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김옥경 전도사님의 대구큰믿음교회 중보기도학교 집회 2009. 6. 18. 낮 설교)
제가 이번집회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하나님께 크게 감사드립니다. 저는 어느 때보다도 부족하지만 이번 바비 코너 목사님 안에 있는 차원 높은 임재와 기름부음, 그것을 우리에게 나눠주시고 공급해주셔서 제가 '이전까지 내가 경험했던 임재나 기름부음의 질이 다르구나. 차원이 높구나' 하는 것을 확실하게 사역하면서 느꼈습니다.
제가 받은 것을 여러분과 나누기 위해 사역을 하면서 저에게는 배가가 됩니다. 여러분들로 인해 같은 수준의 임재가 계속 하늘로부터 공급되는 엄청난 은혜를 제가 받고 있기 때문에 무척 행복합니다. 어젯밤에 안수사역 해드렸을 때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것들이 들어온 것을 느끼셨습니까? 그런데 여러분께서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되는 것은 저하고 똑같은 입장입니다. 바비 코너 성회에서 서울에서 오신 교역자님들, 성도님들이 그 기름부음을 충분히 받아 가지고 와서 이곳에서 흘려보내고 있잖아요. 그러니 더 많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어젯밤에 제가 차원 높은 임재와 기름부음 안에서 안수 사역할 때에 제가 그 임재 안에서 헤엄치듯이 떠다녔습니다. 제가 대전에서는 마지막 날 임재의 강이 흘러넘치는, 꼭 물속에서 수영하는 것처럼, 경험했는데 어제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끝까지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그 임재의 수준이 대전에서와 완전히 달랐습니다. 바비 코너 목사님께서 우리에게 접목시켜준 것이 하늘로부터 공급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여러분을 만지는데 요란하고 크게 소란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차이를 표현한다면 굉장히 고요합니다. 고요한데 강력합니다. 조용하고 고요하고 부드럽게 흐르는데 강력하다는 겁니다. 때로는 강하게, 큰 소리로 엄청난 바위산들이 폭파될 때 나는 굉음 같은 게 있잖아요. 그런 소리로 임재의 권능이 임할 때가 있는데 그것은 아니었습니다. 굉장히 조용하게 임했습니다. 그런데 그 권능은 큰 소리를 내는 권능하고 비교할 수 없는 그런 강력함으로 임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안수하고 손을 얹고 있는데 그 임재가 워낙에 무게가 컸기 때문에 제가 여러분 등에 다 누워서, 엎드러져서 안수할 수밖에 없었어요. 제가 고개를 들 수 없었어요. 상체를 들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이분 등에 업혔다가 그 옆의 분 등에 슬라이딩 하듯이, 임재의 강이 흐르기 때문에 옆의 분에게 가서 덮일 수밖에 없었거든요. 덮일 수밖에 없었다는 표현이 맞을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뭐냐 하면 그 임재가, 그 영광이 여러분을 덮는 거예요. 여러분을 덮게 되니까 여러분의 마음이 아무리 강하게 견고해지고 쇠처럼 단단해져 있을지라도 소리 없이, 조용히 녹아내리는 것을 제가 경험했습니다. 아마 이 집회 처음 오시는 분들도 왜 내 마음이 이렇게 깨뜨려지는 것인지, 내 마음이 왜 이렇게 물처럼 녹아지는 것인지 여러분이 아마 신기하게 생각하셨을 겁니다. 바로 아주 차원 높은, 수준 높은 영광이 이곳에 임해있기 때문에, 제가 정직하게 말씀드리면 그냥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으로 우리는 행복합니다. 이런 임재가 있고 영광이 흐르는 곳에 우리가 앉아 있기만 하면 흡수됩니다. 우리가 사모하고 원하잖아요.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우리 속에 가득 채우기를 원하시잖아요. 그 영광으로 옷 입게 되기를 원하잖아요. 그 원함을 가지고 이 자리에 앉아있으면 저절로 임하는 거예요. 들어오는 거예요. 채색되고 물들여지는 거예요. 오이 피클이 절여지듯이, 배추가 소금에 절여지듯이 우리의 심령이 절여지면서 녹아내리고 있다는 것, 그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집회는 다른 게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바비 코너 목사님을 통해서 차원 높은 임재와 영광이 우리에게 임하고 있기 때문에 이 안에 젖어서 내가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그 영광을 마음껏 먹고 마시면서 취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어디에 가서도 맛볼 수 없는 그런 엄청난 은혜를 경험한다는 것. 그래서 이번에 저는 너무 쉽습니다. 제 자신이 부족해서 안타깝지만 그 임재와 영광이 풀어지니까 제가 명 설교를 하고 엄청난 은사들이 사람들에게 임하는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심령이 변화되는 것, 새로워지는 것, 내 마음과 생각이 바뀌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인데 임재 안에 있으니 우리의 심령이 저절로 순화되고 있어요. 내가 거룩하고 싶다. 착하고 싶다, 내가 선하고 싶다. 내가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하나님만을 위해 살고 싶다. 하나님을 닮고 싶다. 이런 마음이 저절로 들어오는 거예요. 이게 가장 크고 놀라운 은혜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은혜입니다. 이 은혜가 임하기만하면 그 사람은 변화됩니다. 왜냐하면 그 갈망이 이 안에 담겼어요. 