키웠는지 모르지요? 우리가 거친 말을 하거나 다툴 때는 호랑이처럼 무서웠어요. 우리 집 거실에 걸려있던 효자손은 아빠의 등을 긁을 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들 회초리였어요. 엄마는 우리들 엉덩이가 파랗게 멍든 것을 보고 아빠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어요. 남들은 엄마를 보고 부드러운 여자라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무서웠어요.”라고 秀珍이가 판을 펼쳤다.
雨澤이도 합세하여 주저리주저리 억울했던 일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성인이 된 남매의 달변에 나는 두 손 두 발 들고 말았다. 아빠가 웃어넘기면서 ‘엄마의 엄격한 교육 때문에 너희들이 반듯하게 성장했다고 믿지 않니?’하고 내 손을 들어주었기 망정이지 남매의 입담에 꼼짝 못 할 뻔하였다. 내가 남매를 향하여 “다시 너희들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더 엄격하고 강하게 교육시킬 거야.”라고 말했더니 일순에 화제가 현실로 돌아왔다. 후후
강원도에서 지내고 있는 雨澤이는 집에 오는 것이 자유롭지 못해서 늘 그리움이었다. 작년에 H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임관 후 동해로 발령을 받았다. 부여에서 雨澤이가 있는 강원도 동해까지 거리는 300Km 이상으로 거리가 멀어서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어쩌다 휴일에 시간을 내서 다녀오고 싶어도 雨澤이와 시간을 맞출 수 없어서 주저앉아야 했다.
雨澤이를 생각할 때 밤하늘에서 별을 보면서 그리움을 삭히고 더러는 그렁그렁 눈물을 매달고 있었다. 약한 엄마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전화기 너머로는 씩씩한 척했다. 雨澤이는 늘 괜찮다고 하면서 가족의 안부를 물으면서 공부하는 누나에게 스트레스 주지 말라고 어른처럼 말해서 감동을 주곤 했다.
주말 저녁에 온 가족이 거실에 둘러앉아 영화를 보기로 했다. 거실 등을 소등하고 홈시어터를 연결하여 영화를 관람하는 시간은 가정의 달에 받은 최고의 선물이었다. 고구마 칩을 먹으면서 한 공간에서 호흡하는 시간이 달콤했다. 스크린에서는 영화가 전개되고 고구마 칩 봉투에 손이 들어갈 때 부스럭 부스럭 소리를 내고 고구마 칩이 입에서 부서질 때 나는 바삭바삭 소리가 효과음이 되었다.
두 시간이 찰나처럼 흐르고 스크린 자막이 올라갈 때 雨澤이가 “아, 너무 편하고 좋다!”라고 외쳤다. 마음이 따뜻한 누나 秀珍이는 시험을 코앞에 두었음에도 금쪽같은 시간을 아낌없이 동생에게 쏟아주고 있었다.
秀珍이가 주방에 있는 내게 다가오더니 귓속말로 “엄마, 雨澤이가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 외식이나 식단 등 모든 것을 雨澤이 위주로 하세요. 저는 괜찮아요.”하고 한다. 옥상에서 빨래를 걷는데 雨澤이가 슬그머니 다가오더니 “엄마, 지금 누나가 가장 힘들어요. 공부는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이잖아요. 누나가 예민하더라도 이해하시고 받아주세요.”라고 한다.
의좋은 남매다. 그 남매가 어렸을 때 의도적으로 날마다 전래동화 ‘의좋은 형제’를 읽어주면서 의좋은 남매가 되라고 잔소리했었다. 참으로 감읍할 일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했던가.
2박 3일이 지나고 雨澤이는 머나먼 강원도로 떠났다. 늦은 저녁시간 거실 소파에 앉으면 雨澤이가 앉았던 자리에서 부스럭 부스럭 소리가 나고 바삭바삭 소리가 난다. 나의 별이 머물다 간 자리에서 쏟아지는 향기다.
