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시작을 하고보니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많은 時間과 勞力이 必要한 것은 當然한 일이지만 漢字를 일일이 컴퓨터에 入力 시키는 일이 쉽지 않았고 가끔씩은 없는 글자를 찾느라 집에 있는 5개의 玉篇, 字典을 찾아가며 勞心焦思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나의 ‘경주사랑’ 두 번째의 實踐이 되겠기에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기쁘기만 하니 나의 짝사랑은 어쩔 수 없는 運命이라 해야겠다.
<<그대가 보내 주신 연꽃 한 송이>>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힘든 작업이 될 것 같지만 價値 있는 일이 되리라 믿는다.
鷄林春色 詩集
졸저 ‘그대가 보내 주신 연꽃 한 송이’를 세상에 내 보내고 나서 나의 경주 사랑에 대한 소문이 퍼져 나가니 주위에서 경주에 관한 자료를 제공하는 분들이 종종 있었다.
선친이 한말의 거유 李垕의 제자이신 경산 와촌 ‘鶴陰精舍’의 이일우 선생께서 귀한 자료를 보내 주셨는데 ‘鷄林春色詩集’이 그것이다. 朗山 李垕의 아드님이신 中齊 李好大 선생이 1966년에 시를 엄선하여 발간된 소책자인데 아주 희귀한 책이다. 마침 東都詩選의 編著者이신 李東種 선생과 친분이 있었던 사이라 해서 이런 인연도 있는가 하였다.
徐羅伐 詩壇의 주최로 詩題를 鷄林春色으로 하고 韻字를 年, 天, 前, 煙, 傳 으로 해서 시회를 열어 그 중에서 뽑힌 주옥같은 160여 편의 七言律의 한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어차피 경주에 관한 古詩를 찾아내는 일이니 이 한권의 책을 번역하는 일만 하여도 새로운 책이 만들어질 만한 분량이 될 것으로 보인다.
出刊辭 : 지는 해를 바라보며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접하던 한문이 서서히 자취를 감추더니 이제는 바야흐로 영어의 세상이 되었다. 살아남기 위해 事大交隣사대교린을 외교정책의 기본으로 했기 때문에 국가를 보전할 수 있었던 약소국이었으니, 西勢東漸서세동점의 시대에는 당연한 일이다.
요즘 젊은이들이나 어린이들의 이름을 보고 놀라는 일이 있다. 국제화 시대에 어울리는 영어식 이름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미 연예인들은 영어식 이름으로 예명을 바꾼 지 오래되었으니 나무랄 일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현실에 맞추어 발 빠르게 대응하는 적응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현재 국민 대부분의 성씨와 이름이 중국식인 것에 대해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의 성씨 중에서 중국에 없는 성이 드물다. 중국에도 우리 민족의 대표 성 씨인 金, 李, 朴, 鄭, 崔, 孫, 郭, 張 씨 등은 중국에서도 大姓대성에 속하고 몇 몇의 경우를 제외하고 중국인이 우리의 조상은 결코 다 아니다. 영어의 세상에서 오래 살게 되면 국민들의 성씨나 이름이 영어식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장담은 하지 못한다. 클린턴Clinton, 부시Bush라는 성을 사용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언젠가 유명한 대학교수가 방송매체에서 청나라인의 복장으로 출연하여 모두들 이상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우리에게 주려던 메시지는 미국 세상에서 양복을 입고 사는 당신들과 5천년 이상 중국의 영향권에서 살아 온 우리가 중국대륙을 제패한 청나라의 복장을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하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청나라를 오랑캐라 하여 두 번의 큰 환난을 겪고 나서도 골수 모화주의자들은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앞서 가는 사람들은 일찍 상투 자르고 양복입고 영어를 사용했는데 필자는 어릴 때 조부의 상투머리를 어렴풋이 기억한다. 그것이 평생 나의 큰 약점으로 작용하게 된 것 같다. 아직도 조상신 모시는 것을 가정의 최대 중심에 놓고 손님을 후히 접대하는 것을 큰 일로 생각한다. 종교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몇 년 전의 통계에서 기독교인과 가톨릭 신도 수가 천 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기독교 사상이 중국을 통해 수입된 지 오래되지만 적극적인 포교활동은 가톨릭이 200백년, 신교는 100년 남짓한 세월동안 이루어졌는데 세계 종교사적으로 괄목한 만한 일이라고 한다.
외국의 종교나 사상을 별 다른 저항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下心하심 을 잘 하고 겸허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의식주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생활에서는 편리한 서양문명의 利器이기를 최대한 사용하며 ‘과학이 곧 마술’이라는 말을 하면서도 생각을 바꾸지 않음은 다분히 이중적이다. 변하지 않는 사람들도 대단한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서양문명이 언제까지 영향력을 행사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중화문화권에서 몇 천 년 이상을 살아 왔으니 앞으로의 세계는 어떻게 변해 갈 지 모르겠으나, 아무도 읽지 않는 ‘옛날 시에 집착하는 것’은 지는 해의 아름다운 황혼을 바라보며 내일의 태양이 뜨기를 기다리는 마음에서인가? 쉽지 않은 英譯영역을 덧붙이는 이유는 내가 살아 온 평생을 다시 돌이켜 보는 뜻이기도 하고 나의 후손들의 시대에도 나 같은 사람이 있지 않을까하는 배려에서이다.
The area is secluded unable to encounter any passersby.
The grass bordering the creek colors blue in harmony with the mist;
A plum tree near the river bank lonely smiles at the passing spring.
Holding hands together I was taken to the monk's quarter;
The meditating atmosphere manages to keep dust away.
* 황룡사는 현재 黃龍洞 소재 黃龍寺를 말한다. 김시습이 경주에 머물 당시 현 九皇洞 소재 皇龍寺는 고려 때 몽골의 침입으로 불타고 없었고, 黃龍寺는 임진왜란 때 불탔다.
3.옛 절에서
남산의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폐사지가 많이 보인다.
잡초더미나 숲의 중간 중간에서
탑의 부재나 주춧돌 등의 석물이 보이고
깨어진 기와조각들이 묻혀 있는 곳은
어김없이 옛 절터이다.
寺名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기록된 절터도 있지만
거의가 그렇지 않은 경우이다.
세월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 어찌
절 뿐이랴!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
서쪽 바람 불어 와 내 시름 실어 간다..
示友人 벗에게 林億齡 임억령 (1496~1568) <<石川集>>
古寺門前又送春 옛 절 문 앞에서 또 봄을 보내니,
殘花隨雨點衣頻 남은 꽃잎 비 따라 옷을 자주 스치도다.
歸來滿袖淸香在 돌아와도 소매 가득 맑은 향기 배었으니,
無數山蜂遠趁人 무수한 산벌이 멀리까지 쫒아왔네.
At an old temple
Spring! you bid farewell to me again in front of an old temple gate;
[Or This spring is departing from me again in front of an old temple gate;]
Remaining flowers follow the rain touching frequently my clothes.
[Or Flowers still hanging in branches accompany rain dotting my clothes frequently.]
Upon returning to my quarter pure fragrance is found to fill my sleeves;
Innumerable mountain bees chase me away.
*청계 안정환의 서예글씨로 경주역 대합실 벽에 추사체로 써서 붙인 시를
멀리서 오는 친구를 배웅하러 갔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이 시는 東都詩選에서 취한 시가 아님을 밝힌다.
4.남산 안개
해 질 무렵 동네 길을 걸으면
산에서 피어 오른 안개가 비단 장막같이 드리워져 있다.
보랏빛 안개라는 말은 참으로 시적인 표현이다.
시심이 부족한 나에게는 그저 잿빛으로 보인다.
옛사람이 동도십경東都十景 중에 이미 남산의 안개를 읊었으니
나도 함께 안개 속 풍경이 된다.
鰲山晩煙 오산만연 李斗遠 이두원(1721∼1807)<<南涯集>>
八萬庵何在 팔만의 암자들은 어디에 있는가.
一千歲已遙 천년의 세월 끝에 아득하구려.
寒煙蕭瑟裏 차가운 저녁 안개 쓸쓸한 속에
暮峀立雲霽 저녁 산 동굴은 하늘을 향해 서 있네.
* 鰲山은 金鰲山 즉 南山을 말한다. 東都十景은 瞻星老石(첨성대의 오래된 돌), 月城春草(반월성의 봄 풀), 鰲山晩烟(남산의 저녁 안개), 鷄林疎雨(계림의 성근 비), 金莊落雁(금장대 기러기), 仙桃流鶯(선도산의 꾀꼬리), 鮑石曉月(포석정의 새벽 달), 汶水淸潭(남천의 맑은 못), 篁寺暮鐘(분황사의 저녁 종소리), 鳳臺夜月(봉황대의 밤 달빛) 이다.
Evening mist in Nam San(mountain) Lee Doowon
Where are eighty thousand (Buddhist) nunneries?
A span of a thousand years is far-off.
Cold mist settles itself desolately;
An evening mountain cave stands toward the sky.
5.남산 이야기
서거정이 경주를 찾았던 당시에도
금오봉은 바다에 떠 있는 자라처럼 안개위에 솟아있고
옛 궁터(신라 초기의 궁궐터, 즉 현재의 창림사지))에는 신라 명필 김생의 글씨가 쓰여 진 깨어진 비문이 뒹굴고 있다.
남산의 옛 절(당시의 창림사)에 아직 최치원의 시가 남아 있었고
궁궐은 주인을 잃고 폐허가 되었고 다리는 무너져 위태롭다고 했다.
다시 천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
나의 경주는 오늘과 얼마만큼 달라져 있을까?
金鰲山 금오산 徐居正 서거정 (1420~1488)<<東國 輿地勝覽>>
海上金鰲眺望宜 바다 위 금오(금자라)인 듯 멀리서 봄 직 하네만
風流文物異前時 풍류와 문물은 옛날과 같지 않네.
破碑或見金生字 깨어진 비석에 김생 글씨 간혹 보이고
古寺僧留致遠詩 옛 절 스님은 최치원 시 남겨 두었네.
甲第有基荒薺合 대궐은 황폐해 냉이만 자라나고
名園無主斷橋危 이름 높던 뜰은 주인 없고, 끊어진 다리 위태롭네.
春愁如許深於海 봄 시름은 저와 같이 바다보다 깊은데
鐵笛何人滿意吹 쇠 피리 누가 불어 가슴에 사무치네.
* 甲第는 높은 터에 아주 잘 지은 집으로 대궐을 뜻하고, 名園 역시 궁궐의 정원을 말한다.
Golden Sea-turtle Mountain Seo Geojung
It's suitable to view the Sea-turtle above the sea;
Elegance and historical relics are now different from the old days.
The shattered stone monument probably shows calligraphic specimens by Kim Saeng, a noted calligrapher;
Old temple monks have still kept Choi Chiwon's poems.
Mansions retain the foundations though shepard's purses are wildly grown here;
Famous gardens don't have owners, only with a broken bridge precariously standing.
Spring anxiety likewise is deeper than sea;
Who plays an iron flute blowing contently?
6.남산 용장사
최근 남산의 열암 계곡에서 온전한 얼굴 모습을 한 8세기 후반경의 마애불이 발견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70여 톤이 넘는 거대한 바위는 앞으로 쓰러진 상태로 있었기 때문에 비바람과 사람들의 손에서 안전할 수 있었다. ‘조용헌’은 세계 3대 불교 유적지로 미얀마의 ‘바간’ 벽돌 탑과 중국 ‘돈황 석굴’,그리고 경주 ‘남산의 마애석불’을 꼽는다.
또 그는 화강암에 금속성분이 많아서 지기가 강하므로 남산이 종교유적지가 되었다고 한다. 월성 궁궐 앞의 남산을 불국토로 만들려고 하던 신라인의 염원으로 200여기의 불상과 탑, 절터만도 150여 곳이다. 지금도 남산에는 많은 절이 있고 이름난 기도처이기도 하다. 터가 센 곳에서 버티고 사는 나도 왼 만한 사람인가 보다.
茸長寺 용장사 金時習 김시습(1435~1493) <<梅月堂 遺稿, 東京誌,>>
茸長山洞幽 용장산 골 깊으니
不見有人來 오는 사람 볼 수가 없네.
細雨移溪竹 가는 비 개울 대밭 스쳐 가고
斜風護野梅 비껴가는 바람은 들매화 사랑하네.
小窓眠共鹿 작은 사창에서 사슴 함께 조을고
枯椅坐同灰 메마른 의자에 앉으니 재와 같은 고요함일세.
不覺茅簷畔 깨닫지 못하는 처마 띠 깃에
庭花落又開 들꽃만이 지고 피네.
Yongjang Temple Kim Shiseup
Serene are hills and valleys in Yongjang Mountain are;
No one is seen coming here.
Fine rains go past by bamboos along the brook;
Light winds guard wild plum trees.
I doze together with deer in front of a small window;
At times I sit on a parched chair like ashes.
While not realizing myself being in the vicinity of a thatched roof;
I now watch the garden flowers bloom and then fall down.
7.동도를 회고하며
고도 경주에 관한 시나 문장은 한가지의 주제만으로 볼 때 우리나라 역대 시 중에 가장 많지 않을까 한다. 정확한 통계는 내보지 못했지만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우리 민족문화의 원류인 이곳을 다녀가며 신라의 문화에 대한 엄청난 분량의 찬사와 감탄의 글을 남겨 놓았다. 우선 신라의 옛날을 회고하는 글인 동도회고, 영신라, 신라회고, 계림회고, 동경회고, 월성회고. 회동도 등의 제목으로, 필자가 찾은 시 만도 30여 수가 되니 이것만으로도 한 권의 책이 나올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아래의 시는 <<동도시선>>에 없는 것으로 동문선에서 찾아 낸 귀한 시라서 옮겨본다.
