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2896]柏谷선생7절 고방서예[2896]柏谷선생7절 木川道中(목천도중 )
木川道中(목천도중 )
柏谷 (백곡)金得臣(김득신)
斷橋平楚夕陽低(단교평초석양저)
다리 끊어진 벌판에 석양이 나직하고
正是前林宿鳥棲(정시전림숙조서)
바로 앞산에는 잘 새가 깃드네.
隔水何人三弄笛(격수하인삼롱적)
물 건너에 어떤 사람이 피리를 부는지
梅花落盡古城西(매화낙진고성서)
매화가 옛 성 서쪽에 다 떨어지네.
다리 끊어진 들판에 노을이 낮게 드리우니
앞산 숲속의 새들 둥지에 깃들일 시간이네
물 건너 어느 누가 연거푸 피리를 불어대나
매화 꽃 다 떨어진 옛 성의 서 西편이여
위 시의 제목 가운데 목천은 지금의 천안 병천을 가리킨다.
그곳 가전리 잣밭 동네가 김득신의 고향이다.
그러니까 위 시의 제목 <목천도중 木川道中>은
시인에게 목천 가는 길, 즉 고향 가는 길을 뜻한다.
고향이 무엇인가. 선조의 뼈가 묻혀있는,
대를 이은 대가족 삶의 터전이다.
그런 의미에서 목천은 시인에게 고향이며
고향이 아니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그곳은 그의 증조부가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쫓겨온 유배지였다.
거기서 그의 부친이 임진왜란 때 전사한
종조부 김시민 장군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그가 만년을 보낸 곳은 고조부가 기묘사화를 피해
터 잡고 살았다는 고조부의 외가 마을 괴산이었다.
너무나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왕조의 하부구조인
농경민의 정주 문화 속에서 사대부 지식인들은
거꾸로 유목민적 방랑의 삶을 살아야 했다.
출사한 이들은 각처의 부임지를 떠돌았으며,
당쟁에서 패한 이들은 유배지를 떠돌았으며,
세상을 등진 이들은 가문과 인연이 있는 낙향의 터를 찾아 떠돌았다.
위 시는 당나라 낙방거사의 <풍교야박 楓橋夜泊>에 담긴
어둡고 우울한 정조를 닮았다.
어려서 천연두를 앓아 두뇌발달이 더딘 지진아였다는 김득신.
뒤떨어진 기억력 때문에 지독한 책벌레가 되었으나
<백두 오십>이 넘도록 과거에 낙방을 거듭했다는.
그가 소외된 방랑객의 심정으로 걸어갔을 귀향길,
낙조에 물든 산야의 풍경은 그를 기다리는 고향의 정경이 아니다.
왕도의 영화와 거리가 먼 옛 성터, 거기서도 쓸쓸히 해가 기우는 곳.
천재의 영감이 아닌 각고면려의 내공으로 직조해낸
서정적 풍경의 화폭은 가슴이 서늘하도록 아름답지만 공허하다.
원문=柏谷先祖詩集冊二 / 七言絶句
龜亭聞笛
斷橋平楚夕陽低。
政是前山宿鳥棲。
隔水何人三弄笛。
梅花落盡故城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