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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서울 시인협회 문학기행 안성을 다녀오다
구마루 무지개 우리 그룹 13명은 서울시인협회 안성문학기행에 합류하여
즐거운 하루 보람있는 시간을 보냈다. 참석자는 다음과 같다.
01. 민문자
02. 강 님
03. 이복연
04. 장광분
05. 최진자
06. 현인숙
07. 정애순
08. 정원순
09. 이춘자
10. 임맹진
11. 심재은
12. 김순화
13. 장꼭지
정진규 시인편 / 유튜브 /
[출처] [문학기행] 정진규 시인을 찾아서 (서울시인협회) |작성자 풀과별
조병화 시인편 / 유튜브 /
https://www.youtube.com/watch?v=7fACwKlvFKQ
[출처] 조병화 시인을 찾아서~ (서울시인협회) |작성자 풀과별
청록파 시인 박두진, 안성시 보개면 동신리(고장치기)
산문시의 대표자 정진규 시인, 안성시 미양면 보체리
시집 청보리의 노래 요절시인 임홍재 안성시 금광면 장죽리
사랑의 시인 조병화, 안성시 양성면 난실리
안성 출신 네 분의 시인이 태어나고 살았던 집, 다녔던 학교, 고향마을, 문학관, 묘소 등 안성 직접 토박이 원로 김유신 시인의 소상한 안내를 받았다.
박두진, 임홍재, 정진규, 조병화
박두진 : 1916년 3월 10일 (경기 안성시) ~ 1998년 9월 16일 (향년 82세)
1939년 문예지 '문장'
1976 예술원상
1973 연세대학교 교수
청산도
박두진
산아, 우뚝 솟은 푸른 산아
철철철 흐르듯 짙푸른 산아
숱한 나무들 무성히 무성히 우거진 산마루에
금빛 기름진 햇살은 내려오고
둥둥 산을 넘어
흰구름 건넌 자리씻기는 하늘
사슴도 안 오고, 바람도 안 불고
너멋골 골짜기서 울어 오는 뻐꾸기...
산아, 푸른 산아
네 가슴 향기로운 풀밭에 엎드리면
나는 가슴이울어라
흐르는 골짜기 스며드는 물소리에
내사 줄줄줄 가슴이 울어라
아득히 가버린 것 잊어버린 하늘과
아른아른 오지 않는 보고 싶은 하늘에
어쩌면 만나도질 볼이 고운 사람이
난 혼자 그리워라 가슴으로 그리워라
티끌 부는 세상에도, 벌레 같은 세상에도
눈 맑은 가슴 맑은 보고지운 나의 사람
달밤이나 새벽녘, 홀로 서서
눈물어린 볼이 고운 나의 사람
달 가고 밤 가고 눈물도 가고
티어올 밝은 하늘 빛난 아침 이르면
향기로운 이슬밭 푸른 언덕을
총총총 달려도 와 줄 볼이 고운 나의 사람
푸른 산 한 나절 구름은 가고
골 너머 뻐꾸기는 우는데
눈에 어려흘러가는 물결 같은 사람 속
아우성쳐 흘러가는 물결 같은 사람 속에 난그리노라
너만 그리노라. 혼자서 철도 없이 난 너만 그리노라.
해
박두진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너머 산 너머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너머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빛이 싫여 달빛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빛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뉘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휠훨휠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 자리에 앉아
워어이 위어이 모두 불러 한 자리 앉아
애띠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향현(香峴)
박두진
아랫도리 다박솔 깔린 산 넘
큰 산 그 넘어 산 안 보이어
내 마음 둥둥 구름을 타다
우뚝 솟은 산, 묵중히 엎드린 산
골골이 장송들어섰고
머루 다래넝쿨 바위 엉서리에 얽혔고
샅샅이 떡깔나무 억새풀 우거진 데
너구리, 여우, 사슴, 사토끼, 오소리, 도마뱀, 능구리 등
실로 무수한 짐승을 지니인 산, 산, 산들!