懷東都 회동도 동도를 회고하며 金時習 김시습<<(梅月堂 詩集卷之二,>>
故山猿鶴思依然 옛 산 원숭이 학의 마음 의연하니
淸夢頻驚已數年 맑은 꿈 돈독하기 이미 오래 되었네.
日射鼇頭峯展畫 해 기울자 금오봉 그림 같은데
煙開鯨背浪滔天 안개 일어나 큰 물결로 하늘에 넘치네.
自緣身病不能去 나는 병이 있어서 갈 수 없음에
無復世情相累牽 세상의 정 서로 이끌어 줌은 다시 오지 않는다네.
歲暮欲歸歸未得 해 저물어 돌아 가려하나 가지 못하니
碧雲秋樹月城邊 푸른 구름 가을 나무 월성 주변이라네..
Recollecting the Eastern Capital
The thoughts of monkeys and cranes in the old hill are as usual;
Distinct dreams are often startling already for many years.
The sunlight shoots the Turtle Head Peak like unfolding a drawing;
Mist is cleared away visualizing the whale's back with waves overflowing the sky.
Naturally due to illness I cannot go away;
Never again let worldly affections tie and pull us mutually.
At the close of the year I wish to return but unsuccessfully;
To the neighborhood of blue clouds, autumnal trees and moon-shining city wall.
8.東都懷古 동도회고 작자미상 <<東文選 第六券>>
昔年鷄貴國 옛날 계귀국鷄貴國
王氣歇山河 그 산하에 왕국의 기운 다 하였구나.
代遠人安在 세월 멀어지니 옛 사람들은 어디 갔는고.
江流水自波 강물은 흘러 저대로 물결치네.
舊墟空草木 옛 터엔 풀만 우거졌고
遺俗尙絃歌 남은 풍속은 아직도 거문고 가락을 노래하네..
崔薛無因見 최치원崔致遠과 설총薛聰을 이제 볼 길 없으니
嗟嗟可柰何 서럽고 서럽다마는, 아아, 어찌 하오리.
* 계귀국鷄貴國은 신라의 이칭이다. 신라인들이 닭을 신성시함으로서 당나라에서 부르던 이름이다.
Recollecting the past on the Eastern Capital Unknown poet
There was once the Chicken-honored Country;
Royal spirit has come to an end over the mountains and rivers.
Where are the people in the Dynasty so remote?
Waves rise out of river currents of itself.
In old sites are grass and trees in vain;
Traditional practices still remain in the lute melody.
Master Choi and Seol cannot be seen by any means;
Which makes me lament over and again.
9.안압지
경주 월성 북동쪽에 있는 안압지는 ‘삼국사기’문무왕 14년 조에 ‘궁성 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진귀한 화초와 짐승과 새를 길렀다’는 기록이 있고, 본래 월지라 불리다가 조선조 선비들이 기러기와 오리가 노는 것을 보고 안압지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한다.
2005년 10월 19일 ‘세계 역사유적도시 회의’가 경주에서 열렸을 당시 16개국에서 온 귀빈들과 안압지 특별공연을 관람했는데, 못에 비추이는 보름달과 밤의 경관이 너무나 아름다워 모두들 ‘원더풀’을 연발했었다. 특히 호주국립대학 'Galla갈라’교수는 그날 밤의 향연을 오래 기억하리라 했다. 공연이 끝난 뒤 성장을 한 베트남,중국,일본,터어키,이란,벨지움,러시아,호주등의 각국 대표들이 등불을 들고 안압지를 한 바퀴 도는 것으로 그 날 밤 행사는 끝이 났는데 오래 동안 기억될 멋진 밤이었다.
옛날 신라시대에도 먼 나라에서 사신이 오면 월지의 임해전에서 연회를 열고 여흥을 즐겼으리라는 상상이 된다.
김시습과 이후가 쓴 시도 전하는데 가능 한 한 여러 사람의 시를 소개하고 싶은 생각으로 강위의 시를 택했다.
臨海殿 임해전 姜瑋 강위(1820~1884) <<秋琴集, 東京誌>>
十二峯低玉殿荒 열두 봉우리 아래 궁궐은 폐허가 되고
碧池依舊雁聲長 푸른 못물은 그대로인데 기러기 소리 아득하네.
莫尋天柱燒香處 나라 기둥 향불 피우던 곳 찾지를 마오.
野草痕深內佛堂 들풀 흔적 깊은 내불당이라네.
Facing-Sea Hall by Gang Wee
Beneath the twelve peaks the Jade Hall has been desolate;
Around the Blue Pond cries of wild geese reverberating long as before.
Do not look for the Heavenly Pillar where incense-burning was carried out.
Where the weeds grow in abundance there is the Inner Hall for Buddha.
10.첨성대 유감
김종직은 그의 시 ‘첨성대’에서 선덕여왕을 ‘새벽 암탉에 神器신기를 부쳤으니 오랜 옛날 진평왕이 화근 품게 하였다’고 야유하고 있다. 같은 제목으로 김시습 ,정몽주, 안축 등이 시를 지었다. 면우 곽종석의 문인이며 근세의 거유요 명문장이었던 李垕이후는 선덕여왕을 칭송하는 시를 지었다. 아마도 여성을 보는 시대적 관점의 차이 때문 일 것이다.
첨성대는 반월성 앞 너른 들과 동부사적지를 이웃해 있으므로 넓은 시야가 확보 되는 장소에 있다. ‘열린 음악회’ ‘전국노래자랑’등의 큰 행사 뿐 아니라 각종의 문화행사가 자주 열린다. 반월성의 벚꽃이 꽃 비되어 날릴 무렵, 노란 유채꽃이 절정을 이룬다. 여름이면 안압지 옆 연당에서는 색색의 연꽃이 피어나고 초가을의 황금빛 코스모스가 장관이다.
오색찬란한 바위기둥 3만6천5백 개를 만들었다. 그 바위기둥은 높이 120척에 둘레가 240척이나 되는 거대한 것이었다. 와황은 이 바위기둥으로 하늘을 괴고 큰 자라의 발을 잘라서 사극에 세웠다. 사극이란 바로 세상의 사방 땅끝을 의미한다. 그래서 비로소 하늘과 땅 사이에 인간이라고 불리는 만물의 영장이 태어나 노닐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나게 되었다. 와황은 태초의 아득한 새벽 상고시대의 임금으로 인간에게 처음으로 고기잡이와 사냥 목축을 가르치고 팔괘와 문자를 만든 복희씨의 누이동생이다.
*鍊石: 돌을 단련하다 혹은 돌을 벼리다. to forge;
*攙搶; 찌르고 부딪히다. 혹은 인도하고 급히 하다.
*慧孛: 혜성 *扶桑: 해 오르는 곳. 즉 동쪽을 말한다.
At the Star Observatory by Lee Hoo
The story of E-Huang's Stone Forging is entirely absurd;
While Sun-Duk Queen's Peeping the Sky is entitled to be honored.
Don't you know what happened in the East one thousand years later?
The leading and rushing Comet rose from the legendary Sacred Tree.
11.한가위
경주에서 맞는 네 번째 한가위를 앞두고 태풍 ‘나리’가 북상하면서 엄청난 비를 몰고 왔다. 한반도가 이즈음에 늘 태풍 영향에 들지만 ,모두들 벌초도 못하고 차례를 올리게 될까 걱정한다. 비는 끈질기게 내리고 또 내린다. 이러다가 보름달도 못 볼 것 같아서 서라벌의 ‘가배’를 노래한 시인의 보름달로 마음을 달랜다.
嘉俳節 가배절 愈好仁 유호인(1445~1494) <<林溪遺稿>>
八月金城月正圓 팔월 금성에서 달이 바로 둥그니,
纖纖麻枲鬪娟娟 섬세한 삼베 모시 짜기 겨루던 어여쁜 아씨들.
會蘇凄斷嘉俳夕 회소곡 처량한 한가위 날 저녁에
兩部風光尙宛然 두 편의 풍광이 아직도 완연하네.
* 옛날 서라벌에서는 부녀자들이 양 편으로 나뉘어 베 짜기를 겨뤘는데 진편이 이긴 편에게 음식을 대접하며 ‘회소곡’을 부르며 춤을 추었다고 한다. 가배는 가위, 즉 한가위의 어원이다.
The moon was seen round at the Golden-Walled City in August;
There were young ladies competing in the contest of weaving the most elegant hemp-fabric.
The Whe-So Song showed sorrowful tunes in the evening of the Festival;
The scenery of both parties was still just like nowadays.
12.가을 밤 비
비 내리는 가을 날, 창문을 여니,
우레와 번개를 동반한 태풍이 마당의 철 지난 꽃들을 여지없이 날려 버린다.
연지 속 미꾸라지 뛰어 오르고 비에 젖은 백일홍은 고개 숙인다..
자연이 하는 일에 나는 따로 할 일이 없이 마냥 창밖을 바라만 본다.
秋夜雨中 추야우중 가을 밤 비 崔致遠 최치원(857~?) <<桂苑筆耕 第六集>>
秋風惟苦吟 가을바람에 괴로이 읊조리니
擧世少知音 넓은 세상 내 마음 알 이 적구나.
窓外三更雨 창 밖에 밤은 깊어가고 비 내리는데
燈前萬里心 등불 앞 마음은 만 리 밖에 있네.
* 최치원은 12세에 당나라에 가서 당 희종 때 급제하여 벼슬을 하다가 신라로 돌아 와 한림학사가 되었다. 경직을 고사하고 외직으로 돌면서 기울어져 가는 신라의 국운을 바로 잡고자 진성여왕에게 ‘시무10조’를 올렸으나 채택되지 못하고 유랑하다 해인사 홍류암에서 죽었다. 오는 2007년 12월 중국 장쑤성 양저우 시에서 최치원 기념관을 완공하여 한국관광객을 유치하려고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대표적인 저서로 ‘계원필경’ 이 있다.
In the rain during an autumn night by Choi Chi Won
Autumn wind is only accompanied with painful reciting of poems;
It is hard to find a true friend in the whole world.
Outside the window there is a midnight rain;
In front of a lantern my heart goes to ten thousand li's away.
13.신라의 여류 시인 설요
동도시선을 입수하고 너무 기쁜 나머지 밤잠을 아끼며 읽다가 신라여인으로서 당나라에 가서 시인이 된 설요薛瑤를 알게 되었다. 과문하여 현대에도 외국에서 시인으로 이름을 날리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 없기에 당나라의 여류시인 설도인가 했더니 김인문과 함께
당나라에 가서 좌무장군이 된 설승충薛昇冲의 딸로 15세에 아버지가 죽자 스님이 되었다가 21세에 환속하여 시인 곽원진郭元振의 첩이 되어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곽원진의 시는 필자의 졸저 ‘그대가 보내 주신 연꽃 한 송이’에서 소개한 바 있다(春江曲).그녀의 시 반속요返俗謠이다. 환속한 후 첩이 된 여인의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 <<全唐詩>>의 내용과 <<東都詩選>>의 내용이 달라 原典의 내용을 채택했다.
謠 속세로 돌아 와서 薛瑤설요(?~693) <<全唐詩>>卷799_38
化雲心兮思淑貞 구름 마음으로 화함이여 맑고 곧음을 생각하니,
洞寂滅兮不見人 골짜기 고요함이여 사람 볼 수 없네.
瑤草芳兮思芬蒕 예쁜 풀이 꽃다움이며 향기로움을 생각하니,
將奈何兮靑春 장차 어이 하리오. 이 청춘을...
* 칠언절구의 시인데 <<全唐詩>>에는 어쩐 일인지 마지막 연의 한 글자가 缺如되었다. <<동도시선>>이나 한양대 한문학과 정민교수의 책 내용과도 다르므로 일단 原典을 택했다.
A ballad by Seol Yo
My spirit changes to that of cloud, then I shall think of virtue and chastity;
The valley is quiet, so no one can be seen.
Precious grass is sweet-smelling, making me think of fragrance;
What will it be afterwards though I am still young?
곽원진의 시도 함께 싣는다.
春 江 曲 춘강곡 唐 당 郭 元 振 곽원진
江 水 春 沈 沈 봄날의 강물은 깊고도 깊고,
上 有 雙 竹 林 양쪽 강 언덕엔 대나무 숲을 이루네.
竹 葉 壞 水 色 댓잎은 물빛을 무너뜨리고
朗 亦 壞 人 心 그대는 내 마음을 무너지게 한다오.
To the tune of spring river by Kuo Yuan Chen
River water becomes deeper on a spring day; (or is about to flood on a spring day;)
Bamboo groves are afresh on both shores.
As the leaves break down the color of river water;
You break my heart likewise.
15.천관사
복사꽃이 흐드러지던 날에 천관사를 찾아 가다.
오릉 맞은 편 동네 길로 조금 들어가면 도당산 자락 논 가운데에 절터가 있다.
멀지 않은 남천 건너편에 김유신의 생가 재매정이 있다.
2000년에 발굴. 조사되었으며 빈 터에 기와 조각, 돌 등을 모아 네모나게 쌓아 두었다.
태대각간이라는 명문 기와조각이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사랑했던 여인 천관녀를 위해 절을 지어 보답한 김유신의 인간적인 면모를 볼 수 있다. 천관사 우물은 김경신(원성왕)의 즉위와 연관된 중요한 우물이나 지금은 우물터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시인은 술에 취해 잠든 사이에 늘 가던 천관의 집으로 찾아 간 말의 목을 잘라 자신을 기만한 김유신을 책망하면서도 두 사람의 아름다운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라고 있다.
天官寺 천관사 李公升 이공승(1099~1183) <<東京誌>>
寺號天官昔有緣 절 이름 천관이라 옛날 인연 지녔기로
忽聞經始一凄然 홀연히 듣고 보니 그 인연 슬프기만 하네.
