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江寒 - 武陵樵子 : 第17章 ＜17-1＞

[녹정]

大江寒    第17章

<17-1>
잠시 후.....

백월하(柏月霞)가 혼자 절벽 꼭대기로 올라왔고 두 사람 네 눈동자는 오랫동안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들은 만감이 교차하는 것을 느꼈지만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매(霞妹), 잘 지냈소?"
당몽주가 이윽고 미소를 지으며 먼저 입을 열자, 백월하가 다소 토라진 표정으로 말했다.
"몽 오라버니, 소매(小妹)는 이곳 백천애(百泉崖)에서 하루를 일 년처럼 느끼며 지내고 있는데, 설마 이 동생 생각을 안 하신 건 아니죠?"
당몽주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매(霞妹), 당분간은 참아 주시오."
잠시 망설이다가 온 목적을 꺼냈다.
"오늘 우형(愚兄)이 온 것은 동생의 도움이 필요해서요."
백월하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급히 말했다.
"소매(小妹)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절대 마다하지 않겠어요."
당몽주는,
"우형이 자전검(紫电剑)을 잠시 빌리려고 하는데, 단 부마마(傅嬷嬷)는 모르게 했으면 좋겠소."
라고 말한 뒤 수중의 철괴(铁拐)를 내밀며 말을 이어갔다.
"잠시 부마마의 눈을 속일 수 있을 것이오."

백월하가 의혹의 눈빛으로 물었다.
"왜 부마마를 속여야 하죠? 설마 그녀를 믿지 못하시는 건가요?"
"아니오!"
당몽주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흉사의 무리가 자전검을 손에 넣기 위해 안달인 것은 잘 알 터이고, 결국 백천애에서 변고가 자주 일어나는 것은 다름 아닌 자전검 때문이오. 흉악한 무리 중에도 지혜로운 자가 적지 않으니, 만약 누군가 어느 순간 자전검이 백천애에 숨겨져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면, 부마마(傅嬷嬷)의 철괴에까지 생각이 미칠 것이고, 반드시 몰래 사람을 보내 빼앗으려 하지 않겠소? 그러면 부마마는 철괴(铁拐)를 지키기 위해 그들과 목숨 걸고 싸울 것인데, 만약 부마마가 자전검을 내가 가져간 것을 알고 있으면 싸움에 최선을 다하지 않게 되고, 잃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그들의 의심을 살 것이오."
백월하가 은방울 구르는 듯한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몽 오빠는 정말 고심막측(高深莫测)하세요. 세상 천지에 이 동생을 마음과 입으로 굴복시킬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오라버니뿐이에요."
그녀가 철괴를 건네받으며,
"금세 다녀올게요."
하고는 절벽 아래로 사라졌다.

얼마 후, 백월하가 총총걸음으로 돌아와 교태롭게 웃으며 말했다.
"다행히 당부하신 바를 욕되게 하지 않았네요."
말을 하며 자전검을 숨긴 철괴를 당몽주에게 건넸다.
당몽주가 철괴를 받은 손에 약간 힘을 주자 뚝 하는 소리와 함께 철괴가 부러지며 자전검(紫电剑)이 검집째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자전검을 어깨에 메더니 부러진 철괴는 가볍게 찌그러뜨려 작은 쇳덩이로 만든 다음 절벽 아래로 던졌다.
백월하는 직감으로 당몽주가 곧 떠나려는 것을 알았다.
"몽 오라버니, 떠나시려고요?"
당몽주가 말했다.
"밤이 깊고 바람도 차갑소. 우형은 가야 하니 현매는 몸 보중하시오."
그 순간 백월하는 갑자기 무언가를 느끼며 재빨리 당몽주의 왼쪽 팔을 잡고 가까운 벼랑 틈새로 뛰어들었다.

