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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집
자서(自序) -연대기로써의 시
2006년 2월 첫 시집 『강과 백지의 세월』 상재 이후, 그 책에 함께 묶지 못했던 시편들과 새로 쓰인 시편들을 뽑고 간추려 두 번째 시집 『등뼈』를 묶는다.
나의 글쓰기는 처음부터 일관되게 ‘개인, 가족, 혹은 씨족의 연대기를 복원해 보자.’는 큰 틀의 목표 하에 쓰였다. 말하자면 시의 형식을 빌려 쓴 개인의 연대기인 셈이다.
다만 사상(事象)을 순차적으로 기록하지는 않았다. 또 육하원칙에 따른 정확한 일시, 장소, 사건 등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짧은 시의 형식으로 기억에 남을 만한 대강의 사건을 추출한 뒤 그것을 토대로 훗날 보다 상세하고 정확한 연대기를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다.
이러한 시도들이 독자에게는 시의 정통적인 모습에서 다소 벗어나 있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이야기 시’가 갖는 서사(敍事)와 서정(抒情) 두 마리 토끼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역사가 없는 나라가 있을까. 그러나 망한 나라의 역사는 흩어진다. 그와 똑같이 망한 가문의 역사는 흩어진다. 내가 시로써 잃어버린 시간과 장소를 복원하는 것은 살아온 날을 반성적으로 돌아보고 이해하고 손잡음으로써 새로운 신념의 푯대를 세우고 싶은 열망 때문이다.
2011. 8
1부 말씀과 내력
0001 아버지
너희 아버지께서 일제말기 심상소학교를 졸업한 직후
구례 모 한약방에서 한동안 사숙을 하셨다.
그 시절, 아니 한참 그 이전부터 나라를 구한다는 자
광제창생(廣濟蒼生) 우루궁궁 깃발 내걸고
괴나리봇짐 짊어지고 팔도를 숨어 돌며
의원 노릇을 한 자가 많았다.
수운(水雲)이 그랬고, 증산(甑山)이 그러하였다.
무섭기는 어중간한 반식자(半識者)가 무서운 거라.
결국은 네 아버지 이도저도 아닌
그저 한 동네 무허가 의원 노릇이나 하다가
남의 집 머슴이나 살다가
한때는 거리의 비렁뱅이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아버지 생전 흰 도폿자락 휘날리면서
우리 해월신사(海月神師) 우리 해월신사(海月神師)
운운(云云)함이
그 양반 최보따리를 흠모해서였음인가
진정 무소유(無所有)의 인생을 실천했는가는 모르되,
침대롱 한 개,
귀퉁이 다 닳은 동의보감 필사본 한 권 남겨놓고
수수께끼 같은 생을 마감하셨다.
도(道)에 미치면 그런 것이다.
너는 행여 도(道)에 미칠라.
0002 방짜 느가부지
느가부지 사람은 방짜야, 사람은 순허디 순허지만 맘이 약한 것이 병이고
그저 누가 뺨을 탁 때리면 “어이, 자네 손 아프겠네, 그리 말하는 사람이었지.”
동네사람 느가부지 신세 안 진 사람 없구나.
시무살 안짝부터 춤을 놓기 시작했으니 그때는 한 삼십 되었을 때인지 몰라. 느가부지 춤은 크지, 대춤이야. 간간히 개 잡은 고기 속에 넣고 춤을 삶아, 그게 소독이었지.
하루는 느가부지 친구가 깽번 살 때 땀을 뻘뻘 흘리는 마느래를 업고 왔지.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대서 느가부지 엎드리라 하고는 한참 춤을 놓고 뜸을 떠주더라고, 그 마느래 나갈 때는 걸어갔지.
입이 홱 돌아간 사람도 아, 입을 벌리라 해놓고는 저 아금니 짚은 데다 춤을 한 방 딱 놓으면 비틀어졌던 입이 제대로 돌아와 버려.
“어이, 석내! 사람 좀 살려주오.” 하면 만사 제치고 달려가 사관을 튕겨 살려 놓았지.
이모 시누가 운봉 살았는데 애기 못 난다고 신랑이 작은 각시를 얻어 사는데 느가부지 약을 먹고 남매나 낳고 잘 살았지.
느그 외숙모들은 느가부지 약 안 먹은 사람이 없어.
느가부지 약은 게미가 있고 맛있다더라. 늘 듣는 소리가 “애기씨, 아저씨 약은 왜 그렇게 맛있댜? 어이, 사우 약은 벨라 맛있어, 만날 그랬지.”
좋은 일 많이 했지 느가부지는. 그래서 니가 안 죽고 지금 다행히 이리 살았는지 몰라.
돈이나 받았는지 몰라. 그 양반. 단 그거여, 잘못한 것이 있다면 느가부지 돈을 벌어도 집에는 안 갖고 왔지. 우선 술장시들이 느가부지 똥구넉을 졸졸 따라 댕겼으니까.
0003 꼭 봉숭아꽃 같댔지
울 시어머이가 내게
볼고롬-한 얼굴에 볼그레-한 저고리를 입고 나오면 꼭 봉숭아꽃 같댔지.
그러고 뭣인가 한 번만 가르쳐주고 한 번만 본 일은 그냥 잘 해 뿌린다고, 눈썰미가 있다고 칭찬해 주셨지.
그저 한 가지 흠이 있다면 그놈의 학교를 댕겨서 그렁가 질에 나서면 각시가 돼갖고 달음박질을 해싸니 그게 흠이라고. 긍께 나는 젊은 각싱께 살살 다녀야 허는디, 부지런헝께 달음박질을 했지. 젊응께 나서면 후루루 달음박질을 했지. 물 질러 물통 머리에 올리고 동네 샴에만 가도 달음박질을 허고, 밥상 들고도 달음박질을 허고.
울 시어머이가 내게
아이 글쎄 나보고 베를 짜라고 맡겨놨더니, 몰코가 크대-니 가운뎃 배가 뽈쏙허니, 베 배깥도 가새로 벤 것 맨치로 칼날리로 깨끗하게 짜놨다고 칭찬 많이 하셨지.
“야야, 니가 끼려준 호박죽에 뱃가죽이 쭈-욱 늘어났다.” 그 소리 다시 한 번 듣고파. 이제라도 단 하루만 같이 살아보고파. 친정은 손톱만치도 생각 안 나고, 긍께 나는 정이 안 떨어져서 우리 시어머이 보고파.
그래서 각오를 했구마? 나는 커서 좋은 시어미 되것다고.
0004 너는 잊지 말아라, 강정물 이모
강정물 이모는 나한테 큰 은인이니라. 형제간 있다고 해도 덕 본 것도 없고, 하지만 우리 이모는 그렇지 않았다. 이모가 나 어릴 때 장사하는 법도 다 갈쳐주고 시방 생각하면 이모가 내게는 젤로 큰 은인이라 생각한다.
태술이 각시가 맘이 대천 한바다라 이모 아파 누웠을 때 지극정성으로 병구완을 하여 남원군 효부 상을 탔느니, 긍께 지금 자손들도 다 잘 되는구나.
이모가 나 단지 갖다 주라고 태술이가 그 멀리 남원서 수원까지 싣고 왔니라. “이모, 난 간장을 담으면 왜 안 맛난지 몰라?” 했더니 그 소리 듣고 “아, 여자가 돼갖고 너는 어찌 그런 것도 못허냐? 내가 좋은 단지 하나 줄 테니 거그다 담가먹어라. 거그다 간장을 담으면 달고 맛나니라.” 하면서
이모 은혜는 쌀 두 가마이로 다 갚았는디, 시방 같으면 이모 돈 없을 때 한 오만 원도 주고 십만 원도 주고 그럴 텐데, 죽고 없구나.
0005 월산떡(月山宅)
생전 전화도 안 하더니 느그 전주 외숙모 월산떡 멩희 즈그매가 오늘은 서울 남산대떡 안부도 묻고 공주 겡애 안부도 묻고 보고잡다 하시고 전화로 안부를 물으니 이제 죽을란갑다.
우리 조가(趙哥) 집안으로 시집 와서 나를 ‘애기씨’라 부르더니 지금도 버릇처럼 ‘애기씨’라 부르네.
딸 장애인 겡숙이는 테레비 보면 얼굴이 약간 티가 나는 그거여.
어찌나 내가 가면 나를 좋아하는지 무르팍을 주물고 내 무르팍에 드러눕고,
고무, 고무, 우리 집은 고향 쪽에선 아무도 전화하는 사람이 없는데 수원 고무는 우리 집에도 오고 참 좋아, 그러는 것이 아조 귀엽지.
어서 방학이 되면 죽기 전에 전주에 가고자파.
0006 호상(好喪)
킥킥-
안집 상(上)할머니 연세가 많아서 돌아가셨을 때
그 손(孫)들이 많으니까
마당으로 앉을 데가 없이 한 백 명 정도가 모였지
남자 상주들은 어이- 어이
여자 상주들은 아이고- 아이고
개구락지 우는 소리 맨치로
엉머구리 우는 소리 맨치로
합창하는 그 소리를 듣자니 왜 그리 우스워
참 철때기도 없었지
하나가 킥킥- 웃으면
허리끈을 붙잡고 울다가 몸이 흔들리니까
뒷사람도 킥킥- 웃었지
느 작으머이는 내 똥구넉을 붙잡고 왜 그리 웃어싸
킥킥-, 킥킥-
할머이하고 무슨 젱이 있어야지
내 나이 열 예닐곱 먹었겠다, 그때 일이란다
긍께 뭣을 알것냐
그집 손(孫)이라고는 다 웃었지, 울지 않았어
담 너머에서는 동네사람들이 우는 굿을 본다고 지켜 서 있지,
동네친구들은 안 운다고 요따만한 돌멩이를
울어! 울어! 하며
궁뎅이에 던지고 그랬지
0007 붉은 완장(腕章)
혁명의 모두(冒頭)에 서는 일은 여맹위원장께서 하실 일입니다.
덥석 주는 완장을 팔뚝에 두르고
게으르고 무지한 인민을 독려하는 것은
정반합의 역사발전을 위한 것이라고요?
이미 예전에,
의지로 똘똘 뭉친 당신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대장의 휘하로 들락이던 당신의 치맛자락도 보았습니다.
고모님은 부락 앞밭에서 태장(笞杖)을 당하셨습니다.
