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01 / 계 1:1-3 / 2000.11.22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
예수믿는 내용이 너무 몇가지 안되서 이게 다인가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때 한국교회에서 제가 배운 기독교의 내용은 죽으면 천국간다 예수믿어야만 구원얻는다 그리고 예수 믿으려면 목숨도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살아보니까 사는문제에는 그렇게 극단적인 문제에 대한 대답만으로는 안되는 자질구레한 한없이 많은 문제들이 있더라구요 쉬운문제로 대학교 입학할때 이과를 갈까 문과를 갈까 아주 몇가지 가지고 늘 이렇게 표현하면 참 죄송합니다만 늘 뻔한 설교를 듣다가 마음에 많이 기독교자체에 대하여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자체가 가난한것인가 실례지만 목사님이 실력이 없는것인가 ! 제가 자란교회는 한국교회에서 유명한 목사님들이 강단을 지키셨던 때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목사가 된 여러 이유들 중에 재밌는 쪽으로 얘기를 할때 쓰는 표현이지만 설교듣다 하도 답답해서 제가 목사가 됐다 이런표현을 하나 씁니다 작은조건중에 하나지만 말하는 재미는 있지 않습니까 목사가 되고 하나님께서 저에게 성경을 조금씩 열어보여주시고 가진 소원이 무엇이냐면 구약은 좀 엄두가 안나고 신약이나마 다 한번 설교를 하고 죽자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거의다 했죠 서신서도 고린도전후서 에베소서 히브리서 했으니까 그다음 사이 사이에 있는것은 비슷비슷합니다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서 특별히 할필요는 사실없거든요 복음서중에 요한복음했고 마태복음하고있고 사도행전했고 히브리서도 이미했고 요한계시록만 하면 난 나할일 다했다 했더니 걱정하는 분들은 계시록 하고 그만두면어떡하나 재밌는생각들도 하시는분을 만났습니다
우리가 말이죠 어떤 사람을 좋아하거나 혹 존경하거나 그러면 그사람이 다해주길 바래요 그런법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뒤에 언제나 더 훌륭한 사람을 세우십니다
요한계시록은 참 어려운책입니다 가장 큰이유는 뭐냐 사람들의 무지함과 못난 호기심 때문입니다 모든 성경은 설명하고 보여주고 가르칠려고 쓴것이지 놀릴려고 오해시키고 미궁에 빠뜨릴려고 쓴 기록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부모들이 자식들한테 한얘기가 어려운 말이 어딨습니까 거기 무슨 감출말이 있겠습니까 늘 얘기를 하면 자식들이 거꾸로 알아듣는때가 많죠
야 그것도 못풀어! 그것도 못맞출바엔 나가 죽어라 "나가죽어버린단 말이에요 " 이런식의 어리석음이 성경을 볼때에 우리에겐 늘 하나의 올무인것 같습니다 요한계시록이 어려웠던 이유는 이 글을쓰고 이글을남긴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성령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의존하지 않고 각자 자기 편한대로 써먹은데에 그 이유가있습니다 우릴 혼동시키는것은 세상에 나와있는그 많은 종말에관한 책들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쉽게 요한계시록을 읽으시면 뻔한답을 알게됩니다
세상은 종말이 있다 하나님이 정하셨다 하나님이 역사와 세상을 심판하시고 새하늘과 새땅을 만들며 그 나라에 예수믿는사람만 들어간다 끝~ ! 이게 요한계시록 입니다 불만있으십니까 그 이상의 호기심을 갖고 오셨으면 여러분은 이미 틀린겁니다
요한계시록은 이 내용을 장엄하게 하나님은 온우주만물을 지으신 분이기 때문에 그의 백성들을 당신의 형상으로 만드셨고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부르신 거룩하고 영광된 분이시기 때문에 이 사건이 이렇게 말로만 해서 그 스케일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그얘기를 장엄한 환상속에서 그려내 보여주시는것입니다
우리가 장차얻을 구원 영원한 나라 복된 성도들을 위한 하나님의 심판 얼마나 장엄한것인가를 그려낸것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오늘 이것만 들으시면 됩니다 그 이상 듣고 싶은분들은 더욱 겸비한 마음과 본인이 가지는 인간적인 호기심을 다 떼어놓고 오직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그 구원의 영광과 하나님의 백성된 성도들이 가지는 소망의 그 엄청난것들을 찾아가는 기쁨으로 그렇게 이자리에 오시기로하고 거기가다가 무슨 복권을 줍고 보물찾기를 하고 무슨 미로를 해내고 청룡열차를 타고 이런 괘심한 생각은 가지고 오지 마십시오
뻔한 질문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고 헛된 공포를 할때만 아멘하고 하는 그런 세상과 교회가 되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이 요한계시록 1장1절을 보시면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렇게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속히 일어나야 할 것들을 자신의 종들에게 보여 주시려고 그분께 주신 것이라. 그분께서 자신의 천사를 통해 자신의 종 요한에게 그것을 보내시고 표적으로 보여 주시니
요한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과 자기가 본 모든 것을 증언하였느니라.