2. 한 송이 꽃과 같이
影園 김인희
먼 산새 소리가 알람이 되어 잠에서 깬 토요일 아침이다.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주방으로 가서 식탁 모서리에 앉아 있는 씬지로이드 한 알 삼킨다. 거실에 있는 책상과 노트북을 방 안으로 들고 왔다. 지니(秀珍이 닉네임)는 새벽녘에 간신히 잠을 청했을 것이다. 나의 소음으로 지니의 잠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이어폰으로 대학원 강의를 수강했다.
지니는 대학 졸업 후 취업을 위해 공부하고 있는 꽃다운 청춘이다. 작은 다람쥐가 되어 쳇바퀴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 책상에 앉아 책을 끼고 캄캄한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새벽에 침대에 든다. 시험시간이 카운트다운되면서부터 식사를 제대로 못 하고 있다. 그나마 소화를 시키지 못해서 등을 어루만져주고 차가운 손을 주무르면서 체온을 전달해주는 것이 부지기수다.
강의를 들으면서 집중하지 못하고 지니를 위해서 무엇을 해줄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분주했다. 낮에 책상에 자신을 묶어두고 생각은 온통 꿈에 박제시킨 지니를 위해서 밖으로 나가 태양을 만나게 할 기막힌 계획을 세웠다.
지니가 잠에서 깰 시간쯤 외출할 수 있도록 밥을 지었다. 근처에 있는 마트에 가서 유부초밥 재료를 사고 간단한 간식거리를 준비했다. 지니가 좋아하는 식혜도 잊지 않았다. 예쁜 유리그릇에 유부초밥을 만들어 담았다. 식혜, 떡, 수박, 사과 등 빠짐없이 차곡차곡 가방에 챙겼다.
텐트를 꺼내고 작은 담요와 방석을 챙겼다. 자동차에 짐을 싣고 지니를 깨워 야외로 나가서 점심식사 하자고 했다. 미처 잠에서 깨지 못한 지니는 눈을 반쯤 뜨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지니를 태우고 시골길을 달려 도착한 우리 둘만의 비밀의 화원에 당도했다.
한적한 도로 옆에 텅 빈 정자에 텐트를 치고 준비한 음식을 차렸다. 지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 많은 것을 언제 준비했느냐고 감탄이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번갯불에 콩을 볶는 사람이 바로 엄마라고 칭찬 일색이다. 지니는 식사를 하면서 내가 원하던 바대로 말이 많아졌다.
내가 식사를 마치고 텐트를 정리한 후 담요를 펼치고 지니에게 잠시라도 누워서 쉬라고 권했다. 지니는 앉아서 엄마 얼굴을 보고 말하는 것이 좋다며 음식 준비로 힘들었을 거라며 나를 눕혔다. 지니의 본격적인 달변이 시작되었다.
지니는 공부하는 것이 힘들지 않다고 한다. 친구들은 공부하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지니는 스스로 과거를 준비하는 한량이라고 넉넉한 미소를 짓는다. 시험 날짜가 임박해서 긴장하는 것은 당연지사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지니가 엄마를 위해 국어 강의에서 배운 詩를 들려주겠다고 해서 눈을 지그시 감았다.
지니가 휴대전화를 열어서 백석 시인의 시 <여승>과 <노루>를 들려주었다.
여승
백석
여승(女僧)은 합장(合掌)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늬 산 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女人)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지니는 <여승>을 읽어 주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역순행적으로 시상이 전개되는 부분을 강조했다. 한 여인의 비극적인 삶에서 인생을 전개함에 간결한 문장으로 감정을 절제하여 표현했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지니는 1930년대 일제 강점기 역사 속에서 여인의 삶에서 시대를 볼 수 있다. 섶벌같이 나아가 지아비, 어린 딸의 죽음을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고 표현한 부분이 슬프다고 감상을 말해주었다. 나는 말없이 지니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나를 맡기고 의지와 상관없이 춤을 추었다.