0008 숙부
숙부,
숙부,
작두에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을 잘라버린 남자
한때는 빨치산 식량을 지리산으로 져 날랐던 남자
그 일로써 할아버지 재산을 다 탕진한 남자
한평생 농부
노름꾼
삐꿈쟁이
흰 도포자락 휘날리며 천도교를 포교하며 주유천하 하던 남자
천도교 구파의 마지막 남자
서슬 푸른 시절 동아일보에 반미성명서를 냈던 남자
쇠를 놓아 무덤자리를 거저 잡아주던 남자
어쩌면 사기꾼,
독풀인 초오를 늘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남자
마침내 일흔일곱 생일날에 초오를 먹어버린 남자
0009 방화범(放火犯)
1960년부터 1964년 사이 아버지는 삼례의 머슴이었다.
풍문으로 듣건대 3년 머슴살이에 벌어놓은 새경이 제법 된다기에 오수 양춘옥 찬모(饌母)인 어머니는 잠시 거지생활을 청산하고자 아버지를 찾아 삼례를 찾았으나 이미 깍쟁이 윷노름으로 다 올려붙인 뒤였다.
할 수 없이 삼례에서도 한참 들어간 봉동에서 또 잠시 곁방살이를 했다.
어머니 주인아줌마 따라 밭에 일 나간 사이,
나는 어찌 혼자 성냥을 갖고 놀다 쥔집 울타리에 불을 냈고 불은 삽시간에 울타리를 태우고 뒷동산으로 번져 남의 집 금잔디 쌍분까지 홀랑 다 태웠다.
불을 낸 나는 너무 놀라 굴뚝 사이에 숨어 동네사람들 모두 나서 불 다 끌 때까지 숨어 있었다.
어머니 주인댁과 산소주인에게 다섯 살 어린 것이 한 짓이니 용서하시라 백배사죄하고 볏짚 여물을 썰어 무덤을 덮어주셨다.
0010 미아(迷兒)
1964년 이리(裡里)의 길이다. 어머니는 다섯 살 어린 내 손을 잡고 버스에서 내려 어떤 직업중개 여인(女人)의 집으로 들어갔다.
남원에서 속초로, 고향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뜨기 위해 길을 아는 여자를 만나러 오신 것이다.
어느 틈에 나 혼자 그 집을 나왔다. 아차, 하는 순간 나는 방금 나온 그 집 대문을 잃어버렸다. 그 집 대문을 찾기 위해 기억을 더듬었지만 모든 집이 다 비슷했고 모든 길이 다 그 길 같았다.
다섯 살이 생각했다. 아까 버스에서 내려 걸어온 길, 더터 온 동네의 담벼락을 기억해냈다. 어머니 손을 잡고 타박타박 걸어왔던 길, 길 위에 하수도 길이 있는 길, 그 사각의 주-욱 연속된 콘크리트 하수도 뚜껑을 따라가면 틀림없이 엄마가 있을 거야. 중개여인(中介女人)의 집은 나오지 않았다. 어린 나는 그 집과는 정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쯤 그 집에 있어야 할 어머니께서 하마 길 저 앞 파출소에서 용환아! 용환아!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목놓아 부르고 있었다.
0011 저마다 살기에 바쁘더라
1977년, 개운동에서 단구동으로 이사할 때에 이불 보따리 하나 싸구려 책상 하나 빌린 리어카에 싣고서 나는 쭈뼛쭈뼛 거리로 나서지 못해 어머니께 야단맞았다.
-누가 너를 그리도 눈여겨 본다더냐?
그 말씀 듣고 어린 소견에도 사람들을 가만히 관찰하길, 지나는 사람의 시선은 무언가에 골똘하고 모두 하나같이 자기의 속을 바라보기 바쁜데 어머니 말씀처럼, 잘 알지도 못할 나를 바라봐주는 사람이 없음은 분명했다.
가지각색 지나치는 거리의 갑남을녀 틈을 지나 리어카를 끄는 까까머리 깜장교복 아이가 머리에 큼지막이 옷 보따리 인 어머니 앞세우고 그 날 이후 몇 번이고 무사히 이사를 마쳤음은 물론이다.
0012 불효자는 웁니다
어제는 문득, 어머니께 술 달라 소주 한 병에 곯아떨어져 자고 있는 사이,
내 블로그 용필 형의 ‘불효자는 웁니다.’ 노래가 저 혼자 리플레이 되었나 봅니다.
어머닌
내 곁에 와서 조용히 앉아 듣고
무슨 생각하시다가
우시다 가셨습니다.
2부 함께 가는 모정
0013 열무비빔국수
생각해보니 내가 무엇이 먹고 싶다고 말한 적이 없다.
있음 있는 대로 먹고, 없음 없는 대로 굶고,
주면 주는 대로 먹고 살았다.
어머니께서 가끔 생각났다는 듯 열무비빔국수를
해주시면 그저 반가워, 두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이었다.
누웠던 육신을 일으켜 세우곤
어머니 앞에서 버릇없이 삐딱이 누운 채로
게 눈 감추듯 그릇을 비워내곤 이내 섭섭한 듯,
더 없냐는 듯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생각해보니
내가 무엇을 먹고 싶다고 말한 적은 없지만
열무비빔국수를 가장 좋아했던 것 아닐까,
어머니 저세상 가시면 그 뒤
어느 여자가 내 수수한 입맛의 비밀을 속속들이
알아나 줄까.
0014 내 수저
이리저리 몇 번의 이사 끝에
지금은 있는지 없는지 모를 내 수저가 갑자기 기억났다
1973년부터 어머니께서 정해주신 내 수저
면온 초등학교에서 받은 어머니
‘장한 어머니상’의 부상으로 받은 스테인리스 수저
손잡이 앞부분은 대나무가 도드라지게 표현되었고,
손잡이 뒷부분엔 무언가로 긁어서
‘장한 어머니상’임을 적었다.
아직 격식이 남아있던 시절 우리 집 식탁에
어머니와 아내가 내 몫으로 늘 챙겨주던 그 수저
병들고 힘들어 눔뱅이가 되어버린 나는
밥상조차 침대에서 받는다.
격식도 버리자, 그저 편히 살자, 스스로 정해버린 상스러운 삶
내 수저도 어디 있는지 잃어버렸다.
0015 어떤 남자
처갓집 담장 울타리 주위엔
장모님이 심어 둔 들국화가 지천으로 피는데,
종일 현관문밖 출입을 않는 나는
가을에 무슨 꽃이 피고 졌는지 알지도 못하였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홀로 피고,”
세상의 모든 화려한 꽃과
정겨운 산과
기꺼운 강과
휘황한 밤의 네온사인과 향기 나는 여자와
여긴, 저-만치 떨어져 있다.
비타1000 조그만 음료 병에
우연히 꽂힌 저 산국(山菊)은,
다 꽃피지도 못하고 산화(散華)한 어떤 사내의 얼굴로
조석으로 내 사랑을 듬뿍 받는다.
0016 길놀이
어머니께서 동네 노인들과 길을 가시다
긴 간짓대를 발견하셨다.
어머니 그 간짓대를 주워들고
뒤따르던 노인네들 보고 두 팔을 벌려 춤을 추며
당신 장단을 따라하라 하셨다.
어-하~!
대식이 할머니 어-하 표정이 제일 우습다.
깬시깬시 깨게이 께게, 깬시깬시 깨게이 깨게
깬시깬시 깬시깬시, 깬시깬시 어~하~!
길목에 서있던 두 경찰이 배꼽을 잡는다.
게넹넹네 게넹넹네 궁~ 징~~~
덩더쿵덩더쿵
지잉~~, 공알~~ 공알~~
우리 어머니 간짓대 하나로
꽹메기, 징, 장구, 북도 없이 길을 가다 잘도 노신다.
0017 육쪽마늘 한 접
나를 먹여 살리는 건 늘 어머니다
언제까지 어머니의 그늘에서 지낼 것인지 팔순을 훌쩍 넘기셨어도 어머니는 옛날사람들처럼 허리가 아주 굽진 않으셨다.
눈을 뜨면 아파트 마당에서 젊은 여자들과 이야기꽃을 피우고 노인정에 들러선 다 친구 같은 늙은 남자, 여자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얻어들은 살림정보 같은 것을 물고 들어오시는 품은 꼭,
집안에 가만 엎드린 이 아들놈은 새의 새끼 같고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물고 들어오는 어머닌 어미 새 아닌가?
짹 짹 짹 짹 창밖의 새소리는 그렇다 한다.
일층 베란다 너머 바람에 흔들거리는 칠월의 나무가 내 말에 그렇다 웃어준다
육쪽마늘 좋은 게 나왔다고, 어머니 지나다니시는 길목 어딘가 도시(都市)의 자그만 장(場)이 섰을까? 시골에서 올라온 트럭장수를 만난 것일까? 마늘장아찌 뽀얗게 담그면 맛있다고 누가 자랑한 것일까?
어머니 내 지갑에서 삼만 원 꺼내 가신다.
0018 무산자(無産者)
자식이 죽어 물에 떠내려갔는데
시신도 못 찾고 그런 사람은
목을 끊어서 죽고 잡지 어찌 살고 싶겠냐?
너는 어찌 내 속에서 나와
그 무서움 속에서도 무산자 되지 않았냐?
보기에도 아까운 아들아
어깰 쓰다듬고픈 아들아
새벽에 잠 깨 너 잠 깨어 있는 것 보면
나 또한 우뭉자뭉 잠결에도
꼭 네게 커피 한 잔 타주고 자려 하는구나.
0019 막, 막
막은 부사(副詞) ‘마구’의 준말이다.
가령,
‘슬퍼서 막 울었다 막 지껄이다 막 짓밟았다’처럼 쓰인다.
막은 어머니께서 신이 나셨을 때
말 중간 어디고 자주 쓰는 조음구(調音句)이다.
가령,
‘막 쬐깐했을 때부터 막, 음양을 알아서 막,
연애편지도 쓰고 막, 그럴 줄도 모르고 막,
남녀관계에 대해 관심도 없었고 막,
나는 막 남자새끼 같았다’처럼 쓰신다.
가끔 나는 어머니께서 ‘막, 막’ 하실 때
제발 그 ‘막, 막,’ 좀 빼고 말씀하시면 안 될까 흉도 보았지만
막, 마구 거침없이 살아오신 인생은 아니었나
혹은 막막(寞寞)한 인생은 아니었나
이제는 이해하고자 한다.
0020 그날 밤 정담(情談)
그날은 내 생질 결혼을 앞둔 전날 밤이었지. 우리는 하객(賀客)으로 하루 전 네 작은고모 오막살이 좁은 마루청에 이불 한 장에 둘씩 꾸부리고들 자고 있었어. 오랜만에들 만나 정담(情談)이 길어졌던 밤 네 고모부가 젤 먼저 잠들고 고모도 자러 가고 고모의 아이들도 자러 가고 네 숙부 숙모 정하(貞河)까지 잠들고 너 나 너의 할머니 셋 서로 반대방향으로 누워 잠을 청하고 있을 때,
아빠, 나는 내 인생이 너무 고마워, 내게 찾아왔던 S대 합격이나 그 학교 한 학기 다님서 몰래 재수를 하던 것이나 내가 서울을 버리고 경산 시골대학에 내려가 한의학을 공부하게 된 것이나 다 내 인생을 위해 고맙고 고마운 사건들이라 감사해요.