두 명의 희미한 그림자가 날아오는 것이 보였는데, 그중 한 사람이 이상하다는 듯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괴이한 일이로다. 노부는 백 소저가 절벽 꼭대기로 올라가는 것을 두 눈으로 목도했는데 어찌하여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그 속에 반드시 곡절이 있을 터이니 어서 이곡주에게 알려야겠소."
백월하가 갑자기 몸을 날려 금강단혼지(金刚断魂指) 수법으로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두 사람의 옆구리 요혈을 찔렀고, 두 사람은 따끔거리는 것을 느끼는 순간 짧게 신음을 발하며 동시에 쓰러져 목숨이 끊어졌다.

잠시 후 당몽주가 뒤따라 나와 두 사람이 죽은 것을 확인하곤,
"현매, 몸조심하시오!"
라는 말을 남긴 채 마치 나는 새처럼 벼랑 아래 비밀 통로를 향해 몸을 날렸다.
백월하는 순간 가슴이 막히고 눈물이 고였지만 꾹 참고 곧바로 몸을 돌려 절벽 아래로 뛰어내려가 "소도!" 하고 외쳤다.
어둠 속에서 소도(小桃)가 생긋 웃으며 재빨리 모습을 드러냈다.
"아가씨, 찾으셨나요?"
백월하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가서 이곡주를 모셔 오너라."
소도가 명을 받고 달려갔다.

백월하는 백천애 객청(客厅)으로 들어서자 눈앞에 당몽주의 준수하고 탈속한 모습이 환영처럼 나타나 자신도 모르게 망연자실에 빠져 있다가, 갑작스런 기침 소리에 정신이 벌떡 들었다.
"현질녀(贤侄女)가 숙부를 무슨 일로 찾는가?"
하는 말과 함께 안홍경(颜鸿庆)이 객청으로 들어왔다.

백월하가 얼음처럼 차가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조카로서 감히 이숙을 수고스럽게 오시라 하는 것은 마땅히 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워낙 중요한 일로 이숙을 모시고 한 말씀 올려야 했기에 이리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안홍경의 두 가닥 검미가 잔뜩 찌푸려졌다.
그가 아는 백월하의 성격으론 무척 중대한 사안이 아니면 결코 이리할 리가 없다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속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여유로운 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질녀와 나는 남이 아닌데 그런 말을 하면 너무 서먹서먹하지 않은가? 도대체 무슨 일인지 얘기해 주면 숙부가 조카를 대신해 처리하도록 하지."

백월하가 두 눈에 노기를 가득 담고 입을 열었다.
"이숙께선 질녀가 매일 밤 자시(子时) 무렵이면 반드시 북애(北崖) 정상으로 올라가 검을 연습한다는 것을 아시지 않나요? 오늘 밤 그곳에 갑자기 두 괴한의 암습을 받아 조카는, 경황이 없는 상태에서 금강지(金刚指)를 펼쳐 두 사람을 죽인 다음에야, 그들이 숙부께서 초빙한 인물들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안홍경은 대뜸 안색이 급변했다.
"그런 일이 발생하다니! 내가 북애(北崖)로 가서 조사해 보겠다!"


말을 마치자마자 안홍경이 북애 꼭대기로 달려가 보니, 과연 두 구의 시체가 벼랑 위에 쓰러져 있었고 몸에 지니고 있던 병기는 두 장 정도 떨어진 곳에 흩어져 있었다.
죽은 자들이 치명상을 입은 부위를 자세히 살펴보니 백월하의 금강단혼지에 당한 것이 분명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두 사람은 모두 무림의 일류 고수로 공력이 범상치 않은데, 필시 뭔가 중대한 의심스러운 것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백월하에게 갑자기 습격을 가했겠는가? 그 속에는 반드시 곡절이 있을 것이다.'
잠시 생각을 굴리던 안홍경이 이윽고 벼랑 아래로 몸을 날렸다.

