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통 무술 택견
택견 또는 태껸은 한국의 전통의 민속놀이, 무술이다. 독특한 리듬으로 스텝을 밟으며 다리걸기, 발차기, 던지기 등으로 공격한다. 대한민국의 국가무형문화재 제76호 택견으로 등록되어 있다. 문화재 지정을 받았기 때문에 체육관을 도장이 아니라 「전수관(傳修館)」이라고 부른다. 택견 협회에서 택견이란 발을 위주로 사용하여 상대방을 제압하는 기술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손보다는 발을 위주로 사용하는 전통 무술로 볼 수 있다. 근현대 들어 택견은 유도, 가라테 등 일본계 무술의 유입에 의해 쇠퇴했다. 한국 해방 이후에는 현대 태권도에 택견의 기술이 전승 되기도 하였으며, 이후 택견은 전통을 되살리려는 많은 노력을 통하여, 2011년 11월 28일, 택견은 세계 무술 가운데 최초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택견은 양반들이 놀기 위해 만든 놀이이다 택견이라고 하는 명칭의 자료상의 초견은 조선 정조시대(1776-1800)의 것이다.
수박(手搏)은 변(卞)이라고 하고 각력(角力)은 무(武)라고 하는데 지금에는 이것을 탁견(托肩)이라 한다.
— 《재물보》, 이성지
이에 따라 "태껸"의 어원은 "탁견 (托肩)"이라고도 하나, 민간어원일 수도 있다. 어원에 대한 인식이 점점 약화되면서 "태껸"으로 굳어져 표준어 규정 제5항에 근거하여 태껸을 표준어로 삼았다. 본래 "택견"은 "l" 모음 역행 동화를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표준어 규정 제9항에 어긋나 표준어로 인정받지 못하였으나, 거의 모든 택견 관련 단체들이 일관되게 "택견"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고, 문화재청에도 "택견"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대한민국내의 언어 실생활에서 "택견"이라는 표기의 사용 빈도가 높음을 감안하여, 2011년 8월 22일 국립국어원 국어심의회 전체 회의를 거쳐 동년 8월 31일부터 복수 표준어로 인정 되었다 조선시대, 서울 지역(당시 한양)에서 유행한 민속놀이. 굼실 거리며 춤과 같이 움직인다.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에는 씨름처럼 민속놀이로 인식되었으나, 해방 후 무술로서 재인식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평안도의 날파람, 경상도의 까기 등 여러 명칭의 무예적 놀이가 존재했음을 짐작할 수 있지만, 그 형태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한 무예적 놀이를 증언하는 노인들의 증언에서 형태의 상이함이 있으므로 택견, 날파름, 까기, 잽이 등은 지역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점을 고려했을 때 수박과 택견과의 연관성도 연구가 필요하다 하겠다. 조선 말기에 임호(林虎)라는 택견꾼으로부터 택견을 배운 사람들 중, 송덕기(宋德基)가 현대 택견의 뿌리이다. 송덕기에게 택견을 배운 이들이 대한 택견 협회, 택견 원형 보존회, 한국 전통 택견회, 결련 택견 협회 등의 단체를 조직하였다.
“ 그 당시에는 택견이라고 해서 특별한 무술이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여가를 이용해서 운동하기 좋은 장소에 모여서 실시하던 일종의 민속놀이였다. ”
— 송덕기. 〈머리말〉. 《한국 고유 무술, 택견 (전통 무술, 택견)》. 서림문화사.