여러분이 이 갈망을 증가시켜야 돼요. 오늘부터 이 임재 안에서 계속 머물면서 그 갈망이 증가되도록 계속 그 생각에 몰두해야 됩니다. '내가 주님을 닮고, 주님의 아름다우심을 세상 가운데 흘려보내야 돼. 내가 그 영광으로 옷 입어야 돼.' 그것을 갈망하는 기도 '그렇게 되게 해주세요.' 말씀 읽으면서 '그 말씀 안에 있는 하나님의 성품이, 그 영광이 내 영 속으로 흘러 들어와서, 내 심령 속에 채우고, 채우고, 채워져서 그 영광을 흘려보내는 그 통로가 되게 해주세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이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사람들에게 실천하며 살면 계속 증가됩니다. 계속 여러분 안에 있는 그 갈망이 하늘에 있는 것을 끌어당기는 거예요. 하나님 안에 있는 그 선하심, 그 거룩하심, 그 사랑, 온유함과 겸손이 계속 여러분의 심령 속에 임하도록 하늘에 있는 기름부음을 끌어 내리는 거예요. 그 갈망이, 그 원함이… 이해가 되셨어요? 이것이 증가되는 비결이 집회 끝났으니 쉬어야지. 하며 집에서 쉬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안에 성령님께서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일을 행해주셨는데 이것이 나의 완전한 실제적인 삶이 되도록 내가 이 안에서 이것을 활성화시키고 증대시켜서 완전히 이런 삶을 살도록, 예수님처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성령 충만한 삶을 사셨던 것처럼, 아버지의 영광을 온전히 덧입고 그 영광을 드러내는 삶, 하늘의 권능들을 세상 가운데 흘려보내는 삶,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놀라운 삶, 그 삶으로 내가 완전히 살 수 있도록 내가 원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 말씀 안에서 그것들이 내 안에 활성화되도록 말씀에 깊이 들어가는 것. 그 일을 하셔야 돼요. 내일부터 다시 이전의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면 조금 후에 바로 소멸됩니다.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엔 그런 것이 있어요. “하나님의 성령을 소멸치 말라.” 성령님이 영광을 담고 있어요. 그래서 성령님과 영광은 실제로 동일합니다. 성령님이 그 영광을 우리 가운데 오게 하시기 때문에 성령 충만이나 그 영광이 가득함이란 말은 같은 것입니다.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는 곳엔 아버지의 영광이 임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곳에는 아버지의 영광이 가득히 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령님이 소멸된다면 그 영광도 반드시 소멸됩니다. 여러분이 이 갈망을 증가, 활성화시키지 못하면 며칠 후에 소멸됩니다. 그럼 여러분이 무슨 생각이 드는가하면 '은혜 받아도 소용없어. 그때뿐이야.' 천만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무지했기 때문에, 몰랐기 때문에 잘못 아신 것입니다. 영적인 비밀을, 실체 안에 들어있는 속성을 몰랐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놔둬도 그 영광이 유지될 줄 알았기 때문에 힘쓰고 애쓰지 않은 거예요. 우리가 해야 되는 일이 있고 하나님께서 은혜로 값없이 부어주시는 게 있어요. 하나님께서 임재나 기름부음은 우리에게 은혜로 주셨어요. 우리가 갈망하고 구할 때 주셨어요. 우리가 영광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에, 그 선한 소욕을 못 만들어 내잖아요. 그러나 원함은 우리가 하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해주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원하면 그것을 부어주시잖아요. 이것이 증가되고 활성화되고 강력한 권능이 되어서 우리의 삶이 되게 하는 것, 선한 삶, 의로운 삶, 거룩한 삶, 능력의 삶을 살도록 우리가 증가시키는 일을 해야 하는데 그것은 기도하는 일, 말씀으로 갈망하는 일, 세상을 붙잡지 않고 내려놓는 일, 내 마음을 세상으로 채우지 않고 그 갈망이 계속 증가되어서 내 마음을 가득 채워지도록, 그 갈망이 나를 삼키도록… 그래서 그 갈망이 증가되고, 그 갈망을 통해서 성령님이 충만하게 임하셔서 영광으로 가득한 그 일이 이뤄지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나는 만족과 기쁨이 없기 때문에 행복이 없기 때문에 식음을 전폐하면서 그것을 갈망하고 구하는 그 일에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들, 하나님을 찾는 족속들이 바로 그런 자들이에요. 여호와를 찾는 자들, 여호와의 얼굴을 구하는 자들, 그것이 무슨 뜻인 줄 아세요? 바로 그런 갈망을 가지고 다른 것을 원치 않는 자들, 전혀 의미가 없는 것, 자신에게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은 전혀 가치가 없는 것. 하나님이 전부인 것, 하나님을 찾으라 했을 때 그 의미는 그 뜻이에요. 가장 값지고 가장 귀중한 진주를 발견한 장사꾼과 같이 자신의 전부를 팔아서 그 진주가 숨겨진 밭은 산 것처럼, 하나님을 찾는 것은 그렇게 찾으라는 거예요. 가장 보배로운 것, 자기에게 생명이 되는 것, 가장 귀한 것을 찾기 위해서 다른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 그리고 오직 그것만을 구하기 위해 찾아 나아가는 것, 갈망하는 것 그것을 얘기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사실 지금부터 시작인 거예요. 저는 너무 안타까워요. 제 안에 큰 감사가 넘치거든요.
