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7달 전, 무리뉴는 첼시를 상대로 2-0승리를 거두며 자신이 세계 최고의 감독이란 사실을 증명해냈다. 당시 올드 트래포드에서 콩테를 상대로 얻어낸 승점 3점은 그 어느 때보다 임팩트 있었다. 리그 우승을 코앞에 둔 첼시는 단 한 번의 유효 슈팅도 시도하지 못한 채 2실점을 허용해야 했고, 당시 리그 최고의 선수로 떠오른 아자르는 에레라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 했다.
그리고 새로운 17/18시즌을 맞이한 현재, 어젯밤 콩테가 그날의 패배를 대갚음하는데 성공했다. 이날 맨유는 단 2번의 유효 슈팅만을 시도하지 못했으며, 지난여름 맨유로의 이적이 유력했던 모라타가 비수를 꽂았다.
이번 경기 양 팀 선발 라인업
-무리뉴식 수비 형태를 무너뜨리다.
지난 시즌 무리뉴가 첼시를 2-0으로 꺾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만의 수비 방식에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지역 수비를 기반으로 한 대인 마크'수비 형태이다. 전방 수비시에는 무리뉴가 설계해낸 1대 1 대인 마킹 체계를 바탕으로 상대 선수들을 철저하게 수비하다가, 맨유의 미들 써드 후방 ~ 디펜스 써드 지역까지 상대 공격이 이어지면 지역 수비를 기반으로 한 대인 마크 수비 형태를 유지하는 방식이다.
무리뉴가 이러한 수비 전술을 가장 이상적으로 실현해냈던 경기가 다름아닌 지난 시즌의 첼시전 2-0승리였다. 당시 무리뉴는 콩테의 3-4-3을 막아내기 위해 변형 4-4-2 전술을 꺼내들었으며, 철저한 대인 마킹 체계를 바탕으로 페드로, 코스타, 아자르를 완전히 묶어버렸다.
이번 경기 무리뉴는 첼시의 3-5-2를 막아내기 위해 같은 3-5-2 대형을 꺼내들었다. (이번 시즌 3-4-3과 3-5-2를 병행하는 첼시를 상대로 예측이 성공한 부분) 여기서 콩테가 중원 '파브레가스-캉테-바카요코'조합을 역삼각형 형태로 꺼내 들었기 때문에 무리뉴는 '마티치-미키타리안-에레라' 라인을 삼각 대형으로 구성하며 1대 1 마킹 체계를 구축했다.
기본적인 베이스는 비슷했다. 무리뉴는 어느 때와 다름없이 이번 경기에서도 모든 필드 플레이어들에게 철저한 1대 1 대인 마크를 주문했다. 양 측면의 영과 발렌시아가 첼시의 자파코스타, 알론소를, 중원 맨유의 삼각형 대형이 콩테 사단의 역삼각형 대형을 1대 1로 막아섰다. 그리고 아자르가 공격시 빈도 높게 밑선으로 내려가거나 왼쪽 측면으로 빠지기 때문에 바이가 그를 전문적으로 수비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모라타는 자연스레 존스와 스몰링이 맡게 됐다.
전체적으로 '지역 수비'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선수들은 상황에 따라 수비 형태를 병행해야 했다. 예를 들어 첼시가 왼쪽 측면으로 공격을 전개할 경우, 볼에서 먼 쪽의 미드필더인 에레라가 지역 수비로 전환하여 마티치, 미키타리안과 간격을 유지해야 했다.
이러한 맨유 수비 형태의 궁극적 목적은 상대의 공격적 전진(앞선으로 패스를 공급하거나 볼을 전방으로 운반하는, 볼을 앞으로 전진시키는 모든 공격 행위)을 통제하는 것이다. 자신의 전담 선수를 직접적으로 마킹하고 있을 때는 상대가 볼을 받는 순간에 돌아서지 못하게 하며, 지역 수비 체제일 때는 자신의 전담 선수를 시야 안에 두고, 인식함으로써 그 선수가 볼을 잡는 순간에 접근하여 수비를 진행한다.
이러한 수비 체제를 상대하는 공격팀 입장에서는 '1차적 볼 소유'를 하는 것에 대해 그리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다만 2차적으로 소유하는 볼을 전진시키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지, 단순하게 1차적으로 볼을 소유하는 것 자체에는 큰 고난이 없었다. 맨유 선수들보다 한 템포 빠르게 반응하고, 먼저 빈 공간을 찾아 들어가 그곳에서 볼을 받으면 되는 것이었다.
콩테는 이 '1차적 볼 소유'를 하면서 맨유의 수비를 흔들려 했다. 그는 바카요코에게 모라타가 위치한 1선 라인까지 빈도 높게 전진/쇄도할 것을 주문했다. 이는 첼시에게 2가지 효과를 가져다줬다. 첫째는 모라타에게 빈 공간을 열어주거나 바카요코 자신이 최전방에서 직접 득점 기회를 맞이한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자신을 전담하고 있는 맨유의 미드필더 한 명을 중원 지역에서 빼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바카요코, 아자르, 파브레가스의 연쇄적 움직임을 통한 맨유 수비 공략
그리고 아자르는 빈도 높게 밑선으로 내려와 팀의 플레이에 관여하되, 그 '관여 지역'을 매우 폭 넓게 설정했다. 그는 첼시 미들 써드의 모든 지역에 관여하여 팀 내에서 3번째로 많은 볼 터치 횟수를 기록했다.
