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화백
김광한
내 친구 가운데 목사가 한분 있어요.그 목사는 젊은 시절에 나와 여원이란 잡지에서 함께 일한적이 있는데 무슨 생각이었는지 몇년후 목사가 됐어요.서울 신정동의 칼산이란데서 빈민 선교를 하다가 건물이 철거 당하는 바람에 쫓겨나 방랑교회(?)를 몇차례해봤으나 부흥이 안돼 강원도 홍천 모곡이란데 가서 빈집을 하나 사서 선교원 간판을 붙여 놓고 농촌 목회를 했으나 그게 여의치 않았어요.
헌금이 건물 임대료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것은 고사하고 신자라야 가족 셋에다가 천주교 다니는 나까지 도합 넷이에요.이러니 헌금이 들어올리 없지요.나는 미사 끝나면 그 친구 설교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그 교회를 갔어요.그러나 그것갖고서는 물가 상승요인에 비하면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이 허락치 않아선지 문을 닫아야했어요.
강원도 모곡이란 마을은 척박하기가 짝이 없는 곳인데 이곳 초가집에 간판만 우람한 대한 예수교 장로회 모곡 선교원이라고 붙여 놨어요.그런데 바로 이웃에 화실을 지어 작품활동을 하는 분이 있었는데 바로 최관도 화백이에요. 이분은 서울대 회화과를 나와 국전에도 특선까지한 족보 있는 작가이지요.그런데 생김새가 어디 화가다운 데가 한군데 없어요.시골 허름한 영감이지요.이분은 특히 나를 좋아해서 잘된 작품 한점을 주겠다고 매번 만날 때마다 그래서 나는 그 작품을 내게 주지 말고 팔아서 현금화시키라고 했어요.
남의 작품 공짜로 얻는 것을 나는 탐탁치 않게 생각했고 작품 자체를 금전의 가치로 취급하는 걸 아주 싫어했어요.이분의 부인 역시 화가인데 서울의 모 여고 미술 선생으로 있었어요. 최화백은 노후에 부부끼리 이곳에서 이주해 그림도 그리고 삶의 질도 높여보려고 생각했으나 하나님이 허락치 않아선지 부인이 그만 기관지 천식으로 사망했어요.
아내를 잃은 최관도 화백은 텅빈 화실에서 거의 매일 작업에 매진하는데 이분이 그리는 그림은 산(山)이었습니다.강원도 홍천의 모곡이란 곳은 지대가 높고 험준해서 산이 악산이 많아요. 바로 이 산들을 소재로 그리는데 아침 산과 점심 산, 그리고 비올때 산이 모두 틀리답니다.그림의 호수도 대형 그림인데 몇년에 한번씩 전시회를 하지요.이 전시회란 것이 돈이 만만치 않게 들어요.그런데 최화백의 경우 연줄이 있어서 다행이도 몇점씩은 소비가 되는 것같아요.내가 보기에는 알 수도 없는 비구상같은데 그림값이 화첩에 이름이 든 화가라 괜찮아요.이분의 낙이란 스위스에서나 볼 수 있는 양떼 모는 큰 개 콜리를 친구겸 애인겸 삼아서 함께 지내는데 콜리의 길쭉한 얼굴과 최화백의 얼굴이 거의 똑같아요
.최화백은 이 콜리와 하루 온종일 대화를 하기도 하고 그림 감상도 시키고 함께 잠을 자는데 만일 이 콜리를 누가 발로 걷어차거나 괄시한다면 최화백에게 혼나지요.내 친구 목사가 그러지 말고 예수믿고 은혜받으라고 했다가 너나 믿고 천당 가라면서 화를 벌컥 내고 다신 상대를하지 않았어요.
몇년만에 제가 그 최화백을 만났는데 술한잔 마시고 내게
"김형 정말 외로워.이렇게 살다가 죽을텐데 뭐 재미난거 없소."
하면서 훌쩍훌쩍 울고 있는 거에요.1939년생이니까 벌써 80이 가까워졌네요.그리고 콜리가 떠났다는거에요.그 콜리가 쥐약을 먹고 죽어서 뒷산에 묻었다는 거에요.그분의 산을 주제로 한 그림에 언뜻보니 콜리가 산을 보는 모습이 들어있었지요.최화백과 똑같이 생긴 그 콜리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