조선 시대 말기와 일제강점기에 택견을 하던 사람들은 택견을 무술이 아닌 씨름같은 민속놀이로 인식하였다. 택견의 수련과정은 크게 혼자 익히기(개인 수련), 마주메기기(상대 수련) 등이 기본이며, 이 과정을 거친 뒤 하는 견주기(겨루기), 본때뵈기(품새 또는 형) 등의 과정이 있다 각 과정은 세분되어 있으며, 과정에 따라 발질과 손질의 동작이 거듭되어 나온다. 혼자익히기는 서서익히기와 나아가며 익히기로 구성되어져 있으며, 마주메기기는 막음질, 얼러메기기, 마주차기, 마주걸이로 구성되어 있다. 견주기는 대걸이와 맞서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때뵈기는 앞에거리 여덟마당, 뒤에거리 네마당, 별거리 여덟마당, 결련거리 네마당으로 구성된다. 또한 택견은 굼실굼실하는 세 박자의 품밟기, 손놀림으로 이루어진 활개짓, 공격의 모체라 할 수 있는 발기술인 발질로 구성되어 있다. 택견은 모두 우리말로 되어 있는 특색이 있다. 택견의 특징으로 다른 무술에 비해 질박하고 섬세하며, 부드러운 곡선의 몸놀림으로 공방을 할 수 있다. 택견의 기술들은 모두가 얼르고, 차고, 걸어서 낚아채어 넘어뜨리는 기술로 구성되어 있어 공방일치의 몸놀림을 구사하는 독특한 기법을 가지고 있다.
중국의 전통 무술 쿵푸와 우슈
쿵후(중국어: 功夫, 병음: gōngfu)는 중국 무술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지만, 중국에서 ‘功夫’라는 낱말은 무술과 관련 없이 ‘숙달된 기술’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연무; 삼식 가운데 방향이 실재하는 인데 방법상 만련과 쾌련으로 분리가 되는데 시연상은 3식을 (입식,좌식,와식; 이는 발성에 제외되어 문제아님) 추가하는 건데 어느 방향으로 함이냐면 연공이나,격술이 시연상 제외가 된거라 소위 연습운운이 아니며,간단하게 삼식중 온전하게 양측 소위 연공,격술이 자연스럽게 분리되어 문제가 없어진다 중국 전통 무술로 정신 집중과 자기 수양을 중요시하는 개인 무술이며, 일종의 건강법으로도 널리 쓰인다. 중국 주(周)나라 시대(BC 1111-256) 때 도가(道家)에서 신체단련을 목적으로 시작한 운동이다. 규정 자세 및 동작은 인간의 근육구조와 골격, 생리 등을 기초로 하여 짜여 있으며, 동물의 싸움 방식을 모방한 것이 많다. 다섯 가지 기본 자세는 정상적인 직립 자세와 용·개구리·뱀·기마 자세이며, 응용 자세는 수백 가지에 이른다. 또한 우슈(중국어: 武术)는 중국의 전통 무술로, 우슈란 무술의 중국 발음이다 중국 선종의 시조 달마선사가 고대 인도의 무술을 응용하여 소림사에서 9년 동안이나 참선 후 승려들의 신체단련을 목적으로 발전시킨 쿵후를 현대적으로 표현하는 경기이다. 오늘날 공식 경기에서는 태권도처럼 두 선수가 맞붙어 기량을 겨루는 종목이 아니라 혼자서 무술이 지닌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종목이며, 최근에는 실전성을 위해 산타라는 대련 경기도 일부 운영되고 있다. 대한민국에는 광복 후 전국 각처에서 우슈 수련장이 문을 열었으며, 1980년대에는 각종 경기단체가 생겨났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아 경기 대회 때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아 경기 대회에서는 태극권(太極拳), 남권(南拳), 장권(長拳)으로 나뉘어 남녀 도합 6개의 금메달을 놓고 기량을 겨루었다. 남자는 도(刀)·곤(棍)·술(術)을 포함한 장권(長拳)과 남권·태극권, 여자는 검(劒)·창(槍)술을 포함한 장권과 남권·태극권 등이 있다.
장권 (正字:長拳,简字:长拳)
소림권 (少林拳)과 같은 중국 북방무술에 기원을 두고 현대화 된 우슈 경기용 권법이다. 화려하고, 빠르며, 동작이 크고, 발차기동작과 고난이도 동작이 많다.