그리고 파브레가스에게는 평소보다 낮은 위치에서 볼을 받을 것을 주문했다. 그 이유는 고의적으로 상대 미드필더와의 거리를 떨어뜨려, 파브레가스를 전담하는 맨유 미드필더가 지역 수비 체계를 유지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맨유 미드필더 입장에서는 상대가 우리편 골문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내려가 볼을 받는데, 굳이 타이트하게 대인 마킹 수비를 진행하여 중원에 빈 공간을 내주는 리스크를 걸 필요가 없었다.
이는 상술한 '맨유의 지역 수비 체제 선수가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공략하기 위한 주문이었다. 지역 수비 체제의 맨유 미드필더는 파브레가스가 볼을 받을 때 전진하여 수비를 진행하려 했을탠데, 파브레가스가 1차적으로 밑선으로 처지면서 그 '전진 거리'를 늘린 것이다. 이 때문에 파브레가스는 후방 지역에서 전진 패스를 넣을 여유가 생겼으며, 이 과정에서 그의 날카로운 발이 빛을 발했다. 파브레가스는 후방 지역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첼시의 최고급 후방 플레이 메이커가 돼주었다.
바카요코가 1선으로 쇄도/전진함으로써 맨유의 미드필더 한 명을 유인한다. 그럼으로써 맨유의 중원 지역에는 마티치/에레라, 미키타리안밖에 남지 않게 되는데, 여기서 고정적으로 남는 미키타리안의 수비적 퍼포먼스가 좋지 않기 때문에 첼시는 이 지역을 효율적으로 흔들 수 있었다. 이 '중원 흔들기'에는 상술한 아자르의 빈도 높은 밑선 가담을 통한 1차적 볼 소유, 파브레가스의 처진 위치 선점을 통한 패스 시도 시간 창출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좌우 미드필더 바카요코와 파브레가스가 매우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던 데에는 최후방의 캉테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첼시의 골 장면에는 콩테의 전술과 맨유의 수비적 문제점이 공존했다.
우선 그간 맨유 수비의 고질적 문제점이었던 '상대 센터백의 공격 가담을' 제어하지 못 했다. 맨유의 마킹 체계에는 스트라이커가 포함되어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센터백이 공격 상황에 빈도 높게 가담하는 팀(토트넘)을 만났을 때 상대의 페너트레이션 과정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이 문제가 모라타의 골 장면에서 두드러지고 말았다. 그들은 공격 가담을 올라온 아스필리쿠에타를 전혀 통제하지 못 했다. 정상적인 방법이라면 래쉬포드와 루카쿠가 이들을 잡아줘야 했지만, 무리뉴는 이들에게 수비적 지침을 따로 주지 않은듯했다.
그리고 콩테가 주문한 바카요코의 1선 쇄도/전진이 빛을 발했다. 첼시가 한 차례 공격 방향의 전환을 이뤄낸 이후 바카요코를 전담해야 할 마티치가 그의 1선 쇄도/전진을 잡아내지 못한 것이다. 이 때문에 본래 모라타를 수비해야 할 스몰링이 바카요코를 잡아내기 위해 위험 공간을 비워버리고 말았으며, 아스필리쿠에타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크로스를 올려 모라타가 멋진 헤더 득점을 기록하는데 성공했다.
이번 경기 아자르의 패스맵과 바카요코의 히트맵 (c)squawka.com
-답 없었던 맨유 공격과 무리뉴의 교체
이날 맨유 공격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은 수비 → 공격 전환이 전혀 안정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상술했듯 2톱 루카쿠와 래쉬포드는 수비 상황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을 만큼 역습에 큰 비중을 뒀는데, 무리뉴는 루카쿠의 측면 이동과 피지컬, 주력 등을 통해 빠르고 안정적인 수비 → 공격 전환을 원했을 것이다.
맨유 5명의 수비 라인과 3명의 미드필더들이 모두 명확한 수비 목표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루카쿠와 래쉬포드는 공격 전환의 기점이 되어줘야 했으며, 최전방에서 볼을 안정적으로 소유하고 공격의 연결 고리가 되어줘야 했다.
루카쿠의 이번 경기 패스맵과 공중볼 경합맵 (c)squawka.com
하지만 루카쿠는 무리뉴가 기대했던 모습을 보여주지 못 했다. 그는 맨유 지공시의 연결 고리만이 되어줄 뿐, 막상 루카쿠의 존재가 가장 필요했던 수비 → 공격 전환 상황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 했다. 그는 전체 11번의 공중볼 경합 시도 중에서 단 4번 만을 승리했으며, 이날 첼시의 센터백들(뤼디거까지 포함)은 자신들의 진영에서 총 9번의 공중볼 경합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그렇기 때문에 이날 맨유는 경기 전체적으로 공격 찬스를 얻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나 그들이 조직적인 형태로 후방 빌드업을 진행할 경우에는 첼시 역시 구조적으로 1대 1 마킹 체계를 형성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공격적 전진 작업에서 꽤나 어려움을 겪었다.
