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흑마술 집회
비밀 단체, 폭크 롯지(F.O.G.C Lodge)3의 멤버들은 드레스덴에서 열리는 총회를 위해 속속 모여들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겁에 질린 듯한 표정이 역력했다. 회의장은 대저택 안에 마련되어 있었다. 그곳은 고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지고 큰 숲 뒤에 가려진 사유 공원 한 가운데 숨어 있었다.
폭크 롯지의 회장이 99명의 멤버들 중에서 98명에게 참석 통지를 알린 터였다. 회의가 시작되기 오래 전부터 멤버들은 두 개의 긴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회장이 비서와 함께 들어서자 홀 안에서 웅성거리던 대화 소리가 뚝 그쳤다. 회장이 홀 입구 맞은편에 놓여 있는 연단 테이블 의자에 앉았다. 그가 벨을 울리자 홀 안은 완전한 정적에 싸였다. 그가 예리하고 강한 목소리로 회원들에게 연설하기 시작했다.
“친애하는 형제 여러분, 제가 소집한 오늘 모임에 전원이 참석해 주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 롯지의 법칙에 따르면 총회는 오직 이번처럼 매우 특별한 사안에 한해서만 열리게 됩니다.
여러분도 이미 아시고 계시겠지만 이 자리에는 실레시우스 형제가 없습니다. 불행히도 그가 롯지의 비밀을 누설한 혐의가 발견되었습니다. 오늘의 첫 번째 의제는 그에 대한 처벌을 논의하는 것이고, 두 번째 의제는 이곳 드레스덴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명한 마법사 프라바토에 대한 것입니다.
“친애하는 회원 여러분, 여러분도 모두 알다시피 실레시우스 형제는 우리 롯지의 제 25 입문 등급4에 속해 있습니다. 따라서 그도 자신의 잘못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음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는 엘리멘탈5을 소환하는데 사용하는 의식(儀式)들을 자기 친구에게 누설하였습니다.
우리 롯지의 법에 따르면 서약 위반과 비밀 누설의 대가는 죽음입니다. 그러나 최종결정은 오직 참석자 전원의 비밀 투표 후에 내려지게 될 겁니다. 비록 문제 당사자는 제 친구이긴 하지만 그의 행위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그를 여러분의 심판에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극도의 긴장감이 급속히 홀 안을 휩쓸었다. 흥분한 멤버들은 서로 귓속말로 수군거렸다. 어떤 이들은 분노를 표시했고 어떤 이들은 멍하니 앉아 있기만 했다. 비서가 종이쪽지가 담긴 봉투들을 참석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예’ ‘아니오’가 롯지의 한 형제 멤버의 생사를 결정하게 될 것이었다. ‘예’는 심령 공격에 의한 사형을, ‘아니오’는 자유와 생명을 의미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빨리 자신의 판단을 적어나갔지만 어떤 이들은 잠시 머뭇거렸다. 몇몇은 손을 덜덜 떨었다. 많은 사람들이 실레시우스를 무척 좋아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동정심을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롯지에 대한 배신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위험으로 몰고 가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비서가 작은 나무 상자에 투표 용지를 모두 수거한 뒤 찬반에 따라 둘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멤버들이 숨죽여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비서가 매우 조심스럽게 투표 용지를 센 뒤 결과를 살폈다. 그의 장밋빛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가 회장에게 개표 결과를 보고하였다. 숫자를 보는 그의 얼굴에 충격의 기색이 역력하게 비쳤다. 절친한 친구가 이제 막 사형 언도를 받은 것이다. 그는 매우 당혹해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친애하는 형제 여러분.”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불행히도 투표 결과 51 대 47로 실레시우스에게 죽음의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롯지 법규에 따라 이 선고는 한 달 안에 집행돼야 합니다. 그러나 실레시우스는 오컬트 기술을 사용하여 이 사실을 알게 될 것이고 어떻게든 죽음을 모면하려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선고를 24 시간 안에 집행하게 될 것입니다. 실레시우스로부터 롯지의 비밀을 알게 된 친구 또한 그와 동일한 운명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테레파시의 마스터, 21분의 위원님들은 모임이 끝난 뒤 여기 남아 주시길 바랍니다. 저를 도와 심령 공격에 참여해 주었으면 합니다.”
