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에 내리는 눈
진도대교 건너자 와락 눈이 한창이다
울돌목 곡소리도 내 귀엔 들리지 않아
먼 길을 끌고 왔던 생, 길 따라 굳어지듯
남도의 끄트머리 그리움이 눈에 섞여
바다가 훤히 보인 죽림길 언덕 앉아
술잔에 파도를 담아 뭉친 가슴 풀어낸다
무장무장 눈 내려 칼바람에 베이고
어디론가 조금씩 가라앉고 있는 중
나는 또 난파된 배처럼, 적막 하나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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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온에 와 너를 만난다 1
- 노을
세상일 망했다고 무작정 차를 몰아
와온해변 민박집에 마음 내려 놓는다
나는 왜 춥게 지내며 덜컹덜컹 거렸지
해변을 걷다 문득 마파람 씹어 보면
바람에 쓰릿해져 누군가 생 펼친다
제 몸의 상처가 터져 걸어온 길 적신다
잔파도에 쓸려간 철새들의 발자국
무릎 괴고 숨어서 눈 붉도록 울고 나면
하늘을 미친 바람처럼 물고 또 뜯고 있지
* 와온해변 : 전남 순천시 해룡면 상내리에 있으며, 일몰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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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온에 와 너를 만난다 2
와온에 와 갯가 보면
너와 나
사이 사이
잘려나간 마음들이
노을로 꽉 채워서
고요히
바람결 타고 온
슬픔에도 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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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항, 마음에 비 내리고
겨울비 흩뿌리는 여객터미널 대합실
누군가 유리창에 써 놓은 자모들이
잊혀진 기억에 불 붙여 환상의 꽃 피운다
저녁놀은 아궁이 같아 마음만 둥글어져
달리도행 철선에서 남해를 응시한다
눈물이 새는 악기인가, 파도에 휩쓸린 삶
한껏 부푼 파도 위를 구름이 가다 말고
바다가 잉태한 섬을 허리 굽혀 바라본다
외딴 섬 흐릿한 불빛에 밤새 마음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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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바다 위로 비 내리고
젖은 너를 바라본다
부도난 마음들을
달래려 기차로 와
오동도 자궁 속에서
따뜻한 꽃잠 들까
햇살에 울음 그친
동백숲 걸으면서
멍든 가슴 토닥이던
어머니를 떠올린다
해풍에 파도 소리에
몸 뒤틀면 젖을 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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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저수지
바람 불면 맘 흔들려 늑골이 더 아프다
물결 위 걸어가며 노래하는 새들도
폐허의 눈물로 굳은 저수지 찾지 않고
온몸 쿡 찌르면서 이따금 눈 내린다
주위 산들 무릎 꿇듯 푸른 숲을 비워내
밤이면 달빛 끌어당겨 이불처럼 덮는다
오늘 밤내 생각하리,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 자꾸 늙어져 무한정 울고 싶다고
그 울음 차곡 내려앉아 커다란 거울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