이 대언의 말씀들을 읽는 자와 듣고 그 안에 기록된 그것들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때가 가깝기 때문이라.
"
예수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이계시라는 말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계시라는 말을 3절에서는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자와 듣는자들과 그 가운에 기록된 것들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깝기 때문이라 해서 1절 시작하면서 말한 계시 라는 말을 3절에서는 예언이라고 하고 4절에 가면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해서 요한계시록은 계시록이요 다른표현으론 묵시록이요 예언서요 서신이라 하는 세가지 특징을 가진다는것을 서두에 밝히고 있습니다 이 각각은 그 특징이 조금씩 다릅니다 예언서와 묵시서는 같은 내용과 목적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학적 형태가 아주 판이하게 다릅니다
오늘은 그얘기를 집중적으로 할겁니다만 서신서는 뻔합니다 교회에 보낸 편지들로 분명한 교훈과 지도와 가르칠 내용들을 담고 있는것이 서신입니다 세가지를 요한계시록이 특징으로 다 갖고 있다는것을 아셔야 겠습니다
오늘 확인하려는것은 묵시문학 이렇게 표현하는 히브리인들의 성경의 문학형태가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속에 묵시문학으로 분류되는 책들을 대표적으로 다니엘서 스가랴 에스겔 이런 책들을 묵시서로 구약에 갖고 있습니다 예언서 혹은 선지서라 하는건 또 우리가 더 잘압니다 이사야 예례미야 혹은 소선지서들 다 선지자들이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여 미래를 말하기도하고 미래를 보는 눈으로 편지를 설명하는 선지서들을 우린 알고 있습니다 둘다 미래를 내다보고 있으며 종말을 보고 있다는 시각에서는 예언서나 묵시서가 공통됩니다 이 공통된 종말을 향한 시각을 가졌다는것은 무엇을 우리에게 시사하는것이냐하면 현실에 대하여 의문이 풀리지않는 현실에 대한 불만 혹은 회의에 대한 답으로서 선지서와 묵시서가 등장하고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이해를 돕자면 왜 불의가 득세하느냐 ? 왜 악이 선을 압제하는가 쉽게 얘기해서 하나님은 도대체 뭘 하시느냐 금방 생각나는 선지자있죠 하박국 선지자의 불만이 있죠 악한자들에게 압제를 당하며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데 하나님왜 방관하십니까이겁니다 현실이 어느시대나 마찬가집니다 정직하게 살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며 열심을 갖고 신앙을 지키는 자들이 왜 현실에서는 보답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모르며 하나님이 싫어하는것만 하는 자들이 득세하는가 여기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것이 예언서나 묵시서나 공통된 목적입니다
둘다 예언서나 묵시서나 동일하게 종말이 있다 어떤 종말이 있느냐 세상에서 하나님무서운줄 모르고 횡횡하는 악한 세력들이 심판을 받는 종말이 있다 종말은 역사내에서 발생하는데 역사에서 그 기원이 이루어지는것이 아니라 초월의 힘에 의해서 이 불의한 세상질서와 악한 세력들이 심판을 받아 하나님의 거룩과 의의 통치가 실현되고야 말것이다 하는것이 선지서나 묵시서의 공통된 답이요 내용인것이다 이겁니다
그런데 이 선지서 혹은 예언서 식으로 써서 충분한데 왜 묵시서라는것을 문학의 형태를 취하느냐 묵시문학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그 표현한것들이 왜 그런식으로 표현되며 의도하는것이 무엇인지 오해할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언적 종말이던 묵시적 종말이던 그 종말에 대한 기대는 다 이세상에 있는 하나님없는것같이 사는 질서나 세력을 결국은 초자연적인힘 천상의 개입에 의하여 하나님께서 다 심판하시고 의의 왕국을 세우실것이라 하는것에서 공통내지는 예언적 종말론에서는 역사부터 발생한 하나님의 왕국과 역사내에서 지상왕국이 된 하나님의 왕국을 기대한다는면에서 묵시적 종말론과 차이를 둡니다