나직한 너의 말이 그렇게도 대견하더구나.
화학(化學) 한 학기 공부한 것이 동서학문을 비교설명하기에 더없이 좋고 어린 시절 가졌던 고고학(考古學)이나 역사학자(歷史學者)의 꿈이 화학을 전공한다거나 한의학(韓醫學)을 전공한다거나 하더라도 아예 사라진 것이 아니라 모든 길은 나의 꿈으로 통해요.
그리 말할 때, 이 애비가 속으로 환호하던 것을 너는 알겠지.
가장 고마웠던 것은 아빠, 제가 어떤 시시한 질문을 해도 아빠가 진지하게 끝까지 설명하려 애쓰신 것 제가 몇 편의 창피한 시를 끼적인 것을 무슨 고급노트에 아빠가 손수 글 쓰고 그림 그려 시집처럼 만들어주신 것 그런 것이 생각 나, 나는요, 아빠가 나 수학 못한다고 그것은 시간계산문제였지요 딱 한 번 주먹으로 내 머리통을 쥐어박은 것도 생각나지만 이 세상에서 아빠를 제일 존경합니다. 아빠는 타고난 교육자이셨어요.
그날 밤 네 할머니 자는 척 숨죽여 울었다더구나.
0021 주워오는 것에 대하여
이왕에 못 배운 사람들은
허다 못해 헌 바구니 하나라도 소중하고
내 것이라면 다 소중하게 안다
화분도 주워 오고 단지도 주워 오고
저 떨어진 바구니
언젠가는 어디가 쓰이든 쓰일 것이라고
남이 보면 웃음거리밖에 안 되고 버릴 것이라도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내 살림 될 것은 소중한 것이라고
주워 온 것들 들여다보며
그런저런 재미로 산다
남의 자식들이 아무리 잘나도
못난 제 자식이 더 잘난 것 같고
제 자식은 무엇이든 장하다고 생각되는
그런 것이리라
0022 무단시 정이 가는 사람
야야, 여그 우리 아파트 옆 라인에 한 아자씨가 있단다. 그란디 길에서 사람을 보면 사람을 참 반가라 해, 마치 즈그매 본 거 맨치로
“할무이 담배 끊었어유?”
“아니?”
“그려, 못 끊지 이~? 할무이, 나도 못 끊었어유.”
무뚝뚝한 남자 같으면 이 할마이 늙었다고 그냥 지나갈 텐데 내 뒤에 따라옴서도, 어디 갔다가 앞에 옴서도 꼭 먼저 말을 걸어주는 거야. 그렁게 무단시 정이 들드만? 우리 집 앞에서 만나 이약이약 하면서 경비실쯤까지 가서 헤어지면 애인도 아닌데 그게 그리 서운해. 그 사람을 보면 그날 점드락 기분이 좋아, 하도 사람들에게 잘 항께. 그렁게 나도 남을 보면 잘 해야것드만? 반가해주고 즐겁게 해주고 싶은 거야.
야야, 노인정, 교회 옆에서 정남 어디 산다는 각시가 야채 장사를 해. 그란디 각시가 하도 순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건 사라 소릴 못해. 내가 막 가면 어머이 어머이 그럼서 반가워하지.
“할무이, 여태끼 안 오시고 뭐했씨요? 할무이 있음 시간이 잘 가, 장사도 잘 돼.”
그러면 내가 신이 나서 호박잎 댓잎 담아 천 원씩 받는데 그 각시 대신 장사를 해 주지. 내가 짓이 나면 코메디를 좀 잘 허냐? 지나가는 사람들이 물건이라도 사주면 “아이고 고맙소, 오늘 재수대통 하소.” 그러면 다들 내가 그 각시 친정 어멘 줄 알고 좋아라 하고 그럼서 속으로 나 혼자 생각하지.
‘젠장! 진작 젊을 때 식모살이나 하지 말고 이렇게 장사를 할 걸!’ 그렇게 말이야. 나도 신이 나면 그러고, 늘 그런 건 아니여. 그렇게 저렇게 세월을 보내야지 어쩌것냐?
0023 흥정
어머이 손목시계 줄이 끊어져 잃어버렸던 시계를 안방 며느리 서랍에서 찾았다. 오늘은 시계를 들고 시계방엘 가서 바로 즉석에서 시곗줄 새놈을 끼었다. 낡은 시계방은 어디에 있는가, 이마트 건너가기 전 공원놀이터 있는 데 있다.
“아저씨, 이 멍체이가 이런 줄을 샀더니 뚝 떨어져 버렸소. 쇠로 된 것 말고 가죽으로, 가죽으로 다시 줄 좀 달아 주시오. 시계가 싸구려니까 노인들 시계 제일 싼놈으로 해 주시오.”
주인이 웃으면서
“아무리 싸도 돈 만 원은 줘야 하는뎁쇼?”
어머니께서 흥정을 하셨다.
“이 보오, 한 이삼천 원짜리 싼 거는 없소? 식모살이만 한 사람이 돈이 어딨소? 아, 이거 시계불알을 보면 모르요? 시계 꼴을?”
시계방 주인도 지지 않는다.
“오천 원은 주셔야겠소, 꺼멍색은 안 좋으니 이 갈색으로 하소, 저고리색 잠바색이랑 딱 맞네. 할머니 생긴 것은 그렇게 안 생겼는데 참 재미있네.”
“끈 좀 긴 놈으로 주시오.”
“끈 긴 것이 어디 있소? 대체 끈이 긴 것을 왜 찾으오?”
“식모가 만날 손에다 물 묻히고 그러니께 시계를 손목 위 팔뚝에다 차려고 그러오.”
“그 연세에 무슨 식모를 산다고 그러요?”
“아, 에미 母자 밥 食자 모르오? 식모가 뭐 별 거 있소? 며느리 있어도 없다 생각하고 사니까 식모라오.”
“아이고 할무이 우스워 죽겠네.”
시계방 주인이 장난이 슬슬 발동하였나 보다.
“그래, 식모 월급 얼마 받소?”
“한 백오십만 원 받소.”
“누가 시어머이가 밥해준다고 돈을 백오십만 원이나 주겠소? 그놈 다 받아서 뭐하오? 그럼 여그 금도 사 가고 그러시오.”
“아이고, 그 놈 아꼈다가 나중에 요긴할 때 써야지, 어찌 금을 산다오?”
“할머니가 참 재미있으니 여기서 한참 놀다 가면 좋겠소.”
“아 내가 식전 댓바람에 마수걸이를 해줬으니 재수가 좋아 곧 손님들이 막 밀어닥칠 것인데, 어찌 내가 장사를 방해해서야 쓰것소? 오늘 운수 대통할 것이오.”
0024 모시옷
나, 내년에는 에미한테
하얀 모시옷 한 벌 사달라고 할래.
내년에 안 죽고 살면 내가 해달라고 해갖고
하얀 모시옷 입고 점잖게 노인정 다니려 해.
내 맘은 그래, 울긋불긋 그런 옷 말고,
머리에 염색도 안 허고,
검버섯도 안 빼고, 그냥 있는 그대로,
하지만 하-얀 모시옷 한 벌은 사달라고 할래.
그건 비싸단다.
진짜 모시는 몇십만 원이나 한단다.
중국산은 뻣뻣하고 태(態)가 안 나지.
한산모시 입고 떡- 나서면
품위가 있고 뽄이 자르르 흘러 가치가 있지.
내년에는 에미한테
하얀 모시옷 한 벌 사달라고 할래.
한 번 입고나 죽자,
내가 평생 못 입어 봤잖아.
너는 에미에게 절대 내가 이런 말 했다고 하지 마라.
내가 내년 되면 에미한테 직접 말할 테니
그때까지 살랑가? 못살랑가?
0025 유언
내 죽으면
딸네들이 몸뚱이도 알코올로 닦아주고
얼굴도 분칠하여 곱게 화장시키고 머리 단정히 빗기고
내 방 궤짝 열어보면
속옷, 단속곳, 저고리, 두루마기, 얼굴싸개 등
내 죽음의 옷 한 벌이 있느니
동정까지 새로 달아놓은 흰옷 다섯 벌은 너희들 것이고
여분의 베 한 필은 산소까지
네 친구들이 나를 들고 갈 때 쓸 여덟 개의 끈이라
부모가 죽었다고 당황하여 돈 들까 미리 준비해 두었다
나를 일곱 매로 꽁꽁 묶지 마라
널 속에다 신체를 넣고 신체가 움직거리면 안 좋으니
평소에 즐겨 입던 옷으로 널의 빈 공간을 채워라
널 뚜껑을 닫고 못을 쳐라, 그리고 그때 울음이 나올 것이다
산에 가면 널도 태우고 헌 옷가지도 태워라
상석을 만들지 말라
젯상은 신문지를 깔고 하라
내 무덤은 남원시 요천수 건너 너희 아버지 옆이다
3부 야인(野人)이 좋다
0026 봉평 팔석정(八石亭)
추억이 바위가 될 수 있을까
어린 시절 우리 뛰놀던 팔석정은
땅돌과 너럭바위와 암벽으로 된 천연의 놀이터였다
아이들은 바위와 바위를 건너뛰며
시퍼런 용소(龍沼)에 겁 없이 뛰어들기도 하였다
천년 세월에도 변치 않을,
비, 바람, 서리, 눈 벗 삼아
낙락장송 바위이끼 키워내며
햇빛 달빛 벗 삼아
산철쭉 진달래 키워내며
모든 가벼운 것들이 할아비의 땅을 버리는 날에도
거기 그 자리,
거기 가면 늘 그가 있듯
아, 우리도 그런 천년바위 될 수 있을까
0027 반신론자(反神論者)가 되는 이유
기네스북에 따르면 세계에서 작위명이 가장 긴 알바 공작부인은 교황 앞에 무릎 꿇지 않을 특권과 세비야 대성당 안에서도 말 등에서 내리지 않을 권리를 갖고 있다.
하물며, 아무 기댈 언덕도 없는 우리나라 가난한 백성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자기네 나라 신(神)도 아닌 수입품 신(神)을 찾아 앞 다퉈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그 신(神) 뿐 아니라
그 신(神)의 권속(眷屬)인 교황(敎皇)이니, 신부(神父)니, 목사(牧士)니 이런 사람들에게 계급적 지배를 받아야 하는 것이냐?
이런 것이다.
그렇지 않느냐?
억울하지 않느냐?