투표 결과에 충격을 받았던 회장은 빨리 평정을 되찾았고, 한결 침착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첫 번째 의제에 대한 사안을 마치고 이제부터는 프라바토 건을 다루겠습니다. 그의 강연회에 참석했던 우리 멤버들의 보고에 따르면 그는 트릭을 쓰지 않고 초능력을 발휘했다고 합니다. 그의 시연은 기대 이상으로 성공적이었습니다. 그의 능력은 우리 멤버들보다 훨씬 더 뛰어났습니다. 우리의 뛰어난 영능력자 헤르메스가 그를 시험하기 위해 찾아갔었습니다. 이제 헤르메스가 자신의 체험담을 말해줄 것입니다.”
고상하게 생긴 신사 한 사람이 멤버들 사이에서 일어섰다. 어제 밤 프라바토를 방문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저는 점성학적으로 가장 길한 시간을 택해 프라바토를 찾아갔습니다. 첫 대면부터 제압하기 위해 사원소6들의 관계도 고려했죠. 게다가 강연회를 곧 끝낸 뒤라 그가 지쳐 있길 바랬습니다. 그래야 제가 유리하니까요. 뜻밖의 시간에 방문하게 된 것은 여행 일정 때문이라고 둘러댔습니다. 제 설명을 듣자 프라바토는 저를 날카롭게 쳐다보고는 아무 말 없이 미소만 띠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우리 롯지에 대해 요모조모 설명해 준 뒤 가입해 준다면 거금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프라바토는 저의 제안을 한 마디로 거절해 버린 뒤, 자신의 전국 순회 강연회 성공담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찌나 흥미진진했던지 제가 방문한 이유도 잊어버릴 정도였죠.
“시간이 흘러 제가 그의 말을 끊고 관심을 저의 제안 쪽으로 돌리려고 애썼습니다. 그러자 그가 일어나 침대 밑에서 가방을 꺼내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자 이제 당신네 롯지에 대해 아카식 레코드(Akasic Record)7를 한 번 볼까요.’
“친애하는 멤버 여러분, 아시다시피 저는 오컬트 기술과 행법들에 대해 매우 정통합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능력을 총동원하여 프라바토의 실험을 막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그가 저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헤르메스 선생, 이 실험은 순전히 제 의지력에 달려 있어요. 당신은 이걸 막거나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습니다. 당신이 아무리 애써도 소용없어요.’
“저는 프라바토가 저를 꿰뚫어 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그가 준비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먼저 그는 손을 깨끗하게 씻고는 가방에서 액체가 든 작은 병을 하나 꺼내더니 몇 방울 떨어뜨려 손에 바르더군요. 그건 틀림없이 어떤 식물들의 추출액8이었습니다. 상큼한 향기가 방안에 퍼져갔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작은 상자에서 램프를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습니다. 그리곤 또 다른 상자에서 직경 20 센티 가량의 유리 구슬을 꺼내 테이블 위의 받침대에 놓았습니다.
이 유리구는 뭐에 쓸 거냐고 묻자 프라바토가 웃으며 말하더군요. ‘당신네 롯지에 오컬트에 정통한 투시가들이 있다면 이것이 마법 거울9이라는 것을 알 거요. 이 구 속에는 특별한 성분의 액체가 들어 있지요. 이걸 만들려면 끈기 있는 노력과 고도의 마법 능력이 필요하지요.’
“저의 지식은 프라바토를 따라갈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냥 조용히 지켜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그 구로부터 약 1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습니다. 프라바토가 램프에 불을 키고 방안의 전기 스위치를 내렸습니다. 그리곤 어떤 일이 있어도 조용히 있어야 한다고 제게 말하더군요.