예언적 종말론 선지적 종말론자들은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왕국의 실현이 이루어질것이다는것은 묵시적 종말론의 내용과 같으면서도 선지자들은 다 구약시대 임무를 가졌고 그들은 이 일이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고 전인류를 대상으로 한다는것을그들은 모르고 있었어요 그들은 그것이 이스라엘이라는 왕국이 지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서리라 이렇게 기대를 했습니다 저들이 기대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지상왕국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나라며 그것은 다윗의 혈통을 잇는 메시야로부터 시작이 되고 완성이 될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저들이 예수를 메시야로 믿지 않는 이유가 여기있습니다 뿌리깊이 예언적종말론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했던 이런 내용들은 다 초점이 그 영적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스라엘만이 선민이였으니까 역사적이고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왕국을 기대했고 그것을 이루는 메시야를 종말적 기대에서 아주 목마르게 기다려왔던것입니다
그러나 묵시적 종말론은 이 역사에서부터 기원하는것이 아니라 역사의 밖에서 도래하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도래하여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는일에 그 초점을 두며 이일을 이루는 이를 인자라 이렇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서가 모델입니다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그리스도의 계시라 해서 묵시문학이라는것이 첫번째 특징인걸 알고있고 계시록을 읽어보면 그것이 선지서의 기록들과 판이하게 뭐가 다르냐면 환상들로 대부분의 내용이 채워져있다는것에서 묵시문학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절에 있는 말씀에서 예언의 말씀이라 했지않습니까 뭐가 차이가 있느냐 다윗의 왕통을 이어서 지상에서 세워지는 지상왕국을 목표로 하느냐 아니면 천상으로부터 개입하여 세우는 초월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인자를 기다리는데 초점을 가지느냐에 있어서 묵시문학과 선지적 종말론을 가지는 문학이 차이를 가지는데 그거에만 차이를 두는것이 아니라 예언서가 가지는 문학의 표현과 묵시문학이 갖는 문학적 표현에도 크다란 차이를 가집니다
앞에 얘기하는 지상왕국을기대하느냐 초월적 왕국을 기대하느냐 하는것은 사실은 둘이 다른것이 아니였음에도 불구하고 다른것이라고 여겼던것은 이스라엘사람들이 가졌던 하나님의 나라와 그 나라의 백성들을 어디까지의 대상으로 두느냐 하는데 대한 신학적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죠 우리가 이시대에 와서 보면 선지자들이 메시야로 믿어야할 그 메시야가 묵시문학에서 기대하는 인자와 동일일인요 지상에서 세워질 나라라고 생각했던 그 나라는 지상에도 세워지고 영원한 나라로 세워질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써 이중적 성격을 갖는다는걸 이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런 이해를 왜 갖고 있어야 되냐하면 이쪽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면 나중에 계시록 속에 있는 내용들을 설명할때 천년왕국에 대한 이해라든가 마지막 환난에 관한 이해들에 대하여 판이한 해석을 하게 된다 이거에요
별거 아닌것같은 이런 서론적이고 기초적인 그런 부분들에 대한 이해를 미리 해둘필요가 있는거에요 예언자적 계시 ,예언서들의 기록의 형태를 보면 하나님의 의지 뜻 하나님의 말씀 이런것들이 그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선지자를 불러서 그에게하나님의뜻과 계획과 말씀을 넣어주고 그 말씀을 가서 백성들에게 말하라고 하는것이 선지서들이고 묵시록들은 하나님이 그의 택한종을 불러 환상의 세계에 끌고가서 그로 하여금 듣도 보도 못한 어떤것을 비몽사몽간에 체험케 하는것이 묵시입니다 전혀 다르죠
내용에 있어서는 같지만 말씀으로 부르시고 가르쳐 전하게 하는것들은 환상을 보게하고 꿈을 꾸게 해서 어떤 내용들을 모습으로 보여주는것과는 문학의 형태에서도 차이가 있고 전달하는 효과에 있어서도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예언자적 계시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이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밝히시는 뜻대로 맨 첨에 얘기했던것 묵시문학이든 선지서든 다 등장한 이유는 현실에서 생겨나는 성도들의 회의와 갈등에 대한 답을 위해서 말씀이 주어졌다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궁극적 심판과 종말적 계획을 설명함으로서 지금을 이해시키는것 이것이 선지서든 묵시록이든 궁극적인 그 기록의 가치요 목표입니다
예언자적 계시에 있어서하나님이 그의 뜻을 밝히시며 말씀을 하는것과 달리 묵시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장차올 나라의 모습 이루어진일이거나 이루어지고있는일이거나 하는 모든일들을 상징이나 환상을 통하여 그에게 깨우치는 그런 방법을 쓰는것이 묵시록이라고 우리가 구별짓는 하나의 계시의 형태입니다 왜 이렇게 하느냐 하는거죠 이제 결론부분에 온셈이죠