0028 시골생활의 꿈
나는 내내 버릴 것을 다 버리고
홀가분한 살림살이를 돌아본다.
한동안 미뤄왔던 잡동사니를 다 치워버린 날엔
싸리비로 마당을 곱게 쓴 다음
집 주위 나무들에서 떨어진
낙엽과 삭정이들 모아 불을 지피고,
피식
피시식
택택
타들어가는 불꽃과 흰 연기 곁에서
겨울로 가는 한나절을 그렇게 오롯이
앉아.
0029 악양 동매리 찬가(讚歌)
여기 봐봐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동매리란 곳이지
지리산 아버지의, 성(兄)의 품속 같은 곳
무명(無名)의 땅
내 고향 남원으로부터 40km 떨어진 곳
쌍계사로부터 산등성 넘어 걸어서 두 시간 남짓 위치한 곳
사령(死靈)과 생령(生靈)이 너와 함께 살 터전이지
동구 앞길로 버스 한 대 지나가고
여차하면 저 버스로 그리운 고향에도 갈 수 있으니
급한 일이라도 저 버스면 충분하리
인가(人家)라곤 띄엄띄엄 이십 호
빨간 슬레이트 낮은 지붕
저 집은 낡았으되 편안한 곳으로 보인다
푸르청청 대숲은 우수수
짙푸른 감나무는 빠알간 홍시를 줄 것이고
텃밭에 무엇을 심을까
0030 야인(野人)이 좋다
나는 이 거친 단어가 좋다.
초야(草野), 야인(野人), 야인시대(野人時代)….
그럼에도 무엇인가 우리 내부 깊숙한 데서
자꾸만 어딘가로 향하는 탐심(貪心)이 싹틀 때
그것이 다 부질없는 꿈이라
흔들어 일깨우는 말들이다.
결국은, 첨예한 문명의 후미(後尾)에서
모든 것 유행(流行)에 뒤진 변방(邊方)에서
잃어버린 가지와 꽃들을 추억하는 처지(處地)가
차라리 편안함을 깨우치는 말이다.
0031 꽃을 버리다
경사스러운 날이거나
어버이날이라고
아이들이 가슴에 커다란 꽃을 달아주면
나는 그냥 머쓱하고 부끄러워진다.
꽃을 달고 꽃을 주고받는 것은
분명 아름다운 일일진대
목덜미까지 붉어진 모습으로
서가(書架) 위에 꽃을 가만히 버리는 행위는
그렇다고
네 마음조차 버리는 것은 아니다.
0032 벚꽃주 더덕향
'껍데기는 가라.'던 4월 어느 날 공주(公州) 공산성(公山城)
벚꽃 이파리 눈처럼 흩날리던 달 밝은 밤
삼삼오오(三三五五) 젊음은 핑계도 좋아
썬양 소주에 물러가라 미제(美製) 콜라를 타서
흩날리는 벚꽃 한 줌 술잔에 흩어 뿌리면
달콤 쌉싸름한 더덕향에 달밤조차 취하고.
세월은 덧없이 흘러 어리석은 과거는 간 데 없고
세상을 호령하는 자 이제 누구냐
79학번 아직도 그날 그 어리석음 그 상처 두고
벚꽃주 더덕향만 그리워하네.
0033 오늘과 다른 내일
껍데기는 가라는 말이 절실한 밤이 되었네.
나는 껍데기 사상(思想)을 이고서 종종걸음 치다
제풀에 지쳐 하던 짓을 멈추었네.
사람들이 내 허영을 비웃었네.
참 이상스런 사람 다 보겠네-
사람들이 들리지 않는 소리로 그리 말하는 것을
밤이 돼서야 깨달았네.
내가 그리 말하고 내가 들었네.
곳곳에 내건 혁명(革命)의 깃발을
밤이 오자 슬그머니 거둬들였네.
내게 친근한 것들 속에서 평화로이 살아야지.
아, 이젠 집으로 돌아가야지.
고향의 품에서 이제 쉬어야지.
다시는,
저 이질(異質)의 세계로 나가 정치(政治)하지 말아야지.
종종걸음을 치다가 깨달았네.
귓등으로 흘려들었던 어머니 말씀이나 귀담아 들어야겠네.
껍데기 혁명의 깃발을 내리겠네.
0034 고명고(孤鳴鼓)
여럿이 함께 북을 울리는 것도 아름답거니와
홀로 북치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명고(鳴鼓)의 고수(鼓手)들은
가문이 좋고
머리가 좋은 수재들이라 하기에
나는 주눅부터 들었다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 북소리 들리지 않는 지금
고수(鼓手)들은 모두 어디서 무엇 하는가
너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가
부질없는 짓도 때로는 재미있다.
혼자 피식 웃으며 부질없는 짓을 해 보았는가.
부질없음을 알며 부질없는 짓을 즐거이
해 본 적이 있는가.
0035 항심(恒心)
뭐든 좋아서 하는 일은
기복이 없다는 오늘 아침 깨달음이다.
늘 느끼는 것은 사람들의 기복(起伏)이라
지난 수년간 변함없는 마음을 지닌 이들은
무엇인가 늘 즐거이 하던 사람들이고
나도 지금까지는 그 중 하나였다.
그래서 나는 순전히 이름 없는 사람이지만,
내게 온 이 순간들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누가 뭐라던,
삶에서 '유희적인 태도'를 잃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불가항력으로 찾아오는
인생의 행불행이 있기에 나도 어느 순간
심연으로 가라앉아 버리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이 와도 그저 그러려니 하고
누구나 한 번쯤은 아주 사라져야 할 때가 온다고
생각한다.
0036 단단한 귀
일을 그르치게 되는 원인은 너의 얇은 귀에 있다
술 마시고 들떠서 하는 말은 흘려보내라
인사치레로 하는 말을 흘려보내라
입에 발린 말을 흘려보내라
우리들 중에 누군가는 허세를 부리는 자가 있다
세상은 허방 투성이다
맹세하는 말 중에는 허언이 많다
얇은 귀를 가지고서는
평생 심신이 곤고하게 됨을 면키 어려우리.
허랑방탕한 마음이여!
항상 즉흥적인 결정을 조심해라.
너는 안 그랬는지 또한 돌아볼 일이다.
0037 도덕률(道德律)
놓아서 먹인다는 것,
그것을 방목(放牧)이라 하지
개나 닭이나 소나,
우리에 가두지 않고 놓아서 먹이는 꿈을 꾼 적이 많아
스스로 질서를 찾아
들고 날고 그럴 때가 오게 되겠지
어쩌면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는 말도
그런 일들과 의미가 상통하는지
조금은 무책임(無責任)하다는 비난이 있을지라도
높고 귀한 것만 위한다면
높고 귀한 것만 대접받는 세상이라면,
내 마음의 도덕률(道德律)에 반(反)하는 것이지
그러므로 나는
신념이 있거든 휘둘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지
바람이 불고 서리가 내리고 눈이 오도록
세월(歲月)을 견디며 기다리는 것이지
0038 일 하기에 바쁜 손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요는 탓하는 행위는 그것이 그것이라는 말씀이다
손이 제 할 일을 하고 있거나 일을 할 때는
손바닥이 마주 칠 일도 없는 것이다
왼손이 오른손이 하는 일을 나무라지도 않고
오른손이 왼손보고 뭐라고 하지도 않는다
두 손이 가까워지거나 멀리 있거나 서로를 탓하지 않는 법이다
이것은 고독에 대한 화두다
내적진실에 대한 탐구다
박수치는 요란한 손바닥보다는
무념무상 묵묵히 일하는 손바닥을 추구할 일이다
4부 결기(決氣)
0039 등뼈
우연히 등뼈가 부러진 나는
그래도 아직 살아서
물고기를 먹다가 버릇처럼 등뼈를 분질러 본다.
등뼈 속엔 너도 내 꺼랑 똑같은
굵은 신경 줄이 있구나.
살아서 추(醜)한 상반신(上半身)으로
가만히 앉아서
아름답다 아름답다고
산을 오르는 건강한 남자들을 본다.
아름답다 아름답다고
평창강 계곡을 가볍게 뛰어다녔던
계룡산을 폴짝폴짝 단숨에 오르내리던
건강했던 한 남자를 추억한다.
0040 결기(決氣)
-고백(告白)에 부쳐
연세대 신촌세브란스에서
죽음을 목전에 둔 것처럼 절망적일 때
나의 반신(半身)이 영구히
장애(障碍)로 남을 것이 결정적일 때
악마의 유혹처럼 신자(信者)들이 끊임없이
나를 회유했다
오만하지 마라
자만하지 마라
생명이 바람 앞 등불처럼 팔랑거릴 때
신자들이 악마의 떼처럼 찾아와 회유했다
그때 무슨 결기(決氣)처럼
나는 죽음을 무릅쓰고 무릎 꿇지 않는
오직 한 인간(人間)이 되기로
더욱 굳게 결심했다
0041 어둠 깊은 방
가상의 세계라지만 검은 방을 하나 지었습니다.
현실의 내 방과 흡사한 곳입니다.
햇빛은 베란다 저쪽 너머로
하루 중 잠시 들었다 다른 동 너머로 사라져서
눅눅한 어둠을 벗 삼아 누워 있기 좋아합니다.
바깥 창문을 콩잎 블라인드로 차단했습니다.
안쪽 창문은 금빛, 황제의 옷자락으로 가렸습니다.
그간 어울리지 않게 약속을 하고 차를 타고
어울리지 않게 사람들 사이에서
그리 신기하지도 않은 세상사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시간을 낭비했군요.
돌아와 눕는다는 시를 읽고 나도 돌아와 눕는다는 시를 쓴 것이
그간 몇 번이었던가
이제야말로,
4월 꽃피는 봄 단 하나의 약속만을 기다리며
어둠 깊은 방 긴 잠을 자겠습니다.
0042 느슨한 동맹
오늘 내가 ‘느슨하게’란 말을 강조하는 것은 어딘가 당신의 울음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타인에게뿐 아니라 자신에게조차 느슨하여라.
옥죄지 말고, 옭아매려 하지 말고, 좋다고 바싹 달라붙지 말고, 다가가되 돌아올 길을 예비해 둘 일이다.
돌아오되 다시 다가갈 길을 예비할 일이다.
숨되 그가 찾아올 길을 예비하여 우리는 그렇듯 서로에게 느슨할 일이다.
성문을 굳게 잠근 당신의 방에서 들리는 울음엔 귀기(鬼氣)가 서려 무슨 일인가 냉큼 내다보니
아, 달달 볶는 당신 혼자의 심사(心思)여.
어딘가 버림받고 상처받아 울고 있는 그대여.