이번에 바비 코너 목사님을 보내주신 것. 그분은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어요. 제가 만나 뵌 분 중에 딱 두 사람, 밥 존스와 바비 코너 목사님 그 두 분에게 정직하고 거짓말하지 않고 그분들에게 고백하라고 한다면 '당신들은 정말 하나님의 사람들이십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들이십니다.' 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느낌이 똑같아요. 밥 존스 목사님을 뵈었을 때 그분에게서 천국을 봤고 하나님을 봤거든요. 그분의 눈 속에, 얼굴 속에 하나님의 심장이 담겨 있었어요.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이 담겨 있었어요. 그것이 천국이잖아요. 바비 코너 목사님도 똑같이 제가 그분 속에서 하나님을 보는 거예요. 그렇게 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거예요. 당신의 영광으로 온전히 채우시려고, 그래서 당신과 온전히 하나 됨을 이루시려고, 그 자체가 영광입니다. 하나님을 닮는 거, 하나님으로 온전히 충만해지는 것 그것이 영광이에요. 하나님은 영광 그 자체시잖아요. 하나님으로 충만한 거 그것을 이루시려고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에 우리한테 그 소원이 불타올라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밥 존스 목사님을 뵈었을 때도 그랬지만 바비 코너 목사님을 뵙고 나니 더 불타올라요. 하나님을 똑같이 닮는 그 일이 내 안에 이뤄지도록 대가를 지불해야겠다. 그리곤 계속 갈망합니다. 바비 코너 목사님을 통해서 제가 그 영광에 접근되었잖아요. 한순간에 그 영광에 올라올 수 있었잖아요. 얼마나 큰 축복인 줄 아세요? 앞서간 하나님의 사람들은 우리에게 엄청난 은혜입니다. 그분들이 은총입니다. 그분들이 경험한 것을 우리에게 전이시켜주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분들의 최고의 단계부터 우린 다시 출발하는 거예요. 그분들이 우리의 디딤돌이 되는 거예요. 그분들이 그 경지에 오르기 위해 투자한 시간과 노력을 우리는 들이지 않아도 되는 거예요. 우리는 그분들로부터 그 기름부음과 영성을 전이 받고 잘 보존해서 증가시키는 수고를 하는 거예요. 그분들이 해온 단계를 밟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에게 기름부음을 받았을 때 한 순간에… 여러분, 어젯밤에도 그런 거 경험하신 분들 있을 거예요. 그동안 많은 기도생활을 안했지만 수년간 기도생활 해온 사람보다 마음이 한순간에 강력하게 깨뜨려졌어요. 부드러운 마음이 되었어요. 연한 살 같은 마음이 되었어요. 이제 여러분이 이 마음을 다시 강퍅케 하지 않는다면, 다시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서 세상을 생각하고 욕심을 받아들이고 사람들을 향한 원망, 미움, 불평, 시기, 질투를 받아들이고 살면 다시 마음이 굳어 완악해져요. 강퍅해져요. 그러나 이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제야말로 본격적으로 기도하고 말씀으로 나를 변화시키는 일에 힘쓰고 애쓰면 앞서간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해왔던 수고를 거치지 않고 한순간에 그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그 영적인 영역으로 올라가는 거예요. 제가 바비 코너 목사님을 통해서 차원 높은 임재와 영광을 경험했잖아요. 그것이 제게 너무나 감사가 되는 거예요. 큰 기쁨이에요. 너무나도 은혜라 느껴지면서 행복하거든요. 저는 여기서부터 더 큰 영광으로 올라갈 것입니다. 더 높은 영광을 위해서 더 갈망할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 대가를 지불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똑같이 그래야 합니다. 이전의 방식으로 똑같이 살지 마세요. 사도 바울은 내 몸을 쳐서 복종시킨다고 했어요. 여러분도 이제는 몸을 치셔야 됩니다. 기도하기 싫어도 기도하러 치고 나오셔야 됩니다. 내 몸을 쳐서 복종시켜야 됩니다. 세상의 것을 갖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면 예수 이름으로 파쇄하며 떨쳐내시면서 거룩한 소욕, 예수님을 닮고자 하는 마음,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안에서 행하고자 하는 거룩한 소욕만 증가되도록 계속 예수님만 생각하는 거예요. 계속 주님만 찾는 거예요.
