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용가
東京 明期 月良 서울 밝은 달에
夜入伊 游行加可 밤 깊도록 놀다가
入良沙 寢矣 見昆 들어와 자리를 보니
脚烏伊 四是良羅 다리가 넷이로구나.
二?隱 吾下於叱古 둘은 내해거니와
二?隱 誰支下焉古 둘은 뉘 것인고?
本矣 吾下是如馬於隱 본디 내 것이었지만
奪叱良乙 何如爲理古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
나오는 사람들
처용 : 용의 아들. 가무가 신묘하여 급간이라는 벼슬에 오름
가야 : 처용을 사모하는 해변가 처녀
어머니 : 가야의 어머니
역신 : 가야를 탐내는 반인반수의 심술꾸러기
헌강대왕 : 예술을 사랑하는 임금
용 : 하늘에 뜻을 받들어 바다의 조화를 다스리는 짐승
시중
어부 : 백발노인
궁녀들, 호위병들. 산수의 정들 다수
때 신라 제49대 헌강대왕 5년 (서기 879년) 늦은 봄
곳 개운포(지금의 울산) 와 서라벌(지금의 경주)
장면별
제1막-개운포라고 불리우는 해변. 늦은 봄. 저녁 나절
제2막-해변. 절벽 위에 앉은 가야의 집. 같은 날. 제1막의 직후
제3막-제1막과 같은 무대. 전막의 직후
제4막-서라벌 반월섬 안에 있는 한 별당 같은날 밤
[막] 1막
·나오는 사람들 : 가야. 그의 어머니. 처용. 역신. 산수의 정
·때 : 헌강왕 5년. 늦은 봄 저녁 나절
·곳 : 개운포라고 불리우는 동해에 면한 백사에 청송 출렁거리는 파도에 씻기는 바위
막이 오르면 산수의 정들 백사장에서 원을 그리며 춤추고 노래한다. 반인반수의 역신. 바위 위에서 드르릉 코를 골고 낮잠을 자고 있다. 가야의 어머니, 가야를 부르며 나타난다.
[어머니] 가야야! 가야야! 이른 아침에 집을 나간년이 왜 여태 안 돌아올까? 가야야! (하고 부르다가 문득 코고는 역신을 발견하고) 이게 누굴까? 이크! 역신이로구나! 여보게, 여보게, 역신이!
[역신] (귀찮아서) 이거 어떤 빌어먹을 것이 낮잠도 못 자게 귀찮게 굴어?
[어머니] 가야의 어머닐세.
[역신] (눈을 비비며 상대편을 쳐다보더니 별안간 반가와서) 오오, 아주머니, 웬일이오?
[어머니] 가야가 식전 첫새벽에 김 캐러 나갔는데 어디서 멀 하는지 여태 집에 안 돌아온다네.
[역신] 이 옷을 봐유. (소나무 가지에 걸린 남녀의 옷을 가리키며) 고것이 또 처용이란 놈하고 물속에서 시시덕거리고 노는 게 아뉴?
[어머니] (발끈해지며) 그 집도 절도 없는 놈하고?
[역신] 반한 눈에 뭔들 바로 봬?
[어머니] 이런 소갈머리 없는 계집애를 어떻게 하면 좋아? 나는 이쪽을 찾을테니 자네는 저쪽을 좀-
[역신] 예.
역신 급히 퇴장. 어머니는 나가려다 말고 주춤 선다. 처용의 노랫소리가 바다 쪽에서 들려 온 것이다.
[처용] (노랫소리만)
봄바람 불어 아지랭이 피고
바닷물 출렁 산호가 붉네.
도미야 문어야 오징어 생복---
물밑에 바위틈 어둡지 않냐?
[어머니] 으음, 틀림없는 처용의 노래다.
[가야] (역시 노랫소리만 들린다)
갈매기 훨훨 돛대가 감실
나비가 툭 쳐서 꽃봉오리 방실
바람아 구름아 뇌성벽력
망망한 저 하늘 허전치 않냐?
이 때, 처용와 가야. 손에 손을 잡고 물 속에서 뛰어나온다. 둘이 다 나체다.
[어머니] (창피해서 눈을 가리며) 아이고 저 계집애. 망측스럽게 사내 녀석하고 같이.
[처용] (뛰놀며 소리 맞춰 노래 부른다)
[가야] 물밑의 조약돌 하늘의 실바람
오색의 찬란한 무지개 다리
비단결 곱구나 온 누리 아롱
봄이야 봄이로세 뛰어서 노세
[어머니] (참지 못해 소리지른다) 요년--- 가야야!
[가야] 에그, 어떻게 해? 어머니가 나왔네! (창피한 듯 처용의 등뒤에 벌거숭이 몸을 감춘다)
[처용] (반가운 듯 손을 번쩍 들며) 아주머니!
[어머니] 이놈아! 누가 네놈한테서 아주머니란 소리 듣자더냐? 이년아, 너 지금 뭣하는 거냐?
[가야] 김 뜯는 거예요.
[어머니] 머슴애하고 벌거벗고 멱을 감는 게 김을 뜯는거냐?
[처용] 어느 바위에 김이 많이 자랐는지 헤엄쳐 다니며 찾아보는 거지요.
[가야] 엄마, 정말 그래
[어머니] 여기까지 오는 데도 바닷가 바위 틈에 김이 새까맣게 불었더라. 그걸 다 뜯어도 몇 년 몇 해가 걸릴는지 모를텐데. 그것 다 내버려두고? 그래, 벌거벗고 멱을 감으면 김이 바람에 밀려 둥둥 떠들어 온다든? 냉큼 옷 찾아 입지 못하겠느냐? (가야, 소나무 가지의 옷을 찾아서 몸의 치부를 가린다)
[처용] 아주머니, 오늘은 날씨가 맑아 바다가 사뭇 거울이요. 둘이서 함께 놀게 좀 내버려 두세요. 예?
[어머니] 이 자식아, 징그럽다! 가까이 오지 마라! (처용을 피해서 돌아서며) 옷 찾아 입어 냉큼! 내 말 안 들으면 동네에 발도 못 붙이게 할 테다.
[처용] 에이 참.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할 수 없이 시키는대로 한다)
[어머니] 이 계집애야, 네게 똑똑히 일러두지만 네년이 저런 녀석하고 아무리 죽자 살자 해도 소용없다. 저런 떠돌아다니는 것한텐 절대로 시집 안 보낼 테니깐.
[처용] (옷을 입다 말고) 아주머니, 무슨 그런 말씀을-
[어머니] 이놈아! 징그럽다니까!
[처용] (서둘러 옷을 입으며) 예, 예. 다 입었어요.
[어머니] 옷을 다 입었거든 저 멀리 사라져라. 가야하고 놀지 말고. (말을 듣지 않고 서 있는 처용에게 던지려고 돌을 줍는다) 냉큼!
[가야] 에그, 엄마- (어머니의 손에서 돌을 빼앗으려 든다)
[어머니] 이년아! 네년이 무슨 역성이냐? (딸을 때리려 한다)
[처용] 어이구 아주머니 가야를 때리지 마세요. 전 이렇게 멀리 내뺍니다. 이렇게요. 제발 가야 손대지 마세요. (달음박질하며) 가야야, 또 봐!
처용, 뛰어나간다. 가야는 어머니의 눈을 피해 처용에게 손을 젓는다.
[어머니] 에끼, 주책없는 계집애! 어디 사내 동무가 없? 집도 절도 없는 저까짓 물강아지 녀석하고 놀아? 김도 하나도 뜯지 않고- (빈 바구니를 들며) 집으로 가자 냉큼!
[가야] 엄마, 처용이도 갔으니까 나 혼자 부지런히 김 뜯어 순식간에 한 바구니 채워 가지고 집에 갈께. 엄마는 집에 일도 있으니 먼저 자.
[어머니] 네가 일하는 걸 봐야 자리를 뜨겠다.
[가야] 그럼 시작하지. 자 봐! (노래 부르며 김을 뜯는다)
[어머니] (일하는 딸을 한참 바라보더니) 그렇게 한눈 팔지 말고 일해야 한다.
어머니 사라진다
[가야] (처용이 나간 쪽을 바라보며) 우리 어머니 극성에 처용이가 아주 사라져 버린 게 아냐. 어떻게 해? 소리를 치다간 엄마한테 들릴 거구-. (소리를 죽여서) 처용아! 처용아!
이때, 역신 등장
[역신] (화가 나서) 얘, 가야야!
[가야] (무서워서) 에그.
[역신] 너 누굴 부르는 거냐?
[가야] (모른 척하고 김을 다시 뜯기 시작)
[역신] 너 이것 먹어 봐라. 맛이 좋더라. (바위틈에서 열매가 달린 나뭇가지를 꺽어 준다)
[가야] ---
[역신] 내가 주는 거니까 받아라.
[가야] (피해 간다)
[역신] (웃으며) 내가 못 붙들 줄 알구 (하고 붙든다)
[가야] 와!
[역신] 받아 먹을 테냐? 안 받아 먹을 테냐? 안 받아 먹으면 바다에 처넣어 버릴 테다.
[가야] (바위 위로 피하다가 바다에 떨어질 듯해서) 에그머니- (하고 소리친다)
[역신] 너 처용의 어디가 좋아서 나한테는 쌀쌀하게 구냐? 그 녀석이 소리를 잘해서?
[가야] ---
[역신] 그럼, 춤을 잘 추어서?
[가야] ---
[역신] 내 힘이 얼마나 세다구 네가 이러냐? 엉?! (껴안으려 한다)
[가야] (무서워) 에그, 저게 뭘까? 저기에-
[역신] 딴전 피우지 마라
[가야] 두 팔을 휙 벌리고 아주 멋드러지게-
[역신] 저것은 갈매기 아니냐?
