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를 찾아서/靑石 전성훈
봄이 오는 모습은 그 장소와 위치에 따라 확연히 다르다. 4월 중순이라 육지는 봄이 완연한데, 서울보다 북쪽에 있는 섬나라는 이제야 봄의 생명이 그 작은 싹을 피우기 시작한다. 백령도를 찾아가는 첫날, 한 세월 동안 꿈꾸며 기다리고 기다리던 백령도행 뱃길에 오른다. 친구와 함께 백령도 가는 배를 타는 꿈을 꾼 탓인지 설레는 마음에 잠을 설친다. 오전 4시에 일어나 기도를 바치고 짐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선다. 인천행 전철을 타고 거의 2시간 가까이 걸려서 동인천역에 하차하여 다시 택시를 타고 연안여객터미널에 도착한다. 여객선 출항 시간이 남아 우동에 김밥을 사 먹고 멀미약을 복용한다. 오전 8시 반 정각 카페리호가 출항한다. 바람이 부는 파도 위를 여객선은 날렵한 갈매기처럼 미끄러지듯이 달린다. 3시간 40분이라는 긴 항해 끝에 대청도에 도착한다. 생각처럼 바다가 거칠지 않은 덕분에 뱃멀미하지 않아 대청도에 내려서 매운탕에 밥을 말아서 먹는다. 작년 5월 울릉도와 독도 갈 때는 뱃멀미로 고생이 심했는데 이번에는 괜찮아 정말 다행이다. 현지여행사와 펜션을 운영하는 가이드는 대청도에는 주민 1,300명과 군인 1,000명이 상주한다고 한다. 본격적인 구경을 앞두고 배정받은 숙소에서 한 시간 정도 쉬면서 창문을 통해 야트막한 산을 바라본다.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는 국가 지질공원이다. 처음 간 곳이 ‘농여해변’과 ‘미아해변’이다. 이곳은 썰물이 되면 이어지는 해변으로 백사장과 드넓은 바다의 풍경을 보며 걷기 좋은 곳이다. 때마침 썰물 때라서 농여해변의 나이테 바위의 특이한 모습을 바로 눈앞에서 바라본다. 중국이 원산지인 붓꽃과의 초록색 ‘대청부채’꽃이 청초한 모습으로 바위틈에서 자라고 있다. 미아해변에는 잔잔한 물결과 바람에 의하여 물결무늬 백사장이 펼쳐지고 백사장 한편에 있는 커다란 절벽 표면에 똑같은 무늬가 새겨져 있다. 이 물결무늬를 ‘연흔’이라 하는데 10억 년 전 대청도가 생성될 때 그 상태로 보전되어 있다고 한다. 다음에 찾아간 곳은 우리나라 해안사구 중에서 가장 큰 곳인 ‘옥죽동’ 해안사구이다. 사구(砂丘)에 낙타 모형이 있는데 가이드가 농담 삼아 낙타를 타보라고 한다.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는 모래가 쌓인 바위 ‘사암’이 주된 바위이고, 소나무, 떡갈나무, 소사나무가 많이 자란다. 소사나무는 분재로 인기를 끄는 수종이다. 바람이 많이 불어 겨울이 다시 찾아온 듯 쌀쌀한 날씨에도 이곳 출신 여성 해설사는 이런저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위도 때문인지 목련과 벚꽃이 이제야 꽃망울 터뜨린다. 우리나라에서 잡는 홍어의 절반 이상이 대청도 일원에서 잡혀 대부분 활어 상태로 목포로 보낸다고 한다. 저녁 식사 때 홍어와 광어를 섞은 회에 소주를, 매운탕에 밥 한 그릇을 다 비운다. 전기가 들어오기 전에는 기찻길 옆 오막살이나 섬사람에게 밤놀이 문화가 뭐였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숙소에 들어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졸음에 쫓겨 밤 9시경 꿈나라로 떠난다.