어둠 속에서 엄미미(严薇薇)가 갑자기 나타나 안홍경의 모습이 절벽 아래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더니, 역시 몸을 날려 절벽 아래로 내려와 백월하의 처소 뒤편 창문으로 살며시 다가갔다.
백월하의 음성이 들렸다.
"이숙께선 북애 위에 올라가 보셨나요?"
안홍경이 대답했다.
"다녀오는 길이오. 못난 숙부로서는 그중에 반드시 무슨 오해가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더군. 달도 없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는 우군과 적군을 구별할 수 없으니, 그들이 현질녀를 외부의 적으로 오인하여 갑자기 공격을 하지 않았나 싶소."
백월하가 냉소하며 말했다.
"조카를 세 살짜리 어린애 취급하지 마세요. 설사 적이라 의심되더라도 먼저 분명히 물은 다음 공격해야 하는 게 상리가 아닐까요? 이 무우곡 안팎에는 복병이 바둑판의 돌처럼 촘촘히 깔려 있어 경보가 발하면 설령 삼두육비(三头六臂)를 지닌 적이라도 한 발짝도 안으로 침범할 수 없습니다. 번거로우시겠지만 이숙께서는 수하들을 백천애(百泉崖)에서 철수시키세요. 동료들의 비호가 없었다면 그 두 사람이 어떻게 북애(北崖) 꼭대기에 오를 수 있었겠습니까?"
안홍경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리석은 숙부는 영존 어르신의 중탁(重托)을 저버릴까 두려워 조카의 뜻을 따르기 어렵네. 이번 일은 숙부가 그 내막을 조사하여 조처를 취할 테니, 현질녀는 마음을 풀고 일찍 쉬도록 하게."
백월하가 차갑게 웃으며 얼음처럼 싸늘하게 말했다.
"좋아요! 숙부의 수하들이나 동료들이 만약 백천애에서 뜻밖의 흉흉한 일을 당하더라도, 조카는 책임질 수 없음을 용서하세요!"
안홍경이 말했다.
"숙부는 이런 변고가 다시 생기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네."
곧이어 안홍경이 떠나는 발자국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엄미미는 안홍경이 돌아간 것을 확인하고 자신의 거처로 조용히 돌아왔는데, 가슴속에 문득 한 가닥의 쓸쓸하고 서글픈 감정이 이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갑자기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엄미미(严薇薇)는 자신도 모르게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누구세요!"
백월하(柏月霞)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예요!"
엄미미가 환하게 웃으며 방문을 열자, 백월하가 놀란 기러기 모양으로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엄미미는 즉시 문의 빗장을 걸었다.

백월하가 수정 같이 맑은 눈동자로 실내를 둘러보더니 입을 열었다.
"미(薇) 언니, 아직 안 주무셨어요?"
엄미미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霞) 동생과 마찬가지로 분주히 뛰어다니다 보면 밤이 깊어도 잠이 쉬이 들지 않네요."
백월하는 자신도 모르게 두 볼이 빨개지며 약간 뾰로통한 얼굴로 말했다.
"언니는 다 보고 계셨죠?"
엄미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내가 북애(北崖)에 있는 두 구의 시체에서 병기를 풀어 주변으로 던져 놓지 않았다면, 안홍경(颜鸿庆)은 하매(霞妹)가 먼저 독수를 써서 그들을 해쳤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백월하는 그제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이곤 잠시 침묵하다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언니도 그를 보셨지요?"
'그'란 말이 입 밖으로 나옴과 동시에 두 여자의 눈에서 신광(神光)이 반짝거렸다.
엄미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봤죠. 산 밖으로 배웅도 해 드렸는데, 그는 하매를 매우 걱정했어요."
백월하는 부끄러운 나머지 시선을 돌리고 화난 듯 말했다.
"설마 그는 미 언니에 대해서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단 말인가요? 몹쓸 사람 같으니!"

