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글은,
2011년 2월 16일 수요일. 저희교회 카페 "수요 목사칼럼" 란에 올린 것을,
그대로 복사해서 카페주인의 허락 없이 이곳으로 옮긴 글입니다.
--- 아 래 ---
한 목사의 부인이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목사는 아내를 위해, 병 수발드는데
정성을 다했습니다. 그 정성으로 사모님 생명은 계속됐습니다. 그렇게 8년이
된 어느날, 평소와 같이 아내를 수발 들던 중, 목사님은 자신도 모르게 “이제
그만 죽어요. 그러면 서로가 편할텐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사모님이 정말 죽었습니다. 그냥 생각 뿐이었는데,~!!! 목사님은 울었습니다.
사랑의 행위도 기쁜 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독(毒)이 됩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원(自願)하는 심령을 구했습니다(시.51:12). 감춰진 생각도 육체에 영향을
줍니다. 마음과 몸은 서로 힘이 됩니다. 마음이 울적할 때 몸이 등산을 하고
여행을 하면 치유됩니다. 몸이 아플때 좋은 마음(믿음)을 가지면 치유됩니다.
내게 몸과 마음은 하나이지만, 둘 중 하나는 반드시 건강하도록 해야합니다.
보이는 몸도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생각)도 중요합니다. 남들이 보는
것에 초연(超然)해야 합니다. 한 청년이 소방서 근무하는 친구에게 갔습니다.
분명히 근무시간인데, 소방대원들이 마당에서 계속 운동하며 놀고 있습니다.
질투나서, 인터넷에 정부 녹(祿)을 먹는 공무원이 근무시간에 딴짓하며 놀고
있다~는 비난 글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글을 올린 청년이 비난 받았습니다.
유사시(有事時)를 대비해 체력 단련하는 것이 (소방과 군인)공무원들의 근무
입니다. 영성을 위해 등산 휴식을 하는 것도 목회자들 나름대로의 일입니다.
보이는 것보다 본질로 판단해야합니다. 지난해 연평도 폭격사건때 대통령이
작업복 입고 군부대를 방문했습니다. 작업복 입은 사람에게 별(★)들이 붙은
군모 군복차림의 장군들이 쩔쩔 맵니다. 대통령이란 裏面의 본질때문입니다.
(이면)
공평과 정의의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키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내가 변화
되면 되는데, 네가 변화되어야 된다는 종속적 의식입니다. 내가 더하는 인생,
즉 5리 인생이 아닌 10리 인생이 되면(마.5:41), 문제는 사라지고, 성공하게
됩니다. 나를 퇴출(退出)시키는 것은 남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입니다. 내가
묵묵히 성실하게 더 해서 살고 필요한 존재가 되면, 나를 꼭 붙잡게 됩니다.
면사무소가 있는 소재지 지명은 면이름이어야하는데, 리(里)이름으로 불리는
곳이 많습니다. 그 면의 학교, 기차역 명(名)도 면 대신, 동네(리) 이름입니다.
칠곡 가산면→천평, 상주 공성면→옥산, 의성 금성면→탑리, *청송 현동면→
도평,~,~입니다. 교통(길)이 불편하던 때 왕래가 작아서, 고착된 지명입니다.
지난주 영천 화북면소재지 자천리~, 자천교회 자천초등학교에 갔다왔습니다.
영천에서 청송 가는 도중(途中)에 자천이 있고, 그곳에 1903년 설립된 자천
교회 예배당이 있는데, 옛가옥에 남녀를 구별짓는 칸막이가 있습니다(*사진).
1908년 건축된 전북 금산교회 ㄱ형 예배당(*칼럼 646호, 10.6.9일, 사진)과
함께,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열악한 환경에도 선배들은 신앙에 감사가 가득
했습니다. 혹 목회에 불평이 있다면, 그 원인은 환경이 아닌, 내 자신입니다.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마.5:41)
◆.사진- 1,2-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 자천교회를 방문했다.(*2011. 2. 9일)
3- 1903년 4월 1일 창립된 자천교회의 2011년 2월 6일자 주보~.
첫댓글 자천교회와 자천초등학교가 있는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는, 영천에서 "청송군 현동면 도평리 도평초등학교"에 가는 도중(途中)에 있습니다. 도평초등학교~!!
목사님 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노귀재를 넘어 대구땅을 처음 밟았을 때를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3학년 겨울 방학 때 오빠 언니가 있는 대구에 가면서 영천땅도 처음 밟았습니다. 자천도 만만찮은 오지인데 저는 그보다 훨씬 산골 출신이거든요 지금 생각하니 도평교회에서 유치부 교육을 잘 받아 교사의 꿈을 키운 것 같습니다. 저희들끼리 유치원을 좋은 데 나와야한다는 말을 많이 하거든요. 한밤중에 개미가 기어가는 모습도 볼 수 있는 형광등을 접한 것도 예배당이었거든요. 그 때 그시절을 생각나게 해주시네요.
박윤희선생님!! 도평초등학교 3학년 어릴 때, 노귀재를 넘었던 그 설렘(놀램)의 기억들이 오래 있겠습니다. 저도 노귀재를 관광과 교회순행 일로 몇번 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은 "노귀재 터널"이 뚫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천~!! 노귀재~!! 도평초등학교~!! 도평교회~!! 참으로 정겨운 말들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