남권 (正字,简字:南拳)
홍가권 (洪家拳)과 같은 중국 남방무술에 기원을 두고 현대화 된 우슈 경기용 권법이다. 양쪽 다리에 힘을 모아 양팔을 힘차게 쓰며 기합을 지르는 게 특징이다. 크고 절도 있는 동작이 필요하다. 손동작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태극권 (正字:太極拳,简字 : 太极拳)
전통태극권 유파 (진ᆞ양ᆞ손ᆞ무ᆞ오)에 기원을 두고 있다. 태극권 특유의 부드러움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경기용 투로와 간화투로들은 주로 양식태극권(杨式太极拳)과 진식태극권(陈式太极拳)으로 나뉜다
일본의 전통 무술 거합도
거합도(일본어: 居合道 이아이도우)는 고류무술의 일종인 발도술을 현대무술화한 무술이다. 거합도의 원류인 발도술은 센고쿠 시대로부터 에도 시대 초기에 걸쳐 하야시자키 진스케에 의해 확립되었다고 하며, 이후 에도 시대에 수많은 유파가 생겨났다. 메이지 유신 이후 신정부 정책에 따라 발도술은 쇠망했으나, 메이지 28년(서기 1895년) 대일본무덕회가 결성되어 다른 무술과 함께 발도술도 진흥을 도모했다. 대일본무덕회는 뛰어난 발도술 연무자에게 각종 칭호를 수여했다. 당대에는 "거합도"보다는 "거합술"이라는 호칭이 일반적이며, 대일본무덕회에서는 거합술이라고 호칭 하였다. 쇼와 20년(서기 1945년)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패전한 후 대일본무덕회는 미군정에 의해 해산되고 다수의 일본도가 압수 및 폐기되었다. 미군정이 끝난 쇼와 27년(서기 1952년) 대일본무덕회의 사실상 후계단체인 전일본검도연맹이 발족했지만 전검련은 검도만을 소관하고 거합도는 다루지 않았다. 이에 무쌍 지키덴 이신류 제20대 종가 고노 햐쿠렌 등이 쇼와 29년(서기 1954년) 전일본거합도연맹을 결성했다. 복장은 거합도복이나 검도복을 착용. 거합도복의 상의는 일상적인 남성용 기모노를 간략화한 형상이고, 검도복의 상의는 일본의 전통적인 무술 수련복장이다. 하의는 거합도복, 검도복 공히 하카마로 동일하고 칼은 진검, 가검을 사용한다 발도시에는 한 손으로 칼을 휘두르고 자세나 날의 각도가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가볍고 휘두르는 소리를 확인하게 좋도록 히(칼날의 홈, 혈조)가 깊게 파인 칼을 선호하며 수련 내용은 크게 예법, 자세, 기본동작, 기술로 나뉜다. 예법은 거합도의 시작과 끝이다. 단순히 예의범절 취급해서 무시할 수 없다. 절 하는 동작 하나에도 예의뿐만이 아니라 언제든지 적에게 대응할 수 있도록 빈틈을 보이지 않는 자세를 중요하게 보기 때문이다. 자세는 모든 무술에서 강조하듯 거합도에서 역시 중요하다. 칼을 쥐는 법, 정좌자세, 겨눔세 등을 포괄한다. 자세는 기본동작, 그리고 실제 기술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기본이다. 기본동작은 보법, 호흡법, 칼 휘두르는 법, 신체적인 단련법등을 모두 포함한다. 기술은 발도, 공격, 납도를 몸에 익히는 기본적인 기술을 시작으로 실제 상대와 맞설 때 바탕이 될 기술까지 가르친다. 응용기술 역시 얼마든지 가능하다. 칼을 쥐고 서로 맞선 상태에서 시작하는 검도와 달리, 칼을 허리에 찬 상태에서부터 시작한다. 발도술 자체가 '아직 칼이 칼집에 꽂혀있는 상태(맨손인 상태)에서 무기를 든 적을 마주쳤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하는가'에 대한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에게 허점을 보이지 않으면서 신속하게 칼을 뽑아 공격태세로 진입하는 일련의 과정을 체계화하여 가르친다. 즉 발도-공격-납도, 예법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수련하는데, 진검 내지는 거합용 가검을 사용하기에 무게감과 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나 부상에 주의해야 한다. 자칫하다간 상대방이 아니라 자신의 손을 베어버리는 경우도 생긴다. 