왜 하나님께서 직접 이렇게 이렇게 내가 하리라 이렇게 되리라 너는 이렇게 말하라가 아니라 앞으로 될 일들을 그림 형태 상징을 하실까요 그 장엄함 때문입니다 제가 예전에 어떤 한국에 온 외국목사를 만났는데 그때 목사님이 저한테 미국이 얼마나 큰나라인지 아닌가 ? 미국이 큰걸 아시면 여러분들 미국이 큰걸 맘으로 설명을 해보세요 그 분은 나한테 이렇게 설명했어요 시카고 공항에서 30초마다 비행기가 한대 뜨고 내린다!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때가 몇년도이냐 25년전이에요 25년전에 그 공항이 세계에서 가장 큰 공항중 하나일겁니다 30초 마다 비행기 한대 뜨고 내린다고 미국이 그렇게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크다라는것은 꼭 지리적인 문제만은 아닙니다 땅이 크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며 활동하며 움직이는가 그런표현을 그분이 한 셈입니다 미국이 얼마나 큰가 라는 이 표현을 즐겨 씁니다 지금은 10초당 비행기가 한대 뜨고 내릴겁니다 그 말이 이해가 안가면 여러분은 계시록을 들을 자격이 없는것입니다 계시록은 말하자면 그런얘기를 하는겁니다 우리로서는 이해가 안가고 상상이 안가는 하나님이 하시는일 그 구원의 신비 그 장엄함 이 단어밖에 쓸게 없네요 그 놀라움 이런것들을 필설로 설명이안되서 환상을 도입하신것입니다 물론 묵시문학의 큰 문화적 특징중의 하나는 호기심을 끌기 위해서입니다 묵시문학이 선지서식으로 그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받아 쓰서 읽히고 권하는것이 아니라 내가 이런환상을봤다 이런것을 봤다 이런것은
같은 내용 말로받은 내용과 같은 내용의것을 환상과 상징으로 봤음에도 불구하고 환상과 상징을 동원하는것이 말과 글로 받는것보다 더 호기심 관심을 끌기 때문입니다 호기심과 관심을끄는 이유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꼭 보게 할려고 이런 방법을 택하는것입니다 그러나 이 호기심과 관심을 끈다는 것 때문에 성경에도 묵시문학은 외경과 가경중에 묵시문학이 제일 많습니다 외경들 속에는 묵시문학에 속하는 성경이다수 있습니다 그건 누가 썼는지 모릅니다 보통은 익명의 저자들이 유명한 사람의 이름을 빌려서 묵시록을 쓰곤합니다 에녹의묵시록 이런것들입니다 유명인의 이름을 타용해서 관심을끌려고 하는 그런 부작용들도 생겨나고있는것입니다 어느 시대나 그랬겠지만 계시록을 풀고 해석하는사람들의 대표적인 잘못된 모습들은 뭐냐하면 이것이 신비롭고 어려운 책이라는걸 다 알고있잖아요 이걸 푼다는것 만으로도 자기가 무슨 삼천층을 매일들락 거리는냥 표정을 짓는단 말이에요
그러니깐 실력없이 요한계시록에 달려드는것은 요한계시록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이미 그렇고 시험에 빠질수있는 책이라는데 어려움이 있고 일반독자들도 계시록을 보는데 있어서 여태껏 들은것과 다르기를 바란단 말이에요 계시록 그러니까 벌써 썬글라스 끼고 나타났어요 뭐 신기한거 들을거 같아요 아까 얘기한 그게 다에요 그얘기를 총천연색 시네마로 할거에요
묵시문학이라는 형태를 적극적이고 일차적인 의도는 그게 아니였죠 일곱교회에 보낸 편지라구요 당시 로마의 대표적인 황제 치하였을것이라고 추측을 합니다 기독교가 최고의 박해를 받고 있던때 우리가얻은 구원의귀한것과 우리를 구원하시고 역사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공의하심과 그가 어떻게 종말을 준비하고계시는가를 모두에게 알리고 그래서 힘을 주기 위하여 이 글을 쓰고있는거라구요 어떻게 했다구요? 글로 쓰고 이렇게 화면이 있고 음성이 있고 이렇게 묵시문학이라는 방법을 도입해서 모든 성도들로 하여금급박한 자들의 절실한 현실의 문제앞에 하나님의 답을 하나님의 손길을 저들로 하여금 느끼고 저들의 신앙과 소망에 힘을 실어주기 위하여 기록된 책입니다 그러나 또하나 재미있는 묵시문학의 이해를 위한 요소는 묵시문학이 등장하는 환상과 상징같은건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것들은 호기심을 위해서만 기록된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이유에서 상징과 그런 환상들과 상징들로 수수께끼들로 등장합니다 어떤현실 어떤예로 묵시문학은 거의다 언제나 다른나라의 지배하에있을때 기록이 됩니다