오매불망, 잠자기 전에도 그냥 주무시지 마시고 '영광의 이불로 나를 덮으소서.' 이런 장소에선 영광의 구름이 한사람, 한사람 와서 덮어요. 자루로 우리를 뒤집어쓰는 것처럼 그 영광이 우리를 덮어요. 그래서 제가 느끼는 느낌은 내가 영광의 요를 깔고 영광의 이불을 덮고 영으로 임재의 강에 밀려서 보트 타는 것처럼 떠다니는 것. 그것이 실제입니다. 그것을 제가 환상 가운데 보거든요. 제가 영광의 안에 푹 잠겨서 성전 가운데 떠다니는 것을 보는데 그것이 실제예요. 지금도 그 일을 믿음으로 취하시면 그 영광이 여러분을 덮을 것입니다. 그 영광에 떠다닐 것입니다. 그 영광이 여러분 심령 가운데 계속 젖어들고, 젖어드는 거예요. 이 장소에 와 있는 것만으로도 여러분에게 축복이고 은총입니다. 그래서 제가 한 번도 그런 말은 안했는데 말하고 싶었어요. 그냥 와 계세요. 은혜가 되든, 안되든, 여러분이 느끼든, 못 느끼시든. 원하는 것들이 채워지든, 안 채워지든 이곳에 놀라운 영광이 지금 강을 이루어서 그 영광의 강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믿으시고 힘들어도 그냥 앉아 계세요.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이 새로워져있다는 것을 발견하시게 될 것입니다. 얕은 단계에 있을 때엔 잘 몰라도 점점 차오르게 되면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알게 됩니다. 자기가 새로워졌다는 것을. 목사님이 말씀하신 대로 상쾌함, 유쾌함이 있는 거예요. 기쁜 일이 없는데도 시원함, 상쾌함을 느끼는 거예요. 영광이 흘러 들어왔기 때문에 여러분 안에 있는 유쾌하게 하지 못했던 죄성, 육신의 소욕, 불평, 원망하는 마음들 미움, 용서치 못해 있었던 분노들이 영광이 임함으로 제거된 거예요. 소멸된 거예요. 여러분들이 그것을 알고 계속 선포하고 더 원하면 그 영광이 강력하게 운행하십니다. 여러분, 거듭난 사람 누구에게나 성령님이 들어와 계시잖아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계속 성령님 안에서 충만함으로, 성령님 안의 많은 것들이 그 사람에게는 드러나고 활성화되는데 어떤 사람은 전혀 그렇지 않잖아요. 그것은 성령님께서 강력하게 자기 심령 안에서 역사하시고 일하시도록 구하지 않고 요청하지 않는 거예요. 우리가 원할 때, 구할 때만 성령님은 일하시거든요. 그래서 모든 것은 우리가 원함으로 얻는 것이고, 구함으로 얻는 것이고, 기도함으로 얻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영광이 우리에게 임해서 놀라운 일을 행하실 수 있는데 우리가 원하고 구해야만이 이 일이 실제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 기도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지성전도 다 중보기도 시간이 있잖아요. 그 시간에 여러분 더 적극적으로 나아오셔야 하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여러분에게 임한 이 영광이 차오릅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쉬워집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지고 영광이 우리 안에 강력하게 임하게 되면 신앙생활이 쉬워지는 거예요. 방해되는 모든 것들을 성령님께서 권능으로 제거해 주시기 때문에요. 우리가 원할 때마다 강력으로 파쇄해 주시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쉬워지는 거예요. 여러분이 쉬운 단계로 진입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아직 여러분이 힘든 것은 그 수고를 하지 않아서예요. 여러분 안에 임하시는 성령님이 부지런히 우리 속에 있는 잘못된 것들, 죄성, 쓴 뿌리들을 제거해 주시도록 구하지 않은 거예요. 기도로 계속 구하고, 또 구하고, 더 깊은 것들이 빠져 나가도록 더 깊이 박혀 있는, 그야말로 갈피갈피 깊은 곳 속에 스며들어가 있는 것들이 다 제거되어 지도록… 이렇게 생각하시면 돼요. 죄가 우리 마음과 생각 속에 물들어 있어요. 이것을 다시 다 하나님의 성품으로 물들여야 돼요. 이것을 하나님의 성품과 인격으로 다시 물들여야 돼요. 그것을 원하는 기도를 계속 하셔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기도하지 않고 거룩케 되고, 영광의 통로가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반드시 구하고, 그것을 위해 구하는 사람들이 거룩을 이루고 그 영광의 통로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 더 깊게 인식하시기 바랍니다. 왜 기도해야 되는지 인식하시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오기를 게을리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기도하되 헛된 것을 구하지 마시고 바른 초점을 가지고 기도하셔야 됩니다. 오히려 나의 인격이 예수님의 온유함과 겸손, 그 사랑으로 옷 입혀진 그 일이 일어나지 않고 은사가 임하면 더 큰 것을 놓치게 됩니다. 은사 때문에 자기가 하나님께서 기뻐하고 합당히 여기시는 사람이 된 줄로 착각에 빠집니다. 은사는 도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는 일꾼으로서 은사는 도구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자신의 인격, 성품이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여겨진다는 확증으로 주어지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초점을 그분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닮는 일에 초점을 두고 기도 시간에 그것을 구하십시오. 주님을 닮는 일을 위해 거짓되고 불의한 것,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들이 드러나고 발견되기를 구하시면 가장 큰 은총을 받는 자들이 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스러운 신부로 드러내시고 쓰실 수 있는 그 영광의 통로들이 될 것입니다. 기도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지 마시고 바른 초점으로 정말 중요한 것을 구하는 습관이 배이면 우리는 빠르게 변화됩니다. 자신도 모르게 이상한 것을 구하는 습관을 바꾸셔야 합니다. 결사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성품과 영광, 주님의 인격을 닮는 기도가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주님을 닮고 싶습니다. 거룩하고 싶습니다. 사랑 안에서 온전한 자로 세워지길 원합니다. 모든 거짓에서 떠나기를 원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구할 수 있는 습관이 배여야 합니다. 나의 영이 항상 탄식하듯이 중요한 기도 제목을 주님 앞에 부르짖을 수 있으면 빠르게 변화됩니다. 우리가 의식하든지 못하든지 우리 영이 계속 중요한 것을 갈망해야 합니다. 그래서 방언 통변 받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내가 영으로 무엇을 구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꼭 방언 통변을 받아보시고 자신의 의식을 바꾸시고 훈련하십시오. 늘 무엇을 원하고 생각할 것인지 개선하는 과정을 거치고 방언 통변을 받으면 차원이 다른 것을 구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사람들과 대화해보면 그렇게 주님을 구하고 갈망해야 하는 것에 공감하지만 구체적으로 기도할 때 무엇을 구할 것인지 평소에 무엇을 훈련할 것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이전의 잘못된 사고방식을 그대로 고집하며 변화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사고체계를 점검하고 의식 안에 가치관을 점검해봐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인이었기 때문에, 죄악된 세상에 살고, 죄인들에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무의식중에는 더 많은 점검이 필요합니다. 이런 무의식중의 가치관과 사고까지도 성령의 능력으로 제거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무의식중에 갖고 있는 것들이 나의 참된 실체라 여기시면 됩니다. 우리가 지성이 있기 때문에 억압하고 표출이 안 될 수 있지만 무의식중의 나의 실체가 완전히 정화되고 하나님의 것들로 변화되도록 자기를 깊이 통찰하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실제로 성령님께선 기도시간에 그런 부분에 많은 시간을 보내게 하십니다.