多情公子遊花下 다정한 공자님 꽃 아래 놀았고
含怨佳人泣馬前 원망 품은 가인은 말 앞에서 울었다네.
紅鬣有情還識路 붉은 갈기 말은 정이 있어 길을 돌이켜 알았고
蒼頭何罪瞞加鞭 하인은 무슨 죄로 채찍을 맞았던고?
唯餘一曲歌詞妙 오로지 한 노래로 남아 가사는 묘하니
蟾兎同居萬古傳 달 속의 두꺼비 토끼 같이 함께 살아 만고에 전하도다.
At the Chun Guan Temple by Lee Gong Seung
The Temple is called Chun Guan due to its relation in the past;
Suddenly I was reminded of the record beginning to make me feel sorrowful.
The tender-hearted young nobleman once had fun time under full-blossomed trees;
The beauty bearing the serious grievance wept in front of his horse.
The red maned horse knew his lord's heart surely recognizing the old road;
What fault did the servant commit to wrongly get punished by whipping?
Only one tune still remains now that the words of a song were elegant;
The toad and hare he moon live together as the story conveyed through the ages.
16.반월성 半月城
반월성에 관한 글은 ‘동도회고’처럼 회자된다. 이인로의 ‘반월성’시는 동국여지승람과 동도시선에 같은 제목의 다른 시가 하나 더 전한다. 이 밖에 유형원, 이홍예, 조인영, 이두원, 강위, 이후도 반월성 시를 지었으며, 모두 당대의 명문장가 이나 이인로가 신라와 상대적으로 가까운 고려시대 인물이고 필자가 보기에 글이 가장 절실하고 문체가 유려하여 다시 한 번 옮겨본다. 참으로 빼어난 문장을 접하니 이인로를 다시 평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시는 <<동문선>>에서 취한 이인로의 시로서 동도시선에 전하는 시와 제목은 같으나 내용이 다르다.
李仁老 이인로(1152~1220) <<東文選>>
孤城微彎像半月 외로운 성 약간 굽어 반달을 닮았는데
荆棘半掩猩㹳穴 가시덤불은 다람쥐 굴을 반쯤 가리었구나.
鵠嶺靑松氣鬱蔥 곡령의 푸른 솔은 항상 울창한데
鷄林黃葉秋蕭瑟 계림의 누른 잎은 가을엔 쓸쓸하다.
自從太阿倒柄後 태아의 자루를 거꾸로 잡은 뒤에
中原鹿死何人手 중원의 사슴은 누구 손에 죽었던고
江女空傳玉樹花 강가의 여자들은 헛되이 옥수후정화를 노래하는데
春風幾拂金堤柳 봄바람은 몇 번이나 금제의 버들을 떨쳤던가.
* 신라 말기(末期)에 최치원(崔致遠)이 고려 태조 왕건(王建)에게 글을 보냈는데, “곡령의 푸른 솔이요, 계림의 누른 잎이라.” 하는 문구가 있었다. 이것은 “송도(松都)는 일어나고 경주(慶州)는 망하리라.”는 뜻이다.
* 태아는 보검(寶劍)의 이름으로 한(漢)나라 유향(劉向)의 상소(上疏)에, “태아를 거꾸로 쥐고서 칼자루를 남의 손에 쥐어 주었다.”하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임금이 정권(政權)을 남에게 맡긴 데 비유한 말이다.
* 진(秦)나라 간신(姦臣) 조고(趙高)가 임금에게 사슴을 몰고 와서 말[馬]이라 속였다. 그 뒤에 변사(辯士) 괴철(蒯徹)이, “진나라가 사슴을 놓쳤으매 여러 사람들이 쫓는데 발이 날랜 자가 먼저 얻는다.” 하였다. 이것은 조고(趙高)의 사슴에 관한 이야기를 인용하여 진나라가 나라를 잃은 데에 비유하였다.
* 진(陳)나라가 망할 때에 후주(後主)가 밤낮으로 술과 여색에 미혹하여 옥수후정화(玉樹後庭花)라는 음란한 곡조를 불렀다. 당나라 시인 두목지(杜牧之)가 진의 고도(古都)를 지나다가, “장사치 계집들은 나라 망한 한(恨)도 모르고 강가에서 아직도 정화를 부른다[尙女不知亡國恨 隔江猶唱後庭花].”라는 시를 지었다.
*수양제(隋煬帝)가 변하(汴河)에 행궁(行宮)을 짓고 강 언덕에 버들을 많이 심어서 음란하게 놀아, 나라가 망한 뒤에 버들만이 남아 있었다.
Half Moon Walled-City Lee In Ro
The desolate Walled-City is slightly curved like a half moon;
Thorny bushes partially covered squirrels' caves.
Green pines in the Gok-Ryung have a savor of luxurious growth;
Tinted leaves in the Gye-Rim Grove show a desolate autumn day.
Ever since his grabbing the handle of a treasured sword in the wrong direction;
By whose hands was the deer killed in the Central Plains?
The girls in the River Bank pass the Song of Courtyard Flowers on in vain;
How many times have the spring winds brushed the willows in the Golden Dike?
17.金莊寺 踏靑 금장사 답청
음력 삼월 삼진 날, 들에 나가 파랗게 돋아난 풀을 밟는 풍속을 답청놀이라 하는데 경주 지역에서는 금장사, 창림사 터에서의 답청시가 전한다. 겨우내 춥고 어두운 날을 지나 새 봄이 오니 봄옷으로 단장하고 들 뜬 마음으로 파란 풀을 밟으러 가는 낭만적 모습이 그려진다. 풀을 밟는 것은 핑계일터이고 좋은 사람들과 경관이 수려한 곳으로 봄 소풍을 나가서 음주가무를 즐기거나 혹은 詩會시회를 열어 봄의 회포를 풀어 낸 것이리라. 회재 이언적의 시이다.
Streams and fields are beginning to be green far and wide;
What meets my eyes as before is the spring scenery of my native land.
The eternal resentment is fraught with the tune from a jade flute;
Don't teach the spring strollers how to blow it.
18.栢栗寺 백율사
동천 다리를 건너 포항 가는 국도 쪽으로 1킬로미터 정도 가다보면 오른쪽 금강산 자락, 절로 들어가는 입구에 佛掘寺 四面石佛 불굴사 사면석불이 있고 왼쪽으로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천년 고찰 백률사가 있다. 창건 연대는 미상이나 이 절의 대비관음상이 693년(신라 효소왕 2)에 있었던 것으로 《三國遺事》에 기록되어 있어 삼국통일을 전후하여 창건된 것으로 짐작된다. 이 관음상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 慶州 府尹경주 부윤 尹承順)윤승순이 중수한 기록으로 보아 그때 없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선원·요사채가 있다.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던 국보 제28호 栢栗寺金銅藥師如來立像백률사금동약사여래입상과 異次頓供養石이차돈공양석당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절의 앞마당에서 부처에게 피리소리로 공양을 바치는 이가 있어 우리는 오래된 돌 층층대에 앉아 그 때 그 자리에 있게 되었음을 행복하게 여겼다. 십 수 년이 흘러 간 지금 돌이켜 보아도 참으로 아름다운 정경으로 기억된다.
栢栗寺 백율사 鄭知常 정지상(?~1135) <<東國 輿地勝覽>>
晨興小樓頭 새벽에 일어나 누각머리에 나앉아서
捲箔觀天宇 주렴 걷어 하늘을 바라보네.
樓下卽鷄林 누각 바로 아래 계림인데
奇怪不可數 기괴한 것은 헤아릴 수 없네..
老樹烟濛濛 늙은 나무에서 안개 자욱이 일어나
橫斜一萬戶 일만 장안 집을 비스듬히 가로 지르네.
白雲飛東山 흰 구름 동산 위로 날아가고
綠水走西浦 푸른 물은 서쪽 포구로 달려 나가네.
突元黃金刹 진실로 우뚝한 황금의 절이오니
相望朝欲煦 서로 바라보니 아침 해에 따뜻해지네..
有森月城中 빽빽한 숲은 월성 속에 있는데
花竹今無主 꽃과 대나무는 지금도 주인 없네.
空餘古風流 헛되이 남았으니 옛 풍류요
一曲高聲舞 한 곡조 높은 소리에 춤을 추도다.
記憶崔儒仙 고운 최치원 선생 기억 새롭고
文章動中土 글로서 중원을 흔들었다네.
絲往錦還鄕 갈 때는 명주 옷 돌아올 땐 비단 옷
年未二十九 나이는 스물아홉 체 되지 못했소.
白玉點蒼蠅 흰 구슬에도 쉬파리 슬다시피
不爲時所取 취할 바 아님은 하지 아니 하였네.
至今南山中 지금의 남산 속에는
唯有一有圃 오직 하나 채마밭이
邈哉九世孫 아득하다 구세손으로서
結髮混卒伍 머리 땋아 또래 속에 섞여 놀았도다.
喚來峩其冠 불려와 그로써 관 높게 쓰게 하니
人識賢者後 사람들은 모두 성현의 뒤를 이었다고 알고 있네.
亦有薛先生 또 한 분 설총 선생 있으니
蔚然龍與虎 무성한 별들 중에 용이랄지 범이랄지
方言講五經 우리말로 오경 풀어 강독하니
學者比東魯 학자로는 동국의 공자라네.
俗呼二君子 속세에서 부르기를 두 군자라고
齊名同李杜 가지런히 이백 두보 같이 견주네.
嘯詠臨淸風 깨끗한 바람맞아 휘파람 불 듯 읊조리면
宿疾猶可兪 묵은 병 오히려 나을 듯하네.
朅來謁金仙 떠나갔다 돌아와서 금부처님께 참배하니,
虛臺香一炷 비인 대에 향 심지 하나로다.
稽首祝吾君 머리 조아려 우리 임금을 축원하여
萬年受天祐 오래도록 하늘의 도움을 받았네.
想像妙明鏡 부처님 모습은 묘하게 맑고 밝은 거울을 상기하니,
知予此心否 나의 이 마음 알아주시지 않으리오.
試茶閔子泉 ‘민자천’의 차 맛을 시음하니,
甌面發雲乳 물 고인 사발에 젖 빛 구름 어려지고
三復壽翁詩 세 번 거듭 읊으니 장수를 누린 분의 시요;
滿壁珠璣吐 진주처럼 뱉은 시 벽에 가득 걸려 있네.
樂哉無所憂 즐거워라 근심 할 바 무엇이리오.
此樓何太古 이 다락 언제나 옛 모습 그대로네.
飛蓋下松門 날아오른 덮개는 솔문으로 내리는데,
松門日卓午 그 솔문에 밝은 햇살 둥그러니 높이 떴네.
* 고려 仁宗 때의 시인으로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이 그의 詩才를 시기했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시를 잘 썼다. 대표 시로 ‘大同江 送別詩’가 있다.
* 泉石이란 산수를 지극히 사랑하여 벼슬길에도 나아가지 아니함이며 泉石膏肓 혹은 煙霞痼疾, 煙霞之癖이라고도 한다.
Baek Yool Temple Chung Ji Sang
Arising at dawn I came to a small pavilion;
Rolling bamboo blinds up I now look up the sky.
Just beneath the pavilion there is Gye-Rim Forst;
Unusual features are innumerable.
Under old trees hazy fogs are rising up;
And also traversing ten thousand houses obliquely.
White clouds fly over the eastern hill;
Blue stream runs toward the western shore.
Towering is a golden temple;
Facing each other morning sun tries to warm.
Luxuriant growing trees are in the Moon-Walled City;
Flowers and bamboos nowadays don't have their owners.
In futility remains the old elegance;
Along a high-pitched tune there comes a dance.
Still remembered is Choi the Scholar;
His writings have shaken the Central Plains!
He clad silk clothes on departing, but brocaded fabrics on returning;
He was not quite twenty nine years old at that time.
It was like a white jade soiled by flies;
He didn't try what he couldn't achieve then.
Up until now in the South Hill;
There remains only a herb garden.
It was such a long way off to be a scion of ninth generation;
He played along with his friends wearing plaited hair.
He all of a sudden was called home to wear a nobility's coronet;
People at that time realized his being a follower of the sage.
There was also another scholar, Seol Chong;
To become either a dragon or a tiger.
With the vernacular language the Five Classics were taught;
Men of learning compared him with Confucius of the Eastern Country.
Commonly they were named two men of virtue;
They enjoyed equal fame like Li Po and Du Fu.
Hearing the chanting in a long, deep and loud sound facing a refreshing breeze;
Chronic illnesses seemed rather to be cured.
Upon returning from leave I worship at the Golden Buddha;
There is a stick of incense at the vacant elevation.
I kowtowed and expressed my wishes for our king;
May Buddha's Mercy be bestowed to him for a long time.
I think of Buddha's features only reminding me of the bright mirror;
Wouldn't he recognize my mind?
The tea out of water in the Min Ja Spring was drunk;
Out of the inner side of a cup arose a milky cloud.
Three times was recited the work of the long-lived poet;
Walls appeared filled with gems spewed.
How joyous was I without any worries?
What a remote antiquity was this pavilion!
The flying cover appears to descent down the pine gate;
The pine gate shows the sun right up in the center of sky.
19.鷄林에서
계림은 신라 金氏 시조 알지의 전설의 장소이다.
신라인들이 닭을 숭상하여 남녀를 불문하고 머리에 닭 모양의 관을 쓰기를 좋아하므로 당나라 사람들은 신라를 鷄貴國이라 불렀다한다. 계림은 반월성과 첨성대, 월정교, 경주 교동의 인근에 있으며 始林이라고도 한다. 수령이 500년 이상 된 회나무와 느티나무, 팽나무, 왕버들 등의 고목이 많이 보인다.
