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다섯 번째 표적.
“틀림없지?”
두목의 색안경이 불빛을 받고 번득이었다.
“네, 틀림없습니다.”
사팔이와 매부리는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경찰에 연행되는 것을 틀림없이 봤습니다.
그놈이 안가려고 하는 것을 경찰이 끌고 갔습니다.”
“헌데 그놈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경찰이 어떻게 알았지?”
“여관 보이나 아니면 누가 신고했겠지요.”
두목은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며 끄덕거렸다.
“그놈이 경찰에 체포됐다면 일단은 안심이다.
이제는 그놈도 끝장이니까.
그놈한테 시달리진 않겠지.
하지만 그놈을 죽여야 했어.
그놈이 경찰에게 우리에 대한 것을 불어 버리면
골치 아프단 말이야.
그놈은 지금 이곳 전화를 알고 있어.”
“그렇다면 빨리 옮기지요?
지금이라도 경찰이 들이 닥치면
꼼짝없이 붙잡힐 것이 아닙니까?”
“그래 빨리 옮기도록 해!”
“어디로 갈까요?”
“우선 별장으로 데려갈까요?”
“물론이지.”
그들이 이러나서 출발을 거둘렀다.
그곳은 명동에 자리잡은 조그만 양주집이었다.
마약 거래는 그곳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감쪽같은 위치이었다.
최구는 어느 층집의 2층 창가에 서있었다.
바로 다방 입구였는데
창문을 통해 거리가 훤하게 내려다 보였다.
그는 거의 두 시간 가까이 거기에 서있었다.
길을 사이에 두고 맞은 편에 서있는
2층집의 한 모퉁이를 줄곧 관찰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등잔‘이라고 쓰인 간판 하나가 붙어 있었다.
양주집이었다.
두 시간 전에 사팔뜨기와 매부리는 그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최구는 손목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6시 30분이 지나고 있었다.
거리는 직장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로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7시가 되었을 때 몸매가 좋은 30대의 여인 하나가
양주집에서 나오는 것이 종이 상자를 들고 나왔다.
여인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우측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흰색 양복 치마 위로
하체가 풍만하게 흔들거이고 있었다.
오른손에는 묵직한 가방을 들고 있었다.
여자가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두 사내가 양주집에서 빠져나왔다.
사팔뜨기와 매부리였다.
각자 하나씩 가방을 들고 있었다.
그들은 여자가 사라진 쪽으로 걸어갔다.
최구는 재빨리 2층에서 내려왔다.
여자와 두 사내는 택시 정류장에 서있었다.
정류장에는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이 꽉 차고
긴 줄을 이었다.
최구는 줄 끝으로 가만히 다가섰다.
사팔이의 바로 뒤였다.
“씨팔...웬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
사팔이가 껌을 짝짝 씹으며 중얼거렸다.
한참 후 그의 차례가 되었다.
여자와 매부리가 먼저 차에 올랐다.
사팔이는 차에 오르려다가
가방을 매부리에게 안기면서 뒤로 물러섰다.
“먼저 가, 나중에 갈께!”
“왜..왜? 매부리가 눈을 치뜨며 힐란 하듯이 물었다.
”답답해서 그래. 좀 돌아다니다가 갈테니까 염려마!“
사팔이는 문을 쾅 닫고 돌아 섰다.
최구 앞으로 빈 택시가 굴러왔다.
앞 차는 이미 저만큼 굴러가고 있었다.
”타실 겁니까? 안타실 겁니까?"
뒤에 서있는 중년 신사가
그를 밀어 내듯이 하며 물었다.
최구가 망설이다~~"먼저 타십시오.”
최구는 한쪽으로 물러나면서
앞서간 택시의 번호판과 회사명을 눈 여겨봤다.
사팔뜨기는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른 채
어슬렁어슬렁 걸어가고 있었다.
가게를 기웃거리기도 하고
길가는 여자들을 흘겨보기도 하는 것이
몹시 할 일이 없는 사내 같았다.
이윽고 충무로 쪽으로 접어든 그는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겄다.
골목 끝에 무도장이 있었다.