엄미미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하매가 이 못난 언니를 자매처럼 대해 주지만, 사실 나는 이곳에 있는 게 늘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아, 날개라도 있으면 어디론가 날아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에요. 그는 우리 둘 다 무림의 대국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며, 특히 하매에 대해..."
백월하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엄미미의 말을 끊었다.
"그는 제가 이 백천애(百泉崖)에 남아 있는 것이 쓸데없는 짓이라는 것도 모르는데요."
엄미미가 눈을 반짝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잘 알고 있고, 더 많은 것도 알고 있어요."
백월하는 의아해 물었다.
"그가 많이 알고 있다니, 뭘 더 안다는 거죠?"
엄미미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하매의 말 못할 고충들을 잘 알고 있고..."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동생의 신세도 알고 있어요."
백월하의 안색이 급변했다.
"미 언니, 도대체 그가 어떻게 알았을까요?"
엄미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금은 공연히 마음만 심란하게 만드는 얘기는 그만하고, 안홍경을 상대할 계책을 짜는 게 좋겠어요. 그에게 도전하고 그를 제압하려면 이독공독(以毒攻毒)의 방법이라도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백월하가 눈썹을 찌푸리며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맞아요. 소매(小妹)는 여기서 언니와 함께 밤 새워 얘기를 나눌래요."
口口 口口 口口 
겨울로 들어선 이래 악천후가 이어지던 태원성(太原城) 일대는 삼월이 돼도 가랑비가 부슬부슬 여러 날 이어지거나 한풍(寒风)이 거세게 몰아치는 날이 반복되고 있었다.
오늘도 하늘에는 짙은 먹구름이 낮게 깔려 대낮에도 마치 해가 진 저녁처럼 어두컴컴했다.
중심가 큰길 역시 진흙으로 범벅이었지만, 우산을 들고 정혜(钉鞋=비 올 때 신는 징을 박은 신발)를 신은 행인들의 왕래로 붐비는 것은 여전했다.

대흥객잔(大兴客栈) 문 앞으로 갑자기 말 한 마리가 달려왔는데, 윤기 나는 갈색 털을 휘날리는 모습이 장성(長城) 북방에서 기르는 구외양구(口外良驹)라 불리는 준마임이 분명했다.
말을 탄 사람은 두 눈썹이 휘날리는 네모난 얼굴에 날카로운 눈빛을 번쩍이는 호랑이 눈을 가진 스무 대여섯 살 정도의 젊은이였는데, 검은 비단 장삼을 입고 어깨에 장검을 메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는 그의 모습은 위세가 등등하고 영기가 넘쳤다.

객잔 안에서 점소이가 종종걸음으로 뛰어나와 고삐를 잡으며 환하게 웃었다.
"대야(大爷), 숙박하시겠습니까?"
흑삼청년이 대답했다.
"맞다. 내가 묵으려는 곳이 바로 이 대흥객잔(大兴客栈)이다."
점소이가 연방 허리를 굽히며 주절댔다.
"폐점(敝店)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객잔은 이곳 태원부(太原府)에서도 첫째 둘째를 다투는 손꼽히는 곳으로, 방은 넓고 깨끗하고 손님들에 대한 봉사가 특히 세심합니다."

흑삼청년이 냉랭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이미 알고 있고, 진덕삼(陈德三)이란 친구가 여기 묵고 있지?"
점소이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그럼 어르신이... 무소주(武少主)님?"
흑삼소년은 미간에 오연(傲然)한 빛이 짙게 떠올랐다.
"무동산(武东山)이다."
점소이가 안색이 변하며 다시 굽신거렸다.
"소주님, 어서 드시지요!"

무동산이 단번에 안장에서 뛰어내리자 점소이는 말을 끌고 마당 한쪽에 있는 마구간에 매어 놓고, 앞장서 무동산을 객실로 인도했다.
장궤(掌柜) 노인은 무동산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급히 몸을 일으켜 인사를 했다.
무동산이 물었다.
"진덕삼(陈德三) 일행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그는 무언가 수상한 느낌이 들었다.
먼저 이곳으로 와 있으라고 지시했고, 자신은 약속한 대로 오늘 제시간에 도착했는데 어떻게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지 의아했다.