성령께서 계속 그러한 부분을 보게 하시고 알게 하십니다. 그리고 깊은 기도 중에 지혜와 가르침을 주셔서 제거해주시길 구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해야 될 일이 많습니다. 많은 숙제들이 밀려 있는데도 사람들이 기도 시간에 매우 인색합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마음껏 우리를 완전히 개조해서 그야말로 진정한 혁명, 육의 사람이 아닌 영의 사람으로, 땅에 속한 자가 아닌 하늘에 속한 자로 내 영, 혼, 몸뿐 아니라 지성, 감정, 의지의 영역에서도 진정한 혁명이 일어나야 하는데 우리가 얼마나 성령 안에 머물며 그 시간을 위해 할애했는지에 점검해보십시오. 오히려 세상의 지혜와 가르침, 가치관을 담는 삶에 시간을 할애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문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구습을 쫓는 습성대로 그대로 삽니다. 그래서 듣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바울이 ‘지식에까지 새롭게 되길 원하노라.’고 고백했듯 그 일이 진짜 우리 안에 일어나야하는데 언제 알게 되고 발견되고 제거되는가에 대해선 우리가 모릅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지혜나 능력은 우리 안에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우리가 성령님과 연합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장성한 분량으로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대가의 지불이 되지 않기에 이 일이 이뤄지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님께 의지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의 능력으로 이루려하고 성령님과 함께 머무르며 기도와 말씀, 임재 앞에 나오지 않고 영광 안에 충분히 머무르며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를 내려놓는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자신이 일하고 있는 장소를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 채우십시오. 그것은 갈망입니다. 어느 장소이든지 사무치듯 하나님을 갈망하고 주님 이름을 부르고 영광을 갈망하면 그 곳에 임재가 가득 채워집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여기 오면 이상해요.’
지금 중보 사역자이신 여경구 집사님은 내과 의사이시고 부인은 소아과 의사인데 그 부부의 병원에는 그냥 환자들이 와서 대기실에 앉아 있다가 웁니다. 아이도 울고, 무당도 울고 진료실에 들어와서도 웁니다. 그래서 왜 우냐고 물으면 자기도 모른다고, 그냥 대기실에 앉아 있었는데 눈물이 줄줄 나온다며 무당은 울다가 내가 왜 무당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갑자기 자기가 비참하다고 합니다. 이게 뭡니까? 그들의 영을 하나님께서 터치하시는 겁니다. 그 곳에 주님의 임재가 있습니다. 이 부부는 완전히 예수님께 올인했습니다. 하루 종일 진료하고 9시부터 철야에 나와 새벽 5시까지 안 갑니다. 월요일 목요일 철야와 토요일 중보모임에 빠지지 않습니다. 제가 측은해 보일 정도로 잠깐 1~2 시간 눈 붙이고 다시 진료하러 가십니다. 환자도 많은데 한사람, 한사람 진료한 후에 복음을 전하십니다. 가장 강력한 복음인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그 곳에 주님의 임재가 있기 때문에 진료실에 들어와 울면 다른 복음 전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그 한 마디에 고꾸라진답니다. 하나님께서도 기독교인보다 불교나 무당에 심취된 자들만 병원에 보내주신답니다. 하루에 100~200명의 환자를 혼자서 보는데 저의 남편이신 신 장로님도 의사라 저도 잘 압니다. 환자가 100명이 넘어가면 골치가 아프다고 합니다. 그래서 환자들에게 약을 일주일 줄 것을 1~2달치 주어 보낼 정도인데 그 분은 사이사이에 복음 전하고 기도하고 철야와 중보, 예배와 집회에 빠지지 않고 나오십니다. 회개가 저절로 되시죠? 그분들과 얘기해보시면 얼마나 온유하고 겸손하신지 모릅니다. 특별한 은사가 없음에도 선천성 신장 기형 환자 몇 사람이 나았습니다. 또 치명적인 약을 잘못 먹고 오신 분에게 기도해주고 잠깐 기다리시게 한 뒤 나갔다 와 보니 나았습니다. 암 같은 질병도 진료 후 기도해주고 큰 병원으로 보내드렸는데 큰 병원에서 암이 없어 수술할 필요가 없다며 다시 돌려보낸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일들이 그 병원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어 제가 농담으로 그 병원 이문동으로 오면 저희 병원이 타격을 입기 때문에 절대 오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저희 병원도 임재가 강력한 편임에도 그 병원과 수준이 다릅니다. 제가 예전에 늘 기도하고 말씀 묵상함으로 임재가 충만했는데 직원들끼리 임재를 구하고 있지만 아직 그 정도까진 아닙니다. 여러분이 직장에 다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의 통로가 되지 못한다는 법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직장에서도 주님의 강력한 임재로 채우시길 원하는 갈망만 있으면 그 임재로, 그 영광으로 채워집니다. 기적만이 아니라 영광에서 영광으로, 계속 주님의 형상과 아름다움을 닮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핑계대지 마시고 원함만 있으면 됩니다. 원함으로 하나님의 모든 것을 취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그것을 갈망하는가가 문제입니다. 그분이 얼마나 귀중하고 소중한지 가치를 알고 마음을 다해 하나님이 나의 전부이고 생명이시므로 오직 그분만을 내가 취하리라 하는 갈망이 문제입니다. 다른 환경적인 문제들은 다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건강, 능력, 지식보다 갈망, 사모함, 원함이 문제입니다. 그것만 있으면 불가능이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만 구하고 예수님만 얻고 점령 받으리라는 결단만 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과 육은 잠시 있다가 없어질 것이지만 오직 그리스도 안에만 우리의 영생이 있고 참 생명 안에서의 행복이 있는데 이 주님을 포기하는 어리석음을 포기하고 깨뜨리시기 바랍니다. 