입구에는 아가씨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멋진 사내가 나타나
자기를 데려가 주기를 기다리는 처녀들이었다.
사팔뜨기가 입구에 서서 처녀들을 쓱 훑어보다가
그중 예뻐보이는 단발머리에게 다가가
어깨를 툭 쳤다.
단발머리는 보조개를 지으며 몸을 틀다가
사내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상황실에 보고되는 사건은 하나도 흘리지 않고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하루 종일 상황실에 앉아 쏟아져 들어오는
사건들을 검토하던 오형사의 눈에
마침내 사건 하나가 환영이 되어 나타났다.
그는 즉시 관할 경찰서로 달려가
그 사내를 만나 보았다.
이름이 지천수라고 하는 30대의 노동자였다.
“처음에는 자살하려는 줄 알았습니다.
신고가 들어 왔으니까요.
그런데 나중에 소지품을 조사해 보니까...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사람 말로는 어떤 모르는 사람이 준 것이라고
그러는데...그게 어디 말이 됩니까?
담당 경찰은 오형사에게 대강 설명을 하고 나서
지천수의 어깨를 툭 쳤다.
”더이상 거짓말을 해봐야 소용이 없어!
이돈은 어디서 훔쳤는지 바른대로 말하지 않으면
여기서 못나갈 줄 알아!”
오형사는 사내를 데리고 별실로 들어갔다.
담배를 권하면서 묻자
지천수는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저는 가난하게 살았지만 서두요
지금까지 남의 물건을 훔친 적은 없습니다.
정말 억울합니다.
왜 제 말을 믿지 않는가요?”
“울지 마시오. 나는 당신 말을 믿습니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말해 보세요.”
사내는 눈물을 훔치고 나서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직업소개소로 일자리 구하러 나갔는데요....
어떤 쬐만한 신사가 나타나서 하는 말이
자기 부탁 하나 들어주면 일당으로
20만 원을 더 주겠다고 하데요.
무슨 일인가 하면...2시에 어떤 극장에 가서
빨단 모자를 쓰고 있다가 나와서 좀 걸은 다음에
여관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래요.
일치고는 괴상했지만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한한다고 했지요.
지가 좀 꺼려했더니 30만 원을 주데요.
나중에 제가 딱한 사정을 듣고
또 1000만 원을 주데요.
지는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했지요.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자기는 가지고 있는
돈을 다 못쓰고 죽을거라고 하데요.
그러면서 돈을 준 것이지요."
”그 사람 이름을 알고 있나요?“
”모르겠구만요!“
”그 사람이 시킨대로 했을 때
뭐 이상한 걸 보지는 못했나요?
아무것이라도 좋습니다.“
"봤지요. 어떤 두 사람이 저를 따라 왔지요.
아주 무섭게 생겼는데요.
나중에는 여관까지 들어와서
문을 열려고 해서 겁이 났지요.
그러다가 조금 후에 순경들이 와서
문을 짓부수고 저를 데려갔습니다.”
오형사는 빨간 운동모자와 안경을 가리켰다.
“이것들은 그 사람이 준 겁니까?”
“네...그 사람이 모자을 쓰고 안경까지 끼라고 했지요.”
오형사는 마지막으로 최구의 사진을 꺼내보였다.
“혹시 이 사람이 아니었습니까?”
지천수는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거렸다.
“이 사람이 맞는 것 같은데요.
그 사람은 머리가 좀 길고 색깔이 있는
안경을 끼고 있었는데 가만히 보니
이 사람하고 비슷하구만요.”
“안경은 무슨 색깔이었나요?”
“밤색 비슷했지요.”
“옷은?”
“감색 양복이었지요.”
“넥타이는?”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감사합니다. 당신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아니..정말인가유?”
“네...정말입니다.”
관할 경찰서를 나온 오형사는
급히 강력과 사무실로 돌아왔다.
최구가 지천수를 이용했다고 볼 수 있었다.
최구는 이제 범인들과도 부딪힐 것이다.
부딪히는 그장소에 지천수를 보냄으로써
자신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위험을 미리 피한 것이다.
그리고 뒤에서 범인들을 주시한 것이다.
그야말로 집요하고 영리한 사내다.