[가야] 아니, 저것 말야.
[역신] 저것은 나비고
[가야] 아니!
[역신] (탐스러워서) 엥이 이 계집애! (덥석 안는다)
[가야] 아, 싫어! 싫어! (기를 쓰고 떠다민다)
[역신] (팔을 붙들며) 헤헤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계집애가 나를 싫어한다고 물러설 작자는 아니지
[가야] 아! 사람 살려!
이때, 늙은 어부, 투망을 메고 등장. 고기 잡으려 나가는 길이다.
[어부] (가야에게 덤비는 역신을 보고 깜짝 놀라) 이게 무슨 짓이냐? 억센 손으로! (두 팔을 벌려 귀신 쫓는 시늉을 하며) 헛! 쓰자! 헛! 쓰자!
[역신] 헤헤헤- 작은개 할아버지, 괜히 왜 이래? 내가 귀신인 줄 알아?
[어부] 이놈아, 왜 사람에게 범정을 하냐?
[역신] 나는 사람 아닌 줄 아세요?
[가야] (어부의 등뒤로 숨어서) 할아버지, 제발 그것을 좀 쫓아 버려 주세요.
[역신] 쫓기 전에 내 발로 물러가겠다. 하지만 요 계집애야 정신 차려라. 내가 너를 가만 두지는 않을 테니까.
역신 퇴장
[가야] 작은개 할아버지, 가슴이 두근거려 죽겠어요. 역신이란 자는 사람이라지만 아주 ??? ??이야. 제발 여기 같이 계세요. 옆에서 고기를 잡으세요.
[어부] 여긴 고기가 나는 데는 아니다.
[가야] 할아버지 댁에 살고 있는 처용이가 저리 갔어요. 불러서 도와 달라면 되지 않아요?[어부] 헹, 너희들 만나서 또 놀기만 하려고?
[가야] 아이, 참! (물 속을 가리키며) 할아버지의 눈엔 고기가 안 보여요?
[어부] (가야가 가리키는 물 속을 들여다보더니 눈이 둥그래지며) 아이고, 정말 꽉 찼구나! (서둘며) 여, 처용아! 어디 있느냐?
[가야] (먼 바다를 향해서) 처용아! (하고 소리친다)
[어부] (부른다) 처용아!
[가야] 가만히 부르세요. 역신이 듣겠어요.
[어부] (소리를 죽여서) 처용아! 용아-
[가야,어부] (소리를 죽여서 같이) 용아-
[처용] (멀리서 소리만) 오오-
[어부] 인제 알아 들었구나
[가야] 이리 와! (손을 젓는다)
[처용] (역시 소리만) 오오-
[가야] 빨리- 빨리-
[처용] (노랫소리 들린다)
[어부] 하하하--- 저 녀석 신이 났구나.
처용, 뛰어 들어온다
[가야] 너 왔구나 (처용의 품에 싸여 든다) 오호호호-
[처용] 정말 갔냐. 너의 어머니?
[가야] 방금 큰일날 뻔했다.
[처용] 뭐가?
[가야] 저어- (말을 꺼내려다가) 그만 둘테야
[처용] 왜? 얘기해 봐
[가야] 인젠 아무렇지도 않아. 네가 왔으니까. 너하고 같이 있으면 정말 나는 무섭지 않아. 넌 힘은 모자라도 그 대신 날쌔니까.
[처용] 무슨 소린지 못 알아 듣겠는데.
[어부] 처용아, 이리 와! 저 고기 떼 봐라. 넌 힘이 나보다 좋으니까 네가 이 그물을 던져라.
[처용] 예, 그 그물 이리 주세요. (투망을 받아 던지려다가) 고기가 다 내뺐어요. 없어요.
[어부] (물 속을 들여다보고는) 에이 참! 다른데로 가자.
[처용] 어디로요?
[어부] 저 큰바위 쪽으로- (하며 나가려 한다)
[가야] 할아버지, 해가 다 저물었는데 나는 아직도 이것밖에- (하며 빈 바구니를 보이며) 처용이는 나를 좀 도와줘야 해.
[어부] 그러면 조금만 도와 주고 곧 오너라. 나한테로-
[처용] 예.
[가야] 고마워요. 할아버지
[처용] (어부 퇴장하자 가야를 데리고 김을 뜯으며
노래를 부른다) 에헤야 데야 데헤야 에야! 떡닢 같은 김을 뜯자. 물밑을 더듬어 김을 뜯자[가야] (노래) 에헤야 데야 데헤야 에야!
[처용] (노래) 순식간에 바구니가 넘실 긁어라. 모아라. 긁어서 담아라
[가야,처용] (노래) 에헤야 데야 데헤야 에야!
저 건너 갈미봉 네 묻어 온다
에헤야 데야 데헤야 에야!
[가야] (처용이 긁어 주는 김을 바구니에 받아 담더니) 아이고 벌써 이처럼이나 캤네!
[처용] (가야를 안고 춤을 추며 계속 노래)
이게 모두 누구의 덕?
하늘의 덕인가?
용왕의 덕인가?
아니야, 아니로세.
이게 모두 가야의 덕!
높은 암석에 역신 나타나 이 광경을 한참 바라보고 섰다가- 「저런 육실할 것들!」하며 샘이 나서 바위틈에 선 소나무를 뿌리째로 뽑아 휙휙 돌리더니 두 사람을
향해 던진다. 풍덩하며 두 사람 앞에 떨어진다. 물이 풍간다.
[처용] (놀라서) 아이, 이게 뭐야?
[가야] 오오, 저기 역신이가! (하고 역신을 가리킨다)
[역신] (씨근거리며) 이놈아! 이리 냉큼 올라오지 못하겠냐?
[처용] 왜?
[역신] 왜고 뭐고 오라거든 와!
[처용] 무슨 일인지 말만 해.
[역신] 너의 집 주인이 저기서 네놈을 기다리고 있더라.
[처용] 정말??
[역신] 그래!!
[처용] 그러면 가 봐야겠군. 가야야, 잠깐 다녀 올께.
처용 퇴장
[가야] (소리친다) 처용아, 나도 같이 갈 테야
[역신] 넌 안 된다
[가야] 아이 무서워!
가야, 도망하다시피 처용의 뒤를 따라 퇴장
[역신] (혼잣말로) 성미대로 하자면 저놈을 단박에 죽여 버렸으면 좋으련만- 하지만, 그래서는 안돼. 처용이 놈이 내 손에 죽은 줄을 가야가 알면 날 원수로 여길 테니까. 그러면 가야는 내게서 영영 멀어져 갈 거구- (잠깐 생각하다가) 옳지! 저 바위를- (뛰어가서 큰 바위를 냉큼 들어 밟으면 딩굴게 해 놓고) 이렇게 해 두면 멋도 모르고 올라가다가 봉변을 당하지. 에헤헤- 그렇게 되면 저 계집애는 갈데 없이 내 것이 되거든.
(처용과 가야의 웃음 소리. 이때 들려온다) 아이구, 저것들이 되돌아오나보다. (바라보며) 헹, 멋도 모르고 우쭐거리는 저 꼴! 이놈아, 실컷 좋아해라. 네 목숨은 곧 끝장을 볼 테니까.
처용과 가야 등장
[처용] (역신에게) 아무리 찾아도 작은개 할아버지는 안 뵈던데.
[역신] 네 놈이 고 계집애한테 미쳐서 내가 일러 줬는데 냉큼 안 가 봤으니까 그렇지. 금방 저쪽에서 소리를 쳤다. 네 놈을 잡으면
저쪽으로 보내라고.
[처용] (이상한 듯이) 저쪽으로?
[역신] (역정이 나서) 그래!
[처용] 아까 저쪽으로 가신 할아버지가 어느새 반대 방향으로 갔을까?
[역신] (대들어 싸울 듯이) 이놈아 그러면 내가 네 놈한테 거짓말을 했단 말이냐? 뼈다귀를 갈아 먹어도 시원치 않을 놈!
[처용] 아니, 네가 거짓말을 했다는 게 아니라 이상해서 그래.
[역신] 그러니까 네놈이 나를 거짓말장이로 여기는 게 아니냐?
[가야] 용아, 가지 마.
[처용] 작은개 할아버지가 부르신다는 데 안 가? 밤새 그물질을 할테니까 밤샘할 셈치고 옷입고 오래.
[가야] 그러면 나도 같이 갈래. 혼잔 ?? ???
[역신] (소리를 버럭 지르며) 가야는 ? 못 따라가
[가야] ??? ? ??
[처용] 음, (역신? ???? ? ?위로 올라가려 한다)
[역신] (좋아서 혼잣말로) 옳지 됐다! 인젠 끝장이 난다.
[처용] (바위 위에서) 가야야 이게 웬일이야? 이 큰바위가 논다.
[가야] 위태로워. 얼른 내리 뛰어! 얼른!
[처용] 에그그, 어떻게 해?
[역신] (처용의 허둥대는 꼴을 바라보고 통쾌히 웃으며) 네 놈은 인제 갈 데 없이 천벌을 받는다. 얼씨고 좋다 (우쭐우쭐 춤을 춘다)
[가야] (바위 밑으로 달려가) 저쪽으로 뛰어요. 저쪽으로 얼른. 처용아!
[역신] 가야야. 안 된다. 거긴 가지 마.
바위, 벽력같은 소리를 내며 허공 중천으로 딩굴어 떨어진다. 처용은 그 바위에서 다른 바위로 사뿐 옮겨 탔다. 그러나 가야가 보이지 않는다.
[??] 가야야! 가야야! 아이구! 큰일났구나. 우리 가야가 없어졌다. 바위에 깔려 죽은 게 아냐? 가야를 찾아라. 가야야? ??? ??? 가야를--- (허둥댄다)
먼 하늘에 우룃소리. 바위틈에서 처용, 가야를 안고 나온다.
