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 4일 – [오늘의 명상]
“기억은 사라지지만 절대 사라지지 않는 것은?”
밥을 이야기해도 배는 부르지 않고(舌食不當飽)
그린 떡으로는 주린 배를 채울 수 없듯이(畵餠不充飢)
팔만대장경이 머릿속에 다 들어있다 해도
행(수행)하지 않으면 그림 속의 떡과 같다네.
[덧붙임]
죽은 후에 과연 영혼이 있을까?
인류가 생긴 이래 지금까지 이 문제에 대해 과학적으로 아직 결론이 명확하게 나지 않은 상태다.
개인적으로 영혼이 있고 없고는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인간이 마음으로 생각한 것은 반드시 현상적으로 또는, 현실로 나타난다고 하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사람은 망각(妄覺)의 동물이다. 그리고 또 한편 감정(感情)의 동물이다.
모든 중생의 오래된 기억은 모두 사라진다. 그러나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 정의 마음 즉, 감정이다.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괴로움, 그리고 행복과 불행의 감정은 아이 때나 지금이나 그리고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고 생생하게 살아있다.
여러가지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죽은 영혼 역시 고락(苦樂)의 감정은 남아있다. 또 고락의 감정이 있으므로 영혼이 된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고도 했다. 어디에든 정(情)이 붙으면 살아갈 수 있다. 기억은 사라져도 정이 있기 때문에 어디든 어떤 대상이든 정이 붙어서 집착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정이 붙어 있다면 부모를 버릴 수도 있는 것이 정이다. 때로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사람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고, 민족과 조국을 사랑하여 가정과 가족을 희생하는 것이 정(情)이기도 하다.
대상, 상대방이 문제가 아니라 정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의 감정을 느끼면 다른 반대의 또 다른 감정이 생긴다고 했다. 즉, 즐겁고 기쁘고 행복한 감정이 생겼으면 그에 상응한 괴롭고 슬프고 불행한 감정이 똑 같은 무게와 부피로 생기게 되어 언젠가는 반드시 나타난다고 했다.
사람은 좋은 것과 더 좋은 것, 더더 좋은 것을 끊임없이 쫓아 선택하려 한다. 그럴수록 나쁜 것, 더 나쁜 것, 더더 나쁜 것이 생겨나므로 이를 가리켜 도탄(塗炭)에 빠진 사바(娑婆)의 중생이라 한다.
세상의 모습은 한치 오차 없는 인과(因果), 인연으로 움직이고 있다. 사람의 관계나 내가 살아가는 모습 또한 이와 같다. 그런데 우리는 굳이 감정을 얹어 스스로 업(業)의 과보(果報)를 받아 윤회하고 있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그 어떤 것이 되었든 얼마든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도 된다. 하물며 화내고 성내며 싸워도 된다. 그러나 그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고락(苦樂)의 감정을 얹기 때문에 과보가 생기게 된다.
보통의 사람들에겐 신구의(身口意-행동,말,생각) 삼업(三業)과 고락사(苦樂捨)의 삼수작용(三受作用-감정)이 같이 붙어서 행동한다.
말하면서도 좋거나 싫거나, 생각하면서도 좋거나 싫거나, 몸으로도 좋고 싫고를 느끼며 생활한다. 그러나 현명한 지혜인은 신구의(身口意-행동,말,생각) 삼업(三業)과 고락사(苦樂捨)의 삼수작용(三受作用-감정)인 감정을 분리할 줄 안다.
이러한 수행은 누구나 반드시 해야 한다. 물론 불가능 하리 만치 어려운 훈련이다. 그래도 해야 한다. 그래야 고락의 피곤한 인과(因果) 윤회에서 탈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이외의 방법은 없다.
수행 방법과 생활 방법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설명을 했으니 다시 한번 참고하시기 바란다.
기도, 참선, 보시에 대해 꾸준히 정진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자.
- 진우스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