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징크스는 깨어지지 않았습니다.
무슨 징크스냐구요? 지나간 3년전부터 시행하는 우리카페의 선조참배행사시에는 줄기차게 내리던 비도 우리가 목적지에 도착할 무렵이면 그치곤 했었지요. 아마도 선조님들께서 우리카페 젊은이들의 위선사업에 지장을 주지않기 위하여 비를 걷어가 주시곤 하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모든 행사가 끝나고 나면 못다내린 나머지 비를 마저 내려 주시더군요. 이번에도 그랬지요. 그제 오후부터 내리던 비가 우리 일행이 안성시 금광면 한운리에 모셔진 판도판서공(휘 승계)할아버지 묘소에 도달할 무렵인 11시경부터 그쳤다가 저녁부터 오늘까지 나머지 비를 마져 내리게 하였지 않습니까?
이번에 참석하신 참배객들은 수원에서 병수회장, 성준위원장, 병천형님과 인천의 병국감사, 오산의 완재대의원, 부천의 창배족질, 파주의 중근조직위원, 서울의 흥식아저씨, 수지의 성재족질, 그리고 오랜만에 참석한 재성 홍보위원이 안성 한운리 현지에서 대기하시던 장근 대종회부회장님을 비롯한 병용 군기시사공파화수회장님과 유원재족질등 14명이 이날의 참배를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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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조에서 봉익대부판도판서를 지내신 휘 승계할아버지의 묘소>
4년만에 다시 찾은 판도판서할아버지는 그 동안 성숙해진 우리일행들을 반갑게 맞이하시기 위해 내리던 비까지 멈추게 하시면서 환하게 웃으시었습니다. 비기 내리는 관계에다 두번째 참배라서 제물도 준비하지 못한 자손들에게 잘 찾아왔노라 반기셨으며, 간단히 엎드리어 정성껫 禮를 드리고, 다음에 다시 찾아뵐것을 약속드린 후 다음 목적지인 할아버지의 아드심이신 판사재감사공(휘 성복)할아버지 묘소를 찾아 금광저수지의 배어리를 향했지요. 대기하던 모타보트를 4년만에 다시 타고 묘소를 향해 출발하였습니다. 저수지가 생겨 섬속에 갇힌듯힌 듯한 성복공의 묘소에는 앞에는 저수지요, 저수지 건너에는 평택에서 충북음성을 향해가는 고속도로의 고가 교각이 뻗어나가고 있어 한폭의 그림이 따로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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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뵈어도 아담한 위치에 잘 모셔져있는 봉익대부 판사재감사공 휘 성복공의 묘소. 이 묘소의 비는 당시 황해도관찰사로 계시던 지수재(휘 척기)공이 입석하신 것으로 비의 뒷면에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도 간단히 참례를 드리고 다시 배를 타고 나와 석하리쪽의 큰 고개 넘어에 있는 오리구이집에서 미리 준비해 놓은 오리꼬치회전구이를 안주로 하여 소주를 반주로 추위에 떨던 몸을 녹였습니다.
비가 그친 후 바람이 심하게 불어 많이 추웠거든요. 이 점심은 고향땅을 찾아준 손님들이 반가워 우리카페의 병수회장께서 준비해 주셨습니다. 박봉을 털어 손님대접을 한 병수회장님의 후덕한 마음씨에 다시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다음에도 이런 기회를 만들어 주시길 기대합니다.
얻어먹기 좋아하는 나의 못된 욕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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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기시사공의 아드님이신 공조전서 휘 현공과 세종조의 명신 효통공의 단비를 모신 안성시 금광면 석하리의 단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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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조 영의정 황보인의 사위이신 성균관직강(휘 목로)공의 묘소>
맛있는 점심으로 몸을 녹인 우리 일행은 지난 4년전 참배시 알지못하여 참배를 하지못한 금광면 석하리에 모셔진 군기시사공(휘 성리)의 아드님이신 공조전서공(휘 현)과 세종조 명신이시던 효통공의 단비를 참배하고, 이어서 부락의 오른쪽 등성이의 선영에 모셔진 역시 세종조 영의정 황보인의 사위이신 목로공의 묘소를 참배하였습니다. 이 묘소는 특별히 처음 참배하는 곳이므로 제물을 준비하여 정성껏 예를 올렸습니다. 자손이시며 군기시사공파화수회장이신 병용 회장님을 초헌으로 제가 아헌을 하면서 늦게나마 인사드림을 용서하시고 건강한 다리를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기원드렸답니다.