[역신] 가야를 찾았구나. 어떻게 되었니? 죽었니? 살았니?
[처용] (가야를 앉고 백사장에 꿇어 앉는다)
[역신] 살아야 할 가야는 늘어지고, 없어져야 할 저놈이 살다니-
가야 어머니 등장
[어머니] 가야야. 이게 어찌된 일이냐?
[역신] (같이 들여다보며) 가야야-
[어머니] 이 일을 어떻게 해? (처용의 등판을 떠밀어 내며) 이놈아, 우리 가야를 괴롭히지 말라고 말려도 추근추근히 따라 다니더니 그예 이런 변을 당하게 했지? (역신에게) 여보게. 저 녀석 내 눈에 안 뵈게 해 주게
[역신] (선뜻) 예! (하고는 처용에게) 이놈아 가야 이리 주고 가거라. (가야를 빼앗으려 ??)
[가야] (겨우) --- 어, 어머니
[역신] 가야야!
[어머니] 가야야 정신을 돌려는구나. ??? ??
[역신] 살았다. 가야가 살았다
[어머니] 역신아, 가야를 빼앗아라. (역신 「예」하며 가야를 빼앗아 안는다) 제발 앞으로는 처용이하고 가까이 하지 마라. 가야야
[가야] (괴로운 듯이) 아아-
[어머니] 이 아이가 또 다시 숨을 모우는게 아냐?
[처용] (놀라서) 뭐요? (하며 가야에게 달려간다)
[역신] (처용을 떠다밀며) 이 자식! 가까이 오지 말라니까.
[가야] 아- (숨이 꿀꺽 넘어간다)
[어머니] 에그머니! 가야가 또다시 숨이 넘어가는게 아냐? 가야야! 가야야- (흔든다)
[역신] (당황하며) 산신님 용왕님 가야를 살려 주십시요.
[어머니] 가야야-
[역신] 어떻게 해요. 아주머니, 또 죽었어요. 가야가-
[처용] 에이 못난 것! 저리 비켜! (역신에게서 가야를 빼앗아 백사장에 눕히고 「봄바람 불어 아지랑이 ??」의 노래를 부른다)
? 무대 ?? ?아오며 가야, ?? ?? ?? ????
[어머니] 가야가 되살아나나보다
[역신] 뭐요?
[어머니] (처용에게) 네 소리가 약인가보다 더 불러라.
[처용] (가야를 내려다보고 열심히 노래를 계속한다)
[가야] (번쩍 눈을 뜨며 처용을 한참 쳐다보더니) 처용아-
[어머니] (좋아서 춤추다시피) 옳다! 우리 가야가 다시 살아났다!
[처용] 가야야, 다친 데는 없다 정말 하늘의 덕이다. 그 무너지는 바위틈에 끼었어도 이렇게 깨끗하다니---
[가야] 아아, 목이 말라!
[처용] 산에서 칡물을 내다 주랴?
[가야] 제발-
[처용] 아주머니, 가야 옆에서 떠나지 마세요.
[가야] (불안한듯) 나를 두고 네가 갈 테야?
[처용] 내가 가야 좋은 칡을 캐지.
[가야] 나도 따라 갈래.
[처용] 괜찮겠어?
[가야] (처용에게 의지하며 일어서며) 벼락치는 소리에 잠깐 까물어쳤을 뿐이야
[역신] 가만 있자. 칡물은 내가 가서 짜 오마.
[가야] (역신에게) 역신이, 네가 캐 온 칡은 난 싫어.
[어머니] 그만두게, 자네는-
[역신] 예?
[어머니] 가야에게는 처용이가 약이야, 처용이라야 가야를 살릴 수 있어.
[역신] 아주머니까지 이러기요?! (급히 나가려 한다)
[어머니] (역신을 다시 붙들고 늘어지며) 안 돼! 네가 설치면 우리 가야는 또 숨이 넘어간다.
[역신] (벽력 같은 소리로) 그만두어!
노발대발한 역신, 쏜쌀같이 퇴장.
[어머니] 아니, 저놈이 또 무슨 봉변을 주려고 저렇게 내닫는 거 아냐? 얘, 이놈아 역신아! (하고 따른다)
-막-
[막] 2막
나오는 사람들 : 가야의 어머니. 역신. 가야. 처용. 어부
때 : 전막의 직후
곳 : 동해 바다로 향한 암석 위에 지은 가야의 집. 난간을 두른 마루. 마루에는 방으로 들어가는 장지. 집 뒤에는 풍우에 찌들은 앙상한 고목 한그루. 집 뒤에는 바다에 임한 높다란 기암.
막이 오르면 빈 무대 위로 날으는 갈매기 소리. 이윽고 화가 나서 시뻘개진 역신, 헐레벌떡거리며 등장
[역신] (들어오다가 사립문에 턱 버티고 서서 집안을 둘러 보며) 마침 내가 한 걸음 먼저 왔나부다. 이집 주인 예편네보다. 아무도 없는 틈에 이놈의 집 구석을 결딴을 내놓아야겠다. (뒤꼍으로 돌아간다)
가야의 어머니, 황급히 나타난다
[어머니] (마당에 들어서서 사방을 둘러보며) 마침 역신이 놈이 여기 안 들렸구나. 이 심술이 오기 전에 손을 써야 하겠는데
옳지! 이놈이 아예 범접을 못하게 금줄을 쳐 놓아야겠다. (새끼로 사립문에 금줄을 쳐 놓으며) 옛날부터 이 예방에는 제 아무리 극성스런 두억신도 얼씬 못했다니까. 이놈, 역신아, 범접을 하려거든 어디 해 보아라.
[역신] (뒤꼍에서 나타나며) 어험!
[어머니] (놀라) --- 에그, (하고 놀라는 동안에 금줄이 툭 끊어진다) 어머나!!
[역신] 헤헤헤--- 그 금줄 끊어지는 걸 봐. 검님도 나를 알아 보시지 않아? 이 세상엔 내 비위를 거슬리고도 온전한 인간은 여태 생겨 나지 않았다니깐. 지난 가을에 굴따러 나갔다가 물에 빠져 죽은 웃마을 색시. 그리고 몇달 전에 개에게 물려 죽은 저 뒷집 아낙네. 그 모두가 내게서 받은 벌이야
[어머니] 네놈이 나를 어쩌려는 거냐?
[역신] 아주머니는 물론, 가야에게도 나는 손을 하나 안 댑니다.
[어머니] 옳지, 은근히 곯리겠다는 수작이구나! 뒤꼍에 무슨 예방을 해 놓고 나왔지? 그렇지?
[역신] 헤헤헤-- 모르지요. 뭘 해 놨는지-
[어머니] (무서워서 떨며) 모, 몰라?
[역신] 하여튼 나는 내 것을 남에게 빼앗기고는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미니까. 아무리 그것이 하찮은 것이라도- 헌데, 가야는 진주알 같은 계집아이! 그런 보물을 빼앗기고 내가 가만 있을 성 싶어? 더구나 나는 그 보물을 내 품에서 안 놓치려고 아주머니에겐 갖은 정성을 다해 왔어.
[어머니] 그러니까 가야를 처용이에게서 아주 떼어 놓으란 말이지?
[역신] 물론이지
[어머니] 안 돼! 못 해!
[역신] 만일 그대로 두었다가는 처용이 놈은 더 말할 것 없고 마침내 가야까지도-
[어머니] (떨며) 뭐?
[역신] (광폭하게 사지를 찢어 죽이는 시늉을 해 보이며) 단박에 이렇게-
[어머니] (험상궂은 얼굴에 질려서) 저 얼굴-
[역신] 헤헤헤- 왜 이렇게 새파래지지? 아까 저 바닷가에서 내게 덤비던 때와는 영 딴판인걸
[어머니] (떨며) 아아- 이 일을 어째? 사, 사지가- 사지가-
[역신] (더 처참하게) 두고 봐. 인제는 손끝 발끝까지 다 오그라 붙을걸. 헤헤헤-
[어머니] 에이 흉악한! 내 앞에서 썩 물러가지 못하겠냐? (사지를 지탱 못해 앞으로 푹 쓰러진다)
역신, 무슨 큰 승리나 한 듯이 큰 소리로 웃으며 퇴장.
[어머니] (몸을 추스르려고 애쓰며) --- 아니다. 저 놈의 심술에 내가 지레 겁을 집어먹은 게다. 그래서 전신이 떨리는 게야. 저놈한테 내가 져서는 안돼. 내가 누구라고 저까짓 놈한테 져? 아니, 가야는 왜 여태 안 올까? 내가 이렇게 되었을 땐 우리 가야는 더 무서운 변을 당했을는지 몰라. (멀리서 노랫소리 들린다) 옳지! 가야다! 가야의 소리다.
가야, 노래를 흥얼거리며 경쾌히 뛰어 들어온다. 명랑한 새소리.
[가야] 엄마, 인제 아무렇지 않아. 처용이하고 둘이 산에 올라가서 칡을 캐 먹었더니 새 정신이 나.
[어머니] 가야야! (떨리는 손으로 더듬으며) 정말 너 괜찮으냐?
[가야] 어디가 아파, 엄마?
[엄마] (시치미를 떼며) 아프기는 어디가 아파? 여태 아무렇지도 않던 사람이 금방 아파질리 있니? 이리 오너라. 네 몸에 무슨 변괴는 없는지 이 에미가 좀 만져봐야겠다. (가야의 몸을 만진다. 이상이 없음을 발견하고) 됐다. 처용이는 어디 갔냐?
[가야] 나하고 같이 오다가 작은개 할아버지 집에 들르러 갔어
[어머니] 그 사람도 아무렇지 않냐?
[가야] 왜요?
[어머니] 글쎄
[가야] 곧 이리 올테니까 그때보면 알거 아냐?