썼던 연서(戀書)를 박박 찢어버리고 모든 ‘모두삭제’를 누를 때,
그대여 조금만 느슨하게, 느슨하게, 우리 느슨한 동맹으로 살아보자.
0043 나사가 하나쯤 빠져 덜컹대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렇다는 말이다
성격이 괴팍하여 인격조차 갖추지 못했다고
세상 욕은 다 얻어먹는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생긴 것도 괴물이라면 더 좋다
목소리가 들을 수 없는 쇳소리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사람이라면 더욱 좋다
나처럼 다리가 없는 사람이면 또 좋고
그 남자처럼 주정이 극심하여 몇 잔 술에
거친 욕쟁이로 변신하면 어떠랴
다른 사람을 씹고 씹어
세상을 온통 혼란스럽게 만드는 사람이라면 또 재미있다
세상에 오로지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지존도 좋다
잠 안 자는 사람이라면 더 좋다
다른 사람을 한번쯤 깊이 사랑했다가
상처 입은 사람이라면 더욱 좋다
점방 보는 사람도 좋다
식당에서 그릇 닦는 사람도 좋다
앞니가 다 빠져 엉성한 사람이라면 좋다, 참 좋다
나사가 빠진 듯하여 내 귀한 선물을 길거리에 흘리고 다니는
그런 사람이 좋다
0044 보통리 벚꽃 만개
4월 13일 비온 뒤, 동네 벚꽃 만개하였다
여러 이웃에서 꽃 사진을 하도 많이 보았기로
저 꽃이 무에 대수냐,
이제 꽃 귀한 줄은 모르겠지만 저 건너 마을 벚꽃 만개하니
혹 우리가 모월 모일 만나자 했던 때 이쯤은 아니었는지
헛된 사랑의 약속처럼 아무 표식 없는 달력을 들여다보곤 한다.
헛된 사랑의 약속을 남발하였구나.
우리는 만나지 않고서도 천년을 살아갈 수 있고,
천년을 그리워도 할 수 있음을 참지 못하여
헛된 사랑의 언약을 남발하였구나.
저 벚꽃 이내 후드득 져버리면 우리 곤한 사랑도 그만 두리
0045 진달래
지금도 그런가, 한 번 따 먹어 보아 줘.
진달래 핀, 공해에 찌든 도시의 진달래는 아니고
어느 이름도 모를 야산,
어느 이름도 모를 심산,
떨기로 핀 진달래 두 손으로 받쳐 들고
허기진 듯 따 먹어 보아 줘.
씹히는 그 맛이 어쩌, 피의 맛이지 않나?
새콤 찝찌름한 피의 맛이지 않나?
고 붉은 것 백두대간 벌건 생리혈
맛이 어쩌, 시금털털하지?
네 입술을 보아 네 고운 치아를 보아
오들오들 떨던 아해 푸른 보라 입술이야.
안으로 피멍 맺힌 보라 먹빛이야.
아, 고것 이쁜 연분홍 푸른 보라 애절함이야.
아, 지금도 그런가,
당신 한 번 따 먹어 보아 줘.
0046 시작하지 않던 그날
가까이 오지 마라!
가까이 왔거든 돌아설 일이다
시월도 가고 낙엽 흩뿌리는 계절은 되어
내 설 곳 아무 데도 없다는
칙칙한 운명론자 되어 졸다가
마침내 온통 나를 버리고 싶다
담배 맛은 신통찮다, 귀는 먹먹하다, 눈은 감겨질 듯
지각한 사람은 어디 있는가.
피워 문 담배가 입술을 찢는다.
오, 인생의 시듦이여!
지각한 사람은 저만치 멀어져 가네.
내 숨 쉴 곳은 한 뼘뿐,
빚다 만 만두피처럼 오그라들 제
상념은 발전 없는 과거에만 머무네.
나의 현재여 나의 미래여 어디 있는가!
이제 그만 쉬고 싶다
모든 것으로부터 돌아가련다.
시작하지 않던 그날로
0047 가을에
구월 중순이라
산에 가면 나뭇잎들도 색이 바뀌었을지 몰라.
창밖 도심 속,
이주해 온 나무들이 아직은 푸르지만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가을이 온다고 다들 난리네.
뭔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아니면 그렇게 기다림에 오랫동안 익숙한 사람들처럼
가을이 저만치 오고 있나봐.
다들 속삭여 줬지.
오랫동안 눈을 감고 있었어.
눈을 감으리라, 눈 감고, 눈 감은 채로
어려운 세상일을 잊어보고자 했지.
그런가, 자네, 그새 가을이 오고 있단 말인가.
아우성치던 여름의 마무리도 하지 않은 채, 그새 또
누가 온단 말이지.
오겠지. 기다려주지 않아도 오고
보내지 않아도 가야 할 사람
어딘가 벚꽃 하얀 이파리 눈발처럼 나부끼는
눈 감은 나는 지금 봄이라네,
내 마음엔 꽃비가 오네.
0048 무심한 저 이
빈 들을 걷는다.
다만 무심한 이름 석 자도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무색무취(無色無臭) 길을 지나가는 저 이
생각은 무슨 생각으로
오늘은 무엇을 찾는지
오늘은 어인 일인지
그대, 과거에 흘렀던 기억을 좇아
망각의 강물을 거슬러 올라왔는가?
강, 소란하지 아니하여 아늑했던 강
기억조차 지워진,
다만 무심한 이름 석 자도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0049 죽은 자의 블로그
친구를 천상(天上)으로 보내고 슬퍼하는 사람을 따라
그의 블로그에 가보았네.
슬퍼하는 사람은 죽은 친구의 아이디와 비번(秘番)으로 로그인하여
이제는 필요 없어진 블로그를 삭제(削除)하려 하였네.
죽기 전 함께 하자며 손수 만들어 준 그의 작은 공간(空間),
차마 삭제할 수 없어,
생전 친구가 좋아하던 음악 한 곡 더 추가하고 나왔다네.
-차마 삭제할 수 없었어요. 차마…….
슬퍼하는 사람이 그리 말하였네.
오늘 아무도 없는 한낮, 홀로 그 죽은 자의 블로그에 가보았네.
생전(生前)에 쓴 두어 편 시(詩)와 까마귀 한 마리,
세상(世上)을 알고 싶다는 노래가 쓸쓸히 흐르고 있었네.
0050 뉴턴의 제 1법칙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모든 물체는,
자기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한다.
정지한 물체는
영원히 정지한 채로 있으려고 하며,
운동하던 물체는
영원히 등속 직선운동을 계속 하려고 한다.
속력과 방향이 변하지 않는다.
속력과 방향이 바뀌었다는 것은
너에게 외부에서 힘이 가해졌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풍화되기 마련이다.
풍화를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하다.
젖지 않는 사람은 없다.
0051 0(零)의 행진
0(零)!
절대 고독을 두려워 말아야지.
헤이! 0(零)을 비웃어 봐!
0(零)을 즐겨!
계기판이 멈춘 듯 절벽 밑으로 추락하고 말았어.
다시 시작하는 거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
사위를 돌아보지 마, 여긴 절벽이라니까!
앞만 보고 가는 거야,
떨어져 죽는 일밖에 더 있을까!
기대지 마, 의타심만 커지잖아!
홀로 서 보는 거야, 영점 영영영의 지점까지!
그 모든 것을
0(零)에 비끌어 매 놔!
5부 눈 감고 가라
0052 강(江)의 편지
흘러가는 강을 두고,
흘러오는 인생을 앞에 두고 백지를 펼쳐 두었어요.
시간이 흘러 백지는 사람들이 나눈
빼곡한 이야기들로 가득 찼어요.
흘려버릴 말들과 가슴에 남을 말들이
다시 오랜 시간이 흘러,
흘려버린 말들과 가슴에 남은 말들이 되었어요.
당신의 진실한 말들이
오늘밤엔, 다정한 이야기를 걸어오고 있는 듯
언젠가 말했듯 그 자리에 가면 그가 있듯
그 자리에서 아직도 당신을 생각합니다.
흐르는 강은 아직도 흐르고,
여전히 흘러가고 흘러오는 인생입니다
백지는 아직도 여백이 많고
나는 여전히 당신을 생각합니다.
좋으나 싫으나 생각하는 일이
나의 본업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픈 사람을 조금 더 생각했습니다,
슬픈 사람을 조금 더 생각했습니다.
내가 생각할 수 있을 만큼만 생각했습니다.
0053 교습소 가는 길
해거름 저녁이면 보철용 차량을 타고
이름도 모를 늠름한 나무숲을 지나
홍익미술교습소로 그림 그리러 간다.
팔자에 없는 환쟁이 되려 함이 아니라
그저,
머릿수나 채워서 그림교실이 폐강됨을 막아보자는 심산인데,
갈 때마다 나는 교습소로 가는
이 길을 좋아하게 되었다.
사도세자, 정조 임금 고이 잠든 융․건릉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아직은 미사용 된 홍익대 분교가 들어설 자리라는데,
운전대 너머로 길 꼬리가 조용히 사라진
이 호젓한 숲길 위에서
나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길’을 생각한다.
생각처럼 살아지지 않았던 내 인생에서 나는
보철용 차량을 타고
팔자에도 없는 환쟁이처럼 새삼스레
새, 나무, 배, 꽃, 사과, 호박 그리러
그림 그리러 간다.
0054 눈 감고 가라
눈 감고 가라
친구가 눈 감고 길을 가는 것이라기에
가만 눈을 감아봅니다
마음의 길은 밝은 두 눈이 없어도 찾아가는 것임을
엇비슷한 연배의 이 친구는 이미 체득한 듯
그의 집엔 이미 문패도 번지수도 없습니다.
답답한 소회를 잠시 투정한 내게
툭- 던진 말
눈 감고 가라
득도의 경지에 다다른 이 친구의
눈 감고 길을 가라-는 말에
이미 눈 감고 길을 가는 그의 뒤를 좇아가되
내 눈은 감은 눈이 답답하여
혹시 실눈을 뜨게 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0055 빨강머리 앤
빨강머리 앤은
아내가 꿈꾸는 인생이다, 아내는 그렇게 살아왔기에
생긴 것도 주근깨 다닥닥
자기의 최후 모습은 앤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오늘도 달리고 있을까
주사(酒邪)가 심한 아버지 밑에서
식구들은 콩밭에 자주 숨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다른 친구들 손 흔들며
하얀 교복칼라 나풀거리는 중학교 갈 때
아내는 혼자 서울 담임선생님 댁에 식모로 갔다
그 이후는 수원삼성전자 공장소녀였다
공장에서 공장으로
납땜인두를 들고 단어를 외웠다
그 이후는 또 수원 광명학교 야학생(夜學生)이었다
그 이후는
아, 아내는 속성으로 검정고시 진학반이었다
우리는 공주서 만나 연애를 했고,
둘 다 현재가 가난한 대학생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합격했다
그런 아내가 오늘 교감선생님이 되었다
나는 오늘 네게 울어야 할까 웃어야 할까
0056 오이 두 개, 풋고추 두 개
칠십 년대 초반 국민학교 5, 6학년 때는
도시락을 ‘변또’라 불렀지.
