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자락이 점차 붉게 물들기 시작하고 기온마저 떨어져 가을이 왔음을 피부로 느끼는 요즈음이다.
환절기만 되면 연중행사처럼 이비인후가 좋지않아서 가까운 병원을 종종 다니지만
나이탓인지 염증이 잘 가라앉지도 않고 하여 거리가 멀어도 사촌 동생도 볼겸해서
의사로서의 실력도 아주 훌륭하다는 것을 알던 터라 좀 시간이 걸리지만 동생의 병원을 찾았다.
병원은 많은 환자로 북적였고 나는 내 차례가 오기를 조용히 기다리며
동생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기도 하고 숙부모를 생각하며 이렇게 성공하여 많은 화자를 진료하고있는
동생이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내 차례가 되자 동생은 깜짝놀라며 미리들어오시지 않았다고 여러번 미안해 하며 진료를 시작한다.
몸이 아파서 찾아온 병원에서 순서 지키기는 꼭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며 동생의 마음에 화답의 인사를 보내고
진료를 시작하며 역시 먼 거리라도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며 치료를 끝내고 우리는 오랫만에
아담한 한정식 집에 앉아 점심 식사를 함께 하며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누님 "본 어게인[born again]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가 물어본 "본 어게인"은 기독교적인 용어로 "거듭나다" "속 사람이 새로워지다"의 뜻으로 질문한 것이다.
물론 그도 나도 교회의 중직자들이므로 신앙안에서의 삶을 이야기한 것이다.
살아가면서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표현이기에 나는 얼른 답을 못하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와 비슷한 용어를 많이 듣기도 하고 쓰기도 한다.
죽을 병에 고생하다가 완치가 되어 살아났을때 "본 어게인[다시 살았다]" 했다고도 말하고
사업적으로나 이모양저모양으로 크게 실패해서 고통속에 살다가 회생을 해도
"본 어게인[다시 회생 되었다] " 했다고 말한다.
이는 극한 어려움 속에서 다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회복 되었음을 표현하는
아주 희망적이고 기쁜 마음일 때 쓰는 좋은 상황일 때의 말이다.
그러나 이날의 대화속에 "본 어게인"은 극히 신앙적인 거듭남의 삶을 이야기 하는터라 심각함이 있었다.
사연인즉 정말 믿음좋고 신뢰감있던 가까운 지인이 사업상의 이유로 큰 돈을 빌려갔는데
사업이 생각대로 되지 못해 자금사정이 않 좋아지자 약속한 날자에 돈을 갚지 못하고
이런 피해자가 많음을 알게 된 동생은 그를 만나 신앙인으로서 그렇게 신뢰를 져버릴수있냐고 말했다는 것이다.
유난히도 바른 삶을 살겠다고 말하던 사람이 신뢰를 무너뜨린데 대한 분노였다고 한다.
사업이 여의치 못하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면서 겸손하기 보다는 약간은 뻔뻔하기까지한 그의 태도를 보며
동생은 나 에게 "삶과 신앙인의 모습"을 심각하게 회의섞인 질문하는것이다.
나의 마음도 안타깝고 아파서 무어라 대답할 말이 생각이 않나고 이 땅에 진정한 믿음의 사람들이 세상에서 오는일을
잘못 처신하여 신뢰를 깨뜨리고 비방받을 때 감당할수없는 슬픔에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누님.. 본어게인을 한 사람이 그렇게 피해를 많은 사람에게 줄수있나요?" "그의 뻔뻔한 태도가 더욱 문제지요..."
"그래...그러면 않되지... 허나 잘 하려다가 실패한 것이니
용서하고 기다릴수 밖에 도리가 없잖아..." " 우리가 모르는 아픔이 많겠지..."
"누님.... 저도 신앙안에서의 거듭난 삶을 많이 강조 했는데 분노가 앞서는 자신을 보며 부끄럽네요..."
우리의 점심시간은 이 화제로 인해 빠르게 지나갔다.
동생도 처음에는 분노했지만 그 보다는 안타까움과 괴로움이 더 많이 있음을 나는 느낄수가 있었다.
집에 돌아오며 흔들리는 찻 속에서 깊은 생념에 빠져서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며
말하는 그 순간에는 그말이 진실이고 고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말의 뒷 감당을 못하고 상대를 실망시킨적은 없는가 자문하며
도착지가 가까워 온 사실조차 잊고있었다.
살면서 실수가 없이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신앙인으로서 정말 본어게인의 삶을 살아갈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동생과의 대화속에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들이 되었다.
십년전 쯤 젊은 나이에 암에 걸려서 고통 속에 낙심하며 살던 친구가 병이 완치 되어 기뻐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의사는 몇 개월의 시한부 삶을 예고 했었지만 많은 노력과 인내로 친구는 병을 고치고
십년이 넘도록 건강하게 살고있고 친구는 " 난 덤으로 살고있는 나날이 너무 행복해..."하며
본 어게인의 삶을 날마다 감사와 기쁨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경제적으로나 마음의 고통이 있을 때면 죽음을 준비하던 그 때를 생각하며
"내가 살아 있어서 생기는 일들이니까 이런 어려움쯤은 아무 것도 아냐...." 하며
늘 밝은 웃음으로 본 어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친구를 볼 때 그녀가 너무도 훌륭해 보인다.
본 어게인을 했다고 말로만 외쳐대다가 실망시키는 신앙인의 모습보다는
차라리 세상 속에서 빵 한조각이 없고 걸을 힘조차 없던 사람들의 절규 속에
회복이 이루 어져 다시 사는 인생을 말할 떄 다시 태어남의 숭고함이 느껴진다.
속 사람의 본 어게인은 지속성을 유지 하기가 쉽지 않음을 또 한번 생각하며
하루를 살아가면서 부족하나마 사랑의 마음을 잃지않고
온유한 품성으로 신뢰를 저버지리 않는 모습으로 언어의 절제를 생각하며
살고싶다는 소망의 기도를 하며 오늘도 무릎을 꿇고 엎드린다.
성서 속에 본 어게인의 교훈을 생각하며 부끄러워지는 날 이다.
본 어게인 [born again ]이 우리들의 삶 속에서 자주 일어나
몸이 아픈 사람에게나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은 사람들이 회복되고
신앙안에서 진정한 다시 태어남으로 인해 자신과 이웃에게 감동의 삶을 살아가며
오고가는 대화속에 기쁨의 소리로 자주 들을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