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2023. 6. 3. 토요일.
하늘이 맑고 밝고 빛이 난다.
초여름의 날씨가 무척이나 온화하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 :
<아름다운 5060카페> '삶의 이야기방'에 박민순 님의 글이 올랐다.
'6월 3일(토) 출석부 / 하루의 소중함'
내가 댓글 달았고, 박민님 님의 덧글도 올랐다.
가고 오는 댓글과 덧글에서 나는 글감을 얻었다.
박민순 님의 글에 오른 사진을 여기에도 올린다.
잘 활용하겠습니다.
참나리
내 댓글 1:
엄지 척! 합니다.
자려고 애를 쓰다가... 잠자리에서 일어났더니만 하루가 지난 다음날이 되었군요.
01 : 03.
학생시절, 젊은날에는 저도 소설을 무척이나 좋아했기에 위 소설을 읽었지요.
50 ~ 60년이 지난 지금에는 소설 내용은 고사하고, 제목조차도 생각이 잘 나지 않는군요.
소위 책벌레라고 자칭했던 제가 이제는 퇴물이 되어서....
위 글에서 나오는 꽃송이들..
제 시골집 텃밭과 마당 가생이에 있는 식물이군요.
6월 10일... 아버지의 제사를 지낸 뒤에 시골집에 내려가겠다고 벼루고 있지요.
그런데 6월 15일이... 제가 삶방에 글 올려야 하는 당번이라고요?!
저런 저런... 시골집에 내려가야 하는데.....
그때 그 무렵에는 제가 아예 결석할까요?
수백 그루의 과일나무 묘목을 심었다가.. 함께 살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서울로 올라왔더니만
석류나무, 모과나무, 매실나무, 감나무, 대추나무 등은 엉망이 되었지요. 전정시기를 놓쳐서...
위 사진 속의 석류나무의 꽃이 예쁘군요.
박 선생님. 출석 글 정말로 고맙습니다.
내 댓글 2 :
박 선생님 존경합니다.
저는 충남 서부해안지방 갯바다, 산골에 자랐던 탓일까요?
작고 소소한 것들이 훨씬 좋대요.
올봄은 있었나요?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중국발 미세먼지,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에 심각하게 앓았기에
4월 5월에 고향에 다녀와야 하는데도 내려가지 못한 채 병원과 약국으로만 전전긍긍했지요.
지금 6월에서야 고향집에 다녀오려고 하니... 병원에도 더 다녀야 하고(당뇨, 전립선비대증) 아버지 제사 등을 생각하면..
아버지 제사(6월 10일)를 지낸 뒤에 시골에 내려가려고 하니...
6월 15일은 제가 글 쓰는 당번이....
고맙습니다.
박민순 시인님 수필가님. 덕분에 안심하면서 고향 다녀올 계획을 미리 세웁니다.
박 시인님 덕분에 저한테 글감이 또 생겼군요.
내가 6월 15일 경에는 시골에 내려가야 하기에 6월 15일에 내가 글 올리리가 어렵다고 했다
이에 대해서 박민순님은 나를 배려해서 나 대신에 글 올려주시겠다고 아래처럼 댓글 붙이셨다.
정말로 고마운 분이시다.
박민순 님의 덧글 :
6월 15일 고향땅에 가셔서 출석부 못 올리시면
제가 대타로 올리겠습니다. 걱정은 끄세요.
긴 댓글에 고마움 전합니다. 최 선상님!
1.
내 글감 :
''아버님 제사를 5시에 지낼까요, 6시에 지낼까요?
아이들한테 제사 지내는 시간을 알려주려고요."
아내가 내게 물었다.
나는 ' 오후 5시'라고 대답했다.
내 아버지의 제삿날은 양력 6월 10일(음력으로는 윤4월...)
아버지는 체격이 무척이나 크고, 건장했으나 폐암에 걸려서 집나이 66살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신 달은 음력으로는 윤4월이기에 음력으로 제사를 지내려면 .... 거의 불가능하다.
음력 윤4월이 아닌 음4월로 제사를 지내다가는 지금은 양력으로 지낸다.
제사.. 나는 많이도 축소했다.