계림 숲에 앉아 반월성의 녹음을 바라보며 지은 시 한 수를 소개한다.
현 경주시 淡水會長이신 桂山 任雲植 선생의 시이다.
桂林消暑 계림소서 계림에서 더위를 삭이며 <<桂山集>>
始林消暑綠陰浮(시림소서녹음부) 시림에서 피서하니 녹음이 떠오르네.
宿契相尋信有由(숙계상심신유유) 전생의 약속을 찾음은 믿음으로 인함일세.
六部邊芳熙暠地(육부변방희고지) 육부촌 꽃다웁고 밝게 빛나는 이 땅은
千年盛業帝王州(천년성업제왕주) 천년의 업이 융성한 제왕의 곳이로다.
淸談款款樽如海(청담관관준여해) 청아한 담소가 정성되니 술두루미 바다 같고
爽塏深沈夏似秋(상개심심하사추) 높고 트인 시원한 숲이 울창하니 여름이 가을 같다.
弄博圍棋隣老事(농박위기인로사) 장기와 바둑 둠은 이웃노인들의 할 일이요.
我耽佳句遣閑愁(아탐가구견한수) 나는 시 한 수로 한가한 심회를 날리리라.
*宿契.相尋,熙暠,淸談,款款,爽塏,深沈,隣老,佳句,閑愁 등은 古語體라 다시 意譯하였다.
Whiling heat away in the forest of Kye-Lim by Rim Woon Shik
To while heat away in the forest of Kye-Lim I stay in the shady green;
I believe that this search was possible due to my wish in the former life.
Fragrant six village borders are sunny and bright lands;
Successful accomplishments for a thousand years occurred in this royal place.
Distinct talks were amusing while holding a drinking vessel like a sea;
In a high and dry ground in a deep forest summer feels like fall season.
Since playing Chinese games is for elderly neighbors;
I shall enjoy some beautiful verses, dissipating leisurely anxiety.
* 졸저 ‘그대가 보내 주신 연꽃 한 송이’에서도 소개가 된 시이다.
20.溪亭에서
溪亭 鄭經世(1563~1633) <<愚伏집>>
溪水淸如鏡 계곡물은 맑아 거울과 같고
茅堂狹似船 띠 집은 좁기가 배와 같다네.
初回大槐夢 큰 벼슬아치(삼정승)의 꿈은 애초에 돌아 나가고
聯作小乘禪 이어서 소승의 선을 이룩하였도다.
投飯看魚食 밥을 던져 물고기 먹음을 보고
停歌待鷺眠 내 노래 멈추어 백로가 졸기를 기다리네.
柴門終日掩 사립문은 하루 종일 닫혀 있고
孤坐意悠然 외롭게 앉아 있으니 마음은 평온하네.
* 鄭經世(1563~1633)는 柳成龍의 門人으로 號는 愚伏, 晉陽 鄭씨로 尙州人이다.
壬辰亂 때 義兵을 모집. 功을 세워 宣祖 30년에 慶尙道 觀察使가 되었으나 光海君 때 鄭仁弘과 不和하여 削職되었다. 仁祖反正 후 全羅觀察使와 大司成을 거쳐 吏曹判書에 겸하여 大提學에 이르렀다. 性理學과 禮學에 밝고 詩文을 잘 지었으며 仁祖 10년에 卒하니 右贊成을 贈하다. 著書로 <<愚伏집>> 등이 전한다.
In a pavilion by a brook by Chung Gyung-Se
The stream is as clear as a mirror;
A thatched house is as small as a boat.
Initially the dream of making a high official receded;
Afterwards the Hinayana meditation was achieved.
By throwing cooked rice I watch fish to eat;
While halting a song I wait for an egret to doze.
The brushwood door is closed all day long;
Sitting alone I feel carefree and leisurely.
21.玉門谷을 지나며 (一名 女根谷)
지금의 경주 乾川에 女根谷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지금도 세상 사람들은 선덕여왕의 知機三事지기삼사와 연관해서 굉장한 호기심을 갖는다. 몇 년 전에 가보니 여근곡 샘물을 메웠다고 하는데 생각 없는 탐방객들은 아직도 여성의 性器를 뜻하는 이름이라하여 지대한 관심꺼리로 여긴다. 이 글 역시 김종직의 시‘첨성대’에서와 같이 선덕여왕의 고사인 ‘지기삼사’가 조작되었다는 것으로 믿고 여왕을 揶揄야유하는 투의 글이다.
過玉門谷 金宗直 (1431~1492) <<東國 輿地勝覽, 佔畢齋集>>
淺谷何能伏敵兵 얕은 계곡 적병 어이 잘 숨으리.
玉門千載謾爲名 옥문은 천년을 두고 희롱삼은 이름이여.
居民爭說知幾事 사는 백성 말로 다투어 어찌 그 일을 알았던고.
空使元戎枉道行 헛되게 부린 많은 병력 길을 알고 갔다네.
*元戎: 兵車의 이름 큰 것을 元戎, 작은 것을 小戎이라 한다. 詩經에 元戎은 十乘이라 함.
Passing the Ok Mun Valley by Kim Jong Jik
How could the enemy troops hide in this shallow Valley?
The Ok Mun has retained this deceptive name for ten thousand years.
Did the local residents know some incidents through these arguments?
The war-chariots were wrongly allowed to pass through this road in futility.
22.處容의 노래
處容은 신라 憲康王 (제49대 왕,875~886 재위) 때,
開雲浦 (울산) 바다에서 나왔는데 노래와 춤을 잘 추던 風流郞이었다. 東都詩選의 편저자 李東種은 處容을 순수한 신라 말로 ‘처음 치움’이라 했는데 한문으로 ‘용서함에 처함’ 이라고 풀어 보면 어떨까 한다.
바다에서 표류한 異邦의 남자가 海流를 타고 울산 바다에 寄着기착하였을 때 그의 容貌를 괴이하게 생각한 사람들은 동해 용왕의 아들로 여겨 왕에게 고하니 왕은 그를 궁으로 데려가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을 시켰다. 낯선 이국의 남자에게 정을 붙일 수 없었던지 아내는 다른 남자와의 잠자리 현장을 처용에게 들키게 되는데 (화랑세기의 내용을 믿는다면 당시의 도덕적 관념으로는 유부녀의 通姦에 너그러웠을지도 모른다) 처용은 춤추고 노래하며 그 자리를 물러난다. 그 이후 그는 슬픈 영웅이 되었다. 고려, 조선을 지나며 처용가와 처용무는 궁중예술이 되어 아내를 빼앗기고 용서한 남자의 대명사로 살아 있다. 아내의 불륜이 얼마나 참기 어려웠으면 천년을 두고 膾炙회자되는 이야기가 되었는가. 고등학교 다닐 때 배우던 고전문학 교재 첫 페이지에 처용가가 실려 있었는데 이토록 淫亂음란하고 不道德한 내용이 우리 민족문화의 원형인지는 모르겠으나 고등학교 교재 첫 페이지에 실을만한 가치가 있는지 나는 아직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
處容歌
東京明期月良 셔블 밝은 달에
夜入伊遊行如可 밤 들이게 노니다가
入良沙寢矣見皆 들어사 자리 보곤
脚烏伊四是良羅 가라리 네히어라.
二胯隱吾下於叱古 둘은 내해엇고.
二胯隱誰支下焉古 둘은 뉘해인고.
本矣吾下是如馬於隱 본디 내 해다만은
奪叱良乙如爲理古 앗거늘 어찌 하릿고.
처용가
서라벌 밝은 달에
밤늦게 노닐다가
들어 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어라
둘은 내 것이었고
둘은 누구 것인고
본디 내 것이었지만
빼앗아 가거늘 어찌하리.
Cheo Yong Song by Cheo Yong
Under the bright moonlight in the Eastern Capital;
I had merry time with friends late at night.
Upon entering my bedroom;
There were four legs in the bed!
The two once belonged to me;
What about the other two?
The first two were originally mine;
What should I do once they were taken away?
** Notes:
The above poem is a version of an old dance music at the time of Silla Dynasty. The content is lewd and the expression vulgar. I am not sure if it is proper to include this particular poem here.
跋文
梅坰 張香圭는 親家가 高麗의 創業에 獻身하여 <三重大匡神虎衛 上將軍>의 位와 賜姓을 除授한 張金用을 始祖로 하는 仁同 張門의 後孫이며, 朝鮮의 大學者이며 名賢이었던 旅軒 張顯光선생의 玄孫이며 그 外家 또한 佔畢齋 金宗直선생의 家門이니 가히 이 地方 兩 名門家의 後裔라 할 만 하다.
그와 宿生의 緣이 있어 燦爛한 千年의 業이 隆盛했던 이 곳 東都에서 알게 되었으니, 그 邂逅를 가히 아름답다고 하겠다.. .
日淺한 글 솜씨로 그의 글을 表現함은 未盡하기도 하고 不足함이 많지만, 굳이 말하라면
그의 慶州에 대한 사랑은 各別하여 지난 古人들도 앞지르기 힘들 것이다.
그의 글은 春風이 和氣로운 듯,俗塵을 떠난 듯, 流麗하여 東都를 노래한 어떤 글보다 心中에 와 닿는 듯하였다.
모두들 慶州를 사랑한다 말하지만 實踐없는 空虛함이라..
梅坰은 ‘慶州사랑’의 첫 結實인 <<그대가 보내 주신 연꽃 한 송이>>를 書店街에 내놓는 것을 꺼려 于先 一千券을 自費로 出版했으니 그 波紋은 조용하지만 서라벌 땅에서 오래도록 記憶될 것이다. 그의 號가 梅坰 즉 매화가 핀 넓은 들판을 뜻하니,
梅一世寒不買香 즉 ‘梅花는 한평생 추워도 香氣를 팔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의 두 번째 力作인 <<東쪽 나라의 노래>> 역시 古都 慶州를 主題로 新羅, 高麗, 朝鮮의 文人, 學者들의 珠玉같은 글을 嚴選하여 새로운 解釋과 英譯을 붙인다하니 佳句로서 다시 한 번 世人을 幸福하게 하리라는 期待를 해본다.
丁亥年 晩秋. 山水亭에서 慶州淡水會長 桂山 任雲植 謹書
23.異次頓 讚頌 이차돈 찬송
이차돈 찬송을 지은 一然大師는 俗姓이 慶州 金氏, 章山人(現 慶北 慶山) 金彦弼의 子로 諱는 見明, 字는 一然, 號는 無極이다. 高麗 忠烈王 때의 名僧으로 나이 아홉에 出家하여 慶北 淸道 雲門寺에 住錫하였다. 그는 學僧으로서 많은 著述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三國遺事>>는 歷史, 民俗, 文學 등에 걸쳐 가장 중요한 著書로 <<三國史記>와 더불어 우리나라 二大國史라 한다.
異次頓 讚頌 이차돈 찬송 一然大師 (1206~1289)
殉義輕生已足驚 의에 죽은 가벼운 생, 놀라기에 족하오니
天花白乳更多情 하늘에서 내리는 꽃 비, 젖 빛 피, 다시 정겨워라.
俄然一劒身亡後 선뜻한 한 칼 밑에 몸이 죽은 연후에
院院鍾聲動帝京 사원마다 종소리 온 서울에 울리네.
Eulogy to Yi Cha Don by Il Yun, the High Monk
To sacrifice for the righteousness and to belittle his own life is enough
to be admired;
Heavenly flowers and milky blood were again full of affection.
All of a sudden with one strike of a sword this great monk perished and then;
From one temple by another the bell ringing reverberated through the Capitol.
*belittle: play down 가치를 낮추다. 가볍게 여기다. 과소평가하다. 헐뜯다.
24.鳳凰臺에 올라
봉황대는 현재의 노동동 고분군 중의 하나로 경주에 있는 고분 중에 단일고분으로는 가장 큰 규모이다. 이는 풍수사상에 의한 지명으로 고분을 봉황의 알卵로 본데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봉황대 위에는 수령이 수 백 년 된 고목이 너 댓 그루 자라고 있는데 이 역시 풍수사상에 의거한 것인지 아니면 자생한 것인지 잘 알 수 없다. 사연을 알지 못하는 나에게는 조상의 묘에 돋아난 잡초라도 뽑는 우리의 孝사상으로 볼 때, 이치에는 맞지 않지만, 천년의 세월이 무상하다는 생각과 무덤 위에 우뚝 선 나무는 심미안적으로 상당히 멋스럽다는 두 가지의 생각이 교차한다.
Climbing the Terrace of Phoenixes by Lee Hang Bok
The Terrace situated so high is deceptively named;
How was the story not known despite its legend?
The reverent Music is now quiet;
When would the ceremony be offered once again?
25.水路 夫人
수로부인은 신라 36대 聖德王 때 강릉태수 純貞公의 夫人이다. 수로는 절세미인으로 남편의 부임 이튿날, 임해정에서 점심을 먹던 중 바다의 용이 끌고 물로 들어가니 뭇사람들이 부인을 내 놓으라고 일제히 부른 노래라고 한다. 이는 獻花歌와 더불어 여인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신라의 향가이다. 수로의 미모에 혹해 그녀를 약탈한 海龍은 아마도 강릉지방의 정치적 실권자로 추측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수로 부인은 바닷가 절벽에서 미끄러져 바닷물에 빠진 것은 아니었을까?
水路 唱海歌 衆人 <<三國遺事>>
龜乎龜乎出水路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 놓아라.
掠人婦女罪何極 남의 부녀를 약탈한 죄 어찌 극에 달하지 않으리.
汝若傍逆不出獻 너 만약 거리낌 없이 나와 바치지 아니하면
入網捕掠燔之喫 그물 쳐 잡아서 구워서 먹으리.