거합용 가검은 날을 갈지 않거나 현대에는 대개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들어 아예 날을 세우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에 안전하지만, 그렇다고 자세에 안일해지지 않도록 모노우치(칼의 끝부분)는 매우 예리하기 때문에 찔리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거합 기술은 파트너 없이 혼자 연습할 수 있는 게 많아 어느정도 배워두면 나름대로 혼자 놀 수 있다. 게다가 앉아서 하는 기술들은 낮은 천장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다만 미성년자가 구하기 어려운 진검이나 가검을 사용하기 때문에 어른의 취미에 속한다. 거합도는 실전성이 있으나 이는 주로 암살, 기습, 혹은 이에 대항한 호신을 위해 사용되어온 무술로서의 성격을 띈다. 주로 암살자로 유명한 오카다 이조, 나카무라 한지로, 카와가미 겐사이 등이 거합의 명인이었다. 거합술의 검술시연들도 대부분 길에 지나가다가 기습하는 법, 마주 앉아 있다 기습하는 법, 인사를 하다가 빠르게 베기, 차를 마시다가 상대 얼굴에 찻잔을 던지고 나서 빠르게 베기들이 자그마치 정식 기술이다. 심지어 검집이나 찻잔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거합술이 말하는 실전이란 전란기의 전투나 결투가 아닌 암살과 기습, 그리고 호신을 위한 검법이었기 때문에 실전이라고는 해도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실전과는 조금 다른 점이 있다. 뛰어난 검객들도 방심했다가 거합에 당한 경우가 많았는데, 나쁘게 말하면 비겁한 수법이지만, 험악했던 시대정황상 당시에는 당연한 전술이었다. 특히 에도시대 말 칼잡이들이 애용한 검술로도 유명한데, 이들은 신정부군이나 막부 둘 중 한편에 서서 승리를 추구하는 군인, 혹은 반군, 혁명가, 공안, 나쁘게 말하면 테러리스트였고, 상대를 베어죽이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기습이었다. 어차피 상대도 어릴 때부터 검을 잡았던 전문 칼잡이니, 효율적인 기습을 두고 목숨을 걸고 정정당당히 대결하는 것은 비능률적이었다. 그리고 당시 무사들은 평상시에도 칼을 차는 것이 관습이라 자연스럽게 발도술을 기습의 수단으로 택한 것이다. 그리고 기습이나 암습이란 건 사전에 들키지만 않으면 시도하는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거합유파로 이름을 날린 이들을 봐도 주로 암살을 했던 사람들이다. 즉 발도술이 막부 말의 유명 검객들에게 애용되었다는 것은, 그 유명검객들이 활동하던 방식이 암살이고, 당대 시대상에서 발도술이 암살에 가장 유용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무기를 뽑아놓고 싸우는 전쟁터라면 거합은 아무 의미도 없다. 이미 칼을 뽑아든 상태에서 적을 눈앞에 두고 납도를 하는 건 자신을 죽여달라는 말과 동일하다. 일본 서브컬처에 나오는 발도술은 그냥 판타지라고 생각하는 게 편하다. 굳이 납도를 할 바에는 그냥 칼을 뽑은 채로 허리칼자세를 취하는 게 더 빠르다. 실제 검술에서 납도를 하는 것은 전투가 완전히 끝나고 모든 상황이 종료 되었을 뿐이다 덧붙이면, 실제 암살의 대부분은 칼을 미리 뽑아들고 으슥한 곳에 숨어있다가 기습을 하거나, 허리에 찬 칼은 그대로 두고 품속에 단도를 숨겨서 접근하여 찌르는 방식을 더 많이 사용했다. 즉, 경계를 풀고 있는 상대에게 접근하여 칼을 뽑기 전에 먼저 찌르거나 뽑지 못하게 방해하면서 공격하는 더럽고 비겁한 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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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은 동아시아 시리즈 열세번째로 동아시아의 전통 무술을 소개 해봤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동아시아의 전통 악기 연주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