[어머니] 그러니까 너희들은 역신이란 놈을 만나지 않았구나.
[가야] (그제서야 오그라붙은 모친의 다리를 보고) 아니, 어머니의 다리가 왜 이렇게?
[어머니] 얘야, 너 처용이와의 관계를 아주 끊어 버릴수는 없겠니?
[가야] (눈이 둥그래지며) 그 무슨?
[어머니] 역신이 놈이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은 내가 처용이 편을 들기 때문이란다. 그놈은 반드시 너희 둘에게도 무슨 화를 끼칠 게다. 부디 처용이와의 관계를 끊어라. 그래야 너는 산다.
[가야] 차라리 화를 당했으면 당했지. 절대로-
[어머니] 네가 고집을 피면 너도 너지만 처용이의 목숨이 위태로울 게다.
[가야] 처용이가?
[어머니] 아까 바닷가에서 그놈이 처용이를 죽이려고 바위를 뽑아 놓았었다더구나. 그것만 보아도 알쪼가 아니야? 너 때문에 네가 좋아하는 처용이를 죽여서 되겠니?
[가야] 처용이를 안 만나고 지낼 순 없어. 처용이는 작은개 할아버지가 갯가에서 얻어다 키운 미천한 아이긴 하지만 내겐 없어서는 안돼. 아까 내가 기절 했을 적에 처용이 품에서 내 숨이 돋아나는 걸 엄마도 보지 않았어?
[어머니] 내가 청상과부로 이 쓸쓸한 바닷가에서 너 크는 것을 낙으로 살아 왔다. 너를 죽이고는 난 살수가 없다. 잔소리 말고 처용이 몰래 여기서 없어지자. 자아, 떠날 차비를 차려라. 나도 짐을 챙기마. (방으로 들어간다. 가야, 마루에 쓰러져 운다)
처용, 조금전에 등장하였다가 이때 나타난다.
[처용] 가야야-
[가야] (깜짝 놀라 얼른 돌아서서 눈물을 씻는다)
[처용] 가야야, 우지 마라. 어머니하고 떠나거라. 나는 그 뒤를 몰래 따라갈께. 그래 어디고 역신의 손 안 닿는 데로 가면 되지. 자, 방에 들어가 어머니하고 같이 짐싸라. 나도 차비를 차리마.
이때, 역신 등장
[역신] (위협적으로) 에헴!
[어머니] 아이고! 인제 죽었나보다. (가야를 얼른 숨긴다)
[역신] 저 모녀를 모실 사람은 예 있다. 처용아, 너는 저리 비켜나라.
[가야] 안된다. 안돼!
[역신] 내 소리가 안 들리냐?! (하고 처용을 낚아내려 한다. 처용, 역신에게 반항한다. 그러나 역신은 처용을 짚단 들 듯이 휙 치켜들고 뒤꼍으로 간다. 높은 절벽에서 처용을 바다에 내던진다. 이것을 본 가야는 비명을 지른다. 가야 어머니는 딸을 안는다. 역신. 이윽고 뒤꼍에서 다시 나타난다) 아주머니, 보셨지요? 천야만야의 절벽밑으로 내던졌으니까 처용은 살아 올 리 없소. 갈 데 없는 고기밥이오.
[어머니] (딸을 안은 채) 가까이 오지 마라-
[역신] 댁의 따님은 인제 내 것인걸. 하늘이 그 아가씨를 내게 점지해 주시려고 처용이 놈을 불러 가신 거야. 자, 가야야, 인제 너를 괴롭힐 작자는 아무도 없다. 이리 와서 내게 안겨라. 냉큼 이리 안 올테냐? (가야를 어머니에게서 빼앗으려 한다)
[어머니] (딸을 꼭 껴안고 자지러지게) 으아, 사람살려유.
하늘에 우룃소리 들린다.
[역신] 아니, 마른하늘에 웬 천둥이- (하늘이 어두워진다) 별안간 안개가 끼는 게 아냐?
[처용] (멀리서 처량한 소리로) 가야야-
[가야] (간신히) 어머니, 저 소리.
[처용] (여전히 소리만) 가야야-
[가야] 저건 처용의-
[어머니] 정말 처용이가 너를 부르고 있다.
[역신] (당황하여 절벽에 올라, 그 밑을 굽어보고) 하하하--- 걱정 마라. 아무것도 없다. 시퍼런 물 뿐이다. 처용이 놈은 벌써 물고기 밥이 됐다. 가야야, 넌 내것이다. 가자, 내 집으로- (사립문을 활짝 열어 젖힌다. 가야와 그 어머니 꼼짝하지 않고 앉았다. 벽력같이) 내 소리가 안 들리냐?! (하며 모녀를 낚아챈다)
이때, 어부. 고기를 한 망태 잡아 가지고 돌아오다가 이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란다.
[어부] 이놈아! 또 무슨 수작이냐?
[역신] 이 늙은 게?
[어부] 이놈아! 태산 같은 고래도 잡아본 내 솜씨다. 자, 받아라! (하며 들고 있던 투망을 내던진다. 역신의 머리 위에 그물이 보기 좋게 둘러 씌어진다)
[역신] 으아! 이게 뭐냐? (그물에서 빠져 나오려고 기를 쓰며) 이 망할놈의 늙은 것! 이것 벗겨라! 벗기지 못하겠냐?
[어부] (가야 어머니더러) 얼른 내빼. 가야를 데리고- (가야 어머니, 딸을 데리고 행길 쪽으로 빠져 나간다)
[역신] (가야의 뒤를 따르다가 그물에 걸려 자빠지며) 어딜가? 아아- 안개 때문에 인젠 앞이 안 보인다. 아- 가야야, 가야야-
그물에 휘휘칭칭 몸이 감긴 채 역신, 소리치며 모녀의 뒤를 기를 쓰고 쫓아 나간다.
[어부] (걱정스럽게 따르며) 에그, 가야가 저 숭악한 놈에게 잡히고 말겠네!
-막-
[막] 3막
나오는 사람들 : 왕. 시중 궁녀들. 호위병들. 용. 처용. 역신. 어부. 가야. 그의 어머니.
곳 : 제1막과 같은 무대
때 : 전막의 직후. 해질 무렵. 그러나 안개가 잔뜩 끼어 밤과 같이 어둡고 서산에 걸린 태양은 시뻘겋고도 험상궂은 빛을 내고 있다.
막이 오르면 깜깜한 빈 무대. 이윽고 호위병들과 궁녀들에게 옹위된 왕의 수레. 백발노인인 시중의 인도로 나타난다.
[시중] (손으로 길을 더듬으며) 아아, 이제는 한 발자국도 옮겨 놓지 못하게 되었구나. (수레를 향하여) 상감마마, 여기서 머물러 잠깐 이 짙은 안개와 구름을 피하심이 어떠리이까? 앞을 막는 이 어둠에 뜻하지 아니한 번거로운 일이나 일어날까 저어하나이다.
[왕] (수레에서 내려 사방을 둘러보시며) 오오, 과연 지척을 분간할 수 없구나. (천공의 해를 가리키며) 서천에서 이상한 빛을 내고 있는 저 괴물은 무얼꼬? 화롯불도
저렇게 크고 둥글 수는 없을 터인데? -
[시중] 저것이 바로 햇님-
[왕] (의아하여) 햇님?
[시중] 하늘에 햇님조차 안개와 구름에 길이 막혀 중천에서 방황하고 있는가 하오.
[왕] 아아, 이 무삼 변고일꼬?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 억수 만년을 두고 한결같이 넘다들던 햇님을 저렇게 매달아 놓다니- 짐이 즉위한 이후 풍우가 사시에 고루 들어 우리 나라에는 불순한 날씨란 도시 없었던 것을-
[시중] 두꺼비가 자기를 길러 준 처자에게 은혜를 갚고자 짙은 안개를 피웠다는 옛이야기가 있삽는데, 혹-
[왕] 아니로고. 두꺼비는 육지의 짐승- 이 안개와 구름은 바로 저 바다에서 몰려오는 것을-
[시중] 그러면 혹 용왕님의 노하심이 아니올른지요? 용이란 하늘의 뜻을 받들어 바다를 다스리는 짐승이오니-
[왕] 오오, 정말 그럴는지도 모를 일이로고. 용왕이시여. 바람을 일으켜 철기를 바꾸고, 구름을 피워 그늘을 만들고, 비를 주시어 오곡을 영글게 하는 용왕이시여! 이 두꺼운 안개와
저 몰려드는 구름은 어이 된 일이오? 오오! 당신은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일체 조화를 다스리는 하늘의 권좌! 이 몸은 고작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만을 거느리는 지상의 임금! 용왕이시어! 이 왕에게 무슨 허물 있삽기 광명천지를 밤바다를 만드시오? (이에 응하듯 천둥소리 멀리서 들린다)
[호위병과궁녀들] (함께) 오오! 천둥이!
[왕] 저 천둥은 여느 뇌성과는 다르지?
[시중] 오오, 마마! 용왕께서 분명 무슨 노기를 띤듯하옵니다.
[왕] 용왕이시어! 부디 노기를 푸시어 이 왕에게 무슨 허물이 있는지 알려 주시오.
[일동] (큰소리로) 오오, 용왕이시어!! (하늘 저편의 천둥, 은근히 응한다)
[시중] 또 하늘이 울리나이다.
[왕] (열심히) 오오, 용왕이시어, 저 햇님의 길을 막고 계신 당신의 위대한 조화로써 제발 상궤를 벗어난 이 천후를 바로잡아 주소서.
[일동] (더욱 큰소리로) 오오, 용왕이시어-
더 큰, 천둥소리와 함께 멀리서 주악이 울리며 하늘 저편이 약간 트인다.
[왕] (더욱 열심히) 용왕이시어!! 용왕이시어!!!