Lady Soo Ro by a throng
Tortoise dear! tortoise dear! Please release Lady Soo Ro to us;
Isn't it a heinous crime to abduct a wife of our Lord?
If you don't bring her out unreservedly;
You will get caught in a net to be burned and eaten.
26.불국사
서라벌 땅 모량리(지금의 건천)에 경조라는 가난한 여인이 아들과 함께 살았는데, 그녀의 아들은 머리가 크고 평평하여 그 모습이 마치 城과 같다하여 ‘대성’이라 불렀다. 그는 이웃의 부자인 복안의 집에서 품팔이를 하며 그 집에서 얻은 작은 밭을 부쳐 끼니를 이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점개라는 스님이 복안의 집에 와서 시주를 구하는 것을 본 대성은 복안에게서 받은 밭을 스님에게 시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죽었다. 대성이 죽던 날 밤, 재상 김문량의 집에 “ 모량리 대성이란 아이가 네 집에서 환생하리라”는 소리가 들리고 큰 별이 그 집으로 떨어졌다. 과연 김문량의 아내는 열 달 뒤에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손에 ‘대성’이라 새긴 쇠붙이를 쥐고 있었다. 성장해서 재상이 된 대성은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을 세우고 현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지었다. 전생의 부모와 현생의 부모의 은공에 보답한 공덕으로 김대성은 우리 겨레의 값진 문화유산일 뿐 아니라 세계의 문화유산인 석굴암과 불국사를 우리에게 남겨 주었다.
楓葉迎人解送凉 단풍잎은 나를 맞아 시원한 바람 풀어 보내네.
一代天花直福地 한 대에 하늘 꽃 비 바로 복된 땅에 내리고,
百年秋草入斜陽 백 년 동안 가을 풀은 기우는 햇볕에 들어오네.
鬼神共護餘高殿 음귀(陰鬼)와 신령(神靈)은 함께 높은 대웅전을 호위하고도 남고,
龍象爭趨奉覺皇 용과 코끼리는 다투어 가서 부처님을 받드네.
莫把遺龕誇女主 후세에 끼친 감실로 여왕을 자랑하지 마오,
古都宗社已榛荒 옛 도읍 종묘사직 이미 개암나무덤불로 거치도다.
*莫把遺龕誇女主
여기서 ‘把’의 뜻은 다음과 같다. 遠東漢英大辭典을 인용하자면;
(Colloquial) used before a direct object, followed by a transitive verb.
즉 구어체에서 사용되었는데, 목적어 앞에 사용하며, 타동사가 뒤 따른다’고 되어있으니,
예컨대, <他把古事講完了>는 영문번역으로 <He finished telling me the story.>
여기서 他는 주어, 把는 별 의미 없이 혹은 후에 나오는 타동사를 강조하는 듯하고,
古事講은 목적어이고 完了는 타동사이다.
그렇게 해석해보면, 이 시에서 遺龕은 목적어, 誇는 타동사로 그 다음에 목적어가 또 나온다.
莫把는 ‘(무엇)을 하지 마오.’란 뜻이고 遺龕은 후세에 끼친 감실이란 목적어이고
誇는 타동사로서 그 목적어는 女主가 된다. 여주란 진성여왕을 말한다,즉 나라를 망하게 한 원인을 제공한 여왕을 자랑할 것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렇게 해서 번역해 보면, ‘남긴 감실로 여왕을 과찬하지 마오.’ 하였다.
Bulguksa by Eu Se Gyum
The garden is filled with pines and cypresses colored deep blue in the morning;
While maple leaves greet the visitors with cool air.
The heavenly flowers of one generation descended to the blessed land directly;
Autumn plants for a hundred years are illuminated by the slanting sunlight.
Ghosts and deities mutually guard the main temple at least;
Dragons and elephants competitively hasten to serve the Lord Buddha.
Do not exaggerate the Queen's heritage out of the shrine left to the posterity;
Since the royal court of ancient capital is already devastated with hazel bushes.
27.김유신 묘
김유신은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의 명장(名將)으로 본관은 김해(金海). 가야국(伽倻國) 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의 12대 손으로, 신라 명장 서현(舒玄)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만명(萬明:신라 葛文王 立宗의 손녀) 부인, 증조부는 금관국(金官國) 마지막 왕인 구형왕(仇衡王)이며, 조부는 명장 무력(武力)으로 신주도(新州道) 행군총관(行軍摠管)을 지냈다. 15세 때 화랑이 되고 이어 국선(國仙)이 되었다. 629년 낭비성(娘臂城)싸움에 처음 출전하여 큰 공을 세웠다. 644년 상장군(上將軍)이 되어 백제의 가혜성(加兮城) 등 7개성을 공격하여 이기고, 647년 선덕여왕을 폐하려고 반란을 일으킨 비담(毗曇)과 염종(廉宗)의 반군을 토벌하였다. 649년 석토성(石吐城) 등 7개성을 공격해 온 백제의 장군 좌평(佐平) 은상(殷相)을 무찔렀다. 654년 진덕여왕이 후사 없이 죽자 김춘추(金春秋)를 임금으로 내세우고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룰 준비를 했다. 660년(태종 무열왕 7)에 소정방(蘇定方)이 거느린 당나라 13만군과 연합하여, 정병 5만을 이끌고 백제를 멸망시켰다. 그러나 백제가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고구려와 합세하여 곳곳에서 공격해 오자 그 잔적의 토벌 및 고구려 정벌을 시작하였다. 661년(문무왕 1) 김유신의 총지휘 아래 고구려 공격 작전이 개시되어 여러 차례 공격을 감행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668년(문무왕 8)에 나당(羅唐)연합군을 편성하여 김유신은 총사령으로 경주[金城(금성)]에 남고, 김인문(金仁問)·김흠순(金欽純) 등을 주장(主將)으로 하여 고구려를 공격해 멸망시켰다. 그러나 백제·고구려의 옛 땅을 차지한 당나라의 소정방이 신라군의 통수권까지도 장악하려 하자 김유신은 신라의 총력을 발휘하여 당에 대항했다. 당나라 군사와 여러 차례 싸워서 승리를 거듭하여 백제의 옛터를 전부 탈환하고 대동강(大同江) 이남의 땅을 도로 찾았으나 고구려의 옛 땅은 대부분 잃고 말았다. 왕은 그의 공적을 치하하여 태대각간(太大角干)의 작위를 주었고, 죽은 뒤에는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봉했다. 경주 서악서원(西嶽書院)에 제향되었다.
영문-to inspire confidence in somebody, confidence, trust.
7. 亂離; 나라가 어지러워 백성이 뿔뿔이 흩어짐이니 전쟁을 말한다.
8. 九原; 九原; 九州와 같은 뜻이니, 冀州、兖州、青州、徐州、扬州、荆州、豫州、梁州、
雍州를 의미하여 중국 천하란 뜻이니, 여기서는 우리나라 한 반도를 의미한다.
At the grave site of General Kim Yoo Shin by Eu Se Gyum
You, my lord general, ever shared destiny with the Country;
In the many battle fields unusual strategies were brought out.
Drafting and destroying the strong neighbors were always commonplace;
Long-term teaching of warriors reminds us of the bygone achievements.
Bright stars shining above his head represented his unswerving loyalty;
The sword springing up to his waist confirmed his conviction of impending war-cries.
In front of the desolate grave just three feet high a glass of wine is offered;
This land was destined to follow its course according to his grand plan.
다음의 시는 김유신묘에 관한 김시습의 시로 당시의 김유신의 분묘 형태가 마렴봉 즉 말갈기 모양을 한 쌍분의 형태였음을 알려 주고 있다. 김유신의 부인은 무열왕 김춘추와 유신의 누이 동생 문희의 사이에서 출생한 공주(지소부인)였으므로 필자의 저서<<그대가 보내 주신 연꽃 한 송이>>에 의하면 부인의 신분이 남편보다 높을 경우 부부를 합장한 묘가 표주박형의 쌍분인데, 김유신의 묘도 쌍분의 형태를 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김유신묘는 문무왕이 비문을 써서 후장을 했다고 하며 후대의 흥덕왕 때 흥무대왕으로 추존하고 무덤의 판석에 십이지를 부조한 원형봉토분으로 개수를 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시인의 착각인지 아니면 당시의 김유신 묘로 알려진 묘는 현재의 묘가 아닌지 알 수 없다
金庾信墓
金庾信墓김유신묘 金時習 매월당 김시습(1435~1493) <<梅月堂 遺稿, 東京誌,>>
馬鬣封幽花草深 말갈기 모양 봉분 그윽하여 풀꽃은 깊은 곳에
夜風呼號白楊林 밤바람 사시나무 부르짖는 숲 소리에
九原沒却英雄辨 구원은 묻혀 지고 영웅의 말씀은 잊혀 졌는데
埋看征西不死心 묻혀서도 서쪽 바라보며 정벌하던 마음 죽지 않았네.
*馬鬣封은 분묘의 형태로 말갈기와 같이 얕고 길면서 높은 봉분을 말한다(出典禮記檀弓上篇)
The grave of General Kim Yu Shin by Kim Shi Seup
The horse-mane shaped mound is tranquil with flowers and grass in abundance;
Night winds are calling and howling to the birch forest.
Nine Plains have already buried the hero's sayings;
His spirit never stops looking into the west even after burial.
28.석굴암
석굴암은 신라 경덕왕 때 재상 김대성에 의해 축조되었다.(751~774) 東洋無比라 하여 불국사와 함께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당시의 건축, 수리, 기하, 종교, 예술적 걸작품으로 고려, 조선을 거치며 여러 번의 중수를 해온 것으로 보이며, 어느 때 부터인가 방치되어 거의 폐허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일제 강점기 시기 (1913~1916)에 발견되어 보수를 한 기록이 남아 있다. 당시 일제는 본래의 모습을 많이 왜곡한 보수를 했는데 그 첫 번째는 석굴암 입구(연도)의 팔부신중상八部神衆像을 원형과 다르게 위치하였고, 둘째로는 광창으로 추정해 온 무지개 돌을 빼고 보수를 한 점, 세 번째는 석굴암의 원형 천개석과 감자비돌 밖의 玉石과 切石을 제거하고 시멘트로 원형지붕의 둘레를 감싼 것이 그것이다.
원래 석굴암의 연도羨道는 굽은 상태였는데 일제는 복원 공사를 하면서 팔부신중상 중 네 개의 조각을 펴 놓았다. 보수하기 전의 원래 사진이 일제가 발간한<<조선미술대관朝鮮美術大觀>>에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석굴암 본존불의 조명을 어떻게 하였는가 하는 문제는 많은 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되었는데 인도의 ‘아잔타’ 석굴사원이나 중국의 ‘돈황’의 전형을 보고 광창을 만들어 본존불을 비치는 조명장치를 했을 것이라는 학설이 유력시 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현장법사의 <<大唐西域記대당서역기>>에서 ‘대광명경大光明鏡’이라는 글귀가 발견되어 큰 거울에 비추이는 햇빛을 반사해서 본존불의 조명을 했으리라는 새로운 학설이 대두되었다. 실제로 화강암을 곱게 연마하여 본존불의 앞자리에 위치시켜 동짓날 아침 햇볕을 반사하는 실험을 해보니 과연 빛이 부처의 조각을 은은하고 아름답게 비추었다.
다른 하나의 문제점은 30여 평 남짓한 세계유일의 인공석굴의 제습장치에 관한 것이다. 본래 석굴암의 지붕은 현재처럼 목조건물이 아니고 석실 위에 둥근 돌과 다듬은 돌을 채워 넣고 마지막으로 흙을 덮은 모습이었는데 이것이 외부 온도와 내부 온도의 차이에서 오는 결로 현상의 제습기능을 한 것이다. 또한 기와조각이 주변에서 발견되어 목조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여 목조건물을 덧붙인 것이 현재의 상태이다. 그러나 석굴 위에 기와를 여러 겹으로 얹은 일제 때의 사진이 발견됨으로서 기와는 목조건물의 지붕에만 올린다는 우리의 상식이 여지없이 깨트려졌다. 일제가 시멘트 보수를 한 이 후 석굴암은 백화현상과 푸른 이끼가 본존불과 내부 조각들에 생겨났다. 1960년대의 보수공사에서는 이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 에어컨을 가동하고 있다. 1200년 전의 조상의 지혜를 과학 만능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따라잡지 못하는 우둔함을 어찌 할 것인가! 이것은 정신의 결여에서 온 소치일 것이다.
石窟庵 李垕 이후 (1870~1934) <<朗山集>>
石窟深深現化身 깊고 깊은 돌 집속에 화신으로 나타나니
新羅技術果通神 신라의 기술은 신과 통하는 기술이네
祗憐中霤涓涓水 공경하여 애련한 집속 낙수 물 흐르는데
換却千金失古眞 천금으로 바꾸지 못할 옛 진경을 잃었도다.
Suk Gul Am (The Grotto Nunnery) Lee Hoo
The deeply situated stone cave appeared as an embodiment of Buddha;
Silla Dynasty indeed reached the superhuman domain of its technology.
Only regrettable is the trickling water drops from the eaves;
Having lost the genuine treasure unexchangeable with a thousand pieces of gold.
* 석굴암은 오래 동안 역사 속에 묻혀 있다가 일제 째 우편배달부에 의해 재발견되었음으로 시가 많지 않다. 한말의 曺蕀燮, 柳自永의 시 두 편과 李垕의 시, 모두 세 편이 전할 뿐인데 李垕의 시가 流麗하여 택했다.