잘아시는대로 다니엘서나 에스겔서나 다 바벨론포로하에서 기록되는것이고 현실이 계시록은 로마의압제하에서 저들이 특히 하나님을 믿는일에 반대하는 나라 그래서 지금 이것이 기록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구약시대의 이스라엘민족이나 신약시대 성도들이 어찌하여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반대하는 나라의 노예가 되어 포로가 되어 잡혀와서 이 핍박을 당하는가 거기에대한 답을 하는거죠 지금 잠시 너희가 환란을 당하고 손해보는것 같고 저들이 영원히 세력을 유지할것 같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결국 승리한다 그걸 직접 써서 내놓을수 없잖아요 로마는 곧망한다! 그날로 죽죠 다 상징화하는거죠 그때 그 당시에 저들을 지배하고 있는 적군들에게 감추어진 수수께끼같이 쓰여질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묵시록이 이중적인 이유를 가지는것입니다 적극적인 관심을 끌기위해서와 그리고 감추기 위해서 두가지 이유때문에 이렇게 됐습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책을 시작해나가면서 하나님의 모든 성도들에게 어떻게분명하게 하나님의 하나님되심과 전에도 계심과 지금도계심과 장차 오실 이로서 우리에게 충분하신 분인가를 곧 만나게될것입니다 그리고 그일을 시작하면서 오늘 확인한 이런것들로 우리는 이미 결론에 도달하여 이책을 시작해야 합니다 결론없이 책을 시작하면 어디로 삐져나갈지 모릅니다 계시록에 이전에 있는 모든 성경들로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분이신지 우리는 이미 결론을 가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계시록을 보고 믿을까말까를 정하거나 지금믿을까 나중에 믿을까 하는 자들은 계시록을 열 자격이 없습니다
계시록속에는 그런의도나 거기에 해당하는 내용은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에 관한것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모든일들은 그 앞에 이미 충분히 기록되있고 계시록속에는 그 얘기가 전제되어있는것입니다 계시록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혹시 아닐지 몰라도 가장 뚜렷하게 봐야하는 문장들은 이런것입니다 계시록4장 8절- 11
네 짐승이 저마다 자기 둘레에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것들의 안쪽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것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전능자]여, 그분은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앞으로 오실 이시로다, 하고
그 짐승들이 왕좌에 앉으신 분 곧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시는 분께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드릴 때에
스물네 장로가 왕좌에 앉으신 분 앞에 엎드려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시는 분께 경배하고 자기들의 관을 왕좌 앞에 던지며 이르되,
오 [주]여, 주는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하시오니 주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 그것들이 주를 기쁘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나이다, 하더라.
이겁니다 우리 헨델의 메시야에 나오는 할렐루야에 있는 곡이죠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것이 합당하니이다 5장 11절부터
또 내가 보고 왕좌와 짐승들과 장로들을 둘러싼 많은 천사들의 음성을 들었는데 그들의 수는 만만이요 천천이더라.
그들이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께서 권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기에 합당하시도다, 하더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모든 창조물과 바다에 있는 것들과 그것들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이르되, 왕좌에 앉으신 분과 [어린양]께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이 영원무궁토록 있으리로다, 하더라.
이게 말하자면 계시록의 두드러진 테마란 말이에요 우린 어딜 볼려고 그래요 자꾸 뒷골목 뒷골목 으로 들어가서 계시록을 찾으려고 그래요 그런책이 아니에요 보좌에 앉으신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찬송을 돌리자고 쓴책이 아니라 그럴수밖에 없는거에요 뭘보고? 하나님이 하신일 하시는일 하실일 ! 그 일에 장엄함과 그일의 거룩함과 복됨과 영광과 그 부요함과 그 탁월함과 그 놀라움에 대해서 그것이 계시록입니다 .....
남포교회 박영선목사
첫댓글 전도사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제 전도사님의 닉의 이름만 들어도 행복을 느끼곤 합니다. 감사드리며 잊지 않겠습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