누거 만년 너희들 침묵이 흠뻑 지리함 즉 하매
산이여! 장차 너희 솟아난 봉우리에 엎드린 마루에
확확 치밀어 오를 화염을 내 기다려도 좋으랴!
핏내를 잊은 여우 이리 등속이
사슴 토끼와 더불어 싸리순 칡순을 찾아
함께 즐 거이 뛰는 날을 믿고
길이 기다려도 좋으랴?
임홍재/1969~1979.9.
- 임홍재 시인은 1969년 《시조문학》천료. 197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바느질>이 당선,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염전에서>로 당선. 1979년 9월 사망.
청보리의 노래 / 임홍재
보리밭 가에서 조선낫이
목놓아 운다.
작석作石더미 져다 부린
등굽은 아버지의 지게가
부황난 황토 구렁에서 따라 운다.
황소가 밀고 간
눈물로 허덕인
황토 영마루 바람꽃 피고
조선 소나무처럼 불거진 목민牧民의
뼈마디 뼈마디에 바람이 분다
할아버지 동학군東學軍 선두에 서서
죽창 들고 외치던 소리소리,
일어선 분노가
쾅쾅 죽은 역사를 찍을 때
쓰러지던 어둠의 계곡.
어둠에서 다시 빛나던 저 조선낫.
어이 된 것이냐, 어찌 된 것이냐
빈 두렁에 앉아 목놓아 우는 소작인小作人
육척肉尺 무명 올이 다 해져도
헤칠 수 없는 향산鄕山의 안개를
어쩌랴, 어쩌랴, 안개에 젖으며
풍토병風土病을 앓는 애비여 애비여.
깔끄러운 까락에 걸려
목청을 잃어 버린
피맺힌 우리들의 식도食道
그 속을 넘는 허기에 취해
술래가 된 아이들......
땅두더쥐는 지금 어느만큼
뼈가 남아 있는가.
아이들아 아이들아
청보리를 밟아라!
밟으면 밟을수록 돋아나는
청보리를 밟아라
죽지 부러진 비둘기가
배앗긴 혼魂을 부르며 울고 가는
누구나 목민심서牧民心書를 엿듣지 않는 밤
청보리만 살아서 방을 지키는가.
어둠 속에서 다시 돋는가.
염전에서 / 임홍재
미친 파도를
가로막을 제방堤防도 없이
버려진 뻘밭에서
남모르게 열병熱病을 앓다
각角이 진 인고忍苦의 자세로
부활復活하는 몸이여
어느 뉘 아린 뜻이
물보라로 넘치는가
간조干潮의 내안內岸은
안개에 싸였는데
끈끈한 적의敵意를 안고
재우치는 태풍을.
젊음이 난파難破당한
떼죽음의 모래톱에
이마를 맑게 씻고
물빛 연한 시간을 열면
비탈진 목숨의 혼魂이
물살에 어린다.
어기찬 노역勞役의 끝
밧줄을 휘감아도
세월은 어찌하여
술이 괴듯 괴는가
깨어진 등피燈皮를 닦고
짠 기운으로 버티자.
시집『청보리의 노래』(1988. 문학세계사)
정진규 시인(1939.10.19~ 2017.9.28 (향년 77세) 정진규 시인은 경기도 안성 출신이다. 고려대학교 국문과를 나와 교사와 기업체 등에서 일했다. 시인 정진규는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나팔 서정(抒情)〉을 발표하며 등단해서 50년 넘게 왕성하게 창작에 전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 월간지 <현대시학>의 주간을 맡아 시단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기여하고 있는 문단의 대표적인 원로시인 중 한 사람이다. 애초에 <현대시학>은 시인 전봉건의 주도로 1969년 4월에 창간호를 낸다. 그동안 박두진·박목월·박남수·구상·김춘수 등이 편집위원을 하며 시와 시론을 게재하고 많은 신진 시인을 내놓는다. 정진규는 1988년 전봉건이 타계한 뒤 <현대시학>의 주간을 맡아 시 잡지의 어려운 살림을 꾸리는 한편, 그동안 《몸시》 《알시》 《사물들의 큰언니》 등등의 시집을 잇달아 펴내며 시단의 중진으로 활동해왔다. 특히 산문시의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독창적으로 만들어 일가를 이루었다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은 고향인 안성으로 돌아가 ‘석가헌(夕佳軒)’이라는 당호를 가진 집에서 기가하였고 현재는 부인이 거주하고 있다.