29.창림사
창림사는 나정을 지나 양산재가 있는 동네에서 한참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남간사지 당간지주가 있는 곳에서 남쪽으로 500여 미터 되는 서 남산자락에 위치한 절터이다. 대구 출신의 문인 서거정의 ‘금오산’에서 창림사에 관한 기록이 시로 남아 있다. 조선 초기 서거정의 글에 창림사 비문과 최치원의 글이 남아 있다 하였고, 후기의 유득공 역시 김생의 비문과 솔거의 그림 등 전해 오는 고서화가 있다 하였으니 지금도 어디에서인가 옛사람의 자취가 찾아질 것 같아 나는 오늘도 창림사 옛 터를 헤매인다.
金鰲山 금오산 徐居正 서거정 (1420~1488)<<東國 輿地勝覽>>
海上金鰲眺望宜 바다 위 금오(금자라)인 듯 멀리서 봄 직 하네만
風流文物異前時 풍류와 문물은 옛날과 같지 않네.
破碑或見金生字 깨어진 비석에 김생 글씨 간혹 보이고
古寺僧留致遠詩 옛 절 스님은 최치원 시 남겨 두었네.
甲第有基荒薺合 대궐은 황폐해 냉이만 자라나고
名園無主斷橋危 이름 높던 뜰은 주인 없고, 끊어진 다리 위태롭네.
春愁如許深於海 봄 시름은 저와 같이 바다보다 깊은데
鐵笛何人滿意吹 쇠 피리 누가 불어 가슴에 사무치네.
昌林寺 창림사 柳得恭 유득공(1779~?) <<二十一都懷古詩集>>
城南城北蔚藍峯 성터 남북에 울창한 푸른 봉우리
落日昌林寺裏鍾 떨어지는 해에 창림사 안에 종이로다..
閑捕東京書畵傳 전해 오는 옛 서화 한가로이 잡아보니
金生碑板率居松 김생의 비문 현판에 솔거의 소나무라네.
At the Chang Rim Temple Yu Deuk Gong
South and north of the City Wall is the grand and blue peak;
At the sunset time there is the temple bell.
Leisurely I caught a calligraphy and picture book of the Eastern Capital;
To find an epigraph by Kim Saeng and the famous pine picture by Sol Geo.
* 유득공: 조선 후기 실학자. 호는 영재·영암·고운당(古芸堂). 본관은 문화(文化). 영조 때 진사시에 합격하고, 1776년 이덕무(李德懋)·박제가(朴齊家)·이서구(李書九) 등과 합작시집 《건연집(巾衍集)》을 냈다. 1778년(정조 2) 사은사(謝恩使) 채제공(蔡濟恭)의 수행원으로 청(淸)나라에 다녀온 뒤 1779년 규장각 검서(奎章閣檢書)가 되어 이름을 떨쳤고, 그 뒤에 포천(抱川)·제천(堤川)·양근(揚根) 등지의 군수를 거쳐 풍천부사(豊川府使)를 지냈다. 그는 북학파(北學派)의 한 사람으로서 주체적인 역사의식을 주장하여 《발해고(渤海考)》에서 발해를 한국사에 포함시켜 통일신라를 남조(南朝), 발해를 북조(北朝)로 하는 남북조 국사체계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이러한 민족의식은 한시(漢詩)로 된 서사시 《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에 잘 드러나 있다. 저서로는 《경도잡지(京都雜志)》 《영재집》 《고운당필기(古芸堂筆記)》 《앙엽기》 《사군지(四郡志)》 《발해고》 등이 있다.
30.독락당
獨樂堂 독락당 張顯光 장현광(1554~1637) <<旅軒文集>>
白頭至紫玉 흰머리 되어서야 독락당에 이르러니
融結方最奇 얼려 뭉친 정기 모두 한껏 기이하네.
東賢至晦齎 동국의 현인이신 회제선생 이르러서
道脈正於斯 도의 맥이 바르기가 이에 있으니
如何終絶徼 어찌할까 끊어질 심원한 경지를
永作山河悲 영원히 지어지는 산하의 슬픔이여
幸賴有著述 다행히도 힘을 입을 저술이 남아 있어
的訓星日垂 적확한 가르침이 별과 해처럼 드리웠네.
* 旅軒 張顯光 장현광(1554~1637)은 조선 중기 학자. 자는 덕회(德晦), 호는 여헌(旅軒). 본관은 인동(仁同). 1576년(선조 9) 학행으로 조정에 천거되어 예빈시참봉 등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고, 이듬해 보은현감(報恩縣監)으로 부임했다가 사직을 청한 뒤 관찰사의 허가없이 귀향, 직무유기로 의금부에 체포되었다. 1602년(선조 35) 공조좌랑으로 부임, 《주역》 교정에 참가하였으며, 이후 사헌부지평·장령·집의·공조참의·대사헌·공조참판·지중추부사 등 전후 20여 차례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하고 오로지 학문연구에만 전념하였다. 1624년 이괄(李适)의 난 뒤 부름을 받아 왕에게 정치에 대한 건의를 하고,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각 주·군에 격문을 보내어 군왕의 군사를 일으켰으나, 다음해 삼전도(三田渡)에서의 항복 소식을 듣고 동해안의 입암산에 들어간 지 반 년 후에 죽었다. 덕(德)은 도(道)의 지선(至善)한 것이라고 논하였으며, 또한 이기설(理氣設)에서는 이이(李珥)의 설에 찬동하여 이(理)와 기(氣)는 서로 체용(體用)이 된다고 하여 경(經)과 위(緯)로 나누어 설명할 것을 주장했다. 그의 철학은 중국 명(明)나라 나흠순(羅欽順)과 이이의 이기심성론에 크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남인계열의 학자들 가운데 매우 이색적이고 독창적인 경향을 보였다. 성주(星州)의 천곡서원(川谷書院), 구미(龜尾)의 여헌영당(旅軒影堂) 등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여헌집(11권)》 《속집(5권)》 《성리설(性理說, 6권)》 《역학도설(易學圖說, 9권)》 《용사일기(龍蛇日記, 2권)》 등이 있다.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문강(文康).
* 독락당은 경상북도 경주시(慶州市) 안강읍(安江邑) 옥산리(玉山里)에 있는 조선시대 중기의 양반집 사랑채. 본래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을 봉사(奉祀)하고 있는 옥산서원(玉山書院)의 안쪽계곡에 있다.
Dok Rak Hall by Chang Hyun Guang
I was able to visit this eminent Hall only at my old age;
The spirit blended together is truly the most unusual.
The lineage of the East Sage finally reached Master Whae Jae;
Hereby the vessel of the Doctrine was rectified to the right path.
How could it ever be if this frontier had ended prematurely?
It would make this Country deplore without bounds.
Fortunately enough there are his writings we, the posterity, could depend upon;
The proper teaching has been as clear as the bright sun and stars.
31. 芬皇寺 분황사
芬皇寺 金克己 김극기(1150경~1204경) <<東國 輿地勝覽>>
苔繞空堦竹拂檐 이끼는 빈 섬돌을 두르고 대나무는 처마를 스치니
境淸不復受朱炎 경내는 서늘하여 뜨거운 더위 다시 돌이켜 받지 않네.
僧閑雅笑迎黃眼 스님은 한가하고 우아한 미소로 속세의 손님을 맞네.
客醉高談奮紫髥 손님은 술에 취해 고상한 말하며 붉은 수염을 떨치네.
蓮沼我常尋慧遠 연못에서 나는 항상 혜원대사를 찾게 되고
柳門公亦引陶潛 버들 문에서 귀공은 역시 도잠을 이끌도다.
含杯檄兀忘歸路 잔을 물고 똑바로 선채 돌아기기 잊었는데.
淅瀝殘陽下半簾 미풍은 불어오고 남은 볕은 반 쯤 걷은 주렴 아래로 들어오네.
Boon Whang Temple by Kim Guk Gi
Moss surrounds the vacant stone stairs while bamboos brush the eaves;
The courtyard is so cool that fiery heat is not felt.
Monks exchanging graceful smiles leisurely started to greet secular peoples;
Nevertheless a drunken guest speaks loudly while shaking his red whiskers.
In this lotus pond I always searched for teachings from Hui Yuan, the high monk.
At the willow gate you, my lord, also led Tao Qian, the eminent poet.
Standing around with the wine glass in the mouth I forgot to return;
With mild wind blowing the remaining sunlight permeates through the half-drawn screen.
문제점
1. 원전의 詹은 나무 목변의 첨으로 봐야 한다,
2. 檄兀의 뜻이 미상.
傲兀(오올)로 해 보았더니 똑바로 서 있다는 뜻이 있어 이렇게 바꾸어 보았다.
3. 柳門公이란 사람이 아니라 내 생각으로는 柳門에서 公이라고 보는데, 그렇다면
유문 즉 버들 문에서 귀공이 하는 뜻으로 풀이된다.
4. 淅瀝의 뜻. 싸라기 떨어지는 소리, 비오는 소리, 바람속의 낙엽소리, 가벼운
바람소리로 해석되는 데 전후 정황으로 보아서 ‘미풍이 불어오는’ 경치가 어떨까
한다.
5. 또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칠언율시이기 때문에 제3구와 제4구가 대(對)가 되고
또 제5구와 제6구가 대가 된다.. 그렇게 보면 僧閑과 客醉가 대가 되고 雅笑와 高談,
迎黃眼과 奮紫髥 역시 각각 대가 잘된다.. 제6구에서는 蓮沼와 柳門, 我常과 公亦
즉 '나는 항상' '귀공은 또한' 이렇게 대가 된다.
尋慧遠과 引陶潛 즉 혜원을 찾는다, 도잠을 이끈다. 그러니 혜원은 인명이어야 되겠기에 慧遠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정보를 알아냈다.
*혜원 [慧遠, 334~416] Hui Yuan
중국 동진(東晋)의 승려로 중국 불교를 학문적으로 확립하였으며 국가권력에도
저항하였다. 출생지 중국 산시성[山西省] 닝우[寧武]
주요저서 《사문불경왕자론(沙門不敬王者論)》
시호 변각(辨覺)·원오(圓悟)
32.新羅懷古신라회고
新羅懷古 신라회고 鄭公權 정공권(?~1382) <<圓齊集>>
宮城五十世 궁궐 이룬지 오십여 대
衣冠一千年 의관은 일천년을 이었네.
英雄水潮海 영웅은 바다의 밀물일 듯 하고
文物草連天 문물은 풀 같이 하늘에 닿았네.
*鄭公權은 淸州人으로 호는 원제, 고려문신으로 좌사의대부 雪谷 誧의 아들이다. 설곡은 시문에 능하여 주옥같은 명시를 많이 남겼는데 졸저<<그대가 보내 주신 연꽃 한 송이>>에서 <陽州客館別情人詩>로 소개가 된 인물이다. 公權은 공민왕 때 辛敦신돈을 탄핵하다가 죽음의 위기를 맞았으나 李穡이색의 도움으로 모면하였다가 우왕이 즉위하자 輸誠翊祚功臣수성익조공신이 되었다. 시호는 文簡문간.
Recollecting Silla Chung Gong Gwon
The royal palace was built around fifty generations ago;
The customs lasted for a thousand years.
Heros were swarming like the swelling tide;
Cultural relics were as numerous as grass linking the horizon.
33. 天龍寺感舊
천룡사는 남산 최남단에 있는 천룡곡에 있는 절터로, 석탑 1기, 석등 1기외에도 주춧돌·귀부, 법당터, 석조, 부도, 대좌 등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 천룡사는 원래 수리사水利寺였으나, 1040년 고려 성종 때 문하시랑 평장사로 칠백호의 食邑식읍과 청하후淸河候로 봉함을 받은 최승로의 손자인 최제안崔齊顔이 중건하면서 천룡사라 불렀다. 그의 둘째 딸의 이름이 천룡인 것으로 보아 천룡사는 그녀의 願刹원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 폐사廢寺되었다.
Recollecting the past at the Heavenly Dragon Temple Kim Shi Seup
Two daughters from Chae Jae Ahn were called heavenly dragons;
The wish for longevity motivated him to build this temple.
The past event has become a bygone dream;
In vain remains a mountain bird shrieking at the blowing wind.
34. 西岳精舍
西岳精舍 서악정사 金誠一 김성일(1538~1593)
西兄精舍舊開名 서형산 정사 오래전에 이름을 열었도다.
遠客初回萬里程 만 리 먼 길 온 나그네 처음으로 찾아드니
誰識龜翁開院意 뉘라 알리, 옛 사람이 서원 연 뜻을
鷄林葉葉盡風聲 계림 숲, 잎, 잎 마다 바람 소리 뿐이로다.
Western Mountain Study by Kim Sung-il
A study in the Seo Hyung Mountain opened with an old name;
A guest from far away made his first visit out of ten thousand lis' course.
Who will understand the intention of opening this study?
There are wind sounds out of leaves upon leaves in the Chicken Forest.
* 龜翁은 서악정사를 건립한 龜巖 李楨을 이르는 말이다. 이정은 퇴계의 문인으로 경주부윤 재임 중에 김유신,설총,최치원을 제향하기 위해 서악정사를 건립했다.
* 학봉 김성일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의성. 자는 사순士純, 호는 학봉鶴). 아버지는 진璡이다. 이황의 문인이다. 1564년(명종 19) 사마시에 합격했으며, 1568년(선조 1) 증광 문과에 급제하여 정자·검열·대교 등을 거쳤다.