지금쯤 범인들을 노리고 있겠지.
조만간 다섯 번째 사내가 살해되겠지.
오형사는 처음으로 패배위식을 느꼈다.
실내는 광란하는 젊음의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고고와 디스토의 열풍이 실내를 휩쓸고 있었다.
여자의 딘빌머리는 고교를 갓 졸업한 것 같아
보이는 앳된 처녀였다.
열아홉이나 스무 살쯤 되었을 것 같고
재수생인 듯 했다.
골프 바지차림에 빨간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나이답지 않게 매우 선정적으로
몸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밤 9시가 막 지나고 있었다.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여자가 탁자 밑으로
최구의 몸을 건드렸다.
“뭘 그렇게 보고 있어요?
최구는 소리없이 웃었다.
화장을 짙게 해서 나이를 알아보기 힘든 여자였다.
나이트 클럽을 무대로 기생하는 여자 같았다.
혼자 앉아있는 최구를 보고 접근한 것이다.
”안추실래요?“
”못춰요.“
”그럼 뭐하러 왔어요?“
”구경하려고...“
”치이...시시해...술 한 잔 줘요.“
”얼마던지....“
최구는 잔을 넘기고 맥주를 따라 주었다.
10시가 조금 지나자 사팔이와 단발머리는
나이트 틀럽을 나가고 있었다.
나가지 않으려는 단말 머리를
사팔뜨기가 우격다짐으로 끌고 갔다.
최구도 움직였다.
계산을 치르고 그 여자에게는 팁을 주고 나서
급히 밖으로 나갔다.
골목 안에 여관이 하나 있었다.
그 앞에서 사팔뜨기와 단발머리는
실갱이를 벌이고 있었다.
”따라 와“
”싫어요.“
”조용히 말할 때 따라와?“
”싫어요. 이것 놓으세요 댁이 뭔데...“
”뭐? 댁이 뭔데?...이 쌍년이!“
철썩하고 따구를 때리는 소리가 났다.
이어서 주먹으로 복부를 후려치자
단발머리는 배를 웅켜쥐고 주저앉았다.
”알았지..알았으면 따라와“
단발머리는 더 이상 앙탈하지 못한 채
벌벌 떨면서 사팔뜨기를 따라 모텔로 들어갔다.
골목에 서있던 처녀 두 명이 눈이 휘둥그리 뜬 채
웅성거리고 서 있다가
뛰듯이 골목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모텔은 밖에서 보기보다는 몹시 낡고 허름했다.
방과 방 사이에는 합판으로 막혀져 있어서
옆 방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똑똑히 들릴 정도였다.
만 원짜리 한 장을 팁으로 주면서 부탁하자
모텔 종옵원은 두말 하지 않고
사팔뜨기가 들어간 옆 방으로 안내했다.
최구는 조용히 문을 닫은 다음
숨을 죽이고 옆방에 귀를 기울였다.
”안 돼요 그건 안 돼요“
단발머리가 울먹이며
애걸하는 소리가 뚜렷이 들려왔다.
이어서 무자비하게 후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빠리 벗어 내 손에 걸린 여자치고
온전하게 돌아간 여자가 있는 줄 알아?
죽여 버리기 전에 빨리 벗어?“
” 아~~ 안돼요“
”이게 보이지?
이걸로 얼굴을 그어버리면 어떻게 되는 줄 알지?“
”버...벗을께요 제발..제발...“
”빨리 벗어“ 벽이 흔들거리며 옷이 북..하고
찢기는 소리가 났다.
단발머리의 흐느끼는 소리가
차츰 신음소리로 변하기 시작했다.
야수가 내뿜는 것 같은 거친 숨소리가
벽을 타고 흘러내렸다.
첫댓글 이제 낚시에 걸린 물고기를 요리 하는일만 만았네요.
이번에는 어떤 솜씨가 발휘 될까?
항상 수고하시는 부소산님. 감사합니다
이거 글 올리는 것도 장난이 아니네요.
일일이 한자 한자 쓰고 나면
예전 책이라서 오, 탈자에 띄어 쓰기도
전혀 맞지 않고...그러나
물차님이 있어서 올릴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