양은 변또에 강냉이밥, 보리밥에 반찬은
붉으덱덱 고추장이나 희브덱덱 된장이나 장아찌였어.
중, 고 시절 도시락은 그냥 무난했지.
자네,
무쇠난로에 구워먹던 도시락 맛을 기억하시우?
대학 때는 도시락을 싼 적 없고,
교사가 되었을 때 어머니께서 한두 번쯤
지나치게 화려한 도시락을 싸주신 적이 있었어.
만약 지금 내가 내 도시락을 싼다면
흰 쌀밥 조금, 오이 두 개, 풋고추 두 개,
약간의 고추장이면 가장 좋겠지.
0057 강(江)도 잠 잔다
삶이 늘 넘쳐나는 윤택한 강일 수는 없지만
바싹 말라 빈 강도 아름답다
빈 강가에 조을고 섰으면
가버린 사람 뒤에,
지나가는 또 다른 남루한 사람이 올까.
흘려보내고 또 흘려보냄으로써
마음조차 텅 빈 강
0058 가을 여정(旅程)
나는 가을 코스모스 나부끼는
유년(幼年)의 길 따라
마음의 길 따라
전혀 만난 적 없다던 사람들과 함께
오늘도 오랜 여행 중이랍니다.
길가에 서
가만히 나를 바라보던 당신은
그때 누구였나요?
0059 여행자가 돌아오는 찻집
가만 눈을 감으면
전설처럼 한 번 스쳤다 지난 사람들이 기억나곤 합니다.
지금 나는 전자(電子)의 눈을 가진
0과 1로 그들의 흔적을 찾아 기억을 더듬곤 하지만,
그들을 소리쳐 부를 수는 없습니다.
흘러간 역사는 과거로 묻으라고.
내게 과거가 그에게도 과거는 아닌지라
잊힌 그들도 또한 지금은
삶의 한복판에서
개인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큰일을 할 것입니다.
가끔은 돌아오는 여행자 되어
점점이 회귀하는 자 있다 한들
찻집은 비어 나도 또한 먼 여행(旅行) 중이랍니다.
0060 시(詩) 밥
담배나 술 등 기호품에 대해서는
그거 뭐 우리 얼마나 오래 산다고 끊고 사냐고 한다
이제 우리보다 더 일찍 죽은
아까운 인재들도 흔한데
좋은 것 멀리하고 그렇게 아등바등 살기 싫다
벌을 덜 받아서 그렇다 할 테지
시란 것 또한 그렇다
시가 익는 동안, 시 밥이 되는 동안
세이 고스톱에서 고스톱을 치거나
무료한 인생살이, 한일슈퍼 점원이나 되어 세월을 죽이자
동전을 거슬러주는 동안
시야 나오든 말든,
담배나 꼬나물고, 커피에 인이 박혀 살란다
너는 오늘도 어디 술 마실 거리나 있나 찾았지
나도 허랑방탕하게 한세상 살고자 한다
0061 잠든 시(詩)에게
지상에 존재하되 만날 수 없는 시(詩)여,
우리 몸은 이역만리
눈앞에 있으되 만질 수 없는 건조한 문자의 관능(官能)이었다
강과 백지의 세월이라
흐르는 것은 이미 결정된 태곳적 따로 운명
너는 너
나는 나 강이 되어 따로 흐른다.
흑과 백으로 점점이 박힌 아릿한 시(詩)여
우리들의 매만짐이여
오직 불타오른 정념은 단정한 문자(文字)에 묻어라
지상에 남는 최후의 일인(一人)까지
시(詩)의 꽃밭을 가꾸는 최후의 일인(一人)까지
분투하며 분분히 낙화하리.
나의 문자(文字)여, 잠든 시(詩)여.
0062 낡은 문장
맞춤법이 다 틀리고 더러 띄어쓰기 틀려도
사투리를 썼더라도
진실한 뜻만 담겨 있다면 당신의 소중한 기록이다
그런 것들이 고질병처럼 개선이 안 된다 해도
당신이 당신의 삶을 존중만 한다면
당신이 내게 주는 메시지만 담겨 있다면 소중한 기록이다
문장의 기교를 몰라도
백 년 동안 우려먹은 낡은 문장이라 해도
그것이 하나밖에 없는 당신의 삶이었다면 또한 소중한 기록이다
0063 시몽(詩夢)
이 세상에서 이러고저러고 했던 것 꿈에 나오네.
이 세상에서 이러고저러고 하지 못했던 것 꿈에 나오네.
세상 근심 없어
낮이나 밤이나 잠이나 자고 꿈이나 꾸지.
사람마다 근심 걱정 없는 이가 없다네.
세상은 마음먹기 나름일 뿐.
[跋文] - 분명, 축복입니다.
조향순(시인)
1.
만족과 편안함과 넉넉함은 달콤할진대, 자칫하면 감각을 둔화시키거나 퇴화시켜버리곤 한다. 그렇다면 불만과 불편함과 부족함은 어쩌면 우리에게 무언가를 해보라고 내려주신 축복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만약에 이용환 시인이 진득하니 방안에 앉아있을 수 있는 불편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그의 시를 만날 수 있었을까. 이용환 시인 또한 만약에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어머니의 사설을 귀담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이리 많을 수 있었을까. 어머니의 열무비빔국수를 제대로 맛보고 앉아나 있었을까. 어쩌면 길거리에서 어쩌면 술집에서 지나가는 농담쯤으로나 휙휙 날려버렸을지도 모른다. 아까운 시가 길거리에 버려졌을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그의 시를 이렇게 만날 수 있음은 분명 축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2.
부모와 자식 간이 본래는 한 몸이었음에도 우리는 깜빡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이용환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그 잊음에서 번쩍 깬다. 끊임없이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잊었던 풍경을 어렴풋 떠올린다. 집안에 가만 엎드려 사는 아들에게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물고 들어오는 어머니, 어머니께 아들은 영원히 둥지 안에서 먹이를 기다리는 새이다. 이제는 아들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물고 들어와야 할 때인데도 어머닌 노래 부르듯이 즐겨 노인정에서 소식을 물어다 주신다. 술 사달라는 아들, ‘불효자는 웁니다’를 들으면서 소주 한 병에 곯아떨어진 아들, 보기에도 아까운 당신의 아들을 보고 울고 가시는 어머니. 가슴 아프지만 아름다운 그림 한 장이다. 이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주려고 아픔이 주어졌을까.
분명히 슬픈 그림인데도 읽는 이들은 괜히 신이 난다. 그것은 몸에 밴 이들의 가락 때문이다. 운율은 이미 이들의 습관이 되어 떨어지는 말마다 들썩들썩 노래가 되어, 시가 되어 살아난다.
3.
들썩이던 흥을 멈추고 갑자기 정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시인은 밥상머리에 앉아 물고기의 등뼈를 분질러 본다. 그리고 평창강 계곡을 가볍게 뛰어다니던, 계룡산을 단숨에 오르내리던, 등뼈가 멀쩡했던 자신을 추억한다. 밥상머리에서조차 잊을 수 없는 내 등뼈.
진실보다 더한 감동이 어디 있을까. 이 시를 읽는 누구도 밥상머리에서 물고기를 보면 문득 이 시를 떠올릴 수 있을 게다. 이 시를 쓰기 위해서 그는 등뼈를 버린 것이라고 하자.
우연히 등뼈가 부러진 나는
그래도 아직 살아서
물고기를 먹다가 버릇처럼 등뼈를 분질러 본다.
등뼈 속엔 너도 내 꺼랑 똑같은
굵은 신경 줄이 있구나.
살아서 추(醜)한 상반신(上半身)으로
가만히 앉아서
아름답다 아름답다고
산을 오르는 건강한 남자들을 본다.
아름답다 아름답다고
평창강 계곡을 가볍게 뛰어다녔던
계룡산을 폴짝폴짝 단숨에 오르내리던
건강했던 한 남자를 추억한다.
-「등뼈」전문-
4.
아마도 오늘밤은 이런 꿈을 꿀 것 같다.
시인이 앉아서 ‘한 번 따먹어 보아 줘.’라고 하지 않고, 이름도 모를 야산을 날듯이 뛰어다니며, 진달래를 질겅질겅 씹으며 ‘아직도 그 맛이네. 새콤 찝찌름한 맛, 시금털털한 맛, 그 맛 그대로 있었네.’ 하고 푸른 보라 입술이 되어 웃는 꿈. 시인이 눈 감은 봄 속에서 뛰어나와 9월 중순의 산, 가을을 야생동물처럼 누비다가 산마루 바위에 올라 양손을 허리에 처억 올리고 긴 다리를 쭉 펴서 흔들거리며 폼을 잡는 꿈. 시인이 봉평 팔석정(八石亭) 부근 땅돌과 너럭바위를 다람쥐처럼 가볍게 오르내리는 꿈. 그리고 평창강 계곡을 가볍게 뛰어다니고 계룡산을 단숨에 오르내리는 홍안의 시인을 내가 만나는 꿈.
2011년 9월
해설- '등뼈' 시집 발간에 부치는 글
이남천
세대공감이란 말이 생각난다. 용환 시인과 나는 같은 세대이다. 1960년에 태어난 용환 시인과 그보다 한 해 전에 태어난 나는 같은 전후세대로써 한국전쟁을 겪은 어버이 세대의 깊은 상처가 산업과 문화 전반에서 점차 아물어가고 재건과 도약을 꿈꾸는 현대의 여명기에 태어난 아이들이다.
우리 세대는 풍요를 누리는 팔자 좋은 시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부모 세대들의 각별한 보살핌을 받으면서 그들의 희생과 헌신을 발판으로 보다 나은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보다 나은 생활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시골에는 전깃불이 들어가지 않았고 포장된 도로는 전국의 도로망에서 손으로 헤아릴 수 있을 정도였다.
용환 시인은 전북 남원에서 출생했다. 조씨 성을 가진 여인과 이씨 성을 가진 남자 사이에 태어난 시인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아주 어릴 적부터 아버지는 가정을 등지고 세상 밖으로 표류하셨기 때문이다. 아버지라는 사람에 대한 인상은 어머니의 회고 속에서 어렴풋이 드러난다.
너희 아버지께서 일제말기 심상소학교를 졸업한 직후
구례 모 한약방에서 한동안 사숙을 하셨다.