그 뒤 부수찬·정언 등을 지내고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한 뒤, 1577년 사은사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가서 종계변무宗系辨誣를 위해 노력했다. 그 뒤 함경도순무어사·사간·황해도순무어사를 지냈으며, 나주목사로 있을 때는 대곡서원大谷書院을 세워 김굉필·조광조·이황 등을 제향했다. 1590년 통신부사通信副使가 되어 정사正使 황윤길黃允吉과 함께 일본에 건너가 실정을 살피고 이듬해 돌아왔다. 이때 서인인 황윤길은 일본의 침략을 경고했으나, 동인인 그는 일본의 침략 우려가 없다고 보고하여 당시의 동인정권은 그의 견해를 채택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잘못 보고한 책임으로 처벌이 논의되었으나 동인인 유성룡의 변호로 경상우도초유사에 임명되었다. 그 뒤 경상우도관찰사 겸 순찰사를 역임하다 진주에서 병으로 죽었다. 학문적으로 이황의 주리론主理論을 계승하여 영남학파의 중추 구실을 했으며, 예학禮學에도 밝았다. 저서에 〈상례고증 喪禮考證〉·〈해사록 海錄〉·〈학봉집〉이 있으며, 이황의 〈자성록 自省錄〉·〈퇴계집〉 등을 편집·간행했다. 안동 호계서원虎溪書院 등 여러 곳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35. 淨惠寺 정혜사 朴啓賢 박계현(1524~1580) <<灌園集, 東京誌>>
淨惠伽藍創幾年 정혜사 창건한지 몇 해나 되었는고.
藤蘿深處近諸天 칡넝쿨 깊은 곳에 하늘은 가깝도다.
讀書人去仙寮在 글 읽던 사람은 가고 없고 신선으로 남았으니
耆衲猶大能說賢 늙은 스님 오히려 현인을 설함에 크게 능하네.
At the Junghyae Temple Park Gyae Hyun
When was the Junghyae Temple built?
The hills where wisterias are growing luxuriantly almost reach the sky.
Only the cottage of the celestial being remains after the intellectual's departure;
Nevertheless an old monk still preaches a sage competently.
36. 祇林寺
기림사는 경주시 양북면 함월산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의 본산인 불국사의 말사이다. 기림사 발원문과 <월인천강지곡>에 천축국의 사문 광유성인이 창건했다고 하는 설화가 있고 처음에는 林井寺임정사라 불리다가 원효대사가 도량을 확장하면서 기림사로 개칭했는데 창건연대는 643년 (선덕여왕 12년)이라고 알려져 있어 어느 것이 정확한지 알 수 없다. 기림사는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을 비롯해서 수령 500년 이상 된 큰 보리수나무와 목탑지가 있는 지역과 성보 박물관. 삼신각, 명부전, 관음전 등이 있는 지역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 처음 지은 후, 6차례나 다시 지어졌다는 대적광전은 배흘림기둥의 다포식 단층맞배지붕의 건물로 단아하고 웅장하다. 다섯 가지 맛을 내는 물, 즉 오종수라고 불리는 물로 차를 끓여 마시는 감로수와 마음이 편안하다는 화정수, 기골이 장대해진다는 장군수, 눈이 맑아진다는 명안수, 물맛이 너무 좋아 까마귀가 쪼았다는 오탁수가 그 것이다. 또 역대 경주부윤의 기록인 <경주선생안>이 본존불의 복장유물로 나온 일은 하나의 역사적 의미가 있는 발굴로 기록된다. 임진왜란 때는 승병과 의병의 활동 중심지였던 호국도량이기도 하다. 본래 경주 남산에 있던 매월당 김시습의 사당이 훼철되면서 기림사로 위패와 자화상을 모신 사당이 절 담장 안에 있다.
祇林寺 기림사 李達衷 이달충 (?~1385)<<東國輿地勝覽>>
謁佛祇林後 기림사 부처님 뵈 온 이후로
還官半月時 관가로 돌아갈 때 뜨는 초생달
山深雲在峽 산은 깊어 구름은 골짝 깊이 잠겨들고
木老草生枝 나무는 늙었고 풀에서는 새 가지가 뻗어나네.
勇少伊尼睡 용기 있고 젊은 여승은 졸음 들어
吟長款段疲 긴 염불에 지치어서 나른한 모습이네.
此行眞可詫 그렇게 행함이 참으로 자랑할 만하니
觸處有新詩 만나는 곳곳마다 새로운 시를 남기네.
At the Gi-Rim Temple Lee Dal Choong
After worshipping Lord Buddha at the Gi-Rim Temple;
At the time of returning to governmental office the half-moon appears.
In the deep mountain clouds stay in the valley;
From old trees new branches grow amongst grass.
Courageous and young are nuns slumbering;
Invoking long caused them fatigued.
This practice is truly wondrous;
Upon every encounter a new poem is written.
37. 鮑石亭
鮑石亭 포석정 曺植 조식(1501~1571) <<南溟集>>
楓葉鷄林已改柯 계림의 단풍나무 이미 가지를 바꾸고
甄萱不是滅新羅 견훤이 신라를 멸했다 함은 이 아니로다.
鮑亭自召宮兵伐 포석정이 스스로 적병을 불러들인 것을
到此君臣無計何 이리된 임금 신하 어찌 대책 있으리.
Abalone Stone Pavilion Cho Shik
Maple leaves in the Gye-Rim Forest already changed branches;
Gyeon Whon didn't truly perish Silla Dynasty.
This Pavilion of itself invited the enemy troops;
At that time the king and his subordinates had no plans to invasion.
포석정은 流觴曲水라 하여 돌을 전복모양으로 조각하여 물길을 만들고 흐르는 물 위에 술잔이 돌도록 하며 유희를 하던 공간이다. 중국에 그 원형이 있으며 일본에도 그 문화가 잔존하고 있다. 포석정에서 鮑祠라는 기와 명문이 발견되어 신라인들이 신성시하던 제례의 공간이었다는 설도 제기되고 있다.
* ‘改柯’는 세상변천을 견주는 말로 ‘改柯易葉’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듯하다.
* 조식은 조선 중기 학자. 자는 건중(楗中), 호는 남명(南冥). 본관은 창녕(昌寧). 어려서부터 경사자집(經史子集)을 섭렵하고 천문·지리·의약·병략(兵略) 등에 널리 통했으며, 또한 좌구명(左丘明)·유종원(柳宗元)의 문장과 노장학(老莊學)에 심취, 초탈(超脫)의 경지에 이르렀다. 25세 때 《성리대전(性理大全)》을 처음 읽고 크게 깨우친 바 있어 이후로 유학에만 힘써 대학자로 추앙받았다. 그의 학문목표는 거경집의(居敬執義)를 신조로 반궁체험(反躬體驗)과 거경실행(居敬實行)하는 데 있었다. 중종 때부터 명종·선조 때까지 삼조(三朝)에 걸쳐 그에게 여러 벼슬을 내리고 불렀으나 끝내 나아가지 않고, 지리산 덕천동(德川洞)에서 선비를 모아 강학(講學)에 힘쓰는 등 오직 학문연구와 후진교육에만 힘썼다. 문하에서 오건(吳健)·김우옹·정구(鄭逑)·정인홍(鄭仁弘)·최영경(崔永慶) 등 많은 학자들이 배출되어 한 학파를 형성하였으며, 그의 문인들은 스승의 기상과 학풍에 영향을 받아 대체로 은일적(隱逸的)인 학풍을 지녔고 특히 절의(節義)를 중시하였다. 그의 제자 가운데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적과 싸운 사람이 60여 명에 달했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정인홍·곽재우(郭再祐)·김면(金沔) 등은 3대 의병장으로 꼽힌다. 1615년(광해군 7)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진주(晉州)의 덕천서원(德川書院), 삼가의 용암서원(龍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남명집》 《남명학기유편(南冥學記類編)》 등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貞).
38.吐含山詩
吐含山詩 토함산시 曺欽 조흠 (?~935) <<東京誌>>
千年王業一朝塵 천년의 왕업이 하루아침 티끌이니
白首孤臣淚滿巾 흰머리 외로운 신하, 수건 가득 눈물이네.
借問首陽何處是 그대에게 묻노니 수양산이 그 어디인가.
吐含山月自和親 토함산은 달과 함께 절로 어울려드는데.
작가 曺欽은 창녕인으로 월성부원군 繼龍계룡의 五世孫이다. 신라 말에 벼슬이 阿干侍中이었고 시문에 능하였다. 그는 국운이 쇠망함을 보고 토함산에 숨어 살며 이 시를 지었다.
At the To-Ham Mountain by Cho Heum
Royal achievements of a thousand years resulted in mere dusts one morning;
A white-haired lonely subject shed tears wetting his towel.
May I ask you where Shou Yang Mountain is located?
Moon and the To-Ham Mountain seem to try being mutually befriended.
39. 東都懷古
東都懷古 동도회고 高相燮 고상섭 <<東林遺稿>>
馬井寒烟視 말이 울던 우물가에 찬 안개만 보이고
鷄林落照邊 계림 주변에는 석양이 어리도다.
阿珍亦何處 아진포는 또 어느 곳에 있는가?
流水已千年 흐르는 물 이미 천년일세.
Recollecting the Eastern Capitol by Ko Sang Seup
The Horse Well is covered with cold smokes;
The Chicken Forest is bordering with the glow of the setting sun.
Where is the Hill Treasure, the shore site?
The waves have already streamed over a thousand years.
작자 고상섭은 호는 東林, 조선 숙종 조에서 영조 연간의 인물로 자세한 기록이 전하지 않는데 경주 구황리에서 살았다는 기록이 있고 다른 시로는 ‘불국사’ 시가 전한다. 마정은 박혁거세의 탄강지 즉 나정을 말함이며, 계림은 김알지의 전설이 어린 장소이며, 아진포는 석탈해의 배가 기착한 동해안의 지명이다. 즉 박. 석. 김 3성의 탄강지에서 읊은 신라를 회고하는 시이다.
40. 金尺
金尺 금척 李舜相 이순상 <<松菊集, 東京十六詠 中>>
回死能生病亦痊 죽음에서 돌아 와 능히 살면 병 또한 나음같이
羅人胡不盡爲仙 신라사람 모두 어찌 신선되지 않으리.
至今金院多疑塚 지금의 금척원에 의문 많은 무덤인데
影事茫茫綠草芊 그림 같던 역사는 까마득한데 푸른 풀만 우거졌네.
The Golden Ruler by Lee Soon Sang
Attaining life recovering from near death and also healing completely;
How couldn't all the Silla folks become celestial beings?
Until now the Golden Ruler Courtyard has retained many suspicious tombs;
Image-like events are vast and remote while green grass is luxuria.
경상북도 경주시 서면 금척리에 있는 신라시대 고분군으로 경주 서쪽 7∼8㎞ 지점에 있으며 50여 기의 대형 고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봉토는 크지 않지만 완전하고 분구는 원형과 표주박모양이 공존하고 있다. 1952년 국립경주박물관에 의하여 파괴된 고분 2기가 발굴·조사되었는데, 구조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금 귀걸이, 곡옥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1976년 문화재관리국 경주사적관리사무소, 1981년 다시 국립경주박물관에 의하여 파괴된 작은 고분들이 발굴·조사되어 이 고분들이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임이 밝혀졌고 출토된 유물들이 경주지방의 다른 고분들에서 나오는 것과 같아 축조시기도 대체로 경주고분과 비슷한 시기일 것으로 추정된다. 사적 제43호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금척은 시조 박혁거세 왕이 천신으로부터 얻은 보물인데 병든 사람을 재면 병이 낫고, 죽은 사람을 재면 살아난다는 신비한 자다. 이 소문이 중국에 퍼져 중국 황제가 빌려 달라하기에 잃어버릴까봐 지금의 건천 부근에 똑같은 무덤 여러 기를 만들어 그 어딘가에 묻어버렸다. 금척을 묻은 장소가 바로 지금의 금척리 일대의 고분이며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 30여 기의 고분을 같이 조성했다고 하는데 이는 후대인들의 조작인 것으로 생각된다. ‘자’ 즉 尺은 동. 서양 공통으로 물건의 길이를 재는 도구라는 뜻 외에도 ‘지배자’ ‘통치자’라는 뜻을 가진다. 중국에서 ‘걸음쇠와 자’라는 뜻의 ‘規矩규구‘는 세상을 통치하는 자者의 행위의 표준. 사물의 준칙. 일상생활에 지켜야 할 법도. 常道상도라는 뜻으로 쓰였다.
41. 次朴堤上澄心軒詩 징심헌시에 차운하여
次朴堤上澄心軒詩 차박제상징심헌시 金馹孫 김일손 (1464~1498)<<濯瓔集>>
一帶長江萬古流 한 띠의 긴 강은 만고에 흘렀고
蕭蕭竹葉幾經秋 쓸쓸한 댓 잎 소리 몇 가을을 지났는가.
忠孝洞裡今無主 충효의 고장에 지금은 주인 없고
綠草年年暗喚愁 푸른 풀은 해마다 어두운 수심 불러오네.
Versing next to Jing Shim Hall in memory of Park Jae Sang
The long river has streamed around the shores in perpetuity;
How many autumns have the whistling bamboo leaves passed by?
The town of loyalty and filial piety doesn't have its lord nowadays;
Green grass arouses concealed sorrows year by year.
김일손은 김해인으로 호가 탁영. 조선 성종 때의 유학자로 점필재 김종직의 문인이다. 사림파의 일인으로 史官사관으로 있을 때 세조의 왕위찬탈의 불의와 훈구파 대신들의 불미스러운 행실과 스승인 점필재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에 올렸다가 연산군 때 훈구파의 사주로 발각되어 무오사화를 초래했다. 경북 청도 자계서원과 충북 목천 도동서원에서 향사한다. 박제상은 신라 눌지왕 때의 충신으로 고구려에 볼모로 가 있던 왕의 동생 복호를 데려왔으며, 왜에 볼모로 간 왕제 미사흔을 돌려보내고 자신은 체포되었는데, 왜의 협박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충절을 지키다가 피살되었다. 부인은 그를 기다리다 치술령의 신모가 되었다고도 하고 망부석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징심헌은 박제상의 고향인 경남 양산에 있었으나 지금은 효충사로 바뀌었다. 김시습의 ‘징심헌’시도 전한다.