둘째 날, 어제저녁 너무 일찍 잠자리에 든 탓에 새벽에 깨어나 샤워를 하고 나서 기행문 초고를 작성한다. 친구도 일어나기에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하늘에는 시커먼 먹구름이 가득하다. 산책 삼아 숙소 주변을 걸으며 해안가에 가보니 음식물 쓰레기를 갯벌에 붓고 있는 아주머니와 그것을 먹으려고 찾아와 환호성을 지르는 갈매기 떼가 보인다. 사람과 갈매기가 서로 돕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후드득후드득하고 빗방울이 떨어진다. 오전에 대청도 구경과 백령도로 가는 배편이 어찌 될지 궁금하다. 길을 떠나면 하늘에 그 뜻을 맡기고 거기에 따라야 하는 게 길손의 자세가 아닐까. 늙은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맛본 아침은 소박하지만 정갈하다. 밥 한 그릇을 더 가져다가 반찬 그릇을 싹 비우고 맛있게 먹는다. 식당에 앉은 일행을 둘러보니 부부 두 쌍, 여성 한팀, 남성 한팀, 친구끼리 온 남자들 그리고 혼자 온 남자 4명까지 30명이 넘는다. 간간이 비가 뿌리며 바람도 불고 미세먼지가 심하게 끼어 하늘이 뿌옇다. 대청도 트랙킹 코스 ‘서풍받이’길을 간다. 해발 약 80m 거대한 절벽인 ‘서풍받이’는 하얀 규암으로 이루어진 수직 절벽으로 서쪽에서 불어오는 편서풍을 그대로 온전히 맞고 있다. 한 시간 정도 ‘서풍받이’길을 걸으며 해설사의 재미있는 설명을 듣는다. 물을 잔뜩 머금은 산길이 미끄러워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천천히 걷는다. 마음은 편안한데 무릎이 시큰거려서 육신은 고달프다. 대청도 구경을 마치고 터미널에서 백령도행 여객선을 기다린다. 대청도에서 백령도까지는 15분 정도 걸린다. 보통 단체여행을 가면 사전에 여행사에 비용을 송금하는데 이번에는 대청도를 떠날 때 현지여행사에 지불하는 특이한 경험을 한다. 백령도, 상주인구 6천 명에 군인도 6천 명이라고 한다. 어업보다는 밭농사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백령도에서 첫 번째 찾은 곳은 ‘효녀 심청’ 전설이 얽힌 심청각이다. 심청이 몸을 던진 인당수가 바로 두무진 앞바다라고 한다. 심청각은 심청전 전설 배경이라는 인당수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세워져 있다. 두 번째로 말없이 비를 맞고 있는 천안함 위령탑을 찾아가 희생된 장병 46분의 영혼에게 절을 하고 거수경례를 바친다. 천안함 위령탑을 뒤로하고 유람선을 타고 아름답고 기묘한 암석의 장관이 펼쳐져 ‘서해 해금강’으로 불리는 두무진 해안을 구경한다. 유람선을 탄 사람들이 저마다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찍느냐고 난리이다. 마치 장군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하는 것 같다고 해서 두무진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새우깡을 얻어먹으려고 갈매기 무리가 쫓아온다. 선착장으로 되돌아와 가이드를 따라서 두무진 정상으로 향한다. 절벽 아래로 연결된 계단을 따라 내려가 바닷물에 젖은 미끄러운 바위에 올라서서 장엄한 경치에 입을 벌리고 한동안 넋을 잃는다. 관광을 끝내고 두무진 해안 식당에서 친구가 가져온 와인을 곁들여서 광어회 맛을 본다. 섬에서의 식사는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없기에 가이드가 정한 곳에서 비싼 음식을 사 먹을 수밖에 없다. 옆자리에 앉은 포항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음식값이 너무 비싸다고 항의를 할 정도이다. 코로나 탓에 3년 동안 손님이 없다가 이제 조금씩 찾아오는 육지인에게 바가지요금을 씌우는 인상이 느껴진다. 세월이 어수선하고 모든 게 바뀌어 야속하게 되었는데 어찌하겠는가? 그저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숙소는 캠핑카인데 겉은 차량 모습이지만 내부는 일반 펜션과 다름이 없다. 침대와 방이 있어 구들이 뜨뜻한 방바닥에 요를 깔고 정신없이 잠을 청한다.
집으로 가는 날, 새벽 5시에 눈이 떠져 어쩔 수 없이 일어나 샤워를 하고 짐 정리를 한다. 안개가 많이 껴서 배가 출항할지 궁금하다. 아침을 먹고 썰물이 되어 물이 빠진 사곶해변 천연비행장 활주로를 찾아간다. 전 세계에 단 하나 있다는 길이 약 2.0km 폭 20m의 천연활주로이다.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는 하얀 백사장 모래는 깊이 빠지지만, 검은색의 활주로는 밀물과 썰물의 움직임에 따라서 백사장 모래가 매우 작고 크기가 균일하며 늘 수분을 머금은 채 시멘트처럼 단단하게 굳어서, 한국전 당시 비상 활주로로 이용하였고, 최근까지도 군 비행기 이착륙이 있었다고 한다. 천연활주로를 떠나 콩돌해안으로 향한다. 몽돌해안이라는 명칭은 우리나라 여러 군데 있지만 ‘콩돌’이라는 이름은 처음 듣는다. 백령도를 구성하는 암석들이 풍화와 침식작용으로 부서진 후 파도와 바람에 쉼 없이 마모되어 둥글게 변한 크고 작은 콩 모양의 돌이 모인 해안이다. 길이 약 800m, 폭 30m의 해변에는 흰색, 회색, 갈색, 적갈색, 청회색의 콩돌이 형형색색으로 덮여있다. 이곳은 중국 산둥반도와 가까워 각종 중국산 플라스틱이 조류에 떠밀려와 주민들이 수거 작업을 한다. 용기포 등대해변에서 바위에 착 달라붙은 작은 굴을 캐어 먹어보니 짭짤한 바닷물이 흠뻑 젖어 평소 맛보는 굴보다 더 맛있게 느껴지는 별난 체험도 해 본다. 점심으로 작은 굴을 넣은 따끈따끈한 메밀 칼국수를 국물까지 모두 마신다. 이제 서쪽 바다 섬나라 여행을 마무리하고 떠나야 할 때이다.
“우리의 산하는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소설 [산하]에서, 작가 이병주 선생이 말씀하셨듯이, 신화와 역사가 되는 2박 3일간 대청도와 백령도 섬 여행을 마치고 검푸른 바다를 달려 인천으로 향한다. 2029년 백령도비행장 건설이 완성되면 모를까, 쉽게 여행할 수 있는 곳이 아니기에 내 생애 두 번 다시 오기는 힘들 것 같다. 몇십 년 동안이나 늘 가고 싶어 하던 꿈을 이루었다는 생각으로 몸은 피곤하지만 좋은 추억을 가지고 헤어진다. 함께 여행하면서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고, 걸음이 불편한 나를 위해 여러 가지 신경을 써 준 친구 J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2023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