그 시절, 아니 한참 그 이전부터 나라를 구한다는 자
광제창생(廣濟蒼生) 우루궁궁 깃발 내걸고
괴나리봇짐 짊어지고 팔도를 숨어 돌며
의원노릇을 한 자가 많았다.
수운(水雲)이 그랬고, 증산(甑山)이 그러하였다.
무섭기는 어중간한 반식자(半識者)가 무서운 거라.
결국은 네 아버지 이도저도 아닌
그저 한 동네 무허가 의원 노릇이나 하다가
남의 집 머슴이나 살다가
한 때는 거리의 비렁뱅이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아버지 생전 흰 도폿자락 휘날리면서
우리 해월신사(海月神師) 우리 해월신사(海月神師)
운운(云云)함이
그 양반 최보따리를 흠모해서였음인가
진정 무소유(無所有)의 인생을 실천(實踐)했는가는 모르되,
침대롱 한 개,
귀퉁이 다 닳은 동의보감 필사본 한 권 남겨놓고
수수께끼 같은 생을 마감하셨다.
도(道)에 미치면 그런 것이다.
너는 행여 도(道)에 미칠라 (이용환의 詩 아버지 전문)
용환 시인의 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시의 구절들이 어머니의 말씀으로 이루어졌다. 기억도 나지 않을 아버지란 사람의 인상을 아들에게 찬찬히 일러주는 어머니의 음성이 잔잔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렇듯 용환 시인의 시들은 많은 부분에서 어머니가 들려주는 일상적인 얘기들을 시로 변모시키고 있다.
결국은 네 아버지 이도저도 아닌
그저 한 동네 무허가 의원 노릇이나 하다가
남의 집 머슴이나 살다가
한 때는 거리의 비렁뱅이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일제 말기에 태어나 ‘어중간한 반식자’가 되어 살았다던 아버지의 인생을 단 몇 줄로 압축해 놓은 구절이다. 용환 시인은 어머니의 회고담을 통해 기억에도 없는 아버지를 생생하게 되살려내고 있다. 비록 어머니의 구술을 통해 듣게 된 아버지의 생애지만 아버지의 생애가 어떠했는지 이 구절을 통해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침대롱 한 개,
귀퉁이 다 닳은 동의보감 필사본 한 권 남겨놓고
수수께끼 같은 생을 마감하셨다.
그 후에 시인의 아버지는 침대롱 한 개와 귀퉁이 닳은 동의보감 필사본 한 권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나셨다. 식민지 말에 태어난 이도저도 아닌 반식자요 무허가 의원이었던 한 사내의 씁쓸하고도 외로운 죽음이다. 용환 시인은 아버지라는 시를 통해 이렇듯 짧고 허망한 삶을 살다간 그 시대의 외롭고 서글픈 아버지의 모습을 사진이 귀했던 시절 겨우 남겨진 한 장의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아련하게 그려내고 있다.
아버지는 이렇게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궁핍과 절망 속에서 차디찬 불로 희망을 태워 당신의 목숨과 함께 묻어야 했지만 공교롭게도 용환 시인의 두 자녀는 두 사람 모두가 한의사의 길을 가고 있다. 할아버지가 일찍이 이룰 수 없었던 꿈을 자손들이 이루어가고 있는 것이다.
킥킥-
안집 상(上)할머니 연세가 많아서 돌아가셨을 때
그 손(孫)들이 많으니까
마당으로 앉을 데가 없이 한 백 명 정도가 모였지
남자 상주들은 어이- 어이
여자 상주들은 아이고- 아이고
개구락지 우는 소리 맨치로
엉머구리 우는 소리 맨치로
합창하는 그 소리를 듣자니 왜 그리 우스워
참 철때기도 없었지
하나가 킥킥- 웃으면
허리끈을 붙잡고 울다가 몸이 흔들리니까
뒷사람도 킥킥- 웃었지
느 작으머이는 내 똥구넉을 붙잡고 왜 그리 웃어싸
킥킥-, 킥킥-
할머이하고 무슨 젱이 있어야지
내 나이 열 예닐곱 먹었겠다, 그때 일이란다
긍께 뭣을 알것냐
그 집 손(孫)이라고는 다 웃었지, 울지 않았어
담 너머에서는 동네사람들이 우는 굿을 본다고 지켜 서 있지,
동네친구들은 안 운다고 요따만한 돌멩이를
울어! 울어! 하며
궁뎅이에 던지고 그랬지 (詩 호상 전문)
용환 시인의 호상(好喪)이란 시도 어머니의 구수한 입담을 토대로 해서 시를 짓고 있다. 어머니가 처녀 시절에 겪은 일을 재밌고 구성지게 표현했다. 물론 어머니의 입담이 이렇듯 구성졌을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남자 상주들은 어이- 어이
여자 상주들은 아이고- 아이고
개구락지 우는 소리 맨치로
엉머구리 우는 소리 맨치로
합창하는 그 소리를 듣자니 왜 그리 우스워
호상은 보통 천수를 다 누리고 돌아가신 어른들의 상을 지칭하는데 시인의 어머니 처녀시절이라면 일부러 내는 의례적인 곡소리는 초상집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남자들은 ‘어이- 어이’하고 울었고, 여자들은 ‘아이고- 아이고’ 울었나보다. 오래전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초상집 풍경이 어머니의 구수한 사투리 소리가 섞인 입담을 타고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다.
하나가 킥킥- 웃으면
허리끈을 붙잡고 울다가 몸이 흔들리니까
뒷사람도 킥킥- 웃었지
느 작으머이는 내 똥구넉을 붙잡고 왜 그리 웃어싸
킥킥-, 킥킥-
용환 시인은 어머니의 말씀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하지만 어머니의 말씀이 이처럼 시로 변모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 당시의 상황을 시인의 가슴으로 풍부하게 듣지 않았다면 이렇게 감칠맛 나게 옮겨질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집 손(孫)이라고는 다 웃었지, 울지 않았어
담 너머에서는 동네사람들이 우는 굿을 본다고 지켜 서 있지,
동네친구들은 안 운다고 요따만한 돌멩이를
울어! 울어! 하며
궁뎅이에 던지고 그랬지
유교식으로 치렀던 그 시절의 초상집 분위기는 이렇게 익살맞은 풍경으로 역설적으로 재연되고 있다. 어머니의 경험과 재밌는 입말이 시가 될 수 있게 꾸며내는 시인의 재치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당시의 초상집 분위기를 겪어보지 못한 요즘 사람들조차도 입가에 절로 미소를 떠올리며 공감하게 한다.
용환 시인이 어머니의 구성진 이야기를 시로 승화시킨 작품들은 이밖에도 아주 많다. 그 가운데는 인생살이의 슬픔과 기쁨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것이 자주 눈에 띈다.
어-하~!
대식이 할머니 어-하 표정이 제일 우습다.
깬시깬시 깨게이 께게, 깬시깬시 깨게이 깨게
깬시깬시 깬시깬시, 깬시깬시 어~하~!
길목에 서있던 두 경찰이 배꼽을 잡는다.
게넹넹네 게넹넹네 궁~ 징~~~
덩더쿵덩더쿵
지잉~~, 공알~~ 공알~~
우리 어머니 간짓대 하나로
꽹메기, 징, 장구, 북도 없이 길을 가다 잘도 노신다. (詩 길놀이 부분)
용환 시인의 어머니가 동네 분들과 길을 가다 간짓대(기다란 대나무 막대)를 우연히 주워들고는 재밌게 노는 광경이다. 풍류를 아는 우리네 서민층 어른들의 즉흥적인 놀이를 통해 인생의 희로애락마저 느껴진다.
‘깬시깬시 깨게이 께게, 깬시깬시 깨게이 깨게
깬시깬시 깬시깬시, 깬시깬시 어~하~!’
용환 시인은 꽹메기(꽹과리) 소리를 이렇게 의성어로 풍부하게 표현해 주고 있다.
‘게넹넹네 게넹넹네 궁~ 징~~~
덩더쿵덩더쿵
지잉~~, 공알~~ 공알~~ ’
이것은 꽹과리, 장구, 징소리를 한꺼번에 표현한 것이다. 어머니가 흥이 나서 아무렇게나 내놓은 소리들을 모아 이렇듯 재밌고 현장감 있는 글로 풀어놓은 시인의 재기가 돋보인다.
나, 내년에는 에미한테
하얀 모시옷 한 벌 사달라고 할래.
내년에 안 죽고 살면 내가 해달라고 해갖고
하얀 모시옷 입고 점잖게 노인정 다니려 해.
내 맘은 그래, 울긋불긋 그런 옷 말고,
머리에 염색도 안 허고,
검버섯도 안 빼고, 그냥 있는 그대로,
하지만 하-얀 모시옷 한 벌은 사달라고 할래.
그건 비싸단다.
진짜 모시는 몇 십만 원이나 한단다.
중국산은 뻣뻣하고 태(態)가 안 나지.
한산모시 입고 떡- 나서면
품위가 있고 뽄이 자르르 흘러 가치가 있지.
내년에는 에미한테
하얀 모시옷 한 벌 사달라고 할래.
한 번 입고나 죽자,
내가 평생 못 입어 봤잖아.
너는 에미에게 절대 내가 이런 말 했다고 하지 마라.
내가 내년 되면 에미한테 직접 말할 테니
그때까지 살랑가? 못살랑가? (詩 모시옷 전문)
용환 시인은 빼어난 모시옷 한 벌 입고 싶어 하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이 글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 생애에서 가난과 고난은 필연인 듯 따라다녔지만 정작 본인을 위한 작은 기쁨마저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챙길 수가 없었던 우리네 어머니들의 사정이 절절하게 읽힌다.
며느리를 통해 모시옷 한 벌 청해 입으면 ‘품위 있고 뽄이 자르르 흘러’ 가치 있는 당신의 모습이 되리라고 상상하며 아들에게 말씀하셨겠지만 정작 며느리에게는 당분간 비밀로 함구하려는 어머니의 심정은 가정의 경제를 염려하는 배려심이다.
하지만 평생에 한번 입어보고 싶었던 소원을 아들에게 어머니는 말씀으로 표현했고 소원대로 한산모시 한 벌을 입게 되었을 것이다.
용환 시인이 어머니의 이야기나 어머니의 일상생활상을 통해 시의 동기를 얻게 되는 것은 다른 시인들과 차별이 되는 점이다. 더구나 어머니의 입담을 생생하게 재구성하는 것이 용환 시인이 지닌 독창적인 시작법이라고 한다면 어불성설이란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겠다.
시는 가슴으로 느끼는 것을 머릿속에서 정리하여 정제된 언어로 표출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서 감동이 전해지는 사건을 만나게 될 일은 극히 드물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시인들은 강변을 배회하거나 들판에 서서 바람을 맞으면서 자연과의 조우를 통해 시의 여신과의 만남을 찾고 있는지 모른다.