42. 西岳精舍 서악정사
西岳精舍 서악정사 李禎 이정 ((1512~1571) <<龜巖集>>
柳綠花紅物色殷 버들 푸르고 꽃은 붉어 봄빛은 짙은데
傍隨肯學少年群 배움을 좋아하는 젊은이들 곁에서 따르네.
千年大地俗非古 천년의 땅에 풍속은 예 같지 않은데
一箇迂儒心似薰 세상 물정 모르던 선비 마음 이제야 훈훈하네.
素食幾驚中澤雁 하는 일 없이 먹고 사는 못 속 기러기 어찌 놀라
岸中空望出山雲 못 가에서 하늘 보니 산 구름 속을 벗어나네.
仙桃洞裏新開宇 선도산 가운데 새로운 집을 열었으니
探勝歸來滌垢紛 명승지를 찾아 돌아 온 길에 어지러운 때를 씻고져.
Western Peak Study Lee Jung
The scenery is best with willows green and flowers red;
Closely following are a group of young men eager to learn.
Customs don't appear old in this region despite a thousand year-old history;
Even a stubborn scholar has his heart like a fragrant perfume.
Wild geese were recurrently frightened while eating vegetables in the pond;
And then flew away into a cloud-hanging mountain out of a shore.
A new cottage was opened in the Celestial Peach Valley;
The dirt and dust acquired from my visit to the sights may be washed clean.
李禎은 泗川人사천인으로 호가 龜巖구암. 송인수와 이황의 문인으로 조선 중종 때 경주 부윤이 되었다. 이 글은 그가 서악정사를 세우고 은사인 퇴계 이황에게 題韻제운을 빌려 받아 쓴 글이다. 선조 원년에 부제학에 임명되었으니 부임하지 않았다. 성리학자로 사천의 龜溪書院구계서원에서 향사한다.
43. 東都懷古 其一 동도회고 기일
東都懷古 其一 동도회고 기일 金麟厚 김인후 (1510~1560) <<河西集>>
三邦瓜割亂紛紛 세 나라는 오이처럼 갈라져 난분분하더니
獨有新羅以久聞 신라만이 홀로 있어 오래도록 들리었도다.
年少官昌能死敵 어린 나이 관창은 능히 적을 죽이고
身亡厚稷亦匡君 죽은 후직 또한 왕의 사냥 길을 바루었네.
魂隨競海登山沒 바다를 겨루어 쫒던 혼은 산에 올라 끝이 나고
心逐防秋撫鏡分 마음은 가을 수자리 나간 임을 쫒아 , 나눈 거울 어루만진다네.
義烈至今流不泯 의롭고 매운 절의 지금도 다하지 않고 흐르니
君歸一一訪淸芬 그대들 가는 곳마다 맑은 향기 찾아보네.
Recollecting the Eastern Capitol I Kim Rin Hoo
Three countries were split in great disorder and confusion;
Alone the reputation of Silla was heard for a long time.
Young Guan Chang was able to kill the enemy fighters;
Hoo Jik also rectified his King's way even after decease.
His soul chasing after and competing with sea finally climbed a mountain before vanished;
His spirit pursuing the autumnal fortress stroked the mirror split into two.
The righteous and fierce integrity still runs without stopping until now;
You might as well relish the clear fragrance one by one upon visiting.
김인후는 서인계열의 문신이나 신라 경순왕의 후손으로 호는 하서, 조선 명종 때의 명유로 현종 조에는 이조판서와 대제학을 증하고, 정조 때 다시 영의정에 증하고 文正을 諡號로 받아 문묘에 제향되었다. 이 시는 그의 <동도회고> 5수중의 첫 시로 매우 유려하다. 저서로는 <<百聯抄解백련초해>> <<하서집>>이 있다. 이 글의 시상은 ‘화랑 관창’, 사냥을 좋아하던 진평왕을 죽어서도 諫한 김후직‘, ’눌지왕 때의 충신 박제상‘, ’가실과 설씨녀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 제 6 연의 防秋는 이적(夷狄)을 막음. 북방의 이적이 가을철이면 침입한 데서 유래. 이는 가실의 고사이다.
44. 皇龍寺
皇龍寺 황룡사 金克己 김극기 (1150경~1204경) <<東國輿地勝覽>>
層梯繚繞却飛空 층층다리 감고 도니 하늘을 나는 듯 하고
萬水千山一望通 모든 강물, 많은 산 한 눈에 들어오네.
身出廬敖登降外 목탑에서 나와 놀면 오르내림 바깥이요
星槎影落詹前雨 별 뗏목 그림자 떨어지니 처마 밑에 내리는 비요
月桂香飄檻下風 달 속의 계수나무 향기는 떠돌고 난간 아래에 바람이로다.
俯瞰東都何限戶 굽어보니 서라벌 호구 어찌 끝이 있으리.
蜂巢蟻穴轉溟濛 벌집과 개미굴, 가랑비 내려 어두워지네.
At the An Emperor Dragon Temple Kim Geuk Gee
Stairways wind round and round like flying into the air;
Rivers and mountains are seen at one glance.
Just outside the cottage is a narrow and steep trail;
Young monks are seen bustling with coming and going.
The image of a stellar raft falls while it rains before the eaves;
The fragrance of a cinnamon tree in the moon floats in the wind
under the balustrade.
I cannot tell how many homes are there by looking down at the Eastern Capitol;
Bees' nests and ants' holes become dark in the sprinkling rains.
김극기는 앞서 소개한 ‘분황사’ 시 외에도 ‘월정’교‘ 시의 작가이다. 皇龍寺는 구황동 소재의 절이고, 黃龍寺는 황룡동 소재의 절이다. 근래의 학자들도 이 두 절을 혼동하여 정확하지 않은 글을 쓴다. 필자도 경주에 살게 되면서 黃龍寺를 알게 되었다. 위의 시는 구황동 소재의 皇龍寺 구층 목탑이 1238년(고려 고종 25년) 몽고의 침입으로 불타기 전에 탑의 정상에 올라 서라벌 땅을 굽어 본 감회를 읊은 귀하고 드문 시이다. 황룡사에는 목탑 외에도 장육존불, 솔거의 벽화, 역시 몽고의 침입 시 유실된 황룡사 대종 등이 있었다.
45. 集慶殿
集慶殿 집경전 李敏求 이민구 (1589~1670) <<東洲集>>
古國衣冠盡 옛 나라의 문물은 다 하여지고
荒城歲月來 거친 성에도 세월은 가고 오도다.
春生遙野戀 봄은 돋아나 먼들도 그리워 애태우니
日暮大江回 해 저물고 긴 강은 돌아 나가네.
錦石含孤憤 비단결 같이 다듬은 돌, 외로운 한을 머금고
珠陵起七哀 구슬 띠와 같은 무덤에서 칠정이 일어나네.
郊墟不可望 외곽지 유허지는 차마 볼 수 없으니
莫上最高臺 높은 대 위에는 부디 오르지 마시라.
Jip Gyeong Hall Lee Min Goo
The customs of the ancient country are gone;
The time and tide passes by around the barren wall.
Spring growth pines for the distant fields;
At the eventide the river turns round.
The silky rock appears to hold lonely anger;
The jade-like mound seems to bring seven sorrows.
The suburban ruins can be barely looked over;
I urge you not to climb the highest elevation for lookout.
집경전은 현재 경주여중 교정 안에 그 옛터임을 알리는 비가 있으며 통일신라시대의 離宮이궁으로 문무대왕의 즉위식이 거행된 장소이며, 조선시대에는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봉안했었다고 한다. 전주에는 경기전, 평양에는 명숭전, 경주에는 집경전이 있어 조선조 이씨 왕가의 성역이 되었으며 집경전이라는 자구로 보아서 경전을 모아 놓았다는 설도 있다. 경주여중 동쪽 담 밖에는 鑄錢址주전지의 유구가 있는데 화폐를 주조하던 곳이었다. 바로 가까이 조선 시대 경주읍성이 최근 일부만 복원이 되었다.
46 月明巷
月明巷 월명항 李齊賢 이제현 (1287~1367) <<東國輿地勝覽>>
新羅昔日處容翁 신라의 그 옛날 처용 늙은 이
見說來從碧海中 푸른 바다에서 나와 왕을 뵙고 기뻐하며 따라왔네.
具齒赭脣歌月夕 가지런한 치아, 붉은 입술로 저녁 달 지도록 노래 부르며
鳶肩紫袖舞春風 솔개 같은 어깨, 보라 빛 옷소매, 봄바람에 춤을 추네.
The moonlit town Lee Jae Hyun
T
here once was Cheo Yong the senior in Silla;
The story goes that he arose out of the blue sea.
From his regular teeth and red lips came out the sweet song in the moonlit evening;
With his hawkish shoulders and purple sleeves he danced at the spring wind.
이제현은 이규보와 더불어 고려의 제일의 문장가로 본관은 경주, 호는 益齋익재이다. 安裕안유의 문인으로 충렬왕 때 나이 15세로 성균관 시험에 장원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특히 충선왕이 원나라에 볼모로 있을 때 시종하여 천재적 자질에 더하여 당시 동양문화의 중심지이던 원나라 수도 북경의 ‘萬卷堂만권당’에서 절륜의 공부를 쌓았고 당대의 거유들과 깊은 교유를 했다. 벼슬이 공민왕 때 좌.우정승을 거쳐 문하시중에 이르고 계림부원군에 봉하였다. 충숙왕 때 유청신 등이 고려의 국호를 폐하고 원의 省을 두어 행정구역을 만들고자 주장하였을 때 극력반대하고 공민왕 때는 排佛論배불론을 주장하였다. 저서로 <<益齋集>> <<益齋亂藁>> <<櫟翁稗說>> <<孝行錄>> <<西征錄>>등이 있다. 향년 81세로 졸하니 시호를 文忠이라 하였다. 백운 이규보와 함께 고려지역에서 출생한 그는 경주에 관한 단 한 수의 시를 남겼다.
신라 헌강왕 때 동해 용왕의 아들 처용이 달빛이 가득한 서라벌의 거리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춘풍에 너울거리는 붉은 옷소매와 솔개 같은 우직한 어깨, 붉은 입술, 가지런한 치아 등으로 표현하여 마치 한 폭의 그림을 펼치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조선 시대 유학자들의 관념적인 시를 대하다가 오랜만의 고려 시를 보니 역시 시는 낭만적이고 감성적인 것이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具齒赭脣歌月夕 鳶肩紫袖舞春風’ 이 구절은 일품이라 할 수 있겠다.
47. 石氷庫
石氷庫 석빙고 趙秀三 조수삼 (1762~1849) <<秋齊集>>
伐氷存舊制 얼음을 깨었음은 옛 법을 간직하였음이요,
累石作凌陰 돌을 쌓았음은 그늘(의 서늘함)을 능가하게 지었음이로다.
蘊蓄三冬氣 이는 겨울의 냉기를 저축함이요,
窮穿百仞深 (또한) 백척이나 되는 깊이를 뚫었음이로다.
龍蛇應蟄伏 용 같은 구렁이 서리어 엎드린 듯
日月只森沈 해와 달이 떴어도 숲속에 깊이 잠겼을 뿐.
銅翟摩挲歎 구리 꿩 부각을 쓰다듬으며 감탄하노니,
平生有古心 온고지정을 평생 간직함이로다.
Stone Ice Storehouse
Cutting ice down remains to be an old system;
Piling stones up is to exceed shades in efficiency.
It was to save and store up the winter coldness;
It was also to pierce through to a great distance of depth.
Dragons and serpents for sure appeared hibernating;
Sun and moon apparently immersed themselves into sea of forest.
The copper pheasant relief induces my admiration while stroking;
It also arouses my instinct to restudy old materials all the time.
석빙고는 신라 유리왕 처음 축조되어 전해 오다가 조선조 영조 때 현재의 반월성에 옮겨서 다시 쌓았다. 작가 조수삼은 본관이 한양, 호가 秋齋로 문장과 시에 천재적 소질이 잇어 여섯 차례나 중국을 왕래하면서 시명을 떨쳤고, 중국어에도 능통하였다고 한다. 조선 현종 10년 83세에 사마시에 합격했다. 저서로 <<秋齋詩抄>> <<秋齊記異>>등이 있다.
48. 金生
金生 김생 李奎報 이규보 (1168~1241) <<東國李相國集>>
朝露結兮夕煙霏 아침 이슬 맺힘이여, 저녁 안개 날리네.
Ah the fierce serpent is caught! The mysterious phoenix flies up.
Is it Kim Saeng's calligraphy? Or Wang Hee Ji's?
Ah the two persons are different! But the penmanships match each other.
His spirit and immaculate stroke correspond mutually
to be called heavenly talent.
How extraordinary these are! It is hard to hand down through words.
익재 이제현과 같이 고려 제일의 문장가로 본관은 여주, 초명은 仁氐, 호는 白雲居士, 止軒, 三酷好 선생 등으로 불리다. 여섯 살에 ‘꽃은 웃어도 소리를 들을 수 없고 새는 울어도 눈물마저 못볼래라’(花笑聲未廳 鳥啼淚難看) 는 글을 써서 세인을 놀라게 하였다. 걸출호활한 시풍으로 당대를 풍미하였고 몽고군의 침입을 ‘陳情表’로 격퇴한 대 문장가였다. 시와 술, 거문고를 즐겨 스스로 ‘삼혹호’라 불렀고 만년에는 불교에 귀의하여 향년 74세로 졸하니 시호는 文順이다. 저서로 <<東國李相國集>> 53권과 <<白雲齊集>> 15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