사실 이번 성균관직강(휘 목로)공의 묘소는 파주의 황보인공의 묘역에서 이곳으로 이폄하는 과정에 선영의 맨 위에 모시느라 너무도 가파른 곳에 모셔져 있었으므로 제가 올라가기에는 너무도 힘이들어 파주의 중근 조직위원의 건장한 힘을 빌려 올라갔었답니다. 당시 이곳으로 공의 묘소를 이폄하신 병태 당시 안성종친 회장님은 오늘 참석한 원재 족질의 아버지 되시는 분이십니다. 공의 노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 곳에 단비를 건립하시고 또 묘소를 이폄하신 자료는 원재족질이 올려놓은 자료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곳까지 함께 참배를 하시느라 수고하신 중근아저씨와 완재대의원은 이곳 참배를 끝으로 급한 일이 있어 되돌아 가셨습니다.
이제는 안성시 사곡동의 좌승지공(휘 집)과 통덕랑공(휘 숙)의 묘소를 찾아 부지런히 길을 재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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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승지공(휘 집)의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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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덕랑공파의 파조이시며, 좌승지공의 아드님이신 통덕랑공(휘 숙)의 묘소>
이곳 안성시 사곡동에 모셔진 좌승지공(휘 집)은 통덕랑공의 부친으로 우리기계유씨 15개파중 7개파의 (통덕랑공파, 단성공파, 충목공파, 자산공파, 진사공파, 신계공파, 학생공파)할아버지로 사실상의 우리기계유씨의 중시조라 하여도 될 중대한 할아버지 이시지요. 아울러 묘소앞에는 공의 큰아드님이신 통덕랑공(휘 숙)을 거느리고 계시지요. 이 곳에서 참배를 마친 우리일행은 인근에 모셔진 대덕면 건지리의 충문공(휘 언호.좌의정) 묘소를 향하여 길을 재촉하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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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문공의 묘소. 이번에도 묘소의 위치상 역광을 받아 좋은 사진이 나오지 못하였군요. 성준위원장님은 언제 일기가 좋은 날을 택하여 충문공의 묘소를 다시 찍어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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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되어 낡았던 문화재 안내판을 이번에 시에서 다시 바꾸어 놓았더군요.>
이곳에서 참배가 끝이 났으나 시간이 조금 남아있으므로 또 다른 곳에 "문중의 어른"이라 할 수 있는 철원대신 영의정 지수재 어른께서 친히 쓰신 비석이 있다는 곳을 향하여 한군데 더 들리기로 하고 길을 재촉하였지요. 안성시 미양면 양변리에 모셔진 절충장군 愼基(단성공파)공의 묘갈명으로 박필주공이 글을 짓고 지수재공이 직접 글과 전을 쓰신(書幷篆) 화강석의 이비는 이수도 이무기를 머리에 이고 묘표까지 이수에 새겨 놓고 비 바탕석도 거북등과 같은 무늬로 새겨진 아름다운 이 묘소와 비는 대전에 자손들이 살고 있는데 이번에 개발지로 지정되어 훼손이 불가피한 이곳은 묘소와 비석이 참으로 잘 만들어진 문화재 급의 비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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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추기계유공신기묘(僉樞杞溪兪公愼基墓)"라 적힌 절충장군의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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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공의 묘갈명."유명조선국절충장군첨지중추부사유공묘갈명"이라 칭한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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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참의겸세자시강원찬선박필주찬"이란 글자와 "유명조선국숭록대부행 판중추부사유척기서병전"이란 글자가 선명하다. 영의정이 쓰신 이 글씨가 문화재가 아니고 무엇이랴? 이런 근거로 볼때 문화재급임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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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시 미양면 서변리에 모셔져있는 좌승지공(휘 진증)의 묘소>
이어서 인근인 미양면 서변리에 모셔진 단성공의 아드님이신 옥장리의 대록공의 세째아드님이신 진증공의 묘소도 둘러 보았습니다. 기타 행사 사진들은 별도로 종중사진방에 올려 놓을 것이니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진증공의 묘소를 둘러보고난 다음에 이곳에서 오늘 하루의 참배일정을 정리하고 모두 헤어져 각자의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면서 4월28일에 있을 예술의 전당 3층전시실에서 있을 일창선생 유묵전과 5월10일에 있을 후사리 판도판서공 재실 여운재(麗雲齋)준공식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면서 오늘의 참배일정을 마치고 나니 시간은 오후 7시가 다 되어 있었습니다. 수원을 거쳐 포천의 집에 도착한 시간은 다음날인 4월27일 새벽 1시반이였습니다.
두서없이 작성한 긴 글 읽어주신 회원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5월10일에 있을 금년도 제4차 안성참배시에도 많은 참석있으시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