만약 맨유가 상대 진영으로 공격을 전개하는데 성공했다면 양 측면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이들의 노림수는 반대편 윙백을 통한 오버로드 투 아이솔레이트였다. 첼시가 수비시 5-3-2 대형을 형성했기 때문에 한 쪽 측면으로 공격을 전개할 경우, 상대 미드필더 라인의 반대편 지역에 빈 공간을 창출할 수 있었다.
맨유는 이러한 형태의 공격을 통해 측면 크로스 상황을 창출하려 했지만 경기 내에서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우선 오버로드 투 아이솔레이트의 원리를 부여받은 반대편 윙백은 첼시 알론소와 자파코스타의 뛰어난 수비적 퍼포먼스/즉각적 커버로 좋은 장면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2톱 모라타와 아자르가 수비 상황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면서 마티치와 에레라의 볼 점유를 괴롭혔다. 맨유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양 센터백인 바이와 존스를 공격 상황에 더욱 적극적으로 가담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날 바이와 존스는 상대 진영에서 단 15개만의 패스밖에 시도하지 않으며 매우 공격적으로 매우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그렇기 때문에 맨유는 공격 찬스 자체를 잡아내기도, 그 공격을 점유하기도, 점유하는 공격을 좋은 장면으로 이어내지도 못 했다. 그렇기 때문에 무리뉴는 62분 만에 펠라이니와 마샬을 교체 투입 시키며 분위기 반전을 노렸다. (펠라이니 - 미키타리안, 필 존스 - 마샬)
펠라이니, 마샬이 교체 투입된 이후 맨유는 4-3-3 대형으로 전환했다. 최전방 3톱은 마샬, 루카쿠, 래쉬포드가, 미드필더 라인은 에레라, 마티치, 펠라이니, 그리고 수비 라인은 영, 스몰링, 바이, 발렌시아가 형성하면서 전보다 더욱 공격적인 형태를 취했다.
무리뉴의 펠라이니, 마샬 투입 의도는 명확했다.
수비적인 측면으로는 미키타리안의 좋지 않은 수비적 퍼포먼스를 커버하기 위함이었다. 맨유가 전체적으로 볼을 소유하지 않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미키타리안이 중원에서 공격적 역할보다 수비적 임무를 수행하는 일이 많아졌다. 교체 투입된 펠라이니는 중원에 힘과 안정감 모두를 부여할 수 있는 카드였다.
공격적으로는 마샬의 투입을 통해 맨유가 볼을 점유하는 시간을 늘리려 했다. 그리고 그의 뛰어난 드리블 능력으로 세트피스 창출 효과도 기대할 수 있었다. 무리뉴는 마샬에게 프리롤과 같은 역할을 부여하며 매우 측면 지향적으로 활용했는데(오른쪽과 왼쪽 측면을 모두 오감), 이는 맨유가 측면에서 볼을 갖고 있는 시간을 늘리기 위함이었다. 무리뉴 사단이 측면에서 공격을 전개하면 전개할수록 상대 박스 안 펠라이니의 가치는 올라갔다.
콩테 역시 무리뉴가 2장의 교체 카드를 꺼내든지 3분 후, 자파코스타대신 뤼디거를 교체 투입시키며 대응에 나섰다. 아스필리쿠에타가 오른쪽 윙백으로 빠지고, 뤼디거가 들어옴으로써 펠라이니와 루카쿠의 피지컬을 상대하도록 한 것이다. 이날 190cm, 85kg의 뤼디거는 25분 간 2번의 공중볼 경합 승리, 2번의 클리어링을 해내며 맨유를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결론
무리뉴는 이번 일전에서 펠라이니와 포그바가 경기를 100% 소화할 수 있는 몸을 찾지 못했다는 사실이 매우 아쉬웠을 것이다. 캉테를 얻은 콩테는 중원에 유기성을 부여하며 맨유의 수비를 완벽하게 공략했으며, 이는 곧 모라타의 결승골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전술적 복수를 선사한 콩테의 지략도, 62분 이후 칼을 꺼내든 무리뉴의 날카로움도 모두 돋보였다.
첫댓글 믿고 보는 이타님 칼럼이군요. 좋은 글 스크랩 감사드립니다 ㅎㅎ
전 캐랴옹님 칼럼이 더 좋습니다 ㅎㅎㅎ
@꼬부기 이럴수가... 감사합니다 ㅎㅎ 얕은 지식이지만 더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ㅎㅎㅎ
흥미롭네요 ㅋㅋㅋ 콩테 역시 전술가임
갓테
우아
이런글 너무 재밌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