사탄이 어리석은 마음을 계속 부어주며 영원하고 참된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일을 차단하시기 바랍니다. 무의식 속에서도 그 생각들을 드러내셔서 내버리셔야 합니다. 성령의 불로 태우고 소멸시켜야 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 했는데 이 부패한 마음이 사탄을 계속 끌어들입니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것은 마음이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 성령님께서 다음에 이루고자 하시는 첫 번째 일이 바로 새 마음으로 변화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새 마음으로의 변화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변화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로 거짓되고 부패한 나의 마음이 완전히 새롭게 되도록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마음과 생각이 새로워지면 거룩한 것만 임하도록 요청하게 되어 진짜 성령의 사람, 성령의 열매 맺는 삶으로 변화됩니다. 그러나 마음이 변화되고 새로워지지 않기 때문에 분명히 새 피조물이 되어 성령의 열매 맺는 삶을 살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삶을 살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새로워지는 일을 원하지 않으니 은사나 형통, 승진, 축복만을 구하며 기도시간을 낭비하고만 있습니다. 내 마음이 완전히 새로워지고 성령의 소욕들만을 구하고 하늘의 것, 영의 것을 찾게 되기를 원해야 하는데 내가 나타나고 인정받고 드러나지는 나의 왕국, 명예만을 위해 기도하고 구하게 됩니다. 정직하게 말해서 세상 것을 구하는 기도훈련을 가르침 받아왔습니다. 교회 부흥과 성도 수 증가, 교회 건축을 위해 전성도가 금식하고 기도하지만 마음의 성전을 정말 아름답고 정결하게 세워지기 위해선 금식하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인 내 마음이 정결하게 세워지기 위해 아파하며 금식하고 비상 기도를 선포해야 하는데 어디에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성전 건축을 위해선 재산을 다 내어놓으라 하지만 내 마음의 거룩을 위해선 무슨 대가를 지불하라 합니까? 완전히 잘못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기도를 바르게 하셔야 합니다. 그동안 세상과 육의 썩어질 것들을 구축하기 위해 훈련되어 왔고 고3 수능생을 위해 자녀가 우상이 되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하나님을 위해 정결케 되고 거룩케 되기 위해 작정기도로 나아오는 것이 정상이고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될 일입니다. 교회에서 해야 할, 촉구할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고3을 위한 새벽기도회를 표어로 걸어두지만 하나님을 찾고, 갈망하며 내 죄를 회개하고 버리기 위해 철야와 작정기도를 선포하는 교회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와 거룩함과 진리의 새 성품으로 변화되기 위해 금식, 철야를 권하는 가르침이 없습니다. 결국 자신들의 명예와 우리 교회 이름을 높이고 자랑하기 위함입니다. 그 일을 위해 한 마음이 되어 도모하는 무지와 어둠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은 생명과 직결되기에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맹목적으로 그런 일들에 자신을 헌신하면서 정작 자신은 멸망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무지와 어둠에서 벗어나 성경을 바르게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무엇을 말하며 구하고 추구하라고 하는가를 똑바로 알고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육에 속한 복이 아닌 하늘의 신령한 복을 주시려고 창세전에 우릴 택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녀로 삼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의 세계이지 육의 세계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갈망하고 추구한다면 영의 것을 추구해야지 육의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일을 사모하고 위엣 것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왜 수고하며 썩어 없어질 것을 구해야 합니까? 더 이상 교회 안에서 이런 가르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드러내고 말씀이 가르치는 것을 그대로 선포하고 행하고 얻게 하는 진실한 가르침이 다시 부활되어야 합니다. 사도와 예수님이 가르치셨던 것처럼 회개와 천국을 사모하라 외치고 의를 행하고 거짓에서 떠날 것과 모든 [불의는] 탐심은 우상숭배인 것을 가르치고 육의 것을 구하지 말고 신령한 것을 구하고 영의 영역을 사모하도록 도전을 주고 그 삶이 실제가 되도록 성령님을 환영하고 충만하게 심령 속에서 역사되어지도록 성령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가르침에 순종하게 하는 가르침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동안 사람의 지혜로 교훈 받으며 속아왔습니다. 우리가 누려야 할 것과 참된 자유함,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함과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원하는 것이 실제가 되지 못한 삶을 살았지만 이제는 말씀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에베소서 1:3~5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왜 만드시고 선택하셨는가.
첫 번째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려고’ 우리를 자녀 되게 하신 것이니 이 신령한 복을 반드시 받아 누려야 합니다. 이 복이 우리 삶 안에서 우리의 모든 것을 주장하는 실제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추구하고 나아가셔야 합니다.