(갑자기 강렬한 번개와 천둥이 천지를 뒤집는다)
[일동] (겁을 먹고 자지러지게) 으아!!!
무대,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어디선지 장엄한 주악 소리 다시 일며 무대 차츰 밝아지자 천상에 용, 춤추듯 긴 꼬리를 굽이친다. 용의 몸에서 비늘이 번쩍한다.
[왕] (황홀하여) 아아, 용왕이사다! 짐의 정성이 하늘에 다다라 용왕께서 몸소 내려오시었다. 자아, 주악을-
주악이 울린다. 궁녀들의 경건한 춤. 한동안.
[왕] 동해 바다를 다스리는 임금이여! 바다에서 몰려온 안개와 구름은 천지에 짙은 장막을 쳐서 지상의 인간은 물론이거니와, 저 천공에 햇님까지도 눈을 빼앗긴 소경인 양 그 갈 바를 잃고 있소. 내가 만일 적에게 포위되었다면 그 공격 아무리 격심타 하여도 그를 한 칼에 물리칠 수 있겠지만 당신께서 친히 다스리는 이 조화만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일! 나는 알고 싶소. 대체 이 지상에 무삼 허물이 있어 이렇게까지-
[용] (노기를 띠어) 민심은 천심! 한 백성의 원한이 이처럼!
[왕] 원한이란 당치 않소! 오늘 짐이 이 고을을 살펴온즉, 다른 신천지와 다를 바 없이 산엔 꽃구름! 들에는 피리 소리와 노랫소리!
용, 하늘에 울릴 듯한 날카로운 휘바람을 길게 불며 꼬리를 한번 친다. 난데없이 찢어지는 소리. 바람에 휘몰리듯 처용, 그림자같이 왕 앞에 떨어진다.
[왕] 가랑잎같이 굴러 떨어진 저것이 무엇이뇨?
[호위병갑] (자세히 뜯어보고) 상감마마, 저 작은개 고기잡이 할아범 집에 있는 처용이라는 더부살인 줄로 아뢰오.
[일동] 처용이?
[용] 내 새끼요! (일동, 놀란다) 내 일곱 마리 새끼중의 하나! 이 새끼를 대왕이 내쫓았소!! (뇌성벽력 크게 울린다)
[왕] (걱정스러워) 얘들아, 이거 도시 어찌 된 일이냐?
[처용] 마마, 가야란 처자가 어찌 되었삽는지?
[왕] 가야?
[처용] 가야란 이 고을에 사는 미천한 집 딸로서-
[왕] (신하들을 보고) 가야란 소저를 아는 자 있느냐? 있거든 나와 아뢰라! 빨리 아뢰라! (대답없다) 아는 자 없느냐?
[처용] 가야는 제가 상사하는 처자이온데 그 아름다운 용모를 역신이란 자가 탐내어 그를 해치려고 지금도 쫓고 있사옵니다. 그 무지한 역신의 앞을 못 보게 할 양으로 아버님 용왕으로 하여금 안개와 구름을 피워 줍시사고 간청을 하였사오나-
[왕] 그래서 안개와 구름이 이렇게?
[처용] 그러나 불행히 역신이에게 잡혔을는지 모르겠사와-
[왕] (초조한 듯) --- 역신이? 역신이?! 이 역적!! (분해서 부들부들 떤다)
[시중] 역신이란 심술꾸러기가 이 일판을 주름잡고 있다는 소식 들은 바 있사오나-
[왕] (호령) 당장에 군사를 풀어서 그 자를 잡아오렷다!
[시중] (엄숙하게) 예! (하고 호위병들에게 「얘들아!」소리치고 손짓한다. 호위병들은 일제히 「예」하고 우루루 퇴장)
[왕] 가엾은 자여, 떨지 말고 잠깐 기다려라. 이 자를 곧 잡아 처단할 터인즉- (용에게) 용왕이시여, 면목이 없소이다. 나의 나라가 지나치게 안이하고 문물이 너무나 난숙하여 마치 썩은 과일에 벌레가 끼이기 쉽듯
나라를 좀먹고 백성을 불편케 하는 자가 요즘 생겨나나 보오. (시중에게) 이 무삼 꼴인고? 태평성대에 이런 불량지도가 발호하다니- 그대들 이러고도 나라에 충성을 다하였다 하겠느뇨?
[시중] 역신이란 진실로 옥에 티인 줄로 아뢰오.
[일동] 황공하오이다.
이때, 여자의 비명 소리 들려온다
[왕] 저 여자의 비명은?
시중 이하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본다. 가야, 그녀의 어머니의 품에 안겨 쫓긴 듯 들어온다.[가야어머니] (들어오며) 임금님이 어디 계시오? 마마! 대왕마마! (찾는다) 이곳에 대왕마마께서 머무르고 계시다는데-
[왕] 그대 누군고?
[처용] (달려 가서) 가야! (하며 껴안는다)
[왕] 저 처자가 가야?
[가야어머니] 역두신보다 더 흉악한 자에게 저희들은 봉변을 당하고 있읍니다. 그 놈이 바로 저기에 쫓아옵니다.
그물을 둘러쓴 역신 몰아 닥친다.
[왕] 이놈!! 거기 서라!! 저자를 사로잡아라.
이 벽력같은 왕명에 호위병들 「예」하면서 벌떼같이 덤빈다. 저항하는 역신과 한바탕 격렬한 격투가 벌어진다. 마침내 역신, 호위병에게 결박당하고 만다. 역신, 그물에 싸여서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할 것이다. 호위병들, 「꼼짝 마라!!」엄포한다. 이때, 걱정스럽게 가야 모녀의 뒤를 쫓아 나타난 늙은 어부, 분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씨근벌떡거린다.
[왕] 저자를 단박에 하옥하라!
[시중] 그 흉악범을 하옥하랍신다. (호위병들 「예」대답하고 역신을 「가자」고 재촉한다. 역신, 「아, 분하다 분해!」하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나 마침내 끌려가 버리고 만다.)
[어부,어머니] 만세!
[처용] (가야를 꼭 껴안고) 대왕님, 고맙습니다. 용왕님, 인제 살았읍니다.
용, 말없이 무대 중앙으로 튀어나와 몸을 한 번 비튼다. 천상에서 신비스런 바람 소리 일더니 안개와 구름 서서히 걷힌다. 용왕, 사라진다.
[왕] (하늘을 우러러) 오오, 하늘이 트이는구나! 용왕님, 고맙소. 용왕님을 위하여 나는 이 곳에 웅장한 절을 짓고 그리고 오늘의 기적을 길이 후세에 알리기 위하여 이 곳을 이름지어 개운포라 하겠소.
산수의 정들, 바람같이 나타나, 이 기적을 찬양하여 합창한다. 처용은 산수의 정의 합창에 맞추어 신이 나게 춤을 추고 그리고 노래한다. 처용, 마침내 춤을 마치고 이전에 나붓이 엎드려 절한다.
[왕] (감격하여 좌우에게) 경들의 눈에도 처용의 춤이 보였으며 경들의 귀에도 그의 노래가 들렸느뇨?
[시중] 들리다뿐이리까?
[왕] 아아, 신묘한지고. 짐이 일찌기 포석정 놀이에서 즐긴 남산의 산신님의 노래보다도, 아니 동례전 잔치에서 본 터줏님의 춤보다도 훨씬 신묘하구나. (처용에게 손을 뻗치며) 짐에게 가까이 오라.
[처용] (어전에 나아간다)
[왕] 짐은 유시로부터 풍류를 즐기며 가끔 박을 잡기도 하였으므로 가락에는 생판 무식하지는 않노라.
[처용] 신은 오직 가야를 다시 찾게 된 기쁨을 이기지 못하와 감히 어전을 어지럽혔을 뿐인 줄로 아옵는데-
[왕] 대체 그대 어디서 그 춤과 노래를 배웠는고? 그대의 스승이 누군고?
[처용] 신은 미천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굼실거리는 파도, 부딪쳐 곤두서는 바다와 더불어 일하고 있삽는데, 스승이 무슨 스승이니까?
[왕] 굼실거리는 파도와 부딪쳐 곤두서는 바다와 더불어?
[처용] 예
[왕] (무릎을 치며) 오오, 그럴 것이어! 과연 그럴 것이어! 그런 대자연과 더불어 사귀어 거기서 터득하지 않고는 그대의 춤과 노래가 어찌 그대도록 멋지고, 그대도록 오묘할 수 있겠는가?
[처용] (어리둥절하여) 무슨 말씀이시온지-
[왕] 아니여, 그것뿐이 아니여. 그대 본시 용왕님의 점지하신 씨. 용의 신묘한 움직임이 그대 몸에 제물로 배어 들어 있으므로 그와 같은 가락이 생기는도다. 그대 짐을 따라 서라벌로 가지 않으련가? 거기에 가서 생엄에 쪼들리어 쉴새없이 땀흘리는 백성과 더불어 놀아보세. 짐 일찌기 남산의 산신님과 동례전에 지신님을 모시려 하였으나 그 분들의 노래와 춤은 짐에게만 느껴지는 신의 가락! 백성들에게는 도무지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았으므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노라. 연이나 그대의 춤과 노래는 짐을 비롯하여 이 좌우 신하가 다 같이 즐겼은즉 이런 보배로운 풍류가 또 어디 있겠는가? 반월성 달밤에 반백성과 더불어 그대의 춤과 노래를 즐김은 이 또한 일미일 것이다.
[처용] 만월성 달밤이 아무리 아름답다 하여도 자연 그대로의 이 동해 바다에 비길 수 없는 것인 줄 아뢰오.
[왕] 나의 부름에 응하지 못하겠단 말은 아니겠지?
[처용] 못하옵니다.
[왕] (날카롭게) 그 무슨 불충한 소리인고?