점소이가 황급히 대답했다.
"진야 등은 안뜰 뒤편에 있는 객사에 투숙한 삼월(三月) 이후 한 발짝도 밖으로 나가지 않으셨습니다."
"뭐라고!"
무동산의 안색이 변하여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점소이가 대답했다.
"소인은 잘 모르니 소주께서 직접 진야에게 물어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무동산은 콧방귀만 한 차례 뀌곤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온통 진흙탕인 안뜰의 객사 처마 아래 십여 명의 무장한 강호 인물들이 여기저기 무리를 지어 모여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장기를 두고 있었고, 어떤 무리는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누거나 술을 마시고, 또 누구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소주께서 오셨다!"
하고 누군가 외치는 소리에 마당의 사람들은 분분히 일어나 공손하게 예를 갖추었고, 방 안에서 깡마른 노인 한 명이 튀어나와 포권 후 읍하였다.

무동산이 차가운 표정에 침중한 음성으로 물었다.
"진덕삼! 왜 명령대로 행하지 않았느냐?"
진덕삼이 두려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소주, 속하가 그간 사정을 아뢰겠습니다. 저희가 대흥객잔(大兴客栈)에 들어서자마자 무서(抚署=巡抚府)에서 관원이 나와 속하를 찾았습니다. 그는 태원부(太原府)에 강호 인물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일장의 무림살겁(武林杀劫)이 벌어질 분위기라, 관부는 급히 이를 막고자 한다며 이곳의 비응방(飞鹰帮) 인원들은 외출을 삼가라 하고, 그렇지 않으면 큰 화를 입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동산의 안색이 미미하게 변했다.
"그 사람은 어떤 모습이었으며, 정말 관부 사람인지 너희들은 알아봤느냐?"
진덕삼이 당황스런 표정으로 즉답을 못 한 채 쩔쩔매고 있었는데, 갑자기 낭랑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형제가 때맞춰 달려왔으니 소주께선 달리 알아볼 필요도 없소이다."
웃음소리와 함께 뜰 안으로 비단 장포를 입고 짙은 수염을 기른 노인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는데, 두 눈을 껌뻑일 때마다 정광(精芒)이 번뜩였다.

무동산은 저도 모르게 멍해졌다.
"귀하의 고성대명을 일러주실 수 있으신지요?"
노인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노부는 주양(周骧)이라 하오! 무소주, 우리 길게 얘기하지 맙시다. 비응방이 천리 길을 멀다 않고 이곳까지 온 것은 필시 이유가 있겠지만, 노부는 관부의 일원으로 강호의 시비에 휘말리고 싶지 않고, 또한 강호 인물들이 태원 땅에서 말썽을 일으키는 것도 용납할 수 없소. 권고하건대 무 소주께서는 속히 수하들을 이끌고 삼진(三晋=태원이 있는 山西 지역)*⑴을 떠나도록 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큰 화가 닥칠 것이니, 내 말을 들을지 말지는 순전히 무 소주에게 달렸소."
말을 마친 노인이 두 어깨를 한 번 떨치자 잠룡(潜龙)이 하늘로 치솟듯 공중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무동산이 안색이 변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우리도 가자!"
사람들이 줄줄이 밖으로 달려나갔고, 각자 말고삐를 풀고 안장 위로 뛰어올라 성 밖으로 달려갔다.

무동산이 탄 말이 앞장서 어느 울창한 숲 속으로 뛰어들자, 무성한 수풀 사이로 어렴풋이 무너진 황폐한 사당(庙宇)이 보였다.
진덕삼이 말을 몰아 무동산의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소주, 이곳입니까?"
무동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꺼내려는 찰나 사방에서 어지러운 활시위 소리와 함께 화살과 노전(弩箭=쇠뇌살)들이 비 오듯 날아왔다.
비응방(飞鹰帮) 무리는 안장을 박차고 뛰어올라 칼을 뽑아 들고 몸을 보호하기 위해 춤 추듯 칼을 휘둘렀다.

