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 5일 – [오늘의 명상]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나?”
속된 세상 물끄러미 절 뒷산에 올랐다가
푸른 솔숲 새벽 안개 신선의 살빛 같아
소매 가득 무애(無碍) 향기 한껏 묻혀 오는데
산곡(山谷)의 맑은 물은 바다 마를까 졸졸졸.
[덧붙임]
기도는 왜 하는가? 왜 해야 하는가?
여러 차례 걸쳐서 설명을 한 적이 있으나 다시 한번 되새겨 보고자 한다.
보통 생각하는 기도의 개념은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크고 거룩한 힘을 가진 대상에 의지하여 간절히 부탁하는 것을 말한다.
여러가지 사례와 경험으로 볼 때 기도하는 이의 간절한 정성에 비례하여 성취되는 확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물론, 많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하나하나의 이유에 대해 다각도로 설명을 할 수는 있겠으나, 오늘은 우선 기도의 본질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보통 생각하는 성취에 대한 기도는 솔직하게 말해서 그리 올바른 기도 방법은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의도적으로 하는 모든 행위는, 자신의 욕심이 이루어져서 나와 함께 나와 관계된 이들을 만족시키고 행복하게 하며, 그래서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내가 욕심을 부려서 원하는 그 무엇을 성취하여 행복해 하고 기분이 좋았다면, 언젠가는 그에 상응한 정반대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 사바세계의 이치요, 마음 감정의 속성이기 때문에 그리 권장할 만한 기도의 방법이 아니다.
그렇다면 기도는 어떻게, 어떤 마음자세로 해야 할까?
마음의 감정이 들쭉날쭉하고 어지러운 생각, 욕심이 가득 찬 상태에서는 현실에 있어서도 그에 부합하는 사건 사고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기 마련이고, 따라서 장애가 끊이지 않게 된다. 설사 원하는 일이 성공하고 성취된다 하더라도 곧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이 계속적으로 벌어지게 될 것이니, 한시도 바람 잘 날이 없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일으키지 않으며, 감정을 차분하게 하여 매사에 있어서 인과(因果) 인연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제 3자적 입장에서 여여하게 바라 보는 자세를 취할 수만 있다면 모든 일은 그 자체로 이루어질 것이니, 잘되고 못되고 의 분별심이 사라진 마음의 상태는 더 없이 평온하게 되고 태연자약(泰然自若)하게 된다.
그러나 수 억겁의 시간을 걸쳐서 온몸과 마음에 속속들이 베어온 탐(貪)진(嗔)치(痴)의 삼독심(三毒心)이 그리 간단하게 사라질 것이라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니, 그래서 기도가 필요한 것이고 꼭 해야 할 수밖에 없는 의무 중의 의무인 것이다.
기도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일단, 모든 일은 인과(因果) 인연, 즉 부처님의 뜻에 맡기는 신심(信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내가 원하고 원하지 않고 와는 상관없이, 모든 것은 한치 오차없이 생멸 변화하기 마련이므로, 문제는 나 스스로 만들어내는 욕심과 그에 의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어떻게 처리하느냐 이것 만이 남아있다 하겠으니, 따라서 내 마음만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되면 모든 일은 저절로 풀리게 되는 것이다.
대상과 상대를 대하는데 있어서, 신심을 바탕으로 한 마음이 어느정도 정리가 된 다음에는 더 이상의 의심없이 오로지 불쑥불쑥 일어나는 욕심과 감정을 진정시키는 방법을 꾸준히 행하여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참선(參禪)인데, 참선중에서도 가장 쉬운 좌선을 통하여 무념무상(無念無想)에 젖어 드는 훈련을 쉼없이 함으로써 일상생활에까지 연장될 수 있도록 많은 정진(精進)이 필요하다 하겠다.
좌선이 어려운 이는 경전을 소리 내어 읽거나, 염불을 한다든지, 절을 통하여 몸으로써 조복을 받는다든지, 주력(呪力)을 한다든지, 정근(精勤)을 계속 한다든지, 법문을 들으며 부처님 법을 정확히 이해 한다든지 등등.. 자신에게 맡는 기도 방법을 선택하면 되겠다.
아울러 무주상(無住相) 보시 즉, 주는 마음 없이 흔쾌히 주는 습관 이야말로 최고의 기도 방법이 될 것인데, 이 방법에 대한 설명은 수차례 했으므로 참고하면 되겠고, 다음 기회에 다시 한번 자세히 설명을 할 예정이다.
오늘도 기도와 보시로서 복덕 짓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 진우스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