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공정 단숨에 정복하기〗 - 2
동북공정에서 말하는 고대 동방의 역사는 인문(文字)시대로 문자의 등장으로 비로소 그 시대가 글(金文 : 圖形文字)로서 전하게 된다.
1. 인류최초의 문자는 사람(人,亻)의 문자 부호에서 출발하여 온 문자의 창제, 발전과정과 그 시대의 말(言語)에 전승되어 온 동방 인류역사의 전개을 문자로서 이해한다. '문(文)' : 형상과 사상을 본 뜸, 즉 글월 문으로 그린다의 뜻.'자(字) : 음성계(音聲界)
2. 고양씨나 황제, 치우시대를 이해할려면 반드시 ' 신(神) '이란 문자를 이해하고 , 그 문자는 허신 (후한, AD 30 - 124)의 <說文解字>풀이와 召南子의 금문해석에 의한 조선(朝鮮)이란 국호(國號)와 고양씨(高陽氏)의 관계, 그 가계(家系)에 대하여 이해를 필요로 한다.
3.컷1)의 '申' : 지지(地支)의 九번째 申을 神(韓語 하나님, 하나밖에 없는 사람, 즉 祖上 신)이라 풀이하고 있다.
'丨' ~ '申' ~ '神' 으로 변하는 이 최초의 문자는 지금의 양(羊)으로 읽는 글자와 같은 뜻으로, 고금문(古金文)에서 羊자를 양(陽)으로 읽고, 양지양, 낮, 양기, 남쪽, 북쪽, 맑을 양, 밝을 양, 따뜻할 양, 자지양, 시월 양,의 10가지로 읽는데 모두 이 글자와 같은 뜻이거나 서로 通하는 글자다.
가. 첫째 글자 '뚫을 곤"으로 읽는 는 '신(申)'의 본자(本字)라 했다.
위로는 '사람의 머리(上象人首)' 즉 아래에서 위로 통하고, 위로 그어서 가마 신, 정수리 신의 뜻과 통한다. 동양의 갓쟁이(정수리 신)은 서양의 GOD(gad)의 신(囟[사성음]xìn, xín )의 뜻과 통한다.
아래로는'사람의 다리(下象人足)' 즉 아래로 그으면 물러갈 퇴(退)라 한다.
여기에서 도저히 이해난(難)이나 최초로 神이란 글자를 이름한 염제(炎帝)신농씨(神農氏)가 재위 43만에 장강 남쪽(지금의 湖南省, 한국에도 남쪽 지방을 호남이라 칭한다)에 묘족(苗族 : 귀주, 운남, 호남에 거주하는 土族)의 반란이 있어 작은 사위 소호 김천씨에게 황제 대행을 맏기고 낙남(落南)하신 연유로 물러갔다고 전한다. 현재 호남성에 신농 염제의 차능(茶陵)이 있다.
가운데는 '사람의 허리(中象人腰)'로 신(申, 神)이 사람이란 뜻에 상도(相到)하게 된다. 이 최초의 사람은 문자학적으로 양족(羊族)의 시조인 신농씨(西陵氏, 炎帝, 歷山氏)다. 이 인(人,亻)이 염제의 3대인 제고양씨 (帝高陽氏)때오면 임금 즉 천자(天子)로 바뀌며, 인내신(人乃神) 즉 인내천(人乃天)으로 발전하게 된다.
나. 컷1)의 4번 절구공이와 확같이 생긴 문자는 '申'은 '건곤(乾坤)' 또는 '천지(天地)', '부모'로 읽어 건괘의 막대기와 곤괘의 구멍이 아래 위에서 通해서 "하늘과 땅"과 같은 것이 부모(父母)다...
'부모는 신성-령(神聖-靈)한 존재로, 살아계실 때 잘 모시고, 돌아 가셨으도 영원히 쉰다'는 뜻에서 '신(神)'이다.
4),5)번의 뜻을 풀이하면 "從臼, 自持也"(확구를 쫓아서 '자지'라 한다")
"天神引出萬物者也" (신은 하나님으로 만물을 끄집어 낸 사람(者, 人, 남자)이다.)
許愼이 모은 '說文'은 여자의 음물(陰物)을 쫓는 남자의 양물(陽物)로 풀이한 '신(神)'이다. 남근(男根) = 신(腎)과 같은 음부(音符)다.
4)번의 이 금문 모양은 여성의 음물을 상징하는 '절구 구(臼)'가 남자의 양물을 상징하는 절구공이, '기둥 주(1, 柱)'를 둘러 싸면서 '1'字가 다음 단계인 '申'으로 변한 것이다. '확구를 따르고, 스스로 가진 것'이란 말에서 '자지 : [zì] [chí] '란 말이 나오는데 우리 말 조쟁이, 지지(어린 아이 것) 즉 우리말 이 본음(本音)이기 때문에 한국어를 알지 못하면 도저히 이해(이해) 불가능(불가능)하며, 변음(變音)인 중국인(中國人)이 더욱 이해 난(難)이다.