어명을 받들면 높은 벼슬까지 하사할 것인데-
[처용] 이런 미천한 인간에게 벼슬이 무슨 소용이리까?
[왕] (짐짓 화가 나서) 어이하여 짐의 분부를 거역하느뇨?
[처용] 성은이 망극하와 저희들을 괴롭힌 역신도 없어졌사온즉 신은 가야와 더불어 동해 바다에서 김이나 미역을 캐고 지냄이 행복스럽지 않을까 하옵니다.
[왕] 그러면 그 처자도 같이 데리고 가리고 하지. 너희들을 혼인시켜 백년해로할 아담한 처소까지 마련하여 줄 터인즉-
[처용] 가야, 네 생각은 어떠한지?
[가야] (말없이 고개만 숙인다)
[처용] 가야도 뜻이 없지는 아니한가 하오니 그러면 황공하옵신 어명을-
[왕] (감격하여) 기특한지고! 얘들아, 처용과 저 처자를 짐의 수레에 인도하라.
[시중] 얘, 얘들아! (호위병들 「예」하며 분부대로 한다)
[왕] (어부와 가야의 어머니에게로) 그대들은 수레 뒤에 따르라. 서라벌에 닿는 즉시로 처용과 가야의 혼인 잔치를
성대히 베풀 터인즉, 그 잔치에 참석해야 할 터이니까.
[가야어머니] (감격하여) 황공하옵니다.
주악 울린다. 왕의 수레 움직인다. 일동 퇴장
-막-
[막] 4막
나오는 사람들 : 가야. 궁녀들. 가야 어머니. 처용. 역신. 용들. 호위병들
곳 : 서라벌 별궁. 연꽃 봉오리를 본따 지은 부용루라는 별당 송림에 둘러싸인 연못에 꿈과 같이 동동 떴다. 연못은 지금이 한창이다.
때 : 전막과 같은 날. 밤중 달밤.
막이 오르면 반월성 장터에서 들리는 풍악소리와 놀이를 즐기는 백성들의 떠드는 소리. 환호성. 무대에는 송림사이로 한 쌍의 학이 소요하고 있을 뿐 아무도 없다. 이윽고 역신, 황급히 담을 뛰어넘어 들어온다. 무심히 노닐던 학들 놀라 소라쳐 끼륵끼륵 운다.
[역신] 나를 잡아 죽인다고? 누가 호락호락 죽어주어? 내가 그렇게 못난 놈은 아니야. 내게는 힘이 있어. 몇 백명 덤벼야 무섭지 않아! (그 소리에 학들 놀라 더 크게 소리쳐 운다) 저 놈의 학은 왜 저렇게 놀랄까? (소나무 그늘에 붙어 선다.
학의 울음 소리 그치며, 멀리서 들리는 풍악 소리와 환호성 다시 돋아난다. 가야를 찾아 별당 안이며 그 밖의 여기저기를 분주히 들여다본다. 안 보인다. 낙심한 듯) 이것들이 이따가 혼인을 한다는데 처용이 놈이 저렇게 풍류에 취해 있는 틈에 이 계집년을 감쪽같이 훔쳐 가야 한 텐데- 어디다 숨겨 놓았을까? (사람 오는 기척)
호위병들 칼을 빼 들고, 역신의 뒤를 쫓아 들어온다. 역신은 인기척을 듣고 반대편 쪽으로 피해 달아난다.
[호위병갑] (역신이 나가는 쪽을 가리키며) 저 솔밭사이로 사라지는 놈이 역신이 아니야?
[호위병을] 글쎄, 굳게 닫힌 반월성 성문과 겹겹이 쌓인 저 높은 담장! 여기에는 개미 새끼도 기어 들어오지 못할텐데-
[호위병갑] 아니야. 분명히 역신이야!
[호위병을] 그렇다! 틀림없다. 뒤를 밟아라-
호위병들, 역신의 나간 쪽으로 쫓아 나간다. 불안하여 우는 학들, 궁녀 갑 을, 가야를
조심스럽게 받들어 구름다리에서 나타난다. 가야는 활옷을 입었다.
[두궁녀] 신랑되실 분이 놀이터에서 놀이를 마치고 돌아오시면 곧 혼인 예식을 올리게 됩니다. 그 때까지 여기서 쉬세요. 여기가 바로 결혼 후에 두분이 기거하실 별당이예요.
[가야] (둘러보며) 아이구, 너무 한적해요.
[궁녀갑] 얼마나 아름다워요?
[가야] 같이 노닐 동무라고는 저 학밖에 없겠군요.
[궁녀들] 각간님이 계시지 않으셔요?
[가야] 각간님이라니요?
[궁녀] 에그, 아직도 모르시나 봐. 신랑 되실 처용님께선 각간이라는 아주 높은 벼슬을 받으셨는데도-
[가야] 그래요? 나는 통 몰랐는걸.
[궁녀갑] 저자에서 노니는 노랫소리를 들어 보소서. 서라벌 백성들은 각간님의 풍류에 취하여 밤이 지새는 줄도 모르고 저렇게 환호성을 올리고 있지 않아요.
[가야] 저 놀이가 곧 끝나 주었으면-
[두궁녀] 걱정마십시요. 임금님께서도 너무 늦기 전에 결혼식을 올리라는 분부시어요.
가야 어머니 또한 궁녀의 인도로 역시 구름다리에서 나타난다.
[가야] (반가워서) 에그, 옴마!
[어머니] 옴마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너도 귀하게 되었으니 「어머님」이렇게 불러야지. --- 네가 달빛을 받고 난간에 그렇게 서 있으니까 꼭 옛날 공주님 같구나!
[가야] 젖가슴을 잔뜩 졸라 매어서 갑갑해 못 견디겠어. 어머니, 이 띠를 좀 풀어 줘.
[어머니] 에그, 얘가 무슨 소리냐? 궁녀 아가씨들이 임금님의 어명으로 이렇게 정성스럽게 입혀 준 것을-
[가야] 이따가 다시 메면 그만 아녜요?
[어머니] 시집을 가려면 일생에 한 번쯤은 주리경을 치게 마련이란다. 더구나 여기는 궁중이다. 바다에서 제멋대로 살던 때완 다르다.
[가야] 허구헌 날 이런 옷을 입는다면 정말 괴롭겠어.
[어머니] 나는 너 같은 팔자나 돼 봤으면 좋겠다.
[가야] 우리 이 궁정에서 같이 살기로 했으니까
어머니도 소원 성취는 되신 셈이 아니요?
[어머니] 참, 그렇지
[가야] 모두가 꿈 같애
멀리서 풍악 소리
[어머니] 정말 꿈이 아니고는 김이나 뜯고 조개나 줍던 우리가 여기에 설 수나 있겠니?
놀이를 즐기는 백성들의 환호성. 떠드는 소리.
[가야] 밤이 꽤 깊었을텐데 아직도---
[궁녀갑] 혼인 식장 꾸며 놓은것도 구경하셔야죠.
[어머니] 정말-
[궁녀갑] 아가씨, 각간님 모시고 아름다운 꿈이나 담뿍 꾸십시요.
[가야] (빙그레 웃으며) 아이 부끄러워
장터에서 들리는 백성들의 환호성 다시 인다
[어머니] (궁녀들에게) 아무 일이야 없겠지만 저 뜰안을 한 바퀴 둘러봐 주오.
[두궁녀] 예. (하고 정원의 송림 속을 둘러본다)
[어머니] 단장한 그대로 기다려라. 참 이쁘다.
[가야] 음
가야 어머니, 궁녀들을 따라 구름다리로 퇴장. 무대에는 가야 홀로, 반월성 장터에서 들리는 백성들의 환호성, 풍악 소리. 한동안.
[가야] (취한 듯이) 아아 밤도 향기로워라. 어디서 이런 그윽한 향기가 풍길꼬? 말로 듣던 도원경이 바로 여긴가보다 (자기도 모르게 고요히 노래를 읊조리다가) 왜 여태 안 돌아올까? 혼인식 올릴 것도 잊어버리고 있나? (하품을 한다. 멀리서 풍악 소리. 난간에 기대었다가 잠이 든다)
[궁녀갑] (을과 함께 가야의 큰머리와 그 치장할 도구를 들고 나타나 잠든 가야를 보고) 호호호--- 잠이 드셨나 보다
[궁녀을] 큰머리 단장을 어떻게 하지?
[궁녀갑] 좀 있다가 다시 올까?
[궁녀을] 그래
궁녀 갑, 을. 큰머리와 치장 도구를 한 옆에 두고 가야의 잠이 깰까봐 조심스럽게 구름다리로 사라진다. 달이 구름에 가리는 무대. 어두워지며 어디선가 처용의 노랫소리 들린다.
[처용] (노랫소리만)
가야야 우리 가야
깊은 궁궐 한가운데
호올로 너를 두고
지새는 밤 깊어 가니
설레는 밤, 초조한 밤!
[가야] (잠에 취한 듯이 노래)
처용아, 어서 와요.
용이 되어 구름 타고
학이 되어 훨훨 날아
어서 와 다고, 처용아
[처용] (학으로 변하여 긴 모가지를 빼어 담장 위를 넘겨다보며) 끼이륵- 끼이륵-
[가야] (번뜻 눈을 뜨며) 아아, 아아, 처용이다. 에고, 이 입성. 그리고 이 머리를 튼 모양! 부끄러워 처용을 어찌 봐? 옳지!
가야, 모란꽃 속으로 몸을 감춘다. 학으로 변장한 처용. 송림 사이로 훨훨 날아들어 정원을 한 바퀴 돌더니 부용루 앞에 앉는다.