구의 반사광에서 스펙트럼의 모든 칼라들이 방사되었습니다. 작은 불꽃이 구와 그 주위의 공간을 밝혔고 특별한 향기도 방출했습니다. 저는 단번에 생각했습니다. 램프의 연료는 틀림없이 특별한 액기스로 만들어진 거라고. 그러나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프라바토는 제 마음을 읽고 말했습니다. ‘난 당신 생각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이 큰 소리로 말하는 것처럼요. 그러니 물어볼 게 있으면 말씀하세요. 상념 리딩에 대해서는 당신네 롯지에서 가르쳐 주지 않나요?‘
“저는 화가 났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애썼죠. 이 사람한테서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죠.
“그가 말을 계속 이었습니다. ‘당신에게 영화를 보여주겠소. 그러면 당신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거요. 롯지 멤버가 되는 게 정녕 이익인지 아닌지.’
“저는 혹시 그가 어떤 트릭을 쓰지는 않는지 그의 동작 하나하나를 유심히 살폈습니다. 그는 셔츠 소매를 말아 올리더니 구를 앞에 두고 제 옆에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그가 유리구에 두 손을 쭉 뻗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손가락에서 회백색의 광선이 나와 구 속으로 흡수되었습니다.
몇 초 후 구에서 불같은 오팔 빛이 나와 주변이 환히 밝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프라바토가 빛을 다 방사한 뒤 말하더군요. 그 마법 구 안에 나오는 이미지들을 사진으로 현상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그리고 그가 다음 말을 이었을 때 제 몸에는 전율이 스치더군요.
“‘자 이제 당신의 존경하는 회장님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볼까요? 그의 좋고 나쁜 기질을 모두 환히 알게 될 겁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잘 보세요, 졸지 마시구요.’
“호기심에 신경이 곤두섰지만 사실 구에서 나오는 이상한 빛 때문에 피곤해져 있었거든요. 저는 바보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 모든 의지력을 모았고 실험하는 동안 깨어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 오팔 빛은 방 전체를 환히 비췄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차츰 구 안에서 기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구 안에서 다양한 색깔의 구름이 떠돌더니 곧 용해되어 자색의 빛을 띠었고 다음 순간 그것은 우리 회장님의 이미지로 응고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마치 파노라마처럼 회장님의 아주 어린 시절에서 현재까지의 모습이 빠른 속도로 펼쳐졌습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놀라운 영상에 저는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회장의 낯빛이 울그락푸르락 해져갔다. 헤르메스가 마법 거울에 비친 회장의 인생에 대한 놀라운 사건들 몇 가지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회장이 그에게 그런 말을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를 슬쩍 건넸다. 헤르메스는 그의 뜻을 이해하고 보다 일반적인 주제로 슬그머니 넘어가 버렸다.
“이런 마법적인 방법으로 우리 회장님과 롯지의 현재까지의 지나온 자취를 죽 훑어 보여준 뒤 프라바토가 구 위에 오른손 인지로 원과 어떤 형상을 그리자 그 이미지들이 사라졌습니다.
“제가 구에서 몸을 돌리려는 순간 이번에는 그 안에 우리 롯지 비서 님의 형상이 순식간에 응고되어 나타났습니다. 역시 영화처럼 비서 님의 인생 필름이 돌아가더군요. 롯지의 모든 잘못된 행위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이런 식으로 프라바토는 일곱 분의 우리 롯지 고위 멤버들의 삶을 계속 보여줬습니다. 그가 제 삶까지 보여주려 하자 당황해서 얼른 사양했죠. 그가 또 다른 기호를 구 위에 그리면서 뭐라고 중얼거리자 빛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프라바토가 일어서더니 전기 불을 키고 램프를 껐습니다. 그는 조용히 구와 램프를 상자에 다시 갖다 놓고 가방에 담아 자물쇠로 잠갔습니다. 정돈을 끝낸 후 경멸조로 제게 묻더군요. ‘자, 선생, 아직도 제게 가입을 권하시겠습니까?’
