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州始祖考妣 秋季祭享에 다녀오다.
전주시조 추계제향에 참석하였다.
2021년 11월 15일(월) 아침 6시30분에 웅부공원 대동문 앞에서 안동 수곡 파 宗員 28명을 태운 관광버스는 해평에서 6명을 더 태워서 34명이 전주로 갔다. 차안에서 아침대용으로 김밥과 떡과 생수병을 나누고 인사소개가 끝난 다음 필자는 사전에 준비한 오늘 행사의 의의와 수곡파와 가문의 자랑을 유인물을 배포하여 설명하며 오늘행사의 성공과 무사귀가를 기원했다.
3시간 30분만인 10시에 전주 유일여교 교정에 도착했다.
날씨가 너무 쾌청했다. 시조고비 산소는 전북 전주시 덕진구 인후동 인후공원 내의 유일여고 뒷등에 자리 잡고 있으며 재실은 산소에서 200미터 안쪽인 안골3길에 위치한다.
일행은 시조고비(始祖考妣) 재실인 시사재(時思齋)에서 祭禮服으로 갈아입었다. 재실의 “時思”는 ‘항상 조상을 생각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재실은 금년 9월에 보수해서 넓고 깨끗했다.
분정판(分定板)을 앞세우고 산소까지 가는 긴 행렬은 장관이었다.
11시에 묘전에 분정대로 참배객들이 序立하였다.
산소에는 전국 각처의 각파와 재단과 저명인사가 보낸 화환이 30여개가 세워져 있었다.
乾止山 기슭에 天惠의 靈峯을 업고 전주 시가를 굽어보는 시조고비의 묘는 광대한 墓域위에 石物이 고루 갖춰져 있고 始祖考 柳濕(류습)장령공과 始祖妣 全州 崔氏의 合葬封墳은 莊嚴했다.
시조고비의 五子一婿가 모두 과거에 급제하고 사위 沈孝生도 大提學(서울대총장. 정이품)의 벼슬에 올라 당시 조정에서 이를 높이 찬양하여 시조고는 봉정대부 사헌부 장령에 贈職되었고 完山伯에 追封되었으며 시조비에게는 여성으로는 최고의 품계인 三韓國 大夫人에 봉해졌다.
1982년에는 宗立學校인 학교법인 時思學院(류일여자 고등학교)을 묘소 앞에 설립하여 홍익인간을 양성하고 있는데 우리전주 류씨의 자랑이고 보람이다.
종중이사회는 22개 파에서 선출 파송한 이사와 감사고문과 祭典有司로 구성되어있고 모든 宗事는 宗憲을 준수하고 이사회의 결의에 의하여 집행되고 총회에 보고하고 있다.
전주 류씨 대종보인 “時思誌”는 1990년에 창간되어 전국 종원들에게 대종중의 宗憲과 宗財와 사업현황을 알리고 종립학교의 모든 것을 자세히 알리며 시조로부터 순차적으로 선조들의 빛나는 역사적 사적과 빛나는 행적을 후세에게 소상히 알리고 홍보하며 종중의 저명인사들의 논문, 시문, 산문 등도 공모하여 연1회 이상 발간하고 있다.
초헌관은 류 건기(안동수곡파의 청백리 함벽당 류경시의 10대 胄孫)씨였다.
집안과 본인의 위상이 반영된 대우로써 가문의 영광이고 숭조돈목의 자리이므로 개실 야계 파에서 많이 참례하였다.
전국에서 후손들이 모인 제례이므로 이질감도 있었지만 시조고비 추모정신으로 순조롭게 행사가 잘 마무리되었다.
嚴肅한 제례 중 중간 중간의 잡담과 음복례의 무질서는 빈축을 샀다. 제례 중 음복수조(飮福受胙)의 절차가 있지만 최소한 五執事(삼헌관. 집례. 독축)에게는 별도의 음복이 있어야하고 지역별로 골고루 나눠지길 바란다.
많은 분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봉사에 깊이 감사드린다.
시조고비 추계제향에 수곡파의 <버드나무화원>의 류지원씨는 행사 전 과정을 드론까지 띄워서 촬영하였고 수곡파 사무국장인 류기인씨는 조직의 지원도 없이 수곡파 참배객들이 무사히 다녀오도록 혼자 봉사하셨다.
귀가 길에는 마이산을 관광하고 차안에서 술과 음식을 나누고 정담과 환담으로 화합을 다졌다.
끝으로 시조고비 제향이 좀 더 체계적으로 진행되어 배움의 장. 숭조추모의 장. 돈목과 화합의 장이 되길 바란다.
전국의 宗員분들의 건강과 가정의 행복이 깃들기를 仰願하며 우리 전주 류 씨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2021년11월15일 (음력10월 중정) 안동 수곡파 개실 류 형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