고조부모, 증조부모의 제사를 음10월 시향(시제)로 돌렸다(친척인 큰당숙 사촌동생 등과 합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뒤로는 시향 등 종가일은 작은아버지(숙부)와 종조부(작은 할아버지)가 관장하셨고,
이들이 돌아가신 뒤에는 내가 제주가 되어서 5촌당숙, 4촌형제와 함께 상의해서 조상을 모신다.
* 그 당시 나는 집나이 35살(만33살).
서울에서 직장 다녀야 했기에 시향, 산소 벌초 등 큰 행사는 공주에서 사시는 숙부한테 넘겼다.
집단산소도 몇 차례 이전해야 했다.
1990년대 서해고속도로 개설로 죽청리 소재 산이 깡그리 토지수용되었기에 이장하였다.
새로 이장한 구룡리 소재 집단산소가 2016년 일반산업단지로 토지수용되었기에 또 이장해야 했다.
이때 대전 등 여러 군데에 흩어진 묘지를 파묘하여 서낭댕이 앞산(구룡리와 죽청리 경계선) 말랭이로, 한 곳으로 집중시켜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묘지 면적을 줄이고 또 줄이고, 장식용 석재류도 대부분 없애고, 축소해서 간소화했다.
* 나는 돌집손자, 돌집아들이었고, 내 가까운 친척, 인척들도 석공업에 종사했기에 최씨네와 친인척, 외가 등은
석공예에 대해서는 조예가 깊다. 특히나 내 고향 보령(예전에는 남포현)지방에는 석공업이 발달한 고장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내 집단산소의 석공예품은 무척이나 크고, 다양했음
* 몰락한 경주최씨이라서...
경주최씨는 신라 소벌도리공과 최치원의 후손이나 이씨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거의 쇠진한 상태.
내 어린시절 제사를 지내려면 한밤중에 지내야 했다.
친척들이 몰려와서 ....
한밤중에 제사를 지낸다는 게 지금 세상에는 이치가 맞지 않는다.
먼곳에 사는 경우에는 차 타고 이동하기도 어렵고....
나는 내 가족끼리 지내는 제사 시간을 초저녁으로 삼았다가 지금은 더 앞당겨서 저녁무렵으로 바꿨다.
자식들이 제사 지낸 뒤 제 집으로 되돌아가야 하기에...
시골(충남 보령 대천, 웅천 ...)에서 사시는 당숙과 사촌동생과 합의해서 각자 알아서 지내기로 합의했다.
서울에서 사는 나는 시골에 내려가지 않고 서울 내 집에서 간략하게 지낸다.
내 아버지의 제삿날에 다른 곳에서 사는 자식들이 어린 아이들을 이끌고 오려면 그것도 큰 부담일 터.
큰아들네는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건너편에서 살고, 작은딸네는 수원 인근에서 산다.
이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제사 지내고 되돌아가려면 내가 일찍 제사를 지내야 할 터.
제사 지내는 제수물품은 아주 간략하게 차리라고 늘 아내한테 주문한다.
제수용품. 그게 다 큰 돈이기에. 나는 그런 비용을 더 줄였으면 싶다.
실생활에 별 효능이 적은 물품이들이다.
나는 아무런 종교관도 없고, 또한 제례문화에 골병이 든 유교문화를 극도로 싫어한다.
영혼 등이 있다고는 전혀 믿지 않는데도 나는 개인적인 제사를 지낸다.
돌아가신 분(나와 관련된 조상님)을 한번이라도 더 생각한다는 것에 불과하다.
*나는 2녀 2남을 두었다.
자식 넷과 친손녀 친손자, 외손자가 함께 모이면 시끌벅끌하겠다.
나는 지난 3월 중순부터 꽃가루 알레르기 증상을 심각하게도 앓았다.
내과병원 두 곳에서 몇 차례 다니고, 약도 숱하게 먹었다.
병원과 약국으로 전전긍긍하다 보니까 나는 시골 다녀올 기회를 놓쳤다.
지난 3월 초 농협조합장 선거에 투표 참가하려고 시골 다녀왔으되 4월 5월에는아예 다녀오지도 못했다.
* 나는 1972년부터 농협 초창기 조합원...
이번 아버지 제사( 6월 10일)를 지낸 이후에나 시골에 다녀와야 할 터.
* 충남 보령 웅천읍 갯바다 인근이라서.. 시간을 내어서 갯바람도 쐬었으면 싶다.