“저는 그의 마법력에 완전히 넋이 나가 한 마디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모자와 코트를 움켜쥐고 황급히 문을 나설 수밖에 없었죠. 회랑에 나와서야 겨우 코트와 모자를 걸치고 호텔을 허겁지겁 빠져나왔습니다. 우리 롯지의 힘에 대한 제 믿음은 크게 흔들렸고 저는 그 날 밤 한 숨도 잘 수 없었습니다.”
프라바토와의 경험에 대한 설명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모두들 미동도 하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만이 공기를 누르고 있었다. 잠시 후 회장이 서둘러 일어서더니 날카로운 목소리로 짓눌린 침묵을 깼다.
“헤르메스님,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신 노고에 우리 롯지의 이름으로 치하하는 바입니다. 제 생각에 프라바토가 우리 롯지의 활동과 고위 멤버들의 행적을 들추어낸 것은 큰 도발행위라고 봅니다. 어둠의 주님의 이름으로 맹세컨대, 우리는 프라바토에게 지옥의 모든 분노를 풀어놓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로 하여금 행위의 대가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저는 우리 롯지가 모욕당하는 것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습니다! 그가 처참히 망할 때까지 파멸의 진동을 보낼 것입니다! 사탄의 이름으로 그에게 저주가 내릴지어다!”
분노한 회장이 끔찍한 저주를 퍼부었다. 공개석 상에서 그렇게 심한 저주를 한 적은 이제껏 한 번도 없었다. 그런 저주를 받은 자는 예외 없이 희생물이 되었고 교단으로부터의 박해를 피할 수 없었다.
회장은 21명의 집행위원들을 남게 한 후, 모임에 참석하고 협조해준 모든 멤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는 회의를 마치는 벨을 울렸다. 멤버들은 롯지의 비밀 사인 동작10을 한 후 회의장을 떠나 혼잡한 도심 속으로 사라져갔다. 남의 눈에 띠지 않게 은밀히 행동하는 것은 롯지의 가장 엄격한 규율 중 하나였다. 그것은 일반 대중의 주의를 끌지 않기 위한 조치였다.
회장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의 얼굴에는 흡족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 프라바토가 강력한 적수가 될 것임을. 저주를 내린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다. 끝장을 볼 때까지 이 싸움은 목숨을 걸고 계속될 것이다. 어떠한 상황 하에서도 그는 자기 권위의 상실, 아니 손상조차 용납할 수 없었다.
남겨진 롯지의 집행 위원들은 프라바토를 어떻게 공격할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였다. 많은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었다. 비서는 속기로 그것들을 기록하였다. 다음 모임에 그것들을 표결에 붙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실레시우스 건은 전통적인 방법으로 처리하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더 이상의 논의가 필요 없었다. 회장의 신호가 떨어지자 비서가 홀을 나와 저택의 후미에 위치한 한 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은 창문이 없었고 입구는 특수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다. 그 방안에는 이상한 형태의 벽장이 있었는데 그 안에 다양한 마법 장비들이 보관돼 있었다.
비서가 철로 된 트렁크를 열어 중간 크기의 관을 꺼냈다. 그 안에는 왁스로 된 인형이 있었다. 그는 벽 속의 금고에서 마개로 봉해진 큰 갈색 병을 꺼냈다. 그는 방 한 가운데 있는 테이블 위에 왁스 인형과 갈색 병을 놓았다. 그는 포켓 나이프로 왁스 인형의 머리에 있는 작은판을 풀었다. 그러자 작은 구멍이 드러났다. 그 구멍으로부터 인형의 등까지 손가락 너비의 홈이 길게 내려와 있었다.
그리고 나서 비서는 마개를 따서 갈색 병을 열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인형에 난 구멍 속으로 액체를 가득 부었다. 그리고는 판으로 구멍을 다시 닫고 액체 왁스로 다시 그것을 고정시켰다. 그는 왁스를 손질하여 구멍의 흔적을 없앴다. 그는 병을 닫고 도장이 새겨진 반지를 이용해 그것을 봉인했다.