용환 시인의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르다. 삼십 세에 찾아온 불운한 사건으로 인해 두 다리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생활 반경은 그날 이후로 매우 좁아지게 되었다. 용환 시인의 집을 찾아갔을 때 그는 거실의 한 귀퉁이 두 평가량 되는 곳에 침대와 컴퓨터를 놓고 생활하고 있었다.
이곳이 그의 생활공간이요 모든 글 작업의 중심지란 생각이 들었다. 몸이 불편한 관계로 어머니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젊은 나이에 어려운 일을 겪은 아들에게 어머니는 어떤 마음이 드는지 무산자라는 시를 통해 읽어본다.
자식이 죽어 물에 떠내려갔는데
시신도 못 찾고 그런 사람은
목을 끊어서 죽고 잡지 어찌 살고 싶겠냐?
너는 어찌 내 속에서 나와
그 무서움 속에서도 무산자 되지 않았냐?
보기에도 아까운 아들아
어깰 쓰다듬고픈 아들아
새벽에 잠 깨 너 잠 깨어 있는 것 보면
나 또한 우뭉자뭉 잠결에도
꼭 네게 커피 한 잔 타주고 자려 하는구나. (詩 무산자 전문)
이렇듯 어머니는 자식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용환 시인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도 남다를 것 같다. 용환 시인은 어쩌면 어머니의 삶과 자신의 삶이 일체가 되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눈으로 본 바깥세상과 어머니의 가슴으로 느낀 일상이 그의 시에는 절실하게 녹아있고 어머니의 말씀 하나 하나가 시로 승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를 먹여 살리는 건 늘 어머니다
언제까지 어머니의 그늘에서 지낼 것인지 팔순을 훌쩍 넘기셨어도 어머니는 옛날사람들처럼 허리가 아주 굽진 않으셨다.
눈을 뜨면 아파트 마당에서 젊은 여자들과 이야기꽃을 피우고 노인정에 들러선 다 친구 같은 늙은 남자, 여자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얻어들은 살림정보 같은 것을 물고 들어오시는 품은 꼭,
집안에 가만 엎드린 이 아들놈은 새의 새끼 같고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물고 들어오는 어머닌 어미 새 아닌가?
짹 짹 짹 짹 창밖의 새소리는 그렇다 한다.
일층 베란다 너머 바람에 흔들거리는 칠월의 나무가 내 말에 그렇다 웃어준다
육쪽마늘 좋은 게 나왔다고, 어머니 지나다니시는 길목 어딘가 도시(都市)의 자그만 장(場)이 섰을까? 시골에서 올라온 트럭장수를 만난 것일까? 마늘장아찌 뽀얗게 담그면 맛있다고 누가 자랑한 것일까?
어머니 내 지갑에서 삼만 원 꺼내 가신다. (詩 육쪽마늘 한 접 전문)
위의 시에서 느끼듯이 용환 시인에게 있어 시란 바로 어머니다. 그리고 어머니를 통해서 함께 살아가는 힘과 용기를 얻고 있다.
오늘과 다른 내일
껍데기는 가라는 말이 절실한 밤이 되었네.
나는 껍데기 사상(思想)을 이고서 종종걸음 치다
제풀에 지쳐 하던 짓을 멈추었네.
사람들이 내 허영을 비웃었네.
참 이상스런 사람 다 보겠네-
사람들이 들리지 않는 소리로 그리 말하는 것을
밤이 돼서야 깨달았네.
내가 그리 말하고 내가 들었네.
곳곳에 내건 혁명(革命)의 깃발을
밤이 오자 슬그머니 거둬들였네.
내게 친근한 것들 속에서 평화로이 살아야지.
아, 이젠 집으로 돌아가야지.
고향의 품에서 이제 쉬어야지.
다시는,
저 이질(異質)의 세계로 나가 정치(政治)하지 말아야지.
종종걸음을 치다가 깨달았네.
귓등으로 흘려들었던 어머니 말씀이나 귀담아 들어야겠네.
껍데기 혁명의 깃발을 내리겠네. (이용환의 詩 오늘과 다른 내일 전문)
용환 시인의 시는 크게 두 줄기의 갈래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어머니의 회상하는 말씀이나 일상생활에서 어머니의 눈과 가슴으로 보고 느낀 것을 시로 형상화하는 것이 한 줄기이고 자신의 처지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여러 가지의 느낌과 철학적인 사유를 시에 담고 있는 것이 또 하나의 줄기이다.
위의 시는 후자에 해당하는 시중의 하나이다.
껍데기는 가라는 말이 절실한 밤이 되었네.
나는 껍데기 사상(思想)을 이고서 종종걸음 치다
제풀에 지쳐 하던 짓을 멈추었네.
이 시의 서두에서 용환 시인은 자신이 일으켜 세운 문학 사업이나 더 나아가서 문화적인 사업에 대해 어떤 목적과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뭔가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려 했었다는 사실을 털어놓고 있다. 어떤 목적과 분명한 의도라는 것이 시산문 카페의 매니저이자 계간웹북의 발행인으로서 갖는 책임과 사명의식일 수도 있겠다.
용환 시인은 문학과 관련된 사업을 벌이면서 문학적 풍토의 개혁과 순수문학의 저변확대라는 이상을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날 모든 이들이 잠든 고요한 밤중에 자신이 이제껏 목표했던 모든 것들이 ‘껍데기 사상을 이고서 종종걸음 친’ 것이 아닌지 되묻고 있다.
사람들이 내 허영을 비웃었네.
참 이상스런 사람 다 보겠네-
사람들이 들리지 않는 소리로 그리 말하는 것을
밤이 돼서야 깨달았네.
내가 그리 말하고 내가 들었네.
곳곳에 내건 혁명(革命)의 깃발을
밤이 오자 슬그머니 거둬들였네.
경제적 이익과는 무관한 문학 사업을 오직 순수한 열정으로 이끌어오면서 현재 계간웹북을 일정한 수준에 오른 문학지로 궤도에 올려놓은 영예를 용환 시인은 스스로 ‘허영’이고 ‘이상스런 사람’으로 정의해 버린다. 그리고 아무도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못하는 이 사업의 구조적 결함을 인정하고 슬그머니 ‘혁명의 깃발’을 거둔다.
내게 친근한 것들 속에서 평화로이 살아야지.
아, 이젠 집으로 돌아가야지.
고향의 품에서 이제 쉬어야지.
다시는,
저 이질(異質)의 세계로 나가 정치(政治)하지 말아야지.
종종걸음을 치다가 깨달았네.
귓등으로 흘려들었던 어머니 말씀이나 귀담아 들어야겠네.
껍데기 혁명의 깃발을 내리겠네.
그리고 혼자의 힘으로 무언가를 이룬다는 것의 한계를 통감하면서 다시는 ‘이질적인 세계로 나가 정치’하는 수고와 고민을 접을 것이고 그저 ‘친근한 것들 속에서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고 있다. 문학의 저변확대라는 혁명적인사업을 목표로 한 계간웹북 발행을 홀로 이끌어 온 자신의 무모했던 지난 처지를 회고하고 외로웠던 마음을 토로한 시로 보인다.
하지만 계간웹북은 용환 시인의 희생과 헌신을 반석으로 삼아 그 위에 시산작가회나 계간웹북이사회를 건설했다. 이제는 혼자만이 아닌 체제로 사업이 진행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항심(恒心)
뭐든 좋아서 하는 일은
기복이 없다는 오늘 아침 깨달음이다.
늘 느끼는 것은 사람들의 기복(起伏)이라
지난 수년간 변함없는 마음을 지닌 이들은
무엇인가 늘 즐거이 하던 사람들이고
나도 지금까지는 그 중 하나였다.
그래서 나는 순전히 이름 없는 사람이지만,
내게 온 이 순간들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누가 뭐라던,
삶에서 '유희적인 태도'를 잃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불가항력으로 찾아오는
인생의 행불행이 있기에 나도 어느 순간
심연으로 가라앉아 버리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이 와도 그저 그러려니 하고
누구나 한 번쯤은 아주 사라져야 할 때가 온다고
생각한다. (이용환의 詩 항심의 전문)
용환 시인은 위의 시를 통해서 혁명의 깃발을 아주 내린 것이 아님을 역설했다. 문학 사업이 외롭고 지난한 노정이긴 하지만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누가 뭐라던 삶에서 유희적인 태도를 잃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면서 평정심을 되찾고 있다.
그러나 불가항력으로 찾아오는
인생의 행불행이 있기에 나도 어느 순간
심연으로 가라앉아 버리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이 와도 그저 그러려니 하고
누구나 한 번쯤은 아주 사라져야 할 때가 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불가항력으로 닥치게 될 수도 있는 계간지발행사업 중단이나 시산문카페 매니저로서의 자신의 역할이 아주 사라지게 되는 날이 오게 될 수도 있다고 예측하면서 ‘그런 날이 와도 그저 그러려니 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이란 것이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기 마련이고 그런 의미에서 용환 시인이 지금 맡고 있는 사업이나 역할도 영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날이 올 때 오더라도 오늘 맡겨진 역할에 책임을 다하고 ‘삶에서 유희적인 태도’를 잃지 않고 기복 없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업을 이루어 내리라고 당당히 선언하고 있다.
이렇듯 용환 시인은 자신에게 찾아온 운명과 시련을 잘 참고 극복해냈다. 그럴 수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뇌의 시간들이 있었을지 당해보지 않은 나는 모른다. 그는 부자연스러운 몸 대신에 이 세상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어머니를 얻었다. 낙천적이고 쾌활한 어머니의 발길을 따라 그는 평탄해 보이는 세상을 울퉁불퉁 거칠고 신나게 여행하고 있다.
또한 불편한 몸으로 시산문카페의 매니저이고 계간웹북의 발행인으로서의 사명을 묵묵하게 완수하고 있다. 그 어떤 튼튼하고 완벽한 육체를 지닌 사람이라도 그의 헌신과 사명의식을 따라갈 수는 없을 것이다.
용환 시인의 항심과 건투를 빈다. 그리고 그의 곁에 수많은 내조자들이 함께하고 있음을 잊지 말기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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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축하드립니다. 두고두고 한줄 한 줄 읽어 가겠습니다. 저희 문학회 진정 아껴주시고 후원해 주시어 눈물겹도록 행복합니다.
2011년 3집 발간성공을 기원합니다, 회장님
글을 차분하게 읽어내려가다보니 댓글 까지 내려왔습니다
글을 읽고 올 가을이 살찐 꼴처럼 더욱 더 풍성하게 느껴지니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부끄럽지만 나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올려두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