서해대교를 막 지나 해안가 쪽으로 에둘러서 고향 내려가고,
2021년 12월 1일에 개통된 '보령해저터널' 속을 달려서 갯마을에도 구경했으면 싶다.
... 나중에 보탠다.
잠깐이라도 쉬자.
2023. 6. 3. 토요일.
첫댓글 네 수고 많아요
댓글 고맙습니다.
닉네임이 좋군요.
저는 올 3월부터 꽃가루알레르기를 심하게 앓는 바람에 바깥 외출을 자제하고는 아파트 안에서 TV를 켜서 시청했지요.
'나는 자연인이다'이라는 내용에 흠뻑 빠져들었지요.
TV 여러 챈넬에서 수시로 방영하기에.. 덕분에 산골, 해변의 자연생태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런 저런 이야기에 제가 흠뻑 빠져들었지요.
친환경 텃밭농사를 짓다가 서울로 되올라온 지금... 몸은 서울에 있어도 마음은 늘 시골로 내려가 있지요.
이런 저한테 '자연이다2' 님의 닉네임이 무척이나 반갑군요.
한때
봉제사에 목숨 걸든
시절 있었지요
시루떡 설익었다고
자살한 종부도
있었습니다
저도 부모님 장인장모
같은 절에 영구위패
모시고 있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저는 서해안의 이름없는 가문의 종가종손.
제 어린시절인 1950년대 중반.... 음10월 시향 때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시제를 지내대요.
산지기 3집에서 제수물을 지게로 져서 산으로 나르고....
60여 년이 지난 지금에는 거의 다 축소했지요.
아무런 필요도 없대요. 제 할아버지, 아버지는 중앙종친회 회원... 최씨네 족보발간사업에도...
특히나 제 아버지는 족보발간 위원장이 되어서 대동보사업을 대전 이층집 사무실에서 ....
지금은 많이도 축소해서 간략하게... 앞으로는 더욱 사라져야 할 '쓸데없는 짓거리'이지요.
우리나라 남한 땅 1%는 무덤이 차지하고 있지요. 파묘해서 없애야 할 무덤들이 너무나 많지요.
제사 없앤 가정 많지요 요새는
설, 추석, 그리고 돌아가신 날의 제사.
5대조 이상은 시향으로 모시고, 고조부모 증조부모, 조부모, 부모의 제사...
저는 고조부모, 증조부모님은 얼마 전 시향으로 모셨지요.
얼마 전부터는 조모 제사를 생략하고는 조부 제사와 합치려고요.
시대는 바뀌었습니다.
그 많던 도깨비도 전기가 들어오면서 사라졌습니다.
제사도 이제는 간소하게 줄이거나 1년에 한 번 몰아서 지내던가
아님 추석과 설날 차례로 대신해도 무방할 듯요.
우리 장손(큰형 큰아들)도 그렇게 간소화했습니다.
박 선생님의 글과 사진을 보고는 글감 얻었지요.
박 선생님의 말씀, 좋은 정보이군요.
저도 더 축소해야겠습니다.
아예 없애기는 좀 뭐하고....
서해안 산골에 있는 산의 묘역도 더 축소해야 할 터.
종산이 토지수용되었기에 제 소유의 산으로 개장해서 밀집화시켰지요.
그래도 봉분이 무척이나 많고, 제법 커서...
산소 벌초행사 시에는 제법 돈이 많이 나가대요.
벌초꾼 인부를 사야 하기에....
제사의 존폐가 걸렸으니
가족들 의견 수렴
편안하게 다수 결정에 따라 한번 해보세요
세상의 다변화로 제사 안 지낸다고 큰 일이야 나겠습니까
댓글 고맙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1950년대, 60년대의 시향/시제는 굉장했지요.
지금은 많이도 축소해서....
앞으로는 더욱 간소화해야겠습니다.
여전히 글을 쓰시는군요 곰내님
댓글 고맙습니다.
저는 여전히 글 씁니다.
제 닉네임을 기억하시는군요.
한때에는 '곰내'로 활동했지요.
곰내는 제 고향 옛지명이지요(熊川 응천 : 충남 보령시 웅천읍).
제사 축소에 한표...
어느 가문의 장남...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