두 번째로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신령한 복 안에 들어가는 길은 하나님의 거룩, 온전함을 우리가 이루고 닮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거룩을 위해 싸우고 흠 없는 삶을 위해 눈물로 간구하며 성령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거룩과 흠 없는 온전함을 갈망하는 마음을 무산시키는 가르침이 교회 안에 편만합니다. 거룩하지 못한 것을 책망하고 죄와 악이라고, 끊으라고 엄히 경계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덮어주는 잘못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하나님 뜻 안에 있는 그 신령한 복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 되려면 반드시 거룩을 이뤄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품 안에서 영원히 살려면 거룩하고 흠 없는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을 추구하고 갈망하며 나아가야 되는 것이고 이것이 정상입니다.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야만 이런 축복이 주어진다고 착각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바로 거듭나고 그때부터 신령한 복 안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자로 살 수 있습니다. 천국에 가면 모두 하나님의 거룩으로 들어가는데 왜 거룩을 이루라고 하는가. 바로 이곳에서부터의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육체 안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고, 그분을 우리 안에 가득 채워서 그 안에서 살며, 신령한 복을 누리는 영생의 삶이 우리가 주님을 임금과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부터 이미 시작된다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입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 그들은 이미 그 복 안에 있었지만 타락했습니다. 그런 우리를 다시 구원하심은 이 복을 회복하기 위함입니다. 이 땅에서도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며 거룩하고 흠 없이 온전한 삶을 사는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자꾸 거룩을 천국에 가서 누리려고 미루지 마십시오. 속지 마십시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그 순간부터 천국이, 영생이, 거룩이, 온전함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이렇게 가르치고 있음에도 놓치는 것은 미혹입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교훈대로, 뜻대로 순수하게 보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기 생각대로 바꾸어버립니다. 하나님의 시점을 다르게 해석해버립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바로 천국입니다.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그때부터 천국은 시작입니다. 영생은 시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생으로 이미 들어갔습니다. 이제는 영생을 누려야 합니다.
영생은 바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잖아요. 그 아는 것이 제가 부부간의 관계를 말한다고 했잖아요. 완전히 하나됨, 서로 친밀함 가운데에서 온전히 하나를 이루고 서로 사랑 안에서 하나로 나아가는 것, 그 영생이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과 완전한 하나를 이루고 영생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거룩을 구해야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결단하고 거룩치 못한 것을 끊어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 이것을 가져가라고 이것을 소멸시키라고, 제거해달라고 구해고 내가 원해야 되는 겁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그 일을 해주십니다.
그리고 또 제가 말씀드렸지요.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그 이름의 권세를 주셨다고. 예수님이 죽으셨고 성령의 능력으로, 성결의 영으로 말미암아 부활하셨어요. 그리고 승천하시기 전에 두 가지를 주고 가신 겁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써, 죽기까지 복종함으로써 그 이름을 하나님께서 높이셨죠,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으로 높이시고, 그 이름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어요. 그래서 그 이름과 보혜사 성령님을 우리에게 주시고 가셨어요.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와 성령님 안에서 우리에게 실제가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전 6: 9~11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로부터 유업을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한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무엇과 무엇을 얻었어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우리가 이 두 가지로 씻음 받고 거룩함 받고 의롭다하심을 받습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 안에서입니다. 이 두 가지를 여러분이 대가만 지불하면 되요. 계속 이 두가지를 갖고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하고 성령님의 그 능력을, 도움을 요청해서 우리가 추구하고, 추구하고, 간구하고, 간구하고 나아가면 우린 반드시 거룩하고 흠 없는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의 형상을 덧입게 됩니다. 그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안에 이루어지는 일의 비밀을 모르고 있어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자가 되었는지를 모르고 있어요. 이미 우리는 이 거룩함으로 흠 없는 온전한 자들이 되는 것이 이루어져 있다는 것.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 안에서 이것이 실제가 되게 되어있다는 것. 그 이름을 주셨잖아요. 그 이름 안에 있는 권세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잖아요. 우리가 그 권세를 가지고 사용하도록, 믿는 자들이 사용하면 그 이름의 권세에 모든 것이 굴복되도록 되어 있잖아요. 그것과 보혜사 성령님을 주셨기 때문에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우리가 이미 얻었기 때문에 얻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실제가 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또 한 가지를 말씀 드리기 원합니다.
엡 2:4~7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이 실제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수님이 우리의 대속물이 되시고 그가 우리의 모든 죄를 다 담당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이 안에는, 엄청난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자기가 다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모든 기업을 다 받았기 때문에 그 기업 안에서 누리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무슨 일이 이루어졌는가.