돌연 활시위 소리가 뚝 끊기더니 곧바로 숲속에서 표범 가죽 옷을 입은 얼굴이 거무스름하고 날카로운 인상의 소년이, 손에 낭아추(狼牙锤)를 들고 나타나더니 입을 크게 벌려 웃으며 말했다.
"무 소주, 귀하와 내가 인연이 있는지 만나게 되어 다행입니다."
무동산이 얼음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나무랐다.
"귀하는 누구고 어찌하여 갑자기 기습한단 말이오!"
표의소년이 다시 크게 웃으며 대꾸했다.
"내가 만약 무 소주를 정말 공격하려 했다면 지금 당신들에게 목숨이 남아 있겠소이까!"
무동산이 냉소를 터뜨렸다.
 "꼭 그리된다고 볼 수는 없지!"
표의소년이 정색하고 말했다.
"우리 한가로운 이야기는 이만 줄이고, 소문에 귀방이 이미 백홍검(白虹剑)을 얻었다고 들었는데, 특별히 무 소주께 한 번 빌려달라고 찾아왔소이다."
무동산은 자신도 모르게 안색이 변해 냉소를 날렸다.
"흥! 그런 허황된 소문을 믿는단 말이오?"
표의소년이 음산하게 웃으며 말했다.
"소주가 사흘 안에 백홍검을 가져오기를 바라며, 검을 보내는 일은 자연스럽게 어떤 사람이 소주와 연락할 것이고, 따르지 않으면 소주는 화를 면하지 못할 것이오."
말을 끝내며 소년은 즉시 등을 돌리더니 허공으로 솟구쳤다.

이처럼 억지를 부리며 자기 말만 하고 등을 돌리는 경우는 무동산으로서는 난생 처음 겪는 일이라, 부아가 터지며 살기가 치솟아 호통을 쳤다.
"걸음을 멈춰라!"
말과 함께 무동산의 쌍장이 허공을 가르자 산이라도 흔들어 댈 듯한 거센 바람이 일었다.
공중에 떠 있던 표의소년의 몸이 바퀴처럼 회전하더니, 갑자기 유성처럼 빠르게 튕겨 나가 십여 장 밖의 우거진 수풀 속으로 떨어지며 이내 모습을 감췄다.
무동산이 큰 소리로 외쳤다.
"어서 쫓아라! 잡으면 즉시 격살(格杀)하라!"
비응방 수하들이 일제히 추적에 나섰다.

남아 있는 무동산의 안색은 침울하고 숙연했다.
그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일이 너무 기이하다고 느꼈다.
평소 누구보다도 기지(机智)가 뛰어나다고 자부하던 그였지만, 이때는 그 소년의 속셈을 추출해 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비응방 수하들이 분분히 돌아오기 시작했고, 그중 진덕삼이 품고했다.
 "소주님, 표범 옷을 입은 도적놈은 이미 멀리 사라져 종적을 찾을 수 없었고, 숲 속 어디에서도 단서가 될 만한 흔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무동산은 낮게 한숨만 내쉬며 잠시 침묵하더니 진덕삼에게 지시했다.
"내가 사당 안을 둘러보는 동안 너희들은 밖을 지키거라!"
진삼덕이 황급히 말했다.
"소주께서는 경솔하게 위험을 무릅쓰시면 안 됩니다!"
무동산이 말했다.
"괜찮다!"
그는 표연히 황폐한 사당 안으로 들어갔다.

대전(大殿) 안은 어둡고 음산했으며 먼지가 겹겹이 쌓여 있었고, 썩은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러 토할 것 같았다.
갑자기 고통이 극에 달한 신음소리가 들리며,
"무 소주이십니까?"
하고 떨리며 목이 쉰 음성이 들렸다.
무동산이 어리둥절하여 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리니, 한 승려가 벽 모서리에 쓰러져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급히 승려 앞으로 뛰어가 시선을 집중하니 아미파(峨嵋派)의 신예 후기지수(后起之秀)인 건곤도(乾坤刀) 비운(飞云)이었다.