인형의 가슴 위에는 둥그런 원이 있었다. 비서는 그 안에 희생자의 롯지명(롯지 내에서 불리는 이름)을 적었다. 그는 벽장에서 서류를 꺼내 롯지 비밀 암호로 그 날짜와 피집행인의 이름을 기입하고는 다시 제자리에 놓았다.
그리고 나서 그는 책상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는 강도가 다른 갖가지 모양의 길고 짧은 단검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그는 작고 날카로운 것을 하나 택했다. 그는 혹시 잊은 건 없는 지 확인한 뒤 왁스 인형과 단검을 관속에 넣은 뒤 그 방을 나섰다.
그는 팔 아래에 관을 낀 채 조심스럽게 문을 잠그고는 회의장으로 다시 돌아갔다. 회장이 그 관을 받았다. 그는 인형이 제대로 준비되었는지 상태를 확인한 뒤 관을 바닥에 똑바로 세워 놓았다. 세 개의 큰 초를 켜고 전기 불을 껐다.
21 집행위원들이 인형 주위에 원형으로 섰다. 회장은 원 밖에서 감독하였다. 위원들은 손을 맞잡고 인형 주위를 천천히 일곱 바퀴 돌았다. 그 동안 그들은 인형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들은 서로 일치되는 동작으로 팔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리드미컬하게 호흡하기 시작했다. 날숨과 함께 팔을 내릴 때마다 그들은 마법 공식을 되풀이 외웠다. 매번 할 때마다 목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전체 의식(儀式)이 반복되었고 그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그러자 인형 주위에 안개가 일기 시작하더니 구름처럼 진해지며 원형으로 고형화 되었다. 그것은 마치 인형을 꿀꺽 삼킬 듯 한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회색 빛이던 것이 이제는 붉은 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어둠의 형체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잠시 후, 구름 형상은 타오르는 붉은 색깔을 띠었다. 회장이 그것에 다가간 뒤 오른 손으로 공중에 어떤 사인을 그렸다. 그리고 나서 그는 위원들로 이루어진 원을 풀게 했다. 서서히 붉은 구름이 왁스 인형 속으로 사라져갔다. 지친 위원들이 테이블에 주저앉았다.
회장이 인형을 들고 그걸 관속에 넣었다. 관의 양쪽에는 촛대에 초가 꽂혀 있었다. 그는 엄숙하게 그 초들에 불을 켰다. 홀 안은 완전한 정적이 감돌았다. 21명의 집행위원들은 초조감으로 경직돼 있었고 아무도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회장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 마치 가면 같았다. 그는 미리 준비해둔 단검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더니 손을 뻗어 쥐었다. 그는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의 눈은 희생자의 이름이 적힌 원에 고정돼 있었다.
마침내 칼날이 촛불에 번쩍이며 인형의 가슴에 꽂혔다. 그때 날카로운 천둥소리가 홀 바닥을 울렸다. 폭풍이 불어닥칠 듯, 굉음이 대기를 채웠다. 몇 초간 지속되던 굉음은 차츰 우르릉거리며 저 멀리 사라지더니 마침내 완전히 가라앉아 불길한 정적만을 남겼다.11
회장의 얼굴에는 승리의 기색이 감돌았다. 그는 자신이 생명과 죽음을 좌지우지하는 자라고 느끼고 있었다.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그는 가까운 의자에 털썩 앉았다.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이미 이런 현상에 익숙한 터였지만, 그럼에도 매번 의식을 치를 때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곤 했다. 먼저 정신을 차린 비서가 전기 스위치를 올리고 촛불을 끄고 나서 관을 치웠다.
다른 위원들도 다시 평정을 되찾았다. 그들이 경험한 현상은 자신들의 목적이 성취된다는 신호였다. 회장은 기록부에 이 마법 의식의 세부사항들을 적었다. 그 사이 위원들은 서로 조용히 대화를 나누었다. 마침내 회장이 일어서 위원들에게 말했다.
