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로맨스 中
W. 라이
"종현이, 아직도 그래?"
"종현이라고 하지 마, 형. 징글징글해."
구내식당. 찬희와 마주앉은 창현이 작게 몸을 떨었다. 귀엽던데 뭐. 찬희는 아직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오늘 아침에도 사무실에 따뜻한 캔커피를 돌리고 저에게 웃으면서 인사를 했다. 아니, 사람이 왜 그렇게 물러 터진 건데. 자존심도 없나? 생각할 수록 치미는 화에 창현이 입 안에 밥을 쑤셔넣고 꾹꾹 힘주어 씹었다. 지금은 12시. 목요일이라 1시부터 교대다. 종현을 마주하고 동화구연을 할 생각에 벌써부터 막막. 창현의 어깨가 축 쳐진다.
"형은, 성인 대여실 일 할만 해?"
"응. 의외로 사람들이 적더라."
"하긴...요즘엔 e북이다, 뭐다 해서 종이책이 시들하잖아."
창현이 쯧, 작게 혀를 찼다. 몇년 후에는 자신들이 갈 곳이 사라질 지도 모른다. 엄연히 말하면 시 공무원이라 완전히 설 자리를 잃진 않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종현때문에 속을 썩일 시간조차 없다. 창현이 사서시험에 합격하면서 제 1의 목표로 세웠던 건 도서관 책을 전부 읽어버리는 거였으니까.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세 권씩은 꾸준히 빌려다보는 편이었다. 찬희가 있는 성인 대여실이 닫는 시간은 어린이 열람실보다 1시간이 늦으니 퇴근 전에는 꼭 들른다. 물론 종현은 악세사리마냥 따라온다. 다시 종현의 생각으로 돌아온 창현이 푹 한숨을 내쉬고는 남은 반찬들을 긁어 국그릇 안으로 모았다.
"더 안 먹고?"
"입맛이 좀."
미리 잔반들을 한 곳에 모아놓았던 찬희가 창현을 따라 일어섰다. 한 손으로 그릇을 받친 찬희가 다른 손으로 쳐진 창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힘 내, 동생.
*
사람들이 거의 없다고 표현을 했지만 사실상 성인 열람실은 주부 몇을 제외하면 텅텅 비는 수준이었다. 그나마 5시부터는 직장인들도 다녀가곤 했지만. 발령 첫날부터 찬희는 인기만발이었다. 창현이 어린이들 눈높이에 맞춰주는 다정다감한 유치원 선생님같은 스타일이라면 찬희는 싹싹한 이웃 청년 스타일이었다. 웃는 상에 조근조근한 목소리와 말투. 가끔 여대생들은 그런 찬희를 구경하러 도서관을 찾기도 했다. 창현이 종현에 고민하고있을 사이 찬희에게도 작은 고민이 생겼다. 아니, 작은 혼란이.
"반납이요."
"안녕하세요, 이병헌씨."
"...........아, 네."
찬희가 눈꼬리를 휘며 인사했지만 병헌은 피하기 바쁘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높은 서고들 사이로 파고드는 병헌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며 아랫입술을 깨문 찬희가 손에 들린 책으로 시선을 내렸다.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 금방 덮어버리긴 했지만. 양 볼에 바람을 넣은 찬희가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난 왜...."
근무중에 사적인 통화는 하지 않는다. 친구에게 소개받은 동생의 사진을 돌려볼 뿐이다. 만나, 볼까. 톡톡, 액정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던 찬희가 얼른 핸드폰을 키보드 옆에 엎어놓았다.
"이렇게 세 권 대출해주세요."
"...2주일동안이구요. 잘 가요."
그 '혼란'이라함은, 병헌때문이다. 물론 창현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지금까지 연애는 되도록이면 하지 않으려 했다. 몇 번 여자를 소개받았어도 대기업에 다니는 남자들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이런 케이스는 없었다. 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이끌려야 하는가. 그리고......
"....왜 남자인가."
*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창현은 데스크에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를 맞는 건 찝찝해서 싫지만 내리는 비를 보는 건 좋아한다. 빗방울이 유리창을 노크하는 소리도. 힐끔, 벽에 달린 시계를 한 번 보고 작게 한숨을 쉰 창현이 아침의 그 캔커피를 떠올렸다.
[창현씨, 나 때문에 화났어요? 창현씨는 웃을 때가 제-일 예뻐요 ^_____^]
실룩거리며 올라오려는 입꼬리를 감추려 데스크에 엎드린 창현이었다. 포스트잇에 애써 또박또박 쓰려고 노력한 티가 나서, 그게 고마워서. 자신이 밀어낸다고 밀려나면 정말 슬플 것 같았다. 동생처럼 사라진다면, 공들여 바꿨던 성격이 다시 어두침침해질 지도 모른다. 창현이 상체를 일으키고 기지개를 켜며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종현은 없었다. 캔커피 주려고 오전에만 들렀던 건가. 물음표가 창현의 머릿속을 채웠다. 있을 때는 귀찮기만 하더니, 없으니까 허전하기는 하네.
*
'...아.'
'먼저...보실래요?'
'아뇨, 아니에요. 예전에 한 번 읽었던 거라서.'