국수가게 / 정진규
햇볕 좋은 가을날 한 골목길에서 옛날 국수 가게를 만났다 남아 있는 것들은 언제나 정겹다 왜 간판도 없느냐 했더니 빨래 널 듯 국수발 하얗게 널어놓은 게 그게 간판이라고 했다 백합꽃 같다고 했다 주인은 편하게 웃었다 꽃 피우고 있었다 꽃밭은 공짜라고 했다
썩는 사과 향내 / 정진규
혼자 살다 죽은 김판식이 문패가 한 달 넘게 그대로 붙어 있다 김판식이는 세상을 떠나고 판식이네 집만 그대로 남아 있다 판식이는 과수원 주인이었다 그 앞길을 준재가 아침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면사무소 안내원으로 출근을 하고 판식이 아들이 관리인에게 과수원을 맡기고 난 다음 덜 팔려나간 사과들이 창고에서 썩고 있는 향내가 마을에 넘치고 있다 죽은 김종삼 시인이 만지면 금방 썩어 났다던 그의 개성 과수원 사과들을 생각나게 했다 김판식이 일을 하고 낮잠을 자던 과수원 그 작은 방, 그가 피우던 담배 갑엔 두세 개 담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집어서 실겅에 소중하게 얹어 놓았다 그의 과수원의 사과 향기와 구겨진 담배 갑이 그리고 그대로 아직도 걸려 있는 문패가 진종일 마을에서 무슨 말로 서로 만나고 있는지 죽은 다음엔 사과 향내도 구겨진 담배 갑도 걸려 있는 문패도 그저 그것으로 남을 뿐인지 죽은 김종삼 시인에게 물어보았으나 그도 대답을 못했다 다만 일찍이 ‘시가 무엇인지 모른다’ 대답해 두었다 하였다 놀랜 것은 혼자 살다 죽은 판식이도 이북以北서 김종삼처럼 월남한 ‘민간인民間人’ 아버지를 뒷산에 모셨다 하였다 그런 교섭交涉이 은유의 실체로 이미 약정되어 있었다 그것이 그들의 ‘사과’였다 썩는 사과의 향내였다 늘 알고 보면 그러하였다
서글펐다 / 정진규
이렇게 기인 머리 인용문을 달고 있는 것을 내 시에서 본 적이 있는가 “서글펐다”가 사무치게 좋았기 때문이다 환멸의 습지가 내 시의 자양으로 늘 거기 있었으므로 그걸 헤어나는 게 내 시였으므로 사랑을 해도 늘 그와 같았으므로 그게 늘 햇볕 공터와의 만남이었으므로 왈칵 쏟아지는 눈물이었으므로 번외番外로 오는 남다른 것이었으므로 푸르다기보다는 늘 초록으로 거기 깔려 있던 것이었으므로 그날 이후 꾸역꾸역 몰려오는 충만이었으므로 “서글펐다”가 사무치게 차올랐기 때문이다 황홀과 서글픔은 한 몸이다 눈물이 났다 너와 나만의 보석이었다 “가시내야 가시내야 무슨 슬픈 일 좀, 일 좀 있어야겠다”* 미당은 그걸 벌써 아득히 매만지고 있었다 겨우 더듬거려 말하고 아련히 떠나는 그의 뒷등에 부는 가을바람이었다 아득한 배고픔이 나를 먹여 살렸다
-환멸의 습지에서 가끔 헤어나게 되면은 남다른 햇볕과 푸름이 자라나고 있으므로 서글펐다. (김종삼 ‘평범한 이야기’, <신동아> 1977.2. 이숭원 발굴)
정진규 시인 부인 변영림여사와 함께
조병화1921~2003. 3. 8(82)
우리 시대의 마지막 로맨티스트 시인이라고 불렸던 시인.