[처용] (부용루를 바라보고 고개를 쭉 빼더니)
끼이륵- 끼이륵- (아무 반응이 없으니까 괴상하게 생각하는 듯 고개를 갸우뚱 해 보이며) 왜 대답이 없을까? 임금님께서 틀림없이 가야를 이 부용루에서 기다리게 해 주신다 하셨는데- 옳지. 나를 놀라게 하려고 가야가 어디 숨은 게구나. 끼이륵- 끼이륵- (하고 긴 목을 빼어 부르다가 성큼 성큼 걸으면서 기웃기웃 찾아 다닌다. 노래)
가야가 이 꽃인가?
저 꽃이 가야인가?
가야야 어디보자.
높은 담장 훨훨 날아
너 만나러 나 왔단다.
(긴 부리로 이 꽃 저 꽃을 쪼아 보기도 한다. 마침내 가야가 숨은 모란꽃 송이를 쪼으려 한다)
[가야] (후다닥 피해 나오며) 호호호--- 나는 싫어. 그렇게 찾으면 누군들 못 찾을까?
[처용] (가야를 황홀하게 바라보며, 노래) 이게 대체 무엇인가? 하늘에 샛별인가?
물에 방실 연꽃인가?
이리 와서 나를 봐라.
처용이 여기 왔다
[가야] (노래를 받으며) 저만치 비켜 서라
가까이 오면 나는 몰라.
[처용] (노래)
왜 나를 피하는고?
학이 되어 날아오니
님인 줄 모르는가?
그 새 잠깐 못 봤다고
나의 자태 잊었는가?
[가야] (노래) 여태껏 물가에서
맨발로만 뛰놀다가
여기서 이 모양이
정말 나는 부끄러워
[처용] (노래)
에이 이 못난이
파도와 희롱하는
물새와 좋지마는
땅 위의 꽃이 되어
학의 날개 희롱함도
이 또한 좋지 않아?
[가야] (노래)
꽃이 세레 돌이 되고
학 아니라 닭이래도
너와 나와 다시 이별
끝내 없다면야
이 위에 복된 일
또 어디 있겠는가?
그대 풍덩 물에 들어
우리 둘이 헤어진 게
오늘 잠깐 일이건만
벌써 백 년 긴 세월이
흐른 것만 같아 보여
[처용] (노래)
봄바람 가지 스쳐
산야가 푸르르고
햇볕이 땅에 기어
각색 꽃이 만발하고
아가씨 노랫소리
짐승도 춤을 추는
조화무궁 이 강산에
나는 좋아 정말 좋아
[가야] (노래)
이 세상 좋다 해도
너 없으니 안개 바다!
그 안개가 나를 도와
너를 다시 보는구나
[처용,가야] 합창
지화자, 지화자자!
우리 심정 안개 구름
용왕님의 보호 아래
임금께서 가꾸시니
천년이고 만년이고
지화자! 지화자자!
(처용, 그의 날개 밑에 가야를 끼고 노래하며 춤을 춘다)
[처용] (춤을 다 추고) 아아, 이대로 죽어도 한이 없겠구나!
[가야] 그것은 바로 내가 할 말인데-
[처용] 참, 가야야. 너 갈 데 있다. 내 등에 올라 앉아라.
[가야] 왜?
[처용] 저, 저자에서 서라벌 백성들이 지금 너를 보여 달라 환호성이 충천이다. 가야란 처자 얼마나 절색이기에 처용이 그처럼 미쳤으며 임금님께선 두 사람의 혼인 잔치로 그처럼 진념하시냐고.
[가야] 아이, 부끄러워.
[처용] 우리 둘의 얘기로서 온 나라가 지금 발끈 뒤집혔단다. (등을 갖다 대며) 자아, 올라 타라.
[가야] 내가 구경거리가 되게?
[처용] 너를 데리고 오마고 백성들 앞에서 내가 철석같은 언약을 해 버렸구나!
[가야] 정말 나를 업겠어?
[처용] 아이, 학의 구실은 하늘의 선녀를 나르는 일-
[가야] (업히며) 떨어뜨리면 난 싫어. 호호호---
처용, 가야를 업고 날려는데 처마 끝에 달렸던 풍경이 땅에 뚝 떨어진다.
[처용] 이크! (하며 깜짝 놀란다. 그 순간에 무대 깜깜해진다. 다시 밝아지니 처용이는 사라
지고 없다)
[가야] (잠에서 깨어) 처용아! 처용아! 웬일일까? 처용이는 어디 가고 처마 끝 풍경만 떨어졌네. 처용아, 처용아! (대답이 없다. 꿈이었음을 알고) 저 놀이터에서는 풍악 소리가 여전한데 아니, 내가 그런 꿈을 꾼 게 아닐까? 호호호--- 정말 꿈을 꾼 거야? 꿈에서 처용을 만난 거야.
이 때, 송림 사이에 시커먼 그림자 하나 나타나 우뚝 선다. 역신이다.
[역신] 가야야!
[가야] (놀라) 어머나!
[역신] 너를 찾아 이 반월성 궁중을 얼마나 헤맸는지 모른다. 그렇게 꾸미고 있으니까 더욱 이쁘구나.
[가야] 나를 어쩌자는 거냐?
[역신] 나같이 너를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처용이가 아무리 너를 좋아한대도 이 벅찬 내 가슴에는 비길 수 없다. 가야야, 제발 나를 따라 저 장산 밑으로 가자. 거기 내가 사는 굴이 있다. 그 굴에서
나하고 살자. 그러면 내 있는 힘. 있는 꾀를 다해서 너를 떠받쳐 주마. 내 힘이 얼마나 세고 내게 어떤 술법이 있는가를 너도 봐 오지 않았느냐?
[가야] 정말 나를 사랑하거든 제발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둬 다고
[역신] 청룡이 그 입에 여의주를 물어야 용의 값을 하듯이 내 품에 네가 들어야 나도 사람 구실을 한다.
[가야] 귀찮게 굴면 호위병을 부를 테다.
[역신] 내가 그들을 당하지 못할 줄 아느냐?
[가야] 굳이 사람을 못 살게 굴테냐?
[역신] 사람의 마음을 볶는 것은 너다. 너 때문에 내 가슴은 터질 지경! 남에게, 더구나 여자에게 애원이라고는 못해 본 나다. 그런 내가 이렇게 네게 무릎을 꿇지 않느냐?
[가야] 아이 징그러워! 제발 나를 치어다보지 마라.
[역신] 가야야! (덤벼들어 가야의 손을 붙들려고 한다)
[가야] 왜 이래? (뿌리치며 역신의 허리에
찬 칼을 어느새 빼 들고, 난간 위로 피해선다)
[역신] 너 그 칼을 가지고 어쩔 테냐?
[가야] 여기서 선뜻 물러나지 않으면 이 칼을 내 가슴에 꽂고 나는 이 연못에 거꾸로 떨어져 죽을 테다 (하며 가슴에 댄다)
[역신] (새파랗게 질려서 부들부들 떨며) 에그그! 그 칼 놓아라! 안 놓으면 난 안 비킨다.
[가야] (칼을 가슴에서 떼며) 그럼 나가요.
[역신] 이만하면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하는지 알았을 텐데. 왜 이렇게 고집만 세우니?
[가야] 에이, 추근추근해라! (결심한 듯이 칼을 들어 자기의 가슴을 푹 찌르려 한다)
[역신] (소스라쳐 소리친다) 아, 안 돼. 안 돼! 자결해서는 안 돼! 이렇게 내가 물러 서는데 왜 네가 죽으려는 거냐? 자, 봐라. 내가 이렇게 물러나가지 않니? (부들부들 떨며 물러나간다)
[가야] (역신이 아주 퇴장하는 것을 확인하자, 칼 든 손이 힘없이 떨어진다) 누구나 나타나서 나를 이 자리에서 구해 주었으면-
왜 이렇게 아무도 없을까? 숨 죽은 듯 적막할까? (소리친다) 처용아! 어머니! 거기 아무도 없소?
호위병들 급히 쫓아 나온다.
[호위병들] (가야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고) 아가씨, 어찌 된 일이오?
[가야] 이게 웬일이오? 이 별당에는 개미새끼도 못 기어 들어오게 마련돼 있다더니-
[호위병갑] 역신이란 놈이 나타났었군요?
[가야] 이렇게 몇 사람이 몰려 다니면서도 역신이 한 놈을 사로잡지 못한단 말이오?
[호위병갑] 그 놈이 번개 같아서--- 여기서 번뜻! 저기서 번뜻! 덩치가 큰 놈이 날쌔기가---
[가야] (역신이 나간 방향을 가리키며) 얼른 붙잡아요. 저쪽으로 나갔소.
[호위병갑] 살려두었다간 혼인 예식을 훼방 놀테니까 틀림없이 잡아 족치겠소.
[가야] 그리고 참, 저 노랫소리 들려오는 반월성 저자에 급히 내달아 처용이---
아니, 각간님더러 이 일을 알려 드리고, 이리 못 오게 해 주오. 그이의 신상도 위태로워요.[호위병갑] 곧 기별하리다.
[가야] 빨리요!
[호위병들] 예. 예.
호위병들, 두 길로 갈려서 급히 퇴장
[가야] (혼잣말로) 그 흉칙스런 역신이 놈이 여기서 선뜻 비켜나는 것을 보니 분명 무슨 흉계로 처용을 해치러 나간 게 분명해.
[역신] (유령같이 가야의 뒤에 나타나) 에이, 깜찍스러운! 그 칼 놓아라!
[가야] (안 빼앗기려고 허비적대며) 에그머니-
[역신] (기어이 가야의 손에서 칼을 빼앗아 들고) 인젠 됐다. 이 칼로 네가 가슴을 찔러 자결을 할까봐, 내가 얼마나 떨었는지 몰라. 이렇게 내가 땀을 흘려보기도 처음인걸. 그러지 말고, 가야야---
[가야] (잡힌 손을 내빼려고 애쓰며) 이손 놓아라!
