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수능 선택과목 아니라며 엎드려 자
수능 과목 축소… 非국·영·수 교사들이 말하는 '교실 붕괴'
최상위권 외 '수능 올인'… "진학률도 높여야 하고 눈감아줄 수밖에 없어…
수능개편으로 더 위기" 내신 반영비율 높여야
15년 경력의 지리 교사 A(38)씨는 한 시간 수업을 위해 4~5시간씩 동영상이며 신문자료를 준비하는 '열혈교사'다. 하지만 고3 수업에 들어가면 항상 좌절하곤 한다. 수능 사회탐구 영역에서 지리를 선택하지 않은 학생들은 잠을 자거나, 다른 과목 책을 펴놓고 공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루는 엎드려 자는 학생을 깨우자 "저 (수능에서) 지리 선택 안 하는데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속상한 A교사는 "수능을 안 쳐도 교양을 쌓기 위해 배워야 하지 않느냐"고 꾸짖었지만, 학생은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지난 학기 고3의 한국지리 중간·기말 고사 결과를 보고는 쓴웃음만 나왔다. 지리를 수능 과목으로 택한 학생이나 내신 관리를 하는 최상위권 학생들은 80점~90점을 받았지만, 그냥 한가지 번호로 주르륵 '찍고' 자버려 10점대를 받은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주관식은 아예 비워두는 학생도 적지 않다.
A교사는 별의별 방법을 다 써봤다. 지난 학기엔 기말 고사에서 주관식 답을 백지로 낸 학생에게 '답을 쓰지 않은 이유'를 A4용지에 써 담임과 학부모의 서명을 받아오라고 했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진 것이 없다.
고3 교실은 '자습실'
지난주 정부의 2014학년도 수능개편안이 발표되자 교사들이 가장 우려한 것은 '수업 황폐화'였다. 지금도 학교 수업이 국·영·수 위주로만 진행되고 있는데, 수능에서 국·영·수 비율을 더욱 높이고 사회·과학탐구 영역 비중을 줄인다면 교육이 무너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비(非) 국·영·수 담당 교사들이 말하는 현재 고3 교실은 거의 '교실 붕괴' 수준이었다. 비수능 과목이나 사회·과학탐구 과목의 수업들은 3학년이 되면 '자습화'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천 지역 고교 지리 교사 B씨는 "학교의 진학률도 높여야 하고 급박한 아이들 심정도 잘 아는데 (내 과목을 공부하길) 강요할 수 없지 않으냐"며 "교사는 자부심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인데, 아이들이 내 수업에 다른 과목을 공부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눈감아 줄 수밖에 없을 때 좌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서울 지역 고교 한문 교사 C씨는 "수업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작년 3학년 2학기에 한문 수업을 개설하겠다고 했더니, 학부모·학생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나왔고 학교측도 노골적으로 말렸다. 입시 반영 비율이 높은 과목을 공부하기도 바쁜 마당에, 일부 소수 학생들만 선택하는 한문을 개설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C교사는 "모든 교육이 대입 중심으로 흐르면서 비수능 교과나 비중이 낮은 과목 교사들은 알아서 수업을 조절해 온 지 이미 오래됐다"며 "앞으로 한문이 수능 과목에서 다시 빠진다는 말도 있지만 크게 화도 안 난다"고 했다.
'교사들의 밥그릇 지키기'라는 비판에 대해 교사들은 "교육에 대한 고민이 우선"이라고 반박한다. 서울 지역의 고교 역사 교사 D씨는 "국·영·수 위주 교육만 하니 아이들이 기본적인 역사 용어조차 못 알아듣는다"며 "예컨대 고1이 '농번기(農繁期)'라는 말을 모르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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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신 비중 높여야
해결책은 무얼까. 전문가들은 "학교 공부를 골고루 한 학생이 대학도 잘 갈 수 있게 내신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조효완 전국진학지도협의회 공동대표(은광여고 교사)는 "현재 내신 실질 반영률이 너무 낮아서 내신에 의해 입시 결과가 뒤집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대학들이 전체적인 내신 반영비율을 높이고, 특히 국·영·수의 내신 반영률을 줄이는 대신 사회와 과학 과목의 내신 반영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일부 과목에 대해서는 대학이 '필수 이수'를 요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영덕 대성학력개발연구소장은 "지금은 한국사를 사회탐구 응시 과목으로 선택한 학생들만 수업을 듣지만, 주요 대학들이 한국사를 고교 과정에서 이수하는 것을 '필수 지원 자격 조건'으로 지정한다면 많은 학생들이 그 과목 수업을 이수할 뿐 아니라 수능 사회탐구 과목으로도 응시할 것"이라고 밝혔다.(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