며칠 전의 어색했던 대화를 떠올린 찬희가 헛기침을 하고 다시 책을 펴들었다. 병헌은 그 전까지 관심이 가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부끄럼을 많이 타는 구나, 정도. 그날따라 입맛에 당기던 책을 찾아 허리를 굽혀 책장사이를 오가던 찬희는 책을 발견했고 우연히 둘의 손이 맞닿았다. 둘 다 데이기라도 한 것처럼 손을 거뒀지만. 가까이에서 눈을 마주쳐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 이후로 찬희의 눈은 병헌의 행동을 은연중에 좇고있었다. 저와 병헌은 우연히도 책 취향이 같다-찬희가 발견한 공통분모는 그것 뿐이었다.
그날,
"웃는 것도 멋있던데."
찬희는 제가 한 걸음 물러서자 꾸벅 목례를 하며 해맑게 웃던 병헌을 아직도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제 차가운 손등을 볼에 갖다대며 배시시 웃은 찬희였다. 친구가 만나보라던 윤진이의 생각은 접어둬도 괜찮을 것 같다. 적어도 병헌의 눈웃음을 다시 볼 수 있을 때까지.
*
"자, 좀 더 몽환적인 느낌으로, 고개 살짝 옆으로! 아, 좋아. 좋았어요."
총 2층을 쓰는 개인 스튜디오를 가지고 있는 포토그래퍼. 종현의 정체다. 잡지사 너덧과 같이 일하고있어 메인 화보는 종현의 몫이며 다른 때에는 여행을 다니며 사진을 찍고 사진집으로 낸다. 직원은 단 세 명. 비서와 견습생 다니엘을 데리고 작업을 하는데, 리듬은 들쑥날쑥이다. 말 그대로, 일이 있을 땐 일주일간 철야도 불사할 만큼 바쁘지만 없을 땐 한가한 게 종현의 직업. 수입은 남부럽지 않다. 막 봄으로 넘어가는 지금 시기, 촬영스케줄이 잡혀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대로 세팅을 했다. 방금 찍은 사진을 돌려보며 손으로 오케이사인을 내린 종현이 씩 웃었다. 백수가 아니라는 걸 알면 창현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을까. 열정이 끓어오른다. 소품을 담당하는 에디터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팔짱을 낀 종현이 블라인드가 반쯤 내려진 창 앞에 가서 섰다. 점심 먹을 새도 없이 벌써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앞으로 일주일은 바빠서 못 볼 텐데, 벌써 창현씨 보고싶네요."
주르륵 창밖으로 미끄러지는 빗방울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이던 종현이 문득 박수를 두 번 쳤다.
"밥 먹고 합시다! 제가 살게요."
종현이 카드를 들자 다니엘이 옆으로 다가와 눈을 빛낸다. 탕수육 먹고 싶어요. 종현이 슬쩍 종환의 표정을 살피다가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모델들이라 중국음식 안 먹잖아요? 다니엘이 입술을 비죽이며 돌아섰다. 그럼 일주일동안 풀만 먹어야 되는 거잖아요, 우리가 토끼도 아니고. 꽁해져서 보정을 계속하는 다니엘을 보며 디렉터 종환이 입모양으로 종현에게 물었다. 어떡할까요. 종현이 굳게 닫힌 대기실 문을 한 번 돌아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테이블을 두 개 놓죠, 뭐. 아싸! 눈에띄게 표정이 밝아지는 다니엘을 보며 잠깐 창현을 떠올린 종현이다. 창현씨는 무슨 음식을 좋아할까,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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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현이 백수 아니에요 여러분^_^
첫댓글 기다렸어요 작가니임ㅁㅁㅁ!!!
아제가 너무 길게 느낀건가요ㅎㅎ
찬희랑 병헌이 사이에도 뭔가가 생기는건가요?!
그건 그렇고 드디어 쫑혀니의 정체가 밝혀지네요~ 흑쳐먹쳨ㅋㅋ
창현이가 캔커피 보고 웃는거 떠올리면 제가 다 흐뭇하네욬ㅋㅋㅋㅋ 다음편이 마지막인거죠ㅠㅠ 아쉬워도
기다리고잇겟숩니다!
아 그러고 보니까 상편을 너무 재미있게 봤는데 댓글을 안달았었네요ㅠㅠ 재밌게 봣습니다!!
창릭은 다 종현이가 멋있음ㅠㅠㅠ
종현이 백수아니엿네옄ㅋㅋㅋㅋㅋㅋ 아 병헌이랑 찬희... 엘청인가요?? ㅎㅎㅎ 궁금하네옇! 아종현이 왜이렇게 멋잇는지ㅠㅠ 훍흙 ㅠㅠㅠ 다음편도 기대기대하고 기다릴께옇
흐어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마지막화는어떻게끝날지궁금하군요ㅜㅜ어쩐지해피엔딩일듯요
자까님제발우리창릭엘처니들모두행쇼하게만들어주세요제발요ㅜㅜ
아무튼전매번자까님때메공커에중독됐네요ㅜㅜ
공커밖에안찾는나란사람.....♥자까님다음화기대기대해요!
엘천행쇼!창릭행쇼!(아;;;내가제일루좋아하는캡넬은없낭?;;)
아무튼새해에자까님도무한행쇼입니당^^♥
한동안틴픽안와서 요작품 하 나온거보고 상부터 보고잇는데 상부터봤으면 하까지어떻게기다렸을까싶네요ㅋㅋㅋㅋ 재밌게읽고갑니당!
천지엘조등장!ㅎㅎ 캔커피, 설렘. 뭔가 캔커피라는 단어는 저에게 설렘이라는!ㅋㅋ 잘봤습니당,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