4. 結語 : 하나님은 사람의씨를 스스로 갖고 있는 사람이란 뜻으로 순수한 우리말 '自持神'이 하나님이 된다는 고금(古今)에 들어 보지 못한 말이다.
참으로 해괴망측(駭怪罔測)하다. 그러나 그 의문은 중국 황제의 능을 참배하며, 입구에 전시관이 있는데 그 곳에 가면 황제의 무덤에서 출토 된 토기 모양의 남자의 양물(陽物)이 전시 되어 있다. 무려 4천5백여년 전의 유물로, 그 곳 해설자도 질문하면 게면쩍게 잘 모르겠노라 답한다. 여러 분께서도 黃稜에 가시면 한번 물어 보시라. 오늘의 역사교육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5. 이 구(臼)자는 확구의 '양 손으로 떠 받든다'는 뜻에서 백구(伯舅 : 시아버지, 외삼촌, 장인)까지로 발전하게 되는 문자다.
임금의 장인을 국구(國舅)라 하는 것과 같다.
6. 고조선(삼황오제 시대라하는) 제2대 천자 소호김천씨 시절 청년 제정옥 고양씨의 관직 '주(鑄)'의 명문이 있어 역사를 증명할 수 있다. 아래 컷 : 鑄爵(人申卣)의 부사(父巳) 작(作)
* 부사 : 소호김천씨
7. 컷 3)의 주패(柱貝)로 읽는 신농씨 시대 일시(日市) 즉 신시(神市)에 유통되었던 초최의 화폐. 호미모양의 돈이라하여 '조패(鋤貝)'라 하였으나(駱說), 기둥모양 주(柱)씨는 신농씨의 아들로 누님의 딸 상아(嫦娥, 사마천이 昌意로 男裝을 입힌 장본인)에게 장가들어 신농씨의 사위가 된 유웅(有熊)씨 황제(黃帝)의 사위가 된 분이다.
그러므로 '주패(柱貝)'는 신농씨 시대 화폐이므로 앞서 설명한대로 '신패(神貝)'로 풀이한다.
즉 金景明이 단군이 阿斯達에 도읍하여 神市를 열었다는 소설이 바로 곡부(曲阜, 阿曰曲阜) 중심, 大汶丘유적지 역사의 고향이다.
옛조선의 도읍지는 백두산 아래 단목 밑이 아니고 최초의 사당이 고양씨에 의해 세워진 태산(太山 - 중국의 五岳 중 獨尊)아래 고조선 제도(帝都- 현재 공구가 대성지성문성왕으로 선조를 깔아 뭉개고 만인의 흠향을 받는 곳) 곡부(曲阜)이다.
注 : '丨貝 "는 염제 신농씨가 천자가 되시고 정거입주하면서 시장에서 물건을 공정하게 거래되도록 만든 최초의 돈이다. 지금도 돈에 사람의 얼굴을 새겨 넣는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역사를 시작한 뒤 돈에 자기 이름(문자)을 새겼던 일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신농씨, 소호김천씨 시대의 역사시대로 곡부엔 소호씨陵이 남아 잇어 이런 인물들이 단순한 신화나 전설이 아님을 증거하고 있다.
뇌천이 "三國史記" 本紀 末尾에 "新羅人은 소호씨(少皞氏) 후손이기 때문에 성을 김씨(金氏)라고 했다"고 전한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 중국대륙 섬서(陝西)지방에 살고 있던 신라인들이 진(秦)이 멸망하자 망명하여 서쪽 감숙성(甘肅省) 무위 지방으로 피난가면서 갈라 보낸 경진씨(鯨津氏)의 역사를 알아야만 신라인들의 한반도 정착과정을 알 수 있다.
민족의 4분의1이상을 차지하는 김씨(金氏)들의 가계는 우리민족의 내력이다.
돈은 돌고 돌아서 고루 고루 유통되어야하는데, 더 혼자 많이 가질려는 인간의 과욕에 오늘날 사회가 혼탁한 것이다. 그래서 4천5백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은 돈의 민주화라는 웃지못할 명분을 걸고 자고 나면 다툰다. 참 한심한 민족이다. 언제까지 부권, 모권, 형제 쟁투는 계속 될 것인가 ? 나는 오늘도 더운 성하에 세계사에 부끄러운 민족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역사 노트를 뜻있는 지인들에게 보내는 것이다.
다음 호에 게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