노루 – (백석, 1912~1995)
장진(長津) 땅이 지붕 넘어 넘석하는 거리다
자구나무 같은 것도 있다
기장 감주에 기장 찰떡이 흔한 데다
이 거리에 산골사람이 노루새끼를 다리고 왔다
산골사람은 막베 등거리 막베 잠방등에를 입고 노루새끼를 닮었다.
노루새끼 등을 쓸며
터 앞에 당콩 순을 다 먹었다 하고
서른 닷 냥 값을 부른다
노루새끼는 다문다문 흰 점이 백이고
배 안의 털을 너슬너슬 벗고 산골사람을 닮었다.
지니가 백석 시인의 <노루>를 들려주었을 때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처음 듣는 詩였으나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지니는 내 눈물에 놀라지도 않고 화장지로 살짝 닦아주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지니는 막메 잠방등에를 입은 산골 사람과 노루 새끼가 서로 닮았다는 부분에서 공감했다고 했다. 가난한 산골 거리시장에서 노루 새끼를 팔려고 값을 흥정하는 초라한 산골 사람과 자신을 팔려고 흥정하는 것을 모르는 새끼 노루의 순박한 모습이 서로 닮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지니가 마지막 연에서 ‘새까만 눈에 하이얀 것이 가랑가랑한다’라는 부분을 말하면서 산골사람과 이별을 아쉬워하는 듯한 노루의 눈물을 선명하게 표현했다고 말하면서 울먹였다. 지니는 새끼 노루를 팔 수밖에 없는 산골 사람과 팔려갈 수밖에 없는 노루 새끼의 닮은 운명에서 연민을 느낀다고 말했다.
지니가 들려준 달콤한 말이다. 지니는 국어 공부를 따로 시간 내서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다른 과목 공부할 때 힘들거나 스트레스가 쌓일 때 국어 공부를 하면 치료 효과가 있다고 한다. 엄마가 어렸을 때부터 독서를 강조하면서 독서 습관을 들였기 때문이라고 엄마에게 공을 돌렸다. 지니는 문학을 좋아하고 글을 잘 쓰는 차세대 보석 같은 문학인이다. 지니는 시와 에세이를 자주 쓰면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야심을 품고 있다.
지니는 촘촘한 시간 속에서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있다. 제법 많은 구독자가 생겨서 더러 사업가들이 자신들의 글을 써달라고 프러포즈하는 모양이다. 엄마는 ‘네 글이 돈 몇 푼에 거래되는 글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더 공부하고 깊이 있는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권면했다.
지니는 엄마처럼 살고 싶다고 말한다. 자녀가 어렸을 때는 자녀교육에 정성을 쏟아 주고 친가 형제들과 외가 형제들과 화합하는 엄마의 모습이 교훈이란다. 아빠에게 착한 아내이고 자녀들에게 지혜로운 엄마가 좋단다. 자녀들이 성인이 되고 자신의 길을 자신 있게 걷고 있는 아름다운 여자가 바로 엄마란다. 그래서 엄마가 지니의 롤모델이라고 한다. 몸 둘 바를 모를 칭찬이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다. 지니는 엄마보다 훨씬 멋진 여성이 될 것이다. 한 송이 꽃과 같은 지니의 향기가 텐트 안에 가득 차 있었다. 유월의 어느 토요일에.
3. 그녀의 변신은 무죄 (隨筆)
影園 김인희
그녀의 저녁 산책코스로 궁남지는 황홀한 공간이다. 그녀는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운동화 끈을 단단하게 조이고 씩씩하게 운동을 시작한다. 그녀는 근처 중학교 운동장으로 간다고 마음먹지만 늘 무산되고 만다.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발걸음은 궁남지를 향하여 거침없이 전진하고 있다.
궁남지 입구에서 가장 먼 거리를 운동코스로 선택하고 한 치 망설임이 없다. 그녀의 키보다 훨씬 큰 연꽃이 키 작은 그녀를 무색하게 한다. 낮에는 홍련과 백련의 빛깔이 청록의 연잎 사이에서 해와 달처럼 빛난다. 밤에는 그 빛깔이 모두 향기로 승화되어 연꽃 사이를 걸을 때마다 온몸을 휘감는 은은한 향기에 매료된다.