[역신] 왜 나를 이렇게 싫어하니? (억센 팔로 가야의 가는 허리를 질끈 끌어 안는다)
[가야] (비명) 으아!
[역신] 흐흐흐--- 이 가는 허리. (야욕에 불타는 입술로 가야의 입술을 더듬는다)
[가야] 누구나 처용이를 불러 줘.
[역신] 한 번만 더 처용이의 이름을 불러 봐라. 담박에 목을 눌러 죽여 버릴 테다.
[가야] (기를 쓰며) 처용아아!!
[역신] 에이, 아가리 닫히지 못해?! (목을 누른다)
[가야] 아- 아- (괴로운 듯이 손을 내젓는다)
[역신] (가야의 숨이 넘어가는 것을 보고) 아니, 이것이? (깜짝 놀라 목을 눌렀던 손을 뗀다.)
[가야] (목이 힘없이 툭 떨어진다)
[역신] 아니, 이게 죽은 게 아냐? (덥썩 안고 흔들어 보며) 가야야! 가야야! (대답이 없으니까) 아아, 이 일을 어떻게 해? 퍼덕이던 참새같이 내 품에서 버둥대던 가야가- (갈팡질팡하며) 어떻게 하면 우리 가야를 살려? (꽃송이를 꺾어 가야의 눈앞에 갖다대며) 가야야, 네가 좋아하는 꽃 여기 있구나. 그리고 저기에는 네가 즐기는 달님이 떳고-! 정말이다. 저걸 바라보아라! (아무 반응이 없으니까) 가야야!! 가야야!! 아아, 우리 가야가 정말 죽어 버렸다. (엎드려 흐느껴 운다. 눈물을 거두며) 네가 놀래 기절할까봐. 밉살스런 처용이 놈도 나는 죽이질 않았는데- 이 손으로- 너를 한번 안아 보려고 주야로 벼르던 이 손으로- 가야, 너를 그만 죽이고 말다니--- 에이, 이놈의 손목아지를 끊어 버려야지! (칼을 쑥 빼어 들다가) 아니다. 내가 내 손을 칠 게 아니라, 이 손에다간 상을 주어야 한다. 가야의 숨을 거두어 가야를 내게서 다시는 달아나지 못하세 해 주었으니, 오늘 저녁에 결혼식을 못 올리게 해 주었으니, 이렇게 큰공이 또 어딨어? 하늘이여, 가야를 죽여 준 이 손에 상을 내려주소서. (가야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가야야, 어여쁜 가야야! 꽃송이보다도 아니 달님보다도 어여쁜 가야야! 너는 찍소리 없이 나를 맞아 내 품에 안겨 있구나. 내 손이 네 몸의 어느 구석에 닿아도 너는 나를 떠밀어내지 않는구나. 너는 이제 내 물건이다. 갈데 없는 내 사람이야. 자, 가자. 촛불 퍼덕이는 신방으로- 저기 가서 우리들만이 즐길 수 있는 꿈을 꾸어 보자. 내 뜨거운 몸으로 싸늘해진 네 몸에 다시 온기가 돌게 해 주마.
가야의 시체를 안고 역신, 부용루로 올라간다. 마침내 누각 방으로 들어간다. 처용, 호위병과 황급히 들어선다. 저자에서 춤추던 그대로의 옷차림이다. 처용 뒤에 호위병들 섰다.
[처용] (두루 찾다가 가야가 안 보이니까) 가야, 어딨어?
[호위병갑] 아까 저 난간에 계셨는데. (땅에 떨어진 꽃을 주어 처용에게 보이며) 이게 가야 아가씨의 머리에 꽂은 꽃이 분명한데요-
[처용] (불안을 느끼어 방 앞을 본다. 댓돌에 놓여 있는 가야의 신발 옆에 남자의 신발 한 켤레 나란히. 방을 향하여) 가야야! (방안에 켜 있던 촛불이 이때 꺼졌다.
후다닥 뛰어올라 황급히 방문을 연다. 깜짝 놀라) 아니, 저 저것이 이불 밑에 보이는 사, 사나이의 다리가 아니냐?
[호위병갑] (같이 들여다보고) 저 일을 어째? 한 이불 속에서 꽉 껴안고---
[처용] 허허허--- (기가 막혀 우는지 웃는지 분간할 수 없는 음성으로 웃는다. 그리고 노래한다)
동경 밝은 달에
밤들이 노니다가
들어 내 자리를 보니
가라리 네이로섀라.
[역신] (방에서 슬그머니 나와 노래 부르는 처용을 노려본다)
[처용] (더 비통한 소리로 계속하여 노래한다. 춤까지 곁들인다)
둘은 내 해어나와
둘은 뉘 해어니오?
본대 내 해언만
아으, 빼앗긴 것을!
[역신] (분노에 찬 얼굴로 춤추는 처용을 지켜보다가 우는지 웃는지 분명치 않은 웃음을 웃으며)
헤헤헤--- 내게 덤벼들진 않고 가소롭게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어?
[처용] 하도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서---
[역신] 인제 너도 단념을 했나보구나. 그럴 것이다!
[처용] 천만에!! 천만에!!!
[역신] 그러면 아직도 가야를 못 잊겠단 말이냐? (칼을 빼어 든다)
[처용] 너의 칼 끝에 내 목숨은 이슬로 사라질 지 몰라. 하지만 칼로써 여자를 차지할 순 없다. 비켜나라.
[역신] 가야를 찾기 전에 이 칼 먼저 받아라! (처용에게 덤벼 다부지게 친다)
[처용] (몇 차례 치는 칼을 피하며 마침내 가야가 누운 방으로 뛰어 들어간다)
[호위병갑] (처용을 추격하여 방으로 들어가려는 역신의 앞을 막아 서며) 안 돼!
[역신] 비켜라! (막아 선 호위병에게 일격을 가한다. 호위병, 칼을 맞고 쓰러진다)
[처용] (싸우는 사이에 가야의 시체를 안고 방에서 나와 비통한 얼굴로) 가야야- 가야야!
[역신] 그것 제자리에 제대로 둬주지 못할까?
[호위병다수] (송림 사이에서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면서) 이놈! 역신아! (일제히 칼을 빼어 겨눈다)
역신, 칼을 들어 일격을 가한다. 호위병들 추풍낙엽처럼 한 칼에 모두 떨어지고 만다. 처용, 가야를 꼭 껴안은 채 무대 중앙에 뚜렷이 앉아 하늘을 보고 초혼 기도를 노래로 부르기 시작한다. 산수의 정들, 먼 하늘에서 처용의 노래에 화한다. 역신 칼을 들고 처용을 친다. 안 맞는다. 주문을 외우며 또 친다. 안 맞는다. 주문을 외우며 또 친다. 역시 안 맞는다. 열심히 외우는 처용의 초혼 기도에 하늘이 응하는 듯, 구름이 자욱히 서리면서 천상에서 고요하고도 엄숙한 주악이 인다. 그 주악에 몇 마리의 용, 꿈틀거린다. 용의 몸뚱어리가 구름 사이로 번뜻거린다. 역신 쌍칼을 휘둘러 미친듯이 덤벼 계속적으로 처용을 친다. 그러나 역신이 너무 지친 탓??
헛칼질만 한다. 처용의 몸에는 칼이 범접을 못하는 것이다.
[역신] (기진맥진하여) 이, 이 칼이 왜 자꾸 헛나가기만 할까? 에이! (최후의 힘을 모아 친다. 그러나 또 헛칼질이다. 지쳐서 비틀비틀 쓰러진다)
[처용] (가야의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환희에 넘친 소리로) 아아, 가야의 숨이 돋아난다!
[역신] 뭐? (하며 가까스로 몸을 가누어 가야의 돋아나는 숨소리를 엿들으려고 애쓴다)
[처용] (다른 정신없이 열심히) 가야야, 정신 차려라.
[가야] (눈을 뻔히 떠 처용을 쳐다보며) 이게 누구냐? (손으로 처용의 얼굴을 더듬어 보더니) 아아, 처용이다!! 처용아 (처용의 가슴에 파고든다)
[처용] (꽉 안으며) 가야야!!
[가야] 아- (처용의 품에서 흐느낀다)
하늘의 주악과 산수의 정들의 합창 높아진다. 한동안
[역신] (마침내 처용 앞에 무릎을 꿇고) 처용아, 내게는 고작 남을 헤치는 힘밖에 없는데 너는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힘을 가졌구나--- 아, 내가 이렇게 못난 줄이야--- 앞으로 네가 있는 덴, 네 화상만 붙어 있어도 나는 얼씬하지 않고 범접하지 않겠다. 아, 못 당해---
역신, 힘없이 터벅터벅 걸어서 퇴장. 조금 전에 구름 다리 위에 나타나 이 광경을 숨을 죽이며 엿보고 있던 궁녀들. 처용의 위력을 찬양하여 노래한다. 천상의 산수의 정들 화한다.
新羅聖代 昭聖代 天下大
平羅候德 處容아비 以是
人生애 相不語 폁이란? 三災
入難이 一時消滅폁샷다
어아 아비 즈이여. 처용아해 즈이여
왕?? ?? ??하여 ?? 궁녀들 ??? 가야 ?? ??? ?의 뒤에
[왕] (처용과 가야를 보고) 너희들이 겪은 경난 다 들었다. 장하도다. 장하도다. 두 사람의 화촉의 잔치를 베풀 차비가 다 마련되었으니 모든 시름 다 잊고 나를 따르라.
처용, 궁녀들에게 좌우로 부액된 가야와 같이 왕의 앞으로 나아간다. 일동, 이들의 뒤를 따른다. 화촉의 잔치의 화려한 주악과 합창 드높아지며 막이 내린다
<1952년 작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