5절에 보면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우리가 믿는 자들에게는 그 믿음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하면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같이 죽었죠. 그리고 같이 살리심을 받은거예요. 그래서 구원을 얻었는데
6절에 보니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주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사
우리가 주님과 함께 일어났고 함께 하늘에 앉혀지는 그 존재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하늘에 앉히운 자들이 되었다는 것일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의 실제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 위에, 아버지의 나라 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예수님이 계신 곳에 우리는 항상 함께 있습니다. 그것이 실제입니다. 그것을 이제 우리가 믿음으로 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이 모든 인류를 위해서 주어진 것이지요. 모든 인류를 위해 피 흘리셨지만 믿는 자만 그 구원을 얻는 것이죠, 그 구원을 누리는 것이죠. 이것도 똑같아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 이 일은 실제가 된 것인데 이것을 내가 믿음으로 취하고 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실제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가 있는 그곳에 같이 있습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나라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미 우리는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가 하늘에 앉히운 자가 되었기 때문에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입니다. 생각해보세요. 하늘에 내가 아직 안 들어갔는데 어떻게 내가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라고 말할 수 있나요? 아니죠? 그런데 분명히 성경은 우리는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이고 그 나라에 속한 자이고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했어요. 하나님의 나라 밖에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나라 안에 있다고 했어요.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했어요. 이미 우리는 천국에 있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셨나요? 우리는 천국시민입니다. 우리는 천국에 있는 자들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 속한 자들이 아니고 이 땅에 머물러 있는 자들이 아니에요. 이 땅이 우리를 붙잡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모르고 이 땅에 붙잡혀 있고, 이 땅이 우리를 붙잡고 있는 것을 허용한 것이에요. 땅에 속한자의 삶을 우리가 허용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 땅에서 벗어났습니다. 우리는 하늘에 앉히운 자가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몸이 있고 우리 안에 혼이 있고, 영이 있잖아요.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앉히운 자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그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더 이상 세상이 우리를 주관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의 통치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법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법대로, 그 교훈대로, 그 계명대로 사는 것, 이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땅에 속한 자들이 아닙니다. 여러분, 저는 이미 하늘에 속한자입니다. 이미 천국 안에 있는 자입니다. 저는 가끔씩 그런 말을 하지요. 나는 세상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이미 이 땅에서 벗어났습니다. 사실은 이미 여러분도 다 벗어난 자들입니다. 이미 여러분이 세상에서 벗어났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은혜로 인하여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은혜로 이미 천국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정말 예수님을 믿는 자들, 그래서 이미 천국에 들어간 자들이 육신의 몸을 벗고 천국으로 들어가지. 교회만 다닌다고 천국 못 들어갑니다. 절대로 못 들어갑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천국에 들어간 자들이 옷을 벗듯이 육신의 몸을 벗게 되는 것이지요. 그럴 때 그들이 세상에서 육신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세상에 있을 필요가 없잖아요. 그래서 참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육신을 벗고 들어가는 것이예요.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없는 자들, 그래서 천국에 앉혀있지 않는 자들, 그 사람들은 못 들어가요. 들어가고 싶어도 천국이 없기 때문에 못 들어갑니다. 그리스도가 없기 때문에, 이미 하나님의 나라 밖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 밖에 있어야 되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세요? 영적인 영역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는 사람들은 다 이미 지옥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심령은 어둠이요, 고통입니다. 이것이 실제예요. 그래서 지금 지옥에 있는 자들은 지옥에 갑니다. 육신의 몸을 벗었을 때 자기 안에 지옥이 있기 때문에 지옥으로 가는 거예요. 자기 안에 천국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천국으로 가는 거예요. 이게 진짜입니다. 이게 영적인 우리의 실상입니다. 그럼 여러분이 이제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진정한 정체성을 알게 되었잖아요. 이제 세상 것 때문에 걱정하고 근심할 필요가 없는 세상에서 벗어난 자들이 되었잖아요. 그래서 그것을 성경은 '헛된 근심' 헛된 영광을 구하는 것이라 했어요. 진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그게 헛되고 쓸 데 없는 것입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입을까 먹을까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생명을 이미 취한 자들이 뭘 염려할 거예요? 이제 생명을 가졌는데 뭘 염려를 해요? 세상에서 가난한 게 무슨 소용이고 세상에서 낮고 비천한 가운데 있는 게 무슨 소용입니까! 우리는 이미 영원한, 참된, 영광스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있는데. 세상에서 좀 구차하면 어때요. 세상에서 무시당하고 멸시당하면 어때요? 세상에서 조금 불편하면 어때요? 돈이 없으면 조금 불편할 수 있습니다. 또 무시 받고 천대받을 수밖에 없는 직업에 있으면 그게 뭐 어때요? 이미 나는 천국에 있는데. 이미 나는 영원하고 참된, 영화로운 나라에 들어가 버렸는데..단지 육신 안에 있어서 지금 여기 세상에 있을 뿐이지 이미 천국이 내 것이 되었는데. 그래서 진짜 믿는 자는 신령한 기쁨, 주는 자와 받는 자밖에 알 수 없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만 알 수 있는 그 은밀한 기쁨, 그것이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채찍에 맞아도, 스데반이 돌에 맞아 그 고통 가운데 있어도 그와 무관할 수밖에 없는, 그것이 실제 가능하다는 것. 영원한 기쁨, 영원한 생명을 이미 취한 자들은 돌에 맞아 죽는 고통이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때 스데반의 눈이 열려서 보니 이미 하늘 문이 열리고 예수님이 자기를 맞으러, 자기를 안고 데리고 올라가는 것을 보았잖아요. 무슨 소용 있겠어요?
여러분, 이제 진짜 참된 지식 안으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이 참된 지식이 여러분 안에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여러분이 놓친 거예요. 이제 진짜 하늘에 속한 자의 삶을 사셔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만 손해에요. 그러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탄식하실까요. 이럴 수가 있나. 자기들은 이미 천국에 들어와 있는데. 이미 하늘에 앉히운 자로 들어와 있는데 계속 지옥을 즐기고 뛰어 들어가고 있는가. 근심, 걱정, 고통으로 뛰어 들어가고 시기하고 미워하고 용서도 못해. 자기 스스로 지옥으로 뛰어 들어 가는겁니다. 여러분, 이제 절대로 그것들을 허용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미 천국에 있는 자임을 믿고 여러분이 담대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으로 그동안 여러분들이 붙들고 있었던 지옥의 끈들을 놓으시고 끊어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기뻐하세요. 그리고 즐거워하세요. 그리고 영원한 그 행복 안에서 사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