여름에는 버드나무 가지마다 안고 있는 매미들이 어찌나 울어대는지 귀가 따가웠다. 여름이 물러가고 가을이 들어앉으려는 찰나의 계절은 경건하다. 아직 삶의 유효기간이 남은 매미들이 목청 높여 소리로 역사를 쓰고 있다. 일찍 찾아온 가을 전령사들의 소리는 매미의 노래와 화음을 이루면서 차가운 공기를 불러들이고 있다.
궁남지 산책로 따라 설치한 경관조명은 여러 빛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녀가 내딛는 발걸음이 보랏빛이 되었다가 푸르게 변하고 선홍빛으로 물들었다가 다시 초록색으로 변했다. 마치 경관조명의 빛깔에 따라 연꽃의 향기도 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순간 그녀는 경관조명의 오색 빛깔이 어쩌면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 하고 상상의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녀는 아침마다 집안일에서 손을 떼고 화장하고 출근 준비하면서 커리어우먼으로 변신한다. 직장에서는 지자체에서 파견한 전문 사회복지사다. 정부와 수급자 및 차상위 계층을 연결하는 업무가 그녀의 주된 일이다. 그녀는 업무로 인하여 장거리 출장과 지자체에 가는 일이 잦은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즐기고 있다. 그녀의 긍정적인 마인드가 곧 그녀의 경쟁력이라 여긴다.
그녀가 퇴근하고 헐렁한 옷으로 갈아입으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아줌마의 대명사가 된다. 가족을 위하여 식단을 준비할 때 우선순위가 건강한 먹거리를 준비하는 것이다. 주방에서 조리하면서 콧노래를 부르고 대청소를 하고 빨래를 할 때도 그녀의 허밍은 멈추지 않는다.
그녀가 이불빨래를 할 때면 커다란 함지박에 이불을 넣고 힘차게 발로 밟으면서 세탁을 한다. 가족들은 그녀를 보고 힘들게 하지 말고 세탁소에 맡기자고 성화다. 이불은 살갗에 직접 닿고 긴 시간 동안 가족의 숙면을 책임지니 정결하게 세탁해야 한다는 그녀의 반박에 가족은 꼼짝하지 못한다. 나날이 그녀의 작은 손이 도톰해지고 손가락이 굵어지고 있다.
그녀가 시와 함께 무대에 서는 순간은 전문 시낭송가가 된다. 시에 어울리는 무대의상을 준비하고 배경음악의 선율에 그녀의 목소리가 얹어질 때 관객은 환호한다. 그녀가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 대기실까지 따라와서 박수하는 관객이 있었다. 한 편의 시를 껴안고 몇 날 며칠을 외우면서 시에 어울리는 배경음악을 찾는 일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다.
그녀가 PPT자료를 들고 강의를 하는 날은 강사답게 변신한다. 강단에 서는 순간까지 강의록을 손에 들고 낮이나 밤이나 공부한다. 단정하고 전문적인 용모로 변신하고 대상에 따라 강의의 수위를 조절한다. 전문적인 강의 못지않게 이벤트를 준비하고 선물을 전달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녀는 효와 인성, 하브루타, 백제 역사, 아동 인권 등 주제를 들고 당당하게 강단에 오르고 있다.
그녀의 도전은 멈추지 않고 있다. 토요일에는 격주로 대학원에 공부하러 간다. 그녀가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박사과정 공부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만류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가족은 물론 시댁과 친정을 비롯하여 지인들은 당연한 일인 양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녀가 박사과정 공부를 앞두고 나이 때문에 주저하고 경제 때문에 망설였던 것이 기우였다는 것을 깨닫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녀가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대학원에 가는 시간은 오롯이 그녀만의 것이다. 일주일 동안 쌓인 부유물을 말끔히 제거하는 거룩한 시간인지도 모른다. 이동하는 시간의 절반은 기도하는 시간이다. 그녀의 현재의 모습이 곧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임을 믿는다. 그녀가 걸어온 길에 찍힌 그녀의 발걸음마다 동행하고 그녀의 기도를 모두 들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드린다. 그녀의 끊임없는 요구를 거절하지 않으시고 하나씩 열매 맺게 하시는 하나님, 그녀의 모든 것을 아시고 그녀의 모든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거룩한 예배의 시간이다.