박인환과 함께 1950-1960년대 명동시대를 이끌었던 시인.
조병화 시인은 2003년 작고하셨습니다.
생애 통산 52권의 시집과 총 160권의 저서
호가로도 유명했던 분
시인. 호는 편운(片雲). 경기도 안성(安城) 출생. 1938년 경성사범학교, 45년 일본 도쿄[東京]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였다. 49년 첫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을 발간, 문단에 데뷔하였다. 이어 제 2 시집 《하루만의 위안(1950)》, 제 3 시집 《패각(貝殼)의 침실(1952)》 등 계속적으로 시집을 발표하며 정력적인 작품활동을 하였고, 많은 국제대회에도 참가하였다. 현대적 도시풍의 서정시인으로 자신의 독특한 시 세계를 구축하였으며, 일상의 평이한 문맥으로 진솔하게 그려 일반 대중의 호응을 받았다. 60년 아시아자유문학상, 74년 한국시인 협회상, 85년 대한민국예술원상 및 국민훈장 모란장 등을 수상하였다. 82∼84년 시인협회장, 89∼91년 문인협회 이사장, 95년 예술원회장이 되었다. 기타 번역시론집 《현대시론(1956)》, 수필집 《사랑은 아직도》 등이 있다.
낙엽 / 조병화
당신 생각만 했지요
당신께만 할 이야기가 많았지요
당신만 기다리다 말았지요
초록색 몸차림을 하고 단장을 하고
바람이 불어도 비가 내려도 당신 생각만 했지요
어느 날 당신이 내 그늘 아래 쉬었을 때
그때 내 마지막 그 말을 당신에게 주는 걸 그랬어요
헤어진다는 것은 영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헤어진다는 것은 아주 잊어버린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당신 생각만 했어요
당신께만 할 말이 많았어요
어제와 오늘이 이렇게도 먼
이 자리에서 당신만 기다리다 말았어요
공존의 이유 / 조병화
깊이 사귀지 마세
작별이 잦은 우리들의 생애
가벼운 정도로 사귀세
악수가 서로 짐이 되면 작별을 하세
어려운 말로 이야기하지 않기로 하세
너만이라든지 우리들만이라든지
이것은 비밀일세라든지 같은 말들은 하지 않기로 하세
내가 너를 생각하는 깊이를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나를 생각하는 깊이를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어디메쯤 간다는 것을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작별이 올 때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사귀세
작별을 하며 작별을 하며 사세
작별이 오면 잊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악수를 하세
내가 시를 쓰는 건 / 조병화
내가 시를 쓰는 건
나를 버리기 위해서다
나를 떠나기 위해서다
나와 작별을 하기 위해서다
하나를 쓰고 그만큼
둘을 쓰고 그만큼
셋을 쓰고 그만큼
나를 버리기 위해서다
너에게 편질 쓰는 건
언젠가 돌아올 너와 나의 이별
그것을 위해서
너를 버리기 위해서다
너를 떠나기 위해서다
너와 작별을 하기 위해서다
아무렇게나 버리기엔 너무나 공허한 세상
소리 없이 떠나기엔 너무나 쓸쓸한 우리
그냥 작별하기엔 너무나 깊은 인연
내가 시를 쓰는 건
하나 하나 나를 버리기 위해서다
하나 하나 나를 떠나기 위해서다
하나 하나 나를 잊기 위해서다
그와 같이
내가 네게 편질 쓰는 건
머지않아 다가올 너와 나의 마지막
그 이별 그걸 위하여
하나 하나 너를 버리기 위해서다
하나 하나 너를 떠나기 위해서다
하나 하나 너를 잊기 위해서다.
2005년 스승 고 정공채 시인을 모시고 제2주기 추모제에 왔을때를 회상하며
[출처] [추가] (서울시인협회) |작성자 풀과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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