무동산이 안색이 변하며 물었다.
"대사(大师)께선 누구에게 상처를 입었습니까?"
비운(飞云)이 처연한 웃음을 흘리며 더듬거리고 입을 열었다.
"표의소년(豹衣少年)...무 소주도... 필시 본 바가 있을.. 것입니다."
"표의소년!"
무동산은 크게 놀라 잠시 말을 잊을 정도였다.
"영사(令师)이신 달관상인(达观上人)께선 아직 안 오셨나요?"
비운은 이미 상처가 너무 깊어 오래 지탱할 수 있어 보이지 않았다.
"스승님은 지금 내전(内殿)에..., 아마도 이미... 독수를 당하신 것 같..."
목소리가 희미해지더니 결국 끊어졌다.
무동산이 손을 뻗어 비운의 몸을 만져 보니 숨결이 이미 차가웠다.

무동산은 냉정을 되찾고 몸을 날려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뒤편의 내전으로 들어갔다.
후전(后殿)은 전전(前殿)보다 더 어둡고 음산하여 손을 뻗으면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무동산은 품에 손을 넣어 야행화절(夜行火折)을 꺼냈고, "착!"하는 소리와 함께 한 줄기 화광이 치솟으며 전각 안에 쓰러져 있는 일곱 구의 시체가 눈에 들어왔다.
안색이 크게 변한 무동산이 자세히 살펴보니 아미(峨嵋)의 달관상인(达观上人)이 기둥 옆에 몸을 비스듬히 기대고 있었다.
"노선사(老禅师)!"
하고 무동산이 달려가니 달관상인이 실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무 소주, 늦으셨구려."
무동산이,
"노선사께선 누구에게 상처를 입으신 겁니까?"
하고 물으며 한 손바닥을 달관상인의 등뒤 명문혈(后命门)에 대었다.
달관상인은 다소 정신이 든 듯 다시 입을 열었다.
"귀방에 대난(大难)이 임박했으니, 속히 영존께 엄중히 방비하되 내부 사람에 대한 경계도 소홀히 하지 말라 전하시오."
무동산은 그 말을 듣고 멍해졌다.
"노선사께서도 혹시 표의소년에게 상처를 입으셨습니까? 표의소년(豹衣少年)이 어떤 내력을 지녔는지 아직 모르지만, 이 원수는 꼭 갚겠다고 맹세합니다!"
달관상인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보아하니 소주는 이 원수를 갚지 못할 것 같소. 노납(老衲) 등이 비록 표의소년에게 당하기는 했지만 치명적인 이유는 오히려 소주의 사망침(蛇芒针)에 있소."
"사망침(蛇芒针)!"

(17-1 마침)


[註]

*⑴ 三晋 :
춘추시대(BC770~403) 춘추오패(春秋五覇) 중 하나였던 진(晋)나라는 기원전 403년에 주(周)나라 위열왕(威烈王)이 진나라 대부인 위사(魏斯), 조적(赵籍), 한건(韩虔)에게 각각 제후의 작위를 내림으로써 위(魏)나라, 조(趙)나라, 한(韩)나라로 나뉘었다.
진(晋)나라에서 갈라져 나온 세 나라는 ‘삼진(三晋)'이라고 불리며 옛 진(晋)나라가 자리잡고 있던 지역에 근거했는데, 이는 오늘날 산서성(山西省) 지역으로 태원(太原)은 지금도 산서성의 성도(省都)이다.
참고로 진(晋)나라가 삼진(三晋)으로 나뉜 BC403년 이후를 전국시대(战国时代, BC403~ BC 221)라고 역사는 분류하고 있다.

[검재(劍齋)]

다행히 당부하신 바를 욕되게 하지 했네요."
=>하지 않았네요.
그는 아는 백월하의 성격으로=>그가 아는
있우라고=>있으라고
#말이 이상한 곳을 고쳐 봤습니다.

[녹정]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태사]

감사합니다.

[안드레아]

감사합니다

[왕타]

고맙습니다

[여여풍]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