자동차로 이동하는 절반의 시간은 시낭송 연습을 한다. 지금까지 무대에서 낭송했던 시를 한 편씩 낭송하면서 시어가 가지고 있는 고, 저, 장, 단, 완, 급, 쉼의 원칙을 고수하고자 노력한다. 암송했던 시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그녀의 목소리가 시를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을 부여한다. 프랑스의 학교 교육은 모국어로 쓴 한 편의 시를 암송하는 것으로 시작한다고 했다. 그녀는 그 말에 격동하면서 시낭송으로 한국어와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교육할 수 있으리라 예견하고 있다.
그녀가 대학원에 도착하여 책상에 노트를 꺼내놓고 딱딱한 의자에 앉으면 비로소 가장 순하고 착한 학생이 된다. 수업 시간마다 교수님의 강의를 따라잡으려고 눈망울 영롱하게 굴리면서 열정적으로 수강한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빼곡한 수업 일정을 거뜬히 소화할 수 있는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녀 스스로 의문을 던지고 조소하는 날들이다.
최근에는 부여학(扶餘學) 강의를 수강하고 있다. 부여 문화원에서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에 2시간씩 부여를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말을 절감한다. 지금까지 부여를 백제의 도성으로 한계를 정했던 그녀의 생각을 깨뜨리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부여에 대해 새롭게 배우고 있다. 부여학 강의가 끝 날 때쯤이면 그녀의 부여는 백제, 고려, 조선을 품은 다채로운 역사와 문화의 도시로 새롭게 거듭날 것이다.
부여학 강의가 없는 날 저녁은 운동하기로 했다. 직장에서 온종일 컴퓨터와 씨름하느라 옴짝달싹 못 하는 신세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낮에 붙들었던 글제를 모자이크하느라 분주하다. 밤이 늦도록 강의를 듣고 글을 쓰는 일상이다. 어느 순간에 건강을 지키는 것이 모든 것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깨달았다. 근처에 사는 친구와 운동하면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면서 씩씩하게 걷고 있다. 그녀는 등줄기에 땀이 흘러내리는 짜릿한 순간의 감촉을 위하여 걷는다.
그녀는 작은 꽃을 시로 납치하는 시인이다. 삶의 여정과 사랑을 스케치하는 수필가다. 펜에 힘을 주는 칼럼니스트다. 한 편의 시로 관객을 사로잡는 시낭송가다. 가을 서리처럼 차가운 강사가 되었다가 봄바람처럼 따뜻한 수강생이 된다.
그녀가 창조하는 변신의 절정은 귀여운 연인이다. 사랑하는 남편 앞에서는 언제까지나 귀여운 연인이 되고자 한다. 그는 업무를 척척 해내는 능력 있는 그녀보다 똑똑하고 지혜로운 그녀보다 귀여운 연인인 그녀가 좋다고 했다. 하여 사랑하는 그 앞에서는 늘 철없는 귀여운 연인이 되고자 한다.
깊은 밤 12시 밤하늘 별도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그녀가 일과를 마무리하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는 시간이다. 사방이 온통 고요한 가운데 그녀의 떨리는 기도가 한 편의 시가 되는 밤이다. 범사에 감사가 넘친다. 아프고 억울한 일, 그 하나도 그분께 고한다. 그녀로 하여 그녀가 되게 하신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에 감사와 찬미를 드린 후 별을 껴안고 꿈나라로 떠난다.
함초롬한 가을 냄새가 나는 여인! 귀여운 그녀의 변신은 無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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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1. 별이 머물다 간 자리
2. 한 송이 꽃과 같이
3. 그녀의 변신은 무죄 (隨筆)
影園 김인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