“친애하는 위원 여러분, 성공적인 의식을 치러 주신데 대해 감사 드립니다. 실레시우스는 정확히 밤 10시에 심장 마비로 죽을 것입니다. 우리는 신성한 교단의 규정에 따라 형벌을 집행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반역 행위에 대한 대가를 치른 것입니다. 그의 친구 역시 죽음이 언도되었지만 집행은 추후에 하게 될 겁니다.
이 건에 대해서는 다음 모임 때 의논하기로 합시다. 실레시우스를 대신하게 될 새로운 멤버의 입문식은 성요한일 모임 때 하게 될 것입니다. 내일 밤 8시 여기서 여러분들을 다시 만나 뵙게 되길 바랍니다. 의제는 프라바토 건에 대한 것입니다. 오늘의 모임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위원들은 한 사람씩 차례로 롯지를 떠나 아무도 모르게 어둠 속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
철도역에 걸린 대형 시계의 분침이 서서히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역 광장에는 수많은 여행객들이 베를린행 직행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큰 스피커에서 열차의 도착 예정을 알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다리던 승객들이 재빨리 플랫폼으로 올라갔다. 몇 분 후면 이곳 드레스덴에 열차가 정차할 것이다.
프라바토는 열차 시간표 앞에 서서 수첩에 메모를 하고 있었다. 직행 열차가 도착하자 그는 수첩을 호주머니에 다시 집어넣었다. 객차 문이 바로 그 앞에서 열렸다.
한 젊은이가 열차 칸에서 뛰어내리더니 급히 구내매점으로 달려갔다. 비스킷 한 봉지를 산 뒤 돈을 내고는 다시 열차로 돌아오던 찰라, 그는 몇 걸음 못 가서 갑자기 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더니 신음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고통으로 몇 초 동안 몸을 비틀어댔다. 얼굴은 경련으로 일그러졌다. 잠시 후 요동치던 몸이 움직임을 그쳤다.
호기심에 찬 구경꾼들이 삽시간에 그 젊은이의 주위에 몰려들었다. 경찰이 허겁지겁 달려와 그를 역사무실로 옮겼다. 누군가 병원에 전화를 걸었고 목격자들이 진술을 했다.
근처에 서 있던 프라바토는 조용히 사건의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는 본능적으로 이 청년이 자연사한 것이 아님을 알았다. 마법사의 직감으로, 그는 도움을 주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는 천천히 역을 떠나 라이프치거스트라세로 걸어갔다. 한 시간쯤 걸은 뒤 그는 교외의 작은 숲에 멈추어 휴식을 취했다.
그 날 밤 날씨는 놀라울 정도로 청명했다. 수정 같은 하늘로부터 달과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명상에 잠긴 채 잠시동안 머문 뒤 그는 호텔로 향했다. 엘베 항구 근처에 이르자 그는 택시를 잡아탄 뒤 호텔에 당도했다.
그가 방에 들어선 것은 새벽 2시경. 그는 문을 잠근 뒤 가방을 꺼내 마법구를 설치했다. 마법구를 통해 그는 예상했던 대로 기차역에서 죽은 청년이 폭크 롯지의 공격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드레스덴에서 가장 큰 일간 신문을 샀다. 그가 찾고 있던 것이 일면 머릿기사에 나 있었다. ‘드레스덴 중앙 역에서의 죽음’이라는 표제 하에 이런 기사가 실려 있었다.
“어제 밤 10시 중앙 역에서 유명한 작가 알프레드 M이 급사하였다. 우리는 이 젊고 유능한 작가의 갑작스런 죽음에 애도를 표하는 바이다. 그의 여러 작품들은 열광적인 호응을 받아 왔으며 최근에는 그의 소설 ‘약속’이 출판된 바 있다. 우리는 이 야심 차고 재능 있는 작가를 가슴속에 영원히 기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